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카터'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1.10 좋은 팀과 강 팀 by 渤海之狼
  2. 2007.10.10 야유받은 텐 카터 by 渤海之狼
  3. 2007.09.26 잘 나가는 PSV를 지탱하는 두터운 선수층 by 渤海之狼
  4. 2006.05.17 레이카르트가 크라위프를 넘어설 때 by 渤海之狼 1
  5. 2006.01.23 네덜란드 감독이 잇빠이 by 渤海之狼

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column_cl/20081226-1-1.html
저자: 스기야마 시게키

 파나티나이코스가 16강 진출을 이룩하였다.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원정 경기에서도 승리를 거두어 그룹 리그 1위로 통과.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감독은  바로 그 텐 카터다. 바르셀로나, 첼시 시대에는 조감독으로서 팀을 챔피언스 리그 결승으로 이끈 네덜란드 지도자. 전술가적인 색채가 짙은 감독이다.

 전술가로 일컬어지는 외국인 감독은 대개 대화를 좋아하며 무엇이든 가르치려 한다. 취재가 진행되면 이쪽 취재용 노트와 펜을 뺏어가 종이에 써가면서 해설하려고 한다. 텐 카터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바르셀로나 시대에 두 번의 롱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가 지향하는 공격적 축구에 대해서 이쪽 노트에 펜을 휘갈기며 “자네가 이 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고 싶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가 말하는 공격 축구와 압박 축구는 거의 동의어이다. 볼을 높은 위치에서 빼앗는 작업에서 공격성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상대 볼이 되어도 ‘압박’이라는 [적극적인] 도구를 이용하여 공격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이번 파나티나이코스가 꼭 압박을 무기로 싸우고 있는 듯이 보이지는 않는다. 상대에 따라 싸우는 방식을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감독의 뛰어난 점은 탐색능력에 있다. 공격 축구도 가능하지만 상대의 약점을 파고 드려는 임기웅변적인 대응 전술을 찾아 내는 것도 특기이다. 폭이 넓다.

 한편 공격적인 축구를 표방하는 팀 중에는 볼을 소유할 때는 강하지만 상대 볼이 되는 순간 허둥지둥 대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정신적으로 극단적으로 가라앉으며 속이 안 좋은 듯이 플레이 한다. 은하계 군단을 자칭할 즈음의 레알 마드리드가 그 대표적인 팀이다. 바르셀로나가 나쁠 때도 그런 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며, 이번 파나티나이코스에게 패한 인테르나치오날레에게도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상대 팀 볼이라는 시간대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공격 기회는 더 증가한다. 축구는 더 즐거워진다. 당시 텐 카터는 그것이야말로 목표로 하는 공격적 축구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프리미어 톱 4는 벌써 그러한 것을 갖추고 있다. 볼을 가지고 있을 때도, 상대의 볼일 때도 같은 정신상태로 플레이하고 있다. 스타 선수들을 많이 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하계]다움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그들 강함의 비결이다.

 파나티나이코스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게 좋은 팀다운 모습을 발휘하였지만 프리미어 톱 4를 상대로는 어떨까? 그들은 강 팀이면서도 좋은 팀인 것이다. 최근 챔피언스 리그에서 단순히 좋은 팀이 승리해 나가기 어려운 이유이며 뜻밖의 결과가 팍 준 이유이기도 하다.

 프리미어 톱 4의 엔터테인먼트성은 상승하였지만 한편으로 챔피언스 리그 전체의 엔터테인먼트성은 저하되었다.

 그런 답답함을 텐 카터 이끄는 파나티나이코스가 타파해 줄 것인가? 그들이 결승 토너먼트 1회전에서 시합하는 페예그리니 감독 이끄는 비야레알도 좋은 팀이다. 즉 이는 좋은 팀 vs. 좋은 팀, 명장 vs. 명장인 시합이다.

 이런 실력의 지도자가 일본 대표팀 감독이 된다면 일본 축구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어째든 에스파냐의 4번째 팀으로 16강을 결정지은 아기레 감독 이끄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도 또한 좋은 팀 부류에 속한다. 그룹 리그에서는 “강 & 좋은 팀”인 리버풀과 대등한 시합을 보여주었다.

 에스파냐의 3번째, 4번째 팀은 예전 데포르티보나 발렌시아로 대표되듯이 좋은 팀의 상징이었다. 허술함이 남아 있는 강 팀을 물어뜯으며 승리를 쟁취해 온 과거가 있다. 하지만 요 2~3년은 예전만 못하다. “강 & 좋은”팀에게 굴복해 온 느낌이 든다.

 올 시즌은 어떨까? 텐 카터, 페예그리니, 아기레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기분이다. 그렇지 않으면 챔피언스 리그의 엔터테인먼트성은 어떤 의미에서 확실히 낮아진다. 좋은 팀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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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headlines/20071008-00000018-spnavi-socc.html

저자: 나카타 토오루

아약스의 텐 카터 감독이 첼시의 감독에 취임하다는 보도가 가열 되고 있다. 텐 카터의 대리인, 시기 렌스가 영국 저널리스트들에게 첼시와의 교섭을 말해버렸기 때문에, “기사의 내용은 잘못된 내용뿐이다”라고, 텐 카터가 말했지만, 누구도 믿지 않았다.


7일 스파르타 대 아약스의 시합에서는, 텐 카터가 아약스를 지휘하는 마지막 시합이 될 것이라고 네덜란드에서는 보고 있다.

시합은 스파르타가 2번 선제하여, 아약스가 2번 쫓아가는 형태가 되어, 2-2로 비겼다.

시합 후, “이길 수 있는 시합이었다.”고 스파르타의 안데빌(Gert Aandewiel) 감독은 무승부의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약스는 수위 자리를 페예노르트에게 빼앗겼지만, 운 좋게 승점 1을 획득했다.

90분에 동점 골을 넣은 아약스의 데 용(Siem de Jong, 18세)은, 84분부터 출전했는데, 이것이 데뷔전이었다.


시합 중에는, 아약스의 응원석에서,


[행키는 잉글랜드에 간다]

(행키-텐 카터의 퍼스트 네임, 행크의 애칭. 그러나 이 경우, 굉장히 낮추어 부르는 표현)

[행키는 유럽에서 싸운다]

(아약스는 챔피언스 리그 예비전에서 패했을 뿐만 아니라, UEFA컵에서도 탈락했지만, 첼시는 챔피언스 리그가 남아있다.)

[X같은 야커(John Jaakke - 아약스의 회장)]

[행키, X같에. 야커하고 콜린(텐 카터가 우겨서 데려온 DF - 잉글랜드 챔피언쉽 노르위치 시티에서 10만 유로(약 1억 3천만원)를 주고 데려 왔다. - 역자 주)도 함께 데려가]


라고 야유하는 노래가 계속 이어졌다.


시합 종료 후,

“당신을 향해서 야유하는 노래가 시합 중에 있었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텐 카터는 일순 말을 잇질 못했다. 그러나 자존심을 찾고서는, “내가 아약스를 이끈 41시합에서 승점은 92. 걷어 올린 골은 100이상. 그것이 대답이다”라고 말했다.


기자 회견에서는 첼시와의 교섭에 관한 질문을 계속 피한 텐 카터였지만,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는, “현재 양 팀은 교섭 중. 합의가 된다면 내가 첼시에 갈 가능성은 생기며,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아약스와의 계약(2008년 여름까지)을 지킨다.”라고 팀 간에 교섭이 진행되고 있음을 밝혔다.


아약스와 첼시가 위약금에 합의한다면 텐 카터의 첼시 행이 결정되는데, 그 가능성은 높다. 아약스는 첼시에게서 시장 가격 이상의 위약금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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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708/holland/column/200709/at00014773.html

저자: 나카타 토오루


9월 15일 3연승 중이던 피테세에게 승리.

19일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CSKA 모스크바에게 승리.

23일에는 4연승 중이던 페예노르트에게 승리.

요 일주일간 PSV는 홈에서 강적 3팀을 상대로 연승가도를 달리는 등 승승장구.

그 중에서도 4-0으로 페예노르트를 쳐부순 시합은 서포터들도 흥분.

“지금까지 PSV는 페예노르트와의 시합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기에 설마 4-0으로 이길 줄은 생각도 못했다”
고 시합 후 인터넷 팬 포럼은 활기로 가득 찼다.


올 시즌 PSV의 특필할 만 한 점은 선수층이 두터워졌다는 것이다.

시즌 개막 직전 PSV는 부상 선수가 속출. 8월 19일 개막전 헤라클레스(2-0으로 PSV의 승리)와의 시합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렸다가 겨우 나은 코네(Arouna Koné)를 원 톱에 두는 4-5-1 시스템밖에 할 수 없었다.

계속된 25일 NEC와의 시합은 라조비치(Danko Lazović)를 원 톱으로 했다. 중반은 수비적인 MF 시몬즈(Timmy Simons)의 앞에 아펠라이(Ibrahim Afellay), 페레스(Kenneth Perez), 아이사티(IsmaAissati), 바칼(Otman Bakkal)이라는 4명의 창조적인 MF를 포진시키는 화려함이었다.


곧이어 코네는 세비야로 떠났고, 쿠베르만스(Danny Koevermans)가 AZ에서 이적해 왔다. 9월 1일 트벤테와의 시합(0-0)은 NEC와의 시합과 같은 포메이션으로 임했다.

15일 피테세와의 시합에서는 라조비치와 쿠베르만스의 투 톱으로 행했기에, 아이사티는 벤치로 물러났다. 쿠베르만스는 곧바로 실력을 발휘하여, 지금까지 AZ에서는 볼 수 없었던 멋진 미들 슛을 넣어 PSV 팬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의 축구 관계자들도 놀라게 했다.


피테세의 연승을 스톱시킨 PSV이었지만, NEC와의 시합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시간대와 상대의 시간대가 너무도 확연했다. 다섯 명이나 공격수를 내세운 포메이션은 공격할 때의 시간대에는 어마어마한 창조성을 발휘했지만, 상대가 반격에 나서자 PSV는 간단히 주도권을 넘겨버렸다.

“이 포메이션은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국내용. 유럽용은 아니다”

피테세와의 시합 후 그렇게 통감한 로날트 쿠만 감독은, CSKA 모스크바와의 시합에서 [위닝 팀, 네버 체인지]의 원칙을 깼다.


■ 4명을 바꾸고, 불의의 사고도 극복한 CSKA와의 시합

페예노르트와의 시합에서 2득점을 올린 새로 입단한 페레스(왼쪽). 올 시즌 PSV의 특징은 선수층이 굉장히 두텁다는 것이다.

CSKA 모스크바와의 시합에서는 피테세와의 시합 선발 멤버에서 DF 크롬캄프(Jan Kromkamp), 조네베르트(Mike Zonneveld)-출장정지처분-, MF 바칼-부상-, 페레스가 빠지고, 다 코스타(Manuel da Costa), 아우시제스(Alcides), MF 멘데스(Edison Mez), 컬리나(Jason Čulina)를 기용, 실로 4명이나 바뀌었다.

다 코스타, 아도(Eric Addo), 살시도(Carlos Salcido) 세 명으로 바그네르 러브(Vagner love)와 죠(J 막고, 멘데스와 아우시제스가 측면을 경계, 시몬즈가 앵커가 되었고, 컬리나가 소방수가 되는 수비 중시의 포진이었다. 그 때문인지 PSV의 전반전은 적극성이 부족하여, CSKA 모스크바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후반 PSV는 CB, 양 사이드의 MF, 컬리나가 공격 참가를 늘려 팀 전체가 전진하여 빅 찬스를 몇 번이나 맞이하였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첫 출장인 투 톱, 쿠베르만스와 라조비치는 슛 순간에 너무 경직되어 0-0인 채로 시합이 진행되었다. 여기서 팀을 구한 것이 전반 도중 발가락이 부러져 퇴장한 아펠라이를 대신해서 등장한 베테랑 페레스였다.

59분, 쿠베르만스가 원 터치로 페레스에게 볼을 흘려주자 상대 DF를 끌어들이면서 페레스는 라조비치에게 스루 패스. 라조비치는 GK의 타이밍을 놓치게 하는 인사이드 킥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멋진 콤비를 쌓아 나가고 있는 라조비치와 쿠베르만스와의 사이에 페레스가 중간에 끼어들어 PSV는 트리오에 위한 콤비네이션을 손에 넣었다.


1점 빼앗긴 CSKA 모스크바는 맹반격에 나섰다.

PSV에게 있어서는 식은땀을 흘리게 하는 장면이 속출, 언제 동점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80분 PSV는 카운터를 멋지게 성공시킨다. 페레스가 CSKA 모스크바 골의 니어 사이드를 꿰뚫는 골로 팀을 2-0으로 이끌었다.

전 시합에서 4명의 선수를 바꾸어, 거기에 전반 도중에 아펠라이를 잃는 불의의 사고를 맞이했던 PSV였지만, 그래도 CSKA 모스크바에 확실히 2-1로 이겼다. 그 중에서도 페레스는 준비도 하지 못했던 급작스런 출장이었지만, 곧바로 시합 흐름을 타고 1골 1어시스트라는 활약을 보였다.


“도중 출장은 당신에게 있어선 특기이죠?”

시합 후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을 받은 페레스는,

“아니. 마음이 아프다”

라고 미소를 지으면서 곧바로 답변했다.

AZ에서 급성장하여 지난 시즌 아약스로 이적했던 페레스이지만 스나이데르의 영향으로 인해 거의 도중 출장이었다. 그래도 27시합에서 12골은 대단하다. 페레스에게 있어서는 AZ 시대의 13골에 이은 자기 기록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즌에 들어서도 아약스의 텐 카터 감독은 “스나이데르가 이적하게 되어도 페레스는 주전 멤버가 아니다”라고 페레스의 기용법을 명확하게 하여, 페레스를 실망시켰다.

“아약스에서 주전 멤버가 될 수 없다면 다른 팀에서 주전이 되겠다.”

그렇게 결심한 페레스는 라이벌 PSV로 왔다. 그렇기에 “도중 출장은 페레스에게 있어서 특기다”라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 말에 페레스가 “예. 그렇죠.”라고 응대할 수가 없었다.


■ PSV의 선수층이 두터워진 4개의 이유


지난 시즌 네덜란드 선수 득점왕 쿠베르만스는 AZ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PSV로 이적해 왔다.

페레스와 같은 분노는, 쿠베르만스와 라조비치에게도 있다.

지난 시즌 22골을 넣어, 네덜란드 선수들 중에서는 톱 스코얼러가 된 쿠베르만스이지만 올 시즌은 여름 준비기간 동안 판 할 감독과의 관계가 좋지 않게 되었다.

AZ는 올 시즌 아리(Ari da Silva Ferreira)[각주:1], 펠레(Graziano Pellè)[각주:2]라는 재능 풍부한 FW를 획득하였기에, 판 할 감독은 새로운 시즌의 투 톱의 제 1옵션을 뎀베레(Moussa Dembélé)와 아리의 콤비로 하기로 하여 쿠베르만스는 '핀치히터'[각주:3]로 벤치 스타트의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쿠베르만스는 페예노르트로의 이적을 열망했지만, PSV에 오게 되었다.


라조비치는 몇 년에 걸친 분노다.

페예노르트에서는 휠리트 감독과 에르빈 쿠만 감독도 라조비치를 신뢰하지 않았다. 라조비치는 레버쿠젠, 파르티잔 베오그라드, 피테세를 전전하면서 차츰 네덜란드의 톱 클럽 PSV에 입단하는 찬스를 잡았다.


PSV의 선수층이 두터워진 것은,


1) 지난 시즌과 비교해서 선수가 성장했다.

-> 아도, 컬리나, 아펠라이 등


2) 다른 팀에 렌탈로 가서 성장하여 돌아왔다.

-> 아이사티, 바칼(둘 다 트벤테)


3) 이적이 예상되었지만, 팀에 남았다.

-> 고메스(Gomes), 바이리넨(Mika Vynen), 파르판(Jefferson Farfán)


4) 다른 팀에서 획득

-> 라조비치, 쿠베르만스, 페레스, 조네베르트 등


이란 4개의 항목 별로 이유가 있는데 특히 라조비치, 쿠베르만스, 페레스는 라이벌 팀에서의 선물과 같은 것이었다. 빅 클럽에서 쫓겨나 혹은 스스로 떠날 결심을 한 그 들 세 명의 동기 부여가 높았던 점, 새로운 기분으로 리셋된 것은 다른 팀에게 있어선 위협이다.


페예노르트와의 시합에서도 쿠만 감독은 선수를 대폭으로 바꾸었다.

CSKA 모스크바와의 시합에서 뛰던 DF 다 코스타, 아우시제스, MF 아펠라이-부상-, FW 쿠베르만스가 빠지고, 페예노르트와의 시합에서는 DF 크롬캄프, 조네베르트, MF 페레스, FW 파르판이 선발하여, 포메이션은 3-5-2에서 4-4-2로 돌아왔다.


■ 12번째 이후의 선수의 격차


지난 시즌의 대부진이 거짓말같이 개막 4연승으로 절호조인 페예노르트였지만, 전 라운드 로다 JC와의 시합에서 플라르(Ron Vlaar)가 부상-장기 이탈한 만큼 수비진이 무너져, 대량 4실점을 허용해 버렸다. 페예노르트는 주전 11명의 수준은 높지만, 12번 째 이후의 선수와의 수준 차이도 또한 크다.

한 편, PSV는 개막전부터 자유로이 멤버, 포메이션을 바꾸고 있다. 부상으로 인한 소극적인 변경이라도, 전술적인 이유로 인한 적극적인 변경이라도, 쿠만 감독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페예노르트와의 시합에서는 투 톱이면서도, 센터에는 라조비치 한 명을 세우고, 파르판을 일부러 왼쪽 사이드에 붙어있게 하여, 왼발잡이 오른쪽 CB인 호플란트(Kevin Hofland)를 끌어냈다. 이렇게 해서 호플란트는 약점인 쫓아다니며 플레이 하는 것이 많아지게 되었고, 또한 특기인 왼발 롱 패스도 제한되었다.


페레스는 또 다시 CSKA 모스크바와의 시합에 이은 2골로 활약했다. 그러나 쿠만 감독은,

“페레스의 이름을 활약한 선수로써 언급하기는 쉽다. 오늘 굉장했던 선수는 컬리나다.”라고 지금까지 테크닉이 부족하고, 팬들에게서 이름이 꼭 집혀서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았던 컬리나의 성장을 기뻐했다.

컬리나는 테크닉은 여전히 톱 레벨과 비교하면 동떨어진 수준이지만, 최근 여러 포지션을 맡을 수 있는 올 라운더로써 평가받고 있다. 그러한 멀티 플레이어가 페예노르트와의 시합에서는 풍부한 운동량으로 중반에서의 우세를 가져와, 거기에 1어시스트도 기록했다. 컬리나와 같은 지난 시즌부터 있던 선수의 성장. 이것도 또한 PSV의 선수층을 두텁게 하는데 공헌하고 있다.


지난 시즌 PSV의 너무나도 얇은 선수층을 걱정했지만 올 시즌은 보강이 잘 이루어져 굉장히 선수층이 두터워 졌다. 지금은 강팀을 쓰러뜨림으로 인해 PSV의 선수들은 자신들의 강함을 알게 되고, 자신감이 생겨, 더욱 레벨 업하고 있는 시기일 것이다. 피테세와의 시합부터 1주일 간, 페예노르트와의 시합으로 팀으로써 일 단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걱정되는 점도 있다.

지금까지 네덜란드 리그에서 5시합 연속 무실점이라는 견고한 수비가 눈에 띄는 PSV이지만, CSKA 모스크바의 바그네르 러브와 죠에게는 상당히 고전했다. 겨울 모스크바로의 원정 경기도 힘들겠지만 인테르나치오날레, 페네르바체와의 원정 경기도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강적과 원정에서 싸울 때 단번에 PSV의 방파제가 무너져,그 후의 국내 리그에 영향이 생긴다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Kalmar FF에서 이적. [본문으로]
  2. US Lecce에서 이적. [본문으로]
  3. 야구 용어지만, 네덜란드에서는 2005년 야구 월드컵 개최 이후, 축구 용어로도 사용되며 정착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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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60511.html

저자: 스즈이 토모히코

바르셀로나는 5월 3일 셀타전에서 이겨 2시즌 연속 18번째 리그 우승을 결정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FC 바르셀로나의 우승이 결정된 날의 밤은 중심가인 란브라스 거리에서 미친 듯이 기뻐하는 것이 통례. 기쁨은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자전거나 쓰레기통이 불타오르고 신호등은 파괴되었다. 더욱이 오버인지 소동을 탄 계획적 범행인지 안경점의 유리를 부수고 들어가 1000개의 선글라스를 도난당했다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우승이라는 축하할 일에 묻혀 “헤~ 그렇군요.”라는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도 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그렇게 진기한 일도 아니어서 그런가? 여전히 도둑에 위한 피해자 수는 유럽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아니 어쩌면 넘버 원일수도. 첼시에게 이긴 밤도 그러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경찰대가 곤봉을 휘두른 상대는 잉글랜드인 뿐만 아니라 카타란인도 있었다. 승리 = 폭동. 상식적인 이야기.


 카타란인을 거기까지 미치게 한 것은 바르샤이며 호나우지뉴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리그 초반전은 굉장히 고전했다. 7라운드의 시점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수위였으며 FC바르셀로나는 5위(2승1패4무). 캄프 노우에서는 선수들에게 야유가 쏟아졌다. 특히 마르케스에게…….


 레이카르트는 최종 라인에서 볼을 컨트롤할 수 있는 선수를 원했다. 그 전에 감독을 맡고 있던 판 할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과르디올라나 코퀴, 셀라데스를 시험했지만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에 단념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지금은 전술이 진보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레알에서는 이반 캄포가 노이노제에 걸렸지만 마르케스는 야유를 견뎌냈다. 그가 질 놓은 퍼포먼스로 레이카르트의 기대에 응하게 된 것이 바르샤 진격의 시작이었다.


 수비가 안정되자 바르샤는 연승가도를 질주했다. 그래도 레이카르트의 오른팔인 텐 카터는 수비진을 더욱 조였다. 시합에 따라서는 감독보다도 많이 사이드라인으로 튀어 나오는 횟수가 많을 정도였다. 스파르타크 로테르담을 2부로 떨어뜨린 괴로운 경험이 있는 레이카르트가 명감독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도 파트너인 텐 카터와의 절묘한 컴비네이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호나우지뉴가 있었다고 하여도.


 거기에 미드필드진이 연주하는 바르샤 특유의 템포는 산뜻했다. 사비, 모타, 에드밀손들이 부상으로 이탈하여도 여전히 기능했다. 포워드라인의 셋(호나우지뉴, 에토오, 메시)은 상황에 따라서 앞에서 기다리며 기회를 노린다. 자연히 상대에게 퍼스트 체크를 하는 것은 MF. 상대 진영에서 볼을 가지고 가는 것도 그들의 역할. 이것은 어느 팀에게도 말할 수 있겠지만, 저렇게 놓은 DF 라인을 지킬 수 있는 것도 미드필드진의 빠른 작업과 리듬이 좋기 때문에. 리그 초반의 저조한 성적은 지금의 형태가 되기 위한 수업료라고 할 수 있다. 아틀레티코의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바보가 되었던 푸욜의 뒷 공간은, 그 후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호나우지뉴의 왼쪽 사이드라는 것도 판 할 시대와 겹친다. 그 때는 히바우두가 절대 왼쪽에 붙는 것을 거부. 중앙에서의 플레이를 고집했기에 한 번은 세비야와의 원정 멤버에서 제외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호나우지뉴는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은 역시 레이카르트의 인덕에 위한 것이 크다.


 96-97 시즌. 감독이었던 바비 롭슨은 '호나우두가 전술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다. 판 할은 리그 연패는 했지만, 선수와 팬에게는 미움 받았다. 레이카르트는 과거 10년 동안 가장 바르셀로나에 기쁨을 선사한 감독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크라위프에게 필적하진 못했다.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하지 못하면 언제까지라도 드림 팀의 잔상을 떨칠 수 없다. 그 때는 좋았다……고. 하지만 이젠 너무 오래된 이야기다. 파리에서 바르샤는 신시대를 구축하고 일본에서 행해지는 세계 클럽 선수권으로 향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는 바르셀로나의 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또 광희난무? 상상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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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column_cl/20051214.html

 마르코 판 바스턴(네덜란드), 거스 히딩크(호주), 레오 벤하커(트리니다드 토바고), 딕 아드보카드(대한민국).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표팀 감독에는 네덜란드 출신 감독이 4명이나 출장한다. 조사해 보진 않았지만 같은 나라 출신의 감독이 4개국의 대표팀 감독으로 지휘를 하는 것은 아마도 월드컵 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세계는 지금 공격 축구의 시대. 그 흐름 속에서 맞이하는 독일 월드컵을 당연히 필자도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4명의 네덜란드 감독의 존재는 그야말로 시대의 상징으로 공격축구의 원조인 나라의 감독들이 중용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네덜란드의 감독들은 중용되고 있다. 레이카르트(&텐 카터 조감독), 코 아드리안세(포르투)와 로날드 쿠만, 데니 블린트 그리고 호주 국가 대표 감독인 거스 히딩크. 그 수는 5. 이쪽은 틀림없이 사상 처음으로 세계는 지금 공격 축구의 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 감독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5명 중 4명이 그룹 리그 돌파에 성공했다. 마지막 주를 맞이하여 가장 위험에 처해 있던 것은 코 아드리안세(포르투)와 쿠만(벤피카)이었다. 둘 다 그룹리그 최하위. 승리하지 않고선 16강에 오르는 길은 없었다.

 

 쿠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대전하였다. 나는 모리뉴와 인터뷰했던 2년전의 일이 생각났다. 때는 결승 토너먼트 1회전이 행해지기 2~3일전. 모리뉴가 이끄는 포르투의 대전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퍼거슨은 확실히 명장이지만 그의 축구에 전술적인 결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난 그 곳을 철저히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승리했다.

 

 네덜란드의 양 감독은 어떠했을까? 코 아드리안세는 실패했지만, 쿠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결전에서 멋진 승리를 이루어냈다. 그것도 몇 명의 주력선수가 결장했는데도 말이다. 2년전의 포르투처럼 계속 승리해 나가며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진 않지만 맨체스터에게 승리함으로써 그의 주가는 크게 올라갔음이 분명하다.

 

 쿠만, 판 바스턴, 레이카르트 이 세명은 88년 유럽선수권 서독 대회에서 우승할 당시의 주력 멤버이다.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지 못한다는 말은 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선배인 크라위프도 예외였다. 그들에게 공통되는 점은 무엇인가? 젊은 감독 3명도, 크라이프도 FIFA20세기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한 고 리뉘스 미헐스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경험이 있다. 준우승한 74년 서독 월드컵 대회, 우승한 88년 서독 유럽선수권에서도 지휘를 잡은 것은 미켈스였다. 이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헐스처럼 공격 축구의 발전에 기여해 온 아리고 자키는 미헐스에 대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미헐스가 나타나기 전과 후의 축구에 있어서의 생각 방식이 전혀 별개가 되었다. 그가 만든 토탈싸커는 그럴 정도로 참신한 것이었다.

 

 그의 아들에 해당하는 크라위프, 손자에 해당하는 쿠만, 레이카르트, 판 바스턴은 사랑스러운 제자라 할 수 있다. 그들을 포함한 네덜란드의 감독들이 독일에서 행해지는 내년 월드컵 대회에서 주목을 받는 것에 인과율의 법칙을 느끼는 것은 나 뿐일까?

 

 모리뉴는 올 시즌에 초에 프리미어에서 주목할 팀으로 토튼햄을 꼽았다. 그리고 실제 토튼햄은 리그 4위권 내에 있다. 감독은 네덜란드에서 년간 최우수감독을 수상한 경험이 있는 마틴 욜이 맡고 있다.

 

 불행하게도 일본은 그 흐름 속에서 빠져있다. 공격축구라는 단어가 활발히 쓰이기는 하지만 이유로써, 이론으로써는 확실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기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그 때, 방제가 아닌 히딩크가 나고야 그램퍼스의 감독을 맡았다면 지금의 일본은 어떠했을까? 그 때라고 하는 것은 94년으로 신감독을 찾고 있던 나고야 그램퍼스는 히딩크에게 접근했었다. 방제로 방향이 바뀐 것은 그야말로 최후의 순간. 만약 그램퍼스의 감독으로 히딩크가 취임했었다면..... 방제에게 불만을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후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 히딩크는 2004년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고, 2006년에는 호주의 감독으로 일본과 대전하게 되었다.

 

 바로셀로나의 조감독 텐 카터에게 필자는 일본의 감독으로 와주세요라고 인터뷰 중에 농담삼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나에게는 일본에 많은 친구들이 있다. 일본의 축구도 자세히 알고 있다. 내가 일본 대표의 감독이라면 일본의 디펜스 시스템을 2~3개월 안에 재건해 보이겠다. 하지만 레이카르트와 3년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기에 지금 일본에 가는 것은 무리겠지만……”

 

 이번 시즌이 그 3년째. 내년 텐 카테가 새로운 계약을 맺지 않는 한 자유로운 몸이 된다. 내가 카와부치회장이라면 망설이 없이 그에게 감독 계약을 맺자고 할 것이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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