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진'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08.07.26 지갑이 빡빡한 리가 에스파뇰 by 渤海之狼
  2. 2008.07.08 이적료로 보는 교섭술 by 渤海之狼 4
  3. 2008.03.22 지쿠와 페네르바체가 쓰는 성공의 서사시 by 渤海之狼 2
  4. 2008.01.27 캐넌 슛을 쏜 영국 제일의 위대한 신사 - 바비 찰튼(Bobby Charlton) by 渤海之狼 5
  5. 2008.01.13 클린스만 차기 감독 결정으로 들끊은 독일 by 渤海之狼

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80725-1-1.html

저자: 요코이 노부유키

 시즌 중 급료를 못 받은 적이 있었떤 선수는 에스파냐 축구 선수 조합으로 달려간다.

 

 올해는 223건의 고소가 있어 1부 리그의 6클럽과 2부 리그 16클럽이 지급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거기서 문제. 그들 22클럽이 지난 시즌 선수에 대해서 만든 [책무]의 합계는 어느 정도일까?

 

 놀라지 마시길, 실로 3846 5376유로. 한국 원으로 환산하여 약 5466208만원이나 된다.

 

 급료의 미지급은 매년 있는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만큼은 이상 현상이다. 작년 14718535유로( 2334359만원)였던 것이 불과 1년 새에 2400만유로( 380억원)나 증가하였다. “리가 에스파뇰라는 하는 일과 일어나는 일마다 스펙터클하구만~”하고 웃고만 있을 수 없으며 예삿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그 중 하나는 불황 탓일 것이다. 에스파냐 경제는 요 수년 상승지수가 이어져 왔지만 부동산 버블의 붕괴를 받아 지금은 굉장히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튀는 불똥이 축구계만 비켜가지는 않을 터.

 

 또 하나는 좀더 본질적인 이유 클럽 경영의 실패다. 스폰서가 떠나가고, 무계획적인 연습장 건설이나 스타디움 건축, 필요 이상으로 늘어난 고용자의 수 등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돈이 돌지 않고 지출이 늘어나면 빚이 불어나 숨 쉬기도 힘들어 진다.

 

 때문에 2부에서는 셀타, 레알 소시에다드, 라스팔마스, 말라가, 알라베스, 스포르팅이 일찌감치 파산법의 적용을 원했다. 지난 시즌 종반, 계속 무료봉사를 강요 받아 왔던 선수들이 2번이나 파업(시합 거부)을 계획했던 레반테도 역시 그랬다. 파산법에 의지함으로써 클럽은 급료 미지급에 따른 리그 강등을 피할 수 있으며, 급료 지급의 연기와 감액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1부는 어떤가 하면은 거기까지 철면피인 클럽은 없지만 숨 쉬기 힘든 것은 다를 바 없다. 마요르카는 매각을 선택하여 영국 투자 그룹을 최대 주주로 맞이하기로 하였다. 자릿수가 틀린 책무를 짊어지고 있는 발렌시아는 금융, 부동산 계의 거물을 톱으로 맞이하여 클럽 재건을 맡기고 있다.

 

 무엇보다 에스파냐에 재정이 건전한 클럽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요 수년 선수 매각으로 큰 이익을 올리고 있는 세비야FC나 주제를 지킬 줄 아는 경영과 팀 구성을 지켜 온 헤타페 정도일 것이다. 선수 한 명 획득에 500억원 가까이 쏟아 붙는 큰손 바르셀로나라고 하여도, 2800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남기고 있으며, 수입이 많은 것은 틀림이 없는 레알 마드리드도, 회계상의 테크닉으로 적자를 숨기고 있다나 뭐라나.

 

 어쨌든 어느 클럽이건 지갑은 위험한 상태다. 그렇기에 계약이나 보강할 때 머리를 굴리고 있다. 예를 들면 다년 계약으로 좀 많은 듯이 연봉을 제시하면서 [2년째, 팀이 2부로 강등된다면 감액]이라는 조건을 붙이거나, 출장 시합 수가 적은 경우 역시 감액하거나.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 선수만을 획득하여 그런 만큼 급료를 올리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는 클럽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연봉을 약속하더라도 확실히 지급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앞으로의 이적교섭에서는 우리는 급료를 이만큼 줄 수 있습니다가 아닌 지급 기일은 확실히 지킵니다가 결정타가 될지도……

 

 어쨌든 546억원의 미지급 문제에 대해, 클럽 측을 대표하여 리가가 선수 조합과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앞길은 막막하다.

 

 클럽 측은 파산법의 우산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하고 있지만, 선수 측은 당연 반대. 한편으로 선수 측이 요구하는 급료 지급의 보증을 집어 넣은 협약 체결에는 리가가 흥미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대화가 이대로 평행선을 타, 7 31 24시까지 미지급 분 중 지급되는 것이 한 건도 없다면 조합은 선수 총회를 열어 파업을 검토한다고 한다. 결행 예정일은 8 31. 즉 다음 시즌 개막전이다.

 

 라울이나 푸욜 등 거물이 지지하고 있기에, 이 파업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막전이 연기되는 것은 조금 괴로운 일이지만.

 

Ps; 환율은 2008-07-26일 기준으로 이버 를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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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80708-1-1.html

저자: 요코이 노부유키

사진: 마츠조노 타몬

 데쿠가 첼시로 이적하였다. 

 이 건으로 팬들이나 미디어가 바르셀로나를 공격하고 있다. - 라고 하여도 이적시켰다는 것을 문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감독인 과르디올라는 라포르타 회장과 베히리스타인 강화담당 이사와 함께 한 6 17일 취임 회견에서 데쿠에토오호나우지뉴의 세 선수가 그의 구상에서 빠져있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불필요한 선수를 재빨리 방출할 수 있다는 것은 리빌딩을 위해서 오히려 플러스일 것이다.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바르셀로나가 데쿠에게 붙인 가격즉 이적료의 금액이다저 데쿠가 1000만 유로[각주:1]라는 것은 아무리 전력 구상에 빠져있기는 하다지만 너무 싼 것은 아니냐고들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베히리스타인의 변명은 이것.

 데쿠는 올 여름에 31살이 되며 2시즌 퍼포먼스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솔직히 말해서 1000만 유로는 타당한 금액이라 생각하며 시장 가격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데쿠와 같은 1977 8월인 앙리를 1년 전에 2400만 유로로 획득한 것이 바로 바르셀로나였기 때문이다.

  2년간 퍼포먼스 운운하는 것도 또한 그렇다데쿠는 이번 유로에서 큰 자를 붙여도 괜찮을 정도의 활약을 보이며 건재함을 어필했다앙리를 다시 끄집어 엮으면 그는 작년 이맘때 부상 중이었다.

 한술 더 떠바르셀로나는 '데쿠는 4년 전 포루투에서 1500만 유로로 산 선수차액인 500만은 4년간 감가상각분에 해당하기에 손해는 아니다'고 생각하고 있던 듯하다재정적 여유가 있는 빅 클럽이건 아니건 선수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기본이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이유는 두 개있다.

 

 우선 앞에서 언급한 회견에서 [구상에서 빠져있다]는 발언이다.

 절정기를 지탱해 온 스타 선수에 의지하지 않고처음부터 팀을 새로이 만든다는 뜻을 나타낸 것 까지는 좋았지만 동시에 세 명은 불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해버린 것이 되었다.

 “1000만은 그 결과다필요 없다고 말해버린 선수이니까 많은 것을 바래서는 안 된다고 데쿠 본인도 말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둘러싼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흥정은이것과는 대조적이다. 7월 초, 8500만 유로[각주:2]를 제시해 온 레알 마드리드에게이전부터 [팔 생각 없음]을 표명해 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억 유로[각주:3]를 요구했다고 보도되었다바르셀로나는 이렇게 못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담당 임원의 교섭 능력 미달.

 앙리에게 2400만 유로가브리엘 밀리토에게 2050만 유로를 쓴 일년 전의 시점에서 이미 폭로되었던 것이지만 올해는 더 형편없어져데쿠를 보내기 전에는 도스 산토스를 불과 600[각주:4] 유로(출장 시합 수에 따라 최대 500만 유로[각주:5] 추가)에 토튼햄으로 팔아버리고 말았다데쿠의 1000만이라는 이유 중에 하나인 31살이라는 연령과 퍼포먼스 저하를 드는 것이라면작년 18살의 나이에 멕시코 국가대표 데뷔를 장식한 전도유망한 도스 산토스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단지 합당하게 파는 방식과 사는 방식을 모른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데쿠는 정리한 만큼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금 바르셀로나 내부에서는 호나우지뉴와 에토오가 남을 수 있다는 걱정이 있기 때문이다.

 5월 초반에 당장이라도 결정될 듯이 보였던 호나우지뉴의 AC밀란 행은그 후 진전되지 않은 채 7월이 되어버렸다에토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된 클럽은 AC밀란이나 인테르나치오날레 등 몇 개인가 있지만바르셀로나와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나눈 곳은 한 곳도 없다둘의 연봉이 너무 높다는 것이 장해가 되고 있다고 베히리스타인은 말한다.

 

 올 여름 이미 6850만 유로[각주:6]를 보강에 썼고앞으로도 몇 명인가를 데려올 예정인 바르셀로나는 호나우지뉴와 에토오를 팔아서 자금을 만들어 두고 싶어한다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은 터라미리 [구상에서 빠져있다]는 발언을 하여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둘의 이적은 어떻게 결착될 것인지결착된다면 목적지뿐만 아니라 금액에도 주목이다.

 

Ps; 역자 주로 붙인 환율은 2008-07-08일자 네이버 환율계산기를 이용한 것이다.

  1. 약 162억원. [본문으로]
  2. 약 1376억원. [본문으로]
  3. 약 1619억원. [본문으로]
  4. 약 97억원. [본문으로]
  5. 약 81억원. [본문으로]
  6. 약 1109억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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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708/eucup/column/200803/at00016674.html

저자: 와타나베 마사유키


■ 챔피언스 리그 8강의 쾌거


클럽 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진출한 페네르바체


 "페네르바체가 세비야에서 서사시를 썼다"

 3 4일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결승 16강에서 세비야와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여 8강으로 진출을 결정한 다음날, 지역 미디어는 이럴 때의 상투문구인 [서사시]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페네르바체의 승리를 칭송하였다.
 이 표현은 특별한 승리를 손에 넣었을 때 사용되는데, 페네르바체가 이번 시즌에 쓴 승리의 서사시는 지금까지 4번째. 챔피언스 리그 첫 시합인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시합, 조예선 돌파를 결정지은 CSKA 모스크바와의 시합, 세비야와의 1차전 그리고 이번이다.


 이중 팬들에게 있어서 가장 장대한 서사시가 된 것은 바로 클럽 사상 첫 챔피언스 리그 8강을 결정지은 세비야와의 2차전이다. 골 뒤편에 자리잡은 서포터 그룹 '겐치페네르바흐첼리에르(Genç Fenerbahçeliler)[각주:1]의 멤버인 톨가 씨()는 세비야와의 승리를 음미하며 말했다.

 지금까지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하더라도 언제나 패배뿐이었다. 너무도 허탈하고 분해서 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나의 팀이 유럽 8강에 진출한 것이다. 진출이 결정되었을 때는 기쁨을 넘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눈물이 흐를 뿐이었다


 세비야와의 시합 후에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심장마비를 일으켜 팬 1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도 흘렀다. 넋이 나가고 눈물이 흐르며 생명을 잃을 정도로 페네르바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챔피언스 리그 8강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바라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환희에 넘친 서사시를 쓰는데 깊이 관여하여, 자신에 대한 평가를 크게 바꾼 것이 감독인 지쿠이다.


■ 약진의 그림자에 있는 지쿠 감독의 성장이라는 것은?


 세비야와의 시합 후.
 
첫 리그 시합이 된 3 9일 베스텔 마니사스포르(Vestel Manisaspor)와의 시합. 홈에서 열린 이 시합에는 유럽의 8강팀을 보고자 하는 약 5만 명의 팬이 스타디움으로 발을 옮겼다. 관중석에는 수많은 현수막이 걸려 팀을 절찬하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그 중에는 지쿠에 대한 메시지도 있었다.
 [
브라질 축구의 메신저이며 위대한 사나이인 지쿠를 우리들은 사랑하고 믿으며 또한 의지하고 있다]
 팬들의 지쿠에 대한 애정은 이것만이 아니다. 시합 전에는 관중석의 모든 팬들이 일어나 외쳤다.
 [I Love You! Zico]
 여태까지도 몇 번인가 이 콜을 들은 적이 있지만 외쳤던 것은 일부의 팬 뿐으로
, 스타디움 전체가 외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욱이 이 외침에 지쿠가 로커룸에서 나오지 않자 팬들은 몸을 풀고 있던 터키 선수인 주장 세미히(Semih
Şentürk)[각주:2]에게 이렇게 외쳤다.

 세미히! 지쿠를 여기로 데리고 오라고

 지쿠가 팬들에게 진정으로 사랑 받는 순간이었다. 클럽 창설 100주년 기념이 된 지난 시즌에는 국내 리그에서 우승하였지만 챔피언스 리그 16강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페네르바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지쿠는 큰 비판을 받아, 감독 경험이 적었던 것도 있어 '견습'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번 시즌도 초반에 실수를 많이 하여 팬들에게 관두라는 야유까지 받던 지쿠가 지금은 팬들의 마음을 꽉 쥐고 있다. 반년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광경이다.


 챔피언스 리그 8강이라는 결과로 인하여 지난 시즌과는 정반대로 존경을 받는 존재가 된 지쿠. 그렇다면 지난 시즌까지의 그와 도대체 뭐가 바뀐 것일까?
 지역 텔레비전 국인 NTV에서 페네르바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기자는 지쿠의 지난 시즌과의 차이에 대해서 '유연성' '경험'이라는 2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설명한다.
 
지쿠가 지난 시즌과 달라진 것은 확실하다. 실패하여도 거기에서 교훈을 얻고 다음에 그것을 살릴 수 있는 유연성이 생겼다. 지난 시즌의 경험을 올 시즌에 살리고 있는 것이다. 여러가지를 흡수하여 지쿠는 성장하고 있다. 그것이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지난 시즌의 실패는 아주 쓸모 없는 것이 아니었다

 로테이션 제도를 채용하여 후보 선수의 향상심을 유지시키거나, 시합 중에 언제나 한 발 늦던 작전이 적극적이 되는 등 전술, 전략면에서의 변화도 생겼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극적인 변화가 지쿠의 발언이나 자세 속에서 볼 수가 있다.
 이번 시즌 지쿠는 이겨도 내용이 나쁘면 그것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게 되었다
.
 
이 시합의 결과를 앞으로의 교훈으로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시즌은 나쁜 면이 있어도 결코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랬던 지쿠가 이번 시즌은 내용이 나쁜 시합에서 얻은 교훈을 살려 팀을 개선하고, 감독으로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쿠는 선수에게서도 필요한 경험을 흡수하려고 하고 있다.
 이번 시즌 급성장을 한 우울(U
ğur Boral)[각주:3]은 챔피언스 리그 출장만 100시합이 넘는 경험을 가진 호베르투 카를루스(Roberto Carlos)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지쿠의 에피소드도 알려주었다.

 지쿠조차 나도 카를루스에게 많은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배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수에서 배우며, 선수에게서도 필요한 것을 흡수하고자 하는 지쿠의 유연성. 이것은 지난 시즌에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TV의 페네르바체 담당자가 지적하는 지쿠의 성장이며 전술면에서의 개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1년을 들여 만든 팀으로써의 단결


산타나 피지컬 코치(오른쪽) 등, 지쿠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도 약진의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지금까지는 감독으로서 성장한 지쿠에 대해서 적어왔는데, 그것만이 클럽의 사상 첫 챔피언스 리그 8강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지쿠의 이념이 1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팀에 침투한 것도 요인중의 하나이다.



 지쿠의 이념이라는 것은 축구 전술적으로는 쇼트 패스를 이어가는 스타일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축구나 시합에 임하는 자세이며, 정신적인 것이다. 지쿠는 세비야와의 시합 후에 '캐릭터'라는 말을 사용하여 이것을 설명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하나의 캐릭터를 가진 팀이 된 것이다. 초반에 개인적인 미스로 인하여 실점을 하기는 하였지만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자신들을 믿고, 자신들의 플레이를 보여주었으며 그리고 시합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자세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시합을 바꾸는 강함을 보여준 것이다


 지쿠는 항상 선수들에게 '자신에게 엄격하며 승리에 굶주린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하는 것'을 원해왔다. 지난 시즌은 이기고 있는 시합에서도 집중력이 모자라 동점을 허용하는 등 허술함이 눈에 띄었지만, 지쿠의 이념이 침투한 올 시즌의 팀에 더 이상 허술함은 없다. 시합 중에 허술함을 보여 지쿠에게 미움 받아 벤치에서 혼난 경험도 있는 우울의 말에서 지쿠 이념이 얼마만큼 침투해 있는 지를 엿볼 수가 있다.

 감독이 원하는 엄격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기에 우리들은 이 성공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이 말에서는 지쿠 이념의 침투와 함께 선수들이 가진 지쿠에 대한 신뢰도 엿볼 수 있다. 감독이 바라는 것을 하면 패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금의 팀에는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은 지쿠와 선수가 신뢰관계를 쌓은 것만이 아닌, 코치진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피지컬 코치인 산타나(Moraci Sant'anna)와 스카우팅을 담당하는 옌데르(Zeki Önder Özen) 코치의 존재이다.
 지쿠가 코치를 신용하는 자세는 지난 시즌부터 변하지 않고 이어진 것이지만, 올 시즌은 코치가 지쿠의 의향을 이해하게 된 것이 크다. 마테야 케주만은,
 
지금은 내가 빨리 달릴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컨디션이 좋다. 산타나는 시즌 전과 중단되었을 때의 캠프에서 굉장히 힘든 훈련 방식을 선택하였다. 그것이 지금 도움이 되고 있다. 산타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고 컨디션이 좋다는 것과 함게 산타나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였다. 지난 시즌에는 컨디션이 무너져 종반에 퍼포먼스가 떨어졌지만 이번 시즌은 그럴 낌새도 보이질 않는다.


 스카우트에서도 변화가 있다.
 세비야와의 시합에서의 승부차기에서 볼칸(Volkan Demirel)3번 막았는데, 이는 모두 옌데르 코치의 데이터가 도움이 되었다고 볼칸은 말한다. 또한 세비야와의 시합 전에 세비야의 히메네스 감독이 이스탄불에 시찰을 하러 왔던 것을 들어, '어째서 지쿠는 세비야에 가지 않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미디어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지쿠는,
 
코치진에는 각각의 임무가 있다. 16강까지 온 것은 이 시스템이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세비야의 시합을 15시합은 보았으며, 우수한 옌데르 코치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있다
 며
코치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지쿠와 선수의 관계, 지쿠와 코치의 관계, 코치와 선수의 관계는 강한 신뢰관계로 맺어져 있다. 1년간의 경험으로 하나의 팀, 싸워나가기 위한 조직이 되어 있는 것이다. 브라질 출신 선수가 많은 팀 속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팀의 분위기가 좋은 것은 이러한 관계가 확실히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페네질리아를 가능케 한 팀의 경제력


약진을 지원한 클럽 경영의 수장도 잊어서는 안 된다. 회장인 아지즈.


 지쿠의 변화와 팀의 변화를 성공의 요인으로 들었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착실히 노력해 온 클럽의 자세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회장인 아지즈 율드름(Aziz Yıldırım)은 이번 3월로 회장 11년째를 맞이하였다. 그는 이 10년간 페네르바체를 세계의 빅클럽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그 중 많은 것을 성공시켰다. 특히 경제적인 성공이 눈에 띄며, 그 성과는 페네르바체의 예산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1998년에 1600만 달러였던 예산은 2008년에는 1 8400만 달러까지 커졌다. 클럽의 경제적 기반을 확실히 다져놓았기 때문에 호베르투 카를루스를 필두로 한 높은 레벨의 선수 보강을 가능케 한 것이다.


 페네르바체의 멤버를 보면 브라질 출신이 눈에 띈다.
 터키 국적을 취득한 아우렐리오(Mehmet Aurélio), 베데르손(Wederson)을 포함하면 그 수는 6명이 된다. 우루과이 출신인 루가노(Diego Lugano), 칠레 출신인 말도나도(Claudio Maldonado) 등 브라질에서 플레이 한 경험이 있는 둘을 포함하면 브라질과 상관 관계가 있는 선수는 8명이나 된다. 이 때문에 현재 페네르바체는 터키어로 브라질을 의미하는 '브라질리아'를 합쳐 만든 조어 '페네질리아'라 불리고 있다. '페네질리아'를 만든 지쿠 주도의 보강도 성공 요인의 하나인데, 그런 보강을 가능하게 한 것도 클럽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 더 나은 성공을 목표로


 클럽, 팀과 함께 성장하여 결과를 남긴 지쿠.
 더 나은 성공을 기대하는 미디어에게서 '페네르바체에게 있어서 결승은 꿈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이에 대하여 지쿠는 냉정한 자세를 관철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가장 높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결승에 가기까지 아직 4시합이 남아있다. 이렇게 시합이 남아있는데 '목표는 결승으로, 우리들은 이것을 이룰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꿈은 품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엄격한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다


 취임 시.
 “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다
 
고 말했던 지쿠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뜻은 높은 곳에 두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 싸우는 것의 어려움을 경험하였기에 더 이상 가벼이 말 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가진 힘과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거기에서 지쿠의 커다란 야망을 엿볼 수 있다.
 
우리들이 8강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은 험난했다. 그렇지만 이 위치를 다음 시즌 이후에도 유지하는 것은 더 중요하고 어렵다. 다음 시즌 이후도 이 위치를 유지하고 더욱 위로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목표는 이 팀에 더욱 멋진 나날들을 가져오는 것으로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번 시즌도 지금까지 맛본 적이 없던 많은 경험을 한 지쿠와 페네르바체.
 당연히 성장 도중이기 때문에 실패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밑거름으로 하는 자세가 있기에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지쿠의 계약이 연장될지 어떨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올 시즌 남은 시합도 포함하여 다은 시즌은 더욱 성장한 지쿠와 페네르바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지역 TV의 페네르바체 담당자는,
 
미디어는 성공하여도 쓴 말을 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팀과 지쿠의 성장을 즐기고 있다
 고 말하였다
.
 지쿠와 페네르바체가 앞으로 어떤 서사시를쓸 것인지 기대된다.

  1. 페네르바체 서포터 그룹은 이것 외에도 Kill For You(약칭 KFY), 1907 ÜNİFEB, Group CK, Antu/Fenerlist 등이 있으며, 각각은 또 하부 그룹을 몇 개씩 가지고 있다. [본문으로]
  2. 팀 전체의 주장은 브라질의 알렉스(Alex)이며, 페네르바체에는 DF, MF, FW에 각각 부주장을 두고 있어, 세미히는 FW진의 부주장이다. [본문으로]
  3. 풀백, 왼쪽 윙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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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David Meek
일본어 번역: Kayako Kimura

이 글은 일본 베이스볼 매거진社의 [스포츠 20세기 –사커 영웅들의 세기]의 글을 편집, 번역한 것입니다.
또 한 1999년에 쓰여진 글이기에, 그 후의 사건 등은 첨가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바비 찰튼이 과감한 돌파를 한 뒤 우레와 같은 슛을 차는 모습은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가장 멋진 광경의 하나였다.

 

 그가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런 모습으로 골을 향했을 때, 거기에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의 발레 댄서와 같은 움직임과 재능은 그를 잉글랜드 풋볼의 역사 속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를 특별한 선수로 만든 또 하나는 스포츠맨 정신이었다. 그가 옐로 카드를 받은 것은 커리어 전체를 통해서 단 한 번뿐이었다. 그것도 프리킥 시에 물러나는 것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한 경고였는데, 그 기록은 후에 FA에 의해 지워져 버린 것이다.

 

 그는 결점이 없는 아이돌이었으며, 필드의 안과 밖에서 모범적인 행동을 한 신사 겸 스포츠맨이었다. 그는 플레이어로서의 커리어를 끝낸 후에도 신사적인 인생으로 인하여 오늘날까지도 존경 받고 있으며, 특별한 인물로써 군림하고 있다.

 

 그는 1973년에 은퇴하였고, 11년 뒤 클럽의 디렉터에 선출되었다. 그 밖에도 많은 임무와 함께 그가 오늘날에도 가지고 있는 포지션은 사커 컨설턴트(상담역). 그리고 1994년에 나이트의 칭호를 하사 받아 [바비 찰튼 경()]이 된 인물에 어울리게 스포츠 대사(大使)라는 것이었다.


 맨체스터에 있는 그의 코칭 스쿨은 데이비드 베컴도 이곳 출신이었다 확립된 교육 시스템으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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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 10 6일 올드 트래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찰튼 어슬래틱과의 시합에서 어린 바비를 리그에 데뷔시켰다.
 
데뷔부터 2년 뒤 그는 홈에서 치러진 챔피언스 컵[각주:1] 8강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와의 1차전 멤버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골을 넣어 홈에서의 2-1 승리에 공헌하였고, 베오그라드에서 숙명의 2차전의 여행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손에 넣었다.


 그가 3-3 무승부로 끝난 그 시합에서 2골을 넣은 덕분에 유나이티드는 4강 진출을 이루어 냈다. 그는 다른 젊은 팀 동료들과 같이 토요일 울브스와의 시합을 위해서 다음 날 귀로에 올랐다. 바비는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려 하고 있었고 축구계는 그런 그의 발에 경의를 표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료 보급을 위해 뮌헨에 들렸던 비행기가 3번째 이륙을 시도하려고 했을 때, 그 저주스러운 비극의 비행기 사고가 일어났다. 축구 역사에 슬픔으로 새겨진 그 날짜는 1958 2 6일 토요일로 오후 3시를 조금 넘었을 때였다.

 44명의 승객 중 23명이 그 사고에서또는 사고 직후에 목숨을 잃었다. 죽은 사람들 중에 8명은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이었다. 팀원 중 9명은 목숨을 건졌지만 그 중 2명은 그 때 입은 부상으로 인하여 그 후 두 번 다시 플레이 할 수는 없었다.

 

 바비 찰튼은 의식을 잃어 팀 동료인 해리 그레그(Harry Gregg, GK)에 의해 기체의 잔해 밑에서 꺼내 졌다. 사고로 인한 충격과 베인 상처 때문에 병원에 수용되었지만, 심각한 부상은 아니어서 비교적 행운인 편이었다. 바비는 휴양을 위해서 잉글랜드의 자택으로 보내졌지만, 다음 달에는 웨스트 브롬위치와의 FA 6회전에 일찌감치 시합에 복귀했다. 그는 급조된 만신창이인 팀을 도와 5월 FA컵 결승에서 볼튼에게 질 때까지 팀을 이끌고 끝까지 싸웠다.

 

 그 때부터 뮌헨의 비극으로 인하여 생긴 길고 괴로운 재건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많은 플레이어가 와서는 떠났지만 찰튼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소년을 막 벗어났을 때 베오그라드에 갔지만, 뮌헨의 비극 후 눈깜짝할 사이에 사나이가 되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후에 [맷 버스비(Sir Matt Busby)()]이 말했듯이 찰튼은 유나이티드 부흥의 발판이었다.

 뮌헨의 비극 후 미래가 깜깜할 정도로 암흑과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나는 바비 찰튼이 있다라는 생각에 더할 나위 없이 격려를 받았다. 그의 존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부흥을 위한 용기의 원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비 자신도 클럽을 위해서 온몸을 바쳐, 사고 뒤인 1958-59 시즌에서는 리그 38시합에 출전하여 28골을 넣었다. 1963년에는 레스터(Leicester)를 물리치는 견인력이 되어 FA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1964-65 시즌에 버스비는 그를 MF로 자리를 이동시켰다. 바비는 등 번호 8번을 달고 이 시즌 리그 성공의 키 플레이어가 되었던 것이다.

 

 뮌헨의 비극 후 불과 수개월 뒤에 잉글랜드 대표팀에 소집되어 햄프턴 파크에서 열린 스코틀랜드와의 시합에 데뷔하였다. 그 후 12년간에 걸쳐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106시합에 출장하여 여전히 득점 1위인 49골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위대한 해는 1966년에 찾아왔다.

 4강 포르투갈과의 시합에서 2개의 전형적인 그다운 골인 [캐넌 슛]을 넣어 잉글랜드를 월드컵 결승으로 이끌었다. 그 강력한 슛에 골키퍼는 그야말로 손도 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웸블리에서의 결승 서독과의 시합에서 찰튼은 지칠 줄 모르는 팀을 고무(鼓舞)시키는 선수였다. 그는 냉정하고 적극적이었으며 정확한 컨트롤이 기반이 된 패스, 어디에서건 골을 노릴 수 있는 위협으로 시합 전체를 통해서 상대를 곤란하게 하였다. 그는 또한 서독 MF 프란츠 베켄바워에게 포워드를 지원할 기회를 주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압박을 가했다.

 2-2 동점인 상태로 90분이 종료되어 돌입한 연장전에서도 찰튼은 유명한 [월드컵 결승전 해트트릭]으로 팀을 4-2 승리로 이끈 제프 허스트(Geoff Hurst)[각주:2]의 활약을 계속 도왔다. 필드 위에서 이미 세계 최고봉이 된 바비의 옆에는 친형인 잭(Jack Charlton, CB)도 있었다. 승리의 순간엔 전부 울었지만, 바비는 그것을 창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966년 월드컵 결승의 영광 직후, 그는 잉글랜드의 축구 기자의 투표에 따라 연간 최우수 선수를 수상하였다이어서 심판에 의한 모범적인 선수로써도 상을 받았으며 또한 발롱도르의 영예에도 빛났다.

 그러나 그의 영광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1966-67년 리그 우승을 이루어낸 데니스  (Denis Law, FW), 데이비드 허드(David Herd, FW), 조지 베스트(George Best, Winger), 노비 스타일스(Nobby Stiles, MF), 알렉스 스테파니(Alex Stepney, GK) 등과 함께 특필할 만한 명 플레이어의 한 사람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는 리그의 시합 거의 전부를 출전하여 미드필드의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12골을 기록하여 유럽에서 또하나의 쾌거를 향해 돌진했다.

 

 유럽 챔피언스 컵 우승을 이루어낸 이 1967-68 시즌이 유나이티드의 선수로써 커리어의 절정이었다. 뮌헨의 비극에서 딱 10년 에 해당하는 이 시즌에 유럽 챔피언이 되도록 인과율의 법칙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바비는 느꼈다고 한다.

 벤피카와의 결승전 당일. 나는 이 결승에서 지기에는 우리들이 너무 먼 곳까지 왔으며, 너무도 많은 위험에서 탈출해 왔다고 생각하였다
 
고 고백했다.
바비에게는 드문 헤딩으로 골을 넣어 선취득점을 올렸지만, 1-1 동점으로 이어진 연장에서 팀이 3골을 몰아 넣어 4-1로 승리하였다.

 시합 후, 그는 감동과 육체적 피로로 인하여 자신의 방에서 틀어박혀서 우승 축하 파티에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각주:3]

 

 잉글랜드 1부 리그[각주:4]에서 1956~1973년까지 플레이 했던 그는 클럽 기록인 759시합에 출전(1)하여 통산 249(1)을 기록했다. 1973년에 은퇴하였고, 1984년에는 클럽 디렉터에 선출되었다. OBECBE의 영예를 받은 후인 1994년 여왕 탄생 기념식 자리에서 나이트의 칭호를 하사 받았다. 이것은 그를 지금도 여전히 잉글랜드 스포츠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써 군림할 수 있게 하였다. 그의 특별한 인생에서 또 하나의 빛나는 한 장면이었다.

Bobby Charlton/바비 찰튼
1937 10 11일에 탄광의 마을 에서 태어났다. 바비는 애칭으로 본명은 로버트(Robert).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함께 플레이 했던 잭 찰튼(John "Jack" Charlton –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플레이) 2년 연상의 친형. 19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톱 팀에 들어가 데뷔를 하였지만, 1958 2 21살의 나이에 뮌헨에서의 비행기 사고로 인하여 많은 팀 동료를 잃었다. 본래는 [캐넌 슛]이라 일컬어졌던 강력한 무기를 가졌던 센터 포워드였지만 포지션을 미드필더로 옮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재건하는 한편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활약. 199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모국을 첫 우승으로 이끄는 활약을 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1967-68년 시즌에 유럽 챔피언스 컵에서 염원이던 우승을 차지. 1994년 영국 황실에게서 [나이트(기사)]의 칭호를 받아, 보비 찰튼 경()[Sir Bobby Charlton]이 되었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1. 현 챔피언스 리그. [본문으로]
  2. 1998년 기사에 서임되어 받아 Sir의 칭호를 받았다. [본문으로]
  3. 이 때 부인인 노마에게 “관계도 없는 매스컴 녀석들과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이 승리는 우리들(뮌헨의 비극에서 희생된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4. 현재의 프레미어 리그에 해당.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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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headlines/20080112-00000009-spnavi-socc.html
저자: 코바야시 사호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은 11, 올 시즌을 끝으로 퇴단이 결정된 히츠펠트 감독의 후임으로, 전 독일 대표팀 감독이었던 클린스만 씨가 감독에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년간.

 해가 바뀌자 마자 히츠펠트 감독의 퇴단이 명확해진 이래 바이에른 차기 감독 후보에 관해서 높은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여러 이름들이 보도되었었지만 클린스만 씨의 이름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번 결정은 독일 국내에서는 커다란 서프라이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TV에 특별 프로그램이 편성되었고 메르켈 총리에게까지도 코멘트를 요구받는 등, 이 날 독일은 클린스만 감독 결정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같은 날, LA에서 뮌헨으로 온 클린스만 차기 감독.

 저녁에는 베켄바우워 명예회장, 루메니게 회장, 헤네스 GM 등 클럽 집행부와 함께 취임 회견에 임했다. TV에서 생중계가 된 취임 회견에서 클린스만 씨는 30대 이상의 TV 카메라에 250인 가까운 보도진 앞에서굉장히 기쁘며 또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표팀 감독이 되었을 때와 같은 특별한 느낌이다. 이러한 레벨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축구계에 있어서 바이에른은 최상급에 속하고 있다”며 기쁨을 표현했다.

 이번 취임에 대해서 히츠펠트 감독의 퇴단 결심을 받아들여, 루메니게 회장이 클린스만 씨를 차기 감독으로 지명했을 때부터 접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클린스만 차기 감독은 “크리스마스 직전에 루메니게 회장에게서 연락을 받아 감정적으로 곧바로 결론을 내었다. 집사람에게 가족 전부 뮌헨으로 이사해 살 수 있는지 상상해보라고 하자, 할 수 있다고 하였다”며 고민 없이 결단을 내렸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클럽을 이끌게 되는 클린스만 씨는 “바이에른에서는 가장 좋은 결과를 요구받을 것이다. 최대의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독일 선수뿐만 아니고, 해외 톱 선수들과 함께 해 갈 수 있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선수 개개인의 레벨 향상을 목표로 해 가겠다. 그에 따라 팀도 저절로 좋아 지게 될 것이다. 독일 대표팀 감독할 때에 시작했던 방식을 계속해 나가겠다. 선수의 능력을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의 스탭을 편성할 생각이다. 코치 진 후보는 이미 머리 속에 정리가 되어있지만, 미국이나 그 외의 나라들로 된 국제적인 스탭으로 구성될 것이다.”라며 비젼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독일 대표팀 감독 시대와 같이 [팀 클린스만]을 결성할 것도 예고했다.

 클린스만 씨가 독일 대표를 이끌었던 2년 동안 일어난 여러 가지들을 연상해보면, 바이에른의 결단은 굉장히 과감한 그리고 용기가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헤네스 GM은 “우리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 줄 인물을 찾고 있었다. 그가 오퍼를 받아들여준 것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가슴을 폈다.

 그리고 , “나의 길을 간다는, 타협이 쉽지 않은 감독을 맞이한 것이 되었다. 참신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선수와 잘 해 나갈 수 있는 감독이다. 그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며 클린스만 감독이 가진 개성을 높게 평가했다.

 바이에른의 감독은 승리하건 패배하건 비판을 받지만, 대표팀 감독 시대에 온갖 비난을 계속 받았던 클린스만 씨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맞바람에 대한 대처도 잘 알고 있다. 취임 후는 [바이에른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말도 많은 프런트와의 사이에 펼쳐질 듯한 꺼리낌도 용서도 없는 언쟁에도 주목이 쏠릴 것이다.

 독일 대표팀 감독 시대. 모든 방면에서 독일로 이사와 살라는 권고를 완고히 거절해 왔던 클린스만 씨이지만, 다음 시즌부터는 가족과 함께 뮌헨으로 집을 옮긴다고 하니, 기대도 자연히 커진다.

 지난 시즌 성적 부진으로 인해 올 시즌 개막하기 전에는 루카 토니, 리베리 라는 거물 선수를 획득하여, 노선 변경을 한 바이에른에, 다음 시즌부터 거기에 클린스만 씨가 더해지게 된다. 완전 무정을 하고 맞이하는 다음 시즌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로 [뉴 바이에른 탄생의 시즌]이 될지도 모른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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