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벤투스'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08.12.24 육성조직 강화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테마 by 渤海之狼
  2. 2008.05.13 판 데르 파르트의 우울 by 渤海之狼 2
  3. 2008.04.08 바조의 근황 by 渤海之狼
  4. 2008.03.13 안첼로티 이야기#1- 밀란에서 손에 넣은 영광의 뒷편 by 渤海之狼 2
  5. 2008.01.30 인테르나치오날레를 도와주는 편파판정 by 渤海之狼

출처: http://www.ocn.ne.jp/sports/soccer/soccer081211.html
저자: 로사노 도나도니
일본어 번역: 오가와 미츠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불황의 파도는 당연 축구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적 시장에서 거금을 투입하여 팀의 실력을 높이던 시대는 종언을 맞이하여 각 클럽은 지금 육성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축구계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하부조직의 충실, 육성의 현실과 마주보려는 클럽의 현 상황을 고찰한다.

큰 변모를 이룩한 빅 클럽의 육성 사정


 전세계를 무대로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경제 위기는 축구계에도 크나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적 시장에 거금을 투입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에서 팀 강화에 가장 유효한 수단은 무엇일까? 그 답은 '사지 않고 키운다'이다. 즉 클럽 자신들이 운영하는 하부조직에서 우수한 선수를 한 사람이라도 많이 배출하는 것. 불황이 만연한 현대에 있어 육성의 강화는 불가결한 테마인 것이다.

 유벤투스는 2년 전 사건을 계기로 육성의 재강화에 나섰다. <칼초 스캔들>의 발각에 따라 세리에 B로 강등… 대폭적인 수입 저하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들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파트리크 비에라 등 고액 연봉선수들을 계속해서 방출. 세바스티안 조빈코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각주:1], 파올로  데 첼리에[각주:2] 등 하부조직에서 기술을 닦고 있던 선수를 톱 팀으로 승격시켜 그들을 세리에 B에서 이겨 나가기 위한 귀중한 전력으로 편입시켰다. 이들 세 선수는 지난 시즌 각각 임대를 경험하여 올 여름 성장을 하고 팀에 귀환. 지금이 되어서는 보다 중요한 전력으로써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도 두터운 신뢰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유벤투스 하부조직의 충실함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예전 톱 팀에는 하부조직에서 키운 선수를 사용할 포지션이 없어 그들은 <반영구적인 임대 생활>을 강요 받았다. 전세계에 뻗쳐있는 네트워크 그리고 윤택한 자금을 이용하여 때나 국적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선수를 샀다… 예전 유벤투스는 육성한 선수에게 활약할 장소를 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탈리아의 귀부인(유벤투스의 애칭)>에게 예전의 딜레마는 없다. 세리에 B 강등을 발단으로 하는 경제위기가 빅 클럽의 자세를 근본부터 바꾼 것이다.

 보강 방침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은 유벤투스뿐만이 아니다. 모라티 일족 아래서 용천수와 같이 뿜어져 나오는 돈을 마구 썼던 인테르나치오날레조차도 요 수 시즌은 하부조직의 선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는 이번 시즌부터 팀 지휘관에 임명 받은 모리뉴의 의향도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듯 하다.

 “이 팀에는 높은 급료를 받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등록 멤버는 24명까지 줄일 것이다”
 취임 직후 모리뉴는 팀 구성에 관한 태도를 명확히 하였다. 이 발언을 계기로 하여 선수 사정, 여분의 전력에 대한 조사 및 검토가 개막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어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는 선수 몇 명의 방출이 결정적.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가령 모리뉴의 구상 밖이라도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높은 연봉선수>가 그리 간단히 팔릴 리는 없다. 따라서 당장은 무료 임대라는 형식으로 방출하여 전력의 슬림화를 꾀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동시에 하부조직에서 재능을 끌어올려 전력의 활성화를 꾀하는 것도 이 지장이 게을리 할 턱이 없다.

 18살의 괴물 FW 마리오 발로텔리를 필두로 인테르나치오날레에는 젊은 재능이 많이 존재한다. U-21 이탈리아 대표에서 활약하는 프란체스코 볼초니[각주:3]는 19살. 모리뉴가 그 재능을 높이 평가하는 오른쪽 SB 다비데 산톤[각주:4]은 아직 17살이다. 발로텔리에 이어 그들이 본격적인 데뷔를 이룰 날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어린 선수를 키워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모리뉴의 자세는 돈으로 해결하는 것 밖에 몰랐던 마시모 모라티 회장의 자세에도 변혁을 가져다 준 것이다.

대표적 실패인 밀란, 대표적 성공인 아탈란타


 유벤투스나 인테르나치오날레가 육성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것 과는 반대로 여전히 크게 뒤쳐진 것이 밀란이다. 올 여름 이적시장에서 안드리 솁첸코를 다시 불러들인 결과 하부조직 출신으로 장래를 촉망 받던 18살의 스트라이커 알베르토 팔로스키[각주:5]는 출장기회를 찾아 파르마로의 임대이적을 결심하였다. 역시 하부조직 출신의 공격수  마르코 보리엘로[각주:6]를 제노아에서 불러들인 것까지는 좋았지만 층이 두터운 FW진 속에서 주전다툼에 힘들어하며 지난 시즌 리그에서 19득점으로 대활약한 스트라이커가 지금까지 불과 1골에 멈추어있다. 팔로스키와 보리엘로의 예는 밀란의 육성력 부족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육성의 성공적인 예를 말한다면 아탈란타의 존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베르가모에 본거지를 둔 클럽의 역사는 하부조직에서 키운 선수들에 의해 맥맥히 이어져왔다. 오래된 예로는 1968년 유로를 제패한 안젤로 도멘기니[각주:7]나, 1982년 에스파냐 월드컵 우승 멤버인 가에타노 시레아[각주:8] 그리고 요즘으로 말하면 함께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하는 리카르도 몬톨리보[각주:9]나 잠파올로 파치니[각주:10]도 아탈란타의 하부조직에서 재능을 갈고 닦은 선수들이다. 그들은 아탈란타에서 영재교육을 받아 그 실력을 높이 평가되어 다른 클럽이 사 갔다. 그 거래로 얻은 이적료가 클럽 운영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아탈란타에 있어서 육성의 성공은 독자적인 지도 철학을 철저히 함과 동시에 시설을 충실히 한 것에 의해 성립되어 있다. 베르가모 교외에 위치하는 그들의 트레이닝 센터는 최고의 설비를 완비. 육성을 전문으로 하는 지도자가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지도를 행하고 있다.

 아탈란타의 방법론은 굉장히 심플. 어느 정도의 연령에 이른 주력 선수를 높은 가격에 팔고 젊고 유망한 선수를 톱 팀으로 끌어올려 그 구멍을 메운다. 이것을 거듭함에 따라 팀 전체의 실력 저하를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리에 A가 단일 리그가 된 1929-30 시즌 이래 아탈란타는 계 48시즌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세리에 A에서 플레이하고 있는데, 이 숫자는 프로빈차(Provincia, 지방 클럽)로써는 발군의 성적이다. [프로빈차의 맹주]라 일컬어지는 우디네세가 계 35시즌이기에 양 팀을 비교하면 아탈란타가 얼마나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 비즈니스가 육성의 중요성을 높이다.


 유벤투스나 인테르나치오날레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 맞추어 강화방침을 변화시킨 클럽도 있다. 피오렌티나는 1968-69시즌에 스쿠데토를 획득하였는데 그 때 대부분의 주력이 하부조직 출신의 선수들이었다. 즉 피오렌티나는 아탈란타보다도 먼저 육성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실천했던 클럽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피오렌티나의 육성방침은 40년 전과는 크게 다르다. 하부조직의 충실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 사항 중 하나이지만 선수들은 토박이 이탈리아 선수가 아니라 외국 국적의 선수가 굉장히 많다. 그들의 시선은 주로 해외로 향해져 있어 각국에서 어느 정도 실적을 남긴 어린 선수를 하부조직으로 뽑아 와 팀 전력으로써 키우고자 하는 것이다. 세르비아의 니콜라 굴란[각주:11], 체코의 온드리졔 마즈흐[각주:12]와 얀 하블레[각주:13] 그리고 브라질의 알렉스[각주:14]와 제페[각주:15]는 전부 외국에서 불러들인 20살 전후의 어린 재능들로, 그 중에는 이미 톱 팀 데뷔를 장식한 선수도 있다. 단지 피오렌티나의 강화방침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연히 외국에서 선수를 획득하면 자국 출신 선수는 기회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그 폐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UEFA는 2005년 4월, 2006-07 시즌부터 단계적으로 [자국 육성 선수 필수 등록제]를 도입해 갈 것을 결정하였다. 이는 요즘 축구계에서 증가 경향인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전력 강화를 꾀하는 클럽]에 대한 억제력으로써, 또한 [육성에 중점을 둔 팀 운영]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로써 UEFA가 독자적으로 설치한 룰이다. 이번 시즌의 개요는 [챔피언스 리그 출장 팀의 등록 멤버가 되는 25명의 A리스트에는 4명 이상의 클럽 내 육성 선수를 포함한 8명 이상의 자국 육성 선수를 등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 멤버 구성에 규정을 설치한 새로운 룰 채용으로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하는 각 클럽은 구상 밖에 있었을 터인 자국 육성의 대상 선수 방출을 보류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당되는 선수를 우선적으로 획득 또는 하부조직 출신 선수를 대량으로 승격시키는 등 새로운 룰 속에서 이상적인 멤버를 구성하기 위한 대응에 쫓겼다.

 그러나 [자국 육성 선수 필수 등록제]에 대한 대응이 늦어졌던 피오렌티나는 4명을 포기하게 된다. 즉 A리스트에는 상한인 25명에서 4명이나 적은 21명을 제출. 간결하게 말하면 4명분의 불리함를 받아 들인 형태로 챔피언스 리그에 임한 것이다.

 약 반세기 전, 프로빈차 클럽은 대부분이 하부조직 출신 선수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부조직 없이는 축구를 말할 수 없다. 그런 시대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02년 EU통합에 따른 급속한 글로벌화나 축구를 비즈니스와 연결시키는 막대한 자금의 유입으로 인해 클럽 구도는 그 형태가 크게 바뀌어갔다. 팀 강화의 지름길은 세계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유명 선수를 제한 없이 사 모으는 것. 한때는 하부조직 운영을 민영화시키는 클럽까지 출현할 정도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요 수년 축구계에는 경제 위기를 발단으로 하는 육성 개념의 시정으로 인하여 하부조직의 충실, 육성의 강화가 재인식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거의 제로인 상태에서 재출발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클럽도 적지 않다. 하부조직을 기능시키기 위해서는 묻혀있는 잠재능력을 발굴하는 스카우트와 그 포텐셜을 이끌어 낼 지도자의 존재가 불가결하다.

 하부조직의 충실함이 가져다 준 반세기 전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해결할 과제가 있다. 축구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 외에는 없으며 현대에 있어서 육성조직의 강화는 어느 클럽에게나 부과된 가장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인 것이다.


2007/12/23 - [일본웹번역/축구] - 세바스티안 조빈코 [아주리의 작은 보석]

2008/02/18 - [일본웹번역/축구] - 주목도 넘버 원의 발로텔리

  1. Claudio Marchisio. [본문으로]
  2. Paolo De Ceglie [본문으로]
  3. Francesco Bolzoni [본문으로]
  4. Davide Santon [본문으로]
  5. Alberto Paloschi [본문으로]
  6. Marco Borriello [본문으로]
  7. Angelo Domenghini [본문으로]
  8. Gaetano Scirea [본문으로]
  9. Riccardo Montolivo [본문으로]
  10. Giampaolo Pazzini [본문으로]
  11. Никола Гулан [본문으로]
  12. Ondřej Mazuch [본문으로]
  13. Jan Hable [본문으로]
  14. Alex Costa dos Santos [본문으로]
  15. Jefferson Andrade Siqueir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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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80508-1-1.html

저자: 안도우 마사즈미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함부르크 SV(이하 HSV)는 독일의 숨겨진 빅 클럽이다.

 연간 판매액은 바이에른(25000만 유로[각주:1])에 이어 2위인 14000만 유로[각주:2]. 평균 관객 동원수는 55343(이 정도나 되는데도 리그 4!), 회원 5 3000(3. 2위는 샬케의 7만 명, 14만 명의 바이에른은 격이 다르니 할 수 없다). 그 외에 유니폼 판매량이나 팬클럽 숫자도 상위 5위에 들어간다.

 

 HSV의 스타 선수라고 하면 판 데르 파르트이다. 누구나가 인정하는 기교파 공격형 MF이지만 문제점이 있다. 팀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 소속팀이었던 아약스에 대한 동정(同情)과 에스파냐에 대한 동경(憧憬)은 언제나 뜨거워 때때로[현실]에서 벗어나 [과거와 미래]를 뒤돌아보고 바라보는 경향이 심한 것이다. 특히 요 수개월간 [마음은 이미 어딘가 가 있다]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에스파냐의 피가 흐르는 판 데르 파르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친의 조국에서 플레이하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마음 속에 있는 팀은 발렌시아다. 그러나 발렌시아가 추한 모습(5 5일 현재 리그 15)을 계속 보여준 덕분에 뜨거웠던 정열도 식은 모양이다. 무엇보다 이적하는 곳의 조건을 '챔피언스 리그에 항상 출장할 수 있는 빅 클럽'이라 했던 만큼 발렌시아는 기준 미달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이탈리아나 잉글랜드밖에 없다. 그런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
다음 시즌은 HSV의 유니폼을 입고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할 수도 있지만 말이지
 하고 남을 수도 있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실은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가 있다.

 

 HSV와의 계약 기간은 아직 2년 남아있다. 만약 2009년 여름에 이적한다면 150만 유로[각주:3]의 이적료가 발생한다. 그러나1년 앞당겨 올 여름이라면 FIFA 이적 조항 제 17조에 의해 1000만 유로[각주:4]로 이적할 수 있는 옵션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이적을 희망하는 판 데르 파르트 본인에게도, 그리고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HSV에게 있어서도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다. 이 정도 선수에 1000만 유로 정도라면 빅 클럽은 당장 달려든다.

 1. 유벤투스의 GM HSV를 방문하여 비공식적으로 800만 유로를 제시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HSV 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찔러본 것에 지나지 않아 실제로 교섭에 들어가면 1500만 유로[각주:5]이하는 되지 않을 것이다.

 즉 판 데르 파르트에게 있어서는 유벤투스로 이적해도 좋았고, HSV에 남더라도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할 수도 있어, 어느 쪽이 되건 손해 볼 것은 없다고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다. HSV 24라운드까지 확실히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내에 있었지만 그 후의 5시합을 23연패라는 최저의 성적으로 마쳐 그 결과 최종 순위에서 3위로 올라가는 것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판 데르 파르트의 의도는 단번에 어긋나 버린 것이다.

 

 올 시즌 판 데르 파르트는 생애 최고의 전반전을 보냈다고 할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다. UEFA 컵에서는 2득점 4어시스트, DFB컵에서는 2득점, 그리고 리그에서는 9득점 3어시스트. FW의 올리치[각주:6]와 함께 팀 득점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그러나 2월에 재개한 후반전에서는 그다지…… 득점 불과 2. 시합마다 발표되는 평점은 계속 하강 곡선을 그려 결국에는 [3.48](최고가 1, 최저가 6)이라는 평범한 선수 그룹에 가입되어 버린 것이다. 이래서는 그의 시장 평가가 내려간다. 동경하던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도 못하고 이적도 실패한다면 그에게건 팀에게건 호된 질책이 쏟아질 것이다.

 거기에 더해 HSV는 다음 시즌 감독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제멋대로에 신경을 덜 쓰면 곧바로 살이 찌는 체질인 판 데르 파르트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타협이 통하지 않고 완고하며 규율을 우선시하는 타입의 감독이 필요하다. 감독 인사와 중심 선수의 취급에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다음 시즌 HSV는 일개 아웃사이더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아아~ 그래도……이다. 어째서 이번에 이런 테마로 쓰지 않으면 안된 것일까? 원래대로라면 리그 우승과 DFB컵 우승을 칭송하며 자 이제는 결승의 땅 맨체스터에서 레인저스를 격파하는 것만 남았다하고 미리 축하를 하고 싶었는데, 세상에서는 필시 아무도 모를 제니트 같은 팀에게 패하다니……(격노+우아앙~ T.T)

 

Ps; 환율은 2008-05-13 기준으로 네이버 환율계산기를 이용했다.

  1. 약 4040억 원 [본문으로]
  2. 약 2262억 원 [본문으로]
  3. 약 24억 원. [본문으로]
  4. 약 160억 원 [본문으로]
  5. 약 240억 원 [본문으로]
  6. 2008-05-10일 기준으로 31시합 12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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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ocn.ne.jp/sports/go11/080404.html
저자: 아카호시 케이코

2004년 은퇴 이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로베르토 바조가 오래간만에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인테르나치오날레 창립 100주년 파티였다. 왕년의 주된 선수들과 함께 주세페 메아차[각주:1] 스타디움의 그라운드에서 서포터들의 환호에 답했다. 그런 바조가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 [가체타 델로 스포르토]와의 인터뷰를 하였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채소밭과 가족을 위한 하루하루

바조는 현재 실질적으로 완전히 축구와 관계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
채소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시간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다. 운 좋게 장인과 장모가 그쪽에 관해서 굉장히 잘 알기에 많이 가르쳐 준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집을 벗어난 적이 많았으니까. 이제서라도 가족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고 말했다. 부인인 안드레이나(Andreina)와 서로 알게 된 것은 15살 때로 아직 학생이었을 때부터라고 한다. 3명의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었다.

아르헨티나까지 가서 사냥을 즐길 정도로 사냥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바조. 그 정열은 여전히 식을 줄을 모르는 듯하다.
계절에 따르지만 할 일이 굉장히 많다. 차를 이용하여 광대한 산악지대까지 가서 그냥 걷기만 할 때도 있다. 무릎에 신경을 써야 하기에 너무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은 할 수 없다. 믿지 못할 정도로 공기가 깨끗하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다. 필시 나에게 힘을 나누어 주고 있을 것이다
고 자연과의 '대화'를 즐기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완전히 보카의 팬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현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서포터들의 모습에 끌려, 뭔가를 느끼게 된 후 보카가 '나의 팀'이 되었다고 한다. 마라도나와도 공항에서 만난 적이 있으며 또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마라도나는 코카인 중독 등으로 인한 재활 치료로 고생하였고, 건강 상태가 일시 위험한 적도 있었다. 그런 때도 굉장히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마라도나의 마음 속 깊이까지 도착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요한 것이다. 주위에 있는 인간들 중에 자신을 진정으로 생각해주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파악하여 그렇지 않은 인간을 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 마라도나에게 어드바이스를 보냈다.

리피, 사키 등과 좋지 않았던 이유는?

현역 시대를 되돌아 보는 질문에도 답했다.

바조와의 사이가 정말 안 좋았던 감독은 리피, 울리비에리(Renzo Ulivieri), 카펠로, 사키. 어째서 사이가 나빴는가?
자문자답한 적이 몇 번이나 있다. 그래서 찾아낸 답이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언제나 주인공 혹은 일인자로 있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욕망을 방해하는 결과가 되어 버린 듯 하다”.
즉 리피 등의 바조에 대한 [질투]가 이유라고 느끼고 있는 듯 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 대해서도
사키에게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있었으며 많은 전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자신이 항상 주인공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안타깝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더욱 많은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비꼬았다. 그러는 한편 자신의 실수도 인정하였다.
다가가는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냐고? 물론 나도 잘못한 부분은 있었다. 내 쪽에서부터 허심탄회하게 다가갔어야 했을 것이다. 내가 범한 실수는 어떤 때라도 그들을 존경했어야 한다는 점과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고 분석하였다.

주목하고 있는 것은 메시. 대표팀에서는 피를로.

물론 축구에 대한 흥미도 잃지 않았다. 보면서 자신을 흥분하게 만드는 플레이어로 메시를 꼽았다.
가끔은 예전의 나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가 볼을 가졌을 때 필시 무언가를 해 줄 것만 같은 인상을 받는다. 또한 호나우지뉴와 카카도 그러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브라히모비치, 토티도 굉장한 선수들이다. 대표팀에서는 피를로다. 그의 플레이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끝난다. 우디네세의 콸리아렐라, 디 나탈레의 콤비도 흥미롭다고 선수의 이름을 거론하였다.

바조, 바조 팬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팀이라고 하면 유벤투스와 피오렌티나일 것이다. 현재의 양 팀에 대해서
라니에리는 잘 하고 있다. 프란델리도 그렇다. 개인적인 면식은 없지만 그가 부인과 사별했을 때에는 위안의 말을 보내고 싶었다
고 하며, 또한 델 피에로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축구계의 복귀는 주니어 선수들의 육성을 통해서

은퇴를 결정했을 때의 에피소드도 알려 주었다. 다른 선수들과 동등한 연습을 하기가 힘들어져 신체적인 면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무릎 속은 힘줄을 제외하곤 전부 부서져 있었다
고 말한다. 어느 날, 브레시아의 연습이 끝나 차로 1시간 정도 걸려서 자택에 도착했을 때, 무릎이 90도로 꺾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발을 뻗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고 할 정도로 참혹한 상태였던 듯 하다.

가까운 장래, 축구계로 돌아오는 것은 틀림 없는 듯하다.
주니어 부문을 담당하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여러가지 위험한 것을 미리 알려주고 싶다. 한 마디의 말이 얼마나 많은 것에 영향을 주는가, 축구 선수로써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가……
자신의 경험한 것을 어린 세대에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모라티 회장이 예전에 바조를 주니어 부문의 담당으로 채용하려고 한 적이 있다. 바조도 그것을 인정했다.
확실히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앞으로 이야기가 더 진행되고 거기서 나눈 이야기를 납득하게 된다면 그 때는 팀에 들어가 있는 상태일 것이다
또한 유벤투스의 매수 사건 등의 이야기로 이어지자,
내 경험을 말하자면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쓰고 싶다
며 자서전 출판의 가능성도 비쳤다.

현재 가장 행복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막내인 3살 레오나르도와 노는 것.
그 아이의 미소를 보는 것.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 그것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며 아빠미소를 보여주었다.

축구 지도자로써 제 2의 축구 인생을 보낼 바조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1. 원문에선 ‘산 시로’로 되어 있지만 인테르나치오날레 주최이기에 ‘주세페 메아차’로 함. [본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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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708/italy/column/200803/at00016584.html
저자: 비토 스켐바리(Vito Schembari)
일본어 번역: 키무라 카야코


"패배자"의 낙인과 "명장"의 칭호 -1편-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길 2, UEFA 슈퍼 컵 그리고 클럽 월드컵도 제패한 AC밀란의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 이제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명감독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선수에게 가장 사랑 받는 지휘관으로써도 알려진 그가 한때 패배자라 불렸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공한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페루자에서 찍힌 낙인과 터닝 포인트

이것은 2000 5 14일부터 시작되는 인내와 희망의 이야기이다.

그 날 카를로 안첼로티는 페루자에서 돌아오는 자가용 헬리콥터의 의자에 앉아서 구름을 바라보며 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다 잡았던 스쿠데토를 잡으려고 우리들은 함께 땀을 흘리고 싸워왔었는데……”

비가 줄기차게 내린 그 저주받은 날.

역전 우승을 결정지은 라치오가 기쁨에 들끓고, 감독인 스벤 예란 에릭손이 타이틀을 축복하고 있는 동안, 안첼로티가 지휘를 하는 유벤투스는 내린 비로 인해 논으로 변한 페루자의 필드의 진흙탕 속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설마 하던 패배와 동시에 일어난 라치오의 승리가 시즌을 계속 지배해 왔던 유벤투스에게서 스쿠데토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 안첼로티는 이 날 이후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불쾌하고 무거운 낙인이었다.

좋은 감독이지만 승리의 여신과 함께 있는 남자는 아니다

이런 말을 계속 들으면, 어느 순간에는 필시 그 자신 스스로 정말 패배자인 것인가 하고 믿어 버린 적도 있었을 터이다. 당시 파르마 교외에 있는 안첼로티의 자택의 진열장에는 그가 선수 시절에 받은 트로피만 있을 뿐으로, 감독으로써의 획득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부인은 언제나 안첼로티의 곁에 있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에는 풀이 죽지 않게 격려를 하여 침착한 마음으로 일에 임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 하였다. 안첼로티가 2001년 밀란의 감독에 취임해서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인차기나 ??첸코가 한두 번 골을 놓쳤다고 해서 손톱을 물어뜯을 필요는 없어요. 늦건 빠르건 바퀴는 구르기 시작하니까요

그의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처가 말한 것은 옳았다.

터닝 포인트는 2003 5 28일 흑과 적으로 물들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찾아 온다.

감독 안첼로티의 첫 기쁨의 제스처가 나온 것도 맨체스터에서의 그날 밤이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 유벤투스와의 120분을 넘기는 사투 끝에 승자가 된 안첼로티가 하늘 높이 양 손을 치켜 올렸을 때, 그의 넥타이는 느슨해져 있었고, 셔츠의 제일 위 단추는 풀려있었다. 그것을 보아도 승부를 결정지은 PK의 긴장감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던 것인가 상상이 간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패배자의 낙인은 그의 등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그의 부인은 선수들 속에 섞여 흥분하고 있는 남편을 객석에서 내려다 보며 바퀴가 드디어 돌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요. 최대의 목표는 스쿠데토 획득이니까요

2003-04 시즌 안첼로티가 결국 밀란에서 세리에A 우승을 실현시켰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페루자에서의 고통과 실망을 잊게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멋진 시간이 찾아 오네요

■ 선수로써, 감독으로써

선수로써 안첼로티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달린 후에는 필드의 잔디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스파이크를 신었던 당시의 안첼로티는 세련된 플레이메이커도 아니었으며 판타지스타도 아닌 라스트 패스를 보낼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지구력이 장점으로 근성과 주력을 내세우는 MF였던 것이다. 3번에 걸친 무릎 수술의 영향으로 1982년 월드컵에 출장할 수 없었지만(1986년 대회는 이탈리아 대표팀 멤버에 포함되었지만 출장하지는 못하였고, 1990년 대회는 2시합에 출장), 캐리어를 통해서 활발히 필드를 내달렸던 안첼로티는 필리포 인차기에 따르면 “80~90년대 버전의 스티븐 제라드라고 할 수 있는 위대한 선수라고 말한다.

당시 세리에C였던 파르마에서 캐리어를 시작했던 안첼로티는 AS로마로 이적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79 9 16. 운명의 연()이라고 할지 AC밀란과의 시합에서 세리에A 데뷔를 장식한다. 이리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는 후에 이 두 클럽에서 선수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안첼로티는 우선 로마(79~87), 이어서 밀란(87~92)에서 플레이 하며 22골을 기록. 3번의 스쿠데토(로마에서 1, 밀란에서 2)를 시작으로, 2번의 챔피언스 컵(현 챔피언스 리그), 2번의 인터컨티넨탈 컵(현 클럽 월드컵), 2번의 유럽 슈퍼 컵, 이탈리아 슈퍼 컵(이상 밀란 시대), 4번의 코파 이탈리아(로마)를 이루어 총 283 시합을 뛰었다.

1992년 은퇴 후, 곧바로 사키의 어시스턴트로써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감독 수업을 하기 시작한 안첼로티는 1995년 레자나(Associazione Calcio Reggiana 1919, 당시 세리에B)의 감독이 되어, 그 시즌에 세리에A 승격을 이루었다.

그 후 파르마(96~99)를 거쳐, 99 2월에 리피의 뒤를 이어 유벤투스의 감독에 취임.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한 채 2001년 여름에 유벤투스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고, 그 해 11월에 당시 곤경에 처해있던 밀란의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여기서 결국 그는 감독으로써 꽃을 피운다. 밀란과 함께 스쿠데토를 획득하고(03-04), 또한 코파 이탈리아(02-03), 이탈리아 슈퍼 컵(04), 챔피언스 리그(02-03, 06-07), UEFA 슈퍼 컵(03, 07), 클럽 월드컵(07) 등 총 8개의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 사키에게 이어 받은 가르침과 독자적인 유연성

황금시대였던 Grande Milan. 후열 왼쪽 2번째부터 말디니, 판 바스턴, 안첼로티.

감독으로써 안첼로티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어째서일까? 그는 사키나 리피와 같은 전략의 마술사는 아니다. 오히려 데리고 있는 선수에게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끌어 내는 것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며, 그 멤버를 최대한 살리는 형태로 스타일을 구축해 가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감독으로써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있어, 예전 밀란의 팀 동료로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았던 마르코 바스턴의 견해가 흥미롭다.

우리들은 사키가 이끈 [그란데 밀란(Grande Milan - 80년대 후반의 황금기)]에서 팀 동료였다. 당시부터 카를로는 미래의 위대한 감독으로써의 편린을 틈틈이 보여주었다. 그는 필드 위에서 이미 감독이었다. 감독이 되고자 결정했을 때, 그는 사키의 가르침을 전부 실행에 옮겼고, 거기에 멤버에 따라 시스템을 조절하는 독자적인 특성을 더했다. 카를로는 사키처럼 융통성이 없는 타입이 아니기에 개인의 재능을 빛나게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선수에게 걸리는 스트레스도 사키에 비하면 적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가 앞으로 많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또한 밀란의 GM,

카를로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의 한 사람이 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위대한 선수에서 위대한 감독으로의 이행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밀란의 번영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자신의 생각에 너무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밀란에 컨디션이 좋은 스트라이커가 한 명만 있다면 그는 FW 1명만 기용한다. 컨디션이 좋은 FW 2명이 있다면 그는 그 둘을 채용한다. DF 3명밖에 없었다면 필시 그는 3명을 두는 수비를 쓸 것이다

■ 말디니 그의 성실함과 정직한 인격이 좋다

안첼로티를 말할 때, 그 축구 철학과 함께 언급되는 것이 그의 인격이다.

신사적인 안첼로티는 호랑이 선생님 타입은 아니다. 선수에게 머리 위로 명령하기 보다는 대화를, 분노를 쏟아내기 보다는 설명하는 쪽을 좋아한다. 예전 팀 동료였던 베테랑 선수의 놀림도 받아들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으로 받아 치거나 한다. 그의 성격과 자세는 정신적인 시점으로 보았을 때, 지금도 어떤 면에서는 선수인 상태인 채이다.

그의 인격은 경력 속에서 두 가지 설을 만들어 내었다.

유벤투스 시대에 이길 수 없었을 때, 혹은 밀란에서 어려움에 빠져 있었을 때, 어떤 사람이 말하길, “안첼로티는 선수와 너무 친하기 때문에 선수는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규율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사키 아래서 선수였을 때와 같이, “로커룸의 리더였던 것이야말로 그의 장점인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방정식에서 기인한다. 부분적으로 선수인 채로 있는 안첼로티는 선수들의 기분을 이해하고 있다. 그 때문에 선수들이 최고의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가 있어 선수들도 그에 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안첼로티에게 절찬을 보내는 명 플레이어는 셀 수 없이 많으며, 그 중 몇 명인가는 선수로써 그의 팀 동료였던 적도 있다. 예를 들면 현재의 밀란의 주장인 파올로 말디니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카를로?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카를로에 대해서는 그가 선수였던 때부터 알고 있다. 처음엔 그가 로마에 있을 때에 상대 선수로 만났고, 그 후에 밀란 선수들의 리더로써, 지금은 감독으로써 그를 알게 되었다. 나는 예전부터 계속 그의 성실함, 정직한 인격이 좋았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로커룸 밖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아닌 팀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점도

2편에서 계속.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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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serie_a/20080129-1-1.html

저자: 사카마키 요우코

<같은 팀에 소속된 자신의 아들 필리포를 중용하는 것에도 비판을 받고 있는 만치니 감독>

무승부가 타당한 스코어였다.”

파르마에게 역전승을 거둔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만치니 감독은 평소와는 다르게 조그만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만치니 감독은 이 날 승리로 인테르나치오날레의 감독으로써 127승째. 통산 승리수로는 명장 트라파토니를 제치고 역대 2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코멘트만 남긴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이 심판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 19일 행해진 파르마와의 시합의 전말은 이렇다.

1-2로 역전 당하여 올 시즌 첫 패배의 위기에 직면했던 인테르나치오날레. 시합 종료 직전인 후반 42분에 PK 기회를 얻는다. 헤딩으로 걷어낸 듯이 보인 파르마 DF 코투(Fernando COUTO)에게 핸들링이 선언된 것이다. 파르마의 멤버들은 주심에게 맹렬히 항의. 그러나 이것에 의해 코투는 퇴장. 인테르나치오날레는 FW 이브라히모비치가 이 PK를 넣어 동점으로 따라 붙자, 열세에 놓인 파르마 수비진의 혼란을 파고드는 것과 같이 인저리 타임 때 다시 이브라히모비치가 천금과 같은 골을 넣어 막판에 [의혹의 승리]를 쟁취한 것이었다.

다음 날.

당연하게도 인테르나치오날레는 매스컴의 제물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각 신문들은 올 시즌 볼 수 있었던 인테르나치오날레에 대한 유리한 판정을 대대적으로 소개하였고(12시합이 유리했다고 한다), TV 해설자들은 인테르나치오날레의 파죽지세의 배경에는 개막 당초부터 항상 심판의 도움이 있었다고 분석. 더욱이 7P차로 2위에 있는 로마의 스팔레티 감독은 심판들의 편파 판정이 리그를 재미없게 하고 있다고 속마음을 토로했다. 이들 의혹이 전부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탈리아의 심판은 여전히 최강 클럽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 유벤투스의 편을 든 심판들에게 발끈한 다른 클럽들이 [타도 유벤투스]를 외치며 일치 단결했던 적이 있었다. 심판의 인테르나치오날레를 위한 편파 판정이 표면화된 올 시즌도 [타도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봉화가 올랐다는 것은 최근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시합 성적에서도 알 수 있다.

2007년 마지막 시합이 된 17라운드까지 실점이 한자릿수(9실점)에 머물고 있던 [최강 군단], 올해에 들어서는 18라운드 시에나와의 시합(3-2), 19라운드 파르마와의 시합(3-2)에서는 두 시합 다 2실점. 더욱이 1 23일 행해진 이탈리아 컵 8강전 1차전 유벤투스와의 시합에서도 홈에서 라이벌에게 2점을 빼앗기는 등(2-2), 3시합에서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실점은 6에 이르렀다.

여전히 [무패]를 지키고는 있어도, [무적]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하다.

[심판의 편파 판정이 없어도 인테르나치오날레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적어도 4강까지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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