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헤네스'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3.16 열쇠를 쥐고 있는 GM의 ’말과 행동’ by 渤海之狼
  2. 2008.01.30 클린스만 감독의 탄생에 대해 생각한다 by 渤海之狼
  3. 2008.01.13 클린스만 차기 감독 결정으로 들끊은 독일 by 渤海之狼
  4. 2007.08.15 레알 마드리드가 하노버에 왔다. by 渤海之狼

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90313-1-1.html
저자: 안도우 마사즈미

 

 훌륭하다. 굉장하다.
 수도를 본거지로 삼고 있으면서도 오랜 기간 근성 없는 팀의 대명사였던 헤르타 베를린이 분데스리가 1위에 오른 것이다. 1963년에 분데스리가가 발족한 이래 클럽 사상 첫 쾌거라고 한다. 만에 하나라도 베를린이 우승이라도 하면 78년만의 쾌거다. 저번 영광은 고르바초프가 태어난 1931년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니 어쨌든 훌륭하며 굉장한 것이다.

 베를린의 과거 5년간 성적은 10위, 10위, 6위, 4위, 12위로 여태까지는 ‘참가한다’는데만 의의가 있던 듯하다. 지금까지 획득한 타이틀은 리그 우승 2회(2연패)와 그다지 가치가 없는 2001~02년 리그컵 2연패로 총 4회뿐. 매해 시즌 목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선수건 프런트건 ‘UEFA컵 출전권’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고작으로, 착각으로라도 ‘챔피언스 리그’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경험 상으로 그들은 자신의 주제를 알고 있는 것이다.

 1위를 탈취한 홈에서의 제20라운드. 상대는 바이에른이었다. 한번은 동점으로 추격당했지만 77분에 다시 보로닌이 골을 넣어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평소였다면 평균 4만 명밖에 모이지 않는 스타디움(관중으로 가득 차는 독일에서는 이래도 리그 8위의 관객수. 참고로 1위는 도르트문트의 7만2398명)은 7만 4244명이라는 초만원을 기록. 남부의 거인을 쓰러뜨리고 1위에 선 최고의 스토리에 팬들은 취했다.

 파죽지세의 진격에는 감독 인사의 교체가 항상 따라붙는데 베를린도 이 예에 어긋나지 않는다. 전 감독인 괴츠(Falko Götz)는 현역시대 11년간과 아마추어 부문 지도자 7년 총 18년을 베를린 외길로 살아왔다. 3년 전에는 아마추어 부문에서 65명의 어린 선수를 각 세대별 독일 대표팀으로 보내는 등 우수한 지도자로서 일정의 평가를 받았다. 단 감독이 되고부터는 베테랑과 사이가 나빠, 뱉어진 껌에 맞는다거나 기자회견 중에 휴대폰 메시지를 받는 등 권위를 잃어 팀 안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2년 전 클럽은 성적부진을 이유로 괴츠를 자르려고 했지만 ‘미스터 베를린’인 만큼 쉽게 자르지 못했다. 그래도 약 1억엔의 위약금을 지급하여 겨우 물러나 줄 것을 요청했다. 단 당시는 70억엔 가까운 부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을 새로 초빙하지 못하고 아마추어 부문에서 끌어 올려 당장 급한 불을 끌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대형 보강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

 어떻게든 잔류를 하여 새로운 감독 찾기를 착수하였는데 이때 디터 헤네스(Dieter Hoeneß) GM은 예전 바이에른의 루메니게 회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루메니게는 현역 말년에 스위스의 세르베트 주네브에서 뛰었는데 같은 방을 쓰고 있던 팀 동료에 대해서 “멋진 녀석이지. 확실한 이론에 인격도 뛰어나다”고 엄청 칭찬한 것을. 그 사람이 루시엥 파브르(Lucien Favre). 현 헤르타 베를린의 감독인 것이다. 감독 후보에는 베른트 슈스터도 꼽히기는 하였지만 헤네스 GM은 독단으로 파브르를 선정했다. 무턱대고 행동하며 타인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이 사람다운 방식이었다.

 파브르는 선수, 감독으로서 스위스의 약소 팀들을 거쳐왔다. 그리고 세르베트 시대에 UEFA 컵에서 보여준 지도력과 4년간 지휘를 한 FC 취리히에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베를린에 온 것이다. 현역시대는 포지션 전부를 경험했다. 그 때문인지 베를린에서의 지도도 선수에게 복수의 포지션을 담당할 수 있듯이 요구한다. 바이에른과의 시합에서는 평소 왼쪽 DF인 슈타인(Marc Stein)을 오른쪽 DF에 기용하여 MF 에베르트(Patrick Ebert)와 협력하게 한 것은 [세계 최강 왼쪽 측면 공격]이라고 일컬어지는 리베리와 람을 막기 위한 작전이었다.

 베를린의 특징은 높은 신체능력이다. 또한 정신적으로도 강함을 중시함으로써 ‘시합 마지막 15분간’에 강점을 보여 이 시간대에 많은 득점을 올려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 대약진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FW 보로닌, 부상에서 막 복귀한 판텔리치(Marko Pantelić), GK 드로브니(Jaroslav Drobný) 그리고 수비를 총괄하는 시무니치(Josip Šimunić)와 프리드리(Arne Friedrich)이다. 이 중 보로닌(19시합 10골)은 예산 부족으로 인해 임대로 획득한 선수이다. 2년 전 클럽은 16명을 해고하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19명을 입단시키는 터무니없는 인사를 행했었는데, 이제서야 팀은 뭉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태로 베를린은 마지막 라운드까지 돌진할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다. 판텔리치(17시합 6골)는 항상 ‘나는 과소평가 받고 있다’며 불만을 입에 달고 살며 그의 까다로운 성격이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선수가 출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비교하면 팀이 올리는 득점과 승점에 거의 2배 차이가 난다. 마르셀리뉴(Marcelo dos Santos ‘Marcelinho’)를 길들이지 못한 과거가 있던 만큼 조심스럽게 대응하지 못하면 베를린은 샬케와 같은 운명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선수에 대한 응대보다도 오히려 GM이 아닐까? 베를린의 GM은 바이에른 헤네스 GM의 친동생인 디터다. 이 둘은 틈만 나면 비교되어 왔다. 유로와 월드컵에서 우승을 경험하였고 은퇴 후에는 유럽 굴지의 명GM으로 명성을 떨쳐 이지적이고 발군의 경영 센스를 보이는 형에 비해, 동생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동생의 일반적인 평가는 ‘절대주의자적 독재자와 같이 헤르타를 이끌어 왔다. 과거 10년간 비겁한 예스맨만을 모아 독재체재를 구축하였다’는 이 이상 없을 정도로 혹독한 것이다.

 큰 덩치와 시원하게 벗겨진 대머리를 보면 의리와 인정이 두텁고 후덕한 ‘사장님’과 같이 보이지만 본질은 ‘발언력을 가지려 하는 인간은 용서하지 않으며 충고나 비판은 철저히 증오’하는 원맨 GM인 것이다.

 파브르 감독은 입단 전 리그 우승을 하면 최고 1억 5000만엔, 챔피언스 리그 출장을 이룩하면 1억엔의 특별 보너스를 받는 계약을 맺었다. 선수에 대한 보너스 교섭도 이제부터 열기를 더해간다. 그러나 재정 재건에 여념이 없는 현재, GM이 부족한 사려로 무슨 일이든 정하는 체질에 감독과 선수가 혐오를 느끼기 시작한다면 순식간에 전락할 것은 뻔하다. 실제로 2년 전엔 조직내의 말썽으로 9시합 연속 무승에 4연패를 당하는 등 5위에서 단번에 강등권내로 떨어졌다. 성적이 악화되면 GM은 당연히 신경질 낸다. 그리고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팀. 주목해야 할 것은 GM의 말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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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pe/20080128-1-1.html

저자: 안도우 마사즈미


 이번 감독 취임만큼 팬들을 놀라게 한 것은 없을 것이다.

 클린스만의 바이에른 감독 취임 말이다. 무엇보다 요 몇 주간의 움직임으로 판단해서 리버풀 감독에 취임할 것이다라고 모두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버풀을 위해서 클린스만은 강화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기에 언제 정식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랬던 것이 바이에른으로 급히 방향 전환하였기에 놀랄 따름이다.


 독일 출신이며, 예전엔 바이에른에서 플레이 했었으니까라는 것은 초보자의 지레짐작이다. 그는 바이에른 ()와 라이벌 관계인 옆 주(뷔르템베르크 () – 역자 주) 출신으로, 모국의 보수주의적인 사회 체질을 싫어하여, 흑인 부인과 결혼하여 미국에 뿌리를 내린 코스모폴리탄. 정치적으로는 진보-자유주의적인 인물이다. 이런 것만 보아도 ()’가 붙는 보수적인 바이에른의 풍토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2004년 대표팀 감독에 취임했을 때에는 사사건건 바이에른 관계자와 충돌했었다. 그것도 베켄바워와 헤네스 GM이라는 초 거물들하고 말이다. 2006년 월드컵의 주전 GK 쟁탈전에서는 베켄바워가 칸을 응원한 것에 대하여 클린스만은 결국 레만을 선택하여 황제를 화나게 하였다. 헤네스 GM그가 독일로 이사해 오지 않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캘리포니아에서 계속 살면서 독일과의 연락은 화상 회의나 E-메일이다. 이래서는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누구의 어드바이스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클럽의 요청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혹독한 비판을 했었다.


 헤네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1995년 클린스만의 바이에른 입단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교섭을 체험했던 것이다. 뭐 클린스만이 억지를 쓴 것은 아니다. 대리인인 변호사가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었기 때문이다. 그 대리인은 여전히 클린스만의 곁에 있으며, 이번에도 교섭 테이블에서 [2년 계약, 연봉 1000만 유로[각주:1]]이라는 실로 멋진 거래를 성사시킨 것이다.


 감독 취임까지의 경위는 이렇다.

 우선 작년 12 17일 히츠펠트 감독이 올 시즌만 하고 은퇴의 뜻을 클럽에 전하였다.

 20일. PAOK F.C.와의 UEFA 컵 시합 종료 직후, 루메니게 사장이 클린스만 측에 처음으로 연락을 넣었다.

 27. 헤네스 GM의 스위스 별장에 대리인이 방문했다. 바이에른의 이사장이 동석하여 뮌헨에서 다시 교섭하기로 하고 그 자리에서는 헤어졌다.

 그리고 올해 들어 11. 미국에서 클린스만이 와서는 3시간 동안 회담한 끝에 계약서에 사인을 하였다. 회담 장소에 바이에른 강화 플랜을 가지고 온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클린스만은 예전부터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것은 리버풀 용으로 작성한 것 보다 훨씬 두꺼웠다. 쉐라톤 호텔에서 행해진 기자 회견은 전국에 생중계될 정도로 성황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프런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그가 바이에른에 취직할 수 있었던 것일까?

 히츠펠트가 관둔다는 것이 명확해 지면서부터 급작스러웠던 만큼 바이에른의 감독 찾기는 전혀 계획에 없었다. 그래도 우선 이름만은 리스트 업 해 보았다. 모리뉴, 레이카르트, 판 바스턴, 히딩크이다. 바이에른이라는 국제적인 스타 군단을 이끄는 지휘관은 그 만큼의 경력과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이 중 모리뉴에게는 한 가지 바이에른의 조건과 맞지 않는 사정이 있었다.

 독일어였다.

 헤네스는 독일어가 가능한 감독이 아니면 안 된다고 최저한의 조건을 정하고 있었다. “모국어이며 클럽, 선수와 서로 이해를 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트리오는 어떤가 하면 이 세 명은 세 명 다 독일어를 잘한다. 하지만 클린스만으로 일찌감치 정해졌기 때문에 3인과 교섭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클린스만 획득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헤네스는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누구냐 하면 마이츠 05의 위르겐 크룹(Jrgen Klopp) 감독이었기 때문에 놀랄 따름이다. 개인적으로는 크룹의 지휘도 보고 싶었지만 그는 브레멘의 샤프 감독과 타입이 비슷하지 않을까? [전국적이 아닌 지역적 팀에서 소질 있는 선수를 키운다]는 수완은 뛰어나지만 처음부터 빅 네임이 즐비한 팀을 지휘하는 아우라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클린스만은 바이에른을 어떠한 팀으로 혁신시켜 갈 것인가?

 현 시점에서 입단이 결정된 것은 브레멘의 보로프스키 뿐. GK 칸은 올 시즌으로 은퇴한다고 하니 뒤를 잇는 것은 렌징이 된다. FW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보강은 필요 없다. 그렇기에 대폭적인 선수의 교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클린스만 이기에 17살의 크로스를 시작으로 무명인 젊은 선수를 발탁할 지도 모른다. 대표팀 감독 시절 메르테사커(20)과 얀센(19)을 발견했듯이.


 이제 와서 클린스만의 좋은 인격이나 선수의 향상심을 높이는 수완을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필자에게는 그래도 2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전술에 대한 것이다.

 대표팀 감독 시절 전술을 담당했던 것은 뢰브 조감독(현 대표팀 감독)이었다. 이 역할을 누가 어떻게 담당하느냐에 따라 바이에른의 축구가 크게 변할 것이다.


 또 하나는 눈 위에 혹”들이다.

 베켄바워, 헤네스, 루메니게.

 바이에른은 무엇이건 이 세 명을 빼 놓고서는 말이 진행되질 않는다.

 예로 든 것이 이상하겠지만 바이에른이라는 명문가에 시집 온 며느리(클린스만)는 하루 종일 시어머니, 집사, 시누이에게 감시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선수, 감독으로 항상 성공을 거두어 왔던 클린스만은 어떤 의미에선 베켄바워와 같은 [최고의 별 아래 태어난] 프린스이다. 반년 후, 그가 어떤 팀을 만들어 보여줄 것인가? 기대되기도 하며 불안하기도 하다.

  1. 약 141억 4688만원 – 2008년 1월 30일 기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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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headlines/20080112-00000009-spnavi-socc.html
저자: 코바야시 사호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은 11, 올 시즌을 끝으로 퇴단이 결정된 히츠펠트 감독의 후임으로, 전 독일 대표팀 감독이었던 클린스만 씨가 감독에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년간.

 해가 바뀌자 마자 히츠펠트 감독의 퇴단이 명확해진 이래 바이에른 차기 감독 후보에 관해서 높은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여러 이름들이 보도되었었지만 클린스만 씨의 이름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번 결정은 독일 국내에서는 커다란 서프라이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TV에 특별 프로그램이 편성되었고 메르켈 총리에게까지도 코멘트를 요구받는 등, 이 날 독일은 클린스만 감독 결정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같은 날, LA에서 뮌헨으로 온 클린스만 차기 감독.

 저녁에는 베켄바우워 명예회장, 루메니게 회장, 헤네스 GM 등 클럽 집행부와 함께 취임 회견에 임했다. TV에서 생중계가 된 취임 회견에서 클린스만 씨는 30대 이상의 TV 카메라에 250인 가까운 보도진 앞에서굉장히 기쁘며 또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표팀 감독이 되었을 때와 같은 특별한 느낌이다. 이러한 레벨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축구계에 있어서 바이에른은 최상급에 속하고 있다”며 기쁨을 표현했다.

 이번 취임에 대해서 히츠펠트 감독의 퇴단 결심을 받아들여, 루메니게 회장이 클린스만 씨를 차기 감독으로 지명했을 때부터 접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클린스만 차기 감독은 “크리스마스 직전에 루메니게 회장에게서 연락을 받아 감정적으로 곧바로 결론을 내었다. 집사람에게 가족 전부 뮌헨으로 이사해 살 수 있는지 상상해보라고 하자, 할 수 있다고 하였다”며 고민 없이 결단을 내렸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클럽을 이끌게 되는 클린스만 씨는 “바이에른에서는 가장 좋은 결과를 요구받을 것이다. 최대의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독일 선수뿐만 아니고, 해외 톱 선수들과 함께 해 갈 수 있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선수 개개인의 레벨 향상을 목표로 해 가겠다. 그에 따라 팀도 저절로 좋아 지게 될 것이다. 독일 대표팀 감독할 때에 시작했던 방식을 계속해 나가겠다. 선수의 능력을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의 스탭을 편성할 생각이다. 코치 진 후보는 이미 머리 속에 정리가 되어있지만, 미국이나 그 외의 나라들로 된 국제적인 스탭으로 구성될 것이다.”라며 비젼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독일 대표팀 감독 시대와 같이 [팀 클린스만]을 결성할 것도 예고했다.

 클린스만 씨가 독일 대표를 이끌었던 2년 동안 일어난 여러 가지들을 연상해보면, 바이에른의 결단은 굉장히 과감한 그리고 용기가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헤네스 GM은 “우리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 줄 인물을 찾고 있었다. 그가 오퍼를 받아들여준 것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가슴을 폈다.

 그리고 , “나의 길을 간다는, 타협이 쉽지 않은 감독을 맞이한 것이 되었다. 참신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선수와 잘 해 나갈 수 있는 감독이다. 그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며 클린스만 감독이 가진 개성을 높게 평가했다.

 바이에른의 감독은 승리하건 패배하건 비판을 받지만, 대표팀 감독 시대에 온갖 비난을 계속 받았던 클린스만 씨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맞바람에 대한 대처도 잘 알고 있다. 취임 후는 [바이에른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말도 많은 프런트와의 사이에 펼쳐질 듯한 꺼리낌도 용서도 없는 언쟁에도 주목이 쏠릴 것이다.

 독일 대표팀 감독 시대. 모든 방면에서 독일로 이사와 살라는 권고를 완고히 거절해 왔던 클린스만 씨이지만, 다음 시즌부터는 가족과 함께 뮌헨으로 집을 옮긴다고 하니, 기대도 자연히 커진다.

 지난 시즌 성적 부진으로 인해 올 시즌 개막하기 전에는 루카 토니, 리베리 라는 거물 선수를 획득하여, 노선 변경을 한 바이에른에, 다음 시즌부터 거기에 클린스만 씨가 더해지게 된다. 완전 무정을 하고 맞이하는 다음 시즌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로 [뉴 바이에른 탄생의 시즌]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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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대에는 [금발의 천사(블론드 엔젠)]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슈스터 감독.


 레알 마드리드가 7월 말, 독일에서 친선시합을 했다. 상대는 하노버 96.

  하노버는 내세울 만한 실적도 네임 밸류도 없는 평범한 팀이다. 프로팀 대 고등학교팀의 시합같은 매치지만 카시아스, 칸나바로, 디아라, 라울 등 스타 선수가 출장한 프로팀 레알 마드리드는 고등학교팀인 하노버에게 0-3으로 완패. 레알 선수들은 깜짝 놀랐을까? 그렇지는 않다. 기껏해야 자선시합 같은 거니까.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의 프런트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우선 여름이 그리 덥지 않은 독일은 고온다습한 아시아에서 하는 것 보다 훨씬 선수의 컨디션 유지에 효과가 있던 것.

 그리고 돈.
 하노버는 레알 마드리드측에 "항공요금과 호텔비 2박(泊)분(Arabella sheraton)을 부담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 경비만 17만 유로(약 2억1559만원)이다. 그리고 중요한 초대비용은 100만 유로(약 12억6820만원). 열 몇 시간을 들여 축구 개발도상국에 가서, 시차로 고생하는 것 보다 훨씬 편한 장사다. 하노버가 돈을 낸 것은 이것 외에도 운영과 경비비 등으로 15만 유로(약 1억 9천23만원). 이것저것 다 합치면 비용은 120만 유로(약 15억2184만원)을 가볍게 넘겼다. 필시 대적자??.... 그럴리 없지.

 관중석은 가득 찼고 VIP석에는 특별요금을 설정했으며 임시 스폰서도 잡거나 해외 방영권을 팔거나 해서 세금을 제한 순 이익금 15만 유로(약 1억9023만원)을 확보한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왔다는 것만으로, 하노버는 굉장히 들떠있었다.
 어쨌든 독일에서(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만은 격이 다른 취급을 받는다. 평소 "녀석들은 우리들을 이길 수가 없다니까"라며 에스파냐 대표팀을 상대도 안 된다는 듯이 언급하는 애국적 우파 미디어들이지만, 상대가 클럽 팀이 되자마자 목소리가 작아져 "그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가 온다. 그 스타 선수가!!"하고, 마치 아이들처럼 날뛴다.

 재작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르셀로나와 시합한 브레멘에서는 호나우지뉴의 유니폼을 갖고 싶은 마음에 발데스는 시합 전에, 나우도(Naldo)는 하프 타임에, 오보모옐라(Owomoyela)는 시합 후에 상대 팀 벤치에 직접 부탁하러 간 것이다. 이래서는 마치 오빠부대가 아닌가.

 특히나 이번에 레알 마드리드가 주목받은 것은 베른트 슈스터 신 감독의 존재가 크다.
 독일은 80년 유럽 선수권에서 우승했는데, 이는 슈스터의 힘이 없었으면 이룰 수 없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의 미래를 누구나 기대했지만 대회가 끝난 직후 소속하고 있던 1FC 쾰른 관계자가 그의 연상의 부인을 계속 모욕했기에 모국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20살의 어린 나이에 바르셀로나로 도망치듯이 이적. 그 후에는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옮겨 다녔고 현역 은퇴 후에도 에스파냐 축구와 관계를 계속 맺었다. 그러는 동안 슈스터는 독일과의 관계를 끊어 버렸다. 21살이면서 더 이상 대표팀에 "흥미가 없다"고 은퇴를 결정해 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 것도 있어 그 스타 군단이 하노버에 왔어도, 미디어의 관심은 선수보다도 오히려 슈스터 쪽에 집중되었다. 매스컴은 "바이에른 뮌헨 감독 취임 소식은 정말이었습니까?", "첼시의 발락과 로번은 레알로 이적하는 것입니까?" 하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30년 가까이 이 바닥에서 밥을 먹고 있는 슈스터는 익숙한지 적당히 둘러댔지만 필자가 알고 있는 베테랑 독일 기자는, "그가 좀 더 위트라던가 조크를 할 수 있다면, 이 나라에서 굉장히 인기를 끌텐데" 하고 슈스터의 차가운 반응을 보고 빈정댔다.

"예를 들면?"

하고 필자가 되묻자, 그의 대답은 이러한 것이었다.

"하노버의 명물이 뭔지 알지? 도시의 관광명소를 찾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 땅바닥에 그려진 [길 안내하는 붉은 선]이잖아. 나라면 반드시 ‘이거건 저거건 모든 것은 [붉은 실]로 이어져 있죠’라고 말해서 매스컴을 내 편으로 만들어버렸을 텐데(웃음)”

 그러고 보니, 슈스터와 루메니게 바이에른 뮌헨 회장은 80년 유럽 선수권의 팀동료, 슈스터와 헤네스 뮌헨 GM은 같은 아우그스부르크 출신, 거기에 슈스터에게 대표팀 복귀를 종용한 베켄바우어. 그리고 미하엘 발락의 전 소속팀은.... 슈스터와 바이에른 뮌헨를 연결시키는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이야말로 [붉은 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붉은 실]이라는 것이 연예 소설에서나 통용되는 것일 것이다.
모국과 싸우고 헤어진 듯한 슈스터에게 그러한 로맨틱한 테마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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