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06'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06.10.16 마라도나 인터뷰 by 渤海之狼
  2. 2006.08.16 타키나르디 인터뷰 by 渤海之狼
  3. 2006.06.18 프랑스는 기사회생 할 것인가!? by 渤海之狼
  4. 2006.06.15 6월 12일 호주 vs 일본 by 渤海之狼
  5. 2006.06.15 SCG(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감독 페트코비치 인터뷰 by 渤海之狼

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607/other/column/200610/at00010851.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 마라도나와의 “불확실한” 약속


 디에고 마라도나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예전의 스타들과의 연습시합에 참가하기 위해서 코펜하겐으로 떠나기 몇 일전. 그는 여러 가지를 말해주었다. 축구에 대해서는 물론, 사생활, 미래,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서. 그리고 생사를 넘나든 그 때의 일을…….

 8개의 조명등의 강한 빛이 인조잔디의 조그만 스타디움을 비추고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에 있는 어느 집의 그라운드에는 전 아르헨티나 대표인 알레한드로가 앉아있었다.

 겨울치고는 비교적 따스함을 느껴지는 낮/ 우리는 이젠 45살이 된 디에고 마라도나를 몇 시간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약속대로 흔쾌히 취재에 응해주었다.


 알레한드로는 한 때 대표팀에서 함께 플레이한 경험도 있는 마라도나의 동료로, 이날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코펜하겐에서의 시합을 향해서 연습을 함께 하려던 차였다.

 우리들은 오랜 시간 기다렸다. 마라도나는 잘 알려진 대로 불안정하고, '정신분열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긍정적인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빠지거나 한다. 모순이라는 것은 신경도 안 쓰는 것이다. 그런 면이 있는 만큼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런 보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 한해서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확실한 징조가 있었다. 왜냐면 우리들 기자들이 알레한드로의 집으로 들어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벽에 기대면서 우리는 '축구의 신'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축구 사상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다]

[1986년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시합에서 최고의 골을 넣었다]

[그 시합에선 ‘신의 손’ 골도 넣었지]


■ ‘신’은 ‘스캔들 투성이의 빅 스타’


 그 ‘신’은 다른 이름으로 ‘스캔들 투성이의 빅 스타’라고도 한다. 몇 년 동안이나 마약에 중독되었으며, 2004년에는 심장 질환 등을 일으켜 죽을 수도 있었다. 당시 체중 130Kg은 165Cm 정도의 마라도나에겐 적어도 50Kg 체중 과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나 상황은 많이 변한 듯 하다. 2005년 8월 마라도나는 자신이 MC를 하는 [10번의 밤]이라는 버라이어티 방송을 시작하였고 곧이어 이 방송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텔레비전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자신도 사랑받았던 지역 클럽 보카 주니어스의 시합을 자주 관전. 차츰 체중도 줄었고 마약도 끊었다.


 그래도 마라도나는 여전히 유명했으며, 변덕스러운 것은 변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마라도나는?


 우리는 30분정도 더 기다렸다. 당연하겠지만 마라도나를 위해서. 마라도나는 누구를 기다리거나 하지 않는다.

 시계가 밤 9시를 가리킬 즈음 드디어 그가 왔다. 나이키의 스포츠 웨어를 몸에 걸치고 미소를 지으며 이 쪽으로 왔다. 손에 들고 있던 시거는 거의 다 피우고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 마라도나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는 스타디움의 뒷편에 있는 하얀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자에 그를 앉혔다. 한때 게리 리네커와 BBC가 인터뷰 하나를 찍기 위해서 2만 유로(약 2400만원)을 냈던 그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마라도나와의 인터뷰정도라면 그것이 상식인 것이다. 한때 덴마크의 [유란즈 보스텐]지(紙)가 단지 20분간의 인터뷰에 3~4만 달러(약 2900~3800만원)을 요구받아 포기했다고도 하며, 일본의 방송국은 1시간 10만 유로(약 1억 2000만원)라고 하여 고민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번엔 덴마크 방문을 기회로 [아르헨티나의 마법사]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인터뷰에 응해준 것이다.


 마라도나는 웃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에 귀에는 다이아몬드의 귀걸이 두개. 반지는 끼고 있지 않았고 트레이드마크인 두 개의 롤렉스시계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마라도나가 차고 있던 것은 스포츠 시계였다. 검은 머리는 흩어져 있었고 왼손에 가지고 있던 꺼지려는 하바나 시거의 연기가 공중에 떠있었다. 오른손에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 그리고 작은 몸의 '위대한 아르헨티나 선수'는 말하기 시작했다.


■ 테크닉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


- 디에고, 우선 덴마크에 대해서 아는 것을 말해주세요.


공항이지(웃음). 실은 안타깝게도 아직 덴마크에는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덴마크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말이 들었다. 그렇기에 실제로 가서 그 나라나 풍습을 알고 싶다. 거기에 덴마크 여성들은 미인이라고 하더군. 나는 지금 독신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문제없잖아(웃음)


- 그 쪽에서는 [쇼우 볼(show ball인 듯하다)](아크로바틱한 7인제 축구)의 연습 시합을 행하게 되었습니다만 관객들에게 어떤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습니까?


즐기면서 플레이 하는 것이나 아르헨티나 축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멋진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그다지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육체적인 면에 너무 앞세운 게임이 많아서 매력적인 플레이나 기교 있는 테크닉을 보기 힘들었다. 호나우지뉴의 플레이는 어처구니없었으며 메시도 존재감이 없었다.

전 세계의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좀 더 다른 것을 보는 것을 바랄 것이다. 나는 테크닉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으며 그것을 보증하겠다. 나 자신, 플레이 할 때는 즐기고 싶으니까.


- 당신의 생각에 따른 [쇼우 볼]이 일부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우선 생각한 것은 좀 더 다이내믹한 축구를 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볼이 필드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 벽을 사용하고 있다. 운이 좋아서 이 [쇼우 볼]은 여러 나라에 받아들여졌다. 거기에 나이 때문에 은퇴한 선수들도 참가할 수 있었기에 축구로 향한 정열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도 좋다.


- FIFA가 [쇼우 볼]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입니까?


그래, 이야기는 있었다.


■ 일본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대회는 잊을 수 없는 추억


- 독일 월드컵에서 베스트 플레이어는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써는 그다지 말할 만한 것이 없군. 2002년 월드컵의 베스트 플레이어를 묻는다면 결승에서 미스는 있었지만 올리버 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칸나바로, 마테라치(둘 다 이탈리아). 그리고 아얄라(아르헨티나)를 꼽아야 한다. (수비적인 선수들뿐으로) 그다지 칭송할 만하지는 않지만.


- [미래의 마라도나]는 발견하셨습니까?


아니……. 없었다. 우선 왼발을 쓰는 선수가 그다지 없었으니까(웃음). 그렇지만 위대한 선수는 있다. 월드컵에서 호나우지뉴의 플레이는 별로였지만 그는 필드 위에서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는 희소가치가 있는 선수다.


- 지네딘 지단이 이번 대회의 베스트 플레이어가 아닐까요?


아니,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플레이어로써 말년이었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번 대회의 베스트 플레이어는 칸나바로나 그로소, 아얄라라는 디펜더다.


- 당신 자신에 대해서 말하면 1986년 월드컵 멕시코 대회 잉글랜드와의 시합에서의 골은 세계의 역사를 바꿀만한 굉장한 골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물론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면 펠레가 화낼 테지만.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골을 계속 꿈꿔왔다. 그것이 현실이 되어 이번엔 꿈에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실제로 꿈에서 깨는 일 없이 잉글랜드를 상대로 2점째를 넣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모두 그 골을 최고의 골로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고맙다고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도 똑같이 말해 주었다.


- 일본에서는 1979년 세계 청소년대회(현 U-20 월드컵)에서의 당신의 플레이가 강렬했다고 하더군요.


그 때의 대표팀은 굉장했다. 하고자 하는 의욕도 넘쳐났으며 정확성이나 스피드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의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서 우리들의 시합을 텔레비전으로 보아 준 것이다. 그 때의 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며 모두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 대표팀 감독 취임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렵다.


- 앞으로의 일입니다만 베켄바우어처럼 양복과 넥타이의 모습이 된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한 생활에는 익숙하지 않다. FIFA에 들어가려는 예전의 축구선수에 한해서 선수를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 거기에 축구가 뭔지를 모르는 녀석이 이 세계를 이끈 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아벨란제는 20년 이상에 걸쳐 FIFA 회장을 맡았지만 그는 원래 수영선수였다. 현 회장인 블래터는 축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돈벌이뿐이다. 정말로 불유쾌하다.......뭐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으며 나는 언제라도 선수 측에 서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 그럼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훌리오 그란도나(20여년에 걸쳐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동시에 FIFA 부회장)의 시대에는 출입금지니까. 나는 단지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가 25년 전과 같은 듯한 상황과 대우를 강요받고 있는 것에 관해서 정정당당히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어쨌든 그란도나가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있을 장소가 없다고 생각한다.


- 친구인 피델 카스트로 의장과는 그가 수술을 받은 후에도 연락을 하셨습니까?


몇 번인가는 연락했다. 12월 2일 혁명군의 날에는 축하하러 쿠바에 간다고 했다.


- 그의 용태는 어떤가요?


굉장히 좋다.


- 당신이 카스트로 의장이나 체 게바라를 숭배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요?


나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부시는 용서할 수 없지만, 피델(카스트로)는 사람들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틀렸다고 한다면 나도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여도 나는 피델을 지지한다. 그리고 체(의사이며, 혁명의 영웅. 쿠바혁명에서는 카스트로와 함께 싸웠다)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고의 남자다. 현재에서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도 피델과 닮았다.


■ 신이 주신 축구는 위대하다.


- 당신의 건강 상태는 어떠십니까?


최고다.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며 딸인 지아니나와 달마와도 새로운 부녀관계를 쌓고 있다. 거기에 지금은 축구공을 찰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볼과 함께 태어나서 함께 죽을 거라고 모두들 그러는데,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 그럼 이젠 건강하시군요.


그래. 매일 딸들을 생각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멋진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또 다시 축구공을 찰 수 있게 된 것이 정말로 기쁘다. 신이 나에게 주신 축구는 위대하다.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다. 축구는 왕이다. 우리들은 매일 신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당신의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돌아 본다면?


좋은 때도 있었고 나쁜 때도 있었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나는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딸들의 애정을 잃었던 적이 있기에 몇 가지 고치고 싶은 부분도 있다. 나는 바보 같은 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실패는 내 자신 탓이며 그것은 지금까지 승리해서 쟁취한 것에 관해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 그 때(2004년)의 죽음은 어느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던 것일까요?


거의 죽었었다. 하지만 내 막내딸이 죽음의 심연에서 건져 올려 주었다. 틀림없이 신은 나를 아직 하늘로 데려가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 앞으로도 계속 축구를 하고 싶으십니까?


아니, 언젠가는 관둘 거다. 80세나 그 근처가 된다면(웃음).


어떤 사람이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렸다. 눈 깜짝할 정도로 짧은 듯한 인터뷰 시간이었다. 듣고 싶은 것이 굉장히 많았지만, 이것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마라도나는 감사의 말을 우리들에게 전하며, “지금부터는 축구공과 놀 시간이다”라고 말하곤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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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유벤투스에서 비야레알로 이적하여, 챔피언스 리그 4강에 공헌한 타키나르디>

 

●● 작년 시즌 개막하기 전에 유벤투스에서 비야레알로 이적해 온 알렉시오 타키나르디. 1994년 아탈란타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한 후로는 11년간 재적하면서 획득한 수많은 타이틀(리그 우승 5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토요타 컵 우승 1회)은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것이다.

타 키나르디는 유벤투스 시대에, 이탈리아 대표를 월드컵 독일 대회에서 우승으로 이끈 리피감독이나 현 레알 마드리드의 카펠로감독 아래에서 승자의 정신을 배워 온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나는 공격적인 선수]라고 말하는 것처럼 필드 밖에서 말하는 말도 때로는 직접적이며 공격적으로 들린다. 그런 타키나르디에게 비야레알에서 월드컵, 이탈리아 축구 부정 사건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들어 보았다●●


<올해 많은 보강을 한 비야레알이지만, 승자의 정신을 갖고 있는 타키나르디는 귀중한 존재이다>
 
 

이탈리아와 에스파냐를 비교한다면


-작년 비야레알로 이적해 온 이유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유 벤투스에서의 마지막 시즌(2004-05)은 카펠로 감독으로 바뀐 것도 있어서, 출장기회가 많지 않았다. 계속해서 시합에 나가고 싶었기에, 비야레알에서의 오퍼를 듣고, 이탈리아에서 플레이 경험이 있던 호세 마리나 소린의 이야기도 참고하면서,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하게 되어있던 비야레알에 이적하기로 하였다.


-비야레알 외에도 오퍼는 있었잖습니까?


굉 장히 많았다. 하지만 우선 이탈리아의  팀은 제외하였다. 유벤투스나 유벤투스의 팀 동료와 싸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프레미어 리그의 몇몇 팀에게서 오퍼는 있었지만, 나는 에스파냐로 가고 싶었다. 에스파냐에서의 생활이나 에스파냐 축구의 질 높음에는 이전부터 흥미가 있었으니까.


-팀 적응에 시간이 걸렸는데요.


2,3 개월은 걸렸지. 왜냐면, 연습 방법이 전혀 틀리니까. 이탈리아는 굉장히 하드한 연습을 하는 것에 비하여, 여기(에스파냐)는 연습이 가볍다. 때문에 피지컬 컨디션을 100퍼센트로 하는 것이 어려웠고, 특히 시즌 개막 당초는 풀 출장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리가와 세리에 A의 차이는?


선 수 개개인의 질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는 공격적이고 전술안(戰術眼)을 가진 선수. 이탈리아에는 그러한 선수가 많다. 한편, 에스파냐에는 각각의 선수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플레이 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같은 정확히 확립된 정신력이나 플레이 스타일이 에스파냐에는 없기에, 처음엔 혼란스러운 면도 있었다.


-고른다면 한다면, 어느 스타일을 좋아하십니까?


에 스파냐이려나? 이탈리아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일 뿐. 항상 승리를 요구받아, 좋은 플레이를 하건 나쁜 플레이를 하건 상관없다. 에스파냐와 이탈리아는 정신력이 확실히 틀리다. 요번 월드컵이 좋은 예이지. 이탈리아는 그렇게 많은 골을 넣지 않고, 조직적인 수비를 기본으로 싸우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우승했다. 그것에 비하여 에스파냐는 항상 전진하는 축구로 공격적이기는 했지만, 결국은 이기지 못했다. 단지 지금 나는 에스파냐에서 플레이하고 있으며, 축구를 즐긴다는 의미에서도 에스파냐의 축구 스타일을 고르고 싶다.


-지금은 비야레알에서 축구를 즐기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 여기서는 매일 하는 연습조차, 축제와 같은 감각으로 축구를 즐기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여러 가지 압박이 있다고 합니다만, 토리노(=유벤투스의 본거지)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외출하거나, 외식도 할 수 있었잖아요.


물 론. 단지 나는 프로 축구 선수이며, 자주 밖에 나가 걷는 것은 하지 않았다. 시합 후인 일요일 밤만은 팀 동료와 식사하러 나가거나 했었다. 또 진심을 말하자면, 토리노는 굉장히 춥기 때문에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기분도 있었다. 반대로 비야레알은 따뜻하다고 하기보다, 덥기 때문에 언제나 정원에서 가족과 식사를 즐기고 있다.


현재의 팀은 저번 시즌 팀보다 약하다


-이번 시즌은 이미 인터 토토 컵에서 패퇴하여, 유럽 컵 대회로의 참전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만, 패배한 NK마리볼과의 시합에서는 팀에 무엇이 부족했기 때문일까요?


피 지컬 컨디션이지.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는, 최저한 2~3시합의 연습 시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그러한 준비를 할 수 없었다. 현대 축구에서는, 예를 들어 지단이나 호나우도조차 필드에서 달리지 않으면, “차이”를 보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술적으로 부족하다고 하여도, 상대보다 많이 달릴 수 있다면, 그 차를 메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정신력이나 겸허함의 부족도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확 실히 그러한 것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요인을 생각할 수 있다. 단지 나와 같은 경우를 말한다면 60~70퍼센트 정도의 컨디션이라면 아직 나를 “타키나르디”라 부를 수 있지만, 20~30퍼센트의 컨디션으로는 부를 수가 없다. 다른 선수가 되어 버린다. 비야레알의 선수 전원이 50퍼센트 이하의 컨디션이었다. 즉, 다른 팀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름, 비야레알은 니하트, 카니, 피레스라는 빅 네임을 보강했습니다. 하지만, 남은 것은 리가와 코파 델 레이뿐입니다. 선수가 너무 많지는 않은 것일까요?


확 실히 빅 네임을 보강했다. 단지 축구에 있어서 이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결국은 필드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작년은 지금보다 빅 네임이 즐비하지 않은 상태로 챔피언스 리그 4강까지 갔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현재의 팀은 지난 시즌의 팀보다 약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NK마리볼과 같은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로 2시합도 이기지 못했으니까. 시즌은 매년 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에, 이번 시즌은 굉장히 어려워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은 타이틀 획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좋 은 선수가 즐비한 팀은 되었다. 단지 다른 팀도 우리만큼 좋은 보강을 하고 있으며, 우리들 이상으로 좋은 선수를 갖춘 팀이 있다. 타이틀 획득이라는 이야기를 하자면.... 어렵다고 본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획득권내(리가 4위 이내)다.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 후, 지단의 박치기, 이탈리아의 부정 문제등, 타키나르디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이탈리아에 남아 있었다면 대표로 뽑혔다.


-월드컵 독일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이 탈리아 사람으로서 굉장히 행복하다. 단지 내용이 좋았던 것은 독일과의 시합에서 연장전뿐이었지만. 결과에는 만족하고 있으며, 우승 후에 유벤투스 시대의 팀 동료에게 전화를 해서 축하를 하여, 행복을 나누어 받았지만, 실제로 이탈리아는 그다지 좋은 축구를 하지는 않았다.


-당신 자신이 월드컵에서 플레이 할 수 없었던 것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확 실히 그건 있다. 단지 작년 비야레알에 이적해 온 단계에서 리피감독과 이야기를 하여, 나를 뽑아 주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다. 해외에서 플레이 하는 이탈리아 선수는 대표로 뽑지 않을 거라고 말했으며, 이탈리아인 감독은 어느 의미 폐쇄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니까. 만약 이탈리아에서 플레이 하고 있었다면, 리피가 감독을 하고 있던 유벤투스에서 오랜 시간 플레이하고 있었기에 뽑아 주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월드컵 독일 대회에서의 이탈리아의 시합은 전부 보셨습니까?


물 론 전부 보았지. 일본 시합도 보았다. 일본은 좋은 결과가 아니었기에 안타까웠다. 나는 일본에 굉장히 호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델 피에로와 굉장히 친하기에, 그가 일본 쪽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관계로, 나에게도 일본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해 준다. 96년에 토요타 컵에서 리버플레이트를 이긴 시합에서는, 나도 유벤투스의 일원으로 토우쿄우에 가서 출장했다. 토우쿄우의 거리가 좋으며, 매번 팀 투어 등으로 토우쿄우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


-리피감독에 대해서 가르쳐 주세요.


그 는 감독으로써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승자의 정신이다. 감독에게 있어서 전술이나 시스템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요소. 기본에 깔려있는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항상 승리에 대해서 말하며, 선수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 대표도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테라치가 악명 높은 것은 틀림이 없다.


-레알 마드리드의 카펠로 감독에 대한 인상은?


레 알 마드리드에게 있어서는 이상적인 감독이 아닐까? 작년 레알 마드리드와 대전해서, (당시 프런트에 있던)아리고 사키와도 이야기 했지만, 그 당시부터 레알 마드리드에는 규율이 부족했었다. 카펠로는 규율 있는 감독이며, 레알 마드리드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개막전은 그 레알 마드리드와의 시합이 되었습니다만


굉 장히 기대하고 있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와의 대전은 언제나 어렵다. 더구나 카펠로 감독이 된 신생 레알 마드리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필시, 리가에서 처음 시합하는 것도 있어, 카펠로 감독은 선수에게 굉장히 동기를 유발시켜 시합에 임하게 할 것이기에, 우리들도 상당히 좋은 시합을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칸나바로와 시합하는 것도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월드컵 결승에서 지단의 박치기 사건에 대해서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정 말 안타까웠다. 지즈(지단의 애칭)는 유벤투스에서 함께 플레이하고 있던 동료였으며, 마테라치도 잘 알고 있는 선수. 뭐라고 코멘트하기에 어렵군. 단지 지단에게 있어서, 그러한 형태로 월드컵 결승, 그리고 그의 마지막 시합을 끝내버린 것은, 아마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마테라치에 대한 벌칙의 판정이 불공평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나 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벌칙이 타당하다. 축구 선수가 필드 위에서 해야 할 것은 입으로 도발하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이탈리아 국내에서도 월드컵에서 우승하여, 마테라치에 대해서 호의적인 의견이 많다. 단지 그 이전엔 이탈리아 국내에서도 그에게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여기 비야레알에서도 소린에게 팔꿈치로 친 적이 있듯이, 마테라치가 악명 높은 것은 틀림이 없다.


심판이 빅 클럽에게 유리하게 호루라기를 부는 것은 어디나 있는 일


-이탈리아 축구계의 부정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다 시, 제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단지 유벤투스만이 내려간 것에 대해서는 다소 안타까운 생각이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모지(유벤투스의 전 GM)나 그 주변의 인간이 한 것이기에, 유벤투스 팀 자체가 세리에 A에서 플레이하지 못하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최종적으로 유벤투스만이 내려갈 것 같은데, 그 판결에 대해서는?


공정한 판결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유벤투스도, 밀란이나 라치오와 같은 팀처럼 마이너스 포인트로 세리에 A에 남는 것이 타당하지 않았나하고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 당신이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유벤투스에서 플레이 했었을 때, 우리들 선수도 심판이 유벤투스나 밀란에게 유리하게 호루라기를 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까?


사 실이다. 하지만 그건 여기 에스파냐에서도 똑같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와 대전했을 때, 그들에게 유리한 판정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작년,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아스날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대전했을 때도 역시 그랬다.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의 축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은 클럽이나 팀이 빅 클럽과 대전할 때에는 그러한 것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카타 히데토시가 은퇴한 뉴스는 알고 계십니까?


물 론. 나카타와는 한 번 밀라노에서 개인적으로 대화를 한 적이 있으며, 시합에서 대전했을 때도 당연하지만 필드 위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멋진 인간이며, 침착하며, 굉장히 성실하다. 그의 은퇴에 대해서 특별히 할 말은 없다. 축구 선수라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연습하고, 축구를 하고자 하는 동기가 없으면, 은퇴해야만 한다. 그러한 동기 없이 축구를 하고 있으면 팀 동료에게 피해를 줄뿐이다. 그는 굉장히 머리가 좋은 인간이니까, 이번 결단이 그에게 있어서도, 그 외의 모든 인간에 있어서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단지 서른 살도 되지 않은 멋진 축구 선수가 은퇴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뉴스다.


-일본을 좋아하는 당신이 일본에서 플레이 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요?


예 전에 스킬라치가 플레이했던 것처럼, 나도 반년정도 일본에서 플레이 해보고 싶은 기분은 있다. 단지 지금의 일본 축구 레벨이나 리그 레벨은 예전과 같은 급격한 성장이 없고, 조금 정체된 듯한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이 좋으며, 팬이 나에게 보내주는 성원에 보답하고 싶다고는 생각한다. 흠... 나카타에게 물어 봐야겠군. 밤의 토우쿄우 거리에 데리고 나가 달라고 부탁해 볼까(웃음)


●● 타키나르디는 인터뷰에서 [축구를 즐기고 싶다]고 말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규율이 엄격한 이탈리아, 유벤투스 축구보다 편안한 비야레알에서 은퇴까지의 여생을 보내려고 하는 듯한 인상이 남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해. 그가 연습에서의 모습이나, 시합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는 한, 그는 이기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는 인간이다. 결코 타협을 하지 않고, 항상 필드위에서 싸우며, 팀 동료에 대해서도 큰 목소리로 의견을 날린다. 그것이 승리를 위해서이기도 하며, 그 승리에 의해 축구를 “즐기는”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선수야말로 승자의 정신을 가진 선수.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이라는 대약진을 해낸 비야레알, 그 배경에는 타키나르디와 같은 플레이뿐만이 아닌 정신적인 면에서도 팀에 커다란 공헌을 한 선수가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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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wcup/06germany/column/200606/at00009518.html

저자: 키무라 카야코


반복된 무득점 시합


 “이 팀은 죽어 있다. 투혼도 조화도 없으며, 이미 오랜 시간 반쯤 죽어있다.”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 속에서 프랑스의 스포츠 전문지 [레퀴프]의 기자가 내뱉듯이 저렇게 말했다. 수 일전에는 기온이 1도까지 내려갔던 독일이지만, 이날은 찌는 듯이 더웠다. 나른해 지는 더위 속에서 스위스에게 또다시 애가 타는 무득점으로 비긴 시합을 보여준 르 블뢰를 눈앞에서 보고 기자들도 피곤해져 있었음이 틀림없다. 다음날 지면에는 이 발언정도로 과격한 것은 쓰여 있지 않았으며, 실제 아직 그룹 리그 한 시합이 끝났을 뿐이다. 그러나 예선을 통해서 반복된 [기회를 만들면서도 득점할 수 없는 딜레마]를 막상 본선에서 계속해서 보게 되자 프랑스 사람들이 실망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기고 싶으면 위험에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하며, 그 기자는 땀을 닦으며 계속 중얼댔다. 그것은 G 그룹에서 최약으로 평가받았으면서도 과감히 공격한 토고와 토고에 선취점을 빼앗기면서도 만회했던 한국의 활기 찬 시합과는 대조적으로 용두사미로 끝났던 0-0의 비김에 대한 중얼거림이었다.


 시합 후 도메네크 감독은 “우리들이 스위스와 싸울 때마다 비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 버린 모양이다(유럽 예선 두 시합도 비김). 득점 없이 비겼지만 내용으로는 제로가 아니었다. 흥미로운 ‘과정’을 발견했으니까. 우리들은 단지 만든 기회를 득점으로 바꾸는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을 뿐이다.”하고 말했다. 그 말만을 따르자면 확실히 그대로일 것이지만 여태까지 계속된 '구체성'의 결여를 계속 지적해 왔던 미디어에게 있어서는 “또야~”하고 중얼대지 않고서는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결과였다.


 스위스와의 시합 후 믹스 존에 들어오자마자 "무의미한 (프랑스의) 공격은 불안하지 않나”라는 물음에 앙리는 “심술궂군. 조금은 맹목적인 애국주의자가 되어 보라구”하며 대답했다. 이탈리아, 독일, 잉글랜드, 브라질 등, 소위 강호국은 모두 첫 시합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앙리는 “강호라는 평가를 주는 것은 너희들 기자잖아. 스웨덴도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이기지 못했으며 아스날이 비야레알과 대전했을 때도 그랬다. 뭐가 놀라운데? 이들 팀이 명성은 없을 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힘을 가지고 있던 팀인 것이다. 그런 말투는 그만두라구. 프랑스의 사람들은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며,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반론했다.


지단의 컨디션 상승과 대표 첫 선발인 리베리


 현재 프랑스의 미디어와 대표팀은 조금 대결 무드다. 객관적으로 보면 어느 쪽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앙리는 “우리들의 좋은 플레이를 잊지 않기를 바래. 전반전에는 테스트 매치에 비하면 좀 더 높은 위치에서 볼을 뺐었으며 디펜스의 뒤로 파고들려하는 선수에게 패스를 보내는 것도 성공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지주-(지단의 애칭)는, 나에게 좋은 패스를 공급할 수 있었잖아”고 주장했다.

 확실히 이날 스위스와의 시합에서 지단은 전반전에 몇 개인가 좋은 패스를 하여 컨디션이 올라와 있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그는 스피드를 탄 상태로 돌진하는 리베리에게 몇 번이나 패스를 보냈다. 또한 앙리한테 어시시트가 없다, 종 방향으로 빠른 패스가 없다는 비판에 대항하는 듯이 이날은 골대로 향하는 앙리에게 몇 번인가 좋은 긴 종 패스를 보내었다. 지단의 눈에 보이는 듯한 컨디션 상승은 프랑스 대표팀에게 있어서 틀림없이 희망적인 뉴스다.


 한편 이날 처음으로 대표팀에서 스타팅으로 기용된 리베리는 왼쪽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오른쪽 사이드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내려가서 볼을 뺐었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전방으로 달려서 볼을 받으러 가는 등 보고 있는 쪽이 스태미나를 걱정하게 될 정도로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그러한 모습은 도메네크 감독이 리베리에게 지시했던 것이지만, 그가 [레퀴프]지에서 받은 평점은 앙리와 더불어 4.5로 굉장히 낮았다. 적진을 계속 위협하면서도 골문 앞에서는 세밀함이 결여되어 몇 번이나 있었던 좋은 기회를 골로 연결시키지 못 했던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리베리는 공격적 MF이지 결코 스트라이커는 아니라는 점이다.


 2005-06 시즌 초반에도 소속 클럽인 올림피크 마르세유에서 드리블로 속공을 시도하던 리베리가 동료 공격수가 오는 것을 기다렸기 때문에 기회가 무산되는 장면이 자주 있었다. 당시의 리베리에게는 자신이 어시스트를 하는 선수라는 의식이 있었던 듯 그다지 스스로 슛을 하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또한 마르세유에도 결정력을 가진 능력 있는 스트라이커가 없어 드리블로 사이드라인을 파고 올라가는 리베리의 스피드에 공격수가 쫓아가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몇 개월이 지나자 그는 자신이 슛을 차게 되었고 이것이 플러스로 작용되었다. 그리고 리베리는 골게터로써 자신을 갖게 되었다.


 한때는 마르세유에서 최다득점자였던 리베리지만 시즌 전반에 놀랄 만큼 효율이 나쁜 FW진과 함께 했던 탓에 최종적으로는 6골로 결코 많지는 않다. 그는 공격의 돌파구를 열고 가끔씩 놀라운 골을 넣는 선수인 것이다.

 이날은 근성과 운동량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지만 골문 앞에서는 지혜로움이 결여되어 있었다. 전반 31분에 골 정면에서 골을 놓친 것, 37분에 GK와 1대1이 되면서도 자신이 슛을 하지 않은 것, 그때 앙리에게 보낸 어시스트가 정확하지 않았던 것(볼이 너무 뒤로 보내져 앙리는 한 발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엇기에 슛이 한 박자 늦어졌다.)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5월 27일 멕시코와의 친선시합에서 대표팀 데뷔를 하였을 뿐인 리베리에게 있어서 이 시합은 대표팀 첫 선발일 뿐만 아니라 A 대표에서 처음으로 뛰는 공식전인 것이었다. 월드컵 본선에서 대표의 공식전 데뷔를 한 것은 1998년 트레제게 이후 처음인 것이다. 그것을 고려한다면 여러 곳에서 과감한 돌파를 시도한 그의 플레이는 그 만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너무 조심스러웠던 수비진


 반대로 기자들의 불만을 정당화시키는 부정적인 요소는 말할 것도 없이 앞서 말한 결정력 부족이었다. 아무리 기회를 만들어도 골을 넣지 못하면 결국 이길 수가 없다. 더구나 이것은 최근 시작된 것이 아니라 4년에 걸쳐 프랑스가 계속 지적받아 왔던 병인 것이다.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넣은 마지막 골은 여전히 1998년 결승전에서의 3점째인 엠마뉴엘 프티의 골이다. 2002년 대회에서 프랑스는 프리미어의 득점왕 앙리, 세리에 A의 득점왕 트레제게, 르 샹피오나의 득점왕 시세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16강 진출에 실패했다.(세네갈 0-1, 우루과이 0-0, 덴마크 0-2). 마치 골문에 마법의 방패라고 있는 듯이 르 블뢰의 슛은 전부 골네트를 흔들지 못하고 계속 빗겨갔다.


 또 하나의 문제는 팀 전체의 연계 플레이. 일체감이라는 점이 유럽 예선에서부터 별로 진보하지 않은 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스위스와의 시합에서 수비진은 너무 조심스러워서 수비에서 공격으로 옮겨갈 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고 4명의 공격진과 수비 라인과의 사이가 벌어져 팀이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듯이 보이는 것도 자주였다. 실제로 그것을 눈치 챈 지단이 후반전 중간 즈음에 튀랑, 갈라스와 굉장히 격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모양이 텔레비전 화면에 크게 비쳐졌다. 시합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밝혀진 것에 따르면,그 때 지단은 DF가 재빠르게 전진하고 있지 않다. 너무 낮은 위치에서 계속 플레이하여 스위스에게 충분한 압박을 주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리고 갈라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압박? 알았어. 하지만 적절한 순간에 한다는 조건이다.”


운명이 걸린 한국과의 제 2차전.


 도메네크 감독은 본선이 되어 또다시 시스템을 바꿨다. 이 날 지휘관은 신속하게 앙리에게 볼을 건네고 스트레이트한 플레이를 노린 듯한 감이 있다. 앙리를 원 톱에 두고, 그 아래에 리베리를 왼쪽, 윌토르를 오른쪽, 지단을 중앙에 두었다. 그리고, 최근 겨우 고정된 갈라스, 아비달, 튀랑, 사뇰에 위한 4백 앞에는 비에라와 마켈렐레를 넣은 4-2-3-1의 포진. 시세의 부상 이탈도 있어서 작전 변경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스템을 계속해서 바꾸는 감독의 버릇도 [확고한 방향성 없다]는 불안감을 주었다. 성과를 올리지 못했던 이날의 시스템을 또 바꿀 생각인가? 하는 물음에 도메네크 감독은 “시스템은 중요하지 않다. 시스템은 대전 상대나 대회 진행에 따라 시험해 가는 것. 다음 시합을 향해서 선택기는 여러 가지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선수의 회복 상태와 컨디션이다”고 답했다.


 그러나 “녀석(도메네크 감독)에게는 방침 같은 거 없어”라고 기자들은 말한다.

 한편 전 대표 감독인 샹티니씨는 [레퀴프]지에서 선수들은 갑작스런 시스템 변화에 따라가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도, “도메네크는 시세와 말루다를 계산에 넣어두고 있었지만 한 선수는 부상, 한 선수는 병으로 잃어 전법 변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고 현 감독을 변호했다. 샹티니씨는 브라질 대표팀조차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아드리아누의 4명이 첫 시합에서 콤비네이션이 좋지 않았던 예를 들면서, 이심전심의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앙리는 자신의 앞으로 패스가 오는 것을 좋아하지만, 리베리가 앙리에게 크로스했을 때, 그는 (마르세유의 팀 동료인) pagis나 niang에게 주듯이 (발밑으로) 패스를 보냈다. 그러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두 번의 연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샹티니씨는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시간이 프랑스에게 있을까?

 “프랑스 선수의 능력은 알고 있지만 나는 특히 그들의 약점에 흥미가 있다. 그들에게는 약점이 있다. 디펜스가 버텨준다면 우리들은 카운터로 득점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18일 프랑스와 2차전을 싸우는 한국의 이 천수는 자신감을 비쳤다. 프랑스 국내에서는 스위스를 그룹 최대의 라이벌로 보는 사람이 많았지만 두려움을 모르는 한국이 어떤 의미에서 가장 위험한 상대다. 걱정인 것은 도메네크 감독이 어느 정도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은 우리들과의 시합에서 비겨도 마지막 스위스와의 시합에서 승부를 걸 수 있다. 우리들은 절대 이기지 않으면 안 되지만 설사 비긴다 하여도 16강 진출이 위험해 지는 것은 아니다.”고 지휘관은 말했다. 한국은 하나가 되어 공격하며 하나가 되어 디펜스를 한다. 그것은 팀 스포츠인 축구의 본질이다. 그리고 한국은 무승부를 노리는 듯한 팀이 아니다.


 “프랑스 사람은 ‘솔로 세일링’, 즉 항해사가 한 사람일 때는 우수하지만, 두 사람 이상이 되면 이기지 못하게 된다. 축구에서도 그렇다.”

 스위스와 시합 후 실망한 프랑스의 서포터 한 사람이 이러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한국과의 시합에서 한 골이라도 넣어 승리를 얻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부정적인 비평도 하룻밤 사이에 변한다.

 “리베리가 내 앞으로 패스를 보냈다면, 나는 빈 골문을 향해서 볼을 차 넣어 프랑스가 1-0으로 리드했을 것이다. 또한 내가 윌토르에게 크로스를 보냈을 때에도 부족한 것은 자그마한 것이었다. 만약 그 두개가 들어갔다면 시합은 전혀 다른 것이 되어있을 것이며 필시 우리들은 0-0이라는 결과에 관하여 이런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고 앙리는 시합 후에 말했다. 필요한 것은 '만약'을 현실로 바꾸는 것이다. 오는 18일, 프랑스는 유로 2004에서 부족했던 투지와 용기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과의 시합은 두 번째 시합이면서도 벌써 프랑스에게 있어 운명의 갈림길이 되는 시합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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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카무라 토오루


모든 것은 계산대로


히딩크 감독은 평범하면서도 정확한 지휘로 오스트레일리아에 승리를 불러들였다.

 일본과의 시합에서 호주는 큐얼이 스타팅 멤버가 된 것 이외에는, 6월 4일에 행해진 네덜란드와의 시합(1-1로 무승부)과 같은 스타팅 멤버로 임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4-3-3에서 3-5-1-1로 크게 변했다.


 독일과 일본의 친선시합이 행해진 5월 30일 히딩크 감독은 현지에서 스카우팅 활동을 했다. 히딩크는 DVD를 활용해서, [우리팀과 상대팀의 분석], [선수, 팀에의 피드백], [전술결정], [게임 계획의 설정]을 행했는데 이것이 굉장했다. 아놀드 코치는 코칭 스텝의 미팅에 관하여 [이것은 전날 밤에 행했다. 냉정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확인되었다]고 증언한다.


 히딩크 감독은 일본과의 시합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일은 중반을 지배당했다. 투 톱인 야나기사와와 타카하라는 스피드가 있으며 위험한 선수들이다. 보통은 '일본의 FW를 마크해'라고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FW에게 보내는 볼 공급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나카무라와 나카다 히데를 밀착마크하기로 했다"


 이리하여 호주는 네덜란드와의 시합과 거의 같은 멤버이면서 크게 시스템을 바꾸게 되었다. 나카무라에게는 중반의 에이스 킬러인 그렐라, 나카다 히데에게는 오른쪽 사이드의 에머턴이 안으로 들어와서 마크. 그리고 후쿠니시에 대해서는 브레시아노가 붙게 된 것에 의해 이 3-5-1-1은 중반에서 그렐라를 아래 꼭짓점으로 하는 역삼각형이 되었다.


 네덜란드와의 시합에서 그렐라와 중앙 MF의 콤비를 짜고 있던 윌크셔는 오른쪽에 붙여서 반대편의 산토스를 마크했다. 히딩크의 '일본 중반 뭉개기'의 요체가 된 것은 에머턴과 윌크셔의 포지션 체인지였다.


 "에머턴과 그렐라가 멋진 플레이를 했다"
 고 히딩크는 말했다. 에머턴의 장기인 측면 오버래핑이 준다는 결점은 있었지만 일본의 무기를 봉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이상의 장점이 있었다. 더구나 네덜란드적인 역삼각형의 MF 포지션에 위해서 패스코스도 늘어났다. 에머턴은 예전에 페이예노르트에서 플레이 한 적이 있었기에 그 방면의 이해도가 높았을 것이다.


 일본의 3백에 대하여 히딩크는,
 "우리들은 (비두카와 큐얼의) 2톱으로 싸웠다"
 고 코멘트. 히딩크는 또한, '전반의 계획'과 '필드상의 현상'에 관하여,
 "큐얼은 실제로는 조금 쳐진 위치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였다. 이것으로 일본은 3명의 DF가 비두카 한 사람을 마크하는 것이 되어 큐얼이 남는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전반에는 득점하지 못하고 효율이 떨어졌다"
 고 분석.

 따라서 후반 도중부터는
 "2톱 아니 '명확한 2톱(비두카, 케네디)'으로 하였다. 큐얼은 왼쪽 MF로 내리고, 거기에서 자유롭게 플레이하게 하였다. 전날 연습에서도 했었다. 계획대로의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반을 0-1로 끝나는 것은 계획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고 히딩크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필시 농담일 것이다. 리드 당했을 때의 계획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히딩크가 보여 왔던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 날도 한 명 한 명씩 공격선수를 늘려가, 상대 수비진 앞에 '스트라이커의 벽'을 만들었다.

 "하프타임에 선수들에게는 '후반 개시 10분에 한 명(케이힐, 실제로는 후반 개시 8분 후였다), 그 때부터 두 명(16분, 케네디), 세 명(30분, 알로이지)을 들여보낸다.'고 말했다"


 스로우인에서의 골도 연습한 대로. 지쿠감독은,
 "호주의 골은 길게 찬 볼이 아무나 맞고 또 맞아서 들어간 우연에 우엽이 겹친 것"
 이라고 불운을 탓했다. 그러나 호주 쪽에서 본다면 이것은 로지컬(논리적)인 골이다.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 내에서 선수가 밀집된 상태를 만들어 두면 축구에서는 뭔가가 일어난다. 스로우인은 발로 찬만큼의 스피드가 없는 만큼 상대 DF는 헤딩으로 멀리 날려 보내지 못하며 클리어 하기 위해서는 발로 확실히 차줄 필요가 있다. 호주는 스로우인에서의 혼란을 억지로 만들어 내어 동점골을 넣었다.

 히딩크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서 따라붙고, 역전, 더욱이 추가점을 넣는 승리로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멋졌다. 팀에게 커다란 찬사를 주고 싶다"
 며 기뻐했다. 그 기쁨의 크기는 중요한 시합에서 이겼을 때 히딩크가 보여주는 '어퍼컷 포즈'를 더욱 화려하게 했던 것으로도 알 수 있었다.


시합 전부터 승부는 정해져 있었다.


 한편 호주에게는 오산도 있었다. 후반 너무 롱 볼이 많아져 축구의 질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전반 호주는 일본 진영에서 '볼을 가진 채로 압박'이라는 전술을 사용했다. 일본의 마크는 호주 MF 3명을 어떻게 마크해야 할지 그때 그때 가까운 선수를 마크했다. 볼을 사이드 쪽으로 더욱 깊게 패스하자 그것에 따라 반응하여 일본의 마크가 따라 붙었다. 그러자 호주는 중반으로 볼을 되돌렸고 계속해서 이번에는 반대편 사이드로 볼을 보냈다. 일본의 DF는 방향을 바꾸어 볼을 소유한 선수를 마크하러 오지만 호주는 또 다시 중반으로 재빨리 볼을 보내 다시 반대편 사이드로……라는 시합운영을 계속하였다.

그러자 지키고 있던 일본 선수들은 상대편의 움직임에 따라 볼을 향해 갈 수 밖에 없으니까 자연히 슬슬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렇게 호주는 볼을 가진 상태이면서 상대 진영에 밀집상태를 만든 상태가 되었다.


 일본은 볼을 소유하게 되더라도 눈앞에 호주의 선수들이 밀집상태로 꽉 들어차 있으니까 짧은 패스로 이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길게 클리어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호주는 어렵지 않게 볼을 다시 소유하여 2차, 3차 공격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네덜란드적인 '볼을 가진 압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후반 16분에 투입된 장신 FW 케네디의 장점인(일본의 약점이기도 하다) '높이'를 선수들이 너무 의식해 버렸다. 이것에는 히딩크 감독도,
 "너무도 직선적으로 패스했다. 좌우로 돌려서 대각적인 패스를 섞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점은 불쾌했다"
 고 답하고 있다. 후반 호주는 대형 FW를 이용하여 긴 패스로 일본 DF를 페널티 에어리어 부근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래서는 DF라인과 FW까지의 거리가 너무 넓어져 밀집상태를 만들지 못한다. 이것은 '압박 사커'라고는 말할 수 없는 '오포튜니즘 풋볼(임기웅변식 축구)'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도 뻥축구라고 하는 것이 이것에 해당한다. 이 축구를 사용하는 것은 최후의 긴급 상태에 이르러서이다.


 이날의 승리는 운도 따랐던 호주. 히딩크는 그것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운이 따랐다. 하지만 우리들은 시합이 어떻게 전개해 가는가, 그것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계획이 있기에 준비를 하여 그것을 실행했다. 이렇게 해서 운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선수들의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 그리고 전술의 실행력은 정말 멋졌다. 선수 교대도 제대로 먹혔다."


 일본의 중반을 뭉개는 등 히딩크의 전술, 지휘는 평범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일본의 대응책이 빈약했다는 것은 정말로 안타까웠다. 시합을 하기도 전에 시합의 행방은 정해져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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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wcup/06germany/column/200606/at00009348.html

저자: Ivica Jurin(이비짜 유린)


 요 20년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이하 SCG)는 한 번도 같은 나라 이름으로 월드컵에 출장한 적이 없다. 1990년은 구 유고슬라비아로, 민족분쟁 후인 98년은 신 유고슬라비아로 참가. 그리고 2006년 독일 대회는 SCG로 출장한다.


 예전엔 동구의 브라질로 불리며 수많은 재능 있는 선수들을 소유했던 나라는 스토이코비치나 사비체비치, 미야토비치 등의 황금 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암흑시대를 맞이하였다.

 2002년 월드컵, 그리고 유로 2004의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나라가 분열되고 경제제재 등으로 선수들의 질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강했던 시대의 자유분방하고 공격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인기를 살린 축구를 하고 싶다, 그러나 그 만큼의 재능 있는 선수들이 모이질 않는다. 그러한 딜레마 속에서 약팀이 되어가던 SCG를 소생시킨 것이 현 대표팀 감독인 일리야 페트코비치이다.

 그는 감독과 주력 선수의 충돌(사비체비치 전 감독과 케주만의 대립)이 끊이질 않고, 금이 갈대로 간 팀에 일체감을 주입하여 견고한 수비가 근간이 된 팀으로 환생시켰다.

 약팀이 되어 가던 팀에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한 페트코비치는 SCG가 임하는 오래간만의 큰 무대를 어떤 생각으로 맞이하는 것일까?


- SCG가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SCG는 유럽 예선에서 스페인, 벨기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리투아니아, 산마리노라는 굉장히 힘든 그룹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본선에서는 더욱 어려운 그룹(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코트디부아르와 한 조)에서 싸운다.

유럽 예선이 시작될 때 SCG가 그룹을 1위로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극소수였을 것이다. 지금과 굉장히 비슷한 상황이다. 모두 SCG에게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전력을 다해 싸울 뿐이다.

대전 상대에게 경의는 표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기 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월드컵에 온 것이다. 관광을 위해서도 그룹 리그에서 세 번 시합만 하기위해서도 아니다.

모든 그룹에는 유력 후보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 몇 팀인가는 실제로는 탈락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그룹에서도 (유력 후보라 하는) 아르헨티나나 네덜란드가 16강에 진출하지 못할 가능성이라는 것도 있다.


- 팀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이 팀의 원동력은 선수들의 겸허함이다. 내가 선수에게 겸허함을 요구해 가던 과정에서 그들은 성공한다는 커다란 목표 아래서 하나가 되어 팀 스피릿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가 예선 10시합에서 무패 1실점이라는 성적이 되었다.


-그렇다면 약점은? 본선까지 무엇을 개선해 가고 싶습니까?


개선할 곳은 아무것도 없다. 좋은 축구를 할 수 있으며 좋은 결과를 얻은 지금 무엇을 바꿀 필요가 있나? 유럽 예선이 끝난 후에 좋은 플레이를 하며 골도 넣고 있는 새로운 선수를 부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면 나는 예선을 함께 싸웠던 선수를 선택하고자 했다(편집자주: 유일의 예외가 25세의 MF 에르기치).


- 유럽 예선 중 당신은 신중한 발언을 하신 적이 많았습니다만, 최근에는 굉장히 낙관적인 코멘트를 남기고 계십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하시는 것입니까? (편집자주: 페트코비치 감독은 'SCG는 독일에서 세 시합 이상 플레일 할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운이 필요하지만 대전 상대들은 훨씬 더 운이 필요할 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우리들에게 기회는 없다. 이미 충분히 커다란 일(본선 출장)을 해내었다. 독일에서는 위로 진출하기 힘들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감독은 없을 걸? 나의 낙관적인 코멘트는 계산해서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남을 속여본 적도 없으며 그것은 지금도 그렇다.


- 같은 그룹에 있는 팀에 대해서는?


이 그룹이 '죽음의 조'라고 하지만 우리들은 살아서 이 그룹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럽이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굉장한 선수들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리켈메, 메시, 크레스포, 테베스 등이, 네덜란드에는 판 니스텔로이, 로번 등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코트디부아르도 강하다. 드로그바뿐 만 아니고 콜로 투레, 조코라, 칼루 외에도 좋은 선수들이 있다. 코트디부아르가 아르헨티나나 네덜란드보다도 상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 SCG는 2002년 월드컵과 유로 2004의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습니다. 오래간만에 큰 대회에 출장하는 것에 관해서는?


SCG가 큰 무대에 없었던 시간은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월드컵과 유럽선수권을 각각 1번씩 예선에서 탈락했을 뿐이다. 과거에도 프랑스가 1990년과 94년 연속으로 월드컵에 출장하지 못했던 적도 있으며, 잉글랜드도 74년과 78년, 그리고 94년 대회도 출장 못했다. 대국 러시아조차 독일대회에는 예선 탈락이다.

SCG는 작은 나라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SCG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 후 세계가 SCG를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월드컵 본선에 출장하는 것은 우리들의 축구, 스포츠 그리고 나라에 있어서 커다란 성공이다. 때문에 (유럽 예선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시합에서 이겨 그룹 일위를 확보했을 때 민족에 있어서의 커다란 성공을 축복했었다.


-그렇다면 어디가 우승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예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로 2004에서 그리스가 우승했듯이 또 한 번 커다란 기적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라 이름을 언급할 순 없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축구는 굉장히 변화했다. 좋은 선수들이 있다고 해서 팀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더 이상 없다. 중요한 것은 팀이 얼마나 조직적이며 선수가 얼마나 전술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유고슬라비아라는 팀은 전통적으로 공격 축구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SCG는 수비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수비적이라고 하는 사람은 축구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유럽 예선에서) 16득점 1실점이라는 팀의 어디가 수비적이라는 거냐? SCG는 예선에서 견고한 수비를 갖춘 좋은 '공격 축구'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팀은 공격과 수비, 양쪽을 겸비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11명의 선수를 공격과 수비로 나눌 순 없다. 11명 전원이 이기기 위한 플레이를 해야 한다. 때문에 SCG가 수비적이라는 의견에는 찬성할 수 없다. 공격적이며, 수비적이기도 한 것이다.


- 그렇습니다만, 실제로 90년이나 98년의 팀과 비교해서 스타일은 변했습니다.


다른 팀과의 비교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모든 팀에는 각자 독자적인 개성이나 특징이 있다. 90년의 팀은 굉장한 팀으로 준준결승에서 전 대회 챔피언인 아르헨티나와 PK 끝에 졌다. 조금만 더 운이 좋았다면 4강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98년의 팀은 잘 알고 있다. 유럽 예선이 한창일 때 중 나는 코칭스태프였으니까(편집자주 : 페트코비치는 당시 감독인 산트라츠의 어시스턴트 코치였지만 본선에는 가지 않고 일본의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코치가 되었다.)

확실히 그 팀은 개인 능력에 있어서 지금의 팀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16강전에서 네덜란드와 대전하여 미야토비치의 PK가 벗어났고 92분에 다비드에게 골을 먹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축구는 크게 변했다. 이제는 얼마나 굉장한 선수가 승패를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게 되었다. 어떻게 팀으로서 하나가 된 플레이를 하여, 전술적으로 성숙한가, 현명한 플레이를 하는 것이 가능한가가 승패를 나눈다. 그리고 지금의 팀은 그것을 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발전할 여지가 남아있다.


5월 21일. 예전부터 독립할 것인가 아닌가로 흔들리던 몬테네그로 공화국에서 독립 가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행해졌다. 투표 결과는 약 55.5%(55%이상으로 독립)가 찬성을 지지. 이로써 6월 3일에는 몬테네그로 공화국의회가 독립을 선언하여 몬테네그로 독립이 확정적이 되었다.


투표 전 페트코비치 감독이 몬테네그로 독립에 관하여 질문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을 알고 싶으면 폴리티카(세르비아의 신문)를 사서 읽으면 되잖아. 어쨌든 우리들은 함께 독일에 간다. 독립투표에 관해서는 경과를 지켜볼 뿐이다. 나는 스포츠와 정치를 혼동하지 않는다. 민족이 결정을 내리면 그렇게 될 뿐이다. 몬테네그로가 독립을 희망하면 월드컵까지 함께 플레이하고 그 후에 각각의 길을 갈 뿐이다."

그 말에서 [정치와 스포츠는 별개]라는 생각보다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의 단념과 비슷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정치로 인하여 계속 휘둘린 삶을 살아왔던 나라에서 살아가는 인간 특유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몬테네그로의 독립이 결정적이 되었을 때 이번 월드컵이 SCG라는 이름 아래서 출장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다. 월드컵 후 몬테네그로는 몬테네그로 대표로써, 세르비아는 세르비아 대표로써 싸우는 것이 된다. 이미 2008년 유럽 선수권 예선의 조 추첨이 끝났기 때문에 몬테네그로는 2년간 친선시합으로 강화하여 2010년 월드컵 출장을 노릴 것이라 보인다.


월드컵 후는 각각의 길을 간다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국가의 분리 독립을 앞 둔 이 상황은 기이하게도 구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이 놓여졌던 상황과 닮았다(정치적 긴장감에는 차이가 있지만). 당시의 성적은 8강. SCG로써 출장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 되는 독일대회. 그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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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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