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와타나베 마사유키
"시합이 아닌 전쟁이다"고 하는 이스탄불 더비에는 경찰도 다수 출동
[세계에서 가장 큰 더비의 하나]
보통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어느 더비를 떠올릴까? 밀라노 더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셀틱과 레인저스의 글래스고 더비? 사람에 따라 떠올리는 더비는 틀릴 것이다. '리그가 있는 곳엔 반드시 더비가 존재한다'고 단언할 정도로 더비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각각의 나라, 응원하는 클럽에 따라, 더비의 가치는 틀려지는 것이다.
터키에도 많은 더비가 존재한다. 흑해 지방의 클럽이 시합을 하는 흑해 더비, 에게해 지방의 클럽이 에게해 더비, 수도 앙카라에도 더비가 있다. 하지만 터키에서 더비라고 하면 이스탄불 더비를 지칭한다. 이스탄불에는 갈라타사라이, 페네르바체, 베식타시라는 3개의 빅클럽이 있지만 특히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체간 행해지는 이스탄불 더비가 터키에서 가장 커다란 더비이다. 많은 터키인들에게 있어서 더비라고 하면 이 이스탄불 더비를 지칭한다.
더비에는 같은 도시나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클럽이 시합을 하는 로컬 더비와 그 나라를 대표하는 클럽간에 하는 내셔널 더비로 나누어진다. 이스탄불 더비는 그 이름대로 이스탄불을 거점으로 하는 클럽이 시합을 하는 로컬더비이다. 하지만 이 두 클럽은 터키에서 가장 많은 서포터를 보유한 클럽. 그 수는 국민 7000만 중 약 7할에 해당하는 5000만 명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이스탄불 더비는 로컬 더비이면서도 나라 전체를 끌어들이는 내셔널 더비이기도 한 것이다.
터키 축구팬에게 있어서 더비는 축제이다. 터키 축구계가 가장 고조되는 것이 이 더비가 행해지는 시기. 작년 이스탄불에서 챔피언스리그의 결승과 이스탄불 더비가 겹쳤던 때에도 이스탄불의 거리는 챔피언스리그는 내팽겨 치고 더비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제목에 나온 말은 더비에 관하여 터키의 미디어가 보도할 때 반드시 사용하는 문구. 터키에서는 대전하는 클럽의 역사와 팬들 간 종교의 차이, 계급차로 판단하여 이스탄불 더비는 글래스고 더비, 부에노스아이레스 더비와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더비의 하나]로 보도하고 있다. 우리들 제 삼자가 보기에는 좀 과장된 표현으로 느낄 이러한 표현도 양팀 서포터의 수가 5000만인이라는 숫자로 생각해보면 [착각]이나 [과언]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호적인 관계였던 두 클럽
자칭 '세계에서 가장 큰'이라는 이스탄불 더비는 대체 어떠한 것일까?
양 클럽의 서포터는 [더비는 시합이 아니다. 전쟁이다]고 매 시합 뜨거워진다. [전쟁이다라는 등의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터키에서는 소동이나 난투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라는 비판적인 의견도 있지만, 현재 이스탄불 더비는 시합이라기보다는 전쟁인 것이다. 실제 양 서포터가 충돌하여 피 흘리는 일 없이 끝난 적은 없다고 말해도 좋다.
무엇이 여기까지 양 클럽을 불태우는 것일까?
이스탄불 더비에는 글래스고와 같은 종교적인 배경도,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같은 계급차에 의한 배경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 있는 것은 양 클럽의 약 100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 쌓여진 라이벌심뿐이다.
갈라타사라이는 1905년, 페네르바체는 1907년에 창립된 역사 있는 클럽이다. 갈라타사라이는 지금도 터키의 엘리트 학교로 유명한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가 만든 스포츠클럽이다. 당시 이스탄불에 살고 있던 잉글랜드사람들이 만든 스포츠 클럽에 대항하기 위해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모아서 만든 클럽. 그것에 대하는 페네르바체도 갈라타사라이와 같이 잉글랜드사람들의 클럽에 대항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만든 것은 시민이며 갈라타사라이에 비하면 일반사람들에게 열린 클럽이었다.
양팀은 97년 전인 1909년 1월 17일에 처음으로 시합을 하여 당시엔 2-0으로 갈라타사라이가 승리했다. 당초 '엘리트 학교의 갈라타사라이'에 대하여, '시민의 페네르바체'라는 조그마한 계급차가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과격한 라이벌 관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경재 상대라는 느낌으로 양팀의 관계도 양호했다.
라이벌 의식이 과격해진 것은 근년이 이르러서라고 한다. 현재도 뜨겁게 응원하는 늙은 베테랑 축구 팬에게 당시의 상황을 물어보자 "그때는 상대 팀의 서포터라도 바로 옆에 앉아서 각각의 클럽을 응원했다. 물론 지금과 변함없는 분위기가 있었지. 라이벌에게는 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필사적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전쟁이다'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굉장히 멋진 분위기가 스타디움에는 있었다"고 옛날이 그리운 듯이 말했다.
354회째의 이스탄불 더비는 홈인 페네르바체가 갈라타사라이를 4-0으로 대파
그렇다면 무엇이 양 클럽 관계를 악화시킨 것일까?
전국 리그로 시작한 1959년 이후의 리그 우승 횟수가 나타내듯이(갈라타사라이 15회, 페네르바체가 16회) 양 클럽이 터키 축구계의 맹주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것 그리고 같은 도시에 거점을 두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강렬한 라이벌심이 관계를 변화시킨 커다란 요인인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관계악화의 원인으로 미디어가 발달한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써 들 수 있다. 특히 TV의 보급에 따라 [외국에서는 같은 도시의 클럽간의 시합은 대항의식이 있어 과격하게 불타오르는 것 같다]라는 정보가 일반 터키사람들에게 보급되었다. 이것이 더비의 분위기를 바꾸는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고도 한다.
또한 1988년 리그가 민영화된 것도 더비의 변화에 박차를 가했다. 민영화에 따라 각 클럽이 많은 자유를 얻은 이해를 기점으로, 지금은 당연한 것이 되어있는 원정팀 서포터용의 자리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기념할만한 최초의 원정팀 서포터 자리를 차지한 것은 갈라타사라이와의 더비를 관전했던 페네르바체 서포터였다고 한다.
이러한 양팀 관계 악화를 선동하는 상징적인 것으로 클럽의 커다란 수입원이 되는 서포터 굿즈를 들 수 있다. 더비에서의 대승을 기념하여 곧바로 여러 가지 굿즈가 상품화되어 판매된다. 페네르바체는 2002년에 6-0으로 승리했던 기념 머플러를, 갈라타사라이는 작년에 5-1로 승리했던 기념 T셔츠를 판매했다. 서포터들에게 있어서는 상대를 도발하는 멋진 도구이며 상대 서포터는 그 굿즈를 볼 때마다 굴욕적인 대패를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다.
97년이라는 역사 속에 터키 축구를 둘러싼 환경은 크게 변하여 [더비는 전쟁]이라고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클럽 자체의 사정도 변했다. 갈라타사라이는 임원진 등 클럽의 상층부만은 엘리트 학교의 피를 이어받고 있지만, 티켓도 싸며 서포터에 대하여도 열린 클럽이다. 반대로 페네르바체는 서포터 카드를 만들어 카드 구입자에게 우선적으로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일반 판매의 티켓도 비싸다. 스타디움에 관해서도 터키에서 유일하게 근대적인 스타디움을 가진 페네르바체에 비해 갈라타사라이는 노후화된 스타디움을 사용하고 있다.
어느 쪽이 엘리트 팀인지 지금은 양 팀의 상황에서 설립 당시의 클럽 상황을 엿보는 것이 어렵다.
이렇게 입장이 역전되고 있는 페네르바체의 회장이나 임원은 종종 갈라타사라이를 쪽주는 발언을 한다. [갈라타사라이가 계획중인 새로운 스타디움 건설예정지를 가로채어 페네르바체의 시설을 만들 수 있다]고 협박을 한 적도 있다. 갈라타사라이가 이런 발언에 화가 나는 것은 틀림이 없다. 이러한 클럽 사정의 변화에 따른 양 팀의 적대적인 모습도 관계를 악화시키는 하나의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자칭 [세계 최고]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1909년에 이뤄진 제 1회째부터 354회째의 이스탄불 더비가 열린 4월 22일, 페네르바체가 갈라타사라이를 4-0으로 이겨 다음 시즌에 기념 굿즈가 만들어질 예감이 들 대승을 거두었다.
이번 시즌 양 클럽은 근년 볼 수 없었던 격한 우승 싸움을 하고 있다. 이번회의 더비는 리그 우승의 행방을 좌우하는 분수령. 세계의 더비라는 말에 어울리는 절호의 무대가 세워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제나와 같이 시합 전에는 양 클럽에 의한 설전이 펼쳐졌다. 서포터도 거기에 호응하듯이 텐션이 높아져 갔기 때문에 경비에 4400명이라는 경찰이 들어섰다. 정말로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되어질 정도의 숫자이다. 그러나 이정도로 엄중한 체제를 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도중에 갈라타사라이의 서포터가 페네르바체 서포터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가는 사건이 있었다.
요즘 세계 축구계는 폭행 행위에 대하여 엄격한 태도로 임하고 있으며, FIFA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반하는 행위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방침을 나타내고 있다. 강한 라이벌심이 있기에 소동이 일어나지만 폭력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 터키사람들도 그것은 알고 있어, 시합 후에는 [어째서 축구 시합에 4400명이라는 경찰이 필요한 것인가? 이것은 터키 축구의 치욕이다]라는 토론이 행해졌다. 폭력은 이스탄불 더비의 문제점이기도 하며, ‘야만’이라는 이름표를 달려고 하는 터키 축구가 가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스탄불 더비가 세계 축구 팬들이 인정하는 '진정한' 세계에서 가장 큰 더비가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스탄불 더비에는 종교나, 계급차에 의한 배경이 없다. 열광의 근원은 순수한 라이벌심뿐이다. 결국 사회적인 배경이 없는 만큼 지금부터의 노력에 따라서는 폭력을 없애고, 세계의 축구 팬이 한번은 방문하는 것을 동경하는 더비가 될 가능성이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늙은 축구 팬이 말한 '스타디움의 멋진 분위기'를 반드시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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