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ports.goo.ne.jp/soccer/column/number-3999-1/
저자: 유게 타카시

 AC Milan v Los Angeles Galaxy7월 7일에 히우 지 자네이루의 교회에서 밀란 FW 파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것을 전해들은 오너 베를루스코니는 이렇게 말했다.

 “거 곤란했겠군. 부부의 결혼 맹세를 받는 신 즉 나는 그 때 라퀼라 서미트를 주도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유머를 날릴 정도로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라는 인물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억지로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3개의 민영방송국을 포함한 매스미디어를 좌지우지하며 부동산 개발 및 보험, 금융기관의 대주주에 개인총자산이 약 7조 7천억 원이 넘는 현역 내각수상]. 너무도 황당무계하여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밀란의 대개혁에 착수한 레오나르두 신감독.

 그의 소유물 중 하나인 AC밀란은 작년 약 1144억 원의 적자를 내었다. 원인은 출장을 놓친 CL의 보수가 줄어든 것과 약 2119억 원에 달하고 있던 선수들의 총 연봉 지출. 오너가 자신의 돈으로 보충은 했지만 매일 국가 경제문제 해결에 분주한 수상에게 있어서 그냥 두고만 넘길 수 없는 숫자였다. [연봉 총액 30%를 줄여라]는 호령 하에 최고 연봉을 받고 있던 카카는 레알 마드리드로 팔려갔다. 오랜 기간 팀의 상징이었던 주장 말디니는 은퇴하였으며, 명장 안첼로티도 떠났다. 경영의 건전화와 어린 선수들의 육성강화를 내세운 밀란은 현재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오너는 예전 카펠로(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와 마찬가지로 현역은퇴 후 프런트 업무경험을 쌓고 있던 자팀의 옛 선수를 감독으로 임명하였다.

 카펠로는 지장 사키의 성공에 이어 90년대 초반 황금시대를 쌓았다. 안첼로티 장기집권의 뒤를 맡게 된 것은 클럽의 조직철학을 낫낫이 알고 있는 청년간부 레오나르두였다. 지적이며 스마트한 신감독은 선발멤버 편성부터 선수들의 간식 메뉴까지 간섭하는 오너의 의향에 거스르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호나우지뉴조차 일개 선수. 신생 밀란의 방침이란?

 감독경험이 전혀 없는 ‘레오’는 취임에 앞서 코칭 스태프는 물론 연습장의 잔디관리인, 식당의 웨이터나 청소부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의 밀란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귀를 기울였다. 목적은 클럽을 구성하는 전원의 동기부여와 인식의 공유였다.

 선수들에게는 [달려라! 공격하라! 즐겨라!]를 슬로건을 내세움과 동시에 [양 SB의 동시공격참가], [2터치 플레이의 철저] 등 측면 공격력 증가와 슛 기회의 다양화를 위한 플레이 10개조를 제시하였다. 새로운 기본 포진은 [4-3-3]으로 아무리 호나우지뉴라 하더라도 특별취급을 하지 않는다. 12일 행해진 올 시즌 첫 연습시합을 보러 달려온 오너이자 수상은 호나우지뉴를 식당의 테이블 앞에 서게 해서 “올 시즌은 프로다운 행동을 하겠습니다. 승리를 위해서 전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팀 전원 앞에서 맹세하게 하였다.

‘레오’는 시끄러운 오너를 입다물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서포터 중에는 여전히 카카를 떠나 보낸대 대한 불만이 여전하다. 5월에 발각된 두바이의 자본 그룹 [ADUG]에 의한 말란 주식 취득공작이라는 불씨도 꺼지지 않고 남아있다. 밀란은 선수층, 감독, 포진, 보강방침 등 모든 면에서 지난 시즌과는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지휘관은 국내외 라이벌들의 대형보강이나 주위의 잡음에 휘둘리는 일 없이 견실한 방식으로 싸워가는 자세를 요구 받고 있다. 레오나르두 역시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축구에는 스피드와 터프함이 불가결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전원의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들에게 있는 잠재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다면 멋진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베를루스코니는 강경한 2톱 신봉자이지만 파투, 인차기, 호나우지뉴에 의한 레오나르두의 3톱 구상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오너가 정쟁에 바쁜 동안, 조용히 그리고 깔끔히 레오나르두의 개혁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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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serie_a/20090318-1-1.html
저자: 사카마키 요우코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세리에vs.프리미어 대결은 3시합 전부 프리미어가 승리했다. 세리에 팀들의 패배방식은 각각 달랐지만 상대에게 겁먹어 특히 홈 게임에서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던 점에 있어서는 같았다고 생각한다.

 패배의 치욕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하더라도 이번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세리에 패퇴로 리그에 어두운 현실이 드리워지게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를 포함한 유럽 대회에서 우디네세를 제외한 세리에 팀들의 조기 패퇴로 인하여 UEFA에 있어서 세리에의 위치가 위험해 진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 본선 출전권 하나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챔피언스 리그 출전 자격은 UEFA 랭킹 상위 3개국에 4장의 출전권. 즉 본선 2장, 예선출전권 2장이 주어져 UEFA 랭킹 4위 이하(6위까지)가 되면 본선 출전권이 한 장이 줄어 출전권은 예선출전권 포함해서 3장이 된다. 최신 UEFA 랭킹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3위(62p). 참고로 1위는 잉글랜드(76p). 거기에 3p차로 에스파냐가 2위에 올라가 있다. 독일이 현 시점에서 54p로 4위이지만 이번에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입성한 바이에른 뮌헨의 성적에 따라서는 이탈리아와의 포인트 차가 줄어들 수도 있다.

 순위를 정하는 포인트의 환산방법을 설명해 본다.
 UEFA 랭킹은 과거 5시즌의 유럽 대회에서의 성적을 대상으로 하며 이기면 2점, 비기면 1점, 8강 이상으로 진출하면 1점이 추가되는 방식. 가령 바이에른 뮌헨이 계속 승리해 나가고 거기에  UEFA 컵에서 브레멘과 함부르크의 성적이 세리에A에서 유일하게 남은 우디네세를 상회하면 이탈리아는 4위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한 자리를 잃으면 자연스레 이미지 다운과 수입 저하가 따라붙는다. 이번 잉글랜드의 ‘이탈리아 격침’은 예상보다 더 큰 상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 이탈리아는 2위 에스파냐에 8p의 차이로 1위에 있었다. 세리에A의 황금기로 불리는 90년대에 획득한 타이틀 수는 20. 그 중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 횟수는 8, UEFA 컵 결승 진출횟수도 13에 이르러 이는 한때 유럽 축구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으로 일컬어졌다. 21세기가 되자 스타 선수의 해외 방출. 적자경영, 세리에A 부정 등 불안 재료가 겹쳐 그 화려했던 시기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2000년 이후에 탈취한 타이틀은 전부 밀란에 의한 5개만으로 팍 줄었다. 플레이 면에서는 ‘화려한 칼초’ 즉 파워와 근성에 중점을 두지 않고 플레이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너무 얽매였기 때문에 21세기에 들어 플레이를 힘차게 갈고 닦으며 정신적인 면에서 강화한 잉글랜드에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선수들의 정신 상태를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는 것을 버리고 정신에 여유를 가지게 하는 멘탈 강화책을 취해야만 한다.

 이번 챔피언스 리그에서 절실히 느낀 잉글랜드의 위협.
 상대를 ‘괴물’로 만들기 보다는 아예 이쪽이 ‘괴물’이 되어버리면 몬스터 잉글랜드를 쓰러뜨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여담으로 근년 잉글랜드의 강호(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일하게 물리친 밀란의 애칭은 ‘디아볼로(악마)’라는 것을 다른 클럽도 마음에 새겨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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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ocn.ne.jp/sports/soccer/soccer081211.html
저자: 로사노 도나도니
일본어 번역: 오가와 미츠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불황의 파도는 당연 축구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적 시장에서 거금을 투입하여 팀의 실력을 높이던 시대는 종언을 맞이하여 각 클럽은 지금 육성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축구계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하부조직의 충실, 육성의 현실과 마주보려는 클럽의 현 상황을 고찰한다.

큰 변모를 이룩한 빅 클럽의 육성 사정


 전세계를 무대로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경제 위기는 축구계에도 크나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적 시장에 거금을 투입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에서 팀 강화에 가장 유효한 수단은 무엇일까? 그 답은 '사지 않고 키운다'이다. 즉 클럽 자신들이 운영하는 하부조직에서 우수한 선수를 한 사람이라도 많이 배출하는 것. 불황이 만연한 현대에 있어 육성의 강화는 불가결한 테마인 것이다.

 유벤투스는 2년 전 사건을 계기로 육성의 재강화에 나섰다. <칼초 스캔들>의 발각에 따라 세리에 B로 강등… 대폭적인 수입 저하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들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파트리크 비에라 등 고액 연봉선수들을 계속해서 방출. 세바스티안 조빈코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각주:1], 파올로  데 첼리에[각주:2] 등 하부조직에서 기술을 닦고 있던 선수를 톱 팀으로 승격시켜 그들을 세리에 B에서 이겨 나가기 위한 귀중한 전력으로 편입시켰다. 이들 세 선수는 지난 시즌 각각 임대를 경험하여 올 여름 성장을 하고 팀에 귀환. 지금이 되어서는 보다 중요한 전력으로써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도 두터운 신뢰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유벤투스 하부조직의 충실함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예전 톱 팀에는 하부조직에서 키운 선수를 사용할 포지션이 없어 그들은 <반영구적인 임대 생활>을 강요 받았다. 전세계에 뻗쳐있는 네트워크 그리고 윤택한 자금을 이용하여 때나 국적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선수를 샀다… 예전 유벤투스는 육성한 선수에게 활약할 장소를 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탈리아의 귀부인(유벤투스의 애칭)>에게 예전의 딜레마는 없다. 세리에 B 강등을 발단으로 하는 경제위기가 빅 클럽의 자세를 근본부터 바꾼 것이다.

 보강 방침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은 유벤투스뿐만이 아니다. 모라티 일족 아래서 용천수와 같이 뿜어져 나오는 돈을 마구 썼던 인테르나치오날레조차도 요 수 시즌은 하부조직의 선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는 이번 시즌부터 팀 지휘관에 임명 받은 모리뉴의 의향도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듯 하다.

 “이 팀에는 높은 급료를 받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등록 멤버는 24명까지 줄일 것이다”
 취임 직후 모리뉴는 팀 구성에 관한 태도를 명확히 하였다. 이 발언을 계기로 하여 선수 사정, 여분의 전력에 대한 조사 및 검토가 개막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어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는 선수 몇 명의 방출이 결정적.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가령 모리뉴의 구상 밖이라도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높은 연봉선수>가 그리 간단히 팔릴 리는 없다. 따라서 당장은 무료 임대라는 형식으로 방출하여 전력의 슬림화를 꾀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동시에 하부조직에서 재능을 끌어올려 전력의 활성화를 꾀하는 것도 이 지장이 게을리 할 턱이 없다.

 18살의 괴물 FW 마리오 발로텔리를 필두로 인테르나치오날레에는 젊은 재능이 많이 존재한다. U-21 이탈리아 대표에서 활약하는 프란체스코 볼초니[각주:3]는 19살. 모리뉴가 그 재능을 높이 평가하는 오른쪽 SB 다비데 산톤[각주:4]은 아직 17살이다. 발로텔리에 이어 그들이 본격적인 데뷔를 이룰 날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어린 선수를 키워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모리뉴의 자세는 돈으로 해결하는 것 밖에 몰랐던 마시모 모라티 회장의 자세에도 변혁을 가져다 준 것이다.

대표적 실패인 밀란, 대표적 성공인 아탈란타


 유벤투스나 인테르나치오날레가 육성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것 과는 반대로 여전히 크게 뒤쳐진 것이 밀란이다. 올 여름 이적시장에서 안드리 솁첸코를 다시 불러들인 결과 하부조직 출신으로 장래를 촉망 받던 18살의 스트라이커 알베르토 팔로스키[각주:5]는 출장기회를 찾아 파르마로의 임대이적을 결심하였다. 역시 하부조직 출신의 공격수  마르코 보리엘로[각주:6]를 제노아에서 불러들인 것까지는 좋았지만 층이 두터운 FW진 속에서 주전다툼에 힘들어하며 지난 시즌 리그에서 19득점으로 대활약한 스트라이커가 지금까지 불과 1골에 멈추어있다. 팔로스키와 보리엘로의 예는 밀란의 육성력 부족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육성의 성공적인 예를 말한다면 아탈란타의 존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베르가모에 본거지를 둔 클럽의 역사는 하부조직에서 키운 선수들에 의해 맥맥히 이어져왔다. 오래된 예로는 1968년 유로를 제패한 안젤로 도멘기니[각주:7]나, 1982년 에스파냐 월드컵 우승 멤버인 가에타노 시레아[각주:8] 그리고 요즘으로 말하면 함께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하는 리카르도 몬톨리보[각주:9]나 잠파올로 파치니[각주:10]도 아탈란타의 하부조직에서 재능을 갈고 닦은 선수들이다. 그들은 아탈란타에서 영재교육을 받아 그 실력을 높이 평가되어 다른 클럽이 사 갔다. 그 거래로 얻은 이적료가 클럽 운영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아탈란타에 있어서 육성의 성공은 독자적인 지도 철학을 철저히 함과 동시에 시설을 충실히 한 것에 의해 성립되어 있다. 베르가모 교외에 위치하는 그들의 트레이닝 센터는 최고의 설비를 완비. 육성을 전문으로 하는 지도자가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지도를 행하고 있다.

 아탈란타의 방법론은 굉장히 심플. 어느 정도의 연령에 이른 주력 선수를 높은 가격에 팔고 젊고 유망한 선수를 톱 팀으로 끌어올려 그 구멍을 메운다. 이것을 거듭함에 따라 팀 전체의 실력 저하를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리에 A가 단일 리그가 된 1929-30 시즌 이래 아탈란타는 계 48시즌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세리에 A에서 플레이하고 있는데, 이 숫자는 프로빈차(Provincia, 지방 클럽)로써는 발군의 성적이다. [프로빈차의 맹주]라 일컬어지는 우디네세가 계 35시즌이기에 양 팀을 비교하면 아탈란타가 얼마나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 비즈니스가 육성의 중요성을 높이다.


 유벤투스나 인테르나치오날레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 맞추어 강화방침을 변화시킨 클럽도 있다. 피오렌티나는 1968-69시즌에 스쿠데토를 획득하였는데 그 때 대부분의 주력이 하부조직 출신의 선수들이었다. 즉 피오렌티나는 아탈란타보다도 먼저 육성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실천했던 클럽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피오렌티나의 육성방침은 40년 전과는 크게 다르다. 하부조직의 충실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 사항 중 하나이지만 선수들은 토박이 이탈리아 선수가 아니라 외국 국적의 선수가 굉장히 많다. 그들의 시선은 주로 해외로 향해져 있어 각국에서 어느 정도 실적을 남긴 어린 선수를 하부조직으로 뽑아 와 팀 전력으로써 키우고자 하는 것이다. 세르비아의 니콜라 굴란[각주:11], 체코의 온드리졔 마즈흐[각주:12]와 얀 하블레[각주:13] 그리고 브라질의 알렉스[각주:14]와 제페[각주:15]는 전부 외국에서 불러들인 20살 전후의 어린 재능들로, 그 중에는 이미 톱 팀 데뷔를 장식한 선수도 있다. 단지 피오렌티나의 강화방침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연히 외국에서 선수를 획득하면 자국 출신 선수는 기회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그 폐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UEFA는 2005년 4월, 2006-07 시즌부터 단계적으로 [자국 육성 선수 필수 등록제]를 도입해 갈 것을 결정하였다. 이는 요즘 축구계에서 증가 경향인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전력 강화를 꾀하는 클럽]에 대한 억제력으로써, 또한 [육성에 중점을 둔 팀 운영]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로써 UEFA가 독자적으로 설치한 룰이다. 이번 시즌의 개요는 [챔피언스 리그 출장 팀의 등록 멤버가 되는 25명의 A리스트에는 4명 이상의 클럽 내 육성 선수를 포함한 8명 이상의 자국 육성 선수를 등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 멤버 구성에 규정을 설치한 새로운 룰 채용으로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하는 각 클럽은 구상 밖에 있었을 터인 자국 육성의 대상 선수 방출을 보류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당되는 선수를 우선적으로 획득 또는 하부조직 출신 선수를 대량으로 승격시키는 등 새로운 룰 속에서 이상적인 멤버를 구성하기 위한 대응에 쫓겼다.

 그러나 [자국 육성 선수 필수 등록제]에 대한 대응이 늦어졌던 피오렌티나는 4명을 포기하게 된다. 즉 A리스트에는 상한인 25명에서 4명이나 적은 21명을 제출. 간결하게 말하면 4명분의 불리함를 받아 들인 형태로 챔피언스 리그에 임한 것이다.

 약 반세기 전, 프로빈차 클럽은 대부분이 하부조직 출신 선수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부조직 없이는 축구를 말할 수 없다. 그런 시대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02년 EU통합에 따른 급속한 글로벌화나 축구를 비즈니스와 연결시키는 막대한 자금의 유입으로 인해 클럽 구도는 그 형태가 크게 바뀌어갔다. 팀 강화의 지름길은 세계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유명 선수를 제한 없이 사 모으는 것. 한때는 하부조직 운영을 민영화시키는 클럽까지 출현할 정도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요 수년 축구계에는 경제 위기를 발단으로 하는 육성 개념의 시정으로 인하여 하부조직의 충실, 육성의 강화가 재인식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거의 제로인 상태에서 재출발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클럽도 적지 않다. 하부조직을 기능시키기 위해서는 묻혀있는 잠재능력을 발굴하는 스카우트와 그 포텐셜을 이끌어 낼 지도자의 존재가 불가결하다.

 하부조직의 충실함이 가져다 준 반세기 전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해결할 과제가 있다. 축구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 외에는 없으며 현대에 있어서 육성조직의 강화는 어느 클럽에게나 부과된 가장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인 것이다.


2007/12/23 - [일본웹번역/축구] - 세바스티안 조빈코 [아주리의 작은 보석]

2008/02/18 - [일본웹번역/축구] - 주목도 넘버 원의 발로텔리

  1. Claudio Marchisio. [본문으로]
  2. Paolo De Ceglie [본문으로]
  3. Francesco Bolzoni [본문으로]
  4. Davide Santon [본문으로]
  5. Alberto Paloschi [본문으로]
  6. Marco Borriello [본문으로]
  7. Angelo Domenghini [본문으로]
  8. Gaetano Scirea [본문으로]
  9. Riccardo Montolivo [본문으로]
  10. Giampaolo Pazzini [본문으로]
  11. Никола Гулан [본문으로]
  12. Ondřej Mazuch [본문으로]
  13. Jan Hable [본문으로]
  14. Alex Costa dos Santos [본문으로]
  15. Jefferson Andrade Siqueir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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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708/portugal/column/200805/at00017223.html

저자: 와니베 테츠야

 후이 코스타는 언제나 선수 입장 시에 제일 마지막으로 필드에 등장한다. 이는 그의 시합에 들어가지 전의, 말하자면 징크스이다. “축구를 시작했을 즈음 나의 우상은 벤피카의 카를루스 마누엘[각주:1]이었다. 그는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필드에 나왔었지. 그것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 그래서 나도 흉내를 내게 되었던 거야

 그러나 [현역 마지막 날]이 된 5 11.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서 필드에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은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나온 등번호 [10]의 유니폼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지금까지 지켜왔던 시합 전의 [의식]에까지 마침표를 찍고 제일 먼저 등장하여 사랑해 마지않는 [루스 스타디움의 주인 = 벤피키스타]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클럽 역시 사랑하는 후이를 위해서 최고로 멋진 무대를 연출하였다. 홈인 루스 스타디움(Esto da Luz) 관중석 1층 전부를 덮는 [OBRIGADO RUI(고마워 후이)]라 쓰여진 현수막에, 팬들도 평소의 [벤피카!]를 대신하여 목을 쉬게 하면서 [후이 코스타!]를 끝없이 외쳤다.

 이날의 주역 후이 코스타의 마음에는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갔을 것이다.


■ 마지막은 벤피카에서 커리어를 끝내고 싶다.


 후이 코스타는 정말 운이 없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사랑해 마지않는 클럽으로 돌아온 마지막 2년간도 역시 [축구 인생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겠다]고 한 것과는 먼 2년간이었다.


 2006 5 25. 후이 코스타는 마지막은 벤피카에서 커리어를 마치고 싶다는 약속대로 자신의 프로 데뷔를 장식한 클럽으로 12년 만에 돌아왔다.

 입단 회견에서 “12년간 을 비워서 미안하다. 12년 전과 변함없는 후이의 플레이가 볼 수 있다는 것을 약속한다고 말을 꺼낸 후이 코스타였지만, 곧이어 단지 나는 벤피카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포지션을 약속 받은 것도 아니다. 때문에 팀 승리를 위해서 싸우는 일개 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겸손해 했다.

 또한 “(벤피카로) 돌아온 것은 포르투갈이 그리워졌기 때문도, 포르투갈의 태양을 만끽하고 싶어서도 아니다(웃음). 어쨌든 자신의 인 벤피카에서 마지막을 플레이하고 싶었다. 때문에 여기서는 프로로써 자신의 모든 정열을 쏟고 또한 많은 기쁨도 맛보고 싶다. 그러니 팬 여러분들도 스타디움에 와서 나와 같은 열정으로 응원해 주길 바라며, 나와 같이 기쁨을 맛보았으면 좋겠다고 벤피카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은퇴를 생각하기 시작한 후이 코스타에게 있어서는 역시 마지막으로 한번 더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같은 해 8 22일 챔피언스 리그 본선 출장을 건 오스트리아 빈과의 예비 예선 3회전에서는 호쾌한 미들 슛으로 선제 골을 넣어, 포르투갈 국민들은 후이 코스타가 [여전히 빛난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홈 루스에서 1994 5 21일 이래 12년만의 골로 인하여, 다음 날 포르투갈의 신문에는 [마법이 돌아왔다!]는 문자가 춤을 추었다.


 하지만 이 시합에서 후이 코스타는 오른쪽 허벅지를 부상당한다. 더욱이 2주 후의 국내 리그 개막전이 된 보아비스타와의 시합에서 부상이 다 낫지 않은 채 강행출장 한 것이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 10 1. 1개월만의 복귀전이 된 아베스와의 시합에서도 역시 시합 후에 오른쪽 허벅지의 이상 증세를 호소한 후이 코스타. 그 이후 그는 필드에서 모습을 감추게 된다.


 원래부터 이 후이 코스타의 부상 이탈이 장기간에 이른 원인은 팀 닥터와 물리치료사의 초진이 잘못된 것에 있었다고 하기에, 벤피키스타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국민, 미디어의 분노가 폭발했다. 더욱이 그 분노가 향한 곳은 처음에 진찰했던 물리치료사를 브라질에서 데려 온 포르투갈 대표팀감독 스콜라리에게까지 이르렀다. 후이 본인도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도 후이 코스타는 이에 대하여 침묵을 지켰고, 시즌 대부분을 따분하고 괴로운 재활 훈련으로 보냈다.


■ 은퇴 번복을 바라는 서명 운동


 그리고 개막전에 “90%의 확률로 나의 라스트 시즌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마음을 일신하여 임한 이번 시즌. 역시 전년과 같이 홈 스타디움 루스에서의 챔피언스 리그 예비전 3회전 코펜하겐과의 시합에서 2골을 넣었고, 리그 개막 4시합에서도 2골을 마크하여 공식 시합 6시합을 치르며 4골로, 이탈리아 시대까지 포함하여 과거 최고의 출발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팀이 붕괴해 버렸다. 후이 코스타가 2골을 넣은 코펜하겐과의 시합 직후에 감독인 페르난두 산투스(Fernando Santos)가 해임. 새로이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를 감독으로 맞이하였지만 카마초도 올해 3 9 UD 레이리아와의 시합 후 사임하였다. 1시즌에 2번의 감독 교체라는 실태를 보여주고 만 벤피카는 리그, UEFA , 포르투갈 컵을, “팀 내분과 함께 차례차례 노리던 타이틀을 놓쳐갔다.


 그래도 이번 시즌은 마지막 시합을 앞두고, 국내 리그에서 28시합 2297분에 걸쳐 익숙한 [10]의 포지션에서 지휘봉을 계속 휘두른 [마에스트로(후이 코스타의 애칭)]. 이는 이번 시즌 벤피카의 필드 플레이어 중에서는 최다 출장 시간이었다. 은퇴를 결정한 선수로는 생각할 수 없는 높은 기량을 계속 선보인 후이 코스타에게, 올해 2 21일에는 [후이 코스타는 영원한 벤피카의 카리스마. “마에스트로”, 우리들에게 1년 더 악단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줘!]라는 메시지가 벤피카 서포터 그룹 자리에 게재되어, 이 그룹의 리더를 중심으로 [은퇴 번복]을 바라는 서명활동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그러나 1주일 후인 벤피카 창립 104주년 기념 파티에서 이번 시즌 벤피카에서 커리어를 끝낼 수 있도록 허락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후이 코스타의 입에서 [은퇴 확정]의 코멘트를 들을 수 있었다.


■ 누구에게나 사랑 받은 후이 코스타의 매력


 1994년 여름.

 바라 마지않던 바르셀로나 이적에 대한 생각을 가슴 속 깊이 담아둔 채, 당시 재정난으로 힘겨워하던 벤피카에 보다 많은 이적료를 제시한 피오렌티나로 이적. “나를 여기까지 키워준 벤피카가 곤란하니 내가 돕는 것은 당연이라던 후이 코스타. 7년을 보낸 피렌체에서 빅 타이틀과는 연이 없었다.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라는 빅 클럽으로 이적하여 세계적 명성을 손에 넣고 있던 피구와는 포르투갈 국내에서의 명성이나 지위가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그 후 이적한 밀란에서는 한창 커가는 카카에게 포지션을 빼앗겼고, 가능성을 시험한 볼란치에서의 포지션도 희대의 레지스타(Regista[각주:2]) 피를로와의 주전 경쟁에서 패하여 벤치를 덥히는 나날들이 계속 되었다.

 그리고 벤피카로 돌아온 마지막 2시즌은 팀이 그의 발목을 잡아 버렸다. 역시 후이 코스타는 마지막까지 운이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후이 코스타는 어느 클럽의 서포터들에게건 절대적인 지지와 총애를 받았다. 그것은 우선 클럽을 위해서 그리고 팬을 위해서 자신을 모든 것을 받쳤던 후이 코스타의 [의리]라고 부를 수 있는 마음이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라스트 게임의 전날인 10일에는 밀란의 부회장 아드리아노 갈리아니(Adriano Galliani)에게서 밀라노 시민 그리고 이탈리아 국민은 결코 후이 코스타의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언제까지고 [로소네리(Rossoneri – 밀란의 애칭)] 가족의 한 사람이다고 후이 코스타를 기리는 팩스가 전해져 왔다.

 밀란의 심볼 파올로 말디니는 후이 코스타가 여전히 우리들의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일류 선수라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위대한 남자 그리고 친구였던 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후이 코스타는 이 밀란에서의 메시지에 감동하여 눈물이 나왔다고 라스트 게임 후의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 위대한 마에스트로. 감동의 피날레


 후이 코스타의 라스트 게임이 된 세투발과의 시합.

 최후의 최후까지 등번호 [10]은 필드에서 약동감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다. 전반 25분에는 오른쪽 측면으로 가 니어 사이드의 카추라니스[각주:3]의 선제 골을 어시스트 하였고, 3분 뒤에는 멋진 중거리 슛을 날렸지만 상대팀 GK가 펀칭으로 막아내자 필드를 손으로 내리치며 아쉬워했다. 몇 번이나 특기인 부드러운 크로스와 절묘한 타이밍의 스루패스를 연출했다.


 그리고 22 02.

 시합 시간으로는 87분에 제3부심이 [10]번이 켜진 보드를 들어 교체를 알리자, 후이 코스타는 손을 흔들면서 천천히 필드 밖으로 나왔다. 전광판에 비쳐진 그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이리하여 후이 코스타의 마지막 연주는 끝을 고했고, 필드를 나온 후이 코스타는 이날 볼 보이를 맡고 있던 두 아들 펠리페와 우고를 불러 끌어안으며 시합 종료의 휘슬을 들었다.


 시합 후에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돌면서 유니폼을 관객석에 던지는 후이 코스타에게, 반대로 관객석에서 수 많은 꽃다발이 그에게로 던져졌다. 이 날 0-3으로 패한 세투발의 서포터들에게서도 머플러가 후이 코스타에게 전해져 박수로 적의 위대한 사령탑을 칭송했다. 그것은 이날 루스로 발을 옮긴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음에 틀림없다. 후이 코스타는 마지막으로 사방의 스탠드를 향해서 깊이 허리를 숙인 후 필드를 떠났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세계 청소년 대회 우승


 시합 종료에서 1시간이 흐른 뒤에 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낸 후이 코스타에게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울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참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이 벤피카의 트레이닝 웨어를 입고 있는 이상 아직 선수라는 것이지. ~ 내 축구 선수로써 진짜 마지막 플레이(회견)을 시작할까?(웃음)”라는 장난스러움과 함께 마이크 앞에 앉은 후이 코스타.

 " 18년간의 축구 인생 동안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나를 높이 평가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지금은 천천히 쉬면서 머리 속을 깨끗이 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는 멋진 축구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기(루스)에서 세계 청소년 대회( U-20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팀 동료들 중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티스투타와 말디니 두 사람이다. 그들과 함께 플레이 할 수 있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 축구를 [버리는 것]은 행복하지는 않지만 만족은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정말 고맙다는 것이다

 후이 코스타의 라스트 메시지이다.


 참고로 당신의 축구 커리어에 있어서 운이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마지막 시합에 5 4000명의 팬들이 모여 주어서는 나에게 계속 성원을 보내주었다. 이렇게 행복한 축구 선수는 없지 않을까? 나는 충분히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후이 코스타. 정말로 후이 다운 답변이었다.

 23 54.

 후이 코스타가 회견장을 뒤로 하려고 일어서자 기자들도 카메라맨도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누구에게나 사랑 받은 남자 = 후이 코스타]를 최종 확인한 흐뭇한 순간이었다. [마지막 장소]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에 필자는 감사하고 싶다.


 페스타(축제)에서 하룻밤 지난 다음 12일 정오가 지나, 평소의 트레이닝 웨어가 아닌 검은 양복으로 몸을 감싼 후이 코스타는 벤피카의 사무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미 준비된 사무실에서 스포츠 디렉터로써의 일을 곧바로 시작한 후이 코스타. 그의 [2의 인생]은 틀림없이 시작된 듯하다.

 이리하여 필드를 떠난 후이 코스타. 그러나 조제 모리뉴가 한 사람의 슈퍼 스타가 일류 선수인 채로 전성기 실력 그대로 커리어를 끝냈다고 절찬을 보낸 [마에스트로] 후이 코스타의 이름은 공식 시합 통산 776시합 132골의 기록과 함께 영원히 우리들의 기억 속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 후이 코스타의 마지막 시합 >
  1. Carlos Manuel, 1980년대의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AMF. [본문으로]
  2. 이탈리아어로 연출가 혹은 영화감독을 뜻한다고 한다. 중반 후방에서 플레이 메이크를 담당하는 MF를 이른다고 함. [본문으로]
  3. Kostas Katsouranis, MF, 그리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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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80424-1-1.html
저자: 요코이노부유키

위기? 지금의 바르셀로나에 위기가 닥치는 일은 없다. 그것은 5년 전의 이야기다

 요 수개월 승리를 잊어버리고 아름다운 축구를 잃은 바르셀로나를 걱정하는 물음에 사비는 이렇게 답했다.

 5년 전이라는 것은 4시즌 연속으로 무관이었을 즈음. 확실히 꼴사나운 시합을 단지 거듭하기만 했던 바르셀로나는 전혀 앞이 보이지 않던 상태였으며 이거 잘못하면 2부 강등인가? 하고 우려하던 시기조차 있었다.

 

 그때부터 불과 수년 만에 바르셀로나는 유럽의 정점에 서기에 이르렀는데, 가장 큰 공로자는 누가 뭐라 해도 호나우지뉴일 것이다. 클럽의 경영 상태를 호전시킨 라포르타 회장 이하 임원진의 수완도 컸으며, 무엇보다 레이카르트의 팀 정비가 성공하지 않았다면 타이틀 획득은 불가능했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이미지를 바꾸고, 진정한 의미로 위기에서 구해낸 것은 호나우지뉴다. 그의 입단에서 1년이 지난 어느 날 코치 중 한 명에게 들은 적이 있다. 호나우지뉴는 필드 위에서의 활약은 물론이거니와 주위를 유쾌한 분위기로 만들어 팀을 활성화 시킨다고.

 

 그 호나우지뉴와 밀란이 이적 조건에서 합의했다고 몇 일전 이탈리아에서 보도하였다.

 지금까지는 하품도 나오지 않는 뉴스였다. 밀란이나 첼시가 호나우지뉴를 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넘어간 해도 없었으며, 아무리 호나우지뉴 본인이 원한다고 하여도 바르셀로나와의 계약은 2010년까지이기에 이적은 있을 수 없다  .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필시 다음 달 초라도 이번에는 에스파냐에서 [클럽끼리도 합의]라는 한 줄이 더해져서 이적 결정이 보도될 것이다.바르셀로나가 호나우지뉴를 단념했으니까.

 

 이혼장은 3월 중순, 의사의 소견이라는 형식으로 공적인 것이 되었다. 다리에 이상을 호소하는 호나우지뉴를 진찰한 결과 실제로 치골(恥骨炎) 외에, 대퇴부에 부종(浮腫)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럽은 [힘줄도 근육에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 즉 부상은 없다고 발표한 것이다.

 

 일방적으로 게으름뱅이라는 낙인이 찍힌 호나우지뉴는 참을 수 없었다. 곧바로 이적할 곳을 찾기 시작하여 예전부터 러브콜을 보내고 있던 밀란에 접근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이 앞서 말한 소식이었다.

 

 양자간의 관계는 적어도 1년 전까지는 밀월 상태였다. 그랬던 것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은 다른 곳에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호나우지뉴의 탓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에 잃은 신용을 되찾을 기회였으며 명예 회복은 의무였다. 그랬는데도 수비를 하라고 강요 받은 것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몸에 염증이 났는지, 개막할 때의 투지도 시간이 흐를수록 느낄 수 없게 되어 어디어디가 아프다며 시합을 쉬게 된 끝에 정말로 부상.

 그 부상 원인의 일단에는 프로답지 않게 컨디션에 신경 쓰지 않은 흐트러진 사생활을 보낸 것에 있다고도 한다. 사생활 관리를 게을리한 클럽이나 레이카르트의 느슨함에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호나우지뉴도 이제는 28. 아이가 아니다.

 

 이리하여 호나우지뉴의 이적은 불가피하게 되었기에 현재 바르셀로나는 받을 수 있는 돈을 올리는데 부심하고 있는 참인데, 밀란이 제시하는 2000만 유로[각주:1]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정의 조건하에서 계약 파기를 인정하는 FIFA의 이적 규약을 호나우지뉴가 행사한다면 지갑에 들어오는 돈은 1600만 유로[각주:2]까지 줄어버리며, 2500만 유로[각주:3]를 준다는 인테르나치오날레, 그 이상을 낸다고 하는 맨체스터 시티에는 호나우지뉴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삐쳐서 남아버리기라도 한다면 다음 시즌도 연봉860만 유로[각주:4] 치르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각주:5]

 

 문제는 5년 전에 PSG에서 2700만 유로를 주고 산 선수를 명성이 높아진 지금 마이너스 700만으로 팔면 소시오가 납득할 것인가? 하는 것. 10년 전 1200만으로 산 호나우두를 1년 후 2400만으로 팔았던 당시의 임원진은 그걸로 탄핵되어 버렸다.

 

 카타루냐 사람들은 구두쇠로 유명하니까 말이다.

  1. 약 311억원 [본문으로]
  2. 약 249억원 [본문으로]
  3. 약 389억원 [본문으로]
  4. 약 134억원 [본문으로]
  5. 환율은 전부 2008년 4월 26일자 기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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