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ocn.ne.jp/sports/soccer/soccer081216_1.html
저자: 마리오 테네라니
일본어 번역: 오가와 미츠오

 2005년 체사레 프란델리(Cesare Prandelli) 감독 취임에 맞추어 이탈리아의 강호 피오렌티나는 [2010년 이후에 스쿠데토를 노릴 수 있는 팀 만들기]를 목표로 장기적인 강화 계획을 진행시켜 왔다.

 지난 시즌은 4위가 되어 올 시즌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확보. 9년 만에 유럽 최고봉 무대로의 도전권을 얻은 클럽은 올 여름 5000만 유로(약 907억 원)라는 거액을 투자하여 대형 보강에 나섰다. 획득한 총 12선수 중에는 민완 GM 판탈레오 코르비노(Pantaleo Corvino), 프란델리 감독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게 만드는 한 명의 MF가 있었다. 펠리피 멜루(Felipe Melo de Carvalho), 25살. 지난 시즌 에스파냐에서 크게 활약한 [축구 왕국산]의 유망주이다.

 대형 보강의 주인공이 일찍부터 에이스의 자리를 부동의 것으로 한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F. 멜루도 개막부터 DMF의 자리에서 부동의 레귤러로서 활약. 장기인 다이나믹한 플레이로 공수양면에서 절대적인 존재감을 발휘하여 지금은 질라르디노와 맞먹는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끝없는 투쟁심과 거친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예전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한 같은 나라의 선배 둥가의 재림이라고도 칭해지는 펠리피 멜루. 피오렌티나를 더욱 높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그리고 우연하게도 그 둥가가 감독을 맡고 있는 브라질 대표팀 입성의 꿈을 이루기 위해 - 용맹 과감한 ‘전사’는 앞으로 전진한다.

클럽의 일체감에 큰 매력을 느꼈다.

- 이탈리아의 땅을 밟은 지 5개월. 이젠 피렌체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셨나요?

 굉장히 쾌적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 지난 시즌 생활했던 알메리아는 작고 아담한 항구마을로 굉장히 분위기가 좋은 곳이긴 하였지만 피렌체 쪽이 마음 편하더군. 생활하기에 불편한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관광도시이기도 한 이곳은 언제나 활기가 넘쳐. 나는 히우지자네이루 출신. 역시 번화한 곳이 좋더라구.

- 도시 중심부에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것도 번화한 것이 이유?

 관광지로 유명한 미켈란젤로 광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 조금 높은 언덕에 있는 집으로 거기에서는 피렌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와. 언제나 최고의 광경을 즐기고 있지. 그 중에서도 야경의 아름다움은 정말 최고다.

- 그렇다면 서포터에게 얼굴 팔리는 것도 많겠네요?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 힘들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기쁘더군. 나가면 곧바로 알아보고는 “차오 멜루!”하고 인사를 받거나 “열심히 해!”하고 격려의 말을 듣거나 한다. 피렌체 서포터의 열정은 장난이 아니잖아. 그들에게 직접 격려의 말을 들음으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으며 “좋아 해 주마!”하는 투쟁심도 불러일으켜 준다. 즉 서포터와 접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모티베이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지.

- 과연… 피렌체의 거리와 서포터. 그러한 요소가 피오렌티나로의 이적을 결심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인 듯 하군요.

 응. 이적이 정식으로 결정되기 전에 한 번 스타디움에서 시합을 본 적이 있는데 서포터의 열광적인 모습에는 정말 놀라게 되더군! 시합은 제쳐두고 그들의 열정이 담긴 응원에 흠뻑 빠질 정도로 감동하였어. 선수, 감독, 프런트 그리고 서포터. 피오렌티나라는 클럽의 일체감에 커다란 매력을 느꼈다.

- 그렇다면 코르비노 GM의 열렬한 권고도 그다지 필요가 없었겠군요.

 아니 아니 그에게는 정말 고마워하고 있어. 몇 번이나 알메리아로 직접 찾아와 준 코르비노의 존재가 있었기에 나는 피오렌티나로 오게 된 것이지. 그의 권유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 에스파냐에서 플레이하고 있었을 터이다.

- 프란델리 감독도 입단 전부터 당신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지. 지난 시즌까지 나는 에스파냐에서야 조금 이름이 알려졌지만 국제적인 지명도는 결코 높지 않았어. 그들은 그런 나를 높게 평가해 주었다. 기쁘지 않을 턱이 없잖아? 처음 프란델리 감독과 만났을 때도 ‘자네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선수다’라는 고마운 말을 들었다. 의욕이 한층 더 높아진 것을 지금도 확실히 기억한다.

- 당신이 보기에 프란델리는 어떤 감독인가요?

 말 그대로 [지도자]. 예를 든다면 선생님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플레이에 관한 세세한 설명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며 우리들 선수에게 언제나 성실하게 대해줘. 감독에게도 여러 타입이 있지만 프란델리 감독은 무턱대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선수와 동등한 시선으로 무엇이든 세심하게 가르쳐 주지.

- 감독이 그러한 인물이라는 것은 당신들 선수에게 있어서 역시 중요한 것인가요?

 중요라는 말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야. 결정적인 요소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지. 말하는 상대나 상황에 따라 말하는 것이 다른 인간들 있잖아? 그런 타입 나는 정말 혐오한다. 감독은 역시 정당한 인물이 아니면 안 되지. 그래 프란델리와 같이 선수를 차별하지 않고 대해주는 사람 말이야. 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라도 컨디션이 나쁘면 선발멤버에서 제외하는 그 정도의 공정함을 가진 감독이 아니면 안심하고 함께 갈 수 없지. 그런 의미에서도 프란델리는 이상적인 지휘관. 평소에 그와 함께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실한 하루를 보냈다. 조금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대신할 수 없는 선수가 될 생각이다.

- 지금부터는 당신의 커리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물론. 편하게 말하시길.

- 프로 데뷔를 장식한 것은 브라질의 명문 플라멩구. 충격적인 데뷔전이였다고 들었습니다.

 잘 알고 있네. 내 데뷔전이지만 정말 자랑스런 데뷔전이었지(웃음). 벌써 7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믿을 수 없을 정도야. 당시 나는 18살. 시합 종료 10분전에 필드로 보내져 무려 퍼스트 터치에 골을 넣었다구! 더구나 팀을 2부 강등의 위기에서 구하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는 골을 말이야. FW이지도 않은 내가 데뷔전에서 그것도 1부 잔류가 걸린 중요한 일전에서 득점을 넣다니 그야말로 기적, 행운이었지.

- 플라멩구는 지금도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요?

 당연하지. 나는 10살 때부터 플라멩구에 입단하여 19살까지 플레이 했다. 약 10년간이나 신세를 진 클럽을 잊을 턱이 없지. 플라멩구에서의 추억은 앞으로도 계속 내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거기에 은퇴하기 전에 언젠가 한번 더 플라멩구에서 플레이 할 생각이다. 나를 키워준 클럽에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하고 말이지.

- 그 플라멩구에서 2003년에 크루제이루로 이적. 가자마자 팀은 3관왕을 달성하여 그 해의 타이틀을 전부 획득하였죠?

 재적한 것은 1시즌 뿐이었지만 덕분에 굉장히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시즌 우리들은 (반데를레이) 룩셈부르구라는 뛰어난 지휘관 아래서 클럽 첫 전국선수권 제패 그리고 브라질 사상 첫 3관왕을 달성할 수 있었어. 정말 익사이팅한 시즌이었지. 룩셈부르구 감독에게는 많은 것을 배웠다. 감독뿐만이 아니지. 그 팀에는 우수한 선수들이 아주 많아 선수 모두가 서로에게 자극 받으며 연습을 열심히 하여 날이 갈수록 팀 전체가 성장해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 어떠한 선수들이 있었나요?

 수비진에는 GK 고메스(현 토트넘)를 시작으로 마이콩(현 인테르나치오날레), 크리스(현 리옹), 루이장(현 벤피카). 그 외에도 알렉스, 에두(Edu Dracena), 데이비드 - 이상 페네르바체 - 등, 지금은 유럽의 제일선에서 활약하는 유명한 선수들뿐이지.

- 확실히 엄청난 면면들이군요. 그런 선수들 틈에서 19살의 어린 당신은 볼란치 포지션에서 팀의 균형을 유지시키고 있었단 말이죠?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인데요?

 굉장히 힘들었지. 경험이 부족했기에 팀에 폐를 끼친 적이 많았어.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들과 플레이 하는 것이 즐거워 미칠 정도였다.

- 당신은 지금까지 계속 볼란치에서 플레이 한 것입니까?

 기본적으로는. 솔직히 말하면 내 어릴 적 우상은 아르헨티나의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었다. 라이벌인 나라의 선수이기에 큰 소리로는 말하지 못하지만(쓴웃음). 필드 중앙에 자리잡고 격렬하며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참고로 하였었다. 다만 2005년부터 2시즌 재적했던 라싱 산탄데르에서는 당시의 감독에게 ‘윙을 맡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 피오렌티나를 예를 들면 (마리오 알베르토) 산타나가 담당하고 있는 오른쪽 윙이다. 그때까지 전혀 뛰어본 적이 없었던 포지션이었기에 그 때는 정말 힘들었지(쓴웃음). 때문에 2007년 여름에 알메리아로 이적이 결정되었을 때는 내심 ‘럭키~’라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 그 알메리아에서의 지난 시즌은 당신에게 있어 비약의 해였습니다.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알메리아에서의 나는 확실하게 팀의 중심이었어. 여기 피렌체로 말한다면 (아드리안) 무투와 같은 존재지. 지난 시즌 종료 후의 팬 투표에서는 6000표 이상을 얻어 팀 시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으니까. 성적은 34시합에 출장하여 7골. 만족할만한 1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당연히 여기 피오렌티나에서도 중심선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계시겠죠?

 물론이다. 피오렌티나에서도 무투와 같이 대신할 수 없는 선수가 될 생각이다. 단지 우선은 이탈리아 축구에 익숙해지는 것이 최우선. 이번 시즌은 포지셔닝이나 축구관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1년으로 삼았다. 덤으로 활약까지 할 수 있다면 내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시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싸움은 이골이 날 정도.

- 팀 동료 중에서는 누구와 가장 플레이 하기 쉽다고 느끼나요?

 누구와 플레이 하건 문제없다. 내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매 시합 선발 멤버가 바뀐다고 하여도 바꿀 필요가 없으니까.

- 그렇다면 팀에서  가장 인상 깊은 선수는?

 알베르토(질라르디노)이지. 그의 플레이는 그가 밀란에 있을 때부터 때때로 보았지만 그 때는 이렇게까지 굉장한 플레이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연 피오렌티나에서 함께 플레이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지. 때문에 이번 시즌 그의 ‘부활’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굉장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천성의 골게터. 틀림없는 일류 스트라이커다.

- 질라르디노의 플레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뛰어난 곳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득점감각. 이 한마디로 전부 정리된다. 높은 슛 기술은 말할 것도 없으며 공간으로 파고드는 타이밍이나 페널티 에리어 안에서의 포지셔닝도 좋다. 득점하기 위한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

-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는데, 에스파냐와 이탈리아 축구에서 가장 커다란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리가 에스파뇰라에서는 중반에서 조금 차분히 플레이 할 수 있었어.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곧바로 압박이 들어와. 중반에서 볼을 건드릴 기회가 많은 나에게 있어 속도감 있는 플레이 템포에 익숙해지기까지 다소의 시간이 필요했었지. 일반적으로 알려졌듯이 역시 전술면에서는 이탈리아 쪽이 위일 거라고 생각해. 개인보다는 팀의 규율이나 조직이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있으니까.

- 알메리아 시대와 비교해서 피오렌티나에서는 수비의 비중이 높아진 것같이 보입니다. 그것도 규율이나 조직을 중시하는 것과 관계되어있습니까?

 확실히 지금의 나는 최종 라인 바로 앞에서 플레이 하는 일이 많지. 지금까지의 축구 인생에서 3명이 형성하는 중반의 밑바닥을 맡은 것은 처음이니까. 처음엔 갈피를 잡지 못한 적도 많았지만 오해하지 마길. 결코 억지로 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니까. 지금은 새로운 포지션에도 완전히 적응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자신이 해야만 하는 역할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당신은 투쟁심을 전면으로 내뿜는 터프한 플레이를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이나믹한 플레이를 당신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라고 말해도 좋을까요?

 확실히 내 태클은 거칠며 다이나믹한 움직임도 내 무기다. 단,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 상대에게 부상을 입힌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거칠기는 하지만 결코 더티하지는 않다. 골을 빼앗길 것 같은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일부러 파울을 범하는 듯한 일은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필드 위에서는 어떠한 때라도 클린하며 ‘용감한 전사’로 있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요는 정신적인 문제인 것이다.

- 당신은 어렸을 적부터 지우짓수(브라질유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투쟁심은 거기에서 길러진 것입니까?

 맞어. 이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우짓수는 축구에 굉장히 도움이 되. 상대에게 달려드는 투쟁심은 물론 일대일 장면에서 상대의 순간적인 틈을 놓치지 않는 통찰력, 더 말하면 몸싸움 장면에서의 포지셔닝에서도 지우짓수에서 배운 것을 살리고 있다.

-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지우짓수는 상대와의 머리싸움이나 서로 주도권을 쥐는 것이 중요한 스포츠이기에 축구에도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이군요?

 바로 그래. 머리싸움은 내 주특기지. 상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읽은 것은 이골이 날 정도. 지우짓수와 마찬가지로 축구에서도 항상 두수 세수 앞 플레이를 예측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가를 언제나 생각하면서 플레이하고 있지.

둥가보다 더 활약하는 것이 목표

- 올 시즌 세리아A에서는 몇 위가 될 것 같나요?

 우선은 하나씩 눈 앞의 시합을 소중히 하며 싸워가는 것이 중요하지. 당연하게도 그것이 쌓이고 쌓여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시즌 종반까지 상위에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들에게도 충분히 우승 기회가 있지 않을까? 다만 당면의 목표는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4위 이내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 만약 우승할 수 있다면 당신이 가진 또 하나의 목표인 브라질 대표팀 입성에도 크게 접근하는 것이 될 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되길 기도하고 있어. 브라질 대표팀에 선택되는 것은 내 어릴 적부터의 꿈. 브라질 사람에게 있어 저 카나리아 색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정말로 특별한 일이니까.

- 대표팀 감독 둥가가 예전 피오렌티나에서 플레이 했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죠?

 응. 내 플레이 스타일이 당시의 그와 닮았다고 자주 비교되는 것도 알고 있어. 굉장한 영광이지.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보다 더 활약하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런 건방진 말을 하면 둥가에게 혼날 것 같지만(웃음).

- 피오렌티나와 같은 강호 클럽에서 활약하면 둥가 역시 당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 터. 응원하니 열심히 해주길 바랍니다.

 고맙다. 피오렌티나에 조금이라도 더 공헌할 수 있도록 그리고 브라질 대표팀에 선택되기 위해서도 평소의 연습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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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607/other/column/200707/at00013998.html
저자:세르히오 레빈스키

브라질은 시합 전의 예상을 깨고, 베스트 멤버라는 아르헨티나를 물리치고 코파 아메리카 2연패(連覇)를 달성했다.【Photo:AFLO】


 7월 15일(현지시간)에 브라질의 2연패(連覇)로 막을 내린 코파 아메리카.

2004년의 전 대회에 이어 브라질 대 아르헨티나의 대결이 된 결승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압도적 우위라는 시합 전의 예상을 뒤집고 브라질이 3-0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호나우지뉴, 카카 등 스타 선수들이 참가를 사퇴하여 2군이라는 야유도 받으면서 브라질은 이번 대회를 맞이했다.

 첫 시합에서는 멕시코에게 0-2로 패했고, 조 예선 2위로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

 준결승에서도 우루과이를 승부차기 끝에 겨우 이기는 등 답답한 시합을 보여주었기에 왕국의 위엄은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너무도 수비적인 포진으로 인하여 브라질 국내에서는 둥가 감독에게 비판이 집중. 리켈메, 메시 등 베스트 멤버로 임하여 압도적인 강함과 스펙터클한 축구로 승승장구한 아르헨티나에 비해 브라질의 열세는 극명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브라질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숙적을 침묵시키고 통산 8번째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루어 냈다. 최근 5대회에서 4번째 우승.

 우승의 주역은, 대회 득점왕이 되는 6골을 넣은 호비뉴.

 레알 마드리드에서 리그 마지막 시합에 출장하여 극적인 우승을 이룬 후 곧바로 대표팀에 합류하는 등 전 6시합에 출장하여 공격을 견인하였다.

 브라질의 미래를 짊어진 젊은 에이스 스트라이커가 이번 대회를 뒤돌아보았다.


비판으로 우리들은 동기 유발되었다.


- 코파 아메리카가 끝났습니다. 당신 자신은 이 대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우선 큰 기쁨과 함께 대회를 뒤로 할 수 있어서 기쁘다.

우리들이 남미 왕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브라질보다 아르헨티나가 더 뛰어나다는 비판이 우리들의 승부욕을 자극하였다.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게 이겨 지금은 브라질이 최강이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솔직히 묻겠습니다만 당신은 이번 대회에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확실히 아르헨티나가 이번 대회 전반에 걸쳐 안정되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이 결승에서 이겼기 때문에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브라질의 시합 방식이 상쾌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우리들은 결승까지 진출해서 승리를 손에 넣었다.


- 브라질은 앞으로도 둥가의 (수비적인) 스타일을 지속할까요? 그의 스타일은 1994년 미국 월드컵 때와 똑같은데요.


이번 브라질 대표는 젊은 선수가 많았으며 머리가 좋고 테크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결승을 향해서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며 준비를 하였고 우리들의 결점도 파악하고 있었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서서히 컨디션을 높여서 준준결승 칠레와의 시합에서는 멋진 시합을 했다고 생각한다. 6골을 넣었기도 했고. 그러니까 미디어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들이 항상 물러나서 수비적인 시합을 했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Photo:MEXSPORT/AFLO】


주위의 기대나 요구에 응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 이번 대회에서 당신은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랬지. 거기에 나는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이니까. 나에게 주목이 집중되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주위의 기대나 요구에 응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회의 베스트 플레이어로 표창 받았으며 득점왕도 되었다. 남미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는데 그 속에서 이러한 상을 받은 것은 결코 무시할 일은 아니다.


- 결승 후, 당신은 브라질 국기를 뒤집어쓰고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돌았는데 거기엔 무슨 의미가 있었습니까? 이번 대회에서 팀을 짊어졌다는 의미였나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의식은 없었다. 결승에서는 시합 종료 전에 지에구와 교대한 후 필드를 뒤로 했고 승리의 순간엔 벤치에 있었다. 거기에 국기가 있었기 때문에 손에 들고 그 상태로 동료들이 있는 필드로 달려갔을 뿐이다.


- 브라질은 코파 아메리카에서 연패(連覇)를 달성했지만, 사람들은 이번 대표팀을 '2군'이라 했습니다. 확실히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카카호나우지뉴, 호나우도 등의 스타는 없었습니다. 이번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앞으로도 대표팀에 정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행스럽게도 요즘엔 브라질 대표의 시합 수가 많으며 연말에는 2010년 월드컵 남미 예선도 시작한다. 이번대회에서 플레이했던 선수들은 앞으로도 브라질 대표팀에 소집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둥가 감독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실제로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룬 멤버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선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상의 결과는 생각할 수 없다.


- 아르헨티나는 결승에서의 패배를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을 테니까요.


그것은 상상이 간다.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 있던 것은 우리들 브라질이며 어떤 때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르헨티나에도 위대한 선수가 많이 있으며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레알 마드리드가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리켈메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그와 함께 플레이 해보고 싶나요?


물론이다. 그의 어시스트는 굉장히 정확하며 나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가 와 준다면 기쁘다.


- 올해는 시즌 말미에 극적인 피날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달반 전에 누군가가 레알 마드리드가 리가 챔피언이 되고 브라질이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한다고 예상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필시 꿈꾸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이 이상의 결과는 생각할 수도 없다.

지금은 좀 쉬고, 리프레시하여 마드리드로 돌아가고 싶다.

만족이 가는 시즌이었으며 새로운 시즌을 향해서 좋은 동기 유발이 되었다.


- 이걸로 브라질은 6번째 월드컵 우승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그러한 전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

우리들은 브라질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이번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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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70618-1-1.html

저자: 야마나카 시노부


위용을 자랑하는 웸블리 스타디움. 수용인원은 9만명에 달한다

 첼시 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FA컵 결승 그리고 잉글랜드 대 브라질의 대표시합이라는 공식 개장 행사를 끝낸 뉴 웸블리 스타디움.

 총 공사비는 초기 예산의 2배에 가까운 7억 5700만 파운드(약 1조3931억원),

 뉴 웸블리의 대명사였던 [트윈 타워(35미터)]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여전하지만 새로운 트레이드마크인 [웸블리 아치(135미터)]를 장착한 외관은 압권이다.


 지금부터 4년 전, 공사 중인 스타디움을 방문했을 때에는 지면에 세워진 아치의 파트를 보면서 ‘기술력이 높다고는 할 수 없는 이 나라에서 정말로 설계도대로 완성될까?’하고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땅속 35미터에 뿌리를 내린 아치는 지붕 중량의 일부(7천 톤 중 5천 톤)를 지탱하는 역할을 해가며 북 런던 상공에 멋진 호를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치 자체가 완성되어 토니 블레어 수상이나 데이비드 베컴 등이 점등식(밤에는 녹색의 라이트가 켜진다)을 행한 것은 2004년 9월. 그 때부터 스타디움 사용개시까지 2년 반 이상 소비한 것을 보면 역시 영국이다.


 어쨌든 이용자들의 실제 평판을 들어보면 이것이 조금 좋지 않다.


 우선 선수들에게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필드에 불만이 많다. 잔디의 길이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 필드에서는 공이 빠르게 전달되지 않았고, 선수가 미끄러지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FA컵 결승에서 패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필드가 무거워 우리들의 축구에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대표 시합 전날에는 브라질을 이끄는 둥가도 연습에서 미끄러진 카카 등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스타디움이라고 해서 좀 더 좋은 필드를 상상했었는데”하고 투덜댔다.


 한편 스탠드를 가득 채운 관중은 두 시합 다 박진감 넘치는 내용이 아니었던 것도 있어서인지 관전에 드는 비용이 비싼 것을 특히 문제 삼았다.

 스탠드 내의 매점은 현재의 영국 사정을 반영하는 듯이 이상할 정도로 비쌌다.

 커피 한 잔에 2.5파운드(약 4600원), 맥주 한 잔에 4.5파운드(약 8300원), 햄버거에 이르러서는 무려 8파운드(약 15000원)였다.

"스콧티시 비프를 사용하고 있으니까요"라는 말을 들어도 이래서는 살 때 멈칫하게 된다.

 거기에 FA컵 결승전 관전 프로그램은 전 148페이지의 호환판이지만 1권 10파운드(약 18000원)이었다. 최저 약 68000원이라는 티켓료도 잊어서는 안 된다.


 스타디움에서는 세계 최대수라는 2618개의 화장실도 시합 당일의 [수요]에는 대응할 수 없었다. 하프 타임 중에는 우려했던 대로 화장실 앞에 긴 행렬이 만들어졌다.

 '결국 축구 관전이라는 것은 이런 거니까'하고 체념한 얼굴로 줄서는 서포터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평소 리그전(특히 겨울)과 같이 세면대에다 오줌을 싸는 쓰레기 같은 놈들은 볼 수 없었다. 이것은 스타디움의 “새것”에 위한 귀중한 은혜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라고는 하여도 웸블리로 오는 팬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관전의 쾌적함도, 음식물의 낮은 가격도 아닌 응원하는 팀의 승리 외에는 없다. FA컵에서 우승을 이룬 첼시의 서포터들은 뉴 웸블리에서 기념할만한 하루를 잊지 못할 것이다. 대표시합을 보러 온 잉글랜드 팬들에게 있어서도 베컴의 부활을 목격한 뉴 웸블리에서의 하룻밤은 좋은 추억이 되었을 터이다.


 옛 웸블리가 잉글랜드 국민의 마음속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 배경에는 1966년 월드컵 우승이라는 영광의 기억을 시작으로 수많은 명승부의 무대가 되었던 역사에 있다.

 뉴 웸블리의 명성을 위해서도 유로 2008 예선에서의 남은 5시합 중 4시합을 홈에서 싸우는 잉글랜드 대표의 책임은 중대하다.

 결과가 좋으면 9만 명의 관중은 18000원짜리 햄버거로 배를 채우며 8300원짜리 맥주로 목을 적시면서 팀을 향해서 응원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뉴 웸블리]는 예전과 같이 형용사가 붙지 않는 [웸블리]로써 잉글랜드 축구계의 진정한 성지가 되어갈 것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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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20061109.html
저자: 키자키 신야

 둥가가 감독에 취임하고부터 브라질이 잘 나가고 있다. 첫 시합만 노르웨이에게 비겼을 뿐 그 뒤로는 아르헨티나와의 시합을 포함한 4연승. 독일 월드컵에서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준 브라질 대표지만 카나리아 색의 광채를 되찾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둥가와 전임자인 파레이라와는 어느 점이 틀린 것일까?

 감독이 교대되어도 레귤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DF 주앙은 말한다.

 “파레이라도 결코 나쁜 감독은 아니었지만 권위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에 비해 둥가는 브라질 대표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해 왔던 만큼 선수의 기분을 잘 알고 있다. 침울해 있는 선수가 있어도 그 기분을 이해하여 다시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에 굉장히 능숙하다.”

 24살에 피트니스 코치가 된 파레이라와 비교해서 둥가는 36살에 은퇴할 때까지 월드컵 3회 출장하며 94년에는 우승도 이루었다. 풍부한 경험의 전 브라질 대표팀 선수로서 현 선수의 고민을 자신의 일처럼 아는 것이다.

 둥가가 감독에 취임했을 때, 선수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90년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없었던 분함을 94년 월드컵에서 분출하여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너희들도 올 여름의 분함을 2010년 남아프리카 대회에서 분출해보아라!”

 쥬비로 이와타 시대에 둥가는 팀 동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주앙에게 알려주자,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다.”하며 크게 웃었다.

 “나를 포함한 브라질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얌전하지. 지쿠도 그럴걸? 하지만 둥가는 전혀 다른 타입인 것이다. 호통 치는 것은 당연. 그것이 선수의 교만한 마음을 날려버리고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당초는 감독 경험이 없었기에 주위에선 위구심을 띈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슈투트가르트 시대의 동료였던 부크발트가 “그는 현역선수일 때부터 감독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고 말했던 것 같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를 이미 알고 있다. 3년 전에 파레이라가 호텔을 전부 1인용 방으로 한 것에 비해 둥가는 “대가족이 브라질의 원점이다.”라고 말하며 2인용 방으로 되돌렸다.

 전술을 무기로 하는 감독이 증가하고 있는 최근 축구계에서 [기합]을 무기로 하여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를 상상해보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다.

[둥가가 일본에 있을 때 찍은 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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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토쿠하라 타카모토


[처음으로 남미의 패자에 오른 인테르나시오날]


붉은 군단 인테르나시오날 사상 최초의 왕좌


 격전의 끝을 알리는 시합 종료의 휘슬이 포르투 알레그리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을 때, 남미다운 광량이 부족한 조명이 비추어진 비이라 히우의 필드에 선 양 팀의 선수들의 모습은 실로 대조적이었다. 남미의 흰 거인이라는 이명을 가진 상 파울로 FC의 선수들은 힘없이 어깨가 축 쳐졌고 처음으로 남미 챔피언 자리에 앉은 인테르나시오날의 붉은 사나이들은 끝없는 기쁨에 휩싸였다.


 남미 클럽의 챔피언을 가리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결승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브라질 클럽끼리의 대결이 되었다. 2년 연속으로 결승전에 진출한 상 파울로 FC는 지금까지 세 번의 세계정상에 오른 실적을 가진 남미에 있어선 최상급의 명문 클럽이다. 상대하는 팀은 26년 만의 빅 타이틀 획득의 기회를 얻은 남부의 강호 인테르나시오날.


 국내 리그전의 틈새를 타서 광대한 남미 대륙 전토를 돌아다니며 시합하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힘든 싸움의 연속이다. 적 서포터에게서는 통렬한 “입 공격”을 받으며, 때로는 높은 지대 등의 특수한 기후 조건에서도 플레이를 하고 투지를 뿜어내며 부딪쳐 오는 상대 선수의 과격한 파울에도 맞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결승까지의 여정이 격전의 연속인 만큼 상 파울로 FC가 최종 결전에서 받아들이게 된 모든 것이 허무한 노력이 된 패배자라는 현실은 너무나도 잔혹했다. 대조적으로 승리자라는 칭호를 받은 인테르나시오날의 선수와 스태프는 기쁨을 폭발시켰고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까지 흐르는 사람도 있었다.


절대적 우위일 터인 홈에서 진 상 파울로 FC


 인테르나시오날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많은 서포터가 지켜보는 홈그라운드에서 클럽 사상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 아닐까? 클럽이 지역에 밀착되어 있고 전국적인 인기 클럽이 존재하지 않는 브라질에서는 국내 클럽끼리의 시합이라고 하여도 원정은 말 그대로 적지가 된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서포터의 절대적인 성원을 지원 받으며 싸우는 홈 게임은 절대적 우위에 선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상 파울로 FC는 9일 행해진 홈인 모룽비에서의 1차전을 1-2로 져 버렸다. 홈 팀에게 있어서는 전반 초반에 josoe가 레드 카드를 받아 퇴장 당해 필드에서 떠남으로 시합이 결정되었다. 프라이드와 프라이드가 맞부딪혀 계속된 파울로 과격한 시합 내용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던 시합이었기에 중반의 다이나모를 불과 9분 만에 잃은 상 파울로 FC는 팀의 리듬을 공수에 걸쳐 만들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인테르나시오날도 38분에 파비뉴(fabinho)가 퇴장. 파울로 의해 시합이 자주 끊겨 교착상태가 되었고 스코어도 변동 없이 전반 내내 0-0인 상태로 종료되었다. 계속 된 후반도 답답한 흐름을 끊어 주는 슈퍼 플레이는 어느 누구도 보여주지를 않았다. 그래도 53분과 61분에 인테르나시오날의 하파엘 소비스가 연속 골을 기록. 붉은 군단은 75분에 상 파울로 FC의 CB 에드카를로스(edcarlos)에게 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실점을 이 1점만으로 막아 내용은 재미 없었지만 불리한 조건 아래서 싸우는 것을 강요받는 원정 경기에서 승리라는 최고의 결과로 돌파한 것이었다.


 양 팀 다 임팩트가 부족했던 1차전을 끝낸 결과 상 파울로 FC는 16일의 2차전에서는 승리 해야만 하는 힘든 상황에 몰렸다. 그에 비해 인테르나시오날은 비겨도 우승이라는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최후의 시합에 임하게 된 것이었다.


포르투 알레그리가 낳은 파워 축구


 결승전의 무대가 된 두 스타디움은 기이하게도 전 대회와 같은 모룽비와 비이라 히우였다. 그러나 작년 결승전에 진출한 팀은 상 파울로 FC와 아틀레찌쿠 파라나엔시였기에 이번과는 다르다. 결승에 진출했던 팀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개최 스타디움이 같게 된 이유는 아틀레찌쿠 파라나엔시의 본거지인 쿄우세라 어리나에 있었다. 2만 4000명을 수용하는 쿄우세라 어리나는 남미 축구 연맹이 정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 스타디움 규정 수용 인원인 4만 명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스타디움이 비이라 히우로 변경되어 버렸던 것이다. 당연히 홈 팀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 시합은 스탠드에 빈 자리가 눈에 띄었고 활기가 결여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홈 & 어웨이가 된 이번 대회는 1차전인 모룽비에 7만 1456명의 서포터가 집결. 비이라 히우도 5만 5000명의 축구 팬으로 가득 차 스탠드는 두 시합 다 활기로 넘쳤다. 무엇보다도 우승에 한 발자국만 다가서면 되는 홈 팀을 지원하고자 비이라 히우에 몰려 든 인테르나시오날의 서포터들은 뜨거웠다. 그들의 정신적인 강인함, 클럽에 대한 애착심, 강렬한 단결력을 나타낸 성원은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는 11명의 인테르나시오날 선수들을 약동시켰다.


 예전에 소속했던 적이 있는 둥가로 상징되듯이 브라질 남부의 도시 포루투 알레그리시를 본거지로 하는 인테르나시오날은 용감한 가우쇼(카우보이)의 땅으로 알려진 토지 특색과 마찬가지로 파워 축구를 특기로 하고 있는 팀이다. 이 지역의 클럽은 상 파울로 주나 히우지자네이루 주의 테크닉을 주체로 하는 팀과는 달리 국경에 가까운 아르헨티나의 축구와 닮은 스타일이 특징이다.


 파워 축구를 무기로 이기는 것보다도 우선은 지지 않는 축구를 전개하는 팀은 토너먼트 전에서 강함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시의 라이벌, 그레미우도 이 강건한 스타일로 이미 2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거두고 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보면 파워 축구는 항상 대전 상대와의 생존을 건 시합이 되는 컵 전에서 강함을 발휘하는 것이 증명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상 파울로 결전을 제패하고 온 인테르나시오날은 파워로 상대의 전의를 꺾고 디펜스를 강고히 하는 패턴으로 2차전을 싸우려 했다.


 그러나 배수의 진으로 싸우는 상 파울로 FC도 승부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1차전의 재미없는 시합과는 반대로 2차전은 일진일퇴의 터프하고 박력이 있는 공방이 계속되었다.

 29분에 홈 팀의 페르난동이 선제점을 올리자, 51분에 어웨이 팀인 파붕이 동점탄으로 시합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65분 다시 인테르나시오날의 팅가가 헤딩 슛을 넣어 1점 앞서나가자, 디펜딩 챔피언도 종료 5분전에 의지를 보여 레니우송이 득점. 인테르나시오날의 팅가가 골 직후에 너무도 기쁜 나머지 유니폼을 벗는 행위로 2번째 옐로카드를 받아 퇴장이 되었지만, 두 팀 다 한 발도 물러나지 않는 전개로 결국 2-2의 스코어로 끝났다. 이 결과, 2시합에서 1승 1무승부의 성적을 거둔 인테르나시오날이 올 해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제패한 것이었다.


[인테르나시오날은 12월에 일본에서 열리는 클럽 월드컵의 출전권을 획득했다]


인테르나시오날 출신의 팔칸이 유럽에서 성공했던 이유


 1909년 창립이래 처음으로 남미의 왕자가 된 인테르나시오날의 역사 속에서 최대의 스타 플레이어는 파울로 호베르토 팔칸이다. 브라질 대표로써 지쿠, 소크라테스, 토니뇨 세레죠와 함께 황금의 콰르텟을 형성하여 명장 텔레 산타나가 이끄는 1982년 월드컵 스페인 대회에서는 강렬한 공격 축구를 필드에서 창조했었다.


 소속 클럽에서는 아직 남미와 유럽의 축구 스타일의 차이가 명확히 존재하고 있던 80년대에 황금의 콰르텟 중에 최초로 바다를 건너 이탈리아의 AS 로마로 이적. 1984년 리버풀을 상대로 PK전 끝에 패하기는 했지만, 유럽 챔피언스 컵 결승의 무대도 경험하여 “로마의 매”라는 이명을 얻으며 군림했던 명선수였다.

 이탈리아의 지방 클럽인 우디네세에서 플레이 했던 지쿠, 피오렌티나에서 전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브라질로 도망 온 소크라테스와 비하여 팔칸은 이 시대에 유럽에서 가장 활약한 브라질 선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팔칸이 이탈리아에서 성공했던 이유는 브라질적인 테크닉에 더하여 유럽적인 체력도 겸비하고 있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포지션도 원 포지션인 볼란치에 머물지 않고 최종 라인에서 최전선까지 맡을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이 기술과 체력을 융합시킨 올라운드한 플레이는 그야말로 브라질에서도 이색인 포르투 알레그리의 땅에 의해 자란 것이었다.


클럽 월드컵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유럽 이외의 팀


 이번에 남미 챔피언이 된 인테르나시오날에는 팔칸과 같은 걸출한 슈퍼스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예전에 슈퍼스타가 보여 준 축구 스타일은 팀 속에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스타 선수 부재를 메우기 위해서 선수 전원이 브라질임을 나타내는 테크닉뿐만 아니라 파워도 무기로 팀 전원이 하나가 되어 플레이하고 있다. 앞 선의 밀집지대에서도 빠른 움직임으로 빈틈없이 득점을 올리는 라파엘 소비스. 2차전에소도 선취점을 넣은 190센티의 장신 FW 페라난동. 풍부한 운동량으로 중반을 지탱하는 팅가 등이 팀의 중심선수다. 단지 많은 주력 선수의 이적 소문이 있어 앞으로의 팀 편성은 유동적이다. 12월에는 일본에서 개최되는 [TOYOTA 프레젠트 FIFA 클럽 월드컵 저팬 2006](이하 클럽 월드컵)에 남미대표로써 참가한다.


 예전 남미에는 브라질의 산토스 FC나 플라멩구, 상 파울로 FC에 아르헨티나의 인디펜디엔테 등 실력적으로 봐서 유럽의 빅 클럽에도 뒤지지 않는 강호가 존재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일부의 유럽 강호 팀이 가진 풍부한 자금에 의해 남미의 우수한 선수는 계속해서 자국을 떠나 남미 클럽의 레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남미 스타 선수까지도 획득하여 강화를 노리는 유럽의 강호가 출장하는 클럽 월드컵에서 인테르나시오날이 우승을 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선수 개개인의 레벨이라는 것이 축구의 승패를 좌우하는 하나의 요소일지도 모르겠지만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개인 레벨은 FC 바르셀로나가 다른 팀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인테르나시오날이 FC 바르셀로나와 대전하게 된 다면 반드시 고전할 것이다. 그러나 축구는 테니스나 배구와 같이 강호가 승리하는 확률이 높은 스포츠는 아니다. 축구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은 7월 독일에서 브라질의 10번을 달고 싸우다 거기서 괴로운 경험을 한 포니 테일의 천재 브라질리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강호가 유럽에 집중되고 있는 현대 축구에 있어서 각 대륙의 챔피언들이 모여 세계 넘버원을 다투는 대회의 의미를 확인시키기 위해서는 “유럽 외 지역”의 팀이 우승하는 것 말고는 없다. 그 중에서도 인테르나시오날은 유럽 클럽의 선수 공급원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남미에는 여전히 높은 재능을 가진 선수가 있다는 것, 거기에 자신들이 승리에 대하여 강렬한 투지를 가지고 있는 집단임을 우승이라는 결과로 나타내고 싶을 것이다.


 과연 인테르나시오날은 4개월 후 클럽 월드컵의 최종 시합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에서처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자신들의 축구를 해낼 수만 있다면 충분히 세계 챔피언이라는 칭호를 손에 넣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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