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 해당되는 글 41건

  1. 2008.01.17 가지 말아줘~~ 에토오 by 渤海之狼
  2. 2007.10.13 [마법사]의 생존자 - 호마리우(Romario) by 渤海之狼
  3. 2007.09.27 겨우 결정된 분데스리가의 일본 중계권에 대해서 한 마디 by 渤海之狼 4
  4. 2007.08.01 창백한 테크니션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by 渤海之狼 3
  5. 2007.07.20 바르셀로나 유스 큰 위기! by 渤海之狼

출처: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80117-2-1.html

저자:스즈이 토모히코



<세비야의 케이타(왼쪽. 말리 대표)와 바르셀로나의 에토오(오른쪽. 카메룬 대표)>


어째서1월에 아프리카 선수권이열리는 거야?


몇 년전까지는 아프리카 선수권의 개최 기간(120~220)에대해서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었지만,가나에서 행해지는 이번 대회에서는 투덜거리는불평불만이 들려오고 있다.


이는 요수년 유럽 축구계에 있어서 아프리카 출신 선수가 필요불가결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2008년 아프리카 선수권에서는 에스파냐 리그에서 8,이탈리아, 잉글랜드,프랑스 등 유럽 전체에서 실로 154명이라는아프리카 선수들이 가나로 향한다.최대 세력은 프랑스다.1, 2부를 합쳐 70명정도나 된다. 저번 대회인이집트 대회에서는 10명이나아프리카 선수들을 데리고 있던 AS생테티엔에서 6명이나아프리카 선수들이 모국 대표팀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이번 대회도많은 클럽이 피해를 받고 있다.

알기 쉬운곳은 드로그바, 오비 미켈,에시엔, 칼루가 있는첼시. 거기에 투레,에보우에, 송 들이있는 아스날도 몽땅 떠나간다.


단지,감독의 반응은 제각각이다.센터백을 둘이나 빼앗기는 아스날이지만,방제 감독은 “보강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말한다. 에토오와 야야투레를 빼앗기는 레이카르트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메시가전열에서 이탈하고, 호나우지뉴가연습에 막 참가하기 시작했을 뿐인 바르셀로나.

에토오가빠지면 공격진에 보얀과 도스 산토스라는 루키를 동시에스타팅 멤버로 기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때문에 카메룬 축구 협회에 에토오를 소집하지않도록 부탁을 하는 등 (쓸데없는)노력도 했으며, 에토오본인에게도 최후의 최후까지 “가지마~”하고끈질기게 설득하였다. 하지만에토오 입장에선 모국 카메룬과 바르셀로나를 저울에달 것까지도 없었다. 에토오는2007년 아프리카 최우수선수의 후보에도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에 2008년에는이 명예를 되찾고 싶은 것 같으며,가나에서 드로그바보다 위라는 것을 증명하고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점드로그바가 빠지는 첼시는 현명했다.곧바로 프랑스 대표인 아넬카를 볼튼에서 획득.질 수 없다며 바르셀로나는 리옹의 벤제마 획득을위해서 달려들었지만, 유럽각국의 빅 클럽들이 노리고 있어 교섭이 부드럽게진행될 것 같지도 않다.


거기에비해서 리그 1위를 달리고있는 레알 마드리드는 냉정하다.

“아프리카선수권으로 디아라가 빠진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있었던 일”이라고 말한 슈스터 감독.가고, 구티,바티스타로 허리진이 튼실하기에 걱정은 없다고한다. 겨울 이적 시장에있어서 레알 마드리드의 테마는 보강보다도 오히려방출일 것이다. 이미 시합에 나갈기회가 확 줄은 사비올라에 대해서,아넬카를 떠나 보낸 볼튼이 노리고 있다.


아프리카선수권으로 약해지는 것은 바르셀로나 뿐만은 아니다.말리 대표인 카누테, 케이타.코트디부아르 대표인 코네까지 3선수를빼앗기는 세비야도 괴로워하고 있다.


말리 대표팀은상당히 펀치력이 있어 보인다.

카누테,케이타에 디아라(레알마드리드)나 시소코(리버룰).....여태껏 월드컵에 나간 적은 없지만 매력적인선수를 갖추고 있다. 이번대회를 재미있게 해 줄 가능성이 충분하다.더구나 나이지리아,코트디부아르와 같은 조.아프리카 선수들이 빠진 빅 클럽의 움직임도 흥미깊지만, 말리의 시합도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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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Satoshi Hojo

이 글은 일본 베이스볼 매거진社의 [스포츠 20세기 –사커 영웅들의 세기]의 글을 편집, 번역한 것입니다.
또 한 1999년에 쓰여진 글이기에, 그 후의 사건 등은 첨가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있는 힘껏 펼친 양 손으로 브라질 국기를 등에 매고 우승컵을 높이 들어 올리는 자신을 한껏 자랑스러워했다.


 1994년 7월 17일. 미국 로즈 보울 스타디움.

브라질 국민들이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던 날은 한 명의 스트라이커가 그 이름을 역사에 아로새긴 날이기도 했다.


 한창 전성기였던 펠레를 중심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1970년 멕시코 대회 후 실로 여섯 번의 대회를 거친 뒤의 월드컵 우승. 땅에 떨어지려하던 축구 왕국의 위신을 되찾은 것은 신사로 알려진 펠레와는 정반대인 악동 호마리우였다.


 남을 깔보는 듯한 발언을 계속하며 수많은 사건을 일으켰다. 엄격하게 정해진 규율도 그에게는 깨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듯했다. 사생활에서는 밤에 너무 놀러 다닌다고 하여 감독들의 분노를 산 이야기 등은 셀 수도 없이 많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무법자는 아니었다.

 유언실행 - 말한 것은 반드시 행한다. 그 하나만을 집어낸다고 해도 같은 시대를 산 다른 어떤 스타보다도 걸출한 존재였다.


 에스파냐의 명문 클럽 바르셀로나에 이적한 93-94시즌.

개막전에 “30골을 넣어 보이마!”라고 예고하여, 그 숫자대로[각주:1] 넣었다. 그 중 해트트릭이 5번[각주:2]. 총 득점의 반은 몰아넣기에 위해 달성된 숫자이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감독이었던 크라위프에게 사생활을 주의받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은 자기 일만 걱정하고 있으면 된다. 나는 밤에 놀러 다니기에 골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크라위프라도 더 이상 말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사생활이 문란하건, 연습에 지각하건, 정작 게임이 시작되면 벤치의 기대대로 골을 넣어갔다. 프로에게 부과된 사명이 결과라고 한다면 호마리우정도의 프로페셔널도 없었다.


 “이번 월드컵은 호마리우를 위한 대회이다”

 그렇게 선언하고 임한 1994년 월드컵 미국대회. 그리고 선언대로 대회는 호마리우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우승이 결정된 순간부터 카니발이 펼쳐지는 듯이 기뻐 날뛰는 팀 동료들과는 대조적으로 경직된 얼굴을 풀려고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베테랑 프랑코 바레시에게 봉쇄된 것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한 골만 더 넣으면 득점왕의 타이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인지……. 어쨌든 그 얼굴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명랑한 브라질리언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래도 많은 브라질 국민들이 호마리우에게 가지고 있는 감상은 특별한 것이었다.

 24년에 걸친 공백을 메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왕국의 부활을 알려주는 심벌로써, 그를 사랑했다. 90년대에 있어서 그만큼 브라질리언다운 브라질리언은 없었다.


 1966년 1월 29일.

 ‘호마리우 지 소사 파리아’는 리우데자네이루 주(州)에서 태어났다.

 사커 닉네임이 주류인 브라질에서는 별나게 호마리우는 본명이다.

 도장공(塗裝工)인 부친은 처음으로 얻은 장남의 이름을 붙이는데 굉장히 고민한 끝에 당시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을 붙였다.

 [살아있는 사전, 돈 호마리우].

 여러 가지 단어의 의미를 해설하는 호마리우 박사의 이름을 빌린 것이다. 거기에 부친의 어떤 바람이 담겨져 있었는지는 둘째 치고, 아들은 단어를 설명하는 대신 온갖 패턴의 골을 넣어가는 골의 박사가 되었다.

 공칭 168Cm. 실제로는 더 작을 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소아천식에 걸려서인지 키가 생각대로 커주질 않았다. 그것이 호마리우의 미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리우데자네이루 주(州)의 명문, 바스코 다 가마의 감독의 눈에 띈 것은 13살 때였다. 곧이어 오라는 말을 들었기에 기대로 가득 찼지만, 결국 입단할 수 없었다.

 “너무 쪼그맣다”
 라는 것이 이유였다.


 결과적으로는 바스코 다 가마의 일원이 되지만 그것도 2부 리그인 올라리아(Olaria Atlético Clube)에서 득점왕에 빛난 수년 후의 일이다. 의지가 되는 것은 언제나 두 다리뿐이었다. 바스코 다 가마에서는 곧바로 두각을 나타내어 19살 때에는 처음으로 카나리아 색의 셔츠를 입고 남미 청소년 선수권에 출장한다. 그 때부터 몇 년간은 그야말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였다.


 21살을 맞이한 87년에는 리우데자네이루 주(州) 선수권의 득점왕을 획득. 그 다음해에 참가한 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6시합에서 7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다. 호마리우의 명성이 해외의 여러 나라로 울려 퍼지는 것은 이 때부터이다.

 1988년에 네덜란드의 PSV로 탈취 당하게 되는데, 많은 브라질 국민들에게는 [부르터스, 너마저도]라는 명언으로 알려진 로마의 케사르의 심경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브라질에는 [배신]이라는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브라질리언의 해외로의 유출이 본격화 된 것은 1986년 월드컵 멕시코 대회 직후부터이다. 이 대회에서 불과 2명에 지나지 않았던 [해외파]가, 4년 후인 이탈리아 대회에서는 12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유럽으로 건너간 그들은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볼의 마술사라는 간판을 버리고, 근면성실하고 규율을 중시하는 노동자로 변해버렸다. 어떤 선수는 브라질계 독일인으로, 어떤 선수는 브라질계 이탈리아인으로써 대표팀에 돌아왔다. 그러한 [유러피언 척하는 선수]들을 긁어모은 카나리아 군단에는 본능대로 마법의 지팡이를 흔들어,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매료해 왔던 예전의 자유분방함도 창조력도 실종되어 있었다.

화려함만으로는 더 이상 세계를 제패할 수 없다. 그런 뿌리 깊은 생각이 유럽화로 경도된 배경에 있지만, 실제로 그들이 손에 넣은 것은 낙담과 실망뿐인 패배들뿐이었다.


 이러한 암흑시대에 22살의 호마리우는 바다를 건넜다.

 그로부터 7년여. 작은 거인은 유럽 축구의 냉엄한 세례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브라질리언으로 존재했다. 그에게서 눈부신 마법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브라질의 어느 기자는 상상과 현실을 오고가는 모습을 [악마]라고 표현했다. 걸작인 것은 호마리우가 바르셀로나에 있을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인 호르헤 발다노(Jorge Alberto Valdano Castellanos)의 말이다.

 “정말 불공평한 이야기다. 그는 애니메이션 만화에나 나올 법한 선수이니까”

 즉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발다노에 따르면 호마리우의 움직임은 비디오를 돌려도 코마 단위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이라고까지 불리는 듯한 요술을 호마리우는 떼지어있는 디펜더를 앞에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던 것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94년 월드컵 미국대회에서였다.

 러시아의 GK가 “유럽 선수라면 절대 저 코스에는 차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인 오른발 아웃사이드에 의한 상식 밖의 다이렉트 슛. 그것을 시작으로 담담히 5골을 넣어갔다. 그건 전부가 세세한 기교로 만들어진 예술품이었다. 동시에 골은 결코 억지로 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준 것도 그였다. GK의 손이 닿질 않는 곳에 차분히 굴리면 된다. 이정도로 슛의 기본에 충실한 선수도 없다.


 화려함이 사라진 현대 축구에 있어서 멸종되어 가고 있는 마법사의 생존자. 그 호마리우에게 축구의 신인 펠레는 [천재]라는 말을 선사했다.

Romário de Souza Faria/호마리우 지 소사 파리아.

1966년 1월 2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州) 태생. 축구 왕국이 90년대에 낳은 천재 스트라이커. 명문 클럽 바스코 다 가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살 때 남미 청소년 선수권에 출전, 2년 후에는 리우데자네이루 주(州) 선수권의 득점왕에 빛났다. 88년에는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해서 득점왕을 획득. 대회 후 네덜란드의 PSV에 이적하자마자 득점왕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89년에는 브라질 대표의 일원으로 자국에서 개최한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 베베토와 투 톱을 짜 우승에 공헌했다. 그러나 90년 월드컵 이탈리아에서는 벤치였다. 93년에 이적한 바르셀로나에서 득점왕을 획득하여, 그 기세를 살려 94년 월드컵 미국대회에서는 5골을 넣어 브라질을 6 대회만의 4번째 우승으로 이끌었다.

  1. 33시합 30골. [본문으로]
  2. 그 중 한번은 레알 마드리드와의 시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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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70927-1-1.html

저자: 안도우 마사즈미

타카하라(오른쪽)나 이나모토의 플레이도 신경 쓰이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커다란 스포츠 이벤트를 TV에서 방송할 때, 아나운서는 주로 “세계 ***개국에 중계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일본이건 어디건 똑 같아서 그만큼 '이 대회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올 여름, 오오사카에서 열린 세계 육상 선수권에서는 [200개국에 중계]라고 했었다. 정말로 그런가? 하고 생각하여 조사해보니 국제연맹 가맹국은 192개국이였다. 어떻게 하면 국가가 8개나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인가…….

 어쨌든 좋다. 192이건 200이건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를 커버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니까.


 분데스리가도 당연히 세계적 규모로 방영되고 있다.

그 수는 162개국으로, 제 5라운드 주목 시합인 바이에른 뮌헨 대 샬케04와의 시합에서는 142개국에서 생중계되었다. 전날인 금요일 도르트문트 대 브레멘과의 시합도 139개국의 팬들이 라이브로 즐겼다.


 J스포츠나 WOWOW 등 일본의 유료 TV에서 해외 축구는 일종의 킬러 콘텐츠이다.

 잉글랜드, 이탈리아, 에스파냐, 스코틀랜드 거기에 요즘은 미국 리그까지 거의 매일 방송하고 있다. 하지만…….어라? 분데스리가만 방송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후 [후지테레비 721+739]가 제 7라운드부터 프랑크푸르트의 모든 시합 중계를 결정했지만 리그 전체의 방영은 아니다)


 월드컵 1~3위 팀의 주력 멤버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세계 최대의 관객 동원수를 자랑하는 리그를 어째서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인가? 이유는 상상이 간다. 방송권료에서 합의를 찾지 못했다는 것과 일본 측의 특수한 사정에 의한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에서의 분데스리가 방송권료는 10억 엔대 후반에서 20억 엔 전반[각주:1]으로 증가했다(금액은 추정). 올 시즌 얼마를 제시받았는지는 기업비밀이기에 알 수 없지만 분데스리가의 방송권을 관리하는 DFL(1,2부 합계 38팀으로 만들어진 프로 축구 협회)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싼 가격'인 방송권을 높은 가격으로 교섭, 해외 판매에 강하게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최근 리가의 방송권료는 미친 듯이 상승커브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20년 전 불과 900만 유로[각주:2]였지만, 작년은 3억 유로[각주:3], 올 시즌은 갑자기 40% 인상인 4억 2000만 유로[각주:4]로 뛰었다. 이는 2009년까지의 계약이기에 3년간 약 12억 6000만 유로[각주:5]의 고정 수입이 확보되었다.


 그러나 관계자는 이런 금액으론 아직 만족하지 않고 있다.

 “잉글랜드는 연간 10억 유로[각주:6], 프랑스는 6억 유로[각주:7]입니다. 그에 비하면 독일은 아직 싼 편이지요”
 라고 태연히 말한다.


 개막 전, DFL은 방송권료의 분배율을 정했다. 1부가 78%, 2부가 22%.

 각 팀의 분배액은 [과거 3년간의 성적]을 기준으로 하여, 예를 들어 올 시즌 바이에른 뮌헨이 우승한다면 전년 대비 73% 증가한 2800만 유로[각주:8]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브레멘이 우승한다면 68% 증가한 2600만 유로[각주:9]이다.


 “그런데요…….”  예? 뭡니까? “바르셀로나는 1억 2500만 유로[각주:10]나 가져 간다고요. 바이에른의 4배 이상이지 않습니까?” 에휴~~(한숨). 끝 모를 돈 욕심에 필자는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다.


 수년 후 분데스리가는 국내 최대 통신회사 [T-com]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T-com 리가]가 된다. 네이밍 라이선스 획득으로 제시받은 금약은 수천만 유로 단위.

 [돈과 관객 동원이 궁핍하지 않은 리그]는 그야말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다.


 DFL은 부자나라 일본에서 높은 방송권료를 얻을 수 있다고 계산했겠지만 유료 TV방송국 수가 적으며 경영 능력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고 또한 시청자가 유럽 정도로 축구에 높은 금액을 치루지 않는 현 상태에서는 교섭이 쉽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올 시즌도 획득이 유력시 되었던 J스포츠는 “J리그 방송권에 자금을 집중시켰다”(관계자 왈) 는 등의 이유로 분데스리가, 아르헨티나 리그, 세 개의 영국계 클럽 TV 프로그램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곤 하여도 잘 나가는 바이에른이나 루르 더비[각주:11], 북부 더비[각주:12] 등 분데스리가의 핵심인 수많은 시합을 보지 못하고, 일본인 선수가 재적하고 있는 평범한 팀의 시합밖에 볼 수 없는 현 상태는 어딘가 어중간하다. 타이틀 매치를 보지 못하고 논타이틀 4라운드의 시합만 보고서 집에 가는 듯한 것이다.


 전혀 볼 수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역시 프랑크푸르트의 시합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를 커버하는 형식으로 해 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분데스리가의 진정한 매력은 전혀 전해지질 않는다. 관계자 여러분이 한층 더 노력을 해주었으면 할 따름이다.

  1. 15억 엔 ~ 25억 엔이라고 한다면 한국 원화로 약 120억에서 160억. [본문으로]
  2. 약 117억원 [본문으로]
  3. 약 3884억원. [본문으로]
  4. 약 5437억원. [본문으로]
  5. 약 1조 6312억원. [본문으로]
  6. 약 1조 2946억원. [본문으로]
  7. 약 7768억원 [본문으로]
  8. 약 362억원. [본문으로]
  9. 약 337억원. [본문으로]
  10. 약 1618억원. [본문으로]
  11. 도르트문트 Vs 샬케 04 [본문으로]
  12. 함부르크, 브레멘, 한자 로스토크 가 서로 붙는 매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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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683/20070726-2-1.html

저자: 요코이 노부유키


축구에서 잘하고 못하고에 겉모습이 중요하지는 않다.

뛰어난 선수가 멋있지는 않다.


알고는 있지만 가까이서 볼 때마다 위화감을 느끼는 것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이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다.

체격은 요 수년 굉장히 튼실해졌지만 멀리서 보면 보통.

얼굴을 말하면 기본적으로 동안이지만 거기에 최근 어른스러움이 더해져 왠지 묘한 느낌이……. 이렇게 만이라면 '잘 생긴 것은 아니다'로 끝나지만, 이니에스타는 희다. 일년 내내 창백하다.

태양의 나라 에스파냐의 이글이글 내려 쬐는 햇볕을 잔득 받아도 피부색만은 전혀 변하질 않는다.

일반적인 축구팬이 선수의 외모를 이야깃거리로 삼는 일이 거의 없는 이 나라에서 바르셀로나를 응원하는 젊은이들은 이러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좀 더 까매지라고~ 피부 좀 태워~


한마디로 말하면, 이니에스타는 도무지 스포츠맨답지 않은 풍모를 하고 있다.


성격도 굉장히 진지하고 어른스러워 그게 또 겉에 배어나오기에 사복(당연히 수수함)을 입고 있을 때도 세계 정상의 운동선수는커녕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범생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한 반에 남자가 20명 있다면 15명 이후에나 생각나는 존재감 없는 타입. 너무도 약한 인상이라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라도 그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기껏해야 2부에서 뛰는 그저 그런 선수]로 비추어지지 않을까?

그런 사람에게 “녀석은 지금 에스파냐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다”라고 가르쳐 주면 필시 놀랄 것이 틀림없다.


2005년부터 [국적이 에스파냐인 중에 베스트 일레븐]을 고른다면 이니에스타의 이름은 틀림없이 들어갈 것이다.

2005~06 시즌, 부상당한 사비의 구멍을 메우는 형식으로 바르셀로나의 시합에 출전하기 시작한 이니에스타는, 그 ‘과르디올라’가 혀를 내두를 정도.

하위 카테고리 시대의 소문이 유언비어가 아니었음을 필드 위에서 증명하였고 루이스 아라고네스 대표팀 감독을 감탄케 하여,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A대표팀에 입성했다.


공교롭게도 독일에서는 세스크에게 자리를 빼앗겨 벤치를 덥혔지만, 2006~07 시즌에 들어와서부터는 레귤러 포지션을 확보하여, 지금은 공격의 핵이 되어있다.

올해 2월 잉글랜드와의 친선 시합과 3월 유럽 선수권 예선 아이슬란드와의 시합에서 넣은 골은 그가 얼마나 대표팀의 핵심인지를 알리는 강렬한 것이었다.


이니에스타는 정말 잘한다. 그렇기에 그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동료들의 절찬이 많이 포함된 것은 조금 신기하다.

지금까지 대대적으로 이니에스타를 절찬했던 선수는 호나우지뉴에 에토오, 튀랑, 구드욘센……. 전원 각국의 대표팀 선수다. 굉장한 선수는 질릴 정도로 보았을 터인데도 처음 이니에스타를 보았을 때 모두 그의 뛰어난 테크닉에 고개를 숙인다. 바르셀로나의 올레게르에 이르러서는 실질적으론 세계 최고를 의미하는 발롱도르 상을 언급하며,

“선수로써의 질만 따진다면 당장 지금 수상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이것을 자기 팀 선수의 과대평가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에스파냐 기자들 사이에서도,

“발롱도르 상을 탈 수 있는 선수가 드디어 에스파냐에 나타났다”고 속삭이고 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필하기엔 부족한 얼굴이나 [팀을 위해서]를 한시도 잃지 않는 모범생 같은 성격은 미디어가 좋아하질 않는 것이기에 그런 상에는 불리. 세계적인 스타에겐 당연한 대규모 광고 계약의 이야기도 올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유럽 톱 레벨인 에스파냐 축구계에서도 이니에스타가 톱 레벨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 번 시합을 보길 바란다. 거짓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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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70717-1-1.html
저자: 스즈이 토모히코

바르셀로나의 보얀은 U-17 에스파냐 대표팀 에이스.

앙리~ 앙리~ 하고 기뻐할 때가 아니다.

아스날에서 대물을 낚아 온 FC 바르셀로나이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차분히 키워 왔던 치어를 도난당하고 있었으니까.


메시와 같은 세대인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2003년 아스날에게 빼앗겼을 때부터, 바르셀로나의 주니어들은 대물의 조짐이 있는 치어로 항상 표적의 대상이었다.

세스크가 떠난 다음 해에는 피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작년도 프란시스코 메리다가 아스날로.

거기에 이번 여름 유스에서 30골을 넣은 파체코가 리버풀과 계약했다.

노리고 있는 것은 언제나 잉글랜드의 클럽. 아스날, 리버풀, 첼시, 맨체스터가 바르셀로나의 어린이들을 빼앗아 달아나고 있는 것이다.


한 때 초등학생을 많은 돈을 쏟아 붓는 입도선매가 유행했기 때문에 FIFA에는 16살이 되기 전까지 프로 계약을 맺을 수 없는 룰이 생겼다. 그래서 16살이 막 된 파체코가 리버풀로. 금전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바르셀로나보다도 리버풀에서의 미래를 바랬기 때문일 것이다.


호나우지뉴, 메시, 에토오, 앙리 등 외국인 선수가 이름을 나란히 하고 있고 거기에 도스 산토스, 보얀도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기에 바르셀로나의 공격수로서는 꿈을 그릴 수 없었던 것 같다.


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달랐다. 유스 세대에서는 부모가 계약할 때 함께 하며 애들보다도 부모가 바르셀로나에서 일생을 보내길 바랐다.


1998-2003년까지 바르셀로나 B에서 플레이했던 갈리시아 출신인 나노는 판 할 시대에 몇 번인가 톱 팀에 플레이 했던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로 히바우도의 후계자로 일컬어졌었다. 그 당시 나노에게 아스날에서 오퍼가 왔다. 굉장히 좋은 조건이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노의 부친은 바르셀로나에서 나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바르셀로나의 톱 팀에서 호출 받는 일 없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방출. 그 후 헤타페를 거쳐 이번 시즌부터는 2부의 카티스이다.


그 때 아스날과 계약했더라면....... 나노의 부친은 후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요즘 부모들은 언제까지고 바르셀로나 하나만 바라보고 있다간 큰 일이 날거라고 생각도 한다.


물론 그 중에서는 첼시에서의 러브 콜을 거부한 선수도 있으며 바르셀로나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하는 선수도 많이 있다.보얀같은 경우는 16살이 되자마자 곧바로 바르셀로나와 계약했다. 30살을 눈앞에 둔 앙리보다 보얀을 기용하라는 목소리도 조금은 있다.


그러나 FC 바르셀로나에게 있어서는 지난 시즌에 바르셀로나 B가 테르세라(4부 리그)로 강등된 것도 뼈아프다. 세군다 B(3부 리그)에 있는 것도 안타까운데 그보다 더 레벨이 낮은 테르세라에서 미래를 생각하기엔 불안하다. 부모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이에 따라 테르세라에 있던 바르셀로나 C는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는 조금 잔머리를 굴렸다.

과르디올라를 바르셀로나 B의 감독에 취임시킨 것이다. 한 세대 전의 바르셀로나의 주장 과르디올라가 감독이라면 부모님들의 마음을 움켜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올 봄에는 색다른 이적도 있었다.

비야레알이 유스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한 알바세테의 6선수에 더해 다른 카테고리도 포함하여 14명이나 되는 소년들을 빼내 온 것이다.


현재 2부라고는 해도 과거 이니에스타 등을 육성하였으며 1부 경험도 있는 알바세테는 비야레알의 자회사처럼 되어 버린 것으로, 부모들로서도 챔피언스 리그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한 비야레알이 매력적인 것은 이해하지만 알바세테 시민들에겐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 옛날 요한 크라위프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이 되었을 때 우선 유스 세대의 조직화를 단행했다. 그 성과도 있어 요한의 아이들이라 일컬어지는 선수들이 계속해서 톱 팀에 승격했었다. 이러한 하부 조직의 조직화가 지금에 와서는 당연한 것이 되어 모든 클럽이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는 외국인 제한 3명의 시대.

외국인 선수가 우글우글 대고 있기에 유스 선수들에게 있어서 톱 팀은 더욱 좁은 문이 되어 버렸다. 유스의 카테고리에도 외국인 선수가 우글우글 대는 시대이기도 하다.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계속해서 수입 되고 있기에 에스파냐 소년들은 맛있는 떡밥을 매단 잉글랜드의 낚싯대를 덥석 물어 버린다. 명문 바르셀로나 출신이니까 - 라는 것은 이젠 통용되지 않는다. 동경하는 마음은 있지만 약삭빠른 현대의 아이들은 확실히 미래 설계를 하고 있다.


도둑놈!! 이라고 외치고 싶은 기분도 이해한다.

하지만 대물의 조짐이 있는 치어들은 알고 있다. 잉글랜드의 어항이 꽤나 쾌적하다는 것을.

그리고 캐나다에서 열리고 있는 U-20 세계대회에서도, 한국에서 열릴 U-17 세계대회에서도 역시 여러 낚싯대가 드리워질 것이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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