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wcup/10southafrica/text/200809290006-spnavi_1.html
저자: 요코오 카나
■ [도메네크1호]와 [도메네크2호]
지금까지 수 많은 위기를 극복해 온 도메네크 감독(중앙).
파리 교외에 있는 거대 스타디움 스타드 드 프랑스, 통칭 생드니(Saint-Denis – 센생드니(Seine-Saint-Denis(wiki:fr)) 지역에 있기 때문 – 역자 주). 1998년 월드컵을 위해서 건설되었으며, 프랑스가 처음으로 세계의 정점에 선 장소이다. 결승전 직후에 프랑스 로커룸의 ‘거품 욕조(Jacuzzi)’에는 계속해서 샴페인이 부어졌다고 한다.
생드니에는 당연하게도 로커가 두 개있다. 홈팀 용과 원정팀 용이다. 여기서 문제! 10년 전, 주최국 프랑스가 환희에 흠뻑 빠졌던 로커는 어느 쪽이었을까? 답은 이외로 ‘원정팀 용’인 것이다. 결승에 앞서 행해진 추첨에 따라 프랑스가 ‘원정’, 브라질이 ‘홈’ 쪽의 로커를 사용한 것이다.
월드컵이 끝나자 프랑스 대표팀은 다시 ‘홈’의 로커를 사용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유로2000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2002년 월드컵에서 조 예선 탈락을 맛보았으며, 유로2004에서는 8강에서 모습을 감춘 프랑스. 그러는 동안 계속 생드니 원정팀 용 로커는 상대팀의 것이었다. 그러나 2004년 이후 프랑스 대표팀은 다시 재수가 좋은 ‘원정팀 용’을 사용하게 된다. 월드컵 우승에서 정확히 6년이 지난 2004년 7월 12일,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로커를 바꿉시다’하고 제안한 인물이야말로 레몽 도메네크 현 프랑스 대표팀 감독인 것이다.
처음 지휘를 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시합에서는 실로 5명이라는 신선한 면면들을 단번에 필드로 보내었고, 그래도 젊은 팀으로의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대표팀 은퇴를 결심하고 있던 지단, 튀랑, 마켈렐레를 다시 소집하는 한편, 남들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는 발언으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켜 온 도메네크 감독. ‘점성술로 출전멤버를 정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어떤지는 둘째 치더라도, 로커의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이 자그마한 징크스도 소중히 하는 타입인 것만은 사실이다.
2년 전, 대표팀 출장 100시합째를 맞이하려 하고 있던 MF 비에라가 [레퀴프]지의 기사에서 도메네크 감독의 성격을 묘사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마디로는 정리할 수 없었는지, 비에라는 지휘관을 무려 ‘분리’시켰다.
그가 말하길, [도메네크1호]는 ‘조금도 대화를 하려는 마음이 없고, 무엇이든 바꾸려고 하여 프랑스의 주력선수를 배제하려는 사람’. 그리고 [도메네크2호]는 ‘열린 마음을 가진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즉 MF 피레(Pir나 지윌리, 최근의 일로 말하면 FW 트레제게를 완고히 거부해 온 것이 [1호]. 남들이 의문시하여도 나이 많은 베테랑을 꿋꿋이 신뢰하고, 중요한 2010 월드컵 예선 첫 시합인 오스트리아와의 시합에서 끔찍한 실수를 범한 DF 멕세를 감싼 것이 [2호]라는 것이 된다.
과연 주장! 감독을 잘 파악하고 있는 비에라의 혜안에는 감탄할 따름이다.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기에 혼란스러운 것이다. 처음부터 두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저 이해하기 어려운 언동도 납득이 간다…… 라면서 빈정거리는 세간의 말들을 무시하며, 도메네크 감독은 몇 번의 위기를 극복해 온 것이다.
■ 도메네크 감독 유임의 미스터리
유로2008에서는 국민의 기대를 크게 배신한 프랑스였지만, 그 후 대다수 국민들의 희망과는달리 도메네크 감독은 유임이 되었다. ‘어차피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던 거 아냐?’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반쯤 어이를 상실한 상태. 확실히 이 결정은 미스터리투성이였다. 예를 들면 자신이 리옹의 감독이었을 시에는 도메네크 감독과 견원지간이었던 울리에 씨(氏)가 갑자기 도메네크 유임에 지지를 한 것.
도메네크 vs. 울리에.
이들은 대표팀 선수 소집에 관한 말다툼뿐만 아니라, 프랑스 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자리를 놓고 싸운 사이이기도 하다. 단지 에스칼레트(Jean-Pierre Escalettes) 협회장이 “기술위원장과 대표팀 감독은 절대로 겸임시키지 않겠다”고 허용치 않았기 때문에, 때마침(?) 2006-07시즌을 끝으로 리옹 감독을 사임한 울리에 씨(氏)가 승자가 된 것이다. 어디까지나 예를 든 이야기지만, ‘야심만만한 도메네크 감독을 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면, 장래 반드시내 앞길의 걸림돌이 된다’고 울리에가 생각한 것이 아닐지…
그런 못된 의심은 둘째치고, 프랑스 축구협회도 그냥 유임시키지만은 않았다. 도메네크 유임에는 몇 개인가 조건이 붙었다.
감독은 시합에만 집중할 수 있게, 시합운영 등 세밀한 부분을 담당하는 사무국장을 둘 것.
감독에게만 권한이 집중되지 않게 자문기관 [클럽 프랑스 2010]을 설치할 것.
보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공격적인 축구를 관객에게 제공할 것.
미디어 등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소중히 할 것. 또한 여기에는 ‘프랑스 대표팀이 국민들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서수를 포함한 전원이 기자회견이나 국가제창 시에는 절도 있는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것도 포함된다.
이런 것 하나하나를 명문화시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프랑스 대표팀의 이미지는 땅에 떨어져있는 것이다.
이런 것 전부를 도메네크 감독은 받아들여, ‘프랑스는 변한다’고 약속했다. 다만 [클럽 프랑스 2010]의 시동을 제안한 것은 도메네크 감독 자신이며, ‘수비적인 감독’이라고 비판당하여도 ‘내가? 언제부터?’하고 자신은 공격적인 감독으로 절대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한 적이 없었다고 하기에, 그렇게 어려운 합의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스칼레트 회장이 계속 부정해 왔지만, [2010년 월드컵 유럽예선 첫 3시합에서 최저라도 승점 5점을 얻지 못하면 유임은 백지]라는 ‘이면조건’의 중압은 역시 컸다. 9월6일에 행해진 오스트리아와의 첫 시합을 1-3으로 패한 후4일 뒤에 맞이하게 된 생드니에서의 두 번째 시합 -세르비아와의 시합 결과에 따라서는 도메네크 감독의 목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도메네크 관둬라!”라는 구호가 외쳐졌지만……
세르비아전에서 1골을 넣은 앙리(오른쪽.) 처음 선발된 구어쿠프(왼쪽)도 존재감을 발휘.
세르비아와의 시합에 모인 관객은 5만 명을 밑돌아, 생드니 사상 2번째로 적은 입장객수가 되었다. 국가제창에서는 혼자서 두 사람 몫의 목소리로 불렀던 튀랑이 없어 아쉬웠다고는 하여도, 선수들은 확실히 입을 벌리고 불렀었다. 조건은 확실히 지켜지고 있는 듯했다.
왼쪽 SB인 클리쉬(GaClichy), 공격형 MF 구어쿠프(Yoann Gourcuff)라는 대표팀 첫 선발 콤비를 데리고 시작한 프랑스는 초반 조금 버벅댔다. 세르비아가 MF인 스탄코비치가 시작하자마자 4분만에 부상으로 교체라는 불운을 맞이하기 했지만, 프랑스 골문 앞에서의 스피드로 프랑스를 압도해 온 것이다. 하지만 수비진은 침착하게 대응하여 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은 모르겠지만, 견고한 수비가 자랑인 프랑스이니만큼 수비는 [최저조건]. 부여된 조건은 [공격적인 축구]인 것이다. 하지만 15분을 지나 MF 구어쿠프가 세르비아의 골문 앞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자 양 측면 SB가 적진 깊숙이 파고들 수 있게 되었다. 흐름은 차츰 프랑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스타드 렌 FC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을 즈음부터, 장래가 유망한 선수로 명성 높았던 구어쿠프(부친인 크리스티앙 구어쿠프(Christian Gourcuff)는 현 FC 로리앙 감독. 현역시대에는 22살에 선수 겸 감독으로 플레이 했다)의 최고무기는 빠른 판단력. 볼을 가지고 있어야 할 때와 패스나 드리블 해야 할 때를 굉장히 잘 판단하며, 순간적인 판단으로 패스를 돌려서 그로 인해 생긴 자그마한 틈을 노린다. 볼을 가진 채 거침없이 파고드는 아스날의 MF 나스리가 조르카에프(Youri Djorkaeff)를 연상시키는 것에 비해, 구어쿠프는 보다 지단에 가까운 타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어쿠프에 질 수 없다고 분투한 세르비아 대표팀의 GK 스토이코비치의 활약덕분에 전반전은 0-0으로 종료. “낭트는 좋은 GK를 데리고 있었었네……제길……”하는 서포터들이 꿍시렁을 들었다. 스토이코비치는 2년 전 낭트에 있었었지만, 불과 6개월 만에 이적. 같은 해 낭트는 2부로 강등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53분. 결국 스토이코비치의 벽이 무너졌다.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파고든 고부가 앙리에게 숏패스. 앙리는 이것을 오른쪽 구석으로 차 넣었다.
그런데 이때 1점 리드인 상황에서 갑자기 장내에 엄청난 크기의 “도메네크 관둬라!”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서포터들이 걱정한 것은 2연패가 아니라, 이 승리로 도메네크가 꿈꾸는 생명연장이 실현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귀를 막고 싶을 정도의 [관둬라]구호를 멈추게 한 것은, 그 직후에 골을 넣은 아넬카였다. 63분 아넬카는 구어쿠프에게서 스루패스를 받아 DF 비디치와 크르스타이치(Mladen Krstajić)를 제치고 슛. 기쁨을 우선시한 서포터들은 우선 아넬카를 축복하였고, 그 후에 조금 외쳐진 [관둬라]라는 구호는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던 것이다.
기세가 오른 프랑스는 계속해서 2번의 기회를 얻지만, 앙리의 앞에는 스토이코비치가 있었으며, 구어쿠프의 슛은 크로스바를 직격. 반대로 75분에는 코너킥 상황에서 DF 이바노비치에게 골을 허용하지만, 86분 즈음 그제서야 시작된 [알레 르 블뢰(프랑스여 힘내라)]의 성원에 힘입어, 프랑스는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이다.(경기결과 하이라이트:youtube)
■ 다시 붙은 도메네크의 목
삼색기가 휘날리는 생드니
변함없이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실점을 하기는 했지만, 이 날 프랑스가 보여준 플레이는 축구협회가 원하는 [공격적인 축구]의 기준에 도달했을 것이다. 승리에 크게 공헌한 구어쿠프와 클리쉬를 기용한 도메네크 감독의 프랑스가 변하려 하고 있다는 것은 관객석에서도 느낄 수 있었을 터이다.
도메네크 감독도 기자회견에서 우선 이 점을 강조했다.
“수많은 프랑스 국기가 휘날리더군. 서포터들의 신뢰를 되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취점 뒤, 어째서 선수들은 당신에게 와서 함께 기뻐하려 하지 않았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자, 도메네크 감독은 급변하여 얼굴을 굳히며 이렇게 말을 내뱉었다.
“세르비아어는 모릅니다”
확실히 외국인 기자에게서의 질문이기는 했지만, 알아듣기 쉬운 프랑스어였다. 기자들은 일제히 항의의 야유를 보냈지만, 도메네크 감독은 “다음 질문은?”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의 지휘가 빛을 발했더군요”라는 질문에는 또다시 급변하여 “그거 조금 큰 소리로 다시 한번 말해주지 않을래요?”하고 미소를 띄우며 재촉. [커뮤니케이션] 쪽은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다 – 라기보다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인상이었다.
어쨌든 잘릴 뻔한 도메네크의 목은 그럭저럭 이어졌다. 스타트에는 실패했지만 세르비아와의 시합에서 긍정적인 승리를 거둔 덕분에 해임은 조금 멀어진 듯하다. 다음인 루마니아와의 시합에서 2연승을 한다면 [승점 5점]이라는 할당량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쉬운 시합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루마니아도 첫 시합을 리투아니아 상대로 패하여, 그 다음 페로 제도와의 시합을 1-0으로 간신히 끝내며 크게 고전하고 있는 중. 루마니아도 필사적인 것이다.
도메네크 감독은 다시 한번 [변한 프랑스]가 결코 일시적인 행운이 아님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고로 똑같이 자리가 위험한 루마니아의 피트루카 감독은 “프랑스에게 아무리 0-10으로 패하더라도 나는 사임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