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1.03.29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인데...어째서? 마가트 감독 샬케 해임의 수수께끼 by 渤海之狼
  2. 2008.07.03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연 에스파냐 - 아름다운 풋볼로 완전 승리 by 渤海之狼 4
  3. 2007.10.26 라울의 진가 by 渤海之狼
  4. 2006.10.15 축구에 존재하는 남자의 낭만 by 渤海之狼
  5. 2006.06.15 푸욜 인터뷰 by 渤海之狼

출처: http://number.bunshun.jp/articles/-/102071
저자: 미무라 유우스케
저작권자: Number web

샬케04의 감독에서 해임당한 펠릭스 마가트.

 이상한 일이다.

 샬케는 클럽 역사상 2번째가 되는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을 달성했다. 그러나 팀을 이끌던 마가트 감독은 환희의 순간에서 딱 1주일 뒤인 3월 16일에 해임되어 버린 것이다.

 더욱이 그 2일 후에는 2009년 리그 우승을 이끈 볼프스부르크의 감독으로 재취임 하였다. 물론 볼프스부르크의 감독에 취임한 것은 샬케에서 퇴임한 다음에 접촉이 이루어졌기는 하지만.

 사실 발렌시아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이 행해지던 날, 샬케의 회장은 한 뭉치의 서류를 들고 스타디움을 방문하였다. 그 서류는 마가트를 해임하기 위한 법적 수속에 쓰려는 것. 발렌시아에 패했을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마가트 감독의 해임이 결정될 예정이었던 것이다.

 샬케는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성적과는 대조적으로 리그에서는 10위이다. 마가트 해임의 표면적인 이유는 리그에서의 성적부진이다. 실제로 작년 11월에 카이저슬라우테른에게 0대5로 패한 뒤에도 해임직전까지 몰렸었다. 이때는 긴급 이사회가 열려서 간신히 해임을 면했었다.

전격 해임의 바탕에는 회장과의 뿌리 깊은 대립이…


 사실 해임의 이유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확실히 리그에서는 생각보다 성적이 낮아 마가트 감독의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3월 2일에는 원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물리쳐 도이츠 컵 결승 진출을 결정지었고, 그 1주일 뒤에 행해진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8강 진출을 이룩했다. 2개 대회에서의 성적에 따라 팬들의 태도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여,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던 중이었다. 실제로 발렌시아와의 시합이 끝난 뒤에는 스타디움의 입구에 몰려 마가트의 연임을 바라는 팬들의 모습도 있었다.

 해임 이유는 몇 개인가 있다.

 가장 컸던 것은 샬케04 회장과의 대립이다. 보강 방침을 둘러싸고 감독과 회장 간 의견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클럽은 전(前) 경영진 때 이루어진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서 만성적인 자금부족에 힘겨워 하고 있다. 때문에 올 시즌 개막되기 전에는 연봉이 높은 주력선수들을 방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래서는 만족할 만한 시합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마가트는 회장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보강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마가트는 임원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회장의 결재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마가트가 바라던 대로 여름 이적기간이 끝나기 직전에 휜텔라르나 호세 마누엘 후라도를 보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이 즈음부터 양자간의 사이는 메우기 힘든 것이 되어 갔다.

 또한 회장은 마가트가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한다.

 “현 시점에서는 자세하게 말할 수 없다”

 고 하면서도 고소도 불사한다는 자세다.

이미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던 선수들과의 신뢰관계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선수들과의 관계다.

 2009년 볼프스부르크를 떠나기 직전에도 당시 주장인 조수에 등이 반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도 같았다.

 일반적으로 마가트는 인사권을 장악함으로써 선수들이 감독에게 반항할 수 없게 만든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것에도 한계가 있다. 볼프스부르크 감독시대 종반에는 시합 직전에 마가트가 선수들에게 당해 보라며 과도한 런닝을 명령. 그러나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이를 거부. 선수 개개인이 반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노동자의 파업과 같이 선수들이 하나가 됨으로써 이때는 마가트 감독도 선수들에게 굴복하였다. [빌트]지는 이번 소동이 뒷편에는 주장인 GK 노이어와의 관계악화가 있다고 지적한다.

[(샬케의) 로커룸의 분위기는 마가트 때문에 망가지고 있었다. 노이어는 마가트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

10년에 걸쳐 마가트를 따랐던 스태프도 회장에게 동조.


 또한 이번 소동 속에서 장년에 걸쳐 함께 싸워왔던 동료가 마가트와 헤어졌다. 그 필두가 코치인 아이히코른(Seppo Eichkorn)이다.

 독일에서는 주로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함께 움직이는 일이 많다. 마가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아이히코른을 포함하여 코치, 트레이너 등이 [팀 마가트]를 결성. 볼프스부르크에서 샬케로 마가트가 이동했을 때 그들도 역시 샬케로 이동하였다. 실제로 아이히코른은 2001년부터 10년에 걸쳐 마가트와 함께 클럽을 옮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마가트와 함께 대부분의 스태프가 볼프스부르크로 이동하는 한편에서 아이히코른은 샬케에 남아 마가트가 해임된 직후 레버쿠젠과의 시합에서는 임시 감독도 맡았다. 그 아이히코른은 미디어를 통해서 마가트 비판을 전개하였다.

 “마가트 때문에 팀 내에서는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가트가 여러 나라의 선수를 모았기에) 독일어를 말하지 못하는 선수가 증가했다. 그러한 분위기는 로커룸에 만연되어 챔피언스 리그와 같은 빅 매치에서는 목표를 향해 하나가 되지만 그 이외의 시합에서는 그리 되지 않는다”

 올 시즌 샬케의 상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올 시즌 개막되기 전에 슈투트가르트에서 온 SD(스포츠 디렉터) 역시 그렇다.

 헬트 SD는,
 “마가트 덕분에 샬케에 올 수 있었다”
 고 말했지만, 그도 이번 소동에서는 마가트를 벗어나 회장 측에 섰다. 실제로 마가트가 떠난 뒤에는 SD에서 GM으로 ‘승진’하였다.

마가트의 러브콜로 온 우치다[内田]는 “은혜를 갚지 못해 안타깝다”


 결국 몇 개의 이유가 뒤엉켜 마가트는 떠날 만해서 샬케를 떠나게 된 것이다.

 단지 곤혹해 하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바로 마가트의 러브콜을 받고 온 선수들.

 라울도 훈테라르도 메첼더도 그리고 일본 대표인 우치다 아츠토[内田 篤人]도 마가트의 러브콜을 받고 온 형태로 샬케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가트가 클럽을 떠난 직후 우치다도,
 “축구 인생에서는 이런 일도 있다”
 고 말하면서도 복잡한 심경을 나타냈다.

 “마가트가 불러준 덕분에 도전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만 그런 마가트 감독에게 은혜를 갚을 수가 없게 된 것이 안타깝군요. 사실 마가트 감독은 사생활적인 면에서도 신경 써 주었으니까요. ‘안 피곤한가?’라던가 ‘잠은 잘 자고 있나?’라던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저한테는 그런 말을 해 주었으니까요”

후임 감독은 6년 만에 재등판하는 랑닉으로 결정.

샬케04의 신임감독 랄프 랑닉.


마가트의 후임에는 2004~5 시즌 도중부터 거의 1년 2개월에 걸쳐 샬케를 지휘한 경험이 있는 랑닉으로 낙착되었다. 그는 올해 1월 초까지 호펜하임의 감독을 맡고 있었다.

 “이 팀에 되돌아 올 수 있어서 특별한 감정이 든다. 지금까지 샬케에는 아이디어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느낌이다. 이제부터 몇 주간에 걸쳐 팀의 플레이 스타일을 변화시킬 생각이다”

 그런 말과 함께 취임회견에 임한 랑닉.

 그러나 첫 시합이 되는 4월 1일 장크트 파울리와의 시합 4일 후에는 원정에서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을 싸우게 된다. 클럽 역사상 첫 4강에 들기 위한 시합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과연 샬케는 비상사태 속에서 바라던 결과를 남길 수 있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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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ro/08/text/200807010003-spnavi.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투우사]가 된 에스파냐


 에스파냐 대표팀은 유로 2008에서 44년 만의 우승을 장식하여 행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그런 한편으로 모순이라고도 여겨지겠지만 이번 대회 최고령 베테랑 감독이자 공로자인 루이스 아라고네스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고 있다.

 RFEF(Real Federación Española de Fútbol, 에스파냐 축구 협회)는 감독의 능력은 높게 평가하지만 대회 시작 전부터 연장 계약은 맺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본인에게 전달하였다고 한다후임에는 2009년 컨페더레이션스 컵과 이어지는 2010년의 월드컵을 대비하여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인 비센테 델 보스케의 취임이 이미 정해져 있다.

 

 감독 교체는 피할 수 없겠지만 2번째 유럽 챔피언이 된 것으로 인해 에스파냐의 풋볼 역사는 새로운 스테이지로 돌입하였다.처음으로 정상에 섰던 것은 1964그러나 20세기 당시의 풋볼은 현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스포츠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그럴 정도로 요즘의 풋볼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에스파냐는 챔피언의 자리를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명백히 이번 대회 최고의 팀이기도 했다.

 8강 이탈리아와의 시합에서 승부차기로 승리한 것을 제외하면, [완전승리]로 정상에 올라섰다유로 예선친선시합 등도 포함,세계의 쟁쟁한 나라들을 상대로결승에서 독일까지 실로 22전 무패를 이어온 것이다결과뿐만이 아닌그 플레이 스타일도 개성적이다다이렉트 패스를 다용하며계속해서 포지션 체인지를 거듭하면서 중반에서 게임을 조립하는 매혹적인 풋볼선수들의 자질덕분인 부분도 있지만그 시원시원한 플레이는 칭찬보다는 악담을 퍼붓는 것을 좋아하는 비평가들까지 다물게 하였다.

 

 페루에서 행해진 2004년 코파 아메리카(남미선수권)에서한 때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끈 것[각주:1]으로 유명한 감독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César Luis Menotti)’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바르셀로나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감독을 맡은 적도 있었기에 에스파냐의 풋볼에 정통하다 할 수 있다메노티는 이때 아라고네스가 대표팀 감독에 취임함에 있어 우선 소가 되고 싶은지투우사가 되고 싶은지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론을 펼쳤다즉 독자적인 전술을 추구한다고 하여도, [라 푸리아 로하(La Furia Roja) – 붉은 분노]라 일컬어지는 에스파냐 대표의 전통적인 시합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도세계적인 무대에서 결과를 남기기 위해서는 탐욕스러움과 불굴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메노티의 의견이 에스파냐 신문에도 게재되자아라고네스는 마드리드의 스포츠 신물을 통해서 배신당한 기분이다고 반발했다필시 이미 감독의 머리 속에는 메노티가 주장하고 있는 듯한 에스파냐 대표팀의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우리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조 예선 패퇴라는 실패로 끝난 2004년 포르투갈 대회에서 4년 후에스파냐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공동 개최된 유로에서 드디어 우승이라는 환희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 해외파와 경험 풍부한 젊은 선수의 존재


 출신지가 마드리드이기에 [오르탈레사(Hortaleza)의 현자]라는 별명을 가진 아라고네스는에스파냐 대표팀에 무엇이 필요한 지를 이해라고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은 물론지금까지 몇 번이나 [8강의 벽]에 막혀온 에스파냐또다시 역사를 반복시킬 수 없다며감독은 조금씩이나마 계단을 올라갔다그런 과정에서 여러가지를 고려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그 가장 상징적인 예가 에스파냐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라울 곤잘레스를 대표팀 멤버에서 제외시킨 결단이었다이는 즉 구티모리엔테스엘게라미첼 살가도 등라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동료들도 소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랜 기간에스파냐 대표팀을 지탱해온 대들보였다더구나 라울은 유로 본선을 앞두고 예전의 광명을 되찾았으며 리가 에스파뇰라의 득점 랭킹 상위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라울을 소집하지 않는 아라고네스에 대해 미디어에서도세간에서도 거센 비판이 일었다거기에 더해 화를 잘 내는 아라고네스의 성격도 비판에 박차를 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휘관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고분고분한’ 선수들을 모아특권 계급도 없이 팀을 단결심 있는 덩어리로 만들어 낸 것이다예전에 라울이 두르고 있던 캡틴 마크는 세계에서도 유수의 GK 이케르 카시야스에게 맡겨져 결과적으로 그것이 맞아 들었다.

 

 그러나 에스파냐 약진의 요인을 생각할 때에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선수들의 경험치 향상이다.

 에스파냐 풋볼은 세계에서 손 꼽히는 리그이며선수를 외국에 수출하게도 되었다특히 세계 최고라 일컬어지는 잉글랜드 프레미어 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선수가 늘어난 것은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평가되어 왔던 에스파냐 대표팀에게 있어서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 세스크(아스날 [잉글랜드 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그 외에도 레이나,아르벨로아사비 알론소(전부 리버풀)등도 팀을 지탱했다거기에 1999년 세계 청소년대회( U-20월드컵우승 멤버인 사비,마르체나카프데빌라, 2003 17세 이하 세계 청소년 선수권( U-17월드컵)의 결승전 멤버인 세스크실바 등젊었을 때부터 국제 경험을 쌓은 선수가 많은 것도 놓칠 수 없다.


트라우마에서의 해방


 이번 대회에서 가장 에스파냐를 힘들게 한 것은 8강 이탈리아였다. 0-0으로 90분을 끝내고연장전 후 승부차기 끝에 4강 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그러나 그 이외의 5시합에서는 챔피언다운 풋볼로 내용과 결과를 동시에 보여 주었다.

 에스파냐는 결코 볼 점유율에서 상대를 압도한 것은 아니지만효과적으로 볼을 간수하고 빠른 패스 돌리기로 공격을 조립했다양 날개인 세르히오 라모스와 카프데빌라중반의 이니에스타사비마르코스 세나실바 그리고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움직임으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든 2톱의 비야와 페르난도 토레스’. 그들이 포지션을 체인지하며 공격에 참가하는 - 보고 있어 즐거운 풋볼이 실현된 것이다.

 아라고네스는 이번 대회의 기본 포메이션을 4-4-2로 결정하였고그때까지의 4-1-4-1은 옵션으로만 사용하였다그러나 1톱에[콰트로 후고네스(Quatro Jugones, 4명의 창조자)]라 불리는 사비세스크이니에스타실바를 두 번째 열에 세우는 포진도 비야의 부상이라는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여도, 4강과 결승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결승에서 에스파냐는 첫 10분간본디의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슈바인슈타이거발락포돌스키클로제 등 독일의 파괴력 있는 공격진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선수들의 플레이는 경직되어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지금까지의 에스파냐가 아니었다.십 수분간 [공부]를 하여에스파냐는 서서히 자신들의 플레이를 되찾은 것이다그리고 전반 33페르난도 토레스의 멋진 골로 인한 1점으로 승자의 칭호를 손에 넣었다.

 

 멋진 풋볼로 승리를 거머쥔 에스파냐는이로 인해 국제대회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깼다델 보스케와 함께 걸어갈 신생 에스파냐는 [8강 트라우마]에 골치를 썩일 일은 없을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대표팀으로 인정받게 된 에스파냐는 적과 황의 유니폼을 입는 것에 대한 약간의 주저도앞으로는 없을 것임에 틀림 없다.

 

 에스파냐에서는 지금까지 풋볼 대표팀이 정상의 무대에 서질 못했다.

 농구 대표팀이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 비원의 첫 우승을 이룩하였고테니스 플레이어인 라파엘 나달이나 F1 드라이버인 페르난도 알론소는 세계라는 무대에서 에스파냐의 이름을 드높였다그러나 드디어 풋볼에도 그 때가 온 것이다그냥 유로에서 우승한 것이 아니다독자적인 스타일개성을 발휘하며 유럽의 왕자로 빛난 것이다.


■ 수준 높았던 이번 대회


 이번 유로는 많은 것을 시사한 대회가 되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퀄리티 즉 질의 변화이다저번 포르투갈 대회에서는 그리스의 첫 우승이라는 놀라움으로 막을 내렸지만시합 수준이 결코 높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4년 후인 이번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는 전혀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뜨거운 열정과 테크닉이 만발하였고고도의 전술로 덧칠해진 시합을 볼 수 있었으며몇 개인가의 서프라이즈도 태어났다마르코  바스턴이 이끈 네덜란드의 [혁명적 풋볼]이 가져다 준 임팩트는 누구나가 찬동할 것이다엥헬라르판 데르 파르트판 페르시스네이더르카윗 등 젊은 재능들이 펼쳤던 스피드감 넘치는 카운터 공격에 이탈리아프랑스도 어찌 해보지 못하고 완패했다.

 

 그 네덜란드를 8강에서 물리친 러시아도 이번 대회 성장을 이룩한 팀 중 하나이다.

 전략가 거스 히딩크가 이끈 젊은 러시아의 플레이는 경제적으로도 비약적인 도약을 거듭하고 있는 러시아의 파워를 그대로 보여준 느낌이 들었다팀의 베스트 플레이어 아르샤빈이라는 뉴 히어로도 탄생하였다또한 스트라이커인 파블류첸코왼쪽 SB인 지르코프(원래는 MF)도 장래성 넘치는 선수이다.

 

 결승에서 패한 독일에는서 과 슈바이슈타이거의 성장이 눈을 크게 치켜 뜨게 만들었다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발락의 존재감키잡이 역인 히츨슈페르거라는 발견도 있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예상보다 빨랐던 포르투갈의 패퇴일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데코’ 등의 재능들과, ‘페페나 히카르두 카르발류’ 등의 수비도 단단한 포르투갈은 우승 후보 중 하나라고 평가되었었다조 예선은 아무 탈 없이 돌파했지만독일 앞에 가지고 있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8강에서 모습을 감췄다.


 체코에는 스타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많지는 않았지만 조직적인 팀이었다하지만 터키에 역전패를 당하여 조 예선을 돌파하지 못했다.


 터키는 그야말로 전 대회의 그리스와 같은 존재였다기적적인 역전극으로 차례차례로 승리하여 상대를 공포에 빠뜨렸다하지만 4강에서는 경고 누적이나 부상으로 결장하는 선수가 속출하여독일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단지 그리스와 다른 점은 그들이 다크호스이기는 했지만 실력도 충분히 겸비한 팀이라는 것이다. ‘니하트나 하미트 알틴톱’, ‘엠레’, ‘메메트 토팔’ 그리고 특히 아르다 투란은 큰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에스파냐의 공로자를 거론해 두고 싶다. 2톱인 비야’(4골로 이번 대회 득점왕), ‘토레스’, 중반의 사비’(최우수 선수에 빛난다), ‘이니에스타’, ‘세나’, 반석인 디펜스 라인그리고 차원이 다른 GK ‘카시야스’. 이탈리아의 부폰과 함께 세계 제일의 수호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1978년 자국 개최 월드컵에서 우승.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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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column_cl/20071023-1-1.html

저자: 스기야마 시게키

레알 마드리드라는 명문 클럽에서 17살이라는 나이로 톱 팀에 데뷔한 라울.

이후, 클럽에서 수 많은 영광을 손에 넣어 온 [에스파냐의 국보]이다.

그러나 지금의 에스파냐 대표팀 감독 루이스 아라고네스는 그를 소집하고 않고 있다.

1977년 6월 27일생인 30살.

라울은 요 4개월 전만해도 20대였다. 이 사실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어느 정도 있을까?


라울이 처음으로 챔피언스 리그의 무대를 밟은 것은 95-94시즌.

12시즌 전의 이야기가 된다. 18살 때였다. 이후, 거의 풀 출장. 통산 출장 시합 수 112는 챔피언스 리그 최다 출장기록이다. 현재도 출장할 때마다 기록을 갱신하는 초 베테랑이면서도 나이는 불과 30살.


필자는 2,3년 전에 그의 움직임을 보고 라울도 이제는 한계이며, 미래는 그다지 남지 않았다고 예상했다. 날카로움, 스피드는 볼 때마다 낮아만 갔다.

당시 27, 28이면서도 말년을 맞이한 선수와 같이 늙어보였다. 그가 레알 마드리드의 토박이 간판선수가 아니었다면, 그 시점에서 방출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그런 가엽다는 시선을 보낼 필요는 전혀 없다. 30살인 지금이 2,3년 전 보다 움직임이 훨씬 좋다. 날카로움이 되살아났다. 가지고 있던 기술도 여실히 발휘하고 있다. 오히려 나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그런 이유 중에 하나가 체형이다.

데뷔 당시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화가 적은 선수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축구 소년 풍의 얼굴은 지금도 건재하다. 나이 먹은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델피에로와 비교하면 알기 쉽다.

그는 라울보다 세살 연상이면서 챔피언스 리그 데뷔는 95-96시즌으로 같다. 이탈리아 기대의 신성(新星)은 그 시즌 21살의 어린 나이로 유럽 챔피언에 빛났다. 이탈리아의 델피에로와 에스파냐의 라울은 양국 기대의 신성(新星)으로 함께 일컬어지는 존재였다.


그리고 델피에로도 27, 28살에 내리막길을 맞이했다.

어느새 체형은 데뷔 당시와는 많이 변화되어 있었다. 체형 그 자체가 노쇠했음을 알 수 있었다. 델피에로는 그 후에도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전성기를 아는 사람에게는 예전과는 다른 조금 둥글해진 등이, 몸의 노쇠한 것으로 보여 참을 수 없다. 동시에 라울의 특수성을 여실히 알려 준다.


플레이의 특징으로도, 달리 닮은 선수를 찾기도 힘들다.

라울은 챔피언스 리그 출장 회수도 1위이면서, 통산 득점 랭킹에서도 1위이다. 112시합에 출장하여 56골을 마크하고 있다.


53점으로 2위인 판 니스텔로이는 본격파 스트라이커. 3위인 ??첸코(46점), 4위인 앙리(43점)도 스트라이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골 헌터이다. 라울과는 특징이 다르다.


닮은 선수를 꼽는다면 73시합에 출장하여 37골(6위)인 델피에로가 된다.


양 선수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기교파 세컨드 스트라이커가 된다.

델피에로는 3-4-1-2로 임했을 때 2톱 아래서 뛸 때도 있지만, 4-4-2에서는 2톱 중의 일각이나, 왼쪽 사이드 하프가 많았다. 즉 유틸리티 성이 높다.


라울에게도 여러 가지 포지션을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4-2-3-1의 포진이라면, 1톱 아래는 물론 [3]의 좌우에서 Wing적인 플레이도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골 문 앞에 파고들어 온다. 머리로 골도 자주 넣는다.


패서 타입인 델피이로와 비교하자면, 유동적인 플레이가 눈에 띈다. 경기 흐름에서 득점에 가세하는 것이 라울. 특기인 킥으로 득점을 노리는 것이 델피에로.


양 선수가 확실히 다른 점은 신장이다.

델 피에로가 173Cm인 것에 대해, 라울은 181Cm.

얼핏 보면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8Cm의 차이가 있다. 라울을 직접 보고, 새삼 놀랐던 점이다.


일본으로 말하면 대형 FW이다.

대형이면서 기교파인 것이다. 거기에 라울의 특수성이 있다. 델피에로 타입은 일본에도 있을 듯하지만, 라울 타입은 일본은커녕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존재이다. 거기에 통산 득점왕이며, 가장 오랫동안 활약해주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특별한 [상]을 받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지도 못했던 플레이보다, 알기 쉬운 플레이 쪽이 평가가 내려가기 쉽다. 통산 성적이 1위이면서, 유럽 연간 최우수 선수상(발롱도르) 수상 경험은 없다.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2001년조차 오언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예전의 활기를 되찾은 라울이 판 니스텔로이와 함께 상대 골을 육박하는 모습을 보자 [축구계의 맹점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 세상에 둘도 없는 타입. 그것이 라울의 진수(眞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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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즈이 토모히코

런닝을 시작한 호나우두. 과연 리허빌리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남자의 낭만. 왠지 그리운 음감. 철 지난 단어일지도 모른다. 순수하게 꿈이나 모험을 향한 동경. 옛날엔 그러한 낭만을 느끼게 해주는 선수가 있던 것 같다. 어라~ 잠깐. 도대체 축구에 있어서 [남자의 낭만]이란 뭘까?


“요즘 낭만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라고네스, 이루레타와 나 세 명뿐이지”
라고 말한 것은 하비에르 클레멘테였다. 세르비아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바스크 출신의 감독은 '낭만'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엥? 당신이 낭만주의자라는 말씀입니까? 왠지 낭만하고는 굉장히 거리가 먼 듯한 이미지가 있습니다만…….


“내가 세르비아에 간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돈이나 계약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단지 최고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걸 낭만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렇군. 축구의 스타일이 아닌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부분에서 낭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군.


하지만 클레멘테가 말하는 낭만파 3인방 중 나머지 둘은 꿈을 향해 달린다는 속 편한 상태가 아니다. 하비에르 이루레타가 이끄는 베티스는 3연패(1승 4패, 현재 17위)로 강등권 근처. 루이스 아라고네스가 이끄는 에스파냐 대표팀은 북 아일랜드에 이어 스웨덴에게도 패했다. 오스트리아-스위스로 갈 수 있을까도 불안. 실적이 따라 붙지 않으면 낭만도 뭐도 없는 것이다.


현재, 에스파냐에서 남자의 낭만을 느끼게 해주는 감독이라면 키케 플로레스일지도 모른다. 현역시대에 10시즌을 보낸 발렌시아에, 감독으로 돌아온 지 2시즌 째.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41세의 키케는 에스파냐 리그는 물론 챔피언스 리그 제패도 노리고 있다. 이것이 남자의 낭만인 것이다.


더구나 수행방식도 흥미 깊다. 현역 은퇴 후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던 키케지만 카펠로가 취임했던 96-97시즌에는 '잉여'취급을 받았다. 소위 무시, 따돌림, 때문에... 그래서인지 레알 마드리드에게 공격적인 코멘트도 날린다. '무관의 시궁창'이라거나 '팀 보다 개인 우선'이라던가. 또한 라울, 구티, 카시야스 등을 쓸모없는 선수로 취급하는 것에도 신경 쓰고 있다.


때문에, 키케는 발렌시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는 다른 자세를 관철해 왔다.

'개인보다도 팀 우선', 그리고 '에스파냐 선수 중시'다.


공격수는 거의 대부분이 에스파냐 선수. 더구나 호아킨, 실바, 비야, 모리엔테스, 앙굴로 등은 에스파냐 대표 클래스인 것이다. 이 멤버 그대로 유로 2008에 출장시켜도 좋을 정도이다. 그렇다. 발렌시아의 성공에는 에스파냐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예를 들어 레알 마드리다가 챔피언이 되었다고 하여도, 거기에는 브라질 선수나 이탈리아인의 냄새가 풍긴다. 키케가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의 에스파냐 선수들을 감싸는 것도 레알 마드리드 방침을 비판하고 싶기 때문. 카펠로라는 이탈리아인이 외국인을 우선시해서 자신을 바깥으로 쫓아낸 것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이마르를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보낸 것도 납득이 간다.


거기에 키케의 방침은 그라운드 밖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프로라면 당연한 것이지만, 야간 외출 금지령을 어긴 선수에게 벌금형에 처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암묵의 동의였다. 그러나 “작년까지는 애매한 규율이었지만 지금부턴 확실히 룰을 어기지 않게 하고 싶다”고. 낭만을 위해서 키케는 규율의 화신이 된 것이다.


거기서 떠오른 추억.
낭만을 느끼게 하는 선수가 과거 발렌시아에 있었다. 룰 무시의 풋볼러 호마리우. 시합 전날이건 시합 당일 아침 7시까지건 디스코텍에서 춤추고 있어도 헤드트릭을 해내는 괴물 스트라이커였다. 밤에 노는 것에 대해서 시합 후, 라니에리 감독이 큰 소리로 혼내도 신경쓰지 않았다. “밤놀이는 내 친구다. 사생활은 내가 하고 싶은 데로 놔둬”라고 튕겼다. 호마리우는 바르셀로나 시대에도 크라위프 감독에게 “밤놀이는 계속할 거다. 골만 넣으면 되잖아?”고 오히려 큰소리. 더구나 말한 건 지켰다. 득점왕. 문제아이면서도 여전히 현역인 40세의 스트라이커.


남자의 낭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키케와 같은 성실파. 호마리우와 같은 문제아파. 어느 쪽이건 꿈을 안겨준다.


독일 월드컵에서는 호나우두도 아침까지 디스코텍에서 놀고 있던 것이 걸린 선수 중에 하나였다. 즉 문제아파. 하지만, 부상에서 복귀한 최근의 호나우두군은 밤에도 런닝을 열심히 하며 리허빌리에 열심이라고 한다. 문제아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생각에 따라서는 이런 것도 [남자의 낭만]이라는 것이 아닐까?

그런 호나우두의 땀은 디스코에서 런닝으로 변했다. 마치 재기에 사활을 건 영화 [록키 3]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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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wcup/06germany/column/200606/at00009060.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리가 에스파뇰라에서는 압도적인 강함으로 2연패를 달성.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첼시, 밀란, 아스날이라는 강호를 격파하며 우승하였다. 바르셀로나는 현재 세계최고 클래스의 선수 중 한 명인 호나우지뉴를 필두로 에토오, 데코 등 수 많은 재능들을 데리고 공격적인 축구로 세계 축구팬들을 매료하고 있다. 그야말로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걸쳐 크라위프가 이끌던 “드림팀”을 계승하여 또 다시 황금시대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그런 바르셀로나에서 호나우지뉴와 함께 클럽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캡틴 카를로스 푸욜이다. 칸테라(하부조직)에서 자란 영웅은 바르셀로나와 월드컵에서의 에스파냐 대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 당신은 칸테라에서 별 문제없는 형태로 1부 팀에 발탁된 바르셀로나에서는 특수한 선수이다. 이것은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일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힘든 연습을 계속 해왔다. 하지만 타이밍이나 상황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바르셀로나의 1부 팀에서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가 필요하니까.

(간테라에서) 단지 좋은 플레이를 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좋은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아주 많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바르셀로나에 소속해 있던 선수들 대부분은 (1부 팀에서 데뷔한다는) 도착지점에 들어가기 위한 운이 부족했다. 1부 팀에서는 누구나가 팀의 일원으로서 플레이하지 않으면 안 되며 개인플레이는 용납 되지 못한다. 덧붙여 무엇보다도 코치가 어린 선수를 믿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팀에서 선수를 데려오지 않는 대신에 말이다. 정말로 많은 요소가 필요하다.


- 1부 팀에서 데뷔하기위해서는 운도 필요한 것은 알겠지만, 당신은 칸테라나 바르셀로나 B팀에서 플레이 할 때부터 당신의 플레이가 이미 (1부 팀에) 소문났었다고 들었는데....


1부 팀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났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바르셀로나 B에서 플레이하고 있을 때, 당시의 감독(루이스 판 할)이 나를 보러 왔었고 때마침 운 좋게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나를 1부 팀으로 끌어올려 주었고 그때부터 정착하게 되었다.


- 판 할은 당신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마치 바르셀로나 B시대의 팀 동료인 것처럼 당신을 '비할 데 없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으며 언젠가 커다란 비상을 할 것이 틀림 없다'고. 실제 당신은 현재도 옛날과 다름없는 플레이를 하고 있다.


당시의 추억은 지금도 소중하다. 최초로 마시아(칸테라의 기숙소겸 연습장)에서 만났을 때에는 왠지 묘한 기분이었지만 차츰 친하게 되어, 그 후에도 그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 일을 잊은 적이 없으며 항상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 당신은 자기 자신을 최대한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예의바른 [카탈루냐 사람의 고상하고 겸허함]을 항상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스타 선수들을 제쳐두고 바르셀로나에서 캡틴으로 선택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이것도 운이라고 말할 건가?


운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나는 캡틴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동료나 감독이 나를 선택해 준 이유는 단순히 축구 선수로서의 자질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프로페셔널한 마음가짐으로 있기에 모두의 존경을 얻을 수 있던 것이 아닐까?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나는 결코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룰 위반도 하지 않으며 어떤 때라도 심판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 바르셀로나는 현재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당신도 느끼겠지? 적어도 당신이 데뷔했던 당시 - 1997-98, 98-99시즌의 리그 연패 및 1997, 98년 코파 델 레이를 제패한 판 할 시대 이상의 성적을 남길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확실히 현재의 바르셀로나는, 플레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다는 점에 있어서 다른 모든 클럽을 능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야말로 우리들은 세계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하는 클럽이라 평가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에스파냐 리그에서 2연패를 달성하여 챔피언스 리그에서 결승까지 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첼시와 밀란을 상대로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현재 당신들은 축구계의 정점에 도달하려 하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들은 호나우지뉴라는 굉장한 플레이어 그리고 그에 근접한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들을 갖추고 있다. 밸런스가 무너지는 일은 없으며 덕분에 우리들 DF는 간단히 상대 선수를 마크할 수 있다. 우리들은 단지 자신이 맡은 일만 확실히 하고 아군에게 볼을 건네면 된다는 것이다.


- 하지만 리그의 명선수들을 마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잖아? 예를 들면 당신은 사이드에서 플레이할 때에는 피구를 센터에서 플레이 할 때에는 호나우두를 활약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은 위대하다고 할 만한 것이다.


그렇지. 하지만 나는 단지 나의 일을 마지막 순간까지 다했을 따름이다. 항상 프로로써 온 힘을 다한다. 때문에 주위의 인간들이 나를 신뢰해 준다고 생각한다.


- 오른쪽 사이드에서 플레이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바르셀로나에서도 에스파냐대표에서도 센터에서 플레이하고 있다.


확실히 오른쪽 사이드에서의 플레이는 하기 쉽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처음에 오른쪽 사이드에서 플레이를 요구 받았기에 거기에 응했다. 그리고 센터에서 플레이를 요구받았을 때 나는 이미 팀에서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맘 편히) 거기서도 좋은 플레이를 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기(바르셀로나)에 있는 것이다.


- 에스파냐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


팀 분위기는 좋다. 이건 정말이다.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은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이며, 1개월에 걸친 대회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단결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리더십 등의) 자질은 여기서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전원이 각자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 해낸다면, 적어도 우리들은 집중해서 싸울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들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의 세대는 우수한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런 팀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라 생각한다.


- 에스파냐 대표팀은 언제나 클럽과의 문제로 이런 저런 문제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확실히 있다. 그런 것 때문에 항상 신경 쓰인다.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이탈리아 등의 팀이 부럽다. 그들에게는 대표팀 팬이 있어 함께 응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에스파냐에서 월드컵을 바라보는 눈은 대회라기보다는 오히려 상업적이다. 대표팀의 시합보다도 리그에서의 시합 쪽이 중요시 되고 있을 정도니까.


- 그래도 에스파냐 대표팀은 언제나 우승 후보의 하나로 꼽히며, 그리고 “8강 증후군”을 맞이한다. 이번 대회에서는 이 8강의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단지 그러한 정신적인 압박에 영향을 받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에스파냐에는 우수한 선수들이 즐비하니까.


- 1995년 보스먼 판결의 영향으로, 이번 에스파냐 대표팀에는 해외에서 플레이하는 선수가 과거에 볼 수 없었을 정도로 존재한다. 이것이 팀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팀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상황은 에스파냐 사회와 닮아 있다. 폐쇄되었던 사회가 요 수십 년 밖의 세계에서 좋은 것을 받아들여 자유화되었다. 루이스 가르시아, 레예스, 파브레가스 등 잉글랜드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들이 가져다 줄 커다란 것을, 이제 와서 새삼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 카탈루냐 사람인 것이 에스파냐 대표팀에 있어서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것은 없는가? 예를 들어 첼시의 왼쪽 사이드백인 델 오르노는 바스크 출신이기 때문에 에스파냐 대표팀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그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는 모두 알고 있겠지만 월드컵은 세계에 자신들의 축구를 보여주고 역사를 만들기 위한 절호의 기회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하루 빨리 개막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 (부상에서 복귀했을 뿐인) 라울과 사비의 상태는 신경 쓰이지 않나?


운 좋게도 예정대로 둘의 회복은 순조로운 듯 하다. 그들은 팀의 근간이니까. 라울은 태생이 리더이며 모두의 모범이 되는 존재. 그리고 사비는 에스파냐 최고의 선수 중 한 사람이다. 그들이 베스트 컨디션으로 본선에 임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에스파냐의 운명이 걸려있다고도 할 수 있다.


- 월드컵에서 H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와 우리들 에스파냐가 돌파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튀니지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높은 레벨로 플레이한다고 들었다. 한 시합 한 시합을 스텝이나 선수 모두 집중해서 플레이해야만 한다.


- 만약 월드컵에서 우승한다면, 당신은 카탈루냐의 깃발을 흔들 것인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최고의 행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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