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80128-1-1.html

저자: 안도우 마사즈미


 이번 감독 취임만큼 팬들을 놀라게 한 것은 없을 것이다.

 클린스만의 바이에른 감독 취임 말이다. 무엇보다 요 몇 주간의 움직임으로 판단해서 리버풀 감독에 취임할 것이다라고 모두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버풀을 위해서 클린스만은 강화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기에 언제 정식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랬던 것이 바이에른으로 급히 방향 전환하였기에 놀랄 따름이다.


 독일 출신이며, 예전엔 바이에른에서 플레이 했었으니까라는 것은 초보자의 지레짐작이다. 그는 바이에른 ()와 라이벌 관계인 옆 주(뷔르템베르크 () – 역자 주) 출신으로, 모국의 보수주의적인 사회 체질을 싫어하여, 흑인 부인과 결혼하여 미국에 뿌리를 내린 코스모폴리탄. 정치적으로는 진보-자유주의적인 인물이다. 이런 것만 보아도 ()’가 붙는 보수적인 바이에른의 풍토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2004년 대표팀 감독에 취임했을 때에는 사사건건 바이에른 관계자와 충돌했었다. 그것도 베켄바워와 헤네스 GM이라는 초 거물들하고 말이다. 2006년 월드컵의 주전 GK 쟁탈전에서는 베켄바워가 칸을 응원한 것에 대하여 클린스만은 결국 레만을 선택하여 황제를 화나게 하였다. 헤네스 GM그가 독일로 이사해 오지 않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캘리포니아에서 계속 살면서 독일과의 연락은 화상 회의나 E-메일이다. 이래서는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누구의 어드바이스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클럽의 요청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혹독한 비판을 했었다.


 헤네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1995년 클린스만의 바이에른 입단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교섭을 체험했던 것이다. 뭐 클린스만이 억지를 쓴 것은 아니다. 대리인인 변호사가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었기 때문이다. 그 대리인은 여전히 클린스만의 곁에 있으며, 이번에도 교섭 테이블에서 [2년 계약, 연봉 1000만 유로[각주:1]]이라는 실로 멋진 거래를 성사시킨 것이다.


 감독 취임까지의 경위는 이렇다.

 우선 작년 12 17일 히츠펠트 감독이 올 시즌만 하고 은퇴의 뜻을 클럽에 전하였다.

 20일. PAOK F.C.와의 UEFA 컵 시합 종료 직후, 루메니게 사장이 클린스만 측에 처음으로 연락을 넣었다.

 27. 헤네스 GM의 스위스 별장에 대리인이 방문했다. 바이에른의 이사장이 동석하여 뮌헨에서 다시 교섭하기로 하고 그 자리에서는 헤어졌다.

 그리고 올해 들어 11. 미국에서 클린스만이 와서는 3시간 동안 회담한 끝에 계약서에 사인을 하였다. 회담 장소에 바이에른 강화 플랜을 가지고 온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클린스만은 예전부터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것은 리버풀 용으로 작성한 것 보다 훨씬 두꺼웠다. 쉐라톤 호텔에서 행해진 기자 회견은 전국에 생중계될 정도로 성황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프런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그가 바이에른에 취직할 수 있었던 것일까?

 히츠펠트가 관둔다는 것이 명확해 지면서부터 급작스러웠던 만큼 바이에른의 감독 찾기는 전혀 계획에 없었다. 그래도 우선 이름만은 리스트 업 해 보았다. 모리뉴, 레이카르트, 판 바스턴, 히딩크이다. 바이에른이라는 국제적인 스타 군단을 이끄는 지휘관은 그 만큼의 경력과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이 중 모리뉴에게는 한 가지 바이에른의 조건과 맞지 않는 사정이 있었다.

 독일어였다.

 헤네스는 독일어가 가능한 감독이 아니면 안 된다고 최저한의 조건을 정하고 있었다. “모국어이며 클럽, 선수와 서로 이해를 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트리오는 어떤가 하면 이 세 명은 세 명 다 독일어를 잘한다. 하지만 클린스만으로 일찌감치 정해졌기 때문에 3인과 교섭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클린스만 획득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헤네스는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누구냐 하면 마이츠 05의 위르겐 크룹(Jrgen Klopp) 감독이었기 때문에 놀랄 따름이다. 개인적으로는 크룹의 지휘도 보고 싶었지만 그는 브레멘의 샤프 감독과 타입이 비슷하지 않을까? [전국적이 아닌 지역적 팀에서 소질 있는 선수를 키운다]는 수완은 뛰어나지만 처음부터 빅 네임이 즐비한 팀을 지휘하는 아우라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클린스만은 바이에른을 어떠한 팀으로 혁신시켜 갈 것인가?

 현 시점에서 입단이 결정된 것은 브레멘의 보로프스키 뿐. GK 칸은 올 시즌으로 은퇴한다고 하니 뒤를 잇는 것은 렌징이 된다. FW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보강은 필요 없다. 그렇기에 대폭적인 선수의 교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클린스만 이기에 17살의 크로스를 시작으로 무명인 젊은 선수를 발탁할 지도 모른다. 대표팀 감독 시절 메르테사커(20)과 얀센(19)을 발견했듯이.


 이제 와서 클린스만의 좋은 인격이나 선수의 향상심을 높이는 수완을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필자에게는 그래도 2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전술에 대한 것이다.

 대표팀 감독 시절 전술을 담당했던 것은 뢰브 조감독(현 대표팀 감독)이었다. 이 역할을 누가 어떻게 담당하느냐에 따라 바이에른의 축구가 크게 변할 것이다.


 또 하나는 눈 위에 혹”들이다.

 베켄바워, 헤네스, 루메니게.

 바이에른은 무엇이건 이 세 명을 빼 놓고서는 말이 진행되질 않는다.

 예로 든 것이 이상하겠지만 바이에른이라는 명문가에 시집 온 며느리(클린스만)는 하루 종일 시어머니, 집사, 시누이에게 감시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선수, 감독으로 항상 성공을 거두어 왔던 클린스만은 어떤 의미에선 베켄바워와 같은 [최고의 별 아래 태어난] 프린스이다. 반년 후, 그가 어떤 팀을 만들어 보여줄 것인가? 기대되기도 하며 불안하기도 하다.

  1. 약 141억 4688만원 – 2008년 1월 30일 기준. [본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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