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90313-1-1.html
저자: 안도우 마사즈미

 

 훌륭하다. 굉장하다.
 수도를 본거지로 삼고 있으면서도 오랜 기간 근성 없는 팀의 대명사였던 헤르타 베를린이 분데스리가 1위에 오른 것이다. 1963년에 분데스리가가 발족한 이래 클럽 사상 첫 쾌거라고 한다. 만에 하나라도 베를린이 우승이라도 하면 78년만의 쾌거다. 저번 영광은 고르바초프가 태어난 1931년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니 어쨌든 훌륭하며 굉장한 것이다.

 베를린의 과거 5년간 성적은 10위, 10위, 6위, 4위, 12위로 여태까지는 ‘참가한다’는데만 의의가 있던 듯하다. 지금까지 획득한 타이틀은 리그 우승 2회(2연패)와 그다지 가치가 없는 2001~02년 리그컵 2연패로 총 4회뿐. 매해 시즌 목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선수건 프런트건 ‘UEFA컵 출전권’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고작으로, 착각으로라도 ‘챔피언스 리그’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경험 상으로 그들은 자신의 주제를 알고 있는 것이다.

 1위를 탈취한 홈에서의 제20라운드. 상대는 바이에른이었다. 한번은 동점으로 추격당했지만 77분에 다시 보로닌이 골을 넣어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평소였다면 평균 4만 명밖에 모이지 않는 스타디움(관중으로 가득 차는 독일에서는 이래도 리그 8위의 관객수. 참고로 1위는 도르트문트의 7만2398명)은 7만 4244명이라는 초만원을 기록. 남부의 거인을 쓰러뜨리고 1위에 선 최고의 스토리에 팬들은 취했다.

 파죽지세의 진격에는 감독 인사의 교체가 항상 따라붙는데 베를린도 이 예에 어긋나지 않는다. 전 감독인 괴츠(Falko Götz)는 현역시대 11년간과 아마추어 부문 지도자 7년 총 18년을 베를린 외길로 살아왔다. 3년 전에는 아마추어 부문에서 65명의 어린 선수를 각 세대별 독일 대표팀으로 보내는 등 우수한 지도자로서 일정의 평가를 받았다. 단 감독이 되고부터는 베테랑과 사이가 나빠, 뱉어진 껌에 맞는다거나 기자회견 중에 휴대폰 메시지를 받는 등 권위를 잃어 팀 안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2년 전 클럽은 성적부진을 이유로 괴츠를 자르려고 했지만 ‘미스터 베를린’인 만큼 쉽게 자르지 못했다. 그래도 약 1억엔의 위약금을 지급하여 겨우 물러나 줄 것을 요청했다. 단 당시는 70억엔 가까운 부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을 새로 초빙하지 못하고 아마추어 부문에서 끌어 올려 당장 급한 불을 끌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대형 보강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

 어떻게든 잔류를 하여 새로운 감독 찾기를 착수하였는데 이때 디터 헤네스(Dieter Hoeneß) GM은 예전 바이에른의 루메니게 회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루메니게는 현역 말년에 스위스의 세르베트 주네브에서 뛰었는데 같은 방을 쓰고 있던 팀 동료에 대해서 “멋진 녀석이지. 확실한 이론에 인격도 뛰어나다”고 엄청 칭찬한 것을. 그 사람이 루시엥 파브르(Lucien Favre). 현 헤르타 베를린의 감독인 것이다. 감독 후보에는 베른트 슈스터도 꼽히기는 하였지만 헤네스 GM은 독단으로 파브르를 선정했다. 무턱대고 행동하며 타인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이 사람다운 방식이었다.

 파브르는 선수, 감독으로서 스위스의 약소 팀들을 거쳐왔다. 그리고 세르베트 시대에 UEFA 컵에서 보여준 지도력과 4년간 지휘를 한 FC 취리히에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베를린에 온 것이다. 현역시대는 포지션 전부를 경험했다. 그 때문인지 베를린에서의 지도도 선수에게 복수의 포지션을 담당할 수 있듯이 요구한다. 바이에른과의 시합에서는 평소 왼쪽 DF인 슈타인(Marc Stein)을 오른쪽 DF에 기용하여 MF 에베르트(Patrick Ebert)와 협력하게 한 것은 [세계 최강 왼쪽 측면 공격]이라고 일컬어지는 리베리와 람을 막기 위한 작전이었다.

 베를린의 특징은 높은 신체능력이다. 또한 정신적으로도 강함을 중시함으로써 ‘시합 마지막 15분간’에 강점을 보여 이 시간대에 많은 득점을 올려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 대약진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FW 보로닌, 부상에서 막 복귀한 판텔리치(Marko Pantelić), GK 드로브니(Jaroslav Drobný) 그리고 수비를 총괄하는 시무니치(Josip Šimunić)와 프리드리(Arne Friedrich)이다. 이 중 보로닌(19시합 10골)은 예산 부족으로 인해 임대로 획득한 선수이다. 2년 전 클럽은 16명을 해고하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19명을 입단시키는 터무니없는 인사를 행했었는데, 이제서야 팀은 뭉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태로 베를린은 마지막 라운드까지 돌진할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다. 판텔리치(17시합 6골)는 항상 ‘나는 과소평가 받고 있다’며 불만을 입에 달고 살며 그의 까다로운 성격이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선수가 출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비교하면 팀이 올리는 득점과 승점에 거의 2배 차이가 난다. 마르셀리뉴(Marcelo dos Santos ‘Marcelinho’)를 길들이지 못한 과거가 있던 만큼 조심스럽게 대응하지 못하면 베를린은 샬케와 같은 운명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선수에 대한 응대보다도 오히려 GM이 아닐까? 베를린의 GM은 바이에른 헤네스 GM의 친동생인 디터다. 이 둘은 틈만 나면 비교되어 왔다. 유로와 월드컵에서 우승을 경험하였고 은퇴 후에는 유럽 굴지의 명GM으로 명성을 떨쳐 이지적이고 발군의 경영 센스를 보이는 형에 비해, 동생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동생의 일반적인 평가는 ‘절대주의자적 독재자와 같이 헤르타를 이끌어 왔다. 과거 10년간 비겁한 예스맨만을 모아 독재체재를 구축하였다’는 이 이상 없을 정도로 혹독한 것이다.

 큰 덩치와 시원하게 벗겨진 대머리를 보면 의리와 인정이 두텁고 후덕한 ‘사장님’과 같이 보이지만 본질은 ‘발언력을 가지려 하는 인간은 용서하지 않으며 충고나 비판은 철저히 증오’하는 원맨 GM인 것이다.

 파브르 감독은 입단 전 리그 우승을 하면 최고 1억 5000만엔, 챔피언스 리그 출장을 이룩하면 1억엔의 특별 보너스를 받는 계약을 맺었다. 선수에 대한 보너스 교섭도 이제부터 열기를 더해간다. 그러나 재정 재건에 여념이 없는 현재, GM이 부족한 사려로 무슨 일이든 정하는 체질에 감독과 선수가 혐오를 느끼기 시작한다면 순식간에 전락할 것은 뻔하다. 실제로 2년 전엔 조직내의 말썽으로 9시합 연속 무승에 4연패를 당하는 등 5위에서 단번에 강등권내로 떨어졌다. 성적이 악화되면 GM은 당연히 신경질 낸다. 그리고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팀. 주목해야 할 것은 GM의 말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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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ocn.ne.jp/sports/soccer/soccer090219_1_1.html
인터뷰: 마르탕 베르누
일본어 번역: 이시바시 카나


 바이에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나이 프랑크 리베리가 상대방과 앞뒤를 생각하며 말하는 일은 없다.
 그것이 또한 그를 눈에 띈 존재로 끌어올리는 매력이기도 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446p인데 반해 리베리는 불과 6p. 순위는 16위. 2008년도의 발롱도르라는 척도로 잰다면 프랑크 리베리에게 있어 ‘세계 No.1’이라는 칭호는 아직 멀었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 권위있는 [프랑스풋볼]지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바이에른의 서포터들은 말한다. “리베리는 천재냐고? 그건 아니지. 녀석은 신이다”

 지네딘 지단은 말한다. “리베리는 군계일학이다. 16위? 그럴 리가 없다”

 그리고 바이에른을 이끄는 위르겐 클린스만은 말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선수. 끝 모를 재능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홈 팬들에게 사랑 받은 외국인 선수는 여태껏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명예롭다는 상도 그의 재능을 재는 척도로써는 아무래도 불충분한 모양이다. 즉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16위는 부당 그 자체. 리베리는 <신봉자>에게 있어서 이젠 군계일학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매력은 필드 밖에서도 볼 수 있다. 확실히 겉과 속이 다르지 않는 성격에서 튀어 나오는 파천황적인 언동은 때때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그의 인기에 박차를 가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한 것이다. 지단은 말한다. “인간적인 면에서도 굉장히 훌륭하다”고.

 필드에서 이채를 띠는 <세계 16위>의 사나이. 그 인간적인 매력은 이 인터뷰를 읽으면 반드시 알게 될 터이다.

바이에른은 다크호스.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운이 필요.

- 우선 전 세계의 바이에른 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에 대해 들어볼까 합니다. ‘독일을 떠나려고 한다’는 소문은 정말인가요?

 전혀.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쓴웃음). 내 발언은 언제나 오해 받는다니까.

- 발언의 진의는?

 캠프지인 카타르의 기자회견에서 ‘2011년에 바이에른과의 계약이 끝나는데 그 후는 어떻게 할 생각?’이라는 질문을 받았지. 그래서 나는 ‘어떠한 오퍼라도 오픈된 자세로 듣겠다. 축구 선수라는 직업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라고 답했어. 하지만 ‘바이에른을 떠나고 싶다’고는 한마디도 한 적이 없어. 생각해봐 그렇잖아?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AC밀란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플레이 해보고 싶은가?’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누구건 ‘흥미 없다’고는 답하지 않을걸. 그것과 마찬가지야.

- 단지 그 발언 때문에 바이에른 주변에서는 작은 소동으로 발전해 버렸습니다.

 바이에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는 생각지 않아. 후회 같은 것은 안 해. 프런트에게도 확실히 설명했으며 프런트 역시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이해해 주고 있어. 물론 서포터들도 마찬가지야. 무엇보다 내가 너무도 정직하게 발언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누구나가 알고 있지. 때문에 내 발언에 대해서 후회 따윈 하지 않아. 내가 보기에도 난 너무 편하게 사는 것 같아(웃음). 말하고 싶은 것은 확실히 말한다. 그것이 내 스타일인 거지.

- 그 기자회견에서 ’바이에른이 유럽의 빅 클럽이 되기 위해서는 전력강화가 필요 불가결하다’고도 말하셨습니다. 칼 하인츠 루메니게 회장은 이 발언에 곤혹스러워했다고 합니다만.

 회장은 ‘강화방침을 정하는 것은 선수가 할 일이 아니다’고 말하더군. 물론 그 말대로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 발언으로 인해 누군가를 비판한 것도 아니며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소리도 듣지 않았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회장도 잘 이해해 주고 있지.

- 그럼 그것도 당신의 진심이라고 보아도 좋은 건가요?

 물론. 맨유나 첼시, 바르셀로나에 맞서 싸우고자 하기에 바이에른에는 아직 빅 네임이 부족해.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내 멋대로의 생각을 말하자면 올 여름 이적시장에서 각 포지션당 한 사람씩 빅 네임을 획득해 준다면 최고지.

-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자면?

 클럽에는 제레미 툴랄랑(Jérémy Toulalan)과 세바스티앵 프레(Sébastien Frey)의 획득을 제안하였지. 둘 다 바이에른을 좋아하니까. 제레미와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녀석은 틀림없는 유럽 굴지의 볼란치다. 바이에른의 축구에도 곧바로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해. 아~ 단지 한가지 말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군. 그래 여기부터 앞은 내 할일이 아니라는 것(웃음)

- 당신과 바이에른의 계약은 이제 2년 남았습니다. 클럽 경영진은 그 후의 계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당신과 부인을 런치에 초대하였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사실인가요?

 그래 사실이야. 감출 필요는 없지. 작년 크리스마스였었던가? 멋진 런치였어. 단지 계약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어. 아마 3월이나 4월 즈음부터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가지 않을까? 확실히 말해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후반전 스케줄 보았겠지?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되며,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한 계단이라도 위로 올라가고 싶어. 시즌이 막바지로 돌입하면 편하게 점심식사 같은 것을 먹고 있을 여유는 없어진다고.

- 챔피언스 리그는 어느 정도까지 진출할 수 있을 것 같나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솔직히? 당연하지. 나는 거짓말 같은 것은 하지 않으니까(웃음). 별로 나쁘게 말할 생각은 없지만서도 바이에른은 우승후보라기보다 다크호스다. 조금 비꼬아 말한다면 우승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깜짝 놀랄 정도의 운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스포르팅에게는 이긴다. 이건 틀림없지. 8강은 확실해. 만약 여기서 지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나라도 겁나게 충격 먹을 것 같아.

- 이번 시즌부터는 위르겐 클린스만이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의 감독 오토마 히츠펠트와는 역시 다른가요?

 어리석은 질문이군. 완전히 내 시선으로만 말한다면 클린스만이 프랑스어를 할 수 있다는 시점에서 완전히 다르지(편집부 주: 클린스만은 현역시절 모나코에서 플레이한 경험이 있다). 좀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히츠펠트는 선수들과의 사이에 굵은 선을 그어놓지만 클린스만은 그런 것이 없어. 연령적인 차이도 있겠지. 클린스만은 항상 선수의 눈높이로 대하며 언제나 우리들 곁에서 지켜보고 있어. 그런 만큼 요구도 구체적이며 더구나 많아. 히츠펠트는 선수를 신뢰하여 굉장히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게 해 주었지.

- 그럼 두 감독의 지도법은 180도 다르다는 말씀?

 바로 그래. 처음엔 모두 클린스만의 방식에 놀랐어. 테크니컬 스탭을 데리고 와서는 팀 체질을 전부 개혁했거든.

- 구체적으로는 어떤 것이 바뀌었나요?

 예를 들면 연습이 끝난 후에는 모두 함께 식사를 해. 심리학자와의 ‘면접’도 있으며 또한 어학 수업도 받고 있지. 규칙으로 꽁꽁 묶였기에 미디어나 서포터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급격히 줄기도 하였지. 그리고 연습은 신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어. 아~ 또 있다. 클린스만은 시스템도 바꾸었지. 작년 9월부터 3-5-2를 본격적으로 시험하고 있으니까.

- 그런 상태라면 당신의 특기인 ‘장난’도 제한되어 버리잖아요(웃음).

 아니 그것만은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지(웃음)

- 정말? 그럼 최근에 일어난 에피소드를 하나만.

 오케이(웃음). 카타르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야. 호텔에서 연습하러 출발하기 전, 팀 버스를 강탈하여 호텔 부지를 폭주했어(웃음). 팀 동료들은 배를 부여잡고 웃더군. 단지 흥에 겨워 그런 모습을 보며 운전하다가 호텔 화단에 꼴아 박아서 꽃밭을 부셔버렸어.

- 그거 큰일이었군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반성하셨겠지요?

 아니. 호텔 사람들도 웃고들 했으니까. 뭐 별다른 일 있겠어? 이건 확실해. 버스 운전수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직업이라는 거. 모두 좀더 존경하는 편이 좋아(웃음)

그때 프랑스 대표팀은 자각이 부족했다.

- 프랑스 대표에 대해서도 묻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유로2008에서는 참담한 결과로 끝나버렸습니다만 그 후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제서야 안정을 찾은 듯한 느낌이려나. 단지 작년 9월 오스트리아와의 시합과 세르비아와의 시합에서 받은 주위의 압박은 장난이 아니었지. (레몽) 도메네크의 목이 떨어질지 어떨지가 달린 시합이었기에 굉장히 무거운 분위기였기에 선수도 안절부절 못했지. 단 그 후 루마니아와의 시합에서 2점 뒤진 상태에서 따라붙으면서부터는 그럭저럭 떨쳐낼 수 있었어. 팀에도 다이나믹함이 되돌아왔고.

- 당신은 도메네크 옹호파의 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이래 보여도 나는 굉장히 의리파인 인간이야. 도메네크는 무명에 가까웠던 나를 프랑스 대표팀의 일원으로 만들어서는 독일 월드컵에 데려가 주었어. 그 후에도 계속 신뢰해주고 있고. 그런 감독을 비판한다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예의 없는 놈이지. 거기에 도메네크는 여러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이 요점에서 벗어난 것들 뿐. 그는 자신이 나서서 선수를 지켜준다. 유로에서의 참패는 <내부분열>로 붕괴된 선수들 탓이다.

- 유로의 패인은 ‘베테랑과 어린 선수의 부조화’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 같군요.

맞아. 확실히 말해 대회기간 중은 굉장히 험악한 분위기였어. 베테랑과 어린 선수들 사이에 말싸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야. 그것이 직접적인 패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팀 분위기는 정말 안 좋았어.

- 당신은 이전에 ‘선수들간에 모티베이션 차가 있었다’고 말씀하셨었죠?

 그래. 뭔가 착각하고 있던 녀석이 있었지. 프랑스 대표의 일원으로 싸우는 이상 사진에 많이 찍히기 위해서 플레이해 보았자 아무런 도움이 안돼. 주어진 역할을 다하여 <르 블뢰>의 이름에 걸맞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대표팀에서 플레이할 때는 자기자신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싸워야 하고. 그때의 대표팀은 그러한 자각이 부족했다고 생각해.

- 그렇다면 당신은?

 나는 항상 자각하고 있어. 지금이건 예전이건 소집되었을 때의 기쁨은 변함없지. ‘초지일관’이라는 말대로 누구건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임해주지 않으면 곤란하지.

- 남아공 월드컵 예선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현 시점에서는 세르비아, 리투아니아에 이어 3위로 고전하고 있습니다만.

 돌파하지 못했을 때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 만에 하나라도 그리 된다면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으며 프랑스 전국에서 엄청난 소동이 일어나겠지. 하지만 우리들은 반드시 돌파할 수 있어. 마침 잘 됐다. 지금 여기서 남아공 월드컵에 반드시 출장할 것을 약속하마.

솔직히 고백하자면 연습은 싫다.

- 이번엔 당신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서 듣고자 합니다. 우선 자신의 무기라고 한다면?

 아무 문제없이 양 다리로 찰 수 있다는 것…이려나. 오른발잡이이지만 왼발로도 거의 동등한 퀄리티의 기술을 구사할 수 있지. 그리고 스피드. 어렸을 적부터 발이 빨랐는데 지금은 훨씬 더 빨라진 듯한 느낌이 들어. 특별한 연습을 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내 플레이는 항상 골문을 향하고 있지. 상대를 패닉에 빠뜨리고 싶다는 일념으로 플레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장점이며 상대가 싫어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 그럼 특기인 드리블도 특별한 연습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군요.

 그래. 드리블만을 위해 연습하는 일은 우선 없지. 거기에…

- 거기에?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연습을 싫어해(쓴웃음). 승패가 확실한 실전이 아니면 아무래도 흥이 나질 않아. 시합에선 항상 최선을 요구 받으며 그러한 빈틈없는 공방에서 배우는 쪽이 많아. 반대로 말하면 나 같은 경우 실전을 치러야 향상을 하지.

- 역시 당신다운 코멘트군요. 그런데 그러한 플레이 스타일을 확립하는데 있어서 가장 자극을 받은, 혹은 존경하고 있는 선수가 있습니까?

 존경하는 선수는 지단. 자극을 받은 것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호나우지뉴. 이 세 명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 지단에게 배워야 할 것은 컨트롤의 질이다. 볼 컨트롤은 모든 것의 원점. 드리블도 슛도 거기서부터 시작되니까. 그 점에서 지단의 기술은 다른 선수와 비교불가지.

- C. 호날두와 호나우지뉴에게서는 어떠한 영향을?

 고속 시저스[각주:1]와 드리블에 반했지. 호날두의 시저스는 정말 굉장해. 나처럼 양다리를 사용하며 어느 포지션에서건 플레이 할 수 있지. 호나우지뉴의 무기는 엘라스티코와 노룩패스 두개. 드리블 자체의 스피드는 떨어졌지만 저런 무기가 있다면 상대는 어찌할 수도 없지.

- 반대로 가장 적으로  삼고 싶지 않은 DF는?

 두말할 것도 없이 에릭(아비달). 마르세유 시대에 몇 번이나 경험한 녀석과의 1:1은 정말 처절했지. 생각만해도 오싹해. 에릭은 스피드가 있고 머리 싸움이 뛰어나기에 돌파하기가 어려워. 더구나 하필이면 필드 밖에서는 엄청나게 친하기에 녀석과 승부하는 장면에서 순진하고 마음씨 착한 나는 아무래도 녀석에게 양보하는 것이 많지(웃음). 하지만 촐싹이에 까칠한 녀석은 그런 나에게 사정 없더라구. 뭐 그런 부분을 빼더라도 나는 에릭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왼쪽 SB라고 생각해.

-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당신들이 펼치는 심리전을 보고 싶어지는군요(웃음). 화제를 바꿉시다. 지금까지 캐리어를 되돌아 보았을 때 지금에 이르기까지 최대의 공로자를 꼽는다면?

 은사라는 의미에서는 프랑스 3부에서 플레이하고 있던 나를 메츠로 끌어 올려 준 쟝 페르난데스(Jean Fernandez)려나… 그리고 전면적으로 나를 신뢰해 준 히츠펠트도 고맙지. 단…역시 거짓말은 못하겠군… 최대의 공로자는 나 자신이야. 어렸을 적부터 계속 ‘축구로 성공하고 말겠다’고 바라는 나 자신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왔으니까. 강한 의지만은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가 않아. 거기에 어디든 극한까지 성공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최고지.

- 프랑스 국민은 당신이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작년은 16위라는 성적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이 순위에 대해서 자기평가를 부탁 드립니다.

 그 순위에는 충격 받았어. 물론 톱3는 나 자신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톱10에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는… 역시 유로에서의 참패가 영향을 끼친 것 같아. 적어도 4강정도는 올라갔더라면…

- 혹시…굉장히 쇼크를 먹었나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웃음). 언젠가 반드시 프랑스 국민들의 기대에 응하겠어.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것은 내 꿈이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강한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으니까.

  1. 이영표 선수가 잘 하는 헛다리 짚기 드리블을 말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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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90210-1-1.html
저자: 요코이 노부유키

베른트 슈스터의 뒤를 이어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에 취임한 후안데 라모스. 다시 매력 넘치는 축구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인가?

 2월 1일.
 레알 마드리드가 행한 포베르(Julien Faubert)의 입단 회견은 추웠다.

 기온뿐만이 아니다. 기자 측에서 나온 질문은 불과 5개에 불과했고 포베르를 환영하기 위해 모인 팬은 많이 잡아야 50명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즌 개막하기 전 판 데르 파르트 때는 5000명 가까이 몰려들었다. 12월 초의 휜텔라르 때는 500명 정도가 왔다. 그랬었는데 이번엔 불과 50명. 반년 만에 99%가 줄은 것이다. 2개월 전과 비교하더라도 1/10로 줄어버렸다.

 물론 선수의 인기나 지명도에 차이가 있기에 숫자를 그대로 비교해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팍 준 것에는 의미가 있을 터이다. 예를 들어 그 시점에 있어서의 팬 기대치와 비례한다거나.

 12월부터 레알 마드리드는  심했다. 우선 실망감을 안겨준 것은 보강에 있어서의 갈지자 행보. 겨울 이적시장에서 일찌감치 휜텔라르와 ‘라스’ 디아라를 획득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는 둘 중 한 명밖에 등록할 수 없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고서 급당황. UEFA의 규정을 아무도 몰랐다고 하기에 어처구니 없을 따름이다.

 더욱이 뻔뻔스럽게도 2명을 동시등록 시켜달라고 스포츠 중재 재판소에 제소. UEFA에게 설득당하여 결국 제소는 취하되었지만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지 클럽 법무담당에게 꼭 한 번 듣고 싶다.

 그 후 칼데론 회장의 사임극도 꼴사나웠다.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시오 대표회의에 참가 자격이 없는 사람을 입장시킨 것이 폭로된 것이다. 작년 육성부분 디렉터에서 물러나며 규탄한 미첼의,
 “칼데론은 자기 것만 챙기는데 정신이 없다”
 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주식회사화 되어 있지 않은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와 마찬가지로 소시오에 의한 소시오를 위한 클럽. 그런데도 용케 그런 짓을 저질렀다.

 한편 팀 쪽은 보는 방식에 따라서는 나쁘지 않다. 후안데 라모스 감독이 처음 지휘를 한 바르셀로나와의 시합에서는 패하였지만 그 후 6연승하여 2위 자리를 되찾았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하는 타국의 리그라면 이걸로 충분히 칭찬받을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 과정이나 수단에 시끄러운 에스파냐. 어느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디 스테파노가 투덜거렸다.

 “현재의 팀은 좋은 플레이를 하고 있지 않아. 저래서는 아무도 빠져들지 못하고 누구도 즐기지 못하지. 활발함도 없고 화려함도 없으며 우아하지도 않다”

 레알 마드리드의 명예회장까지 이럴 정도니 팬들의 기분은 안 봐도 뻔하다. 포베르의 입단식에 50명밖에 모이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후안데 라모스에게 즉각 스타일 변경을 요구하는 것도 쓸데없는 일이다. 도중에 참가한 그가 해야만 할 일은 지금 팀에게 있어 가장 좋은 형태를 찾는 것이지 자신이 하고 싶은 축구를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니까.

 어시스턴트 코치인 마르코스 알바레스에 의하면 후안데 라모스가 공격적인 스타일을 포기한 것은 호비뉴나 판 니스텔로이와 같이 파괴적인 선수가 부족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좋은 수비수와 좋은 골키퍼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레벨이 높다. 그래서 우선 급히 실점을 막기로 하자는 것이 된 것이다”

 확실히 수비는 견고해졌다. 바르셀로나에게 진 이후의 시합부터 리가 7시합에서 실점은 불과 4. 그 이전엔 14시합에서 23실점했었기에 수비가 개선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시 아무도 빠져들지 못한다….

 휜텔라르가 판 니스텔로이의 구멍을 완벽히 메우고 포베르가 호비뉴를 대신할 수 있다면 앞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극적인 변신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겨울 이적은 어렵다. 특히 타국 리그에서 온 선수가 즉시  전력이 되는 것은 굉장히 드문 것이 현실.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후안데 라모스 감독도 챔피언스 리그에 등록하는 선수에 FW인 휜텔라르가 아닌 중반의 수비자인 ‘라스’ 디아라를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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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809/other/text/200812290012-spnavi.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 3팀에 의한 플레이오프 끝에 우승


[보카 주니어스는 플레이오프 끝에 2008년 전기리그를 제패하였다]

 아르헨티나 리그의 2008년은 12월 23일 보카 주니어스가 새로운 영광을 손에 넣으며 막을 내렸다. 3팀에 의한 플레이오프라는 역사에 남을 격전 끝에 움켜쥔 극적인 우승이었다. 축구계에서 빛나는 역사를 가진 보카가 요 11년간 아무런 타이틀도 획득하지 못했던 적은 2002년뿐이다. 자국 리그뿐만 아니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 등의 큰 무대에서 멋진 결과를 남길 수 있었던 데에는 실패를 교훈 삼으며 그럴 때마다 클럽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카는 그 팬이 많음과 미디어에 등장하는 횟수로도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이지만 2008년 전기 리그에서는 결코 평온함 속에 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기는 19시합을 끝낸 상태에서 산 로렌소, 보카, 티그레 3팀이 12승 3무 4패로 승점 39이어서 3팀에 의한 우승 결정 플레이오프에 돌입(아르헨티나 리그의 정규 시즌에서 득실점차는 순위에 고려되고 있지 않다). 플레이오프에서도 3팀이 승점 3으로 동점이 되어 불과 1골의 차로 보카가 23회째의 영광을 손에 넣었다.

 우승을 결정짓는 3팀에 의한 미니 리그에서 우선 산 로렌소가 티그레(최근 승격한 팀으로 1부에 참전한지 이제 2년째이다)에 2-1로 승리하였다. 이어서 보카가 산 로렌소에 3-1로 승리. 보카의 우승은 너무도 쉬운 듯이 보였다. 왜냐하면 보카가 티그레에 승리는 물론이거니와 1점차로 지더라도 득실점차에서 챔피언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카는 티그레에 0-1로 패하여 우승을 손에 넣은 것인데 타이틀을 다른 팀에게 빼앗길 위기도 있었다. 67분에 실점하였을 때 상대 선수와 맞부딪친 젊은 GK 하비에르 가르시아(Javier Hernán García)가 부상으로 떠남으로 해서, 이 큰 무대가 데뷔전이 되는 약관 20살의 호수에 아얄라(Josué Ayala)가 교체 출장하는 사태로 이어졌던 것이다. 공세를 거듭하는 티그레에 보카도 반격. 결국 0-1인 채 시간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려 보카가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게 되었다.

■ 만신창이인 상태로 움켜쥔 영광

 최종적으로는 우승하였다고는 하지만 올 시즌 보카가 고전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제일 먼저 거론할 수 있는 것이 캡틴이며 에이스 FW인 마르틴 팔레르모(Martín Palermo)의 부재이다. 1930년대에 활약했던 프란시스코 바라요(Francisco Varallo - 현재도 살아있다[각주:1])의 보카의 역대 최다 골 기록[각주:2]을 갱신한 스트라이커는 8월 24일 CA 라누스와의 시합에서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를 다쳐 장기간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또한 팔레르모와 짝을 이루며 국내에서는 베스트 FW라고도 말할 수 있는 로드리고 팔라시오(Rodrigo Palacio)도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예전 리버풀에서 뛰었던[각주:3] CB 가브리엘 팔레타(Gabriel Paletta), 퍼스트 GK인 마우리시오 카란타(Mauricio Caranta)는 감독인 카를로스 이스치아(Carlos Ischia)와 논쟁을 벌인 끝에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되었다. 더욱이 경험 풍부한 SB인 우고 이바라(Hugo Ibarra)와 클라우디오 모렐 로드리게스(Claudio Morel Rodríguez)도 부상당해버렸다.

 그래서 보카는 새로운 인재를 발굴했다. 유스 팀에서 21살의 GK 가르시아, 20살의 DF 후안 포를린(예전 레알 마드리드B에 소속[각주:4]해 있었다), 21살의 DF 파쿤도 롱카글리아(Facundo Roncaglia), 22살의 볼란치인 크리스티안 마누엘 차베스(Cristian Manuel Chávez) 그리고 앞 선에는 21살의 두 공격수 리카르도 노이르(Ricardo Noir)와 놀랄만한 득점감각을 갖춘 루카스 비아트리(Lucas Viatri)를 승격시킨 것이다. 그들은 주력선수들의 포지션을 빼앗을 정도로 성장하여 팀 승리에 공헌하였다.

■ 1998년부터 시작된 팀 개혁

 
[팬들의 존재는 보카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모든 것은 1998년부터 시작되었다. 예전의 영광을 뒤로하고 오랜 기간 트로피에서 멀어져 있던 보카는 이 해에 새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미디어에 이용당하고 있던 팀을 해체하고 선수나 감독을 일신했다. 당시의 보카는 ‘마라도나 2세’라 일컬어졌던[각주:5] 디에고 라토레(Diego Latorre)가 “보카는 난장판이다”고 말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새로운 지휘관으로 카를로스 비안치[각주:6]가 취임하면서 보카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시작으로 한 수많은 영광을 획득하게 된다.

 1995년에 회장에 선출된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 현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장을 맡고 있다)는 어떻게 하면 팀을 재건할 수 있는지 몰랐다. 카를로스 빌라르도[각주:7]에 이어서 엑토르 베이라[각주:8]를 감독에 앉힌 것을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1998년 마크리는 팀을 프로페셔널 집단으로 하기 위해서 비안치를 초빙하였고 동시에 하부조직의 충실을 꾀했다. 또한 보카는 유소년을 위해 ‘클럽 파르케(Club Social y Deportivo Parque)’와 협력체제를 확립하였고 현재는 하부조직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서 큰 선수로는 레돈도(Fernando Redondo), 소린(Juan Pablo Sorín), 리켈메, 가고, 테베스 등 쟁쟁한 면면들이다.

 예전 보카는 선수들을 사 모으는 측이었다. 그러나 마크리는'”10년 안에 11명 중 9명은 클럽 토박이 선수가 될 것이다”고 선언했다. 당시는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평정을 되찾은 팀은 승리를 거듭하며 클럽의 근간이 만들어졌다.

■ 라이벌 리베르의 존재.

 보카는 개혁 이후 국내에서 7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4번, 토요타 컵(현 클럽월드컵)을 2번 제패했다. 또한 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도 2번, 레코파 수다메리카나[각주:9]에서도 3번 우승하였다. 이것은 전부 1998년 이후에 획득한 타이틀이다. 아르헨티나, 남미대륙 거기에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들 대부분은 자신의 가치를 높여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페르난도 가고(레알 마드리드), 에베르 바네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에밀리아노 인수아(Emiliano Insúa, 리버풀), 오스칼 트레호(Oscar Trejo, 마요르카), 세바스티안 나야르(Sebastián Nayar, 레크레아티보), 파비안 몬손(Luciano Fabián Monzón, 베티스), 카를로스 테베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현재 보루시아 MG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FW 로베르토 콜라우티(Roberto Colautti)도 보카의 유스 출신이다.

 한편 보카는 하부조직의 선수육성만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으로 보낸 클럽을 상징하는 선수들을 몇 년인가 후에 다시 불러들임으로 인해 팀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있다. 세바스티안 바타글리아(Sebastián Battaglia, 전 비야레알), 후안 로만 리켈메(바르셀로나, 전 비야레알), 우고 이바라(FC 포르투, 모나코, 에스파뇰), 팔레르모(비야레알, 베티스, 알라베스) 등의 면면들이다. 또한 보카는 ‘등번호 12’로 알려진 가장 잔소리가 심한 팬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거대한 깃발을 휘날리며 팀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보켄세[각주:10](보카의 팬)에게 있어 2008년 전기 리그 우승은 특별한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팀 우승은 물론이거니와 최대의 라이벌인 리버플레이트(리베르)가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최하위로 떨어진 것이다. 1931년 프로 리그화된 이후 리그 우승회수를 따지면 23번의 보카에 비해 리베르는 국내 최다인 33회를 자랑한다(국제 타이틀까지 포함하면 보카는 리베르를 크게 앞서고 있다). 2008년 후기 리그에서는 리베르에 우승을 허용하여 2위로 마쳤던 만큼 그 반년 후에 챔피언 자리를 탈환하였기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리베르가 곧바로 2부로 강등당하지는 않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과거 3년(전기, 후기 3대회 씩)의 성적에서 평균값을 산출하여 하위 2팀이 강등당하기 때문이다(17, 18위 팀은 교체전을 행하게 된다).

  1. 1910년 2월 5일생. [본문으로]
  2. 194골. 보카의 아마 시절까지 포함하면 로베르토 체로(Roberto Cherro)의 221골. [본문으로]
  3. 2006-2007시즌 3경기 출장. [본문으로]
  4. 2007년. [본문으로]
  5. 이 선수가 처음으로 '마라도나2세(New Maradona 혹은 New Diego)'라고 불렸다. [본문으로]
  6. 현재는 보카의 GM [본문으로]
  7. Carlos Bilardo. 그는 1983~1990년까지 마라도나와 함께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감독이다. 월드컵 우승 1회, 준우승 1회. 1996년 보카 감독으로 당시 리그 5위. [본문으로]
  8. Héctor Veira - 1996~1998의 감독. 리그 순위는 각각 9위, 2위, 6위. [본문으로]
  9. Recopa Sudamericana.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코파 수다메리카나의 우승팀이 격돌하는 UEFA의 슈퍼컵과 같은 대회이다. [본문으로]
  10. 철자는 boquense....굳이 각주를 단 이유는....철자 찾기 힘들었거든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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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number.goo.ne.jp/soccer/japan/719/20090106-1-1.html
저자:니노미야 토시오

 

 올 시즌까지만 행하고 철폐되는 J1, J2 교체전[각주:1]에서 살아 남은 팀은 주빌로 이와타(ジュビロ磐田)였다.

 원정 1차전[각주:2]에서 귀중한 동점골을 넣었던 입단 2년째의 마츠우라 타쿠야(松浦 拓弥)가 홈에서 맞이한 베가르타 센다이(ベガルタ仙台)와의 2차전에서도 2골을 넣었으며, 수비를 단단히 한 종료 직전에는 카와구치 요시카츠(川口 能活)가 얼굴로 공을 막아내는 등 전원이 몸을 던지며 수비하여 시합을 마쳤다. 5년에 걸쳐 수 많은 드라마를 만들어 온 교체전의 피날레에 걸맞은 격렬한 사투였다.

 3년 연속으로 J2 팀이 이겼었던 만큼 이와타의 기쁨은 말할 것까지도 없었다. 시합 후 카와구치는 얼굴을 감싸고 울었을 정도다. 그러나 기쁨에 빠져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카와구치는 반성을 담아 말했다.

 “승리에 익숙해 있던 분위기가 있었을 지도 모르며 위기감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좀 더 헝그리한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거 3번 리그를 제패했던 이와타는 올 시즌 난조를 보이며 클럽 사상 최저인 연간 16위로 시즌을 마쳤다. 부상 선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며 카와구치가 말했듯이 선수 측에 위기감 결여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 수년 프런트의 ‘엉성함’이야 말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2006년에 지휘를 맡긴 브라질 출신의 아지우송 바티스타(Adilson Dias Batista[각주:3]) 감독은 상대 팀을 연구하여 그에 따라 전술이나 멤버를 바꾸는 카운터 주체의 수동적인 축구를 도입하였지만 성적부진을 이유로 2007년 9월에 해임되었다. 그 다음으로 톱 팀의 코치였던 우치야마 아츠시(内山 篤)가 승진하여 감독이 되자 아지우송과는 달리 황금기를 구축했던 능동적인 축구로의 회귀를 목표로 하였다. 그 우치야마도 결과를 남기지 못하여 2008년 9월에 초빙된 감독이 잔류를 위한 수비적 전술을 쓴 한스 오프트(Hans Ooft[각주:4])이다. 어느 감독이건 이와타의 축구를 잘 아는 OB지휘관이라고는 하여도 스타일 그 자체가 자주 바뀌어 버린 듯한 인상을 부정할 수 없다. 프런트와 현장이 철저한 방침을 세우고 있었는지 의문부가 찍힌다.

 대조적으로 한때 이와타와 2강 시대를 구축했던 카시마 앤틀러스(鹿島アントラーズ)는 올 시즌 2연패를 달성. 2003년부터 4년간 무관인 시기가 있었어도 토니뉴 세레주(Toninho Cerezo[각주:5])에게 6년간 장기집권을 허용하게 한 것이 키 포인트였다[각주:6]. 카시마의 어느 간부는 이렇게 말하였다.

 “짧은 기간으로는 감독의 가르침 같은 것이 정착되지 않습니다. 오래 해 주길 위해서도 클럽의 방침을 감독에게 확실히 전달하며 감독에게서도 의견을 듣는 커뮤니케이션 작업이 중요한 것이죠.”

 토니뉴 세레주는 연습시간이 끝나도 남아서 어린 선수들을 단련시키는 열혈한이었다. 프런트는 그 점을 높게 평가하며 팀의 저력을 중시하였다. 중장기 계획이 그려졌기에 지금의 부활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프런트의 문제는 불과 1년 만에 J2로 강등당한 토우쿄우 베르디(東京ヴェルディ)에게도 느낀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가 있다곤 하여도 올 시즌 획득하여 계속 선발 멤버로 기용해 온 후쿠니시 타카시(福西 崇史), 도이 요우이치(土肥 洋一)에게 1년 만 쓰고 ‘전력 외 통고’를 내는 것을 보니 장래적인 비전을 그리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올 시즌 선풍을 불러 일으켜 온 나고야 그램퍼스(名古屋グランパス)[각주:7]건 오오이타 트리니타(大分トリニータ)[각주:8]건 명문팀의 부진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장래를 내다보며 프런트와 현장이 일치단결하지 않으면 일순의 영광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빛나는 영광을 쌓아왔던 이와타에게 있어서는 잔류 다툼에 휩싸인 올 시즌의 굴욕을 각성의 계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퇴임하는 오프트도 ‘요 5년간 조금씩 팀의 실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다. 프런트도 확실한 비전을 빨리 제시하지 않는다면 상승군단 부활의 날은 더 멀어질 것이다.

  1. J리그의 승강제는 2004-2008시즌까지 J1의 17위, 18위는 자동강등. J2의 1,2위는 자동승격되었으며 J1의 연간성적 16위와 J2 연간성적 3위는 홈&어웨이로 시합을 하여 이긴 쪽이 강등 혹은 잔류하였다. 2009년부터는 J1 연간성적 하위 3팀은 자동강등, J2 상위 3팀은 자동승격하게 된다. [본문으로]
  2. 1-1 무승부. [본문으로]
  3. 이와타 OB이며 현 브라질 크루제이루 감독. [본문으로]
  4. 그는 1994~1996년까지 이와타의 감독이었다. [본문으로]
  5. 지쿠와 함께 황금의 중반을 담당했던 그 사람. [본문으로]
  6. 2000-2005년까지. 현재는 2007년부터 감독인 오스왈두 올리베이라(Oswaldo De Oliveira Filho)이다. [본문으로]
  7. 2008시즌 3위. [본문으로]
  8. 2008시즌 4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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