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ocn.ne.jp/sports/soccer/soccer090312_2_1.html
인터뷰어: 인포스트라다 헤이스터스

 위기에 빠진 아스날을 구원하기 위해 안드레이 아르샤빈은 런던에 강림했다.
 구세주로 기대 받고 있는 ‘러시아의 마라도나’는 명문 클럽을 궁지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시작으로 테오 월콧이나 콜로 투레, 미카엘 실베스트르 등 주력 선수의 이어지는 부상으로 인해 아스날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공격의 중심 파브레가스를 잃은 공격진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능이 떨어져 심각한 득점력 부족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윌리엄 갈라스의 주장 박탈이나 투레 등의 부상 등 문제가 산더미 같은 수비진도 리그 6위인 25실점으로 공격진의 부진을 메워 주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팀은 1위와 17p차이며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밖인 5위로 부진.

 궁지로 몰린 지휘관 아르센 방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올 겨울 러시아에서 한 선수를 불러들였다. 지난 시즌 신흥 제니트를 UEFA 컵 우승으로 이끌고 유로 2008에서는 러시아 대표팀의 리더로써 4강 진출에 공헌한 [러시아의 마라도나]를. “시야가 넓고 현명하며 패스가 뛰어나 임기응변에 능하다”. 이렇게 방제에게 평가 받는 러시아의 사령탑에게 주목이 쏠리고 있다. 4위 애스턴빌라와의 6p라는 승점 차는 결코 쉽게 뒤집을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아스날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 런던에 강림한 작은 몸집의 러시아인 안드레이 아르샤빈은 이 위기 상황하에서도 자신이 넘친다. ‘그야말로 내가 바라 마지 않던 상황’이라고.

방제의 인간성이나 지도방침에 끌렸다.

- 아스날에 입단한지 1개월이 지났습니다. 새삼스럽겠지만 이번 이적을 되돌아 본 감상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오케이. 당신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제니트 이외의 클럽에서 플레이하는게 이번이 처음이야. 때문에 이적할 때는 뭐든 신선했고 여러 가지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았어. 단지 이렇게 복잡한 것이라면 다시는 이적하고 싶지 않군(웃음). 나는 꽤 냉정하고 침착한 성격이지만 이번엔 정말 조바심이 나더군.

- 그건 교섭이 질질 끌렸기 때문인가요?

 맞어. 내 마음은 확실히 정해놓았었기 때문에 곧바로 입단이 정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교섭이 난항에 빠졌어. 당시엔 머리 속에 계속 불안이라는 것이 있었지. 어쨌든 침착하게 있을  수가 없었어.

- 이적이 무사히 성립되었을 때의 솔직한 기분은?

 최고로 기뻤어. 이 이적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 아스날 행을 결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무엇보다 방제 감독 아래서 플레이하고 싶었지. 그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의 인간성이나 지도방침에 큰 매력을 느꼈어. 나 뿐만이 아니라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명장이라 불리는 방제와 함께 하고 싶어할 거라 생각해.

- 아스날에는 어떠한 인상을 가지고 있나요?

수많은 어린 재능들과 위대한 감독이 함께 있는 세계 톱 클래스의 클럽으로 아름답게 이기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는 그야말로 나에게 딱 알맞은 팀이지. 거기에 1930년대에 리그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을 뿐만이 아니라(편집부 주:1933~35년),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빅4]의 하나로 꼽히는 명문 클럽이기도 해. 이런 멋진 곳에서 도전할 수 있다니 축구를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야.

- 하지만 올 시즌 아스날은 부진합니다. 리그에서는 5위로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출전조차 위험한 상황이죠.

 그렇기에 더욱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내가 제니트에서 나온 이유는 러시아에서 할 건 다 해보았기에 더 이상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야. 리그와 UEFA컵에서 우승했기에 목표를 잃었지. 그러던 차에 아스날 이적이야기가 나왔어. 빅클럽에서 플레이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문 팀을 재건하는 것, 거기에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라는 세계 최고의 명예… 여기에는 많은 목표가 있어. 정말 내가 바라 마지 않던 상황이야.

- 지난 여름 바르셀로나로의 이적 소문이 있었습니다만 그 이야기가 흐지부지된 것에 후회는 없습니까?

 전혀 없어. 확실히 여름에 교섭이 성립되었다면 나는 에스파냐로 갔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때는 빅클럽이라면 어디건 좋았어. 밀란이건 첼시건 나를 진심으로 필요로 해준다면 기쁜 마음으로 이적했을 거야.

- 그런데 이적료의 차이가 너무 커 결렬되었습니다.

 설마 유로2008에서 활약한 것이 이적의 ‘장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그 대회로 인해 내 몸값은 엄청 뛰어올랐으니까. 바르셀로나로의 이야기가 백지로 되었을 때는 솔직히 실망했지만 뭐 그건 지나간 일이니까. 여름에 이적이 정해졌다면 나는 아스날의 일원이 되지 못했을 것이기에 지금은 깐깐하게 교섭을 해준 제니트에 오히려 고마운 기분이 들어.

서포터의 열기가 벤치까지 전해진다.

- 데뷔 전에서는 오른쪽 측면에 기용되었습니다만 앞으로도 같은 포지션에서 뛰게 될까요?

 감독과 확실히 이야기를 나눈 것이 아니기에 아직 모르겠지만 ‘공격적인 포지션에서 쓰겠다’는 말은 들었지. 물론 나 자신은 최전방이건 왼쪽 측면이건 아무 문제없이 잘 할 자신이 있어.

- 아스날의 전술에 익숙해질 것 같나요?

 그럭저럭. 제니트와 아스날의 축구는 닮은 구석이 많으니까. 양 팀 다 창조적인 선수를 축으로 속도감 넘치는 패스 축구를 전개해. 그렇기에 그다지 어려움 없이 플레이 할 수 있어.

- 팀 동료들과는 친해지셨나요?

 그냥 모두와 안면만 익힌 상태로 인사밖에 안 한 선수도 많기에 아직 사이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 나는 이제 27살인데 아스날에서는 ‘나이 먹은 그룹’에 속하기에 모두들 조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웃음). 뭐 서로 어른이니까 곧 친해지겠지.

- 당신은 예전부터 너무나 솔직한 발언으로 때때로 물의를 빚었습니다. 제니트 시대에는 운영진을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만 앞으로도 그 스타일은 바꿀 생각이 없나요?

 솔직한 것이 최고니까(웃음). 조심스럽지 못한 발언으로 인해 적을 만드는 경우는 확실히 있어. 나도 모르게 쓸데 없는 말을 해버리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성격이기에 어쩔 수 없어. 단 사생활이나 가족에 대해서 말할 때는 조심하고 있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가족이기에 절대로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거든.

- 가족이라고 하시니 생각난 것인데 부인과 함께 이쪽으로 이사를 오셨다고 하더군요.

 아직 호텔에서 생활하니까 완전히 이사해 온 것은 아니지. 거기에 나는 유리아를 ‘마누라’라고 부르곤 있지만 실은 그녀와 아직 정식으로 결혼한 상태가 아니야. 하지만 함께 살고 있기도 하니 곧 결혼할 생각이야.

- 아스날에 오시자마자 ‘노스 런던 더비’를 경험하셨습니다. 분위기는 어땠나요?

 강렬했지. 서포터의 열기가 벤치까지 전해졌거든. 아스날과 토튼햄의 라이벌 관계는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는 뜨거울지는 생각도 못했어.

- 토튼햄에는 대표팀 동료인 로만 파블류첸코가 있군요.

 힘과 기교를 겸비한 굉장한 공격수지. 지금까지 개인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같은  런던에 살고 있는 얼마 없는 러시아인이니까 근시일 내에 연락해서 만날 생각이야.

- 런던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어떤가요?

 쾌적하게 보내고 있지.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이적을 경험한 적이 없기에 당연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외의 장소에서 사는 것도 처음이야. 하지만 날씨도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고 다른 것이 있다면 지폐가 바뀐 정도이기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대학을 다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17살 때 친구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공업 디자인 대학에 진학했어. 거기를 선택한 이유는 수업도 짧은데다 여자애들이 많았거든(웃음). 처음엔 화학 공학을 전공했는데 제니트에서의 연습시간이 늘어나 그다지 대학에 갈 수 없어서 디자인 학과로 변경했어. 스포티한 옷을 디자인하고 싶었기에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지. 실제로 몇 개인가 디자인해서 그것들은 지금 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 축구 말고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계시군요. 디자인 외에 특기나 취미는 있나요?

 PC게임을 좋아해. 최근엔 특히 [풋볼 매니저]에 빠져있지. 지금까지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잉글랜드 하부 리그의 클럽부터 시작해서 프리미어리그까지 승격시키고 있어. 내가 만든 팀은 아스날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구(웃음)

아버지 없이는 지금의 나도 없다.

- 지난 시즌엔 제니트의 일원으로 UEFA컵에서 우승하였고 유로2008에서도 4강 진출을 이룩하셨습니다. 러시아 축구는 근래 급격한 성장을 거두고 있군요.

 맞어. 그러나 이에 만족해서는 안돼. 러시아 축구 역사는 아직 짧으며 문제점도 많아. 순조롭게 나아가고는 있지만 축구 대국이라고 불리기까지는 더 시간이 걸리겠지.

- 가령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러시아의 축구 클럽은 대부분이 ‘군대적’인 곳이라는 거. 선수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클럽도 많으며 쉬는 날을 거의 주지 않는 클럽도 있어. 그런 점에서 제니트는 획기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외국인 감독이나 코치를 데리고 와서 남들보다 한발 앞서 ‘군대적’인 스타일에서 탈피했거든. UEFA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도 보다 ‘유럽적’인 클럽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해.

- 러시아 대표팀이 성공을 거둔 것도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를 지휘관으로 맞이했기 때문일까요?

 틀림 없이 그건 그래. 거스와 같은 현대적인 감독을 초빙한 것이 러시아 축구협회 최대의 업적이야.

- 히딩크는 어떤 감독인가요?

 선수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멋진 감독이야. 작년 여름 합숙을 할 때 축구협회가 준비한 호텔이 너무도 끔직해서 우리들은 바꾸어 달라고 했지만 협회 측은 들어주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거스에게 이렇게 말했지. ‘이래서는 마치 소비에트다’라고. 그랬더니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협회에 말해서 호텔을 바꾸어 주더군. 뭐 극히 사소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그렇게까지 해 준 감독이 없었기에 굉장히 기뻤지.

- 전술은 어떤가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플레이 하나하나까지 자세하게 지시를 내려 주지. 물론 자세한 것을 여기서 알려 줄 수 없지만(웃음).

- 그 히딩크가 아스날의 라이벌 첼시의 감독에 취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경이지만 거스의 결단은 존중해. 단 다음 시즌에도 첼시의 감독이라면 조금 걱정이야. 러시아 대표팀과의 겸임은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 이야기는 달라집니다만 당신은 부친의 영향을 받아 축구 선수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맞어. 프로가 되지 못했던 아버지는 그 꿈을 나한테 맡겼지. 그런 아버지의 전면적 지원을 받은 덕분에 나는 제니트와 프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어. 아버지 존재 없이 지금의 나는 없었다고 생각해. 그렇기에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굉장히 힘들었지.

- 그럼 동경하는 축구선수는 부친이시겠군요.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10살 때 이혼했지만 그 후에도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스타였지.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어.

- 멋진 에피소드군요. 참고로 아버지 이외에 동경했던 선수는?

 특히 없군. 내 마누라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엄청난 팬이야. 몇 년인가 전에 마누라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호날두의 유니폼을 가져와’라고 하더군. 시합이 끝난 뒤 유니폼을 교환하러 갔는데 그때는 거부하더라구(웃음). 아마 그때 어쩌다 기분이 안 좋았던 모양이야.

- 리그에서 역전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그 호날두가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승산은 있나요?

17p나 벌어져 있기에 굉장히 낮은 것은 확실하지. 하지만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이상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겠어. 나는 유로2008의 내가 피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아스날의 역습과 함께 말이지. 이번 시즌의 리그 제패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다음 시즌에 반드시 최고의 아르샤빈 그리고 최고의 아스날을 보여주겠어.

ps; 이 글은 2009년 3월 12일에 게시된 글입니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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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ro/08/text/200807010003-spnavi.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투우사]가 된 에스파냐


 에스파냐 대표팀은 유로 2008에서 44년 만의 우승을 장식하여 행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그런 한편으로 모순이라고도 여겨지겠지만 이번 대회 최고령 베테랑 감독이자 공로자인 루이스 아라고네스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고 있다.

 RFEF(Real Federación Española de Fútbol, 에스파냐 축구 협회)는 감독의 능력은 높게 평가하지만 대회 시작 전부터 연장 계약은 맺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본인에게 전달하였다고 한다후임에는 2009년 컨페더레이션스 컵과 이어지는 2010년의 월드컵을 대비하여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인 비센테 델 보스케의 취임이 이미 정해져 있다.

 

 감독 교체는 피할 수 없겠지만 2번째 유럽 챔피언이 된 것으로 인해 에스파냐의 풋볼 역사는 새로운 스테이지로 돌입하였다.처음으로 정상에 섰던 것은 1964그러나 20세기 당시의 풋볼은 현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스포츠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그럴 정도로 요즘의 풋볼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에스파냐는 챔피언의 자리를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명백히 이번 대회 최고의 팀이기도 했다.

 8강 이탈리아와의 시합에서 승부차기로 승리한 것을 제외하면, [완전승리]로 정상에 올라섰다유로 예선친선시합 등도 포함,세계의 쟁쟁한 나라들을 상대로결승에서 독일까지 실로 22전 무패를 이어온 것이다결과뿐만이 아닌그 플레이 스타일도 개성적이다다이렉트 패스를 다용하며계속해서 포지션 체인지를 거듭하면서 중반에서 게임을 조립하는 매혹적인 풋볼선수들의 자질덕분인 부분도 있지만그 시원시원한 플레이는 칭찬보다는 악담을 퍼붓는 것을 좋아하는 비평가들까지 다물게 하였다.

 

 페루에서 행해진 2004년 코파 아메리카(남미선수권)에서한 때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끈 것[각주:1]으로 유명한 감독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César Luis Menotti)’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바르셀로나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감독을 맡은 적도 있었기에 에스파냐의 풋볼에 정통하다 할 수 있다메노티는 이때 아라고네스가 대표팀 감독에 취임함에 있어 우선 소가 되고 싶은지투우사가 되고 싶은지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론을 펼쳤다즉 독자적인 전술을 추구한다고 하여도, [라 푸리아 로하(La Furia Roja) – 붉은 분노]라 일컬어지는 에스파냐 대표의 전통적인 시합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도세계적인 무대에서 결과를 남기기 위해서는 탐욕스러움과 불굴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메노티의 의견이 에스파냐 신문에도 게재되자아라고네스는 마드리드의 스포츠 신물을 통해서 배신당한 기분이다고 반발했다필시 이미 감독의 머리 속에는 메노티가 주장하고 있는 듯한 에스파냐 대표팀의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우리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조 예선 패퇴라는 실패로 끝난 2004년 포르투갈 대회에서 4년 후에스파냐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공동 개최된 유로에서 드디어 우승이라는 환희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 해외파와 경험 풍부한 젊은 선수의 존재


 출신지가 마드리드이기에 [오르탈레사(Hortaleza)의 현자]라는 별명을 가진 아라고네스는에스파냐 대표팀에 무엇이 필요한 지를 이해라고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은 물론지금까지 몇 번이나 [8강의 벽]에 막혀온 에스파냐또다시 역사를 반복시킬 수 없다며감독은 조금씩이나마 계단을 올라갔다그런 과정에서 여러가지를 고려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그 가장 상징적인 예가 에스파냐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라울 곤잘레스를 대표팀 멤버에서 제외시킨 결단이었다이는 즉 구티모리엔테스엘게라미첼 살가도 등라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동료들도 소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랜 기간에스파냐 대표팀을 지탱해온 대들보였다더구나 라울은 유로 본선을 앞두고 예전의 광명을 되찾았으며 리가 에스파뇰라의 득점 랭킹 상위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라울을 소집하지 않는 아라고네스에 대해 미디어에서도세간에서도 거센 비판이 일었다거기에 더해 화를 잘 내는 아라고네스의 성격도 비판에 박차를 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휘관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고분고분한’ 선수들을 모아특권 계급도 없이 팀을 단결심 있는 덩어리로 만들어 낸 것이다예전에 라울이 두르고 있던 캡틴 마크는 세계에서도 유수의 GK 이케르 카시야스에게 맡겨져 결과적으로 그것이 맞아 들었다.

 

 그러나 에스파냐 약진의 요인을 생각할 때에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선수들의 경험치 향상이다.

 에스파냐 풋볼은 세계에서 손 꼽히는 리그이며선수를 외국에 수출하게도 되었다특히 세계 최고라 일컬어지는 잉글랜드 프레미어 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선수가 늘어난 것은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평가되어 왔던 에스파냐 대표팀에게 있어서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 세스크(아스날 [잉글랜드 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그 외에도 레이나,아르벨로아사비 알론소(전부 리버풀)등도 팀을 지탱했다거기에 1999년 세계 청소년대회( U-20월드컵우승 멤버인 사비,마르체나카프데빌라, 2003 17세 이하 세계 청소년 선수권( U-17월드컵)의 결승전 멤버인 세스크실바 등젊었을 때부터 국제 경험을 쌓은 선수가 많은 것도 놓칠 수 없다.


트라우마에서의 해방


 이번 대회에서 가장 에스파냐를 힘들게 한 것은 8강 이탈리아였다. 0-0으로 90분을 끝내고연장전 후 승부차기 끝에 4강 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그러나 그 이외의 5시합에서는 챔피언다운 풋볼로 내용과 결과를 동시에 보여 주었다.

 에스파냐는 결코 볼 점유율에서 상대를 압도한 것은 아니지만효과적으로 볼을 간수하고 빠른 패스 돌리기로 공격을 조립했다양 날개인 세르히오 라모스와 카프데빌라중반의 이니에스타사비마르코스 세나실바 그리고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움직임으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든 2톱의 비야와 페르난도 토레스’. 그들이 포지션을 체인지하며 공격에 참가하는 - 보고 있어 즐거운 풋볼이 실현된 것이다.

 아라고네스는 이번 대회의 기본 포메이션을 4-4-2로 결정하였고그때까지의 4-1-4-1은 옵션으로만 사용하였다그러나 1톱에[콰트로 후고네스(Quatro Jugones, 4명의 창조자)]라 불리는 사비세스크이니에스타실바를 두 번째 열에 세우는 포진도 비야의 부상이라는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여도, 4강과 결승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결승에서 에스파냐는 첫 10분간본디의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슈바인슈타이거발락포돌스키클로제 등 독일의 파괴력 있는 공격진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선수들의 플레이는 경직되어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지금까지의 에스파냐가 아니었다.십 수분간 [공부]를 하여에스파냐는 서서히 자신들의 플레이를 되찾은 것이다그리고 전반 33페르난도 토레스의 멋진 골로 인한 1점으로 승자의 칭호를 손에 넣었다.

 

 멋진 풋볼로 승리를 거머쥔 에스파냐는이로 인해 국제대회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깼다델 보스케와 함께 걸어갈 신생 에스파냐는 [8강 트라우마]에 골치를 썩일 일은 없을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대표팀으로 인정받게 된 에스파냐는 적과 황의 유니폼을 입는 것에 대한 약간의 주저도앞으로는 없을 것임에 틀림 없다.

 

 에스파냐에서는 지금까지 풋볼 대표팀이 정상의 무대에 서질 못했다.

 농구 대표팀이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 비원의 첫 우승을 이룩하였고테니스 플레이어인 라파엘 나달이나 F1 드라이버인 페르난도 알론소는 세계라는 무대에서 에스파냐의 이름을 드높였다그러나 드디어 풋볼에도 그 때가 온 것이다그냥 유로에서 우승한 것이 아니다독자적인 스타일개성을 발휘하며 유럽의 왕자로 빛난 것이다.


■ 수준 높았던 이번 대회


 이번 유로는 많은 것을 시사한 대회가 되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퀄리티 즉 질의 변화이다저번 포르투갈 대회에서는 그리스의 첫 우승이라는 놀라움으로 막을 내렸지만시합 수준이 결코 높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4년 후인 이번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는 전혀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뜨거운 열정과 테크닉이 만발하였고고도의 전술로 덧칠해진 시합을 볼 수 있었으며몇 개인가의 서프라이즈도 태어났다마르코  바스턴이 이끈 네덜란드의 [혁명적 풋볼]이 가져다 준 임팩트는 누구나가 찬동할 것이다엥헬라르판 데르 파르트판 페르시스네이더르카윗 등 젊은 재능들이 펼쳤던 스피드감 넘치는 카운터 공격에 이탈리아프랑스도 어찌 해보지 못하고 완패했다.

 

 그 네덜란드를 8강에서 물리친 러시아도 이번 대회 성장을 이룩한 팀 중 하나이다.

 전략가 거스 히딩크가 이끈 젊은 러시아의 플레이는 경제적으로도 비약적인 도약을 거듭하고 있는 러시아의 파워를 그대로 보여준 느낌이 들었다팀의 베스트 플레이어 아르샤빈이라는 뉴 히어로도 탄생하였다또한 스트라이커인 파블류첸코왼쪽 SB인 지르코프(원래는 MF)도 장래성 넘치는 선수이다.

 

 결승에서 패한 독일에는서 과 슈바이슈타이거의 성장이 눈을 크게 치켜 뜨게 만들었다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발락의 존재감키잡이 역인 히츨슈페르거라는 발견도 있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예상보다 빨랐던 포르투갈의 패퇴일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데코’ 등의 재능들과, ‘페페나 히카르두 카르발류’ 등의 수비도 단단한 포르투갈은 우승 후보 중 하나라고 평가되었었다조 예선은 아무 탈 없이 돌파했지만독일 앞에 가지고 있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8강에서 모습을 감췄다.


 체코에는 스타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많지는 않았지만 조직적인 팀이었다하지만 터키에 역전패를 당하여 조 예선을 돌파하지 못했다.


 터키는 그야말로 전 대회의 그리스와 같은 존재였다기적적인 역전극으로 차례차례로 승리하여 상대를 공포에 빠뜨렸다하지만 4강에서는 경고 누적이나 부상으로 결장하는 선수가 속출하여독일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단지 그리스와 다른 점은 그들이 다크호스이기는 했지만 실력도 충분히 겸비한 팀이라는 것이다. ‘니하트나 하미트 알틴톱’, ‘엠레’, ‘메메트 토팔’ 그리고 특히 아르다 투란은 큰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에스파냐의 공로자를 거론해 두고 싶다. 2톱인 비야’(4골로 이번 대회 득점왕), ‘토레스’, 중반의 사비’(최우수 선수에 빛난다), ‘이니에스타’, ‘세나’, 반석인 디펜스 라인그리고 차원이 다른 GK ‘카시야스’. 이탈리아의 부폰과 함께 세계 제일의 수호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1978년 자국 개최 월드컵에서 우승.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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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ro/08/text/200806300011-spnavi.html

저자: 나카타 토오루

■ 발달한 퍼블릭 뷰잉의 역할



 유로는 월드컵과 달리 유럽이라는 한 지역의 대회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은 어디건 땅으로 이어진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자가용, 버스, 열, 비행기 등 서포터에게 있어 이동의 선택기가 풍부하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는 네덜란드 서포터의 기세가 굉장했다.


 처음부터 베른이나 바젤에서의 스타디움 관전을 포기하고, '팬 존'이라고 하는 퍼블릭 뷰잉(Public Viewing[각주:1])에서의 관전을 목적으로 스위스까지 온 것이다. 첫 시합인 이탈리아와의 시합에서 5만 명이라던 네덜란드의 퍼블릭 뷰잉 관전 여행자 수는 8강 러시아와의 시합에서는 15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
축구는 종교'라고 많이들 말한다. 퍼블릭 뷰잉 관전이 유행처럼 된 네덜란드에서는 그 순례와 같은 여행을 보고 '근대 종교'라 새삼 일컬어지게 되었다.


 결승전 당일.
 
빈에는 10만의 독일인과 5만의 에스파냐인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많은 서포터들은 퍼블릭 뷰잉에서 시합을 보았을 것이다. 당초는 스타디움에서 보고 싶어도 티켓이 부족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관전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였던 퍼블릭 뷰잉이 지금은 관전 수단의 주역으로 떠오른 듯한 분위기가 되고 있다.



 시합 개시 6시간 정도 전에 잠깐 퍼블릭 뷰잉에 가보았는데 확실히 재미있었다. 영웅 광장에서 시청 앞ㅅ 광장까지의 넓은 부지 안에 몇 개의 대형 스크린(그 수는 7~8개 정도)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유로 스폰서 기업들이 제공하는 놀이기구들이 있어, 대형 곰 인형들로 구성 된 테이블 축구(이것은 노부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관객석 옆에 있는 미니 축구장에서는 5 on 5, 랩 콘서트 등으로 입장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노점상도 다양했다. 이곳에 오면 오스트리아 요리, 멕시코 요리, 인도 요리, 그레페, 일본식 볶음 국수(きそば), 피시앤드칩스 , 뭐 싸지는 않은 가격이지만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다.


 필자가 처음으로 경험한 월드컵은 1986년 멕시코 대회였는데, 이때는 역에서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길목에 햄버거나 타코를 파는 노점상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빅 이벤트에서는 법적으로 그리 간단히 노점상을 내지 못한다. 그런 역할을 현대에서는 퍼블릭 뷰잉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퍼블릭 뷰잉에서는 독일 서포터가 우세였다. 한편으로 멕시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 온 대회 참가국 이외의 팬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번 대회의 특징은 스타디움의 관중석을 시합하는 팀들의 서포터들이 점거하였기에 중립적인 팬이 굉장히 적었다. 그러나 퍼블릭 뷰잉에 오면 간단히 전 세계에서 온 팬들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피곤하거나 맥주에 취했다면 잔디인 공원에서 누워 자도 좋다. 퍼블릭 뷰잉에서는 선물을 사거나 먹고 자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공짜로 즐길 수 있다. 2시간 동안의 퍼블릭 뷰잉 산책은 굉장히 즐거웠다. 과연 그랬다. 이번 대회는 파워업한 퍼블릭 뷰잉에서의 관전에 사람이 모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에



결승전을 기다리는 에스파냐 서포터

 에스파냐 서포터들은 대성당 주변에 모여 시합 전에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독일 서포터도 있기는 있었지만, 뭐 방해를 하지 않는 정도로 거리를 두고 건너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결전이 시작되기 전의 빈은 독일과 에스파냐 서포터들의 분위기가 달아 오르면서도 싸울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거리에 잔뜩 배치된 경찰관들도 릴렉스한 상태였다.

 오늘 거리는 굉장히 즐거운 분위기군요. 경찰관들도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오늘 밤에는 구급차 같은 것도 필요 없겠네. 벌써부터 결승전이 기다려져요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공항에 가서 마중하고 왔다는 오스트리아의 어느 부인이 빈의 카페에서 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대회는 폴란드와 독일의 시합에서 훌리건 소동이 있기는 하였지만, 서포터들끼리 서로 부딪힌 것이 굉장히 적은 즐거운 대회였다. 서포터가 만든 대회의 분위기. 여기에 필드 위에서 싸우는 선수들도 페어플레이와 상대 선수에 대한 존중으로 응했다.


 이번 대회는 옐로카드(유로2008=122, 유로2004=156), 레드카드(유로2008=3, 유로2004=6)가 크게 줄었다. 선수는 아슬아슬한 플레이를 하였으며 투쟁심도 높았을 터이지만, 악질적인 파울을 범하는 일이 거의 없이 상대 선수를 존중하면서 플레이한 듯했다.


 오심은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심판은 이번 '페어플레이 대회'에 있어서 음지의 주역이었다. 시합이 거칠어질 듯하여도 간단히 카드를 꺼내지 않고 우선은 선수를 신용하며 자제심에 맡겼고, 이제는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때가 되서야 처음으로 카드를 꺼내어 안정시키려 하는 판정이 눈에 띄었다. 카드를 남발하여 선수를 컨트롤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수를 신용하며 시합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8강에서 러시아가 에스파냐에 골을 먹었을 때 조금 거친 태클이 이어졌지만 심판인 데 블레케레(Frank de Bleeckere, 벨기에) 57, 60분에 단 2장의 옐로카드로 시합을 안정시켰다.
 
결승전에서는 에스파냐의 실바가 독일의 포돌스키에게 살짝 박치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최근의 경향으로라면 당한 선수는 오버스러운 연기로 쓰러져서는 심판에게 레드카드를 구걸했을 테지만 포돌스키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다.
 페널티에리어 안에서 강렬한 몸싸움을 벌이더라도 쓰러지지 않고 끈질기게 드리블을 계속 시도한 스트라이커도 많았다. 이것도 당연한 일이었으면 싶었던 플레이다.


 우리들이 매일 보고 있는 축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유로 2008이라는 큰 무대에서 스타 선수들이 당연한 것을 되찾아 주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존경스러웠다.


[티키 타카] 축구로 우승한 에스파냐



 이번 대회에서는 네덜란드가 이탈리아, 프랑스에게 승리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
이 승리는 1984년 프랑스 이후 탄생한 굉장한 팀! 그리고 우승인가?”
 라고들 하였지만 8강에서는 러시아가 네덜란드를 압도하였다. 아르샤빈이라는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였고, 히딩크는 한국, 호주에 이어 러시아에서도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러시아도 대회의 주역에는 되지 못하고 에스파냐의 원 터치 풋볼(One touch football) 앞에 무너져 결승 진출을 실패했다.


 이렇게 유로 2008은 강한 팀을 더욱 강한 팀이 쓰러뜨리는 전개로 진행되어, 결승에서 독일을 물리친 에스파냐가 44년 만에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2006년 월드컵에서 [이것은 티키-타카(tiqui-taca) 풋볼이다!]고 모국 에스파냐에서도 외쳤던 원 터치의 경쾌한 쇼트패스 사커는 이제 온 유럽의 신문에서도 [티키-타카 풋볼]로 소개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작은 몸집을 가진 선수들로 구성된 중반의 패스 사커도 극에 달하면 유럽 챔피언이 될 수 있단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독일과 같이 센터 라인이 부실해도 공격 테크닉이 부족해도 유로 결승까지 갈 수가 있단다'하는, 납득해도 좋은지 나쁜지 조금 고민하게 만드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이걸로 2007-08시즌도 끝.
 그러나 8월이 되면 러시아 vs. 네덜란드의 친선시합. 또한 독일 vs. 러시아의 월드컵 예선 시합도 그리 얼마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며느리도 모르게 인터토토는 벌써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 리그도 조금 있음 개막이다. 유로라는 빅 이벤트가 끝났어도 유럽의 풋볼 중독자들에게 휴식은 없다. 몸은 피곤하고, 지갑도 배고프다고 한다. 머리도 몽롱할 것이다. 그래도 유로에서 좋은 것을 많이 본 충실감이 새로운 시즌을 향한 모티베이션이 되는 것이다.


Ps; [tiqui-taca]가 무슨 뜻인지 아시는 분은 꼭 가르쳐 주시길 바랍니다.

꽤나 많이 잡히긴 하는데아는 외국어라곤 일본어 밖에 없어서… --;


Ps2;네이버 블로그에 올렸을 때 티키-타카에 대해서 알려주신 분이 있습니다.


  1. 야외관람 혹은 길거리 응원..이라 번역할 수 있겠지만 위키피디아에도 실릴 정도면 고유 명사화 한 것 같아서 그냥 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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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ro/08/text/200806270001-spnavi.html

저자: 나카타 토오루


■ 준결승을 향해 꿈을 키운 러시아였지만……


 유로의 열기가 점점 식어 가고 있다.

 대회 개최를 끝낸 베른의 거리를 걷고 있으면, 이미 거기에는 오렌지 색으로 가득 찼던 날들의 열기는 없고 단지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유명한 시계탑의 소리를 듣기 위해 와 있을 뿐이었다. ‘네덜란드의 맹공에 흠뻑 빠졌던 그 나날들은 꿈이었나?’하고 볼을 꼬집고 싶어질 정도이다.

 숙소가 있는 인스부르크의 마을도 유로 관련 상품의 떨이가 시작되었지만 사려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유로가 끝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시켜주고 있다.

 그 한편으로 준결승의 개최도시와 거기에서 싸우게 될 당사국인 4개국의 열기는 고조되었다. 6 26일은 준결승 러시아 vs. 에스파냐를 취재했다.

 

 [845유로[각주:1]].

 준결승 전날 에스파냐의 신문은 원정 응원단을 대대적으로 모집하였다. 개인적으로 빈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신문은 비행기표가 비싼 빈을 피하여 근교의 도시로 가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전수하였다.

 에스파냐의 가전 판매점에서는 빈까지 응원하러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형 텔레비전을 사기 위해서 많이 몰렸다고 한다. 8강에서 패퇴한 네덜란드는 [유로 특수]가 생각했던 만큼 늘어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에스파냐의 [유로 특수]는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도 들끓고 있다. 주역은 히딩크 감독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을 4위로 이끌었을 때, 히딩크의 이름은 [히동구]가 되어 태어난 고향인 파르세벨트는 한국인들로 붐볐다. 2006년 월드컵에서는 히딩크가 이끄는 오스트레일리아 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성공하자, 파르세벨트는 [히딩크 타운]이라 불렸다. 그리고 이번 러시아의 쾌조에 마을 이름은 [히딩크그라드]가 되었다.

 21. 러시아가 8강에서 네덜란드를 쳐부수자 모스크바 거리로 쏟아져 나온 70만 명의 시민들이 승리를 축하했다고 한다. 코치인 코르네프는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고 한다.

 

 모국을 이겨서 네덜란드에 있을 수 없게 된다면 러시아의 패스포트를 가지고 다니면 된다.
 
고 히딩크에게 귀화를 권한 메드베데프 대통령. 태어난 아이의 이름에 [구스(히딩크의 퍼스트 네임’Guus’의 러시아 발음)]라고 이름 붙이는 부모까지 나왔다.

 러시아의 꿈은 점점 커졌다. 그러나 준결승 에스파냐와의 시합에서 결국 러시아 선수들은 심판에게 제발 휘슬을 불어 줘라는 눈빛으로 사정하는 듯한 얼굴을 하면서 걸어 다녔다. 이번 대회, 대건투를 보여준 러시아였지만, 결국 에너지를 전부 다 써버려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0-3. 러시아의 완패였다.

 

■ 재대결로 명확해진 에스파냐와 러시아의 격차


 조 예선 첫 시합에 이어 재대결이 된 준결승.

 시작 15분간은 에스파냐의 페이스였다. 그러나 러시아도 지공으로 에스파냐의 리듬을 무너뜨리고 서서히 찬스를 만들어 갔다. 러시아가 DF에서부터 공격 루트를 찾았던 것은, 어떻게 아르샤빈에게 땅볼로 볼을 전해줄까를 노렸던 것. 이 날, 전반에 아르샤빈에게 볼이 가면 러시아의 공격에는 날카로움이 생겼었다.

 

 그러나 0-0인 상태로 후반에 들어서자, 에스파냐의 일방적인 페이스가 되었다. 이번 대회의 활약으로 주목을 받은 아르샤빈과 FW 파블류첸코는 필드 위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이것도 에스파냐의 DMF 세나가 이탈리아와의 시합에 이어 활약한 덕분일 것이다. 또한 아르샤빈과 파블류첸코는 생애 첫 빅 토너먼트에서 이미 경직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르샤빈에게 아스날이 주목]

 [아르샤빈의 꿈은 바르셀로나]

 [아르샤빈에게 바르셀로나가 흥미를 가졌다]

 [레알 마드리드가 파블류첸코를 노린다]

 

 그리스와의 시합까지는 완전히 대회의 조연이었던 러시아.

 그러나 스웨덴과의 시합에서 승리하면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아르샤빈과 파블류첸코는 네덜란드와의 시합에서의 극적인 승리로 인하여 대회의 주인공과 같은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벨기에의 신문은 [주목을 받은 것이 러시아에 악영향을 줄 지도 모른다]고 경고. 한편 에스파냐 선수들은 이 정도의 보도에는 익숙해져 있다.

 

 에스파냐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피로해 있었을 터이다. 그래도 러시아를 상회하는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프리메라 리가에서 단련된 선수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적으로 빅 리그에서 플레이 하고 있는지, 마이너 리그에서 플레이하고 있는지(러시아는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국내 리그 소속[각주:2])…… 필드 안팎에서 그 차는 컸다.

 

 벤치 멤버의 두께, 시스템 종류에서도 에스파냐는 러시아를 상회하고 있었다. 비야의 부상 퇴장으로 인하여 전반 도중에 4-1-3-2에서 4-1-4-1 포진으로 바꾸었지만, 후반부터 중반의 두터움이 더하여 원 터치 풋볼이 화려하게 수놓아져서는 사비(50), 구이사(73), 실바(82)가 연달아 골을 넣었다. 과연 에스파냐는 독일과의 결승에서도 이 포메이션을 채용할 것일까?

 

■ 러시아에서의 히딩크의 도전은 계속될 것인가?

 

 이리하여 러시아의 진격은 끝났다.

 결과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싸운 방식에도 자긍심을 느낀다는 히딩크 감독. 확실히 그들의 건투는 절찬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건투는 해프닝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였다. 러시아는 앞으로 월드컵이나 유로에서 4, 8강 단골이 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과제이다.

 

 다시 한번 러시아를 축구계의 빅 컨트리로 부활시키는 것. 그것이 나의 도전
 
이라고 히딩크는 말한다.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는 독일과 같은 조인 러시아. 벌써부터 그의 지휘가 기다려지지만, 실은 아직 러시아 축구 협회와 히딩크는 계약 연장에 사인을 하고 있지 않다.

 나와 회장은 악수를 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 히딩크는 말했지만 일찌감치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싶을 것이다.

 

Ps; 환율은 2008-06-27이버 를 이용하였다.

  1. 약 139만원. [본문으로]
  2. 단 한 명의 선수는 이반 사엔코(Ivan Saenko), 분데스리가 FC 뉘른베르크 소속.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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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2008/20080626-1-1.html

저자: 아사다 마사키

사진: 스기야마 타쿠야

< 대회 전의 예상을 뒤엎고 러시아는 대약진. 이도 히딩크 매직인가? >

유로가 유럽 챔피언을 정하는 대회라는 것을 이제 와서 새삼 말할 것까지도 없지만 그것을 취재하는 측의 인간은 전세계에서 다수 모여든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유럽 밖에서 온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굉장히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중국, 타이에서 온 취재진. 현재 아시아에서의 유럽 축구 인기는 굉장히 높기에 그것이 기자단의 숫자로도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 관해서 말하면 몇 명인가의 외국인 기자에게 “2년 전 월드컵이나 저번 유로에 비해서 일본 기자가 적은 것 같군이라고 말하며 이상해 했다. 월드컵 예선과 겹친 것도 있어서인지 기자의 수는 조금 적은 편.
그런 일본보다 더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옆 나라인 한국이다. 월드컵 취재만 보아도 일본이나 중국에 비하면 자국 이외의 시합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는 것이 한국 취재진의 특징. 그런 국가의 특색이 기자의 숫자에도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한국의 기자 수가 갑자기 늘어난 시합이 있다. 한국의 영웅 히딩크가 이끄는 러시아의 시합인 것이다.

한국 스포츠 신문의 통신원으로 일하고 있는 런던 주재의 기자와 어쩌다 열차에서 함께 하여 이야기를 하다 들은 것에 의하면 한국이 가지고 있는 이번 대회의 관심은 [1위 히딩크, 2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3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 전반]이라는 것이었다.


3위는 왜냐고 묻자  박지성의 친구들이니까(웃음)”. 즉 그 외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축구 보도를 모든 미디어가 한가지만 가지고 열을 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좀 빈정대었는데 실제로 한국인 기자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러시아와의 시합이 최대의 관심사라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게 된다. 러시아의 파죽지세를 보며 필시 2002년 월드컵을 떠올려 히딩크를 칭송하면서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듯이 기뻐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히딩크에 심취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한국인 뿐만이 아닐 것 같다.

8강 네덜란드와의 시합에서 하프타임. 스탠드 제일 앞 줄의 기자석에 진을 치고 있던 러시아 기자들이 활발히 카메라를 향한 곳은 이번 대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아르샤빈 등의 선수들이 아닌 로커에서 벤치로 돌아온 지휘관이었다.

히딩크는 이미 러시아 국민들의 마음까지 꽉 잡고서는 놓지 않고 있다. 앞으로의 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역사적인 영웅이 되어버릴 가능성조차 있는 듯 하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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