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06.09.27 세리에 B 광시곡 by 渤海之狼
  2. 2006.08.16 타키나르디 인터뷰 by 渤海之狼
  3. 2006.06.07 이탈리아 대표, 부정의혹과의 싸움 by 渤海之狼
  4. 2006.04.08 "밀란의 혼(魂)" 프랑코 바레시 by 渤海之狼 1

저자: 사카마키 요우코


 재출발한 유벤투스를 맞이한 세리에 B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9월 9일 개막전에서 축구계의 [명문]을 맞이한 리미니의 시영(市營) 스타디움은 사상 최고의 관객동원수를 기록했다. 개막전의 티켓을 손에 넣고자 5일 전부터 철야하는 서포터도 있는가 하면, 위조 티켓으로 스타디움에 들어가고자 했던 20명의 서포터가 경찰에게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 지금까지 세리에 A는 몰라도 세리에 B에서 이러한 예가 없었다.


 제 3라운드의 크로토네와의 시합에서는 스타디움 근처에 있는 크로토네 시립 종합병원이 유벤투스와의 시합 개시 시간대에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해프닝때문에 국민의 웃음을 샀다. 병동의 유리창 너머로 시합을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상황에 서포터가 습격해 올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전대미문의 이벤트로 그 지방 기업의 비즈니스도 여념이 없다. 크로토네에서는 19일 유벤투스와의 시합을 향해서 [9월 19일 크로토네 - 유벤투스의 시합에 나는 있었다]라고 쓰인 T셔츠를 어떤 회사가 판매. 날개가 돋친 듯이 팔렸다. 더욱이 크로토네의 공식 유니폼 오른쪽 가슴에 [크로토네 - 유벤투스 2006년 9월 19일]이라 각인 된다는 뉴스도 있었다.


 유벤투스 서포터는 1500만 명이라고 한다. 이 수는 이탈리아 국민의 30% 초반을 점하는 숫자다. 거기에 이번 시즌은 명문의 강등에 따라서 [은근슬쩍 유벤티노]가 급증했다. 무엇을 감출까 안티 유벤투스인 필자도 유벤투스의 시합에 정신없이 빠져서 보고 있는 [은근슬쩍 유벤티노]이다. 이 진귀한 현상으로 세리에 B의 관중은 전 시즌보다 28% 늘어났다. TV 시청률도 높아지고, 할당된 신문 지면도 배가 되는 등 세리에 B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최근에는 [세리에 A2]등으로 불리며 선배격인 세리에 A를 위협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으로 [확실한 우승 후보]를 잃은 세리에 A는 전 시즌에 비례해서 총 8만 3천명의 관객이 줄었다. 관중이 스타디움을 찾지 않는 것이 심각화 되고 있다. 개막 직전까지는 유벤투스의 하강을 낄낄대던 각 클럽도 유벤투스 부재가 가져다 준 수익 다운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어쨌든 유벤투스의 실력은? 월드컵 우승 멤버를 가지고 있어도 스피드에 특화된 세리에 B에서는 간단하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개막전의 리미니와의 시합 결과(1-1로 비김)가 말해주고 있다. [해이함]때문이라고 툴툴대는 데샹 감독은 선수들에게 풍부한 운동량을 바라며 거기에 정신적인 면에서도 세리에 B모드로 바꿀 것을 지령. [달리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축구에 철저한 결과 크로토네와의 시합에서는 이번 시즌 첫 완봉 승리를 거두었다.


 세리에 B에서의 플레이를 거부하고 있던 이탈리아 대표 MF 카모라네시도 이날 경축할 만한 세리에 B 데뷔. 카모라네시의 기용으로 공격진에 민첩함이 더해져 상대 디펜스를 무너뜨리고 팀은 3골을 넣었다. 제 3라운드는 상위의 볼로냐, 제노아, 숙적 나폴리가 졌기 때문에 이 승점 3은 가치 있는 포인트가 되었다. 페널티 마이너스 17로 유벤투스는 여전히 최하위지만, 새로워진 [명문]이 이번 시즌 어디까지 상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하강 처분의 설욕은 게임으로 풀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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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유벤투스에서 비야레알로 이적하여, 챔피언스 리그 4강에 공헌한 타키나르디>

 

●● 작년 시즌 개막하기 전에 유벤투스에서 비야레알로 이적해 온 알렉시오 타키나르디. 1994년 아탈란타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한 후로는 11년간 재적하면서 획득한 수많은 타이틀(리그 우승 5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토요타 컵 우승 1회)은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것이다.

타 키나르디는 유벤투스 시대에, 이탈리아 대표를 월드컵 독일 대회에서 우승으로 이끈 리피감독이나 현 레알 마드리드의 카펠로감독 아래에서 승자의 정신을 배워 온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나는 공격적인 선수]라고 말하는 것처럼 필드 밖에서 말하는 말도 때로는 직접적이며 공격적으로 들린다. 그런 타키나르디에게 비야레알에서 월드컵, 이탈리아 축구 부정 사건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들어 보았다●●


<올해 많은 보강을 한 비야레알이지만, 승자의 정신을 갖고 있는 타키나르디는 귀중한 존재이다>
 
 

이탈리아와 에스파냐를 비교한다면


-작년 비야레알로 이적해 온 이유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유 벤투스에서의 마지막 시즌(2004-05)은 카펠로 감독으로 바뀐 것도 있어서, 출장기회가 많지 않았다. 계속해서 시합에 나가고 싶었기에, 비야레알에서의 오퍼를 듣고, 이탈리아에서 플레이 경험이 있던 호세 마리나 소린의 이야기도 참고하면서,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하게 되어있던 비야레알에 이적하기로 하였다.


-비야레알 외에도 오퍼는 있었잖습니까?


굉 장히 많았다. 하지만 우선 이탈리아의  팀은 제외하였다. 유벤투스나 유벤투스의 팀 동료와 싸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프레미어 리그의 몇몇 팀에게서 오퍼는 있었지만, 나는 에스파냐로 가고 싶었다. 에스파냐에서의 생활이나 에스파냐 축구의 질 높음에는 이전부터 흥미가 있었으니까.


-팀 적응에 시간이 걸렸는데요.


2,3 개월은 걸렸지. 왜냐면, 연습 방법이 전혀 틀리니까. 이탈리아는 굉장히 하드한 연습을 하는 것에 비하여, 여기(에스파냐)는 연습이 가볍다. 때문에 피지컬 컨디션을 100퍼센트로 하는 것이 어려웠고, 특히 시즌 개막 당초는 풀 출장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리가와 세리에 A의 차이는?


선 수 개개인의 질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는 공격적이고 전술안(戰術眼)을 가진 선수. 이탈리아에는 그러한 선수가 많다. 한편, 에스파냐에는 각각의 선수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플레이 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같은 정확히 확립된 정신력이나 플레이 스타일이 에스파냐에는 없기에, 처음엔 혼란스러운 면도 있었다.


-고른다면 한다면, 어느 스타일을 좋아하십니까?


에 스파냐이려나? 이탈리아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일 뿐. 항상 승리를 요구받아, 좋은 플레이를 하건 나쁜 플레이를 하건 상관없다. 에스파냐와 이탈리아는 정신력이 확실히 틀리다. 요번 월드컵이 좋은 예이지. 이탈리아는 그렇게 많은 골을 넣지 않고, 조직적인 수비를 기본으로 싸우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우승했다. 그것에 비하여 에스파냐는 항상 전진하는 축구로 공격적이기는 했지만, 결국은 이기지 못했다. 단지 지금 나는 에스파냐에서 플레이하고 있으며, 축구를 즐긴다는 의미에서도 에스파냐의 축구 스타일을 고르고 싶다.


-지금은 비야레알에서 축구를 즐기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 여기서는 매일 하는 연습조차, 축제와 같은 감각으로 축구를 즐기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여러 가지 압박이 있다고 합니다만, 토리노(=유벤투스의 본거지)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외출하거나, 외식도 할 수 있었잖아요.


물 론. 단지 나는 프로 축구 선수이며, 자주 밖에 나가 걷는 것은 하지 않았다. 시합 후인 일요일 밤만은 팀 동료와 식사하러 나가거나 했었다. 또 진심을 말하자면, 토리노는 굉장히 춥기 때문에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기분도 있었다. 반대로 비야레알은 따뜻하다고 하기보다, 덥기 때문에 언제나 정원에서 가족과 식사를 즐기고 있다.


현재의 팀은 저번 시즌 팀보다 약하다


-이번 시즌은 이미 인터 토토 컵에서 패퇴하여, 유럽 컵 대회로의 참전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만, 패배한 NK마리볼과의 시합에서는 팀에 무엇이 부족했기 때문일까요?


피 지컬 컨디션이지.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는, 최저한 2~3시합의 연습 시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그러한 준비를 할 수 없었다. 현대 축구에서는, 예를 들어 지단이나 호나우도조차 필드에서 달리지 않으면, “차이”를 보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술적으로 부족하다고 하여도, 상대보다 많이 달릴 수 있다면, 그 차를 메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정신력이나 겸허함의 부족도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확 실히 그러한 것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요인을 생각할 수 있다. 단지 나와 같은 경우를 말한다면 60~70퍼센트 정도의 컨디션이라면 아직 나를 “타키나르디”라 부를 수 있지만, 20~30퍼센트의 컨디션으로는 부를 수가 없다. 다른 선수가 되어 버린다. 비야레알의 선수 전원이 50퍼센트 이하의 컨디션이었다. 즉, 다른 팀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름, 비야레알은 니하트, 카니, 피레스라는 빅 네임을 보강했습니다. 하지만, 남은 것은 리가와 코파 델 레이뿐입니다. 선수가 너무 많지는 않은 것일까요?


확 실히 빅 네임을 보강했다. 단지 축구에 있어서 이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결국은 필드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작년은 지금보다 빅 네임이 즐비하지 않은 상태로 챔피언스 리그 4강까지 갔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현재의 팀은 지난 시즌의 팀보다 약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NK마리볼과 같은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로 2시합도 이기지 못했으니까. 시즌은 매년 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에, 이번 시즌은 굉장히 어려워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은 타이틀 획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좋 은 선수가 즐비한 팀은 되었다. 단지 다른 팀도 우리만큼 좋은 보강을 하고 있으며, 우리들 이상으로 좋은 선수를 갖춘 팀이 있다. 타이틀 획득이라는 이야기를 하자면.... 어렵다고 본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획득권내(리가 4위 이내)다.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 후, 지단의 박치기, 이탈리아의 부정 문제등, 타키나르디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이탈리아에 남아 있었다면 대표로 뽑혔다.


-월드컵 독일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이 탈리아 사람으로서 굉장히 행복하다. 단지 내용이 좋았던 것은 독일과의 시합에서 연장전뿐이었지만. 결과에는 만족하고 있으며, 우승 후에 유벤투스 시대의 팀 동료에게 전화를 해서 축하를 하여, 행복을 나누어 받았지만, 실제로 이탈리아는 그다지 좋은 축구를 하지는 않았다.


-당신 자신이 월드컵에서 플레이 할 수 없었던 것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확 실히 그건 있다. 단지 작년 비야레알에 이적해 온 단계에서 리피감독과 이야기를 하여, 나를 뽑아 주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다. 해외에서 플레이 하는 이탈리아 선수는 대표로 뽑지 않을 거라고 말했으며, 이탈리아인 감독은 어느 의미 폐쇄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니까. 만약 이탈리아에서 플레이 하고 있었다면, 리피가 감독을 하고 있던 유벤투스에서 오랜 시간 플레이하고 있었기에 뽑아 주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월드컵 독일 대회에서의 이탈리아의 시합은 전부 보셨습니까?


물 론 전부 보았지. 일본 시합도 보았다. 일본은 좋은 결과가 아니었기에 안타까웠다. 나는 일본에 굉장히 호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델 피에로와 굉장히 친하기에, 그가 일본 쪽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관계로, 나에게도 일본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해 준다. 96년에 토요타 컵에서 리버플레이트를 이긴 시합에서는, 나도 유벤투스의 일원으로 토우쿄우에 가서 출장했다. 토우쿄우의 거리가 좋으며, 매번 팀 투어 등으로 토우쿄우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


-리피감독에 대해서 가르쳐 주세요.


그 는 감독으로써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승자의 정신이다. 감독에게 있어서 전술이나 시스템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요소. 기본에 깔려있는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항상 승리에 대해서 말하며, 선수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 대표도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테라치가 악명 높은 것은 틀림이 없다.


-레알 마드리드의 카펠로 감독에 대한 인상은?


레 알 마드리드에게 있어서는 이상적인 감독이 아닐까? 작년 레알 마드리드와 대전해서, (당시 프런트에 있던)아리고 사키와도 이야기 했지만, 그 당시부터 레알 마드리드에는 규율이 부족했었다. 카펠로는 규율 있는 감독이며, 레알 마드리드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개막전은 그 레알 마드리드와의 시합이 되었습니다만


굉 장히 기대하고 있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와의 대전은 언제나 어렵다. 더구나 카펠로 감독이 된 신생 레알 마드리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필시, 리가에서 처음 시합하는 것도 있어, 카펠로 감독은 선수에게 굉장히 동기를 유발시켜 시합에 임하게 할 것이기에, 우리들도 상당히 좋은 시합을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칸나바로와 시합하는 것도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월드컵 결승에서 지단의 박치기 사건에 대해서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정 말 안타까웠다. 지즈(지단의 애칭)는 유벤투스에서 함께 플레이하고 있던 동료였으며, 마테라치도 잘 알고 있는 선수. 뭐라고 코멘트하기에 어렵군. 단지 지단에게 있어서, 그러한 형태로 월드컵 결승, 그리고 그의 마지막 시합을 끝내버린 것은, 아마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마테라치에 대한 벌칙의 판정이 불공평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나 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벌칙이 타당하다. 축구 선수가 필드 위에서 해야 할 것은 입으로 도발하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이탈리아 국내에서도 월드컵에서 우승하여, 마테라치에 대해서 호의적인 의견이 많다. 단지 그 이전엔 이탈리아 국내에서도 그에게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여기 비야레알에서도 소린에게 팔꿈치로 친 적이 있듯이, 마테라치가 악명 높은 것은 틀림이 없다.


심판이 빅 클럽에게 유리하게 호루라기를 부는 것은 어디나 있는 일


-이탈리아 축구계의 부정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다 시, 제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단지 유벤투스만이 내려간 것에 대해서는 다소 안타까운 생각이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모지(유벤투스의 전 GM)나 그 주변의 인간이 한 것이기에, 유벤투스 팀 자체가 세리에 A에서 플레이하지 못하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최종적으로 유벤투스만이 내려갈 것 같은데, 그 판결에 대해서는?


공정한 판결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유벤투스도, 밀란이나 라치오와 같은 팀처럼 마이너스 포인트로 세리에 A에 남는 것이 타당하지 않았나하고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 당신이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유벤투스에서 플레이 했었을 때, 우리들 선수도 심판이 유벤투스나 밀란에게 유리하게 호루라기를 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까?


사 실이다. 하지만 그건 여기 에스파냐에서도 똑같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와 대전했을 때, 그들에게 유리한 판정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작년,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아스날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대전했을 때도 역시 그랬다.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의 축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은 클럽이나 팀이 빅 클럽과 대전할 때에는 그러한 것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카타 히데토시가 은퇴한 뉴스는 알고 계십니까?


물 론. 나카타와는 한 번 밀라노에서 개인적으로 대화를 한 적이 있으며, 시합에서 대전했을 때도 당연하지만 필드 위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멋진 인간이며, 침착하며, 굉장히 성실하다. 그의 은퇴에 대해서 특별히 할 말은 없다. 축구 선수라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연습하고, 축구를 하고자 하는 동기가 없으면, 은퇴해야만 한다. 그러한 동기 없이 축구를 하고 있으면 팀 동료에게 피해를 줄뿐이다. 그는 굉장히 머리가 좋은 인간이니까, 이번 결단이 그에게 있어서도, 그 외의 모든 인간에 있어서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단지 서른 살도 되지 않은 멋진 축구 선수가 은퇴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뉴스다.


-일본을 좋아하는 당신이 일본에서 플레이 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요?


예 전에 스킬라치가 플레이했던 것처럼, 나도 반년정도 일본에서 플레이 해보고 싶은 기분은 있다. 단지 지금의 일본 축구 레벨이나 리그 레벨은 예전과 같은 급격한 성장이 없고, 조금 정체된 듯한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이 좋으며, 팬이 나에게 보내주는 성원에 보답하고 싶다고는 생각한다. 흠... 나카타에게 물어 봐야겠군. 밤의 토우쿄우 거리에 데리고 나가 달라고 부탁해 볼까(웃음)


●● 타키나르디는 인터뷰에서 [축구를 즐기고 싶다]고 말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규율이 엄격한 이탈리아, 유벤투스 축구보다 편안한 비야레알에서 은퇴까지의 여생을 보내려고 하는 듯한 인상이 남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해. 그가 연습에서의 모습이나, 시합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는 한, 그는 이기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는 인간이다. 결코 타협을 하지 않고, 항상 필드위에서 싸우며, 팀 동료에 대해서도 큰 목소리로 의견을 날린다. 그것이 승리를 위해서이기도 하며, 그 승리에 의해 축구를 “즐기는”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선수야말로 승자의 정신을 가진 선수.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이라는 대약진을 해낸 비야레알, 그 배경에는 타키나르디와 같은 플레이뿐만이 아닌 정신적인 면에서도 팀에 커다란 공헌을 한 선수가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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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wcup/06germany/column/200606/at00009275.html

저자: 혼마 요시카

여러 부정 의혹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리피감독. 월드컵에서는 중압감을 떨쳐내고, 승승장구할 수 있을것인가?

월드컵보다 부정 의혹을 파고드는 기사가 대부분


 월드컵 개막까지 별로 안 남았다. 지금까지 개막하기 전에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근황이나 인터뷰 거기에 월드컵에서 대전하는 상대 팀의 분석 등이 미디어에서 크게 다루어지며 싫건 좋건 축제 분위기가 되어갔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대표 팀의 화제도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이 어떠한 결과를 남길까? 라는 순수하게 축구만을 분석하는 기사가 아니라 대대적인 부정 의혹을 포함한 보도가 되고 있다.


 예를 들면 부정 의혹의 주모자로 지목되는 전 유벤투스의 제너럴 매니저 루치아노 모지의 의향에 따라 대표 선수를 소집한 의심을 받고 있는 리피 감독과 이탈리아 국내에서 행해지는 시합을 대상으로 한 불법 도박에 관여한 의심을 받고 있는 GK 부폰이나 이아퀸타의 대표팀 사퇴를 주장하는 기사 등이다.


 도청된 대화의 내용을 읽는 한 리피는 모지의 희망대로 캄피오나트(리그 전)의 시합에 대비하여 유벤투스 소속의 칸나바로를 벨라루시와의 월드컵 예선 시합에 (부상당하지도 않았는데) 뛰지 않게 하거나, 델 피에로를 유벤투스의 일본 원정에 참가시키기 위하여, 같은 시기에 행해진 이탈리아 대표의 테스트 매치에는 선출하지 않거나하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행동도 보인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장 칸나바로는 모지의 지시로 인테르나치오날레의 회장 모라티니를 속이는 방식으로 유벤투스로 이적을 이루었지만 이 이적 방식을 언급하며 칸나바로에게 캡틴의 자격을 박탈하라고 주장하는 기사도 있다.


일본이라면 월드컵 참가 사퇴도 있을 수 있다.


 리피에 관해서는 모지의 아들이 운영하는 GEA 월드사와 사업상 연관이 있는 리피의 둘째아들의 존재가 대표팀 감독 리피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지적받고 있다. 예를 들면 리피의 둘째 아들이 직접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는 선수 중에 유벤투스의 MF인 브라지가 있다. 브라지의 전 매니저는 리피의 둘째 아들이 브라지를 빼 갈 때, '나와 계약하면 보다 쉽게 이탈리아 대표팀에 선출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꼬셨다고 말한다. 확실히 브라지가 가진 실력에 비하여 한 때 계속해서 대표팀에 선출된 적이 있었다.


 단 이번에 리피가 선출한 월드컵 대표 23명에 대해서는 리피가 주장하듯이 모지나 GEA월드사의 영향은 없었다고 믿어도 괜찮을 것이다. 이 23명 중에는 GEA 월드사와 계약하고 있는 선수(마테라치, 오도, 아멜리아)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선수는 이번 시즌 칸피오나트에서 대표팀에 선출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플레이를 보여주었기에 특별히 GEA 월드사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 중 마테라치는 이런 부정 의혹이 발각된 후 GEA 월드사와의 계약을 끝냈으며, 또 한 명 GEA 월드사의 계약 선수라고 생각되어지던 이탈리아 대표팀 부동의 레귤러인 네스타는, 의혹 발각 전에 계약을 끝냈다는 것을 발표했다.


 일본의 경우 무언가 안 좋은 사건이 일어나면 책임자가 정해진 듯이 사죄회견을 열며 출석자 일동이 텔레비전 카메라를 향해서 머리를 숙여 겉으로만 사과하는 모습은 너무도 뻔하고 농담처럼 느껴지며, 또한 고교야구 부원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 발각되었을 때처럼 야구 부원 전원이 책임을 지는 것도 조금은 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죄의 자세(그것이 본심이 아닌 겉모양이라고 하여도)를 전혀 보이는 것 없이 자신도 피해자라는 식의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변호만 해대는 사건 당사자들의 언동을 읽거나 보고 있으면 '조금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봐!'하고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서 화를 내고 싶어진다. 특히 모지나 지라우드(공모자로 보이는 전 유벤투스의 임원)는 적어도 유벤투스의 팬들에게만 이라도 공공의 장소에서 사죄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일본 대표팀의 감독이나 몇 명인가의 선수가 이탈리아 대표팀과 같은 스캔들에 휩싸인다고 하면 축구 협회는 어떤 처치를 취할까? 의혹 받고 있는 감독이나 선수를 대표팀에서 제외할 뿐만 아니라 일본 대표의 월드컵 불참을 결정할 지도 모르겠다.


월드컵에서는 부정 의혹이라는 중압과도 싸우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이번의 스캔들이 발각된 후에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하여 이탈리아 축구 협회 특별 커미셔너에 임명된 구이드 로시가 의혹의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을 처분하지 않고 월드컵에 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의혹만으로는 벌주지 않는다.]라는 생각과 리피가 이끄는 대표팀이 지금까지 멋진 내용의 게임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되어 진다.


 그러나 월드컵 개최 중에도 부정 의혹에 관하여 조사는 계속 진행되며 새로운 의혹이 나타날 것도 예상된다. 또한 월드컵 중에 행해지는 감독이나 선수에 대한 인터뷰에서는 전 세계의 저널리스트들에게서 시합에 관한 질문 이외에도 부정 의혹에 관한 질문도 나올 것이다. 지금까지도 정신면에서 약함을 보여주는 일이 있던 리피가, 그러한 상황에서 팀을 하나로 묶어서 승리해 나가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며, 만약 이탈리아가 결승까지 진출하여 우승한다고 하여도 의혹이 있는 감독과 선수가 있는 팀을 세계는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필자는 이번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와 함께 이탈리아 대표가 활약하길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유럽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에서 남미의 우승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하던 필자는 이탈리아 대표가 우승 후보의 필두라고 주변에 공언했으며 커다란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이 있는 감독과 선수가 있는 이탈리아로는 솔직히 응원하는 것조차 주저하게 되어버렸다. 이탈리아 국내에서도 의혹이 있는 감독이나 선수는 대표팀에서 제외해야만 한다는 의견도 있으며 그 중에는 (극히 소수지만) 이탈리아 대표는 월드컵 출장을 사퇴해야만 한다는 의견도 들린다.

 대회 불참은 극단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의혹이 있는 감독과 선수를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것만으로도 반성의 모습을 보이고, 깨끗한 이미지로 대회에 도전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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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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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Rolf Finders
일본어 번역 : Miyako Hirose

이 글은 일본 베이스볼 매거진社의 [스포츠 20세기 –사커 영웅들의 세기]의 글을 편집, 번역한 것입니다.
또 한 1999년에 쓰여진 글이기에, 그 후의 사건 등은 첨가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는 단순한 심벌을 훨씬 뛰어넘은 존재였다. 스파이크를 벗은 지 이미 몇 년이나 지났지만, 프랑코 바레시는 여전히 'AC 밀란의 혼()'인 것이다.

 () 카피탄(캡틴)은 여전히 롯소네로(이탈리아어로 적과 흑. 밀란의 애칭)와의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클럽의 암흑기에도 바레시는 결코 밀란을 배신하지 않았으며 결코 버리질 않았다.

 바레시에게는 좀 더 편한 길을 선택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편한 길을 선택하는 대신 스스로의 운명을 밀란과 함께 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은 도박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밀란을 도우며 살아가는 것을 하늘이 내려준 천직으로 선택한 것이다.

 

 바레시는 브레시아 교외의 작은 노동자의 마을 트라바리아토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부터 유니온 스포르티바 오라토리오에서 플레이하고 있던 그가 밀란과의 험난 모험을 시작한 것은 1974 7월이었다.


 14살의 여름, 그는 아탈란타의 입단테스트를 받았다. 신장 겨우 164Cm. 어디에 있어도 작은 몸집인 프랑키노는 말랐고 키가 작다는 이유로 불합격이 되었다. 그 후 한 살 위인 형 벳페(쥬세페의 약칭)가 있던 인테르나치오날레에 소개받았지만 여기서도 역시 거부 당했다. 그때 바레시에게 오라고 한 곳이 인테르나치오날레와 같이 밀라노를 본거지를 하고 있던 밀란이었다.


 지오반니 트라파토니와 지안니 리베라(Gianni Rivera)가 보는 앞에서 처음엔 풀백으로, 다음에는 리베로로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그 결과 150만 리라, 거기에 키가 1Cm 클 때마다 100만 리라를 추가하는 조건으로 밀란과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20살이 될 즈음에는 178Cm가 되어 있었다.

 

 바레시는 항상 풍부한 개성과 더불어 근성이 있는 남자였다. 그것은 인생을 통해서 그가 많은 장해를 뛰어 넘어 왔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어머니인 레지나를 잃는 비극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밀란에 입단한 후에도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이리하여 귀중한 조언자인 누나 루치아가 모친 대신 그를 키웠다.

 그는 밀란의 프리마베라(주니어 유스팀)에서 곧바로 두각을 나타내었기에 클럽은 월 2만 리라의 급료로 계약을 맺기로 결정한다. 인생의 분기점은 니리스 리드홀름의 감독 취임과 찾아 왔다. 78년 이 스웨덴 감독이 아직 18살도 안 된 바레시를 탑 팁에 데뷔시킨 것이다.


 바레시는 그라운드에 있어서의 자신감과 침착성을 주위에 강하게 각인시켰다. 그는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리베라와 같은 대선배이자 스타에게 볼을 건네라는 요구까지 할 정도였다.

 주목을 모은 그는 78-79시즌 밀란의 10번째 스쿠데토 주역의 하나가 된다.

 하지만 그 다음해에 그는 축구 인생에 있어서 최초의 실망을 맛보게 된다. 불법 도박 스캔들로 인하여 밀란이 세리에 B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1980년 바레시는 낮은 수준의 리그로 내려가지만 다음해 곧바로 팀을 세리에 A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밀란의 부진은 그렇게 간단히 끝나진 않았다.

 1982년 AC밀란은 세리에 A 잔류에 실패한다. 그 시점에서 다른 팀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바레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팬들은 팀과 고난을 함께 하려 한 그의 선택에 지금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80년대 초반 바레시는 또래 선수들 보다 빨리 캡틴이 되어 있었다. 클럽의 성적은 좋지 않았고 금고는 비어있었다. 선수 획득도 어떻게 절약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었다. 바레시에게는 삼프토리아에서 매력적인 오퍼가 있었으나, 거부했다. 인테르도 그를 원했지만, 이것도 거부했다.

 이러한 일들로 서포터는 더욱더 그를 진정한 우상으로 받들게 되었다. 팀을 위한 좋은 기회를 진중히 기다리고 있던 바레시의 판단은 옳았다. 모든 일을 큰 스케일로 생각하는 사업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팀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밀란의 만회극이 시작되었다.

 87, 이 신회장은 새로운 선수를 획득하여 팀을 강화하고 곧이어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명장 아리고 사키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처음에는 고참도 새로 온 선수들도 신감독의 생각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웠으나 좀 지나자 팀은 강해졌다.

 뤼트 휠리트와 마르코 판 바스턴이라는 네덜란드 콤비를 얻어 밀란은 다시 스쿠데토를 획득했다. 거기에 챔피언즈 컵과 토요타 컵(대륙간 컵)에서도 승리하여 힘들었던 모험의 여정을 끝냈던 것이다.

 

 같은 시기, 바레시는 아주리(대표의 애칭)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말수가 적긴 하였지만 한번 말한 것은 굉장히 명료했다.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콘택트면 충분했다. 소리치지 않아도 그의 존재감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동료들이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 주었다.

 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그라운드에 한 번도 서진 못했지만 이탈리아는 우승했으며,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패했다. 91년 밀란에 있어서의 [사키의 시대]는 끝났지만 바레시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파비오 카펠로 지휘하에서 존재감을 더해 갔다.

 4개의 스쿠데토를 획득하였고 챔피언즈 컵을 제패했으며 여전히 그라운드 위에서는 가장 뛰어난 선수로 계속 존재했다. 사키는 언제나 바레시를 대표팀에 있길 원했으나 바레시는 1994 9월 아주리의 셔츠를 벗었다.


 그 수개월 전의 여름, 그는 미국 월드컵 초반 노르웨이전에서 다친 무릎을 20일간에 걸쳐 회복하여 브라질과의 결승전에 겨우 출장할 수 있었다. 거기서 그는 최고의 활약을 보였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악몽을 보게 된다. 승부차기에서 통한의 킥 미스. 세계의 정점까지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다.

 그가 흘린 눈물은 세계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 후도 밀란에서 플레이를 계속한 바레시는 어느날 이렇게 말했다.

 "마크할 수 없을 듯한 선수가 나타났을 때 나는 은퇴할 것이다."

 97년 4월 6. 밀란은 스타디오 산시로에서 유벤투스에게 1-6으로 대패했다. 그 시합에서 그는 눈 앞을 화살과 같이 빨리 달리는 크리스챤 비에리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 그는 필시 커리어의 막을 내릴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리하여 바레시는 97 6월에 현역에서 은퇴를 표명한다. 클럽의 회장인 베를루스코니는 그가 달고 있던 [등번호 6]을 영구 결번으로 정했다. 그리고 뛰어났던 커리어의 포상으로 클럽 부회장에 임명했다.


Franco Baresi

1960 5 8. 북이탈리아의의 트라바리아토 태생. 근대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리베로.

14세때 클럽에 들어가서 37세에 스파이크를 벗을 때까지 커리어 전부를 AC밀란에서 보냈다. 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우승한 이탈리아의 일원으로 참가했지만 출장하지는 못했다. 세계적으로 평가를 높인 것은 80년대 후반으로 귀재(鬼才) 아리고 사키가 이끄는 밀란의 컨트롤 타워가 되어 수많은 타이틀을 손 안에 넣었다. 절묘한 수비 라인 제어와 탁월한 수싸움으로 상대 선수를 수비망에 걸리게 하는 디펜스는 예술의 영역. 개성파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리더십도 탁월했다. 발롱도르에 선출되지 못한 것은 운이 없었을 뿐이며 이탈리아 대표에서도 타이틀을 얻지 못했다. 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에서 커리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이면서도 승부차기에서 패퇴. 그런 만큼 [이탈리아의 바레시]보다는 [밀란의 바레시]라는 인상이 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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