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09.03.23 근성이 없으면 명예도 없다. by 渤海之狼
  2. 2009.01.12 용맹과감한 전사 - 펠리피 멜루 by 渤海之狼
  3. 2008.12.24 육성조직 강화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테마 by 渤海之狼
  4. 2008.04.08 바조의 근황 by 渤海之狼
  5. 2008.03.13 안첼로티 이야기#1- 밀란에서 손에 넣은 영광의 뒷편 by 渤海之狼 2

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serie_a/20090318-1-1.html
저자: 사카마키 요우코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세리에vs.프리미어 대결은 3시합 전부 프리미어가 승리했다. 세리에 팀들의 패배방식은 각각 달랐지만 상대에게 겁먹어 특히 홈 게임에서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던 점에 있어서는 같았다고 생각한다.

 패배의 치욕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하더라도 이번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세리에 패퇴로 리그에 어두운 현실이 드리워지게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를 포함한 유럽 대회에서 우디네세를 제외한 세리에 팀들의 조기 패퇴로 인하여 UEFA에 있어서 세리에의 위치가 위험해 진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 본선 출전권 하나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챔피언스 리그 출전 자격은 UEFA 랭킹 상위 3개국에 4장의 출전권. 즉 본선 2장, 예선출전권 2장이 주어져 UEFA 랭킹 4위 이하(6위까지)가 되면 본선 출전권이 한 장이 줄어 출전권은 예선출전권 포함해서 3장이 된다. 최신 UEFA 랭킹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3위(62p). 참고로 1위는 잉글랜드(76p). 거기에 3p차로 에스파냐가 2위에 올라가 있다. 독일이 현 시점에서 54p로 4위이지만 이번에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입성한 바이에른 뮌헨의 성적에 따라서는 이탈리아와의 포인트 차가 줄어들 수도 있다.

 순위를 정하는 포인트의 환산방법을 설명해 본다.
 UEFA 랭킹은 과거 5시즌의 유럽 대회에서의 성적을 대상으로 하며 이기면 2점, 비기면 1점, 8강 이상으로 진출하면 1점이 추가되는 방식. 가령 바이에른 뮌헨이 계속 승리해 나가고 거기에  UEFA 컵에서 브레멘과 함부르크의 성적이 세리에A에서 유일하게 남은 우디네세를 상회하면 이탈리아는 4위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한 자리를 잃으면 자연스레 이미지 다운과 수입 저하가 따라붙는다. 이번 잉글랜드의 ‘이탈리아 격침’은 예상보다 더 큰 상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 이탈리아는 2위 에스파냐에 8p의 차이로 1위에 있었다. 세리에A의 황금기로 불리는 90년대에 획득한 타이틀 수는 20. 그 중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 횟수는 8, UEFA 컵 결승 진출횟수도 13에 이르러 이는 한때 유럽 축구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으로 일컬어졌다. 21세기가 되자 스타 선수의 해외 방출. 적자경영, 세리에A 부정 등 불안 재료가 겹쳐 그 화려했던 시기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2000년 이후에 탈취한 타이틀은 전부 밀란에 의한 5개만으로 팍 줄었다. 플레이 면에서는 ‘화려한 칼초’ 즉 파워와 근성에 중점을 두지 않고 플레이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너무 얽매였기 때문에 21세기에 들어 플레이를 힘차게 갈고 닦으며 정신적인 면에서 강화한 잉글랜드에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선수들의 정신 상태를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는 것을 버리고 정신에 여유를 가지게 하는 멘탈 강화책을 취해야만 한다.

 이번 챔피언스 리그에서 절실히 느낀 잉글랜드의 위협.
 상대를 ‘괴물’로 만들기 보다는 아예 이쪽이 ‘괴물’이 되어버리면 몬스터 잉글랜드를 쓰러뜨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여담으로 근년 잉글랜드의 강호(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일하게 물리친 밀란의 애칭은 ‘디아볼로(악마)’라는 것을 다른 클럽도 마음에 새겨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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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ocn.ne.jp/sports/soccer/soccer081216_1.html
저자: 마리오 테네라니
일본어 번역: 오가와 미츠오

 2005년 체사레 프란델리(Cesare Prandelli) 감독 취임에 맞추어 이탈리아의 강호 피오렌티나는 [2010년 이후에 스쿠데토를 노릴 수 있는 팀 만들기]를 목표로 장기적인 강화 계획을 진행시켜 왔다.

 지난 시즌은 4위가 되어 올 시즌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확보. 9년 만에 유럽 최고봉 무대로의 도전권을 얻은 클럽은 올 여름 5000만 유로(약 907억 원)라는 거액을 투자하여 대형 보강에 나섰다. 획득한 총 12선수 중에는 민완 GM 판탈레오 코르비노(Pantaleo Corvino), 프란델리 감독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게 만드는 한 명의 MF가 있었다. 펠리피 멜루(Felipe Melo de Carvalho), 25살. 지난 시즌 에스파냐에서 크게 활약한 [축구 왕국산]의 유망주이다.

 대형 보강의 주인공이 일찍부터 에이스의 자리를 부동의 것으로 한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F. 멜루도 개막부터 DMF의 자리에서 부동의 레귤러로서 활약. 장기인 다이나믹한 플레이로 공수양면에서 절대적인 존재감을 발휘하여 지금은 질라르디노와 맞먹는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끝없는 투쟁심과 거친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예전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한 같은 나라의 선배 둥가의 재림이라고도 칭해지는 펠리피 멜루. 피오렌티나를 더욱 높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그리고 우연하게도 그 둥가가 감독을 맡고 있는 브라질 대표팀 입성의 꿈을 이루기 위해 - 용맹 과감한 ‘전사’는 앞으로 전진한다.

클럽의 일체감에 큰 매력을 느꼈다.

- 이탈리아의 땅을 밟은 지 5개월. 이젠 피렌체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셨나요?

 굉장히 쾌적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 지난 시즌 생활했던 알메리아는 작고 아담한 항구마을로 굉장히 분위기가 좋은 곳이긴 하였지만 피렌체 쪽이 마음 편하더군. 생활하기에 불편한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관광도시이기도 한 이곳은 언제나 활기가 넘쳐. 나는 히우지자네이루 출신. 역시 번화한 곳이 좋더라구.

- 도시 중심부에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것도 번화한 것이 이유?

 관광지로 유명한 미켈란젤로 광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 조금 높은 언덕에 있는 집으로 거기에서는 피렌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와. 언제나 최고의 광경을 즐기고 있지. 그 중에서도 야경의 아름다움은 정말 최고다.

- 그렇다면 서포터에게 얼굴 팔리는 것도 많겠네요?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 힘들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기쁘더군. 나가면 곧바로 알아보고는 “차오 멜루!”하고 인사를 받거나 “열심히 해!”하고 격려의 말을 듣거나 한다. 피렌체 서포터의 열정은 장난이 아니잖아. 그들에게 직접 격려의 말을 들음으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으며 “좋아 해 주마!”하는 투쟁심도 불러일으켜 준다. 즉 서포터와 접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모티베이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지.

- 과연… 피렌체의 거리와 서포터. 그러한 요소가 피오렌티나로의 이적을 결심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인 듯 하군요.

 응. 이적이 정식으로 결정되기 전에 한 번 스타디움에서 시합을 본 적이 있는데 서포터의 열광적인 모습에는 정말 놀라게 되더군! 시합은 제쳐두고 그들의 열정이 담긴 응원에 흠뻑 빠질 정도로 감동하였어. 선수, 감독, 프런트 그리고 서포터. 피오렌티나라는 클럽의 일체감에 커다란 매력을 느꼈다.

- 그렇다면 코르비노 GM의 열렬한 권고도 그다지 필요가 없었겠군요.

 아니 아니 그에게는 정말 고마워하고 있어. 몇 번이나 알메리아로 직접 찾아와 준 코르비노의 존재가 있었기에 나는 피오렌티나로 오게 된 것이지. 그의 권유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 에스파냐에서 플레이하고 있었을 터이다.

- 프란델리 감독도 입단 전부터 당신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지. 지난 시즌까지 나는 에스파냐에서야 조금 이름이 알려졌지만 국제적인 지명도는 결코 높지 않았어. 그들은 그런 나를 높게 평가해 주었다. 기쁘지 않을 턱이 없잖아? 처음 프란델리 감독과 만났을 때도 ‘자네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선수다’라는 고마운 말을 들었다. 의욕이 한층 더 높아진 것을 지금도 확실히 기억한다.

- 당신이 보기에 프란델리는 어떤 감독인가요?

 말 그대로 [지도자]. 예를 든다면 선생님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플레이에 관한 세세한 설명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며 우리들 선수에게 언제나 성실하게 대해줘. 감독에게도 여러 타입이 있지만 프란델리 감독은 무턱대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선수와 동등한 시선으로 무엇이든 세심하게 가르쳐 주지.

- 감독이 그러한 인물이라는 것은 당신들 선수에게 있어서 역시 중요한 것인가요?

 중요라는 말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야. 결정적인 요소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지. 말하는 상대나 상황에 따라 말하는 것이 다른 인간들 있잖아? 그런 타입 나는 정말 혐오한다. 감독은 역시 정당한 인물이 아니면 안 되지. 그래 프란델리와 같이 선수를 차별하지 않고 대해주는 사람 말이야. 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라도 컨디션이 나쁘면 선발멤버에서 제외하는 그 정도의 공정함을 가진 감독이 아니면 안심하고 함께 갈 수 없지. 그런 의미에서도 프란델리는 이상적인 지휘관. 평소에 그와 함께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실한 하루를 보냈다. 조금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대신할 수 없는 선수가 될 생각이다.

- 지금부터는 당신의 커리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물론. 편하게 말하시길.

- 프로 데뷔를 장식한 것은 브라질의 명문 플라멩구. 충격적인 데뷔전이였다고 들었습니다.

 잘 알고 있네. 내 데뷔전이지만 정말 자랑스런 데뷔전이었지(웃음). 벌써 7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믿을 수 없을 정도야. 당시 나는 18살. 시합 종료 10분전에 필드로 보내져 무려 퍼스트 터치에 골을 넣었다구! 더구나 팀을 2부 강등의 위기에서 구하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는 골을 말이야. FW이지도 않은 내가 데뷔전에서 그것도 1부 잔류가 걸린 중요한 일전에서 득점을 넣다니 그야말로 기적, 행운이었지.

- 플라멩구는 지금도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요?

 당연하지. 나는 10살 때부터 플라멩구에 입단하여 19살까지 플레이 했다. 약 10년간이나 신세를 진 클럽을 잊을 턱이 없지. 플라멩구에서의 추억은 앞으로도 계속 내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거기에 은퇴하기 전에 언젠가 한번 더 플라멩구에서 플레이 할 생각이다. 나를 키워준 클럽에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하고 말이지.

- 그 플라멩구에서 2003년에 크루제이루로 이적. 가자마자 팀은 3관왕을 달성하여 그 해의 타이틀을 전부 획득하였죠?

 재적한 것은 1시즌 뿐이었지만 덕분에 굉장히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시즌 우리들은 (반데를레이) 룩셈부르구라는 뛰어난 지휘관 아래서 클럽 첫 전국선수권 제패 그리고 브라질 사상 첫 3관왕을 달성할 수 있었어. 정말 익사이팅한 시즌이었지. 룩셈부르구 감독에게는 많은 것을 배웠다. 감독뿐만이 아니지. 그 팀에는 우수한 선수들이 아주 많아 선수 모두가 서로에게 자극 받으며 연습을 열심히 하여 날이 갈수록 팀 전체가 성장해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 어떠한 선수들이 있었나요?

 수비진에는 GK 고메스(현 토트넘)를 시작으로 마이콩(현 인테르나치오날레), 크리스(현 리옹), 루이장(현 벤피카). 그 외에도 알렉스, 에두(Edu Dracena), 데이비드 - 이상 페네르바체 - 등, 지금은 유럽의 제일선에서 활약하는 유명한 선수들뿐이지.

- 확실히 엄청난 면면들이군요. 그런 선수들 틈에서 19살의 어린 당신은 볼란치 포지션에서 팀의 균형을 유지시키고 있었단 말이죠?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인데요?

 굉장히 힘들었지. 경험이 부족했기에 팀에 폐를 끼친 적이 많았어.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들과 플레이 하는 것이 즐거워 미칠 정도였다.

- 당신은 지금까지 계속 볼란치에서 플레이 한 것입니까?

 기본적으로는. 솔직히 말하면 내 어릴 적 우상은 아르헨티나의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었다. 라이벌인 나라의 선수이기에 큰 소리로는 말하지 못하지만(쓴웃음). 필드 중앙에 자리잡고 격렬하며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참고로 하였었다. 다만 2005년부터 2시즌 재적했던 라싱 산탄데르에서는 당시의 감독에게 ‘윙을 맡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 피오렌티나를 예를 들면 (마리오 알베르토) 산타나가 담당하고 있는 오른쪽 윙이다. 그때까지 전혀 뛰어본 적이 없었던 포지션이었기에 그 때는 정말 힘들었지(쓴웃음). 때문에 2007년 여름에 알메리아로 이적이 결정되었을 때는 내심 ‘럭키~’라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 그 알메리아에서의 지난 시즌은 당신에게 있어 비약의 해였습니다.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알메리아에서의 나는 확실하게 팀의 중심이었어. 여기 피렌체로 말한다면 (아드리안) 무투와 같은 존재지. 지난 시즌 종료 후의 팬 투표에서는 6000표 이상을 얻어 팀 시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으니까. 성적은 34시합에 출장하여 7골. 만족할만한 1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당연히 여기 피오렌티나에서도 중심선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계시겠죠?

 물론이다. 피오렌티나에서도 무투와 같이 대신할 수 없는 선수가 될 생각이다. 단지 우선은 이탈리아 축구에 익숙해지는 것이 최우선. 이번 시즌은 포지셔닝이나 축구관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1년으로 삼았다. 덤으로 활약까지 할 수 있다면 내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시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싸움은 이골이 날 정도.

- 팀 동료 중에서는 누구와 가장 플레이 하기 쉽다고 느끼나요?

 누구와 플레이 하건 문제없다. 내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매 시합 선발 멤버가 바뀐다고 하여도 바꿀 필요가 없으니까.

- 그렇다면 팀에서  가장 인상 깊은 선수는?

 알베르토(질라르디노)이지. 그의 플레이는 그가 밀란에 있을 때부터 때때로 보았지만 그 때는 이렇게까지 굉장한 플레이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연 피오렌티나에서 함께 플레이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지. 때문에 이번 시즌 그의 ‘부활’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굉장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천성의 골게터. 틀림없는 일류 스트라이커다.

- 질라르디노의 플레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뛰어난 곳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득점감각. 이 한마디로 전부 정리된다. 높은 슛 기술은 말할 것도 없으며 공간으로 파고드는 타이밍이나 페널티 에리어 안에서의 포지셔닝도 좋다. 득점하기 위한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

-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는데, 에스파냐와 이탈리아 축구에서 가장 커다란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리가 에스파뇰라에서는 중반에서 조금 차분히 플레이 할 수 있었어.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곧바로 압박이 들어와. 중반에서 볼을 건드릴 기회가 많은 나에게 있어 속도감 있는 플레이 템포에 익숙해지기까지 다소의 시간이 필요했었지. 일반적으로 알려졌듯이 역시 전술면에서는 이탈리아 쪽이 위일 거라고 생각해. 개인보다는 팀의 규율이나 조직이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있으니까.

- 알메리아 시대와 비교해서 피오렌티나에서는 수비의 비중이 높아진 것같이 보입니다. 그것도 규율이나 조직을 중시하는 것과 관계되어있습니까?

 확실히 지금의 나는 최종 라인 바로 앞에서 플레이 하는 일이 많지. 지금까지의 축구 인생에서 3명이 형성하는 중반의 밑바닥을 맡은 것은 처음이니까. 처음엔 갈피를 잡지 못한 적도 많았지만 오해하지 마길. 결코 억지로 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니까. 지금은 새로운 포지션에도 완전히 적응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자신이 해야만 하는 역할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당신은 투쟁심을 전면으로 내뿜는 터프한 플레이를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이나믹한 플레이를 당신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라고 말해도 좋을까요?

 확실히 내 태클은 거칠며 다이나믹한 움직임도 내 무기다. 단,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 상대에게 부상을 입힌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거칠기는 하지만 결코 더티하지는 않다. 골을 빼앗길 것 같은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일부러 파울을 범하는 듯한 일은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필드 위에서는 어떠한 때라도 클린하며 ‘용감한 전사’로 있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요는 정신적인 문제인 것이다.

- 당신은 어렸을 적부터 지우짓수(브라질유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투쟁심은 거기에서 길러진 것입니까?

 맞어. 이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우짓수는 축구에 굉장히 도움이 되. 상대에게 달려드는 투쟁심은 물론 일대일 장면에서 상대의 순간적인 틈을 놓치지 않는 통찰력, 더 말하면 몸싸움 장면에서의 포지셔닝에서도 지우짓수에서 배운 것을 살리고 있다.

-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지우짓수는 상대와의 머리싸움이나 서로 주도권을 쥐는 것이 중요한 스포츠이기에 축구에도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이군요?

 바로 그래. 머리싸움은 내 주특기지. 상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읽은 것은 이골이 날 정도. 지우짓수와 마찬가지로 축구에서도 항상 두수 세수 앞 플레이를 예측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가를 언제나 생각하면서 플레이하고 있지.

둥가보다 더 활약하는 것이 목표

- 올 시즌 세리아A에서는 몇 위가 될 것 같나요?

 우선은 하나씩 눈 앞의 시합을 소중히 하며 싸워가는 것이 중요하지. 당연하게도 그것이 쌓이고 쌓여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시즌 종반까지 상위에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들에게도 충분히 우승 기회가 있지 않을까? 다만 당면의 목표는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4위 이내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 만약 우승할 수 있다면 당신이 가진 또 하나의 목표인 브라질 대표팀 입성에도 크게 접근하는 것이 될 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되길 기도하고 있어. 브라질 대표팀에 선택되는 것은 내 어릴 적부터의 꿈. 브라질 사람에게 있어 저 카나리아 색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정말로 특별한 일이니까.

- 대표팀 감독 둥가가 예전 피오렌티나에서 플레이 했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죠?

 응. 내 플레이 스타일이 당시의 그와 닮았다고 자주 비교되는 것도 알고 있어. 굉장한 영광이지.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보다 더 활약하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런 건방진 말을 하면 둥가에게 혼날 것 같지만(웃음).

- 피오렌티나와 같은 강호 클럽에서 활약하면 둥가 역시 당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 터. 응원하니 열심히 해주길 바랍니다.

 고맙다. 피오렌티나에 조금이라도 더 공헌할 수 있도록 그리고 브라질 대표팀에 선택되기 위해서도 평소의 연습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하겠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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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ocn.ne.jp/sports/soccer/soccer081211.html
저자: 로사노 도나도니
일본어 번역: 오가와 미츠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불황의 파도는 당연 축구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적 시장에서 거금을 투입하여 팀의 실력을 높이던 시대는 종언을 맞이하여 각 클럽은 지금 육성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축구계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하부조직의 충실, 육성의 현실과 마주보려는 클럽의 현 상황을 고찰한다.

큰 변모를 이룩한 빅 클럽의 육성 사정


 전세계를 무대로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경제 위기는 축구계에도 크나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적 시장에 거금을 투입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에서 팀 강화에 가장 유효한 수단은 무엇일까? 그 답은 '사지 않고 키운다'이다. 즉 클럽 자신들이 운영하는 하부조직에서 우수한 선수를 한 사람이라도 많이 배출하는 것. 불황이 만연한 현대에 있어 육성의 강화는 불가결한 테마인 것이다.

 유벤투스는 2년 전 사건을 계기로 육성의 재강화에 나섰다. <칼초 스캔들>의 발각에 따라 세리에 B로 강등… 대폭적인 수입 저하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들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파트리크 비에라 등 고액 연봉선수들을 계속해서 방출. 세바스티안 조빈코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각주:1], 파올로  데 첼리에[각주:2] 등 하부조직에서 기술을 닦고 있던 선수를 톱 팀으로 승격시켜 그들을 세리에 B에서 이겨 나가기 위한 귀중한 전력으로 편입시켰다. 이들 세 선수는 지난 시즌 각각 임대를 경험하여 올 여름 성장을 하고 팀에 귀환. 지금이 되어서는 보다 중요한 전력으로써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도 두터운 신뢰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유벤투스 하부조직의 충실함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예전 톱 팀에는 하부조직에서 키운 선수를 사용할 포지션이 없어 그들은 <반영구적인 임대 생활>을 강요 받았다. 전세계에 뻗쳐있는 네트워크 그리고 윤택한 자금을 이용하여 때나 국적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선수를 샀다… 예전 유벤투스는 육성한 선수에게 활약할 장소를 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탈리아의 귀부인(유벤투스의 애칭)>에게 예전의 딜레마는 없다. 세리에 B 강등을 발단으로 하는 경제위기가 빅 클럽의 자세를 근본부터 바꾼 것이다.

 보강 방침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은 유벤투스뿐만이 아니다. 모라티 일족 아래서 용천수와 같이 뿜어져 나오는 돈을 마구 썼던 인테르나치오날레조차도 요 수 시즌은 하부조직의 선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는 이번 시즌부터 팀 지휘관에 임명 받은 모리뉴의 의향도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듯 하다.

 “이 팀에는 높은 급료를 받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등록 멤버는 24명까지 줄일 것이다”
 취임 직후 모리뉴는 팀 구성에 관한 태도를 명확히 하였다. 이 발언을 계기로 하여 선수 사정, 여분의 전력에 대한 조사 및 검토가 개막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어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는 선수 몇 명의 방출이 결정적.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가령 모리뉴의 구상 밖이라도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높은 연봉선수>가 그리 간단히 팔릴 리는 없다. 따라서 당장은 무료 임대라는 형식으로 방출하여 전력의 슬림화를 꾀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동시에 하부조직에서 재능을 끌어올려 전력의 활성화를 꾀하는 것도 이 지장이 게을리 할 턱이 없다.

 18살의 괴물 FW 마리오 발로텔리를 필두로 인테르나치오날레에는 젊은 재능이 많이 존재한다. U-21 이탈리아 대표에서 활약하는 프란체스코 볼초니[각주:3]는 19살. 모리뉴가 그 재능을 높이 평가하는 오른쪽 SB 다비데 산톤[각주:4]은 아직 17살이다. 발로텔리에 이어 그들이 본격적인 데뷔를 이룰 날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어린 선수를 키워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모리뉴의 자세는 돈으로 해결하는 것 밖에 몰랐던 마시모 모라티 회장의 자세에도 변혁을 가져다 준 것이다.

대표적 실패인 밀란, 대표적 성공인 아탈란타


 유벤투스나 인테르나치오날레가 육성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것 과는 반대로 여전히 크게 뒤쳐진 것이 밀란이다. 올 여름 이적시장에서 안드리 솁첸코를 다시 불러들인 결과 하부조직 출신으로 장래를 촉망 받던 18살의 스트라이커 알베르토 팔로스키[각주:5]는 출장기회를 찾아 파르마로의 임대이적을 결심하였다. 역시 하부조직 출신의 공격수  마르코 보리엘로[각주:6]를 제노아에서 불러들인 것까지는 좋았지만 층이 두터운 FW진 속에서 주전다툼에 힘들어하며 지난 시즌 리그에서 19득점으로 대활약한 스트라이커가 지금까지 불과 1골에 멈추어있다. 팔로스키와 보리엘로의 예는 밀란의 육성력 부족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육성의 성공적인 예를 말한다면 아탈란타의 존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베르가모에 본거지를 둔 클럽의 역사는 하부조직에서 키운 선수들에 의해 맥맥히 이어져왔다. 오래된 예로는 1968년 유로를 제패한 안젤로 도멘기니[각주:7]나, 1982년 에스파냐 월드컵 우승 멤버인 가에타노 시레아[각주:8] 그리고 요즘으로 말하면 함께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하는 리카르도 몬톨리보[각주:9]나 잠파올로 파치니[각주:10]도 아탈란타의 하부조직에서 재능을 갈고 닦은 선수들이다. 그들은 아탈란타에서 영재교육을 받아 그 실력을 높이 평가되어 다른 클럽이 사 갔다. 그 거래로 얻은 이적료가 클럽 운영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아탈란타에 있어서 육성의 성공은 독자적인 지도 철학을 철저히 함과 동시에 시설을 충실히 한 것에 의해 성립되어 있다. 베르가모 교외에 위치하는 그들의 트레이닝 센터는 최고의 설비를 완비. 육성을 전문으로 하는 지도자가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지도를 행하고 있다.

 아탈란타의 방법론은 굉장히 심플. 어느 정도의 연령에 이른 주력 선수를 높은 가격에 팔고 젊고 유망한 선수를 톱 팀으로 끌어올려 그 구멍을 메운다. 이것을 거듭함에 따라 팀 전체의 실력 저하를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리에 A가 단일 리그가 된 1929-30 시즌 이래 아탈란타는 계 48시즌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세리에 A에서 플레이하고 있는데, 이 숫자는 프로빈차(Provincia, 지방 클럽)로써는 발군의 성적이다. [프로빈차의 맹주]라 일컬어지는 우디네세가 계 35시즌이기에 양 팀을 비교하면 아탈란타가 얼마나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 비즈니스가 육성의 중요성을 높이다.


 유벤투스나 인테르나치오날레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 맞추어 강화방침을 변화시킨 클럽도 있다. 피오렌티나는 1968-69시즌에 스쿠데토를 획득하였는데 그 때 대부분의 주력이 하부조직 출신의 선수들이었다. 즉 피오렌티나는 아탈란타보다도 먼저 육성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실천했던 클럽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피오렌티나의 육성방침은 40년 전과는 크게 다르다. 하부조직의 충실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 사항 중 하나이지만 선수들은 토박이 이탈리아 선수가 아니라 외국 국적의 선수가 굉장히 많다. 그들의 시선은 주로 해외로 향해져 있어 각국에서 어느 정도 실적을 남긴 어린 선수를 하부조직으로 뽑아 와 팀 전력으로써 키우고자 하는 것이다. 세르비아의 니콜라 굴란[각주:11], 체코의 온드리졔 마즈흐[각주:12]와 얀 하블레[각주:13] 그리고 브라질의 알렉스[각주:14]와 제페[각주:15]는 전부 외국에서 불러들인 20살 전후의 어린 재능들로, 그 중에는 이미 톱 팀 데뷔를 장식한 선수도 있다. 단지 피오렌티나의 강화방침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연히 외국에서 선수를 획득하면 자국 출신 선수는 기회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그 폐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UEFA는 2005년 4월, 2006-07 시즌부터 단계적으로 [자국 육성 선수 필수 등록제]를 도입해 갈 것을 결정하였다. 이는 요즘 축구계에서 증가 경향인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전력 강화를 꾀하는 클럽]에 대한 억제력으로써, 또한 [육성에 중점을 둔 팀 운영]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로써 UEFA가 독자적으로 설치한 룰이다. 이번 시즌의 개요는 [챔피언스 리그 출장 팀의 등록 멤버가 되는 25명의 A리스트에는 4명 이상의 클럽 내 육성 선수를 포함한 8명 이상의 자국 육성 선수를 등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 멤버 구성에 규정을 설치한 새로운 룰 채용으로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하는 각 클럽은 구상 밖에 있었을 터인 자국 육성의 대상 선수 방출을 보류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당되는 선수를 우선적으로 획득 또는 하부조직 출신 선수를 대량으로 승격시키는 등 새로운 룰 속에서 이상적인 멤버를 구성하기 위한 대응에 쫓겼다.

 그러나 [자국 육성 선수 필수 등록제]에 대한 대응이 늦어졌던 피오렌티나는 4명을 포기하게 된다. 즉 A리스트에는 상한인 25명에서 4명이나 적은 21명을 제출. 간결하게 말하면 4명분의 불리함를 받아 들인 형태로 챔피언스 리그에 임한 것이다.

 약 반세기 전, 프로빈차 클럽은 대부분이 하부조직 출신 선수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부조직 없이는 축구를 말할 수 없다. 그런 시대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02년 EU통합에 따른 급속한 글로벌화나 축구를 비즈니스와 연결시키는 막대한 자금의 유입으로 인해 클럽 구도는 그 형태가 크게 바뀌어갔다. 팀 강화의 지름길은 세계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유명 선수를 제한 없이 사 모으는 것. 한때는 하부조직 운영을 민영화시키는 클럽까지 출현할 정도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요 수년 축구계에는 경제 위기를 발단으로 하는 육성 개념의 시정으로 인하여 하부조직의 충실, 육성의 강화가 재인식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거의 제로인 상태에서 재출발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클럽도 적지 않다. 하부조직을 기능시키기 위해서는 묻혀있는 잠재능력을 발굴하는 스카우트와 그 포텐셜을 이끌어 낼 지도자의 존재가 불가결하다.

 하부조직의 충실함이 가져다 준 반세기 전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해결할 과제가 있다. 축구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 외에는 없으며 현대에 있어서 육성조직의 강화는 어느 클럽에게나 부과된 가장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인 것이다.


2007/12/23 - [일본웹번역/축구] - 세바스티안 조빈코 [아주리의 작은 보석]

2008/02/18 - [일본웹번역/축구] - 주목도 넘버 원의 발로텔리

  1. Claudio Marchisio. [본문으로]
  2. Paolo De Ceglie [본문으로]
  3. Francesco Bolzoni [본문으로]
  4. Davide Santon [본문으로]
  5. Alberto Paloschi [본문으로]
  6. Marco Borriello [본문으로]
  7. Angelo Domenghini [본문으로]
  8. Gaetano Scirea [본문으로]
  9. Riccardo Montolivo [본문으로]
  10. Giampaolo Pazzini [본문으로]
  11. Никола Гулан [본문으로]
  12. Ondřej Mazuch [본문으로]
  13. Jan Hable [본문으로]
  14. Alex Costa dos Santos [본문으로]
  15. Jefferson Andrade Siqueir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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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ocn.ne.jp/sports/go11/080404.html
저자: 아카호시 케이코

2004년 은퇴 이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로베르토 바조가 오래간만에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인테르나치오날레 창립 100주년 파티였다. 왕년의 주된 선수들과 함께 주세페 메아차[각주:1] 스타디움의 그라운드에서 서포터들의 환호에 답했다. 그런 바조가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 [가체타 델로 스포르토]와의 인터뷰를 하였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채소밭과 가족을 위한 하루하루

바조는 현재 실질적으로 완전히 축구와 관계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
채소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시간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다. 운 좋게 장인과 장모가 그쪽에 관해서 굉장히 잘 알기에 많이 가르쳐 준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집을 벗어난 적이 많았으니까. 이제서라도 가족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고 말했다. 부인인 안드레이나(Andreina)와 서로 알게 된 것은 15살 때로 아직 학생이었을 때부터라고 한다. 3명의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었다.

아르헨티나까지 가서 사냥을 즐길 정도로 사냥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바조. 그 정열은 여전히 식을 줄을 모르는 듯하다.
계절에 따르지만 할 일이 굉장히 많다. 차를 이용하여 광대한 산악지대까지 가서 그냥 걷기만 할 때도 있다. 무릎에 신경을 써야 하기에 너무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은 할 수 없다. 믿지 못할 정도로 공기가 깨끗하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다. 필시 나에게 힘을 나누어 주고 있을 것이다
고 자연과의 '대화'를 즐기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완전히 보카의 팬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현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서포터들의 모습에 끌려, 뭔가를 느끼게 된 후 보카가 '나의 팀'이 되었다고 한다. 마라도나와도 공항에서 만난 적이 있으며 또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마라도나는 코카인 중독 등으로 인한 재활 치료로 고생하였고, 건강 상태가 일시 위험한 적도 있었다. 그런 때도 굉장히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마라도나의 마음 속 깊이까지 도착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요한 것이다. 주위에 있는 인간들 중에 자신을 진정으로 생각해주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파악하여 그렇지 않은 인간을 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 마라도나에게 어드바이스를 보냈다.

리피, 사키 등과 좋지 않았던 이유는?

현역 시대를 되돌아 보는 질문에도 답했다.

바조와의 사이가 정말 안 좋았던 감독은 리피, 울리비에리(Renzo Ulivieri), 카펠로, 사키. 어째서 사이가 나빴는가?
자문자답한 적이 몇 번이나 있다. 그래서 찾아낸 답이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언제나 주인공 혹은 일인자로 있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욕망을 방해하는 결과가 되어 버린 듯 하다”.
즉 리피 등의 바조에 대한 [질투]가 이유라고 느끼고 있는 듯 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 대해서도
사키에게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있었으며 많은 전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자신이 항상 주인공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안타깝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더욱 많은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비꼬았다. 그러는 한편 자신의 실수도 인정하였다.
다가가는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냐고? 물론 나도 잘못한 부분은 있었다. 내 쪽에서부터 허심탄회하게 다가갔어야 했을 것이다. 내가 범한 실수는 어떤 때라도 그들을 존경했어야 한다는 점과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고 분석하였다.

주목하고 있는 것은 메시. 대표팀에서는 피를로.

물론 축구에 대한 흥미도 잃지 않았다. 보면서 자신을 흥분하게 만드는 플레이어로 메시를 꼽았다.
가끔은 예전의 나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가 볼을 가졌을 때 필시 무언가를 해 줄 것만 같은 인상을 받는다. 또한 호나우지뉴와 카카도 그러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브라히모비치, 토티도 굉장한 선수들이다. 대표팀에서는 피를로다. 그의 플레이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끝난다. 우디네세의 콸리아렐라, 디 나탈레의 콤비도 흥미롭다고 선수의 이름을 거론하였다.

바조, 바조 팬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팀이라고 하면 유벤투스와 피오렌티나일 것이다. 현재의 양 팀에 대해서
라니에리는 잘 하고 있다. 프란델리도 그렇다. 개인적인 면식은 없지만 그가 부인과 사별했을 때에는 위안의 말을 보내고 싶었다
고 하며, 또한 델 피에로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축구계의 복귀는 주니어 선수들의 육성을 통해서

은퇴를 결정했을 때의 에피소드도 알려 주었다. 다른 선수들과 동등한 연습을 하기가 힘들어져 신체적인 면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무릎 속은 힘줄을 제외하곤 전부 부서져 있었다
고 말한다. 어느 날, 브레시아의 연습이 끝나 차로 1시간 정도 걸려서 자택에 도착했을 때, 무릎이 90도로 꺾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발을 뻗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고 할 정도로 참혹한 상태였던 듯 하다.

가까운 장래, 축구계로 돌아오는 것은 틀림 없는 듯하다.
주니어 부문을 담당하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여러가지 위험한 것을 미리 알려주고 싶다. 한 마디의 말이 얼마나 많은 것에 영향을 주는가, 축구 선수로써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가……
자신의 경험한 것을 어린 세대에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모라티 회장이 예전에 바조를 주니어 부문의 담당으로 채용하려고 한 적이 있다. 바조도 그것을 인정했다.
확실히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앞으로 이야기가 더 진행되고 거기서 나눈 이야기를 납득하게 된다면 그 때는 팀에 들어가 있는 상태일 것이다
또한 유벤투스의 매수 사건 등의 이야기로 이어지자,
내 경험을 말하자면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쓰고 싶다
며 자서전 출판의 가능성도 비쳤다.

현재 가장 행복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막내인 3살 레오나르도와 노는 것.
그 아이의 미소를 보는 것.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 그것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며 아빠미소를 보여주었다.

축구 지도자로써 제 2의 축구 인생을 보낼 바조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1. 원문에선 ‘산 시로’로 되어 있지만 인테르나치오날레 주최이기에 ‘주세페 메아차’로 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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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708/italy/column/200803/at00016584.html
저자: 비토 스켐바리(Vito Schembari)
일본어 번역: 키무라 카야코


"패배자"의 낙인과 "명장"의 칭호 -1편-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길 2, UEFA 슈퍼 컵 그리고 클럽 월드컵도 제패한 AC밀란의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 이제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명감독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선수에게 가장 사랑 받는 지휘관으로써도 알려진 그가 한때 패배자라 불렸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공한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페루자에서 찍힌 낙인과 터닝 포인트

이것은 2000 5 14일부터 시작되는 인내와 희망의 이야기이다.

그 날 카를로 안첼로티는 페루자에서 돌아오는 자가용 헬리콥터의 의자에 앉아서 구름을 바라보며 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다 잡았던 스쿠데토를 잡으려고 우리들은 함께 땀을 흘리고 싸워왔었는데……”

비가 줄기차게 내린 그 저주받은 날.

역전 우승을 결정지은 라치오가 기쁨에 들끓고, 감독인 스벤 예란 에릭손이 타이틀을 축복하고 있는 동안, 안첼로티가 지휘를 하는 유벤투스는 내린 비로 인해 논으로 변한 페루자의 필드의 진흙탕 속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설마 하던 패배와 동시에 일어난 라치오의 승리가 시즌을 계속 지배해 왔던 유벤투스에게서 스쿠데토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 안첼로티는 이 날 이후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불쾌하고 무거운 낙인이었다.

좋은 감독이지만 승리의 여신과 함께 있는 남자는 아니다

이런 말을 계속 들으면, 어느 순간에는 필시 그 자신 스스로 정말 패배자인 것인가 하고 믿어 버린 적도 있었을 터이다. 당시 파르마 교외에 있는 안첼로티의 자택의 진열장에는 그가 선수 시절에 받은 트로피만 있을 뿐으로, 감독으로써의 획득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부인은 언제나 안첼로티의 곁에 있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에는 풀이 죽지 않게 격려를 하여 침착한 마음으로 일에 임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 하였다. 안첼로티가 2001년 밀란의 감독에 취임해서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인차기나 ??첸코가 한두 번 골을 놓쳤다고 해서 손톱을 물어뜯을 필요는 없어요. 늦건 빠르건 바퀴는 구르기 시작하니까요

그의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처가 말한 것은 옳았다.

터닝 포인트는 2003 5 28일 흑과 적으로 물들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찾아 온다.

감독 안첼로티의 첫 기쁨의 제스처가 나온 것도 맨체스터에서의 그날 밤이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 유벤투스와의 120분을 넘기는 사투 끝에 승자가 된 안첼로티가 하늘 높이 양 손을 치켜 올렸을 때, 그의 넥타이는 느슨해져 있었고, 셔츠의 제일 위 단추는 풀려있었다. 그것을 보아도 승부를 결정지은 PK의 긴장감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던 것인가 상상이 간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패배자의 낙인은 그의 등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그의 부인은 선수들 속에 섞여 흥분하고 있는 남편을 객석에서 내려다 보며 바퀴가 드디어 돌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요. 최대의 목표는 스쿠데토 획득이니까요

2003-04 시즌 안첼로티가 결국 밀란에서 세리에A 우승을 실현시켰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페루자에서의 고통과 실망을 잊게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멋진 시간이 찾아 오네요

■ 선수로써, 감독으로써

선수로써 안첼로티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달린 후에는 필드의 잔디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스파이크를 신었던 당시의 안첼로티는 세련된 플레이메이커도 아니었으며 판타지스타도 아닌 라스트 패스를 보낼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지구력이 장점으로 근성과 주력을 내세우는 MF였던 것이다. 3번에 걸친 무릎 수술의 영향으로 1982년 월드컵에 출장할 수 없었지만(1986년 대회는 이탈리아 대표팀 멤버에 포함되었지만 출장하지는 못하였고, 1990년 대회는 2시합에 출장), 캐리어를 통해서 활발히 필드를 내달렸던 안첼로티는 필리포 인차기에 따르면 “80~90년대 버전의 스티븐 제라드라고 할 수 있는 위대한 선수라고 말한다.

당시 세리에C였던 파르마에서 캐리어를 시작했던 안첼로티는 AS로마로 이적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79 9 16. 운명의 연()이라고 할지 AC밀란과의 시합에서 세리에A 데뷔를 장식한다. 이리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는 후에 이 두 클럽에서 선수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안첼로티는 우선 로마(79~87), 이어서 밀란(87~92)에서 플레이 하며 22골을 기록. 3번의 스쿠데토(로마에서 1, 밀란에서 2)를 시작으로, 2번의 챔피언스 컵(현 챔피언스 리그), 2번의 인터컨티넨탈 컵(현 클럽 월드컵), 2번의 유럽 슈퍼 컵, 이탈리아 슈퍼 컵(이상 밀란 시대), 4번의 코파 이탈리아(로마)를 이루어 총 283 시합을 뛰었다.

1992년 은퇴 후, 곧바로 사키의 어시스턴트로써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감독 수업을 하기 시작한 안첼로티는 1995년 레자나(Associazione Calcio Reggiana 1919, 당시 세리에B)의 감독이 되어, 그 시즌에 세리에A 승격을 이루었다.

그 후 파르마(96~99)를 거쳐, 99 2월에 리피의 뒤를 이어 유벤투스의 감독에 취임.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한 채 2001년 여름에 유벤투스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고, 그 해 11월에 당시 곤경에 처해있던 밀란의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여기서 결국 그는 감독으로써 꽃을 피운다. 밀란과 함께 스쿠데토를 획득하고(03-04), 또한 코파 이탈리아(02-03), 이탈리아 슈퍼 컵(04), 챔피언스 리그(02-03, 06-07), UEFA 슈퍼 컵(03, 07), 클럽 월드컵(07) 등 총 8개의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 사키에게 이어 받은 가르침과 독자적인 유연성

황금시대였던 Grande Milan. 후열 왼쪽 2번째부터 말디니, 판 바스턴, 안첼로티.

감독으로써 안첼로티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어째서일까? 그는 사키나 리피와 같은 전략의 마술사는 아니다. 오히려 데리고 있는 선수에게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끌어 내는 것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며, 그 멤버를 최대한 살리는 형태로 스타일을 구축해 가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감독으로써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있어, 예전 밀란의 팀 동료로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았던 마르코 바스턴의 견해가 흥미롭다.

우리들은 사키가 이끈 [그란데 밀란(Grande Milan - 80년대 후반의 황금기)]에서 팀 동료였다. 당시부터 카를로는 미래의 위대한 감독으로써의 편린을 틈틈이 보여주었다. 그는 필드 위에서 이미 감독이었다. 감독이 되고자 결정했을 때, 그는 사키의 가르침을 전부 실행에 옮겼고, 거기에 멤버에 따라 시스템을 조절하는 독자적인 특성을 더했다. 카를로는 사키처럼 융통성이 없는 타입이 아니기에 개인의 재능을 빛나게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선수에게 걸리는 스트레스도 사키에 비하면 적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가 앞으로 많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또한 밀란의 GM,

카를로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의 한 사람이 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위대한 선수에서 위대한 감독으로의 이행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밀란의 번영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자신의 생각에 너무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밀란에 컨디션이 좋은 스트라이커가 한 명만 있다면 그는 FW 1명만 기용한다. 컨디션이 좋은 FW 2명이 있다면 그는 그 둘을 채용한다. DF 3명밖에 없었다면 필시 그는 3명을 두는 수비를 쓸 것이다

■ 말디니 그의 성실함과 정직한 인격이 좋다

안첼로티를 말할 때, 그 축구 철학과 함께 언급되는 것이 그의 인격이다.

신사적인 안첼로티는 호랑이 선생님 타입은 아니다. 선수에게 머리 위로 명령하기 보다는 대화를, 분노를 쏟아내기 보다는 설명하는 쪽을 좋아한다. 예전 팀 동료였던 베테랑 선수의 놀림도 받아들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으로 받아 치거나 한다. 그의 성격과 자세는 정신적인 시점으로 보았을 때, 지금도 어떤 면에서는 선수인 상태인 채이다.

그의 인격은 경력 속에서 두 가지 설을 만들어 내었다.

유벤투스 시대에 이길 수 없었을 때, 혹은 밀란에서 어려움에 빠져 있었을 때, 어떤 사람이 말하길, “안첼로티는 선수와 너무 친하기 때문에 선수는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규율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사키 아래서 선수였을 때와 같이, “로커룸의 리더였던 것이야말로 그의 장점인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방정식에서 기인한다. 부분적으로 선수인 채로 있는 안첼로티는 선수들의 기분을 이해하고 있다. 그 때문에 선수들이 최고의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가 있어 선수들도 그에 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안첼로티에게 절찬을 보내는 명 플레이어는 셀 수 없이 많으며, 그 중 몇 명인가는 선수로써 그의 팀 동료였던 적도 있다. 예를 들면 현재의 밀란의 주장인 파올로 말디니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카를로?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카를로에 대해서는 그가 선수였던 때부터 알고 있다. 처음엔 그가 로마에 있을 때에 상대 선수로 만났고, 그 후에 밀란 선수들의 리더로써, 지금은 감독으로써 그를 알게 되었다. 나는 예전부터 계속 그의 성실함, 정직한 인격이 좋았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로커룸 밖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아닌 팀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점도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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