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09.01.10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는 명문 - 페예노르트의 미래는? by 渤海之狼
  2. 2008.05.13 판 데르 파르트의 우울 by 渤海之狼 2
  3. 2008.05.06 우승의 기쁨은 홈 타운과 함께 by 渤海之狼 2
  4. 2008.02.07 최강의 징검다리 감독. PSV의 페르호선 by 渤海之狼
  5. 2007.11.28 감독과 에이스의 퇴단으로 순조롭던 함부르크에 암운(暗雲) by 渤海之狼

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809/holland/text/200812160005-spnavi.html
저자: 나카타 토오루

■ 훌리건이 꽉 찬 스타디온 페예노르트에서 탈출

[판 브롱크호르스트(왼쪽), 토마손 등 베테랑 뿐인 올 시즌의 페예노르트]

 12월 13일 페예노르트는 홈에서 AZ에게 패했다. 0-1이라는 점수와는 반대로 힘의 차이는 컸다. 페예노르트의 완패였다.

 시합 후 기자석에서 담소하고 있던 네덜란드 기자 중 누군가가 “어이~ 시작되었다”고 소리치자 모두 단번에 창문을 향해서 달려갔다. 오오~ 50m 건너편에는 페예노르트의 서포터가 [훌리건! 로테르담!]이라고 외치면서 기마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로 계속 노려보기만 하던 양측이지만 그 균형은 훌리건이 대형 휴지통에 불을 붙이는 순간 깨어졌다. 기마경찰이 훌리건을 향해 돌격하여 순식간에 훌리건은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다.

 ‘이런~이런~ 이제야 돌아갈 수 있겠군’. 그렇게 생각하여 스타디움을 나서자 다른 장소에 기마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생각이 짧았다. 그들은 다른 장소(즉 필자의 차가 놓여져 있는 주차장)에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던 것이다. 스타디움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자 하여도 “오늘 밤은 한번 스타디움에서 나가면 결코 다시 들여보낼 수 없다”는 차가운 관리인의 한마디. 이런~이런~… 기온은 영하 2도. 감기도 걸려있었다. 시간은 저녁 11시반. 스타디움 안에서 따듯하게 보낼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각오를 정한 필자는 기마경관이 만든 방어라인을 넘어 훌리건들에게 “부탁이니 차를 가지고 나갈 수 있게 해줘”하고 말하고는 차에 탔다. 훌리건들은 [신지~ 오노!!]라고 외쳤을 뿐 필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를 내보내기에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들이다. 어쨌든 히터라도 틀려고 엔진을 시동 걸었을 때 기마경찰들이 다시 훌리건에게 돌격했다. 도망가는 훌리건들이 차의 사이드미러에 부딪혀 우그러지는 소리가 낳다. 그로부터 잠시의 정적…. 지금이다! 필자는 겨우 스타디온 페예노르트에서 탈출하였다.

■ 일그러진 선수구성

 이번 훌리건 소동은 페예노르트 서포터에게 있어서도 조금 이외인 듯 그들의 팬 사이트 게시글을 읽어도 ‘에? 그런 것이 시합 후에 있었다고?’라는 식이다. AZ와의 시합은 완전히 실력으로 졌기에 팀의 현재와 장래를 걱정하면서도 이 시합에 대해서는 체념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러나 훌리건화되어 실력행사로 나온 페예노르트 서포터들은 올 시즌 15시합에서 벌써 7패를 당한 팀에게 울분을 뿜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의 절망적인 기분을 조금 검증해 보자.

 지금 페예노르트는 4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 붙은 선수는 AZ와의 시합에서 선발, △는 도중 출장, ■는 벤치, ●는 벤치 밖, ×는 부상 중이다.

(1) 베테랑 조

티머르(○, Henk Timmer, 37세), 뤼시위스(○, Theo Lucius, 31살), 판 브롱크호르스트(○, 33살), 마카이(○, 33살), 데 클러르(×, Tim de Cler, 30살), 호플란트(×, Kevin Hofland, 29살), 몰스(×, Michael Mols, 37살), 토마손(×, 32살, 덴마크), 란자트(×, 32살)

(2) 어린 선수 조

베이날튐(○, Georginio Wijnaldum, 18살), 페르(○, Leroy Fer,18살), 브라윈스(○, Luigi Bruins, 21살), 에라스무스(■, Kermit Erasmus, 18살, 남아공), 데 구즈만(×, Jonathan de Guzmán, 21살)

(3) 리벤지 조(전력 외였다가 다시 뛰는 선수들)

데라익크(○, Timothy Derijck, 21살), 틴달리(○, Dwight Tiendalli, 23살), 비세스바르(×, Diego Biseswar, 20살)

(4) 유스 조

페드로(△, Luis Pedro, 18살), 바타마레오(△, Kevin Wattamaleo, 19살), 니펠트(■, Norichio Nieveld, 19살), 레이르탐(■, Kelvin Leerdam, 18살), 야노타(●, Michał Janota, 18살, 폴란드), 스허트(●, Mitchell Schet, 20살)

 이렇게 보고 있자니 올 시즌의 페예노르트는 이상할 정도로 베테랑이 많으며 그들 대부분이 부상을 당했다는 것, 팀의 질을 어린 선수들이 지탱하고 있다는 것, 그래도 메울 수 없는 포지션은 올 시즌 개막하기 전에 전력 외 통고를 하였던 선수를 리저브 팀에서 불러서 기용하고 있다는 것, 벤치 선수 대부분은 U-19 또는 리저브 팀에서 주로 뛰고 있는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또 알 수 있는 것이 23~28 정도인 한창 활약할 나이대의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AZ와의 시합에서 뛴 DF 바이아(André Bahia, 25살, 브라질), MF 엘 아마디(Karim El Ahmadi, 23살, 모로코)가 그 나이대의 선수이지만 둘 다 팀을 이끄는 존재라고 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페예노르트는 이적 자금과 급여의 대부분을 베테랑 선수에게 투자하여 (이적료와 급여가 높은) 중견 년대의 일류선수를 획득할 자금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 이 일그러진 선수 구성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보스 TD(Peter Bosz, 테크니컬 디렉터)도 팀이 자금난이기에 겨울 이적시장에서 보강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 어린 선수로 전환조차 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페예노르트는 베이날튐(오른쪽)과 같이 장래를 짊어질 어린 선수를 얼마나 오래 데리고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시합을 하는 것은 현재 가지고 있는 전력만이다. 상기의 (1)~(4)의 카테고리 선수가 팀 내에서 어떠한 포지션에 있는가를 검증해 보자.

 판 마르바이크 전 감독을 보고 [명문 페예노르트를 부활시키자]며 모여든 베테랑 선수들은 지난 시즌 KNVB 컵에서 우승하여 겨우 클럽 창립 100주년을 장식할 수 있는 결과를 남겼다. 그러나 올 시즌은 GK 티머르, DF 호플란트, 데 클러르 FW 마카이와 같이 쇠약을 감추지 못하는 선수, 신감독 페르베이크(Gertjan Verbeek)의 과도한 연습인 탓인지 부상을 당해버린 선수(주로 햄스트링 부상)들이기에 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그럭저럭 실력을 계획 발휘하고 있는 것은 판 브롱크호르스트뿐이 아닐까?

 그래서 의지가 되고 있는 것이 싱싱한 재능들이다. 베이날튐, 페르, 브라윈스, 비세스바르(그는 리벤지 조이기도 하다), 이 네 선수는 9월 21일 행해진 아약스와의 전통의 더비인 [데 클라시커르(de Klassieker)]에서 평균연령 19살(당시)의 중반을 구성하여 네덜란드 유스 육성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증명하였다. 브라윈스가 현재 컨디션 난조이기는 하지만 이는 어린 나이를 보면 처음부터 예상했던 범위였지만 전 라운드 데 흐라프스합(De Graafschap)과의 시합과 그리고 이번 AZ와의 시합에서는 너무도 부진하여 서포터에게 야유를 받았다. 이런 면은 페예노르트 팬들의 진득하지 못한 면이라고 할까?

 어쨌든 지금은 베이날튐과 페르가 점점 실력이 늘고 있으며 페예노르트 선수 중 가장 빛나고 있다. 거기에 리벤지 조가 든든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꼭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페예노르트 선발 멤버는 이걸로 겨우 11명을 맞출 뿐이 되어버린다.
 벤치에 얼굴을 나란히 하고 있는 선수들은 거의 톱 팀에서의 경험이 없는 (혹은 아예 없는) 유스에서 막 올라온 선수들인 것이다. 벤치에서 그럭저럭 실전 경험이 있는 것은 GK 판 다이크(39살)와 막 부상에서 회복한 슬로리(Andwele Slory, 26살) 정도. AZ와의 시합에서 56분에 실점한 페예노르트는 위험을 감수하고 4톱으로 하였지만 대신해서 들어간 것이 슬로리와 젊은 페드로여서는 오히려 전력이 저하된다. 시합 종료 직전에는 판 브롱크호르스트가 부상으로 물러났는데 그 대신해서 들어간 것이 19살의 바타마레오였다. 페르베이크 감독이 손을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15라운드를 끝낸 페예노르트는 4승4무7패로 12위. 우승 다툼은 현실적이 아니다. [이젠 아예 젊은 선수로 바꾸자!]는 팬들의 목소리는  지극히 타당하다. 그러나 (1)~(4)라는 선수 구성을 보는 한 어떻게 퍼즐을 짜 보아도 선발 출장 멤버 대부분은 베테랑이 차지할 수 밖에 없다. (4)인 유스 조의 선수를 필드 위에 내 보낸다고 하여도 오히려 그들의 자신감을 잃게 할 뿐인 것이다.

 데 구즈만의 빅리그 이적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고 하여도 거기에 또 하나 악마의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다. 베이날튐과 페르가 풀타임 주전 1시즌 만에 페예노르트를 떠나는 것이다. 그 이적료로 높은 능력을 지닌 중견 년대의 선수를 획득하지 못할 경우 남는 것은 남는 것은 쇠퇴해진 베테랑 조 뿐이다. 페예노르트가 세대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베이날튐과 페르의 힘이 필수불가결하다. 이 엄청난 재능을 앞으로 몇 년 데리고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시계 바늘은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2008/05/06 - [일본웹번역/축구] - 우승의 기쁨은 홈 타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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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80508-1-1.html

저자: 안도우 마사즈미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함부르크 SV(이하 HSV)는 독일의 숨겨진 빅 클럽이다.

 연간 판매액은 바이에른(25000만 유로[각주:1])에 이어 2위인 14000만 유로[각주:2]. 평균 관객 동원수는 55343(이 정도나 되는데도 리그 4!), 회원 5 3000(3. 2위는 샬케의 7만 명, 14만 명의 바이에른은 격이 다르니 할 수 없다). 그 외에 유니폼 판매량이나 팬클럽 숫자도 상위 5위에 들어간다.

 

 HSV의 스타 선수라고 하면 판 데르 파르트이다. 누구나가 인정하는 기교파 공격형 MF이지만 문제점이 있다. 팀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 소속팀이었던 아약스에 대한 동정(同情)과 에스파냐에 대한 동경(憧憬)은 언제나 뜨거워 때때로[현실]에서 벗어나 [과거와 미래]를 뒤돌아보고 바라보는 경향이 심한 것이다. 특히 요 수개월간 [마음은 이미 어딘가 가 있다]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에스파냐의 피가 흐르는 판 데르 파르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친의 조국에서 플레이하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마음 속에 있는 팀은 발렌시아다. 그러나 발렌시아가 추한 모습(5 5일 현재 리그 15)을 계속 보여준 덕분에 뜨거웠던 정열도 식은 모양이다. 무엇보다 이적하는 곳의 조건을 '챔피언스 리그에 항상 출장할 수 있는 빅 클럽'이라 했던 만큼 발렌시아는 기준 미달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이탈리아나 잉글랜드밖에 없다. 그런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
다음 시즌은 HSV의 유니폼을 입고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할 수도 있지만 말이지
 하고 남을 수도 있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실은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가 있다.

 

 HSV와의 계약 기간은 아직 2년 남아있다. 만약 2009년 여름에 이적한다면 150만 유로[각주:3]의 이적료가 발생한다. 그러나1년 앞당겨 올 여름이라면 FIFA 이적 조항 제 17조에 의해 1000만 유로[각주:4]로 이적할 수 있는 옵션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이적을 희망하는 판 데르 파르트 본인에게도, 그리고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HSV에게 있어서도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다. 이 정도 선수에 1000만 유로 정도라면 빅 클럽은 당장 달려든다.

 1. 유벤투스의 GM HSV를 방문하여 비공식적으로 800만 유로를 제시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HSV 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찔러본 것에 지나지 않아 실제로 교섭에 들어가면 1500만 유로[각주:5]이하는 되지 않을 것이다.

 즉 판 데르 파르트에게 있어서는 유벤투스로 이적해도 좋았고, HSV에 남더라도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할 수도 있어, 어느 쪽이 되건 손해 볼 것은 없다고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다. HSV 24라운드까지 확실히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내에 있었지만 그 후의 5시합을 23연패라는 최저의 성적으로 마쳐 그 결과 최종 순위에서 3위로 올라가는 것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판 데르 파르트의 의도는 단번에 어긋나 버린 것이다.

 

 올 시즌 판 데르 파르트는 생애 최고의 전반전을 보냈다고 할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다. UEFA 컵에서는 2득점 4어시스트, DFB컵에서는 2득점, 그리고 리그에서는 9득점 3어시스트. FW의 올리치[각주:6]와 함께 팀 득점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그러나 2월에 재개한 후반전에서는 그다지…… 득점 불과 2. 시합마다 발표되는 평점은 계속 하강 곡선을 그려 결국에는 [3.48](최고가 1, 최저가 6)이라는 평범한 선수 그룹에 가입되어 버린 것이다. 이래서는 그의 시장 평가가 내려간다. 동경하던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도 못하고 이적도 실패한다면 그에게건 팀에게건 호된 질책이 쏟아질 것이다.

 거기에 더해 HSV는 다음 시즌 감독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제멋대로에 신경을 덜 쓰면 곧바로 살이 찌는 체질인 판 데르 파르트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타협이 통하지 않고 완고하며 규율을 우선시하는 타입의 감독이 필요하다. 감독 인사와 중심 선수의 취급에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다음 시즌 HSV는 일개 아웃사이더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아아~ 그래도……이다. 어째서 이번에 이런 테마로 쓰지 않으면 안된 것일까? 원래대로라면 리그 우승과 DFB컵 우승을 칭송하며 자 이제는 결승의 땅 맨체스터에서 레인저스를 격파하는 것만 남았다하고 미리 축하를 하고 싶었는데, 세상에서는 필시 아무도 모를 제니트 같은 팀에게 패하다니……(격노+우아앙~ T.T)

 

Ps; 환율은 2008-05-13 기준으로 네이버 환율계산기를 이용했다.

  1. 약 4040억 원 [본문으로]
  2. 약 2262억 원 [본문으로]
  3. 약 24억 원. [본문으로]
  4. 약 160억 원 [본문으로]
  5. 약 240억 원 [본문으로]
  6. 2008-05-10일 기준으로 31시합 12골 [본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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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708/holland/column/200805/at00017096.html

저자: 나카타 토오루


[콜싱헐은 KNVB 컵 우승을 축복하는 페예노르트의 팬들로 메워졌다]


■ 생활의 거리가 축하를 위한 대광장으로 변신


 콜싱헐(coolsingel)은 로테르담의 중심가와 로테르담 시청 사이에 있는 평소에도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트램(tram=노면전차) 거리다……고 말해도 자동차 도로는 편도1차선에 지나지 않아 일상 생활에서는 그다지 크기를 느낄 수 없다. 횡단보도도 10초면 건널 수 있다.


 페예노르트의 전통으로 타이틀을 획득하면 코치진과 선수가 로테르담 시청의 발코니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콜싱헐에 모인 수만 명의 팬들과 기쁨을 나눈다. 때문에 이 축하연을 단순히 콜싱헐이라고 부른다.

 발코니에서 찍힌 과거의 콜싱헐(예를 들면 1999년 네덜란드 리그에서 우승했었을 때)의 사진을 보면 엄청난 수의 서포터들로 거리는 꽉 차 있었다. 그런 때의 콜싱헐은 마치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과 같은 거대한 크기로 보인다. 평범한 크기의 생활 거리 콜싱헐은 페예노르트가 우승하면 대광장으로 변신을 하는 것이다.


 2002 UEFA .

 페예노르트는 홈인 로테르담에서 결승전을 치르고 우승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결승전이 행해지기 불과 몇 일전, 페예노르트의 팬으로써도 유명했던 핌 포르타윈(Pim Fortuyn[각주:1])이라는 우파정치가가 암살당하여 그 추모로 인해 콜싱헐은 실시되지 않았었다. 이 때문에 필자는 10년 가까이 네덜란드에 살고 있으면서도 콜싱헐을 경험할 수 없었지만, 올 시즌 페예노르트는 KNVB(네덜란드 축구 협회) 컵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이제서야 처음으로 콜싱헐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KNVB 컵 결승전 다음날인 4 28일이었다.


■ 시청의 종이 울리고 클럽을 사랑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로테르담의 중심가는 철책에 의해 출입 금지가 되었다.

상점들도 완전히 문을 닫았다.상점가는 매상보다도 피해액이 적은 쪽을 선택하였다.]


UEFA 컵 결승 직후 로테르담 시내는 폭도화된 서포터들로 인해 중심가는 파괴되었다. 그 때문에 이번 콜싱헐에서는 중심가 측에 있는 상점 거리(대체로 400m * 250m 정도의 넒이) 사방으로 철책이 둘러쳐지고 경찰과 기동대가 엄중한 경비를 하였다. 콜싱헐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신체 조사를 받은 후 불과 두 곳의 출입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다. 조금 높은 건물의 위에서는 기동대가 비디오를 촬영하여 만약 소동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나중에 범인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또한 하늘에서도 헬리콥터가 방범 비디오를 촬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팀이 발코니에 등장하는 것은 12시 반부터.

 필자는 11 45분 즈음 현장에 도착하였지만 이때는 아직 앞 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어서 발코니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좋은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서포터들이 몰려들어와 눈깜짝할 사이에 필자의 뒤로는 사람의 머리밖에 보이질 않게 되었다. 남녀의 비율은 7:3. 성인과 10대의 비율은 8:2 정도라고 생각한다. 평일 낮에 시간을 내기 쉬운 10대의 젊은이들 보다 나이를 먹은 서포터들이 더 모인 듯한 분위기였다.


 12.

 시청의 종이 울리며 페예노르트의 응원가가 점점 거세갔다. 노래에 빠져들고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로테르담의 시민들을 보고 있자니, 필자가 그 사진 속의 개미 한 마리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 콜싱헐이라는 것은 이렇게 해서 거대해지는 구나라는 실감을 하게 되었다.

 12 10.

 과거 페예노르트의 스트라이커였으며 현재는 스타디움 아나운서인 하우트만(Peter Houtman[각주:2]) MC로 등장하자 큰 환호성이 일었다. 15분에는 [You'll never walk alone[각주:3]]으로 유명하며 페예노르트의 전속 가수라고도 일컬어지는 레이 타우어르스(Lee Towers[각주:4])가 열창을 시작하며 분위기는 점점 달아 올랐다.

 그리고 12시 반.

 짧게 종이 울린 후, 판 마르베이크 감독과 판 브롱크호르스트 주장이 KNVB 컵을 가지고 발코니에. 뒤를 이어 선수들도 나타났다. 계속 이어지는 페예노르트의 응원가에 맞추어 KNVB 컵은 파도를 타는 서핑 선수처럼 선수에서 선수로 건네졌다. 데 클레르가 KNVB 컵을 익살스럽게 팬들에게 과시하였으며, 12월에 향수병으로 일시 한국으로 귀국했었던 이천수도 팀에 익숙해진 듯 트로피를 가장 오랫동안 들어올리고 있었다. 서포터들의 노래는 때때로 끊기기도 하였으며 곧 박수로 바뀌었고 다시 노래로 이어졌다. 4만 명이라는 군중 속에 있다가 보니 필자 주위의 서포터들은 다들 박자도 틀리고 음치였다. 이런 음치들의 노래인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으면 어째서 가슴을 울려오는 것일까......


■ 서포터, 감독, 선수…… 각자의 감동


< 발코니에 선 선수들을 보기 위해서 4만명의 팬들이 모여 환호하고 기뻐하였다.>


암스테르담은 아무 것도 없지! 암스테르담은 아무 것도 없지!”

 올 시즌 무관으로 끝난 아약스를 야유하는 노래로 선수와 팬이 후렴함을 달랜 12 52분인지 53분 즈음. 선수들은 발코니에서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12시 반부터 단지 20분 조금. 이 잠시만을 위해서 콜싱헐을 4만 명의 페예노르트 서포터들이 메웠던 것이다.


 월요일 아침 수만 명의 팬이 모였다. 이것은 정말 유니크한 일이다

 UEFA 컵 우승 감독이기도 했던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지만 첫 콜싱헐에는 감개무량한 듯 했다. 콜싱헐이 끝나자 4만의 팬들은 철책이 아직 치워지지 않은 중심가를 크게 우회하여 각각 돌아갈 장소로 흩어져 갔다. 열광 속에서도 질서가 있는 콜싱헐에서 로테르담 경찰은 [체포된 사람은 단지 20]이라고 가슴을 폈다. 이는 콜싱헐 역사상 가장 적은 체포자 수라고 한다.


 젊은 선수인 페르(Leroy Fer[각주:5])와 브라윈스(Luigi Bruins[각주:6])는 둘 다 1999년의 콜싱헐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콜싱헐을 경험해 보니 굉장히 멋지며 훨씬 더 대단함을 느낀다”(페르)고 실제 콜싱헐에 감동하고 있었다.

 베테랑 GK 티머르(Henk Timmer) UEFA 컵에서 우승했을 당시 페예노르트의 후보 GK였지만 앞서 말했듯이 콜싱헐은 없었다. 시합 다음날, 피에르(판 호이동크)와 콜싱헐 거리를 어슬렁거렸지만, 길에는 사람이 없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우리들은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후 티머르는 아약스, AZ를 거처 2006년에 다시 페예노르트로 돌아와 현재는 주전 GK로 활약하고 있다. “어떤 선수라도 페예노르트에 오게 되면 콜싱헐을 경험하고 싶어한다며 바랬던 목표 달성을 기뻐했다.


성공으로 끝난 9년만의 콜싱헐. 그 의미라는 것은


 이리하여 9년만의 페예노르트 콜싱헐은 성공리에 마쳤다. PSV도 또한 네덜란드 리그 우승을 도시 한 가운데서 축하하였다. 그러나 만약 아약스가 우승했다면 이리 되지는 않는다. 아약스는 전통적으로 우승하면 (plein=광장)이나 에서 축하한다. 아무리 올 시즌 마지막 라운드에서 아약스가 PSV를 역전하여 우승하였다고 하여도 암스테르담 시()는 도시 한 가운데서의 축하연을 허용하지 않고 홈 스타디움인 레나에서 치를 예정이었다. 역시 서포터들이 도시 한 가운데서 난폭해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축구 클럽이라는 것은 그 마을 혹은 도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어, 스타디움 안에서 여는 축하연은 조금 멋없다. 아약스의 선수들 역시 레잇서플레이이나 뮈쇰플레인같이 팬들과 지근거리에서 접할 수 있는 축하연을 꿈꾸며 입단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번 콜싱헐이 열광적이며 또한 질서정연했던 것은 페예노르트에게 있어서도 로테르담 시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일로, 페예노르트는 훌륭한 태도를 보여준 팬과 장소를 제공해 준 로테르담 시에 감사하였다. 또한 로테르담의 옵스텔턴(Ivo Opstelten) 시장은 페예노르트의 컵 획득을 굉장한 위업. 로테르담 시는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로테르담을 대표해서 이 위업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다음 시즌 UEFA 컵에서도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며 기뻐하였다.

 페예노르트는 올 시즌 적극적인 보강을 하였지만 그 보람도 없이 네덜란드 리그를 6위로 끝마쳐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2008 7월에 클럽 창립 100주년이라는 기념할 만한 해에 KNVB 컵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플레이오프를 거치지 않고 시즌 당초의 목표였던 UEFA 컵 출전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페예노르트는 시즌 최후의 최후에 긍정적인 무드를 되찾았다. 7월부터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에 취임하는 판 마르베이크에게 있어서도 타이틀과 함께 페예노르트와 아름다운 이별을 나눌 수가 있게 되었다. 다음 시즌 페예노르트의 감독은 올 시즌 헤렌벤을 공격력 넘치는 매력적인 팀으로 키운 페르베이크(Gertjan Verbeek). 이번 우승의 기세가 페르베이크 이끄는 새 팀으로 이어질 것인가? 명문 부활을 건 100주년의 페예노르트에 주목하자.

  1. 행동은 중도좌파였으나 언동은 ‘이슬람 문화는 떨어지는 문화”, “이슬람 이주자가 네덜란드로 유입되는 것을 반대”등을 외쳤기에 2002년 5월 6일 생태학자(포르타윈이 사회의 약자를 적으로 만들려 한다는 생각에 따라)가 권총으로 암살하였다. [본문으로]
  2. 페예노르트에서만 153경기 90골. 대표팀 8경기 7골. [본문으로]
  3. 네덜란드에서도 페예노르트뿐만 아니라 아약스 등 몇 개의 팀이 응원가로 사용 – 역자 주 [본문으로]
  4. 1976년에 you’ll~을 커버하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본문으로]
  5. 1990년생. MF [본문으로]
  6. 1987년생. MF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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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708/holland/column/200802/at00016180.html

저자: 나카타 토오루


전 나고야의 감독이었던 페르호선은 징검다리 감독으로 올 시즌 종료까지 PSV를 이끌게 된다.

 

■ 팀 붕괴의 위기를 멈추게 한 애정과 열의

 

 세프 페르호선 신 감독(전 나고야 그랜퍼스 감독)이 되고부터 PSV는 파죽지세다.

 1월에 페예노르트(1-0), 아약스(2-0), 2월에 들어서는 AZ(2-0) 등의 라이벌 팀들을 상대로 원정에서 3연승. 더구나 실점은 제로라는 강력함. 격이 떨어지는 VVV(1-1)에게 비겼다고는 하지만 PSV의 실력은 다른 팀들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어, 어느 샌가 PSV 2위 아약스와 승점 8이라는 격차로 독주 태세에 돌입했다.

 

 10월 말 로날트 쿠만이 발렌시아로 떠나면서부터 PSV는 새로운 감독 찾기에 착수. 12월의 마지막까지는 바우터스 코치가 임시 감독을 맡았으며, 1월부터 올 시즌 끝까지 페르호선이 징검다리 감독. 그리고 다은 시즌부터 스테번스(현 함부르거 SV 감독)가 신감독이 되기로 결정되었다. 이 일련의 인사는 작년 가을에 결정되었는데, 마침 주력 선수들의 연장 계약의 교섭 기간과 겹쳤다.

 

 감독이 바뀌면 방침도 선수 기용법도 바뀐다. 때문에 선수들은 감독 인사에 민감해 진다. PSV의 경우 쿠만에서 스테번스까지 불과 1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에 4명이나 감독이 지휘봉을 쥐게 됨에 따라 선수들의 동요도 컸다. 특히 GK 고메스는 축구 잡지를 통하여 PSV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자칫하면 팀 붕괴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겠지만 고메스의 비판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PSV에 대한 애정이었던 것과 또한 고메스가 여태까지 예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서포터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외국인 선수였던 것도 있어 오히려 고메스의 비판은 PSV가 일치단결 할 수 있는 분위기 생성으로 작용했다.

 

 12 7일 로다 JC와의 시합에서 한 번은 0-4가 되는 등 PSV에게는 지옥의 날. 원래대로라면 서포터들의 분노는 정점에 달했겠지만, 시합 중 스타디움은 고메스에 대한 챈트(응원가)가 울려 퍼졌고 2-4로 참패한 뒤에도 고메스는 서포터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였다.


새로운 팀 리더인 아펠라이도 조금 클럽과 충돌하였지만, 무사히 계약을 연장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페르호선이 네덜란드에서 공수된 DVD를 구석구석까지 살피며 PSV의 현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Winning Team, Never Change]


 바우터스는 감독으로써의 역할을 마치고 코치 자리로 돌아왔다.

 쿠만 시대에는 주력 선수로 완소 취급을 받던 페레스. 그러나 바우터스 휘하에서는 벤치 요원이 되었기에 겨울 이적 기간에 아약스로 돌아갔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PSV가 획득한 즉전력은 주작(Dzsudzsak)이라는 무명의 헝가리 선수 단 한 명뿐. 그러나 [슈퍼 스카우터]라 일컬어지는 데 피서르(Piet de Visser)[각주:1]주작은 반드시 활약한다고 자신만만이었다.

 

 1 12. 페르호선이 이끄는 PSV의 첫 시합 상대는 페예노르트였다.

 

                                      라조비치

                         주작       아펠라이      파르판

                                시몬스        바칼

                크롬캄프 마르셀리스  살시도  아우시제스

                                       고메스

 

 시스템은 4-2-3-1. 이것이 뉴 PSV의 포진이었다.

 페르호선은 처음부터 이 멤버와 시스템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엑셀시오르와의 시합에서는 바칼, 아약스와의 시합에서는 아펠라이가 출장 정지였기 때문에 각각 컬리나와 멘데스를 기용했던 것 이외에는 선발 멤버를 바꾸고 있지 않다. 시스템은 아약스와의 시합에서 약간 손 댓을 뿐. 시스템과 레귤러의 고정.

 

 여태까지 레귤러였던 DF 조네베르트, FW 쿠베르만스 거기에 포텐셜이 높은 MF 아이사티의 출장기회가 페르호선 아래서는 확실히 줄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inning team never change]를 페르호선은 관철하여 승리를 거둠으로써 인해 불만을 잠재우고 있다.


■ 재능을 개화시킨 젊은 선수들


페르호선에 의해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을 익혀 성장 중인 바칼.


 페르호선 덕분에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을 몸에 익힌 것이 바칼이다.

 바칼은 지금까지 공격형 MF로 기용되어 왔다. 테크닉이 뛰어나고 DF의 뒷 공간을 파고드는 능력이 뛰어난 젊은 선수로 1.5열에서 기용되면 볼을 가져도 앞으로 향하질 못하여 그 좋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합이 많았다. 그러나 중앙 MF로 컨버트 되자 날카로운 예측력을 바탕으로 한 수비로 어느 시합이건 확실히 팀에 공헌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공간으로 타이밍 좋게 파고드는 것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페르호선의 첫 시합이 된 페예노르트와의 시합에서 귀중한 골을 넣은 것이 바칼이었다. 아약스와의 시합에서도 쿠베르만스가 볼을 가지고 있는 것에 상대 팀 DF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틈을 타 골 문 앞에 등장하여 골을 넣었다. 바칼은 뛰어난 중앙 MF인 시몬스의 곁에서 플레이하고 있기에, 부담도 적을 것이며 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데 피서르가 자신만만해 하는 뉴 페이스 주작은 곧바로 네덜란드에서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2번째 시합인 VVV와의 시합에서 동점 골을 넣었고 이어서 엑셀시오르, 아약스와의 시합에서도 골을 넣었다.

 주작은 2 2 AZ와의 시합에서도 굉장했다.

 올 시즌 부진한 AZ이지만 그런 만큼 어떻게든 PSV에게 이기고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공격적인 축구를 전개하여 시작부터 10여분 간 PSV를 자신들의 골 문 앞에만 박혀있게 만들었다. 이 흐름을 바꾼 것이 12분에 쏜 주작의 강렬한 미들 슛이었다. GK 바테르만을 당황하게 한 슛은 크로스바를 맞고 튕겨 나왔고 이것을 라조비치가 침착하게 넣었다.

 AZ의 판 할 감독은,

 그렇게 공격하였는데 우리는 0. PSV는 단 한 번 중앙선을 넘었을 뿐인데 1점을 곧바로 넣어 버렸다. 이것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주작은 베르캄프와 같은 가치가 있다

 라며 예전 아약스 레전드의 이름을 거론하며 주작의 빅 플레이를 칭송했다.

 페르호선 감독은, “주작은 왼발의 테크닉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볼이 없을 때도 굉장히 지혜로운 플레이를 한다. FK도 뛰어난 완벽한 선수다라고 21살의 어린 선수의 포텐셜을 꿰뚫어 보고 6시합 전부 기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약스와의 시합에서 움직인 페르호선

 

 쿠베르만스가 있음에도 라조비치 1톱을 고집하는 페르호선 감독.

 쿠베르만스는 팀의 톱 스코어러다. 그러나 페르호선 감독은 라조비치는 굉장히 헌신적으로 움직여 주고 있으며 팀에 꼭 알맞은 선수다. 골 문 앞에서는 에너지를 다 써서 골을 넣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팀에 대한 공헌은 상당한 것이라며 라조비치 1톱에 대한 신뢰가 높다.

 

 페르호선 감독은 선수 교대가 적으며 교대를 하여도 시간대가 늦다. 교대의 이유는 부상당했을 경우나 누가 보아도 선수가 지쳤을 경우 혹은 옐로 카드를 받은 선수가 퇴장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기에 선수 교대에 따라 시스템을 바꾸는 경우는 드물다. 1 26일 엑셀시오르와의 시합에서 쿠베르만스를 시합 중 투입하여 라조비치와 2톱으로 한 정도.

 레귤러와 시스템의 고정. 소극적인 교대. 이것이 페르호선 감독의 방식이지만 물론 예외는 있다.

 

 1 30일 아약스와의 시합에서는 상대 팀의 장점인 중반을 봉쇄하기 위해서 MF진의 포지셔닝을 변경. 시몬스가 혼자서 중앙 MF를 맡았으며, 바칼이 왼쪽에서 가브리(Gabri)에게, 멘데스가 오른쪽에서 에드가 다비즈에게 붙었다. 이 아약스 중반을 봉쇄하는 계책이 성공하여 PSV 2-0으로 완봉승을 거두었다. 특히 다비즈에게 멘데스를 맞부딪히게 한 것은 멋지게 들어맞아 멘데스는 다비즈에게 힘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0-2가 된 후 다비즈는 신경질이 최고조에 달하여 파르판에게 파울성의 강력한 태클(시합 후에 비디오 체크를 한 주심은 이 파울로 퇴장시켜도 좋을 뻔 했다고 말했다), 거기에 멘데스에게는 드롭킥 성의 태클을 먹여 퇴장 당했다.

 다비즈는 멘데스의 마크와 PSV의 강력함에 질겨 PSV와의 시합을 포기하였고 페예노르트와의 시합 출장을 포기, 우승도 포기한 듯하다. 그 정도로 가끔이지만 알맞게 움직인 페르호선의 전술이 빛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주는 인터내셔널 매치 위크로 PSV가 본격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것은 금요일 단 하루뿐. 다음 날인 9일에는 강호 헤렌벤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헤렌벤은 5-0으로 AZ VVV를 무릎 꿇게 하였으며, 피테서에게는 7-0으로 이긴 슈퍼 팀이다. 그런 만큼 PSV 대 헤렌벤은 네덜란드 축구팬이라면 요체크 해야 할 시합이다.

  1. 호마리우나 호나우두를 유럽으로 데려 온 세계 최고의 스카우터라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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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71126-1-1.html
저자: 안도우 마사즈미

클럽은 스테번스의 퇴단을 막으려 전력을 다했지만, 감독은 가족을 위해서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되었다.

 히딩크, 레이카르트, 판 바스턴. 조금 전이었다면 크라위프 그리고 개조(開祖)라고 할 수 있는 미헬스. 일본과 연이 있던 오프트(Hans Ooft)[각주:1]. 그들 외에도 상당한 수의 네덜란드 지도자. 네덜란드는 대대로 우수한 지도자를 다수 배출하고 있다.

그렇다면휘프 스테번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이 이름을 알고 있었을까? 실적인 면에서는 명장일 터이지만 일본이라면 “스테번스? 누겨 갸는?”이 되어 완전히 노마크. 무명에 가까운 존재이다.

분데스리가에서 스테번스는 이전부터 [견실], [실적을 남긴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너도나도 데려가고 싶어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얼굴이 조금은 커녕 굉장히 무섭다(웃음). 가끔 미소는 보여주지만 무뚝뚝한 표정이많기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풍긴다.

기자회견에서 의도가 확실치 않는 질문을 한 젊은 여성 기자에게,

아가씨, 조심히 집에나 잘 가라고”

라고 짓궂게 대답하는 장면을 목격했던 필자는 그녀를 굉장히 동정했었다. 그녀가 젊고 미인이었기에... 중년남의 개인적 취향에 따른 것이지만 말이지♪

스테번스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샬케04UEFA컵에서 우승으로 이끈 것이다. 더구나 승리한 방식이 굉장히 얄밉다고 할까 깊은 맛이 있다고 할까. 10년 전. 인테르를 상대로 그 주세페 메아차에서 승부차기로 이어졌을 때 스테번스는 노트북을 열고 입력해 놓았던 데이터를 근거로 하여 GK 레만에게 킥커의 예측 코스를 지시. 이것이 결과를 좌우한 것이다.

결국 샬케에게 DFB컵 연패(2001, 2002)와 리그 준우승(2001)을 선사했다. 그 후에는 베를린, 쾰른(1부로 승격시켰다), 로다를 전전하며, 올 해 2월 침몰 직전이었던 함부르크 SV(이하 HSV)에 왔던 것이다. 여기서도 멋지게 능력을 발휘했다. 15시합에서 933패로 팀을 최하위에서 7위로 상승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터토토컵에서 승승장구하여 UEFA 출장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올 시즌은 13라운드 현재 승점 3. 1위 바이에른과는 승점 1점차이다.

그러나 HSV의 순조로움은 스테번스 한 사람만의 공적은 아니다.
또 한 사람 잊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있다
.같은 네덜란드의 MF 라파얼 판데르파르트이다.

올 시즌 3위는 라파의 활약에 힘입은 부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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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년 이적 후 HSV는 라파 중심의 팀으로 혁신되어 왔다. 모국에서는 중반의 장기알 하나에 불과하지만 HSV에서는 1.5열에서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자유자재로 공격진을 리드하고 있다. 본인이 예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이다.

특필한 만한 점은 득점 능력이다.
그것도 “라파가 득점을 하면 시합에 이긴다”는 방정식이 성립된 것이다
. 리그에서는 7시합 연속 골을 올려 우베 젤러 회장이 가진 기록과 43년 만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라파에게는 스테번스도 최대급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 HSV 약진의 원천은 이 둘에게 있었던 것인데 이야기는 해피 엔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제
2막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주 스테번스가 갑자기 “올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HSV
는 계약을 당연히 연장할 생각이었지만 스테번스에게는 어떻게든 모국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실은 부인이 몇 년전부터 암에 걸려 있어 내년 초에도 새로운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쾰른 시대부터 간호하기 위해서 양국을 왕복하는 생활을 계속해 왔지만 입원한 곳(아인트호번)에 가까운 직장이라는 이유로 부인 간호를 생각해서 PSV의 감독에 취임한 것이다.

HSV의 선수들도 쇼크를 감추지 못한다. “모처럼 이만큼 좋은 팀으로 성장했는데...”라는 기분일 것이다.
어쨌든 제
3막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필시 예정 대로의 줄거리가 될 터이다. 라파의 발렌시아 이적이 그것이다.

라파는 평소부터 “에스파냐에서 뛰고 싶다”고 공언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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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발렌시아에게서 1200만 유로[각주:2]의 오퍼가 왔다. 뛸듯이 기뻤던 라파는 일부러 발렌시아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HSV 측은 이적을 허락하지 않아 2010년 이후도 클럽에 있어달라는 설득 공작에 지금도 여념이 없다.

무엇보다 라파가 있을 때와 없을 때와는 팀 성적이 굉장히 다른 것이다.
통계를 조사해 보니
첫 시즌(05-06), 라파가 플레이 한 시합에서 승점은 평균 2.3, 라파가 빠질 때의 시합은 1.6이었다. 다음 해는 그 차가 더욱 벌어졌다. 26시합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하여 그가 골을 기록한 10시합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참고로 라파가 빠졌을 때의 승점은 0.75로 낮아졌다. 올 시즌 지금까지 832 득점 20인 팀 성적이 어느 선수에 위해 좌우되고 있는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라파의 7시합 연속 득점(8)에 의한 것이다.

발렌시아로 라파는 이르면 겨울 이적기간 중에 늦어도 다음 시즌에는 이적할 터이다.
어쩔 수 없다
. 그것도 운명이다. 라파의 모친은 에스파냐 사람이다. 발렌시아의 쿠만 감독은 PSV에서 선수, 감독으로 대성공을 했다. 거기로 이번엔 스테번스가 이동한다. 이러한 구도는 네덜란드가 유럽 축구에서 하나의 큰 축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불쌍하게도 HSV는 그 피해를 다 뒤집어 쓴게 된다. 팀의 활약은 아마도 올 시즌을 끝으로 막이 내려질 것이다.

  1. 1992~1993년까지 일본 대표팀 감독. 한국 ‘도하의 기적’, 일본 ‘도하의 비극’ 당시의 감독. [본문으로]
  2. 약 165억 – 2007년 11월 28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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