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portsnews.blog.ocn.ne.jp/column/soccer110329_1_1.html
인터뷰어: 베아트리체 에레나
저작권자: OCN 스포츠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지휘관 레오나르두의 가슴에는 언제는 ‘일본’이 있다. 25살 때 막 창설된 J리그에서 2년을 보냈다. 그때 얻은 경험은 그의 인간성을 형성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친일파 지휘관이 나가토모 유우토[長友 佑都]와 일본 축구에 대해 말해 주었다.

예전부터 브란카와 나카토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레오나르두, 오늘은 일본 축구에 대해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선은 나가토모에 관해서입니다만 그를 데려온다는 마르코 브란카(Marco Branca) 테크니컬 디렉터의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사실을 말하자면 그 전부터 나는 브란카와 유우토(=나가토모)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었어. 때문에 실제로 데려온다고 했을 때 기뻤지. 유우토는 선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멋진 사람이야. 선수로서의 능력은 AC 체세나[각주:1]에서의 플레이로 확인시켜 주었기에 우리 팀에 오는 것이 결정되어 정말로 좋았다.

- 나가토모의 어디가 멋진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실 수 있나요?

 사이드백으로서의 종합력이 높아. 무엇보다 풍부한 운동량이 매력이지. 왼쪽 측면에서도 오른쪽 측면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만능성이 좋으며 공격 참가도 잘 해. 상대 FW의 마크를 지시하면 확실히 해 줘. 키는 작지만[각주:2] 공중 볼 대응도 제대로 하고 있지. 스피드와 스태미나를 살려 공격과 수비에서 활약해 주고 있어.

- 인테르나치오날레의 톱 팀의 일원으로 활약할 만한 실력이 있나요?

 당연하지! 인테르나치오날레에게 커다란 전력이 될 것만은 틀림없어. 더구나 합류하자마자 곧바로 팀 분위기에 익숙해지더군. 지금에 와서는 팀 전원과 친하게 지내고 있어. 로커룸에서 받아들여진 인간은 필드 위에서도 적응이 빠르지. 팀 동료들 뿐만 아니야. 팬들에게서도 사랑 받고 있는 것 같아. 지금까진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

-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고 보아도 좋을까요?

 물론. 과제는 아직 있지만. 좀 더 팀의 메커니즘을 배울 필요가 있어. 그래도 현시점에서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가고 있지. 적어도 자신이 높은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키고 있더군.

- 나가토모와 대화할 때 일본어를 사용한 적도 있나요?

 분위기에 맞추어 일본어도 쓰지. 유우토는 이탈리아어를 할 수 있지만 알고 있는 단어수가 많지 않으니까. 내가 일본어로 말해 주면 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어? 다행히 나는 일본어를 조금 할 수 있으니까. 일본에서 뛸 때 배운 것이지만 말이라는 것은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리니까. 때문에 내 일본어를 다시 살린다는 의미에서도 유우토에게는 일본어로 말을 걸지. 유우토도 나와 말하면서 이탈리아어가 능숙해 지겠지. 축구 이외에서도 서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야(웃음)

- 필드 밖의 나가토모는 어떤 가요?

 굉장히 쾌활한 청년이야. 밝은 성격의 소유자로 남을 접할 때도 좋아. 언제나 팀 동료들과 장난치고 있더군. 로커룸에서 지들끼리 뭉쳐있을 때 보면 언제나 중심에 유우토가 있어. 이것은 팀에 받아들여졌다는 증거지.

- 그는 굉장한 기세로 스탭업하고 있습니다. 인테르나치오날레라는 빅클럽에 도달한 지금 밀라노의 나이트클럽이 그를 망쳐버릴 걱정은 없을까요?

 나는 유우토의 사생활까지는 몰라. 하지만 밤놀이에 정신이 팔려 축구를 등한시하는 인간은 아닌 거 같아. 뭐 알아서 적당히 돌아다니거나 하겠지만, 선수로서 오랜 기간 활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뛰고 있는 도시에 익숙해 지는 것도 중요해. 때로는 밀라노의 화려한 지역에서 식사를 하고 밤놀이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 그러나 유우토가 아침까지 술 취해 비틀거리거나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겠군.

- 예전에 당신도 ‘밀라노에 익숙해진다’는 과정을 경험하셨지요?

 그렇지. 밀라노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이며 최고의 이탈리아 요리를 먹을 수가 있어. 나도 이탈리아에서 살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그 매력에 빠져 매일매일 식사를 즐겼었지(웃음). 토우쿄우[東京]에서 살고 있던 유우토에게는 밀라노도 그리 특별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우토가 하루라도 빨리 밀라노의 도시생활에 익숙해졌으면 해. 맞어. 요즘엔 밀라노의 일본식 레스토랑에 다니고 있다고 말하더군. 이탈리아에서는 요 수년 일본식 붐이 일어나 밀라노에도 많은 일본식 레스토랑이 생겼어. 하지만 유우토의 말로는 진정한 일본식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은 많지 않다더군. 팀 동료에게 부탁 받아 밀라노의 일본식 레스토랑을 ‘진짜’와 ‘가짜’로 나눈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고 하더군(웃음)

- 플레이어 나가토모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그야말로 현재 일본 축구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선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학교 축구부에 소속되어 연습에 몰두하며 땀을 흘린다. 그런 젊은이의 전형이야. 조금 전까지 이탈리아의 클럽이 일본인 선수를 획득하는 케이스의 대부분은 선수로서의 자질 이외의 요소가 고려되었지. 선수로서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2차적인 문제로 우선은 일본의 시장을 내다본 마케팅 적인 면이 우선되었지. 즉 아시아에서의 인기를 높이 자거나,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일본 기업을 스폰서로 하고 싶다거나, 그러한 요망이 항상 존재하였지. 유럽에서 도전하고 싶다는 선수를, 형태가 어떻건 기회만 있다면 이용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해. 그러나 그렇게 유럽 팀에 오더라도 주위에선 아무래도 편견을 가지게 된다는 문제가 생기지. 하지만 유우토의 경우엔 달라. 인테르나치오날레는 축구선수로서의 능력만을 평가하여 그를 데려왔어. 일본 축구계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AC 체세나는 그의 재능을 평가했어. 그리고 인테르나치오날레는 세리에A에서 원활하게 적응한 실적을 평가하여 획득을 결정한 것이지.

일본 대표팀은 굉장한 기세로 진화하고 있다.


- 당신은 일본 축구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군요.

 일본 축구는 원숙기를 맞이하려고 하고 있지. 그것은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증명되었어. 이전의 일본 축구는 단지 맹목적으로 달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달라. 일본 대표팀의 시합을 보면 알게 될 거야. 뛰어난 테크닉에 더해 전술적이며 조직적인 움직임이 보강되었지. 일본인은 축구에서도 부지런해. 그들은 요 10년간 유럽 축구를 배우며 좋은 면만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 왔어. 예전엔 단지 달리기만 하던 팀이 지금은 명확한 전술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축구를 전개하고 있지. 10년 전에는 유럽 톱 레벨에서 통용하는 일본인은 나카타 히데토시[中田 英寿]뿐이었지. 그러나 지금은 유럽의 톱 레벨에서 10명 이상의 선수가 활약하고 있어. 이것은 일본 축구가 크게 향상되었다는 증거지.

- 당신이 플레이하고 있었을 즈음과 비교해서 상당히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나요?

 하늘과 땅 차이지. 일본 축구는 예전과 비교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했어. 내가 카시마 앤틀러스[鹿島アントラーズ]에서 플레이 한 것은 1994년부터 96년까지 2년간이지만 그 후에도 항상 일본 축구에 주목해 왔지. 일본 축구의 성장을 내 눈으로 쫓아 온 거야. 작년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가 보여준 축구는 당신도 보았을 걸? 더구나 요 전번의 아시아 컵에서는 월드컵을 상회하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어. 그래 일본 대표팀은 굉장한 기세로 진화하고 있지. 아시아 컵에서는 ‘이길만한 팀이 이겼다’는 내용이었어. 그 원동력이 된 것이 유럽 톱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인 것을 놓쳐서는 안 되. 그들은 우리들에게서 배우고자 하고 있어. 그리고 실제로 많은 것을 흡수했지.

- 나가토모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일본인 선수의 장점을 든다면?

 규율을 잘 지킨다는 것. 이것은 일본인의 멋진 미덕이지. 축구에 있어서도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일본인은 누구에게 지시를 받지 않더라도 규율을 지켜. 로커룸의 질서가 일본인 선수 때문에 부서진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어. 나가토모도 역시 그래. 그는 무드메이커로서 로커룸에 웃음꽃이 피게 만들며 규율을 잘 지키는 행동으로 팀에 좋은 의미에서 긴장감을 가져다 주지.

- 그렇다면 반대로 일본인의 단점은?

 수년 전까지 ‘일본인은 전술적으로 미숙하다’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고쳐졌어. 나가토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전술에 잘 적응하는 것은 오히려 일본인의 장점이라고 말해도 좋아. 굳이 결점을 찾아본다면 정신적인 면에서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 나가토모의 경우 이탈리아 축구계 특유의 압박에 어떻게 대응해 갈 것인가… 특히 빅클럽의 압박은 그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터. 나가토모는 팀에 가입하면서 지금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기에 특별한 압박을 느끼는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커다란 실수를 하나 저지른 것만으로도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되지. 그러한 상황에서 예전처럼 플레이 할 수 있을지 어떨지. 나가토모에게는 강한 정신을 가지길 바래. 단지 장점과 단점으로 말한다면 일본인은 장점 쪽이 훨씬 많다고 생각해.

- AC 밀란을 이끌던 지난 시즌, 일본인 선수를 데리고 오기 위해서 한 일, 혹은 검토한 적은 없었나요?

 주어진 전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만을 생각했어. 어떤 선수를 데려올까? 하고 감독인 내 의견을 물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쓴웃음)

  1. 나가토모는 체세나에서 2010~11 시즌 16경기 출전. [본문으로]
  2. 170cm.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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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ews.blog.ocn.ne.jp/column/soccer110317_1_1.html
저자: 호세 루이스 칼데론

José Mourinho
José Mourinho by tEdits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관은 위험한 처지에 서있다. 1위 바르셀로나가 저 멀리 달아남에 따라 모리뉴에게는 날이 갈 수록 절찬보다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무례한 언동과 재미없는 축구가 계속 된다면 아무리 모리뉴라고 하더라도 지휘관의 자리가 위험하다. 상황을 해결할 수단은 단 하나. 바로 이기는 것이다.

위험한 처지에 처해진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관


 2011년 2월. 드디어 막이 오른 챔피언스 리그 결승 토너먼트 1차전에서 에스파냐 팀들은 전부 고전했다. 바르셀로나가 아스날 상대로 원정 1차전에서 패했으며, 레알 마드리드는 지금껏 그다지 상성이 좋지 않았던 리옹에게 원정에서 무승부. 발렌시아도 샬케에게 홈에서 원정골을 상대에게 허용하여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필자가 이 원고를 쓰고 있는 것은 2차전 직전이다. 에스파냐 세 팀의 결과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특히 바르셀로나는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면서도 1차전에서 패하여 배수의 진을 친 채로 캄프 노우에서 아스날을 맞이한다. 이 일전은 바르셀로나의 진가가 시험 받는 시합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바르셀로나는 중요한 일전에서 반드시 강한 승부욕을 발휘하여 결국에는 그 팀을 능가하는 운동성을 발휘했다. 과연 이번에도 역시 압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편집부 주: 바르셀로나는 3월 7일 행해진 2차전에서 3-1로 아스날에 승리하여 8강 진출)

 어쨌든 독자 분들은 이미 결과를 알고 계실 테니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이번 테마로 말을 옮기자.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레알 마드리드의 결과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리옹에게 참패라도 당한다면 지금 쓰는 글에도 대폭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그렇다. 이번 테마는 레알 마드리드의 모리뉴에 대해서이다. 결국 자리가 위험해진 이 지휘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예상을 섞어가며 사견을 말하고 싶다.

미디어를 이용한 정치적 전략에 성공


 모리뉴는 지금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중이다. 아니 ‘스스로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르겠다. 리가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1위 바르셀로나와의 승점차가 7로 벌어져(27라운드 종료시점), 결국 바르셀로나의 등짝이 보이지 않게 될 듯하다. 하지만 필자는 그 승점차를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예전 이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는 선수 개인 능력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다. 물론 때때로 선수 개개인의 창조성이 조화를 이룰 때도 없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각자가 제멋대로 파고드는 장면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한 공격을 거듭하고 있기에 1월의 오사수나와의 시합(21라운드 0-1로 레알 마드리드의 패배)에서 팀 플레이가 결여된 플레이를 일관하다 패했다. 지금의 리가에서는 한번의 패배가 치명상이 된다.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을 다투고 있는 라이벌은 ‘역사상 최고’라고도 말할 수 있는 레벨의 바르셀로나이기 때문에.

 1위와의 차가 벌어지면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시선도 차가워진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제 와서 모리뉴의 수완을 의심하는 것에도 다소 위화감을 느낀다. 모리뉴가 지향하는 축구 스타일은 그가 레알 마드리드에 오기 전부터 잘 알고들 있었을 터이니까.

 이 칼럼의 독자라면 필자가 레알 마드리드의 실력에 대해서 처음부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다. 필자는 지금의 결과에 조금도 놀라고 있지 않으며,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승점차가 더 크게 벌어져도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타깝게도 내 의견이 아니다.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모리뉴에게 절찬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는 손바닥 뒤집듯이 비판적이 되어 모리뉴의 강렬한 통솔력에 혐오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리뉴는 작년 말에 곤살로 이과인이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 프런트가 대신할 FW를 획득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에게 “나를 택할 것인지 GM인 발다노를 택할 것인지 정하시오”라고 몰아 부쳤다. 그것을 미디어에 폭로함으로써 한때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관두는 것이 아닐까? 하는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결국 프런트는 페레스 회장의 명령에 따라 FW 획득을 결정하여 1월말에 아데바요르를 획득. 더욱이 발다노가 시합 전후에 로커룸 출입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즉 모리뉴의 요망이 전면적으로 인정 받은 것이다. 그 후 모리뉴는 공식 인터뷰에 답하는 형식으로, “나는 앞으로도 레알 마드리드에 남겠다”고 발언. 이렇게 FW 획득을 둘러싼 ‘다툼’은 일단 종지부가 찍힌 형태가 되었다.

 이 일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모리뉴의 교묘한 정치적 전략이다. 그는 미디어를 이용하여 ‘소동’을 일으켜 페레스 회장이나 발다노를 몰아붙임으로써 자신의 요망을 이루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모리뉴의 이런 작전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 넣는 무례한 언동들


 하지만 이때부터가 실패였다. 한번의 성공으로 우쭐해졌는지 모리뉴는 또다시 같은 행동으로 나온 것이다. 그는 리가의 커미셔너와 리가의 일정을 짤 때 영향력을 가지는 [미디어프로](편집부 주: 리가의 방영권을 취급하는 회사)에게, 레알 마드리드의 일정이 바르셀로나에 비해 힘들게 짜였다며 클레임을 걸었다.

 “바르셀로나가 챔피언스 리그를 싸운 주는 시합이 일요일에 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는 토요일에 있다. 휴일이 하루 길어지는 바르셀로나에게 유리한 일정이다.”

 이 발언의 정당성은 둘째치고 모리뉴가 실패한 것은 바로 그때. 데포르티보와의 시합(25라운드)에서 설마 하던 무승부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와의 승점차가 7로 벌어져 우승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지게 된 것이다. 그리 되자 모리뉴의 주장은 정당한 클레임이 아니라 단지 ‘패배자의 칭얼거림’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된다.

 요한 크라위프는 자신의 칼럼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문제는 일정이 아니다. 쓸데없이 너무 달려 선수의 운동량이 소모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쓰며 모리뉴 스타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동시에 친 바르셀로나 미디어도 ‘이때다’하고 대대적인 비판을 전개했다. “일정에 투덜거리고 있는 감독은 자신의 무능을 남 탓하고 있다”. 그들은 일정에 불만을 표하지 않고 1위를 달리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 감독과 비교해가며 모리뉴를 가차없이 두들겼다.

 그럼에도 모리뉴의 입은 다물 기색이 없었다. 데포르티보와의 시합에 이은 말라가와의 시합 전에는 상대 팀 감독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였다. 말라가의 감독은 지난 시즌까지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였던 마누엘 페예그리니. 레알 마드리드에서 클럽 사상 가장 많은 승점을 올렸으면서도 무관에 끝나 자리에서 쫓겨난 지휘관이다. 모리뉴는 상대를 비웃는 듯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드리드를 떠나더라도  유럽의 빅 클럽들이 나에게 러브 콜을 보낼 것이다. 말라가같은 데서 감독을 하지는 않지”
 라고.

 더욱이 그 회견장에서 모리뉴는 내 동료인 기자를 향해서 “당신은 위선자다”라고 말했다. 회견 후 모리뉴는 그 기자에게 사죄하였지만 너무나도 무례한 말이 아닐까? 필자가 “스스로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쓴 이유를 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의 언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모리뉴가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를 능가하는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면 저렇게 거만해져도 참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고 있는 축구는 우리들에게 충격을 주는 듯한 혁신적인 것이 아니다. 더 말하자면 바라던 결과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리뉴 감독! 입 닥치고 승리를!


 지금 모리뉴의 주변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는 정말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에 어울릴까?’, ‘레알 마드리드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언동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의 목소리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최종적으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역시 우승이다. 그가 우승한다면 회의적인 시선도 다소는 누그러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축구가 계속 이어진다면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하기에는 굉장히 힘들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만약 레알 마드리드가 이번 시즌도 무관으로 끝난다면, 지금까지 거듭되어 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거듭되어질 도발적인 언동이 (그리고 그 때문에 생기는 대량의 적이) 모리뉴를 감독의 자리에서 몰아내는 일격이 되어 덮치지 않을까?

 “모리뉴가 해임되면 페레스 회장 자신의 책임문제가 된다. 따라서 모리뉴의 목은 앞으로도 안전하다”
 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듯 하지만 그들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모리뉴를 초대하면서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페레스 자신이 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를 떠올리길 바란다. 지난 여름 페레스는 클럽 역사상 가장 많은 승점을 쌓은 페예그리니를 쫓아내고 ‘최종병기’로 모리뉴를 맞이하였다. 회장 자신 역시 그런 만큼의 각오를 가지고 결단했을 터 – 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모리뉴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지금과 같이 거만한 행동을 계속 한다면 주위에서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가 결과를 계속 낸 경우에 한해진다. 그것이 실패한다면 취임 시에 짊어진 최대급의 기대는 그만큼 최대급의 혐오가 되어 그에게 쏟아질 터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들 미디어의 인간은 많은 화제를 제공해주는 모리뉴를 좋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축구 팬으로서 레알 마드리드를 보았을 때, 그 강렬한 통솔력과 평범한 축구와의 낙차는 큰 실망을 안겨준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그에게 ‘입 다물고 승리를 노려라!’라고 말하고 싶다. 모리뉴에게는 어떠한 형태건 승리를 탈취하는 레알 마드리드를 만들기 바란다. 그리고 꼭 리옹에게 이겨주길 바란다. 만약 그렇게 못하면 8강에서 에스파냐의 팀을 응원하는 재미가 하나 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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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goo.ne.jp/soccer/column/number-3999-1/
저자: 유게 타카시

 AC Milan v Los Angeles Galaxy7월 7일에 히우 지 자네이루의 교회에서 밀란 FW 파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것을 전해들은 오너 베를루스코니는 이렇게 말했다.

 “거 곤란했겠군. 부부의 결혼 맹세를 받는 신 즉 나는 그 때 라퀼라 서미트를 주도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유머를 날릴 정도로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라는 인물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억지로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3개의 민영방송국을 포함한 매스미디어를 좌지우지하며 부동산 개발 및 보험, 금융기관의 대주주에 개인총자산이 약 7조 7천억 원이 넘는 현역 내각수상]. 너무도 황당무계하여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밀란의 대개혁에 착수한 레오나르두 신감독.

 그의 소유물 중 하나인 AC밀란은 작년 약 1144억 원의 적자를 내었다. 원인은 출장을 놓친 CL의 보수가 줄어든 것과 약 2119억 원에 달하고 있던 선수들의 총 연봉 지출. 오너가 자신의 돈으로 보충은 했지만 매일 국가 경제문제 해결에 분주한 수상에게 있어서 그냥 두고만 넘길 수 없는 숫자였다. [연봉 총액 30%를 줄여라]는 호령 하에 최고 연봉을 받고 있던 카카는 레알 마드리드로 팔려갔다. 오랜 기간 팀의 상징이었던 주장 말디니는 은퇴하였으며, 명장 안첼로티도 떠났다. 경영의 건전화와 어린 선수들의 육성강화를 내세운 밀란은 현재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오너는 예전 카펠로(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와 마찬가지로 현역은퇴 후 프런트 업무경험을 쌓고 있던 자팀의 옛 선수를 감독으로 임명하였다.

 카펠로는 지장 사키의 성공에 이어 90년대 초반 황금시대를 쌓았다. 안첼로티 장기집권의 뒤를 맡게 된 것은 클럽의 조직철학을 낫낫이 알고 있는 청년간부 레오나르두였다. 지적이며 스마트한 신감독은 선발멤버 편성부터 선수들의 간식 메뉴까지 간섭하는 오너의 의향에 거스르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호나우지뉴조차 일개 선수. 신생 밀란의 방침이란?

 감독경험이 전혀 없는 ‘레오’는 취임에 앞서 코칭 스태프는 물론 연습장의 잔디관리인, 식당의 웨이터나 청소부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의 밀란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귀를 기울였다. 목적은 클럽을 구성하는 전원의 동기부여와 인식의 공유였다.

 선수들에게는 [달려라! 공격하라! 즐겨라!]를 슬로건을 내세움과 동시에 [양 SB의 동시공격참가], [2터치 플레이의 철저] 등 측면 공격력 증가와 슛 기회의 다양화를 위한 플레이 10개조를 제시하였다. 새로운 기본 포진은 [4-3-3]으로 아무리 호나우지뉴라 하더라도 특별취급을 하지 않는다. 12일 행해진 올 시즌 첫 연습시합을 보러 달려온 오너이자 수상은 호나우지뉴를 식당의 테이블 앞에 서게 해서 “올 시즌은 프로다운 행동을 하겠습니다. 승리를 위해서 전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팀 전원 앞에서 맹세하게 하였다.

‘레오’는 시끄러운 오너를 입다물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서포터 중에는 여전히 카카를 떠나 보낸대 대한 불만이 여전하다. 5월에 발각된 두바이의 자본 그룹 [ADUG]에 의한 말란 주식 취득공작이라는 불씨도 꺼지지 않고 남아있다. 밀란은 선수층, 감독, 포진, 보강방침 등 모든 면에서 지난 시즌과는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지휘관은 국내외 라이벌들의 대형보강이나 주위의 잡음에 휘둘리는 일 없이 견실한 방식으로 싸워가는 자세를 요구 받고 있다. 레오나르두 역시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축구에는 스피드와 터프함이 불가결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전원의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들에게 있는 잠재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다면 멋진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베를루스코니는 강경한 2톱 신봉자이지만 파투, 인차기, 호나우지뉴에 의한 레오나르두의 3톱 구상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오너가 정쟁에 바쁜 동안, 조용히 그리고 깔끔히 레오나르두의 개혁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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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ocn.ne.jp/sports/soccer/soccer090129_1.html
저자: 조나단 윌슨
일본어 번역: 아베 히로시 알렉살더

 30여 년 전에 잉글랜드 축구에는 4-4-2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고도로 전술이 발전함에 따라 시스템이 다양화되었다. 잉글랜드 전통의 4-4-2에 이은 새로운 유행으로써 프리미어 리그의 많은 클럽들이 4-2-3-1을 도입하고 있다.

 1970년대.
 잉글랜드에는 ‘텔레파시’를 이용하여 골을 양산한 콤비가 있었다. 리버풀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존 토샥(John Toshack)과 케빈 키건(Kevin Keegan)의 2톱이다.

 토샥과 키건은 1971년에 콤비를 결성하자마자 화려한 연계 플레이를 펼쳐 리버풀은 양 선수가 재적했던 6년간 3번의 리그 우승을 이룩했으며 1977년에는 유럽까지 제패했다. 그들의 플레이는 언젠가부터 ‘텔레파시로 서로 교신하는 거 아냐?’라는 말들이 나오기에 이르러 BBC가 이 ‘텔레파시 설’을 시험해 보기 위해 테스트를 하자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BBC는 어느 프로그램에 토샥과 키건을 게스트로 초대. 키건에게만 카드를 보여주고 토샥이 카드에 쓰여진 문자를 맞추는 실험을 행했는데 놀랍게도 토샥은 굉장히 높은 확률로 문자를 적중시켜 수 백만의 시청자를 놀라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의 ‘텔레파시’는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듯 했다. 그러나 20년 후 찔리는 것이 있었는지 토샥이 사태의 진상을 고백했다. “실은 키건 뒤에 있던 유리에 카드의 문자가 비쳤었거든”

 이 에피소드를 이 이상 파고들어도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냐 하면 당시 축구의 주역이 2톱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70~80년대 클럽은 4-4-2를 채용하고 있었다. 리버풀의 토샥과 키건을 시작으로 80년대 리버풀을 견인했던 케니 달글리쉬이안 러쉬(Ian Rush)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마크 휴즈브라이언 맥클레어(Brian McClair) 등 팀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도 팬들의 관심을 주목시키는 것도 항상 앞 선의 둘 이었던 것이다.

 당시 2톱의 역할은 현대 축구만큼 복잡한 것이 아니었고 조합도 2개의 패턴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가장 전형적인 것이 타겟맨과 피니셔의 조합. 90년대 후반에 선덜랜드를 약진시킨
나이얼 퀸(Niall Quinn)과 케빈 필립스(Kevin Phillips). 첼시에서 일세를 풍미한 토레 안드레 플로(Tore André Flo) 와 잔플랑코 촐라(Gianfranco Zola)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하나는 크리에이터와 피니셔 콤비. 서두의 에피소드에 나온 토샥과 키건 외 80년대의 잉글랜드 대표팀의 2톱
피터 비어즐리(Peter Beardsley)와 게리 리네커 등을 대표적인 예로써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축구는 크게 변화하였다. 현대 축구는 당시와 비교하여 보다 치밀해지고 조직적이 되어 전술이나 시스템도 다양화. 이에 따라 FW의 역할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여 그 평가기준도 바뀌게 된 것이다.

4-2-3-1이 현대 축구의 주류로

 축구는 말할 것까지도 없이 누가 골을 많이 넣느냐는 다투는 스포츠다. 그러나 최근은  이기기 위한 축구보다도 지지 않기 위한 축구가 보다 중시되고 있다. 즉 득점을 올리는 방법보다도 실점을 막는 방법에 중점을 둔다. 원정에서는 어떻게든 무승부로 가져가고 홈에서 승리를 거둔다 - 요 5시즌 리그의 패자는 이렇게 타이틀을 손에 넣어왔다.

 지지 않는 축구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주목 받은 것이 4-2-3-1이다.
 이 시스템에는 두 가지 방법론이 있다. 하나는 4-4-2에서 FW를 1명 줄이고 수비형 MF를 투입하는 수비적인 전법. 이 전술을 채용할 때 1톱은 포스트워커 겸 피니셔라는 중요하고 어려운 역할이 주어진다.

 또 하나는 양 측면에 FW와 동등한 공격력을 갖춘 창조적인 선수를 배치하는 포진. 양 측면 MF의 전방에 공간을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그 컨셉트는 4-3-3과 거의 마찬가지이기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수비력뿐만 아니라 공격력까지 현저히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프리미어 리그에서 수위다툼을 벌이고 있는 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리버풀 세 팀은 이 시스템을 능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첼시는 4-2-3-1의 선구자적인 존재다. 그렇다고 하여도 이 시스템을 채용한 것은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이 취임한 올 시즌부터. 단 2004-05 시즌부터 그 기반이 되는 4-3-3으로 시합을 해 왔기에 양 측면에 공격수를 둔 포진에는 익숙해져 있다.

 4-3-3을 도입한 것은 모리뉴 전 감독. 그는 앞 선의 3명을 공격에 전념시키고 후방 7인으로 지키는 <분업제>를 확립함으로써 성과를 올렸다. 한편 스콜라리 감독은 양 측면에 조 콜이나 데쿠 등 테크니션을 배치하는데 이는 중반의 5명을 공격에 참가시킴으로써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선택기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약간의 스타일 차이는 있지만 양 시스템의 전술기반은 같다. 그들은 5년을 투자해서 성숙도를 높여 4-2-3-1을 완성의 영역까지 높인 것이다.

 단 현 포진이 최고의 전술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확실히 톱 스코얼러인 니콜라 아넬카는 전반전만으로 14골을 넣었지만 팀 성적이 동반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아넬카 자신도  빅 게임에서는 그다지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볼튼 시대의 은사 샘 알라다이스는 아넬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GK와의 1대1이라면 아넬카만큼이나 뛰어난 선수가 없다. 단 그의 득점패턴은 단순하다. 상대 DF의 뒤를 노린 뿐이니까”. 그가 강호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골 앞에 밀집지대를 만들어 수비를 굳건히 하는 상대와 대전할 시는 무조건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활약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첼시가 수위로 부상할 수 없는 이유는 아넬카 1톱 기용에 원인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칼럼에서 몇 번이나 썼던 대로 역시 디디에 드록바의 존재 없이 그들의 패권탈환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드록바는 우수한 골 사냥꾼일 뿐만 아니라 포스트 워커로서도 능력이 뛰어나다. 그가 밀집지대에 우뚝 버티고서 아넬카 혹은 조 콜이나 데쿠가 공간을 파고든다. 이런 형태를 구축할 수 있다면 빅 게임에서도 충분히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드록바와 아넬카를 동시 기용함에 있어 어느 시스템을 채용할지 고민해야겠지만. 4-2-3-1의 [1]에 드록바, [3]의 중앙에 아넬카를 놓은 형태 혹은 4-4-2의 2톱에 둘을 배치하는 포진. 또는 4-3-3의 중앙에 드록바, 윙에 아넬카를 두는 진용도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의 <공존>이 팀 부상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새로운 전술을 도입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통의 4-4-2를 기본형으로 하면서 4-2-3-1을 옵션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 패턴은 다채로워 1톱에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나 웨인 루니 혹은 카를로스 테베스를 배치. 1.5열에 루니나 라이언 긱스 양 측면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루니, 박지성 등을 기용하여 대전 상대나 상황에 따라 응용한다.

 실은 4-2-3-1을 병용하기 시작한 지난 시즌 초반에는 팬들에게서 야유에 가까운 ‘4-4-2’콜이 쏟아졌다. 그들은 2톱의 공격적인 포진을 보고 싶다고 호소한 것이다. 그러나 그 야유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왜냐하면 호날두, 루니, 테베스의 하모니가 ‘4-4-2’와 맞먹는 파괴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올 시즌 4-2-3-1의 버전 업을 시도하였다. 1톱에 운동량의 테베스를 대신하여 포스트 워커인 베르바토프를 기용. 베르바토프에게 조연을 맡겨 그 주변을 헤집고 다니는 호날두나 루니의 득점력을 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지금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으며 옵션으로써 확립되었다고도  단정지을 수 없다. 20시합을 치르고 33이라는 득점수도 지휘관을 만족시키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바토프가 팀에 녹아 들며 생각했던 대로 활약한다면 놀랄만한 결과로 이어질 터이다. 수위 리버풀을 사정권내에 둔 지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습은 이 새로운 전술의 완성과 함께 시작될 지도 모른다.

전술의 고도화에 따라 FW의 역할이 크게 변화

 현재 4-2-3-1로 가장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 리버풀이다. 지난 시즌 후반 페르난도 토레스를 1톱에, 사비 알론소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더블 볼란치에 배치하자 공격과 수비의 질이 향상. 올 시즌은 4-4-2와 4-2-3-1을 병용하여 19년 만의 리그 제패를 향해서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덧붙여 말하면 그들이 기본 시스템으로 채용하는 4-4-2도 변칙 1톱이라고 볼 수도 있다. 2톱은 토레스를 전방에 로비 킨을 후방에 둔 가로가 아닌 세로 관계. 피니셔 겸 크리에이터인 토레스는 득점력과 어시스트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 1톱에 적합한 FW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킨은 수비 뒤편으로 파고드는 것을 장점으로 하는 스피드 형. 토레스가 앞 선에서 여러 가지 시도하고 틈을 노려 킨이 파고든다. 이 공격 패턴을 보는 한 1톱이라고 말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터이다.

 리그 초반 토레스가 부상을 당하고 킨의 컨디션이 나쁜 상황 하에  있으면서도 리버풀은 수위를 지켰다. 그리고 후반전 토레스의 복귀와 함께 킨도 컨디션 회복. 공격진이 제 기능을 갖춘 현재 염원인 리그 제패도 불가능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4-2-3-1이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2톱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30년 전을 생각해보면 커다란 변화이다. 그리고 전술이 다양화된 현대 축구에 있어서 감독이 가장 맘에 들어 하는 FW는 타겟맨, 크리에이터, 피니셔라는 3가지 역할 중 둘 이상을 가진 범용성이 높은 선수이다. 드록바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그 모든 것을 갖춘 FW라고 말할 수 있다. 2을 갖춘 선수의 대표격은 루니나 토레스 등이 아닐까?

 이렇게 둘 이상의 능력을 가진 FW가 최저 1명밖에 없으면 전술은 제 기능을 못한다. 단적으로 말해 ‘슛을 잘 차는 것만’, ‘헤딩이 강할 뿐’인 FW로는 작전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현대 축구는 고도로 치밀한 스포츠가 된 것이다. 진짜 ‘텔레파시’라도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ps;올라오자 마자(1월 29일)에 번역했던 것이긴 한데 워낙 게을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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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809/other/text/200812290012-spnavi.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 3팀에 의한 플레이오프 끝에 우승


[보카 주니어스는 플레이오프 끝에 2008년 전기리그를 제패하였다]

 아르헨티나 리그의 2008년은 12월 23일 보카 주니어스가 새로운 영광을 손에 넣으며 막을 내렸다. 3팀에 의한 플레이오프라는 역사에 남을 격전 끝에 움켜쥔 극적인 우승이었다. 축구계에서 빛나는 역사를 가진 보카가 요 11년간 아무런 타이틀도 획득하지 못했던 적은 2002년뿐이다. 자국 리그뿐만 아니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 등의 큰 무대에서 멋진 결과를 남길 수 있었던 데에는 실패를 교훈 삼으며 그럴 때마다 클럽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카는 그 팬이 많음과 미디어에 등장하는 횟수로도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이지만 2008년 전기 리그에서는 결코 평온함 속에 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기는 19시합을 끝낸 상태에서 산 로렌소, 보카, 티그레 3팀이 12승 3무 4패로 승점 39이어서 3팀에 의한 우승 결정 플레이오프에 돌입(아르헨티나 리그의 정규 시즌에서 득실점차는 순위에 고려되고 있지 않다). 플레이오프에서도 3팀이 승점 3으로 동점이 되어 불과 1골의 차로 보카가 23회째의 영광을 손에 넣었다.

 우승을 결정짓는 3팀에 의한 미니 리그에서 우선 산 로렌소가 티그레(최근 승격한 팀으로 1부에 참전한지 이제 2년째이다)에 2-1로 승리하였다. 이어서 보카가 산 로렌소에 3-1로 승리. 보카의 우승은 너무도 쉬운 듯이 보였다. 왜냐하면 보카가 티그레에 승리는 물론이거니와 1점차로 지더라도 득실점차에서 챔피언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카는 티그레에 0-1로 패하여 우승을 손에 넣은 것인데 타이틀을 다른 팀에게 빼앗길 위기도 있었다. 67분에 실점하였을 때 상대 선수와 맞부딪친 젊은 GK 하비에르 가르시아(Javier Hernán García)가 부상으로 떠남으로 해서, 이 큰 무대가 데뷔전이 되는 약관 20살의 호수에 아얄라(Josué Ayala)가 교체 출장하는 사태로 이어졌던 것이다. 공세를 거듭하는 티그레에 보카도 반격. 결국 0-1인 채 시간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려 보카가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게 되었다.

■ 만신창이인 상태로 움켜쥔 영광

 최종적으로는 우승하였다고는 하지만 올 시즌 보카가 고전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제일 먼저 거론할 수 있는 것이 캡틴이며 에이스 FW인 마르틴 팔레르모(Martín Palermo)의 부재이다. 1930년대에 활약했던 프란시스코 바라요(Francisco Varallo - 현재도 살아있다[각주:1])의 보카의 역대 최다 골 기록[각주:2]을 갱신한 스트라이커는 8월 24일 CA 라누스와의 시합에서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를 다쳐 장기간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또한 팔레르모와 짝을 이루며 국내에서는 베스트 FW라고도 말할 수 있는 로드리고 팔라시오(Rodrigo Palacio)도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예전 리버풀에서 뛰었던[각주:3] CB 가브리엘 팔레타(Gabriel Paletta), 퍼스트 GK인 마우리시오 카란타(Mauricio Caranta)는 감독인 카를로스 이스치아(Carlos Ischia)와 논쟁을 벌인 끝에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되었다. 더욱이 경험 풍부한 SB인 우고 이바라(Hugo Ibarra)와 클라우디오 모렐 로드리게스(Claudio Morel Rodríguez)도 부상당해버렸다.

 그래서 보카는 새로운 인재를 발굴했다. 유스 팀에서 21살의 GK 가르시아, 20살의 DF 후안 포를린(예전 레알 마드리드B에 소속[각주:4]해 있었다), 21살의 DF 파쿤도 롱카글리아(Facundo Roncaglia), 22살의 볼란치인 크리스티안 마누엘 차베스(Cristian Manuel Chávez) 그리고 앞 선에는 21살의 두 공격수 리카르도 노이르(Ricardo Noir)와 놀랄만한 득점감각을 갖춘 루카스 비아트리(Lucas Viatri)를 승격시킨 것이다. 그들은 주력선수들의 포지션을 빼앗을 정도로 성장하여 팀 승리에 공헌하였다.

■ 1998년부터 시작된 팀 개혁

 
[팬들의 존재는 보카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모든 것은 1998년부터 시작되었다. 예전의 영광을 뒤로하고 오랜 기간 트로피에서 멀어져 있던 보카는 이 해에 새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미디어에 이용당하고 있던 팀을 해체하고 선수나 감독을 일신했다. 당시의 보카는 ‘마라도나 2세’라 일컬어졌던[각주:5] 디에고 라토레(Diego Latorre)가 “보카는 난장판이다”고 말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새로운 지휘관으로 카를로스 비안치[각주:6]가 취임하면서 보카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시작으로 한 수많은 영광을 획득하게 된다.

 1995년에 회장에 선출된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 현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장을 맡고 있다)는 어떻게 하면 팀을 재건할 수 있는지 몰랐다. 카를로스 빌라르도[각주:7]에 이어서 엑토르 베이라[각주:8]를 감독에 앉힌 것을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1998년 마크리는 팀을 프로페셔널 집단으로 하기 위해서 비안치를 초빙하였고 동시에 하부조직의 충실을 꾀했다. 또한 보카는 유소년을 위해 ‘클럽 파르케(Club Social y Deportivo Parque)’와 협력체제를 확립하였고 현재는 하부조직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서 큰 선수로는 레돈도(Fernando Redondo), 소린(Juan Pablo Sorín), 리켈메, 가고, 테베스 등 쟁쟁한 면면들이다.

 예전 보카는 선수들을 사 모으는 측이었다. 그러나 마크리는'”10년 안에 11명 중 9명은 클럽 토박이 선수가 될 것이다”고 선언했다. 당시는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평정을 되찾은 팀은 승리를 거듭하며 클럽의 근간이 만들어졌다.

■ 라이벌 리베르의 존재.

 보카는 개혁 이후 국내에서 7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4번, 토요타 컵(현 클럽월드컵)을 2번 제패했다. 또한 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도 2번, 레코파 수다메리카나[각주:9]에서도 3번 우승하였다. 이것은 전부 1998년 이후에 획득한 타이틀이다. 아르헨티나, 남미대륙 거기에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들 대부분은 자신의 가치를 높여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페르난도 가고(레알 마드리드), 에베르 바네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에밀리아노 인수아(Emiliano Insúa, 리버풀), 오스칼 트레호(Oscar Trejo, 마요르카), 세바스티안 나야르(Sebastián Nayar, 레크레아티보), 파비안 몬손(Luciano Fabián Monzón, 베티스), 카를로스 테베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현재 보루시아 MG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FW 로베르토 콜라우티(Roberto Colautti)도 보카의 유스 출신이다.

 한편 보카는 하부조직의 선수육성만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으로 보낸 클럽을 상징하는 선수들을 몇 년인가 후에 다시 불러들임으로 인해 팀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있다. 세바스티안 바타글리아(Sebastián Battaglia, 전 비야레알), 후안 로만 리켈메(바르셀로나, 전 비야레알), 우고 이바라(FC 포르투, 모나코, 에스파뇰), 팔레르모(비야레알, 베티스, 알라베스) 등의 면면들이다. 또한 보카는 ‘등번호 12’로 알려진 가장 잔소리가 심한 팬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거대한 깃발을 휘날리며 팀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보켄세[각주:10](보카의 팬)에게 있어 2008년 전기 리그 우승은 특별한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팀 우승은 물론이거니와 최대의 라이벌인 리버플레이트(리베르)가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최하위로 떨어진 것이다. 1931년 프로 리그화된 이후 리그 우승회수를 따지면 23번의 보카에 비해 리베르는 국내 최다인 33회를 자랑한다(국제 타이틀까지 포함하면 보카는 리베르를 크게 앞서고 있다). 2008년 후기 리그에서는 리베르에 우승을 허용하여 2위로 마쳤던 만큼 그 반년 후에 챔피언 자리를 탈환하였기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리베르가 곧바로 2부로 강등당하지는 않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과거 3년(전기, 후기 3대회 씩)의 성적에서 평균값을 산출하여 하위 2팀이 강등당하기 때문이다(17, 18위 팀은 교체전을 행하게 된다).

  1. 1910년 2월 5일생. [본문으로]
  2. 194골. 보카의 아마 시절까지 포함하면 로베르토 체로(Roberto Cherro)의 221골. [본문으로]
  3. 2006-2007시즌 3경기 출장. [본문으로]
  4. 2007년. [본문으로]
  5. 이 선수가 처음으로 '마라도나2세(New Maradona 혹은 New Diego)'라고 불렸다. [본문으로]
  6. 현재는 보카의 GM [본문으로]
  7. Carlos Bilardo. 그는 1983~1990년까지 마라도나와 함께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감독이다. 월드컵 우승 1회, 준우승 1회. 1996년 보카 감독으로 당시 리그 5위. [본문으로]
  8. Héctor Veira - 1996~1998의 감독. 리그 순위는 각각 9위, 2위, 6위. [본문으로]
  9. Recopa Sudamericana.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코파 수다메리카나의 우승팀이 격돌하는 UEFA의 슈퍼컵과 같은 대회이다. [본문으로]
  10. 철자는 boquense....굳이 각주를 단 이유는....철자 찾기 힘들었거든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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