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ro/08/text/200807010003-spnavi.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 [투우사]가 된 에스파냐
아라고네스 감독(중앙)을 둘러싸고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에스파냐 대표팀
에스파냐 대표팀은 유로 2008에서 44년 만의 우승을 장식하여 행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모순이라고도 여겨지겠지만 이번 대회 최고령 베테랑 감독이자 공로자인 루이스 아라고네스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고 있다. RFEF(Real Federación Española de Fútbol, 에스파냐 축구 협회)는 감독의 능력은 높게 평가하지만 대회 시작 전부터 연장 계약은 맺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본인에게 전달하였다고 한다. 후임에는 2009년 컨페더레이션스 컵과 이어지는 2010년의 월드컵을 대비하여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인 ‘비센테 델 보스케’의 취임이 이미 정해져 있다. 감독 교체는 피할 수 없겠지만 2번째 유럽 챔피언이 된 것으로 인해 에스파냐의 풋볼 역사는 새로운 스테이지로 돌입하였다.처음으로 정상에 섰던 것은 1964년. 그러나 20세기 당시의 풋볼은 현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스포츠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럴 정도로 요즘의 풋볼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에스파냐는 챔피언의 자리를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명백히 이번 대회 최고의 팀이기도 했다. 8강 이탈리아와의 시합에서 승부차기로 승리한 것을 제외하면, [완전승리]로 정상에 올라섰다. 유로 예선, 친선시합 등도 포함,세계의 쟁쟁한 나라들을 상대로, 결승에서 독일까지 실로 22전 무패를 이어온 것이다. 결과뿐만이 아닌, 그 플레이 스타일도 개성적이다. 다이렉트 패스를 다용하며, 계속해서 포지션 체인지를 거듭하면서 중반에서 게임을 조립하는 매혹적인 풋볼. 선수들의 자질덕분인 부분도 있지만, 그 시원시원한 플레이는 칭찬보다는 악담을 퍼붓는 것을 좋아하는 비평가들까지 다물게 하였다. 페루에서 행해진 2004년 코파 아메리카(남미선수권)에서, 한 때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끈 것 1으로 유명한 감독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César Luis Menotti)’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바르셀로나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감독을 맡은 적도 있었기에 에스파냐의 풋볼에 정통하다 할 수 있다. 메노티는 이때 아라고네스가 대표팀 감독에 취임함에 있어 “우선 소가 되고 싶은지, 투우사가 되고 싶은지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론을 펼쳤다. 즉 독자적인 전술을 추구한다고 하여도, [라 푸리아 로하(La Furia Roja) – 붉은 분노]라 일컬어지는 에스파냐 대표의 전통적인 시합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도, 세계적인 무대에서 결과를 남기기 위해서는 탐욕스러움과 불굴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메노티의 의견이 에스파냐 신문에도 게재되자, 아라고네스는 마드리드의 스포츠 신물을 통해서 “배신당한 기분이다”고 반발했다. 필시 이미 감독의 머리 속에는 메노티가 주장하고 있는 듯한 에스파냐 대표팀의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우리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조 예선 패퇴라는 실패로 끝난 2004년 포르투갈 대회에서 4년 후. 에스파냐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공동 개최된 유로에서 드디어 우승이라는 환희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 해외파와 경험 풍부한 젊은 선수의 존재
결승전에서 골을 넣은 F. 토레스 등, 해외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들의 경험도 컸다
출신지가 마드리드이기에 [오르탈레사(Hortaleza)의 현자]라는 별명을 가진 아라고네스는, 에스파냐 대표팀에 무엇이 필요한 지를 이해라고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은 물론, 지금까지 몇 번이나 [8강의 벽]에 막혀온 에스파냐. 또다시 역사를 반복시킬 수 없다며, 감독은 조금씩이나마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 과정에서 여러가지를 고려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그 가장 상징적인 예가 에스파냐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라울 곤잘레스를 대표팀 멤버에서 제외시킨 결단이었다. 이는 즉 구티, 모리엔테스, 엘게라, 미첼 살가도 등, 라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동료들도 소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랜 기간, 에스파냐 대표팀을 지탱해온 대들보였다. 더구나 라울은 유로 본선을 앞두고 예전의 광명을 되찾았으며 리가 에스파뇰라의 득점 랭킹 상위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라울을 소집하지 않는 아라고네스에 대해 미디어에서도, 세간에서도 거센 비판이 일었다. 거기에 더해 화를 잘 내는 아라고네스의 성격도 비판에 박차를 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휘관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고분고분한’ 선수들을 모아, 특권 계급도 없이 팀을 단결심 있는 덩어리로 만들어 낸 것이다. 예전에 라울이 두르고 있던 캡틴 마크는 세계에서도 유수의 GK 이케르 카시야스에게 맡겨져 결과적으로 그것이 맞아 들었다. 그러나 에스파냐 약진의 요인을 생각할 때에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선수들의 경험치 향상이다. 에스파냐 풋볼은 세계에서 손 꼽히는 리그이며, 선수를 외국에 수출하게도 되었다. 특히 세계 최고라 일컬어지는 잉글랜드 프레미어 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선수가 늘어난 것은,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평가되어 왔던 에스파냐 대표팀에게 있어서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 세스크(아스날) 등 [잉글랜드 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그 외에도 레이나,아르벨로아, 사비 알론소(전부 리버풀)등도 팀을 지탱했다. 거기에 1999년 세계 청소년대회(현 U-20월드컵) 우승 멤버인 사비,마르체나, 카프데빌라, 2003년 17세 이하 세계 청소년 선수권(현 U-17월드컵)의 결승전 멤버인 세스크, 실바 등, 젊었을 때부터 국제 경험을 쌓은 선수가 많은 것도 놓칠 수 없다.
■ 트라우마에서의 해방
멋진 풋볼로 우승한 에스파냐. '8강의 벽'이라는 트라우마도 극복
이번 대회에서 가장 에스파냐를 힘들게 한 것은 8강 이탈리아였다. 0-0으로 90분을 끝내고, 연장전 후 승부차기 끝에 4강 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외의 5시합에서는 챔피언다운 풋볼로 내용과 결과를 동시에 보여 주었다. 에스파냐는 결코 볼 점유율에서 상대를 압도한 것은 아니지만, 효과적으로 볼을 간수하고 빠른 패스 돌리기로 공격을 조립했다. 양 날개인 ‘세르히오 라모스’와 카프데빌라, 중반의 이니에스타, 사비, 마르코스 세나, 실바 그리고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움직임으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든 2톱의 ‘비야’와 ‘페르난도 토레스’. 그들이 포지션을 체인지하며 공격에 참가하는 - 보고 있어 즐거운 풋볼이 실현된 것이다. 아라고네스는 이번 대회의 기본 포메이션을 4-4-2로 결정하였고, 그때까지의 4-1-4-1은 옵션으로만 사용하였다. 그러나 1톱에[콰트로 후고네스(Quatro Jugones, 4명의 창조자)]라 불리는 사비, 세스크, 이니에스타, 실바를 두 번째 열에 세우는 포진도 비야의 부상이라는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여도, 4강과 결승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결승에서 에스파냐는 첫 10분간, 본디의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슈바인슈타이거, 발락, 포돌스키, 클로제 등 독일의 파괴력 있는 공격진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 선수들의 플레이는 경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까지의 에스파냐가 아니었다.십 수분간 [공부]를 하여, 에스파냐는 서서히 자신들의 플레이를 되찾은 것이다. 그리고 전반 33분, 페르난도 토레스의 멋진 골로 인한 1점으로 승자의 칭호를 손에 넣었다. 멋진 풋볼로 승리를 거머쥔 에스파냐는, 이로 인해 국제대회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깼다. 델 보스케와 함께 걸어갈 신생 에스파냐는 [8강 트라우마]에 골치를 썩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대표팀으로 인정받게 된 에스파냐는 적과 황의 유니폼을 입는 것에 대한 약간의 주저도, 앞으로는 없을 것임에 틀림 없다. 에스파냐에서는 지금까지 풋볼 대표팀이 정상의 무대에 서질 못했다. 농구 대표팀이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 비원의 첫 우승을 이룩하였고, 테니스 플레이어인 ‘라파엘 나달’이나 F1 드라이버인 ‘페르난도 알론소’는 세계라는 무대에서 에스파냐의 이름을 드높였다. 그러나 드디어 풋볼에도 그 때가 온 것이다. 그냥 유로에서 우승한 것이 아니다. 독자적인 스타일, 개성을 발휘하며 유럽의 왕자로 빛난 것이다.
■ 수준 높았던 이번 대회
세계 최고의 GK 중 하나인 카시야스(오른쪽 끝)의 철벽수비도 빛났다.
이번 유로는 많은 것을 시사한 대회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퀄리티 즉 질의 변화이다. 저번 포르투갈 대회에서는 그리스의 첫 우승이라는 놀라움으로 막을 내렸지만, 시합 수준이 결코 높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4년 후인 이번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는 전혀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뜨거운 열정과 테크닉이 만발하였고, 고도의 전술로 덧칠해진 시합을 볼 수 있었으며, 몇 개인가의 서프라이즈도 태어났다. 마르코 판 바스턴이 이끈 네덜란드의 [혁명적 풋볼]이 가져다 준 임팩트는 누구나가 찬동할 것이다. 엥헬라르, 판 데르 파르트, 판 페르시, 스네이더르, 카윗 등 젊은 재능들이 펼쳤던 스피드감 넘치는 카운터 공격에 이탈리아, 프랑스도 어찌 해보지 못하고 완패했다. 그 네덜란드를 8강에서 물리친 러시아도 이번 대회 성장을 이룩한 팀 중 하나이다. 전략가 거스 히딩크가 이끈 젊은 러시아의 플레이는 경제적으로도 비약적인 도약을 거듭하고 있는 러시아의 파워를 그대로 보여준 느낌이 들었다. 팀의 베스트 플레이어 아르샤빈이라는 뉴 히어로도 탄생하였다. 또한 스트라이커인 파블류첸코, 왼쪽 SB인 지르코프(원래는 MF)도 장래성 넘치는 선수이다. 결승에서 패한 독일에는서 ‘람’과 ‘슈바이슈타이거’의 성장이 눈을 크게 치켜 뜨게 만들었다.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발락’의 존재감, 키잡이 역인 ‘히츨슈페르거’라는 발견도 있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예상보다 빨랐던 포르투갈의 패퇴일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데코’ 등의 재능들과, ‘페페’나 ‘히카르두 카르발류’ 등의 수비도 단단한 포르투갈은 우승 후보 중 하나라고 평가되었었다. 조 예선은 아무 탈 없이 돌파했지만, 독일 앞에 가지고 있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8강에서 모습을 감췄다. 체코에는 스타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많지는 않았지만 조직적인 팀이었다. 하지만 터키에 역전패를 당하여 조 예선을 돌파하지 못했다. 터키는 그야말로 전 대회의 그리스와 같은 존재였다. 기적적인 역전극으로 차례차례로 승리하여 상대를 공포에 빠뜨렸다. 하지만 4강에서는 경고 누적이나 부상으로 결장하는 선수가 속출하여, 독일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단지 그리스와 다른 점은 그들이 다크호스이기는 했지만 실력도 충분히 겸비한 팀이라는 것이다. ‘니하트’나 ‘하미트 알틴톱’, ‘엠레’, ‘메메트 토팔’ 그리고 특히 ‘아르다 투란’은 큰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에스파냐의 공로자를 거론해 두고 싶다. 2톱인 ‘비야’(4골로 이번 대회 득점왕), ‘토레스’, 중반의 ‘사비’(최우수 선수에 빛난다), ‘이니에스타’, ‘세나’, 반석인 디펜스 라인, 그리고 차원이 다른 GK ‘카시야스’. 이탈리아의 ‘부폰’과 함께 세계 제일의 수호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1978년 자국 개최 월드컵에서 우승.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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