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club_wcup/2008/text/200812230007-spnavi.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이번 대회도 유럽 챔피언과 그 외의 클럽간 실력차이가 부각되었다.]

메워지지 않은 실력차이

 LDU 키토의 지장으로 아르헨티나 출신인 에드가르도 바우사 감독은 말했다.

 “예산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1/10에도 미치지 않는 남미 왕자가 클럽월드컵 결승에서 이길 기회라는 것은 굉장히 낮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금력은 시합에도 영향을 끼치니까”

 실제로 21일 결승에서 행해진 클럽월드컵 결승전에서 에콰도르의 LDU 키토는 마지막까지 1점을 따라붙지 못하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지난 시즌과 같은 플레이를 여전히 되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며 또한 이날 DF 네마냐 비디치의 퇴장덕분에 LDU 키토는 약 40분간을 한 선수 많은 상태로 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미 챔피언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승리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그 외 참가 팀들과의 차이는 그렇게까지 컸다. 결승까지 진출한 LDU 키토는 재능 넘치는 아르헨티나 MF인 다미안 만소가 2번에 걸쳐 멋지고 정확한 미들슛을 쏘았지만 어느 것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GK 판 데르 사르의 한 손에 막혔다.  

[ 경기 하일라이트 ]

흡사 ‘세계 올스타’인 유럽의 클럽

 LDU 키토를 이끌고 클럽월드컵에서 싸운 바우사는 예전 같은 나라의 카를로스 비안치가 걱정하였던 것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그것은 FIFA가 가까운 장래에 도입하고자 하려는 [6+5 룰]에 관련된 문제이다. 즉 팀 스타팅 멤버 중 외국 국적인 선수를 5명으로 제한하여 자국 선수를 늘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이 룰은 EU의 법률과 저촉될 염려가 있기에 유럽에서는 반대론도 강하다.

 비안치는 보카의 감독시대에 도요타 컵(당시)에 일본에 왔을 때 어느 유럽의 빅 클럽에 관해서 말한 적이 있다.

 “어느 나라의 팀과 싸우는지 알 수가 없다. 너무나도 여러 국가의 선수가 많아서 분류할 수 없을 정도다”

 잉글랜드 vs. 에콰도르라고 하면 2006년 월드컵 16강이 떠오른다. 이때 잉글랜드는 60분에 데이비드 베컴이 FK을 직접 성공시켜 1-0으로 에콰도르를 물리쳤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어쩌면 잉글랜드 대표팀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국 대표팀의 주력선수가 즐비하기에. LDU 키토는 그러한 ‘세계 올스타’에 도전하여 과감히 싸웠다.

[ 2006년 잉글랜드 vs. 에콰도르에서의 베컴의 골]

 클럽 월드컵에 대해서는 예전 유럽 챔피언과 남미 왕자에 의한 한판 승부에서 현재의 각 대륙 왕자를 모으는 포맷으로 바뀐 당초부터 큰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유럽과 남미의 차이는 아직 작은 것으로, 프로와 아마추어가 섞여있는 상황하에서 과연 축구가 스포츠로써 성립되느냐는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생각하기에 경제적으로 윤택한 팀이 강한 것은 당연. 물론 예상외의 결과는 존재하지만 결국에는 돈이 짱인 것이다.

■ 앞으로의 과제와 해결책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번 대회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완수하여 약속대로 세계 No.1이라는 칭호를 손에 넣었다. 지기라도 하였다면 유럽 챔피언의 명성에 먹칠이 되었을 것이다. 준결승의 감바 오오사카와의 시합에서는 놀랄 만큼 선전한 아시아의 왕자를 앞에 두고 다소 건성건성으로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점을 허용하여 2-1이 된 시점에서 이 잉글랜드의 빅 클럽은 순간적으로 진심이 되었다. 도중 출전한 루니가 곧바로 2골을 넣는 등 불과 5분만에 3점을 연속으로 넣어 5-1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후 감바 오오사카의 반격으로 최종 스코어는 5-3이 되었지만.

[감바 오오사카 vs. 맨유의 하일라이트]

 감바 오오사카와의 3위 결정전 후의 회견에서 파추카의 엔리케 메사 감독은 유럽과 남미 대표만 시합수가 적은 것에 의문을 표했다. 이 2팀은 시드 배정되어있기에 1시합 이기면 결승으로 진출할 수 있다. 어느 팀이건 같은 시합수로 해야만 한다고 – 멕시코의 지휘관은 그렇게 주장하였다. 물론 정론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럽과 남미 팀 이외에 결승에 진출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방법이 아닌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번 대회 4강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LDU 키토, 감바 오오사카, 파추가 사이에는 엄연한 퀄리티의 차이가 있었다. 만약 3시합 싸우게 된다면 2대 전통 대륙은 예전 토요타 컵 방식이 더 좋다고 말할 것이다.

[ 감바 오오사카 vs. 파추카의 골 장면]

 FIFA는 이 건에 관해서 앞으로 해결책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클럽월드컵은 다음 2009년부터 2년간 UAE로 장소를 옮긴다. 대회로써 조금 더 질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가령 각 대륙에서 출전하는 팀을 조금 더 늘린다. 월드컵과 같이 대륙의 경쟁력에 따라 출장 클럽 수를 늘리는 것도 하나의 안일 것이다. 개최기간의 문제는 있겠지만 대회의 질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터이다. 대회의 가치가 높아져 텔레비전 방송권료 등도 좀 더 들어오게 되면 클럽월드컵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유럽 클럽도 진심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개최국의 로테이션 문제도 있다. 개최능력은 필요하겠지만 나라에 따라서는 대회를 유치함으로써 축구의 메이저화에 대한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어쨌든 클럽월드컵은 이번 대회로 일단락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실력은 두드러졌지만 LDU 키토나 감바 오오사카는 굉장히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4위가 된 파추카는 아프리카 왕자인 에트왈 사헬에게 첫 시합 패퇴한 작년만큼은 아니라고 하여도 이번 대회 역시 불만이 남지 않았을까?

 클럽월드컵은 내년 UAE의 땅에서 새로운 길을 나아가게 되었다. 앞으로 더욱 사람들의 흥미를  끌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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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707/20080710-3-1.html

저자: 타무라 슈우이치

사진: 스기야마 타쿠야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는 우승 후보의 일각이라 평가를 받고 있던 프랑스가 조 예선에서 패퇴했다. [죽음의 조]라고는 하여도 12, 득점 1, 실점 6의 최하위라는 결과는 기대를 크게 배반하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프랑스에 무엇이 일어났던 것일까? 2002년 월드컵 이래의 참패에 이른 경위를 되짚어 보았다.

 

 63,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콜롬비아와의 친선 시합.

 테스트 매치 3연전 마지막 시합에서 프랑스는 6일 후로 다가온 루마니아와의 시합에서 스타팅 멤버로 출장할 것이라 여겨지는 멤버를 내세웠다. 그러나 컨디션 조절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명백하여, DF는 이제야 겨우 레귤러가 다 모였지만 누구하나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미스가 많았다. 특히 에릭 아비달은 상대 FW에 따라가지 못하고 자주 제껴지는 참담한 모습으로 2주 후의 이탈리아와의 시합에서 퇴장 처분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이 이 때의 모습이었다.

 

 공격은 2톱인 티에리 앙리와 카림 벤제마, 1.5열의 프랑크 리베리가 호흡이 맞는 컴비네이션을 보여주었다. 특히 리베리와 벤제마는 빈번히 포지션을 바꾸어가면서 부드럽게 볼을 연결해 갔다. 단지 다른 선수들과의 연계는 조금 미흡하여 3명의 볼란치가 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5 21일부터 합숙이 시작되긴 하였지만, 첫날에 집합한 선수는 불과 15명뿐. 챔피언스 리그 결승(21), 프랑스 컵,코파 이탈리아 결승(둘 다 24)이 지나, 전원이 모인 것은 에콰도르와의 시합(27) 직전. 지금까지 대회 시작 전에는 철저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던 프랑스가 어째서 이런 일정밖에 짤 수 없었던 것일까? 교만심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되돌아 보면 2년 전 독일 월드컵 때와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회 시작 전 테스트 매치인 멕시코와의 시합에서 본 것은 릴리앙 튀랑을 시작으로 하는 베테랑들의 무참하게 쇠약해진 모습과 눈을 가리고 싶을 정도로 컨디션 난조에 빠져 있던 지네딘 지단이었다.

 

 프랑스는 조 예선에서 떨어질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부활한 베테랑들이 팀을 견인하여 결과는 준우승. 때문에 그때와 비슷한 지금의 프랑스에게 부정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필자뿐만 아니라 기자들이나 여론도 같은 기분이었다.

 

 레몽 도메네크 감독도 2년 전의 전략을 답습했다. 튀랑이나 파트리크 비에라, 윌리 샤뇰, 앙리를 축으로 한 베테랑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고, 2년 전의 리베리와 마찬가지로 2007-08 시즌 '리그 앙'에서 16득점을 올린 성장세 뚜렷한 바페팀비 고미스를  단 한번의 대표 경력도 쌓지 않은 채 멤버에 집어넣어 조커의 역할을 기대했다.

 

 부상인 비에라는 루마니아와의 시합에 맞추질 못했다. 회복 상태도 미묘하여 멤버에 들어갈 수 있을지 어떨지 등록기한(첫 시합 당일) 바로 전까지 도메네크도 결단을 보류했다.

 

 맞이한 루마니아와의 시합, 비에라는 벤치에 앉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필드에 서 있어야만 하는 앙리의 모습도 있었다. 콜롬비아와의 시합에서 입은 허벅지 부상에 함구령이 내려져 도메네크는 니콜라스 아넬카와 벤제마로 중요한 첫 시합의 투 톱(여태까지 둘이 함께 플레이 한 시간은 65분뿐)으로 임한 것이었다.

 

 도메네크는 시스템도 바꾸었다. 콜롬비아와의 시합에서 썼던 4-3-1-2에서 클래식한 4-4-2. 하지만 오른쪽 사이드의 리베리는 루마니아 DF에 둘러싸여 벤제마와의 공간이 분단되어 고립되었다.

 

 한편 갑자기 기회가 주어진 아넬카는 팀 내의 우선 순위에서 젊은 벤제마에 밀려 정신적으로 몰려있었다. 두터운 루마니아의 수비 블록에 아무런 것도 못한 채 72분에 고미스와 교체되어 버렸다.

 

 그 고미스도 또한 벤제마와 교체되어 들어온 사미르 나스리도 상황을 타개하지 못했다. 공격을 포기하고 지키는 것만 전념하는 상대에게 개인의 힘으로 구멍을 뚫기에는 국제 경험이 부족했다. 그리고 팀은 그들을 살리는 시스템도 결여되어 있었다. 프랑스는 확실히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상대에게 무득점으로 비겨버린 것이었다.

 

 상황은 첫 시합의 스위스와 비긴 2년 전과 더 비슷해졌다. 하지만 당시는 남은 상대가 한국과 토고였다. 이번 대회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그 네덜란드와의 시합에서 앙리가 스타팅 멤버로 복귀했다. 시스템은 그를 톱에 앉힌 4-2-3-1. 리베리가 1.5, 시드니 고부와 플로랑 말루다가 양 사이드에 들어갔다.

 

 이 시합, 공격은 나쁘지 않았다. 선취점을 허용하면서부터 앙리가 이번 대회 첫 골을 넣을 때까지는 독일 월드컵 이후 프랑스의 공격이 가장 활성화된 시간대였다. 하지만 그것도 DF의 붕괴가 소멸시켜 버렸다. 거기에 좋았던 고부를 내린 도메네크의 적절하지 못한 선수 교체가 리듬 상실에 박차를 가한다.

 

 튀랑과 사뇰은 스피드가 뛰어난 네덜란드의 카운터에 아예 따라가지 못했고, 파트리스 에브라도 로빈 판 페르시에게 무너졌다. 프랑스가 큰 국제 대회에서 3점 차이가 난 것은 펠레와 가린샤의 브라질에 패한 1958년 월드컵 준결승 이래의 일. 역사적인 대패였다.

 

 시합 후의 통로에서 비에라와 에브라가 하마터면 싸울 뻔한 장면을 노르웨이의 텔레비전이 우연히 찍어 방송하였다. 도대체 무엇이 일어난 것일까?

 베테랑과 젊은 선수의 융합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팀 내의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다. 소문은 단편적으로 흘러 나왔지만 대부분의 연습이 비공개로, 과거에 예를 볼 수 없었던 보도 규제가 철저히 행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자들도 억측에 기반을 둔 원고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뒤가 없는 벼랑 끝인 이탈리아와의 시합 전날 비에라가 기자 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시합 전날의 회견은 다음 시합에 출장하는 선수가 출석하는 것이 통례이다. 나올 것 같지 않은 비에라가 나온 것이 이례였다면, 그가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는 부상에 짜증을 내며 메디컬 스태프에 대한 불신감을 나타낸 것도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언가가 지금까지와 달라져 있었다.

 

 도메네크는 컨디션이 나아지지 않는 튀랑과 사뇰을 빼고 에브라, 아비달, 윌리암 갈라스, 프랑소와 클러크 - 라는 DF라인으로 이탈리아와의 시합에 임했다. 대표 복귀 이래, 정신적으로도 플레이 면에서도 팀을 지탱해 왔던 튀랑을 드디어 잘라 버린 것이었다.

 

 또한 도메네크는 베테랑을 존중하지 않는 젊은 세대에 대한 징벌적인 의미로 네덜란드와의 시합에서 제외했던 벤제마를 스타팅 멤버로 복귀시켜 시스템도 첫 시합과 같은 4-4-2로 되돌렸다. 단지 리베리를 바이에른과 같은 왼쪽 사이드에 기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리베리가 잔루카 참부로타와의 접촉 플레이로 불과 10분만에 부상 퇴장. 루카 토니의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종 패스에 당황하던 아비달이 24분에 PK를 주고 퇴장 당한 그 순간에 - 프랑스의 유로는 끝났다.

 

 유로는 월드컵에 대한 준비라는 성격이 강하다. 에메 자케도 유로1996 2년 후 월드컵을 위한 준비로 이용했다. 그런 것을 나도 대회 시작 전에 좀 더 강조해 두었어야만 했다

 

 시합 직후의 인터뷰에서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애인에게 프로포즈한 것을 사과한 뒤 도메네크는 얌전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말에는 진실도 포함된다. 하지만 그것이 패배의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2년 전의 시나리오를 이번에는 답습하지 못했다. 컨디션 조절 부족에서 시작된 베테랑의 부진. 강호와의 시합. 젊은 선수의 불발과 세대 융합의 실패. 불의의 사고. 프랑스는 결국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질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들에게 결여되어 있던 것은 지단이다

 

 그 지단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던 리베리의 발언은 지금의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병의 원인이 뿌리 깊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리베리가 그 역할을 맡을 것인가? 아니면 나스리가 뒤를 잇는 것인 가? 미래는 아직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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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2008/20080602-1-1.html

저자: 쿠마자키 타카시

사진: 아카기 신지


1993 EU 발족 후 유럽 국가간의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희미해졌다. 그러나 축구의 국제 시합에서이 새삼 그것을 강하게 인식시켜 주는 경우가 있다.

2006 6 14일 도르트문트.
월드컵 조 예선 두 번째 시합에서 개최국 독일이 이웃나라인 폴란드와 시합하게 되었다.

결전 당일. 프랑크푸르트의 신문은 색다른 타이틀을 게시하였다.

[폴란드 vs. 폴란드]

독일의 투 톱, 클로제와 포돌스키 - 둘 다 폴란드 출신이라는 사실이 신문 타이틀을 그렇게 만들었다.

독일은 뇌빌(Oliver Neuville)의 골 덕분에 이 시합을 10으로 승리하였다. 폴란드와의 시합 무패기록을 11 4무로 갱신한 독일은 개막 전의 예상을 뒤엎고 3위로 끝마쳤다. 그 쾌조의 진격을 지탱한 것이 클로제와 포돌스키였다. 클로제는 5골을 넣어 득점왕에 빛났으며 포돌스키 3골을 기록. 일찌감치 패퇴한 폴란드의 미디어에서는,

[폴란드인이 없었다면, 독일 대표 같은 팀은 대단하지도 않았다]

는 질투의 목소리가 일었다.

클로제와 포돌스키는 폴란드 남서부의 오버슐레지엔(Oberschlesien) 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지역은 중세 이래 주인이 계속 바뀌는 역사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서 흔들렸다. 폴란드령으로 된 지금도 독일계의 주민이 많이 살고 있다. 풍족한 생활을 꿈꾸며 이 땅에서 독일로 향한 사람이 끊이지 않았으며 두 선수도 어릴 적에 가족의 손에 이끌려 독일로 건너왔다.

클로제의 뇌리에는 그 때의 기억이 선명히 찍혀있다.

내가 8살 때, 가족과 함께 프리드랜드의 입국 관리 센터에 고생 끝에 겨우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독일에서 살고자 하는 많은 이민들이 새우잠을 자고 있었으며 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누군가가 울었다. 독일 입국을 허가 받아 차단기의 봉이 올라갔을 때 새로운 인생의 막이 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클로제 가족은 독일 서부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살았는데, 이제껏 잿빛이었던 인생이 하룻밤 사이에 장밋빛으로 변할 리는 없다. “(Ja)”고맙습니다(Danke)”말고는 독일어를 모르는 클로제 소년은 초등학교를 2년간 꿀을 수 밖에 없었다. 나머지 공부로 받아쓰기를 해가며 이민이라는 자신의 환경을 원망한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광장에서 매일 즐긴 축구가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골 사냥꾼 클로제의 평판은 폴란드 축구 협회에도 전해져 조국의 대표가 되어 달라는 권유를 받았다. 7살 연하인 포돌스키도 등번호 10이 찍힌 대표팀 유니폼을 선물 받는 등 뜨거운 구애를 받았다. 하지만 둘이 폴란드 대표팀으로써 필드에 서는 일은 없었다.

이자택일을 선택 받는 이주민 선수의 대부분이 독일 국적을 선택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분데스리가에서 돈을 벌기에 외국인보다 독일 국적인 쪽이 유리하다는 현실이 있다. 기량이 같다면 독일인 쪽이 우대받기 때문이다. 요 몇 년간 함부르크의 트로쵸프스키(Piotr Trochowski), 보에니쉬(Sebastian Boenisch) 폴란드 출신의 우수한 젊은 선수가 독일 대표팀으로 이적하여, 폴란드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참고로, 이 원고에 등장한 4선수는 전부 폴란드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독일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강탈당했다]라는 비난은 독일의 시각에서 보자면 괜한 짜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악순환을 멈추고자 폴란드 축구 협회는 진지한 자세로 임하기 시작했다. U-17 U-20의 대표팀 감독인 글로비시(Michal Globisz)는 폴란드산 다이아몬드 원석을 찾고자 흡사 탐정과 같이 독일을 엄중히 감시하고 있다. 효과는 서서히 오르고 있는 듯하다.


6 8르트에서 처음으로 독일을 물리칠 수 있다면…… 다음 유로 개최를 앞둔( 역자 주) 폴란드에 순풍이 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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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2008/20080526-1-1.html

저자: 쿠마자키 타카시


 스위스와 터키의 시합이 결정된 순간 터키는 온 나라가 일제히 들끓었다. 한편 스위스 사람들은 이런~이런~”하고 한숨을 쉬었다. 반응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2005 11.

 양국은 독일 월드컵 출전권을 걸고 플레이 오프에서 싸우고 있었다.

 

 1차전. 적지 베른으로 쳐들어간 터키는 시합하기 전부터 흥분해 있었다. 스위스 국민들이 터키 사람들에게는 영혼과도 같은 국가[독립행진곡]이 울려 퍼질 때 욕과 야유로 모욕을 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스위스 선수가 시합 도중에 터키 벤치를 위협하는 듯한 행위를 하였다. 시합은 2  0으로 스위스가 승리하였다. 원래부터 서구를 적시하고 미워하는 터키 국민들은 패배에 깊은 상처를 입고 분노하였다. 온 나라가 [타도 스위스]로 불타올랐다.

 

 2차전. 이스탄불에서 적을 맞이한 터키는 말 그대로 나라가 하나가 되어 스위스를 공격하였다.

 

 입국 관리관은 수속을 빌미로 오랫동안 시간을 끌었고 그것이 끝나자 이번에는 군중들이 함성을 지르며 스위스 선수단을 쫓아 다녔다. 팀을 실은 버스가 호텔로 향하는 도중 터키 사람들이 계속해서 앞길을 막고서는 계란이나 돌을 던졌다.

 

 미디어도 얌전히 있지 않았다. 과격함으로 유명한 스포츠지 [포토 매치]는 시합 당일 상식을 깬 지면을 제작하였다. 1면에 게이 복장을 한 스위스 선수의 합성 사진을 대대적으로 게재하여 독기를 품은 문장으로 국민을 선동했던 것이다.

 

 [축구는 사나이의 스포츠다. 터키 대표여! 게이와 같이 비겁한 짓만 일삼는 스위스를 운동장 잔디 밑에 매장시켜 버려라!]

 

 하지만 매장된 것은 터키였다. 분노를 담은 표정으로 필드로 나간 그들은 시합 개시 직후에 큰 실책을 범하고 만다. 예전에 우라와 레즈[浦和レッズ]의 알파이[각주:1]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핸드링을 범하여 PK로 선제골을 헌납하고 말았다.

 

 이기기 위해서는 최저라도 4골이 필요하게 되어 터키는 필사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툰자이, 툰자이, 네쟈티…… 계속해서 골을 만들어 스타디움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렸다. 하지만 마지막 한 골이 나오질 않았다. 2차전은 4 2로 승리하여 합계 4 4가 되었지만, 원정 골 우선법칙에 따라 스위스에 월드컵 출전권이 주어졌다.

 

 절망한 터키 선수들은 종료 휘슬이 울리자 필드에서 도망치기 시작한 스위스 선수들을 쫓아가 때리고 차는 등 행패를 부렸다. 이 야만스런 행위로 인하여 국제 사회에서 비난이 쏟아졌지만 터키도 얌전히 물러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패배는 스위스인 블래터가 회장으로 있는 FIFA의 음모다]고 단정을 내린 것이다. 결국 공식 시합 홈 게임 3시합을 중립지에서 그것도 관중 없이 치러야 한다는 혹독한 제재가 터키에 내려졌다.


[ 쫓고 쫓기는 스릴]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작년 말. 필자는 이스탄불에 가서 시민들에게 스위스와의 시합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향신료를 파는 세즈긴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 우리들이 진 것은 베른에서 당한 여러 치욕에 분노하여 흥분했기 때문이다. '빨리 화를 내면 자신에게 화가 돌아 온다'는 속담이 터키에 있는데 그 말 그대로 되었다. 냉정히 싸운다면 다음엔 괜찮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스탄불의 파멸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다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다. 시합이 치러지기 전까지는 터키 사람들도 침착하게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저 저주스런 스위스 국민들로 꽉 찬 경기장에서 그 불쾌한 스위스 국가를 듣고서도 냉정히 있을 수 있느냐다. 하지만 애국심 덩어리에 마음속의 것을 행동으로 직접 표출하는 터키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스위스 사람들은 3년 전의 굴욕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도발해 올 것이 틀림없다.

 

 터키가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스위스가 도리어 그것을 물리칠 것인가? 어쨌든 살기로 가득 찬 90분이 될 듯하다.


  1. 한국 인천에서 뛰었던 그 선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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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키자키 신야

구체적인 도면이 많아 알기 쉬운 구성. 일본은 지적된 결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월드컵에 대해서 흥미로운 분석한 책을 손에 넣었기에 소개하고 싶다.

 독일 축구 협회가 작년 월드컵을 분석하여 간행한 [Analyse Weltmeisterschaft 2006]이라는 104페이지짜리 비매품으로 이번에 독일 축구 협회가 특별히 제공해 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은 굉장하다. 출장한 32개국의 특징이나 단점을 철저 분석. 예를 들어 일본에 대해서는 이렇게 쓰여 있다.


[3백의 좌우의 두 선수(나카자와와 츠보이)가 사이드를 커버하지 않기 때문에 SB인 산토스와 카치는 긴 거리를 오고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수비할 때의 포지셔닝은 좋았지만 너무 수동적이었다]


[2톱은 거의 포지션 체인지를 하지 않았고 1.5열인 나카무라는 수평으로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 축구 협회도 월드컵 분석을 한 책을 펴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시합은) 비극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패배 방식]

 [브라질이 높은 경기력으로 싸웠기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등의 감정적인 분석이 되어 있기에 그에 비해 독일의 책은 구체적인 전술의 개선점이 쓰여 있다. 어느 쪽이 우수한 지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참고로 옆 나라인 한국은,

 [너무 당황한다]

 [시합의 템포를 바꾸질 못한다]라고 결점을 지적하면서도,


 [강건한 팀 스피릿과 공격적인 자세]

 [뛰어난 민첩성과 운동량] 등 일본보다도 훨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가 우승한 비결로 “안전제일”이라는 것을 근본에 두고 있다고 한다.


 [상대에게서 볼을 빼앗으면 곧바로 선수들은 넓게 퍼졌다. 그리고 공격의 제 1옵션은 롱 볼. 수비할 때는 DF라인을 끌어 내리고 골문 앞에 밀집시켰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독일 월드컵에서 보인 새로운 트렌드이다.

 [게임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선수를 사이드에 둔다]

 [천천히 안전한 패스에서 갑자기 템포 업해서 공격한다]

 이제부터라도 일본 대표에게 참고가 될 지식일 것이다. 오심 감독은 다이렉트 패스를 이어가는 축구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이번 분석에 따르면 [단순]한 것이 된다.


 어서 빨리 일본 선수가 오심의 기초를 이해하여 응용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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