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페'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6.09.17 지단 은퇴 후의 신생 프랑스의 출범 by 渤海之狼
  2. 2006.06.09 앙리 인터뷰 by 渤海之狼
  3. 2006.06.09 지단과 앙리 - 공존해 가는 두 스타 by 渤海之狼 1
  4. 2006.06.07 레몽 도메네크 by 渤海之狼
  5. 2006.03.23 제라르 울리에 by 渤海之狼 2

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ro/08/column/200609/at00010627.html

저자: 요코오 카나

그루지야 국기를 손에 들고, 미소를 짓고 있는 형제

화제는 마켈렐레 소집 문제에 집중


 발을 내디딜 때마다 가볍게 뭔가가 밟히는 감촉은 서포터들이 먹고서는 길에다 버리는 해바라기의 씨의 껍질. 입장 시간을 기다리면서 길 가에서 볼을 차는 아이들, 국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젊은이들. 페이스 페인팅을 받고 있는 남자 어린이의 볼에는 흰 바탕에 빨간 십자가가 그려지고 있었다. 십자가의 수는 큰 것 하나와 작은 것 네 개로 모두 다섯 개. 9월 2일 수도 트비리시의 거대한 디나모 스타디움에서 조지아는 프랑스 대표팀과의 시합을 앞두고 있었다.


 [지단-마테라치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도메네크 감독의 계약 연장이 발표되었고, '대표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던 튀랑은 생각을 다시 해야 했고, 역시 '대표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표명하고 있던 마켈렐레는 끌려오고……. 프랑스의 여름은 월드컵 결승의 열기를 지닌 채 지나고 있었다. 유로 2008이라는 목표로 이번에야 말로 지단이 없는 채로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써나가야 하는 프랑스. 하지만 예선 첫 걸음이 되는 조지아와의 시합을 앞에 두고 마켈렐레의 소속 클럽인 첼시의 모리뉴 감독이 대표팀 소집할 때 도메네크 감독을 비판한 사건으로 인해, 시합 전날 회견에서는 마켈렐레에 관한 질문만이 눈에 띄었다.조지아는 첫 시합에서 페로 제도를 6-0으로 이기는 쾌거를 올렸지만, 흑해의 동쪽에 위치하는 '알려지지 않는 나라'보다는, '도메네크 VS 모링유', 그리고 '이탈리아와의 시합은 월드컵 결승의 리벤지가 될 것인가'라는 이야기 쪽이 흥미를 끄는 것은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랑스가 다음 이탈리아와의 시합에 초점을 맞추든 그렇지 않던 조지아의 서포터들에게 있어서 유로 예선은 자국 대표를 응원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동시에 월드컵 결승전의 스타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던 것 같다. 실제로 스타디움은 팀 컬러인 적과 백으로 가득했지만, 잘 살펴보면 아스날 더구나 앙리의 유니폼도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고 잉글랜드 대표, 네덜란드 대표, 이탈리아 대표의 유니폼도 꽤 섞여있었다. 어쨌든 조지아 사람들은 굉장히 축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째서 인테르나치오날레에 있을 당시의 비에리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은 있어도, 조지아 대표 DF 칼라제가 소속하고 있는 밀란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가벼운 의문을 품고 있던 중, 휘슬이 울려 시합이 시작되었다. 양 국에 있어서는 처음으로 대전하는 시합이었다.


스타의 플레이를 즐긴 조지아 서포터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주도권을 잡은 것은 조지아였다. 2분, 4분에 계속해서 MF 고구아에게 돌파를 허용하여 왼쪽 사이드가 뚫린 프랑스. 슛은 골대를 벗어낫지만 서포터들은 굉장한 환호성을 올렸다. '마테라치', '마테라치'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GK 쿠페를 향해서 몇 번이나 '쿠페!! 마테라치 @#$%@(뭐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외쳤다. 프랑스에게 심리적인 공격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필시 프랑스 선수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도중에 '이러는 것이 더 낫겠다'고 눈치 챘는지, 함성이 '쿠페!! 바르테즈 @#$%@#'로 바뀌었다.


 그러나 조지아에 [스타 군단]으로 온 프랑스는 냉철했다. 도메네크 감독이 선택한 시스템은 4-4-2. 센터 백에 튀랑과 갈라스, 양 사이드 백에 사뇰과 아비달, 수비적 MF에 마켈렐레와 비에이라, 2톱은 앙리와 사하, 사이드 MF는 왼쪽에 말루다, 오른쪽에 리베리였다. 선수 소개에서 앙리와 동등할 정도로 커다란 야유를 받은 리베리는 7분, 볼을 뺏어서 오른쪽 사이드를 파고 올라가 가운데로 옮겨와 있던 말루다에게 짧은 패스. 말루다는 골 오른쪽 구석으로 슛을 차 넣어 우선은 프랑스가 선취 득점을 올렸다.

계속해서 16분, 또다시 리베리가 이번엔 중반에서 드리블로 돌진. 왼쪽으로 열려있던 사하가 라스트 패스를 받아 쏜 슛으로 리드를 2점으로 벌렸다. 조지아 서포터들에게서는 '리베리…….'하고 원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조지아도 네덜란드 AZ에 소속하는 FW 아르벨라제가 분투. 17분에는 고구아가 올린 크로스를 헤딩하여 거의 골을 넣을 뻔한 장면을 연출했다. 25분에는 개인기로 프랑스의 골문에 접근하여 페널티 에어리어 내에서 슛을 쏘려 했지만 갈라스가 태클로 간신히 막았다. 현재는 가봉 대표팀 감독으로 조지아 대표팀을 이끈 경험도 있는 전 프랑스 대표 출신의 알란 지레스는 [레퀴프]지에서 [그들은 라틴 풋볼을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과연 납득할 만했다. 또한 지레스는 [모두가 볼을 가지려 하기 때문에 수비형 MF를 찾는 것이 힘들었다]고도 말했다. 어쩌면 앞에서 언급했던 칼라제의 유니폼을 찾아 볼 수 없었던 이유는 아무리 조국이 자랑하는 유명 선수라고 하여도 수비적인 포지션이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이른 시간대에 2점을 리드한 프랑스는 후반 시작 2분 만에 추가점을 넣는다. 사뇰이 골문 앞 앙리에게 패스, 이것을 조지아 DF 아사티아니가 클리어 미스. 그리고 이것이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 자살골이 되었다. 그렇지만 스타디움에서는 [앙리의 골!!]이라는 아나운스. 앙리는 볼을 건들지도 않았지만 조지아 서포터들도 [앙리면 어쩔 수 없지]라는 분위기가 되어 전광표시판의 득점 선수 표시도 마지막까지 수정되지 않았다.


 수비에 있어서도 클리어가 아니라 드리블로 상대를 제치는 선택을 하는 리베리나 앙리의 골(??)이라는 스펙터클을 즐기는 조지아 서포터들. 시합 종료 즈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해프닝도 기다리고 있었다. 조지아 골 가까이서 스로인하기 위해서 터치라인으로 걷고 있던 앙리에게 갑자기 코너 플래그 근처에서 한 남자가 양 팔을 벌리고 접근해서는 껴안은 것이다. 물론 당황한 경비원이 떼어놓아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4명이 달라붙어 연행되어가는 그의 모습에 스타디움은 커다란 웃음으로 가득 찼다.

프랑스 계 이탈리아인 가족은 복잡한 심경. 그래도 이탈리아 응원인가?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디에?


 유로 예선 첫 시합, 원정에서 승점 3을 얻어 순조로운 출발을 한 프랑스는 파리로 개선했다. 이번엔 프랑스의 서포터들 앞에서 최고의 연출을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무대는 스타드 드 프랑스. 상대는 물론 이탈리아다.


 9월 6일 이탈리아와의 시합을 향해서 도메네크 감독이 서포터들에게 몇 번이나 부탁한 것은 "이탈리아 서포터들에게 경의를 가지고 맞이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특히 국가 제창 시의 야유는 월드컵 기간 중에도 문제가 되었기에 평소에도 투쟁심에 가득 찬 프랑스 대표 서포터가 똑 같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당부했다.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시합 시작 전부터 이탈리아 서포터가 조금이라도 "이~탈~랴, 이~탈~랴....."라고 시작하려 하면 스타디움 전체가 [부-!!!]하는 야유로 이탈리아 서포터의 성원을 묻어버렸다. 물론 이탈리아의 선수 소개에서도 아나운스를 상회할 정도의 야유. 참고로 가장 큰 부잉을 받은 것은 가투소였다. 하지만 스타디움 DJ까지도 마지막으로 부탁한 덕분인지 이탈리아 국가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울려 퍼졌고 커다란 박수로 받아들여졌다.


 [레퀴프]지의 예상을 뒤집고 이날 도메네크 감독은 조지아와의 시합과는 다른 시스템으로 변경했다. 앙리는 원 톱으로, 조금 처진 위치에 리베리를 배치했고, 오른쪽 사이드에는 고부를 기용. 리옹에서 뛰쳐나갈 생각으로 이적 교섭을 진행했기에, 이번 시즌은 리저브 리그에서밖에 플레이 할 수밖에 없었던 고부가 시작한지 2분 만에 쇼의 막을 열었다. 앙리가 내려가면서 볼을 키프 하여 왼쪽의 마켈렐레에게 패스. 마켈렐레는 그 상태로 전방의 갈라스에게 패스를 보냈고, 갈라스가 사이드 체인지하여 오른쪽으로 롱 패스. 실은 마켈렐레에게서 패스를 받았을 때 갈라스는 조금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지만 부심은 깃발을 올리지 않았고 오른쪽에 파고 들어와 있던 고부는 망설임 없이 호쾌한 골을 차 넣었다. 성급한 서포터들은 일찍부터 자신들 독특의 구호를 시작했다. "근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데?"


전원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지금의 프랑스


 18분, 중앙에서 찬 말루다의 강력한 슛을 GK 부폰이 튕겨냈다. 왼쪽으로 흘러나온 볼에 앙리가 재빨리 달려들었고 슬라이딩으로 막으러 온 칸나바로의 발에 맞고 골. [앙리!! 앙리!!]라는 함성으로 들썩이는 관객석을 향해 앙리는 양 손으로 핸드 키스를 날렸다.

 이탈리아도 2분 후, 피를로가 오른쪽 사이드에서 FK으로 골 앞에 질라르디노에게 맞추어 1점을 얻는 의지를 보였지만 그래도 이날의 자신감으로 가득 찬 프랑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프랑스는 90분간을 통해서 11명 전원이 최소한 한 번 이상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하는 공격진은 물론 대치하는 세미올리를 1대 1에서 막은 아비달, 몸을 던져 라인 상의 볼을 건져낸 GK 쿠페, 카사노를 페인트로 제친 갈라스, 후반 두 번에 걸친 카운터 시도를 막은 마켈렐레..... 그들의 보여준 파인플레이때마다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55분, 고부가 후방의 사뇰에게서 받은 패스를 헤딩으로 넣어 이탈리아를 확인 사살했다.


 전원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지금의 프랑스가 [축구에서 골을 넣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가르쳐 주는 듯한 시합이었다.


 지단의, 그리고 프랑스의 월드컵은 이탈리아와의 리벤지 매치에서 승리함으로 이제야 끝났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2004년, 지단이 대표팀에서 은퇴를 결단한 직후의 이스라엘과의 시합에서, [지주-][각주:1]콜이 울렸다. 이번에도 시합 종료 즈음 스타디움에는 [지주-]의 콜은 울렸지만, [돌아와 주면 안 돼?]라는 비통한 2004년의 콜과는 달리, '지금까지 고마워'라고도 할 수 있는 따뜻함을 느꼈다. [르 파리지앵]지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번에는 마돈나의 콘서트에는 가지 않고 소파에서 편안히 이탈리아와의 시합을 관전했다고 하는 지단. 그 [지주-]콜은 그에게도 전해졌을까?

  1. 지단의 애칭.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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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3번째 월드컵을 맞이하는 앙리. 자신의 활약으로 1998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티에리 앙리는 지금까지 아스날에서 수많은 영광을 손에 넣었다. 리그 우승 2회, FA 컵 우승 3회를 시작으로 이번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개인적으로도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올 시즌을 포함하여 네 번 빛났으며, 수상한 적은 없지만 발롱도르(유럽 최우수 선수상)나 FIFA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는 항상 상위에 랭크되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통산 32골을 넣고 있으며 이번 대회에서도 '르 블뢰'의 운명은 그에게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살에 대표팀에 들어가 1998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인 브라질과의 시합을 제외한 6시합에 출장해서 3골을 넣어 팀 우승에 공헌. 그러나 2002년 두 번째 시합인 우루과이와의 시합에서 퇴장 당하였고 팀은 16강 진출 실패로 끝났다.


 함께 프랑스 대표팀을 이끄는 지네딘 지단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현역 은퇴를 발표했으며, 전 대회 설욕을 노리는 프랑스는 상상이상의 각오로 월드컵에 임할 것이다. 28살이 된 앙리는 세 번째 월드컵을 맞이한다. 클럽에서의 활약에 비하면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떨어진다는 앙리. 이번 대회에서는 르 블뢰에서도 광채를 발할 수 있을 것인가?


- 티티(앙리의 애칭), 지네딘 지단이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현역을 은퇴한다는 것을 발표하였는데, 당신 역시 지단에 필적 또는 그 이상으로 르 블뢰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 국민들에게 있어서 누가 최고일까, 지네딘일까 나일까는 모르겠군. 둘 다 (대표팀에서) 요 몇 년간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으니까. 클럽 레벨에서 우리는 함께 이탈리아에서 플레이한 경험도 있으며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영광을 얻었다. 나는 압박이 강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플레이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루어 온 것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다.


-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에서 플레이하는 것과 월드컵에서 플레이하는 것은 다른지?


물론. 프리미어와도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과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들 선수는 입고 있는 유니폼의 색깔에 관계없이 언제나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런 의미에서는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 막바지 즈음 당신이 CK를 차기 전에 몸을 숙인 장면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고 본다.


그러한 자세를 취했다면 피곤해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온 힘을 다 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결승에서 졌기에) 다 쏟은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때 아스날은 1-2로 지고 있어서 나는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시간이 흘러간다. 좀 더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나?'고 물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고 느꼈지만 말이다. 선수는 온 힘을 다 쏟은 다음에 로커 룸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 (아스날에서의 시즌을 끝내고) 이제부터는 프랑스 대표로써 월드컵에 임하게 되었는데, '샴페인 사커'라 불리었던 프랑스의 플레이에는 전통적으로 보다 화려하게 즐기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과거 두 대회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모국에서인 1998년 대회는 멋진 축구로 첫 우승을 이루었고 열광에 빠졌다. 챔피언으로써 임한 전 대회인 2002년에는 한 골도 넣지 못하고 16강 진출 실패. 이번 대회는 어떨까?


1998년에 가까우면 좋겠다고는 생각하지만……. 과거의 팀으로 돌아갈 순 없으니까. 프랑스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만큼 팀의 기본은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전할 팀이나 타이밍, 부상, 신체적인 부분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더해진다. 이번 대회는 (대회하기 전에) 휴식이 주어졌지만 저번 대회는 각국 리그 시합과 스케줄이 너무 가까워서 우리들은 피로를 풀지 못하고 대회에 돌입해버렸다. 이번 회에는 FIFA가 거의 1개월간 비워주었기 때문에 우리들 프랑스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 축구 내용에 관해서는?


무엇이 일어날지는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하지만 프랑스는 각 포지션에 멋진 선수가 준비되어있으며 트레제게나 지단, 실베스트르, 사뇰, 비에라 등은 경험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들은 예선에서 고전했다. 편한 그룹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 예선에서 프랑스는 자멸한 감도 있다. 플레이를 살리기 위한 공간을 만들지 못했다.


예선 초반에 실패해 버린 것은 창조적인 부분이다. 디펜스에 문제는 없었다. 마켈렐레 등 중반의 선수들의 마크는 확실했으며 다른 선수들의 커버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네딘이 대표에 복귀하는 것을 결심한 것은 팀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단의 복귀는) 팀에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주었다. 마치 지네딘이 마법을 가지고 온 것처럼.


- 레몽 도메네크 감독이 컨디션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바르테즈를 레귤러 GK로 지명한 것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많은 팬들은 리옹의 수호신인 쿠페를 지지하고 있는데.....


이것에 관해서는 코멘트할 수 없다. 도메네크 감독은 굉장히 좋은 팀을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 파리에서 열린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지윌리와 대전했는데


지윌리는 위대한 선수이며 바르셀로나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지윌리가 대표팀에 선출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감독의 판단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 확률로 따지면, 스페인과는 16강, 브라질과는 8강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확률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2002년 월드컵 전에도 프랑스는 우승후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16강 진출 실패하였다. 누구나 편하고 쉽게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나는 프랑스가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 이번 대회의 프랑스는 우승 후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보통의 팀이 되어버렸나?


우리들은 언제나 우승 후보의 일각이라고 생각하며 요 1~2년 사이에 팀의 기반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1970년대의 네덜란드처럼 되는 것일까?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군. 비슷한 부분은 있겠지만. 프랑스는 오랜 시간 강하고 우승도 하는 팀이었다. 팀으로써 뿐만 아니고 각 클럽의 중심 선수가 많다는 의미에서도.


- 우승 후보의 필두는 어느 나라라고 생각해?


모두가 생각하는 듯이 브라질일 것이다. 많은 기적이 일어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언급되는 팀이 우승후보가 아닐까? 개최국 독일에 강호국인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그리고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이번 대회 개인적인 목표는?


특별히 없군. 필드에 서면 평상시대로 팀을 위해서 온 힘을 다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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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키무라 카야코


조용히 퍼지는 앙리와 지단의 불화설


불화설이 있는 앙리와 지단. 실상은??

 작년 여름, 2004년 유럽선수권 후에 한 번은 대표팀에서 은퇴했던 지네딘 지단이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고전하던 프랑스 대표팀을 구하기 위해서 복귀했을 때 티에리 앙리는 '신이 돌아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요점을 명확히 집은 듯한 이 말을 빈정대는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적진 않았다.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확실치 않지만, 앙리가 유럽선수권 당시 '지단이 나한텐 어시스트해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내비친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 그는 지단 은퇴 직후 '대표의 리더가 될 결심이 섰다.'며 의욕이 넘쳤기 때문에 자신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을 터인 팀이 기능성에서 떨어지고 고전한 끝에 지단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에 앙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추측이 자연히 부상한 것이다.


 스타라고는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얌전하고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이미지의 예술가 지단은 기적을 일으키는 플레이 능력뿐만 아니라 그 인품으로 인해 온 국민에게 사랑받고 있다. 한편 앙리의 경우 세계 정상급의 능력을 누구나가 인정하지만 어떤 상황에서건 [Moi, Moi (나는, 나는)]이라고 말하는 좀 자기중심적인 프리마돈나로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언제나 다 함께 모여 연습할 수 없는 대표팀에서는 선수간의 결속이 성공의 열쇠가 된다. 유능한 선수가 즐비했던 2002년 이탈리아 대표가 팀 내의 질투심으로 내부분열을 일으켰고, 그런 모습에 진저리가 난 주장 말디니가 대표팀 은퇴를 결심한 것을 아는 독자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잘못을 고친다고 선언하며 임한 유로 2004에서도 이탈리아는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담당기자가 밝힌 유로 2004 초반에 웃기는 일지의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6월 8일: 가투소가 밀란식의 시스템을 부정하고 자신과 피를로를 벤치에 앉힌 트라파토니 감독을 비판.

 6월 9일: 코라티가 카사노가 자신에게 어시스트 패스를 보내지 않았다고 화내며 욕하여 큰 싸움으로 발전. 델 피에로도 토티만을 칭찬하는 감독에게 '이렇게 한 쪽만 편드는 것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어쨌든 감독이 말하는 것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다'고 불평을 했다.

 6월 10일: 네스타, 부폰, 비에리 등이 연습의 밀도가 낮다며 감독에게 직접 담판.

 6월 12일: 원래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이탈리아 국적을 획득하여 대표팀으로 들어온 카모라네시와 포지션 경쟁자였던 피오레가 '각자가 자신의 나라의 대표팀에서 플레이 해야만 한다'고 빈정대는 발언.

 6월 15일: 공식 운동화에 불평을 말하는 토티에게 네스타가 '그럼 맨 발로 뛰어'라고 비난. 가투소는 '맨발로 1000킬로미터 달리는 민족도 있다'며 바보 같은 발언으로 네스타를 감쌌다.

 즉 당시의 이탈리아 대표팀은 단결은커녕 팀 스피릿이 금이 갈 때까지 가서 파스타와 햄을 대량으로 공수했던 노력도 허무하게 예상대로 조기 탈락하였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현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리피는 우선 팀 스피릿의 중요성을 선수들에게 깨닫게 하여(부정의혹 문제로 다른 또 다른 장해가 만들어졌지만) 현재의 팀은 연대감을 되찾았다.


 또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판 바스턴은 취임하자마자 월드컵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1990년 월드컵 이탈리아 대회에 임했던 네덜란드 대표팀은 재능이라는 면에서 커다란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팀 내의 분위기는 썩었었기 때문에 결코 팀으로써 기능하지 않았다. 팀 속에 파벌이 있어서 트레이닝 캠프에서 왕따나 파벌 대립이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들은 넌더리가 났다. 개인을 버리고 같은 목표를 향해서 손을 잡고 나아가지 못하는 팀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1998년 월드컵에서 우승했던 프랑스대표팀은 재능이라는 측면에서 현재의 팀보다 떨어질지 모르지만 우정에 의해 뭉쳐진 집단이라는 칭찬이 자자했다. 당시의 중심멤버였던 로랑 블랑은 "현재의 프랑스 대표팀에는 비할 데 없는 국제적인 스타가 9명이나 있지만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무엇보다도 전원이 하나가 되어 플레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팀 스피릿, 진정한 집단 그리고 각자가 같은 방향을 향해서 동시에 온 힘을 쏟아 붓는 것이 필요하다"고 암시적인 말을 남기고 있다.


 시간이 지났어도 호흡이 맞지 않으며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는 르 블뢰를 보고 국내에는 비관론이 일었다. 한편 네덜란드의 판 바스턴감독은 프랑스의 유럽예선을 본 적이 없었는지 프랑스를 유력한 우승후보중의 하나로 꼽았다. 확실히 프랑스는 얼굴들만 본다면 강력하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노 젓는 사람들이 있어도 전원이 같은 방향으로 향해서 호흡을 맞추어 젓지 않으면 배는 나아가지 않는다.


앙리와 지단은 정말로 사이가 안 좋은가?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머리에 떠오른다 ― 앙리와 지단은 정말로 사이가 나쁜가?

 2003년 지단이 주도가 되어 지진이 발생한 알제리를 위문하려는 친선시합이 행해질 때 앙리가 "하자고 한 것은 지주(지단의 애칭)다. 거절할 수 없잖아"하고 빈정대는 말투로 말하는 것을 주위에 있던 몇 명의 기자가 들었다.

 거기에 지단이 월드컵 후에 은퇴를 발표한 것에 대하여 벵거가 "어째서 지금 발표하는 지 의문이지만..."이라며 조금은 비판적인 의견을 말했을 때 옆에 있던 앙리가 그것에 동의하였다고 해서 미간을 찡그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둘을 잘 아는 프랑스 대표팀 담당기자는 그런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신이 돌아왔다'고 코멘트 했을 때 앙리는 정말로 그런 마음으로 말했다고 생각한다. 조금 빈정댄 투로 들렸을 지도 모르지만 나쁜 마음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면 앙리는 축구를 굉장히 잘 알고 있다. 그는 축구를 보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며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로 연구하고 있다. 해외 리그나 대표, 다른 나라의 선수 실력에 관한 지식에는 놀랄 정도다. 때문에 그는 일찍부터 지단 없이는 프랑스가 예선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유일한 기회는 지단, 마켈렐레, 튀랑 등 경험 있는 선수들의 복귀라고. 그 역시 자신이 스타가 되어 예선에서 떨어지는 것 보다 월드컵에 갈 수 있는 편이 좋은 테니"
 하고 [레퀴프 매거진]의 파스칼 그로 기자는 말한다.


 그로 기자는 1998년 월드컵 이전부터 프랑스 대표팀을 따라 다니고 있으며 시합뿐만 아니고 캠프에도 붙어살며 대회에서 프랑스가 지면 곧바로 돌아가 버린다. 과거에 앙리가 있던 베르사유에서 플레이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주니어 시대의 앙리도 취재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특히 앙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단이 복귀했을 때 '지단이 돌아왔다!'며 메일을 보내 온 것을 보면, 그는 지단에게도 호의를 가지고 있는듯하다. 더욱이 모두 싫어하고 있는 도메네크 감독에게도 이해심을 가지고 있다. 그로 기자에게 질문을 한 것은 그가 대표팀 멤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으며 거기다가 그 의견도 굉장히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앙리는 여러 선수를 잘 알고 있다.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비야레알과의 시합에서 종반 리켈메의 PK 때, 앙리는 GK 레만에게 귓속말로 무언가 말했다. '리켈메는 중요한 순간에서 가운데로 PK를 찰 때가 많다고 말했지'하고 앙리는 후에 밝혔지만 이 어드바이스가 제대로 적중했다.

 또한 아스날에서 주장에 임명받고 나서부터 젊은 선수들을 잘 챙기게 되었다. 앞서 대표 데뷔를 이룬 리베리도 앙리에게 '마르세유에서 했던 대로 맘껏 사이드를 올라가. 볼을 빼앗겨도 신경 쓰지 마'하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정말로 앙리는 이기주의자일까? 공격수에게는 때론 이기적인 면도 필요하지 않을까?


 앙리가 지단은 자신에게 어시스트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말했다는 에피소드에 관해서 그로 기자는
 "그 자신이 스스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앙리가 공적인 자리에서 불만을 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은 저널리스트가 꾸며낸 것이라 생각한다"
 고 못을 박았다.

 "지단은 앙리에게 좋은 패스를 많이 보내고 있다. 단지 앙리는 대표에서 지단의 어시스트로 골을 넣은 적이 없다. 그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말을 바꾸면 지단은 앙리에게 한 번도 골을 넣는 패스를 보낸 적이 없다는 것이 된다. 어시스트가 될 듯한 패스를 받아도 그것을 넣지 못했으니까. 왜일까? 누구도 그 답을 알지 못하며, 단순한 우연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지단이 있을 때의 프랑스는 지단을 축으로 플레이한다는 것이다. 아스날은 앙리를 위해서 플레이하지만 프랑스 대표는 다르다. 그런 이유도 있어 대표팀에서 앙리는 아스날에서 플레이할 때만큼 빛나지 않는다"


앙리 부진의 원인은, 중반과 수비진에 있다.

먼 길을 돌아 온 프랑스 대표팀. 이제서야 팀에는 일체감이 생겨, 그것에 의해 앙리도 대표팀에서도 광채를 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지단이 은퇴한 후 도메네크 감독은 앙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프랑스를 구축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랬으면서도 팀은 지리멸렬하여 지단 복귀 이전에 월드컵 예선에서 앙리의 골은 키프로스와의 시합에서 넣은 1점뿐이었다(2004년 10월).

 그로 기자의 의견에 따르면 그 이유는 앙리의 뒤에 있던 선수들의 질이 떨어진다고 한다. 자신의 볼이 되면 앞선에 있는 앙리에게 신속한 패스를 보내는 아스날 식의 플레이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필요하다. 지단 외에 리자라쥐, 드사이, 튀랑 등이 떠나 디펜스 진이 물갈이되어, 대신 들어온 스키라치, 지베, 붐송 등은 좋은 DF이기는 하나 빠르고 능수능란하게 앙리에게 볼을 보낼 기술과 여유가 부족했다. 처음으로 임무가 맡겨진 그들의 우선 사항은 수비였다. 때문에 신생 프랑스는 거의 골을 먹지 않아 수비면에서는 굉장한 견고함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뛰어난 DF는 단지 수비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격수를 지원하며 터치라인을 파고 올라가 크로스를 올리며, 볼을 뺏은 뒤에는 그것을 공격으로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공격 일선에는 앙리, 트레제게, 골 문 앞에는 바르테즈가 있지만, 그 사이에 있는 선수들은 그런 다채로운 일을 하기에는 너무 젊었으며 경험이 부족했다. 사뇰은 예선 시작할 당시에는 부상이 많았고 비에라도 요 수 시즌 대표에서도 클럽에서도 조금 능력이 떨어져 있었다. 더욱이 도메네크 감독은 아스날 식의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피레와 싸우고 헤어졌다.


 2004년 여름 베테랑들의 은퇴 후 도메네크 감독은 보다 신속하게 볼을 공격진에게로 운반하는 플레이를 목표로 세웠다. 확실히 유로 2004에서는 모두가 지단에게 패스를 했기에 플레이 전개가 조금 늦어졌다. 그러나 지단이 플레이를 늦게 한 것은 아니며 그가 볼을 자신에게 패스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지단에게 건네주면 그가 해결책을 찾아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다른 선수들은 곤란할 땐 언제나 지단에게 볼을 건넸다. 결국 신속하게 앙리에게 볼을 건네는 편이 좋았을 때조차 지단에게 볼을 보낸 것이다.


 그로 기자는 [지단인가 앙리인가?]라는 국내의 논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티티(앙리의 애칭)는 빈 공간으로 달려 들어가는 빠른 전개의 플레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단과 앙리 어느 쪽 하나를 반드시 골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굉장히 높은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라면 반드시 함께라도 기능할 수 있다."
 그것은 공격에 다채로움을 주는 것이 되는 것일 것이다. 베스트인 것은 지단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닌 상황이나 상대의 시스템에 따라 지단이나 앙리 양쪽을 나누어 쓰는 것이다.


세대교체의 실패


 또한 도메네크 감독은 몇 개인가 미스를 범했다.

 "예를 들면 페로 제도와의 시합 등에는 출장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중요한 시합에서 젊은 선수들을 도와주기를 부탁하며 지단, 마켈렐레, 튀랑을 처음부터 잔류시켜 팀의 골격을 유지시키면서 젊은 선수들을 거기에 더해 갔어야 했다. 그러나 도메네크 감독은 입으로는 남아 주길 바란다면서 실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만들고 싶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베테랑들을 잔류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선수들도 그것을 느꼈는지 팀을 떠나버렸다."
 고 그로 기자는 말한다.
 "더욱이 그는 베테랑들과 젊은 선수들의 연결파이프가 되어줄 피레, 타쿠르와 같은 선수를 제외했다. 피레는 필시 지금이 전성기이며 성격도 좋기에 팀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데 최적인 귀중한 인물이었는데"


 너무 급격한 세대교체를 시도한 것은 감독 자신이기에 반은 자업자득일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그에게는 차분히 팀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1998년 대회의 팀은 94-95년대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96년에는 결속이 생겼으며 더욱이 개최국이었기 때문에 예선에 신경 쓸 필요 없이 96년부터 98년까지 같은 멤버로 2년 걸쳐 조직과 연대감을 키워 가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도메네크 감독에게는 2년이 주어졌지만 젊은 선수들로 팀을 재건하면서 동시에 유럽 예선을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예선에서의 부진 때문에 방향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되어 1년을 허비하였다. 최초 1년째는 지단 등 베테랑이 없었으며 또한 마브바나 지베, 페드레티 등 여러 젊은 선수들을 시험했기에 두 시합 연속으로 같은 시스템으로 플레이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2005년에 보다 못한 베테랑들이 복귀했을 때 그들 대부분은 젊은 선수들을 몰랐다. 스타선수들은 해외에서 플레이하고 있다. 그들은 지베 등 젊은 선수의 플레이를 거의 본 적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겨우 생겨난 팀 스피릿


 팀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서로를 아는 기회를 얻은 것은 2005년 11월 카리브 해의 마르티니크에서 행해진 코스타리카와의 친선시합이었다고 그로 기자는 생각한다.
 "그때 선수들은 처음으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긴 시간을 함께 보냈다. 비행기 여행은 길었고 가족도 있었기에 그런 환경이 그들을 서로 가까이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팀이 하나가 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그 순간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본 대회를 향해서 티뉴에서 합숙이 있었다. 너무도 짧고 고지에서의 트레이닝은 육체적 효과를 얻기에는 효과가 없었지만 선수가 가족을 불러 함께 시간을 보냈을 때 선수들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때문에 팀 스피릿은 코스타리카와의 시합에서 그리고 티뉴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확실히 쿠페와 바르테즈의 마찰은 있었지만 그것이 빨리 일어난 것이 불행 중의 다행이었다. 겨우 고정된 사뇰, 튀랑, 갈라스, 아비달의 4백은 5월 27일 멕시코와의 시합에서 처음으로 함께 플레이했다. 때문에 그들의 플레이에는 '오토마티즘(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연계플레이)'이 결여되어 있었지만 선수들이 커다란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은 저절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5월 31일 덴마크와의 시합에서 우리들은 그 효과를 목격할 수 있었다. 디펜스의 연계는 개선되었고 뒤에서 앞으로의 움직임에 물이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친한 친구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팀 스피릿이 만들어지면 서로가 서로를 위한 플레이를 하게 된다. 이것이 기능하여 모두가 자신감을 가지면 지단에게 너무 의존할 필요 없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 시합에서는 말루다, 아비달, 사뇰, 리베리 등 스타 이외의 선수들이 자신 넘치는 플레이를 보였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그런 자신감을 지탱해주는 지단과 앙리가 거기에 있다.

 "1998년의 쾌거로 모두 잊고 있지만 지단 이전의 프랑스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다. 90년, 94년 프랑스는 월드컵에 못 나갔으며 그리고 98년에는 개최국이었기 때문에 예선이 없었다. 그 이전의 위대한 프랑스는 플라티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로 2004에서 그리스가 우승한 예외는 있지만 보통 위대한 팀에는 위대한 선수가 필요하다. 때문에 한 시대가 끝났을 때 다음에 또 위대한 팀이 만들어지기까지 몇 십 년이나 걸리는 때도 있다. 참을성을 필요하다"
 고 그로 기자는 말한다.


물론 모두가 몇 십 년이나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단이 돌아와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월드컵이 된다. 덴마크와의 시합에서 골이 되지는 않았지만 지단은 앙리에게 하나의 결정적인 롱 패스를 보냈다. 시간은 걸렸지만 5년, 10년 후 위대한 팀으로 이어질 무언가가 싹트고 있을 지도 모른다. 만약 진정한 팀이 만들어졌다면 우리들은 그 증거를 독일의 필드에서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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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wcup/06germany/column/200605/at00009273.html

저자: 데무라 켄지


 챔피언스 리그 결승은 축구 선수에게 있어서 꿈의 무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자신들의 모국에서 행해진다고 한다면 -.

 5월 17일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행해진 곳은 파리 근교에 있는 스타드 드 프랑스였다.


 이날 결승에 진출한 바르셀로나 또는 아스날의 일원으로 꿈을 실현시킨 프랑스 선수는 3명. 바르셀로나의 MF 지윌리와 아스날의 FW 앙리 그리고 피레스였다.

 그런데 이 3명, 10일 후에 같은 장소에서 행해진 월드컵을 향한 예행연습 프랑스 대 멕시코전(1-0으로 프랑스의 승리)에서는 셋 다 뛰지를 않았다. 그 중에 앙리는 시즌 중의 피곤을 참고하여 면제받은 케이스였지만, 남은 두 명에 관해서는 전혀 다른 사정이 있었다.


 [지윌리 대 피레스]

 실은 그런 식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을 프리뷰하는 프랑스 미디어가 많았는데 그것은 그 두 선수가 월드컵 멤버 23인에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 최고의 클럽을 정하는 시합에 진출한 팀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라 하여도 프랑스 대표에는 필요 없다. 그것이 프랑스 대표 레몽 도메네크감독이 내린 결론이었다.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쏟아진 야유


 홈그라운드에서 예정된 평가전 세 시합의 시작인 멕시코전. 이미 월드컵 종료 후에 현역 은퇴를 발표한 지단에게 있어서는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플레이하는 마지막 기회였다. 월드컵으로의 준비를 하는 한 편 1998년에 처음으로 세계 넘버원의 자리를 획득한 장소에서 지단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는 시합. 원래대로라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따뜻한 성원이 보내져야할 시합에서 프랑스 대표팀에게 보내진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야유였다.


 홈그라운드의 팬들에게서 야유를 받은 프랑스 대표 선수는 주로 두 명이었다. 한 선수는 후반 지단과 교대하여 출장한 MF 도라소였다.

 예전 "나는 프랑스인이라고 하기보다는 뉴칼레도니아 사람"이라고 말했던 MF 카랑뵈가 대표팀 경기에서 프랑스 팬들에게서 야유를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배경이 야유의 뒤편에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 보았지만 도라소가 동성애자들의 축구 팀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파리 생제르망 소속 선수가 팀의 본거지이기도 한 파리에서 커다란 욕지거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로는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진짜 이유는 또 한사람 야유를 받고 있던 선수와 도라소와의 공통점을 찾고 있던 중에 차츰 알게 되었다.


 또 한 명의 표적은 GK 바르테즈였다.

 "일반 팬들 중에는 (도메네크 감독이 선택한 23명의) 선출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DF 사뇰)

 즉 도라소나 바르테즈는 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로써 플레이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라고 생각하는 팬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야유라는 현상으로 이어졌다...고

 그런 분석이 적중했다는 것은 멕시코와의 시합에서 가장 커다란 야유가 일어난 순간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명확해진다.


 [프랑스 대표팀 감독 레몽 도메네크]

 시합전에 도메네크 감독의 이름이 소개되어진 순간 일어난 야유는 선수에게 향해진 것보다 훨씬 더 뜨거운 것이 내포되어 있었다.


납득이 가지 않는 선출, 그리고 설명부족


 지윌리 81.54%, 피레스 63.79%

 이것은 [레퀴프]지가 멤버 발표 전에 인터넷상에서 행한 [누가 독일로 가는 23명에 어울리는가?]라는 앙케트의 결과이다. 특히 지윌리의 숫자는 공격적 MF중에서는 지단의 95.28%의 다음 가는 것이었다. 한편 도라소는 MF진 10명의 이름이 올랐는데, 그 중에서도 랭크 밖이었다.

 그리고 도메네크 감독이 바르테즈를 레귤러 GK로써 지명한 건에 관해서는 약 70%가 [그레고리 쿠페를 레귤러 GK로 해야 한다]고 답한 사실도 있다([프랑스 풋볼]지). 역시 야유의 원인은 지윌리나 피레스를 대표에서 제외하고, 바르테즈를 레귤러 GK로 선택한 도메네크 감독의 선출에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감독에게서 설명도 없었으며 어떠한 이유로 대표에서 제외되었는지 알 수 없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출장하면서도 월드컵이라는 또 하나의 꿈의 무대에서의 플레이를 거부당하게 된 두 명의 MF는 낙선이 결정된 후 비슷한 낙담의 코멘트를 발표했다.

 이 두 선수가 지적하는 [설명 부족]은 도메네크 감독이 되어서부터 프랑스 대표에 정말로 현저히 보이는 경향이다. 긴 시간 유스 대표의 지도를 맡아왔던 도메네크 감독이지만, 그 [설명 부족]은 그 시대부터의 경향이기도 한 모양이다. DF 튀랑은 모나코 재적하고 있을 당시에 유스 대표의 일원으로 유럽 선수권에 출장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그때 '이유도 알 수 없이 갑자기 멤버에서 제외되어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유스 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것이 바로 도메네크 감독. 지금까지도 그 때의 사건을 포함하여 도메네크 감독과 1대 1로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튀랑은 말하고 있다.


멤버 발표할 때의 “폭거”


 그런 도메네크 감독의 [설명 부족]이라는 모습이 단 번에 화제가 된 것은 월드컵 멤버 23명의 발표라는 프랑스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가 주목하는 중요한 이벤트를 할 때였다.


 독일 월드컵의 프랑스 대표 멤버는 FIFA가 지정한 기한에서 하루 빠른 5월 14일 발표되었다. 그것은 매주 일요일에 방영되고 있는 인기 축구 프로그램 [텔레-풋] 속에서 멤버 발표의 모습을 생중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프랑스 대표와의 계약을 가지고 있는 방송국 TF1이 기획한 생중계는 뒷맛이 개운치 않게 끝난다. 프랑스 국민이 주목하고 있는 중에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난 도메네크 감독에게서 23명의 이름이나 그 선출 이유를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발표 회장이 된 크레르 퐁테누의 회견장에 있었던 프로젝터에는 23명의 이름이 찍혔던 듯하지만 그 정보가 일반 시청자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TF1의 저널리스트가 대신 23명의 이름을 읽게 되었다. 물론 선출 이유의 설명 등이 없는 채로…….


 텔레비전 중계 시는 물론 그 후의 기자회견에서도 선출 이유를 명확히 하지 않았던 도메네크 감독은 자신이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던 이동통신회사 SFR에게 제공하고 있는 다이어리 속에서 독점적으로 멤버 선출 이유를 발표하는 '폭거'에 나섰다. 즉 월드컵 멤버 23명의 발표라는 것은 프랑스 국민 전체에게 전해질 종류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맺고 있는 스폰서에게만 살짝 알려주면 된다는 종류의 것. 그렇게 도메네크 감독은 생각했다 - 라고 보일만 한 행동이었다.


 이미 멤버 발표 전부터 [이번 월드컵에서 도메네크 감독은 팀에 어떤 선수가 필요한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단이 누구와 플레이 하고 싶은가로 대표팀 멤버가 정해진다고 여겨진다]([르 파리지앵]지)라고, 도메네크 감독의 능력에 의문부를 찍는 경향이 있던 프랑스의 미디어는 멤버 발표 시의 폭거로 인해 완전히 뚜껑이 열렸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멤버 발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도자와 협회에게 독일에서 행해질 중요한 대회에 임하는 23명의 선도자가 될 수 있는가는 커다란 의문이다]([프랑스 풋볼]지)


 그러한 프레스에서의 이의신청, 거기에 일반 팬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압력도 있어 프랑스 협회는 도메네크 감독과 SFR과의 사이에 있었던 개인 계약을 강제로 끝내게 만들었다.

 [도메네크 감독과 우리들이 취한 방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면이 있는 것은 사실. 이 이상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SFR과 도메네크 감독과의 사이에 있던 개인 계약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레몽 도메네크의 고용자는 프랑스협회 하나만이 되었다.]


 대표 감독이 협회의 관할 아래 있으며, 그 협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팬들이 지탱하고 있다. 또한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대표팀 감독의 의무이다. 더 말하자면 협회는 정부의 관할 아래 있다는 점에서 말하여도 월드컵 멤버 발표라는 국민적인 관심사에 관해서 의도적으로(또는 돈과 교환하여), 하나의 스폰서에게 한하여 정보를 흘리는 것은 용서받을 턱이 없다. 도메네크 감독에게는 그러한 기본적인 인식도 없었다는 것이 된다.

 [월드컵을 창시한 나라로써 창피한 실태이다.]([프랑스 풋볼]지)


제 2의 에메 쟈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월드컵 개막전에 커다란 실태를 보인 도메네크 감독에게 있어서 모든 판단을 봉하고 명예를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연하지만 월드컵 대회에서 호성적을 남기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8년 전 자국 개최의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처음으로 정상으로 이끈 에메 자케 감독도 미디어에게 계속된 비판을 받았었다.

 [자케 감독 아래서 프랑스가 우승한다면, 채찍질을 당해도 좋다)([레퀴프]지)

 개막 직전에는 그러한 바보 같은 선언을 하는 미디어까지 나타날 정도였다.

 과연 도메네크 감독은 제 2의 자케 감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8년 전의 자케 감독은 칸토나, 파팡, 지노라라는 그 때까지의 주력 선수들을 멤버에서 제외하고, 당시는 어렸던 지단을 중심으로 하는 팀 만들기를 단행. 그리고 영광을 손에 넣었다. 그것에 비하여 도메네크 감독은 이미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있던 지단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으로 힘들게 예선을 돌파했다.

 전혀 반대의 접근법을 취하면서도 결국 지단을 중심으로 한 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자케 감독 시대의 프랑스 대표와 현재의 프랑스 대표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라 생각한다. 자케 감독이 끈질기게 미디어에게 대응을 계속 한 점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대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대회 전에 큰 비판을 받았다는 점은 공통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축구를 하고 싶으니까, 나나 지단이 필요하다. - 라는 이야기는 없었고, 어쨌든 [너희들이 되돌아오면 예선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라는 말만 들었다. 그 외에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지단과 함께 한 번은 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면서도, 월드컵 예선 탈락의 위기를 맞이했던 작년 여름에 부름을 받아 대표팀으로 복귀를 한 튀랑은 도메네크 감독의 복귀 요청의 모습을 그렇게 말했다. 불명예인 예선 탈락을 피하기 위해, 취임 시에 대표팀에서의 플레이 속행을 요청하여 거부당한 지단에게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이고 복귀해 주길 바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던 도메네크 감독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한 경위를 거슬러 올라가면, [월드컵 멤버는 도메네크가 아닌 지단이 고른다]라는 소문도 단순한 소문은 아닌듯한 느낌이 든다.


 멕시코와의 시합, [신체적인 면에서 100%는 아니었다.] 지단의 플레이는 혹평을 받았다.([레퀴프]지는 10점 만점에 3.5점). 그러나 그 이상 심했던 것은 지단이 필드를 떠난 후반의 프랑스 대표팀이었다. 멕시코가 60%이상 볼을 지배하여 특히 중반의 싸움에서는 완전히 대응이 늦어졌다. 적어도 멕시코와의 시합에서 프랑스의 싸우는 모습에서 지단의 상태가 안 좋았을 경우에 필요한 다른 작전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이미 도메네크 감독은 지단과 운명을 함께 하려고 맘속으로 정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확실히 지윌리도 피레스도 필요없다.


 [이 23명의 선수를 믿고 있으며, (월드컵 결승이 행해지는) 7월 9일을 노리고 있다.]

 이제는 쓸데없는 일을 아니 필요한 일 조차 설명하지 않는 것이 스타일이 된 듯한 느낌조차 있는 도메네크 감독은 그렇게 말한다. 도메네크 감독이 제 2의 자케 감독이 될 수 있는가 어떤가는 오로지 지단의 플레이에 따른다는 것은 틀림이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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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506/france/column/200603/at00008439.html

저자 : 데무라 켄지[出村 謙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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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교대를 단행한 프랑스 3대 클럽에서 유일하게 성공을 거두고 있는 울리에


 "사커는 생사가 걸린 문제가 아니다. 그 이상인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뱉을 턱이 없을 말이지만 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설득력이 있다.

 제라르 울리에[각주:1]. 현 리옹 감독. 확실히 그는 육체적으로 생사가 걸린 듯한  어려움과 정신적인 지옥에 떨어진 듯한 고난을 경험하면서도 철저하게 현장에 계속 남아있기를 원하는 58세의 명장이다.


 리옹, 파리 SG, 마르세유, 프랑스의 3대 클럽은 작년 시즌부터 이번 시즌에 걸쳐, 감독 교대를 단행했다.


 리옹 / 르 갱 -> 울리에

 파리 SG / 후르니에 -> 라콤브

 마르세유 / 트루시에 -> 페르난데스

 

 이들 중에서 전임자를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 확실시 되는 감독은 울리에뿐이다.

 약 10개월 전. 리그 5위인 상태에서 작년 시즌을 끝낸 트루시에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페르난데스의 마르세유는 3월 21일 현재는 작년과 같은 5위. '챔피언스 리그 출장 가능성이 있는 3위가 되지 않으면 감독으로써는 낙제점이다'며 트루시에의 목을 자른 마르세유지만, 페르난데스체제에서도 성적은 높아지지 않고 있다. 파리 SG에 이르러서는 라콤브체제가 되어서부터 점점 순위를 낮아질 뿐이었다(현재 8위).


 이 두 사람에 비교해서 울리에에게 주어진 임무가 쉬운 일이었냐고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 라고 할까 오히려 반대일 것이다.

 울리에에게 주어진 임무. 그것은 프랑스리그에서 네 번 왕좌에 오른 팀을 다섯 번으로 이끌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적어도 작년과 같은 8강에 오르는 것이다. 신임 감독에게는 굉장히 높은 목표치가 주어진 것이 울리에였다.


숫자가 증명하는 이번 시즌 리옹의 강세.


 올 시즌의 프랑스리그도 거의 3/4가 경과했는데 앞에서 말한 울리에에게 주어진 임무는 거의 클리어했다고 말해도 좋은 상황이다.

 3월 21일 현재, 리옹은 2위인 보르도와 승점 11점차로 수위를 독주하고 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 1회전에서 작년 시즌 8강에서 패배한 PSV에게 1-0, 4-0으로 쾌승, 여유 있게 8강에 올랐다.

 “작년과 비교해서 리옹은 훨씬 좋은 팀이 되어 있다. 가장 발전한 점은 중반이후의 안정감. 이것은 제라르 울리에의 능력에 의한 것일 것이다.”

 올해는 리옹에게 완패를 당한 PSV의 히딩크감독은 울리에 체제가 된 리옹의 강함에 대해여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는 4-3-3인 시스템으로 시작하여 전임자 르 갱이 만들어 낸 팀을 계승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울리에 체제의 리옹. 단, 세밀한 숫자를 비교해 보면, 작년과의 차이가 명확해 진다. 프랑스리그 작년 30시합 경과 시점에서 +25점이었던 득실점차는 올해는 +33이며, 챔피언스리그 1차리그에서는 작년도 올해도 +9였지만, 작년 스파르타 프라하에게 5-0으로 대승해서 벌어들인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내용적으로 올해가 더 나았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5승 1무승부라는 멋진 성적으로 그룹을 1위로 돌파했다.

 이러한 숫자에서도 히딩크감독이 보낸 올해 리옹에의 찬사가 외교적인 발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리옹 감독에 취임한 울리에는 고부, 빌토르라는 경량급의 테크니션이 많았던 FW에 193Cm, 90Kg인 카류를 보강. 압도적인 운동량과 테크닉을 자랑하던 에시엔(첼시로 이적)이 빠진 중반에는 페드렛티, 티아고라는 서로 다른 타입의 MF를 획득하여 종합적으로는 구멍을 메워 보였다. “종합력에서는 작년보다도 향상된 느낌을 받는다”고 평가를 내린 것은 프랑스 대표 GK인 쿠페.


 앞서 말한 에시앙과 쥬닝요의 MF진은 초인적인 움직임이 작년 시즌 리옹의 특징의 하나였는데, 올해도 변함없는 활약을 보인다고는 해도, 그것이 반드시 쥬닝요만이 눈에 띈다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이러한 숫자에서도 명확하다.


<작년 시즌 = 쥬니뉴 11, 고부 5, 플로 5, 베르구뉴 4, 말루다 4>

<올 시즌 = 빌토르 11, 프레드 8, 쥬니뉴 7, 카류 6, 말루다 5, 고부 4>


 이것은 30전을 치른 상태에서 리옹의 개인 득점을 작년과 올해를 비교한 것. 작년 시즌 리옹이 쥬닝요의 개인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 것에 비하여 올해는 공격진이 두루두루 득점 분포가 퍼져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던 풋볼에 있어서 진정 강함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력이 뛰어나며 비슷한 5명의 FW, 8명의 MF, 8명의 DF, 그리고 3명의 GK가 필요하다.”

 그러한 울리에의 지침이 올해 리옹의 팀 만들기에 반영되어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물론 그렇게 능력 있는 선수를 모으는 것은 어떠한 감독이나 꿈꾸는 일이다. 단 좋은 선수를 모은다면 그것만으로 이길 수 있는 팀이 되느냐고 물으면, 그것은 또한 별다른 문제다.

 “올해의 레알 마드리드를 보면 알 수 있다. 좋은 선수가 아무리 많아도, 팀으로써 기능시키기는 간단하지 않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압도한 리옹을 이끄는 울리에의 말이니만치 설득력이 있다.

 “팀의 모든 선수가 팀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이 상승 군단이 되어 가는 첫걸음이다”고 말하는 울리에는 스타 선수들이라고 하여도 특별 취급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프랑스 대표, 그리고 리버풀에서의 감독 경험에서 이끌어 낸 방법론이기도 할 것이다.


감독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준 역사적 패전


 프랑스 축구팬에게는 생애 잊을 수 없는 날이 세 개 있다고 한다.


 1982년 7월 8일

 1993년 11월 17일

 1998년 7월 12일


 위에 적은 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답할 수 있는 독자님들은 굉장한 프랑스 축구의 매니아라고 자부해도 좋을 지도 모르겠다.

 1982년 7월 8일은 “세비야의 비극”이라고도 일컬어지는데, 스페인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서독과 대전한 날. 그리고 1998년 7월 12일은 자국 개최의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꺾고 프랑스가 처음으로 월드컵을 제패한 날이다.


 자 그럼 1993년 11월 17일은 무슨 날인가 하면, “파리의 임종”이라 하여 울리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건이다.

 이날, 파리의 파르크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는 94년 월드컵 예선 최종전, 프랑스 대 불가리아의 일전이 행해지고 있었다. 시합은 1-1인 상태로 인져리타임에 돌입했다. 울리에가 이끄는 프랑스는 비겨도 월드컵 출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종료 직전에 지노라가 불가리아 진영에서 간단히 빼앗긴 볼에 역습당하여 마지막에는 코스다티노프에게 역전 골을 허용. 월드컵에 나갈 수 있는 길이 끊어졌다. 이 때 프랑스는 지노라를 시작으로 칸토나, 파팽등 개성적인 스타가 즐비하여 80년대의 흐름을 잇는 화려한 축구를 보여주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것이 발목을 잡아 커다란 오점을 남겨 버렸다.


 당연하게도 이 세계축구사에 남을 패전은 지도자인 울리에에게 훗날 커다란 영향을 준다. 울리에는 곧바로 대표팀 감독을 사임. 뒤를 이어 받게 된 에메 자케를 지원하는 DTN(내셔널 테크니컬 디렉터)에 취임한다. 그리고 나라를 둘로 나누는 논쟁으로까지 발전한 [칸토나, 파팡을 대표에서 빼라]는 것을 자케에게 강력하게 조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케가 칸토나, 파팽이 없는 프랑스 대표팀을 만들어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루어낸 것을 지켜본 직후인 1998년 여름, 울리에는 DTN을 사임하고 리버풀의 감독에 취임했다.


잉글랜드 명문클럽에서 일으킨 혁명


 그 후 2004년 그 자리를 떠나기까지 6년간 리버풀 감독으로 울리에가 이루어낸 위업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프리미어리그에서 순위는 2위가 1회, 3위가 1회, 4위가 2회).


FA컵 우승(2001년)

리그 컵 우승(2001년, 2003년)

채리티 실드(현 커뮤니티 실드)우승(2001년)

UEFA 컵 우승(2001년)

UEFA 슈퍼 컵 우승(2001년)


 과거 15번 리그 제패와 같은 빛나는 역사 그리고 울리에가 떠난 직후 따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빅 타이틀을 획득한 것을 생각해보면 조금 부족한 전적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울리에가 취임했던 당시의 리버풀은 80년대에 일어난 2번의 비극(헤이젤, 힐즈보로)를 겪고, 1990년 마지막으로 프리미어 리그 타이틀을 획득한 것을 마지막으로 긴 기간에 걸쳐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렇기에 클럽에서는 최초로 외국인 감독으로 울리에를 초빙한 것이다. 잉글랜드의 명문 클럽에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


 “처음에는 시합 다음 날 신체를 회복시키는 연습조차 시키는데 힘들었지. 취임 당시, 리버풀에서는 사커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식생활의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어. 시합이 끝나면 chips에 맥주의 세계였었다고”

 지금은 프로 선수라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을 하나하나 실행시키면서 근대화를 기도했던 울리에.

“30명의 전 플레이어, 거기에 30명의 전 코치인 평론가나 저널리스트가 주위에 진을 치고 있으며, 2시합 계속해서 패하면 사임의 위기를 맞이한다.”는 리버풀이기에 느껴야만 했던 압박감 속에서 6년간 감독의 자리를 계속 지켜낸 것은 앞서 이야기 한 울리에가 추진하는 클럽의 근대화가 착실하게 결실을 맺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수법은 급성장을 하고 있던 젊은 선수들에게서도 지지받았다.

 “오언, 제라드라는 젊은 스타들을 주위에서 존경받는 팀 플레이어로 키워 낸 자부심이 있다.”

 확실히 10대부터 리버풀에서 스타 가도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선수는 개인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항상 for the team을 느끼게 하는 플레이는 프랑스 대표감독 시대에 스타 선수의 취급에 실패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울리에류의 영재교육에 영향 받았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지내는 것이 좋다. 할 수만 있다면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프랑스 대표, 그리고 리버풀에서의 경험을 살려 유능한 선수들을 팀으로써 기능시키는 수완이 뛰어난 울리에. 17년 만에 돌아온 프랑스 리그에서 그리고 유럽의 강호들과 싸우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리옹에게 영광을 안겨주기 위하여 '생사보다도 중요한 사커'현장을 지켜 나간다.


ps; 제가 프랑스 리그를 잘 모르며, 일본어 번역인 관계로 고유 명사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점 양해를 바랍니다.

  1. Gerard Houllier [본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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