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umber.bunshun.jp/articles/-/53293
저자: 타나베 마사유키

Are you from Korea?”

맨체스터나 리버풀 거리를 덜레덜레 걷다 보면 지역 축구팬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No. I’m from japan”

라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로 대답하지만 솔직히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프리미어 리그의 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과거에는 일본선수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었다. 이나모토 쥰이치[稲本 潤一]는 풀럼이나 WBA에서 어느 정도 활약했으며 나카타 히데토시[中田 英寿]나 니시자와 아키노리[西澤 明訓]가 볼튼에 있었던 적도 있다. ‘일본의 로이 킨’이라 불리던 토다 카즈유키[戸田 和幸]가 토튼햄에서 뛸 때는 무려 로이 킨에게 도전장까지 내던져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엔 역시 “Are you from Korea?”라고 묻는 케이스 쪽이 압도적으로 많아 졌다. 맨유의 박지성을 필두로 볼튼의 게임메이커로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이청용 그리고 설기현(예전 레딩이나 풀럼에 소속) 등등 머릿수뿐만 아니라 실적에 있어서도 한국인 선수가 일본인 선수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역전된 유럽리그에서 양국 선수의 존재감

라고는 해도 이러한 상황은 옛날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AFC(아시아 축구 연맹)의 기관지에서 편집장을 역임한 적이 있어 아시아 축구 전반의 사정에 정통한 저널리스트 마이클 처치(Michael Church)씨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1세기에 막 들어섰을 즈음에는 유럽에서도 일본인 선수가 상승세였다. 나카타 히데토시는 세리에 A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었으며, 오노 신지[小野 伸二]는 페예노르트에서 UEFA 컵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외에도 타카하라 나오야스[高原 直泰]나 이나모토 쥰이치도 유럽 클럽에서 데리고 가려는 곳이 많았다. 셀틱에 있던 나카무라 슌스케[中村 俊輔]가 4년 전에 유럽 챔피언스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을 넣은 것도 유럽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요 2년간은 완전히 한국과 일본이 역전되었다. 양국은 남아공 월드컵 성적도 호각이었으며 일본은 FIFA 랭킹에서 한국보다도 상위에 있다. 하지만 ‘유럽파’의 존재감에 관해서는 한국 쪽이 일본인 선수를 완전히 제친 것은 틀림이 없다”

너무도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제2의 나카타 히데토시’의 부재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떠오르는 것이 ‘나카타 히데토시 후계자의 부재’라는 문제다.

한국의 경우 박지성이 일종의 ‘쇼 케이스(견본품)’로 후진들에게 계속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 나카무라 슌스케가 한때 주목을 모으거나, 마츠이 다이스케[松井 大輔]가 프랑스 리그에서 새로운 성장의 방법(하위 리그에서 팀과 함께 성장해 가는 시도)를 제시했지만, 나카타 히데토시가 은퇴한 뒤로는 일본인 선수의 높은 실력을 지속적으로 어필해 주는 광고탑이 없었다.

이 문제는 ‘히딩크와 걸맞은 후원자의 부재’라는 사실과도 이어진다.

박지성의 경우 2002 한일월드컵 종료 후 PSV의 감독에 취임한 히딩크의 ‘애제자’가 되어 유럽에 건너갔다. 박지성은 히딩크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챔피언스 리그 등에서 활약해 마침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 선수의 경우 방제와 같은 친일 감독을 제외하고는 유럽진출에 후원사격을 해 주는 후견인이 없었다. 그걸로 그치지 않고 이제 방제는 한국인 선수의 약진을 인정하기까지 한다.

“한국인 선수는 하나의 위업을 이루었다. 유럽 특히 프리미어 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아시아 선수는 거의 없었지만 한국인 선수는 아주 순조롭게 적응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박지성은 팀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하드워커이지만 뛰어난 기술의 소유자이기도 하며 중요한 국면에서 골을 넣어왔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아스날)과의 시합에서도 그랬다.”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는 일본이 한국을 리드하고 있었지만…

한국선수가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유럽진출에 가속시켰던 것과는 반대로 유럽에서 일본인 선수는 서서히 존재감을 잃게 되었는데, 이 변화는 대표팀 멤버의 구성에서도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점에서 유럽파의 머릿수는 4:2로 일본대표가 더 많았다.

일본대표 : 카와구치 요시카츠[川口 能活, 포츠머스], 나카타 히데토시(파르마), 이나모토 쥰이치(아스날), 오노 신지(페예노르트)

한국대표 : 안정환(페루자), 설기현(안더레흐트)

남아공 월드컵대회 직전에는 압도적인 차이로 벌어졌다.

그러나 남아공 월드컵대회 개막전 시점에서는 한국대표가 6명의 유럽파와 3명의 해외파(유럽 이외의 리그)를 거느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대표의 유럽파는 4명뿐. 더구나 일본대표는 유럽을 제외한 해외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선수가 없었다.

한국-유럽파 : 차두리(프라이부르크), 김남일(톰 톰스크),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기성용(셀틱), 이청용(볼튼), 박주영(모나코)

한국-해외파 : 이영표(알 히랄), 이정수(카시마), 김보경(오이타)

일본 : 마츠이 다이스케(그르노블), 하세베 마코토[長谷部 誠=볼프스부르크), 혼다 케이스케[本田 圭佑=CSKA모스크바)

한국은 일본과는 다르게 복수의 루트로 유럽에 진출 중!

더욱이 한국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루트로 유럽에 진출한 점이다.

한국 선수의 경우 네덜란드 리그에 더해 프랑스 리그나 스코틀랜드 리그 등도 유럽으로의 교두보로 정착. 예전 나카무라 슌스케와 미즈노 코우키[水野 晃樹]가 소속해 있던 셀틱은 2명의 한국인을 거느린 클럽으로 변했다. 또한 기본적으로 분데스리그를 거쳐야 한다는 인식[각주:1]이 없어진 것이나 중동 클럽까지도 이적 팀에 포함되는 것도 일본과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다시 크게 바뀌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10월12일 서울에서의 한일전은 어째서 중요한 것인가?

유럽 축구계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존재감은 근래 확실히 역전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다시 크게 변하고 있는 중이다.

남아공 월드컵 종료 후 일본 대표팀 클래스에서는 카와시마 에이지[川島 永嗣], 나가토모 유우토[長友 佑都], 우치다 [아츠토[内田 篤人], 아베 유우키[阿部 勇樹], 카가와 신지[香川 真司], 야노 키쇼우[矢野 貴章], 마키 세이이치로우[巻 誠一郎] 등의 멤버가 유럽으로 건너갔다. 하세베나 마츠이, 혼다나 모리모토[森本]와 함께 이국에서 절차탁마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겁다. 유럽파의 머릿수가 점하는 비율은 대표팀의 힘을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모든 유럽파에게는 일본대표의 저력을 올리는 것은 물론 ‘제2의 나카타 히데토시’로서 후진의 J리거를 위해 길을 개척하는 것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10월12일 서울에서 열리는 친선시합은 중요하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과 마찬가지로 일본대표도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아래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말하자면 이번 한일전은 일본대표팀에게 있어 전열을 정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유럽에서까지 격렬하게 맞붙고 있는 최대의 라이벌에게 이 즈음해서 확실히 승리를 거둔다는 의미는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닐까?

  1. 과거에 김주성, 황선홍, 이동국 등이 독일에 간 것을 말하는 듯 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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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910/spain/text/200908090003-spnavi.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2억 5000만 유로를 투자한 레알 마드리드

Xabi Alonso, Clint Dempsey  1990년대 초반, 토리노의 상징이었던 지안루이지 렌티니(Gianluigi Lentini(en))를 밀란이 돈을 쏟아 부으며 탈취하자 엄청난 비난이 일었다. 당시로써는 세계최고인 2150만 달러가 투자되었다고 하자 로마교황청까지 나서 축구선수 한 명에게 그렇게 막대한 돈을 쓰는 것에 부정적인 성명을 표할 정도였다.

 지금에 와서 보면 1992년의 사건은 애들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로부터 17년. 올 여름 레알 마드리드는 21세기 초반의 영광스런 시대로 되돌아가고자, 두 번째로 정권을 잡은 플로렌티노 페레스와 함께 유례가 없었던 돈을 쏟아 붙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 벤제마, 라울 알비올, 아르벨로아, 사비 알론소… ‘흰 거인(레알 마드리드의 애칭)’이 소비한 액수는 밀란이 렌티니에게 투자한 돈의 10배 이상 - 2억 5000만 유로(약 445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들 한다.

2000~06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을 역임했던 페레스는 약 2개월 전 선거를 치르지 않고 회장 자리에 다시 앉자마자 실추된 명문팀의 이미지를 부활시키겠다고 선언했다. 2003년 이후 특히 라몬 칼데론 회장시대의 레알 마드리드는 자국 리그에서 우승을 거두긴 했지만, 유럽무대에서는 라이벌인 바르셀로나에게 엄청 뒤쳐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레스는 예전 [은하계군단]라 불렸던 스타선수들이 즐비한 팀을 재현하고자 계속해서 빅 네임을 획득하였다.

■ 플라티니와 방제의 비판

 그런 레알 마드리드를 보고 유럽 각국에서 서서히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비난의 급선봉은 UEFA 회장인 미셸 플라티니와 아스날의 아르센 방제라는 두 프랑스인이었다. 후자는 레알 마드리드가 새로운 지휘관으로 데려오려 노력한 인물이었지만, 결국 지난 시즌까지 비야레알를 이끌던 칠레의 마누엘 페예그리니가 감독에 취임하였다.

 플라티니와 방제가 지적하는 것은 축구 이적시장에 끼친 클럽간 불균형이다. 더구나 지금은 전세계를 휩쓴 경제위기가 한창이어서 거리에는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흘러 넘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거기에 더해 일부 선수 이적료의 급격한 상승이 다른 선수들의 가치까지 필요이상으로 높일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다.

 방제는 요 몇 일전 높은 가격으로 스타선수들을 사 모으는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에 대해 ‘재정 도핑’이라며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하지만 반대로 어린 선수를 쓸어 모으는 아스날의 선수획득 방식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스날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후진국에서 어린 선수를 데리고 와서 팀의 유스 팀에서 키운다. 그렇게 ‘런던출신’의 선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르셀로나 또한 칸테라(하부조직) 중시 정책을 관철하는 팀이다. 하지만 같은 유스 출신이라도 아스날보다 자국선수의 비율이 높아 유소년일 때부터 ‘바르셀로나 외길’이라는 선수도 드물지 않다. 클럽 전체의 스타일이 확립되어 있어 아무리 어린 선수라도 같은 시합 방식에서 뛰기에 톱 팀에 오르더라도 혼란을 겪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빅 클럽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바르셀로나도 이번 오프에서 이브라히모비치 획득에 큰 돈을 쏟아 부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새로운 시즌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레알 마드리드의 테크니컬 디렉터와 회장 보좌를 맡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발다노는 1974년~98년까지 FIFA 회장을 역임했던 주앙 아벨란제가 진행시킨 ‘축구의 상품화’를 비판해 왔다. 하지만 지금 발다노는 레알 마드리드의 막대한 지출을 정당화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에는 투자할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이 있으며 그것을 회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그것은 그야말로 80년대 아벨란제가 주장해 왔던 이론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확실히 클럽에게 있어 선수의 이적료나 텔레비전 방영권에 의한 수입은 생명선이다. 에스파냐에서는 텔레비전 방영권에 대해서 각 클럽 별로 단독계약을 할 수 있기에, 각자 그 가격을 높이고자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그 때문에 프리사와 미디어프로라는 두 텔레비전 회사간에 방영권 쟁탈전이 펼쳐져 방영권료의 급격한 상승을 불러일으켰다. 레알 마드리드는 2006년에 미디어프로 사와 2012-13시즌까지 7시즌 총액 11억 유로라는 파격적인 계약을 맺었다.

Cristiano Ronaldo practices for big game with DC United in Largo Maryland

 이렇게 투자를 했기에 단순히 생각한다면 레알 마드리드가 지난 시즌보다 승점을 더 쌓을 확률이 늘어날 터이다. 또한 그럼과 동시에 지금까지와 같은 실패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998년부터 2002년에 걸쳐 5시즌에 3번 타이틀을 획득한 이래, 5시즌 연속으로 결승 토너먼트 1회전에서 패퇴하고 있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리버풀에게 2시합 합계 0-5로 완패. 당시 감독 후안데 라모스는 시합 후 “이것이 현 레알 마드리드의 실력이다”고 패배선언을 했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후안데 라모스이지만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종반까지 리가 1위인 바르셀로나를 몰아 부치고 있었다. 하지만 34라운드 홈에서 펼쳐진 클라시코에서 라이벌에게 2-6으로 대패함으로써 우승과 멀어졌다. 그 이전에 레알 마드리드가 연승을 이어가고 있었다고는 해도 대부분 살얼음 위를 지나가는 듯한 승리로 예전의 강함은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오프의 화제를 독점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가 2009-10시즌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거액 투자에 대해서는 찬불양론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잡생각할 틈이 없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카카는 이미 흰 유니폼을 걸친 것이다. 단지 이만큼의 보강을 감행한 만큼 레알 마드리드의 어깨에 걸쳐진 압박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그들이 어떠한 축구를 할지,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결과를 남길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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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wcup/10southafrica/text/200903270011-spnavi.html
저자: 오자와 이치로우

 
Football - Villarreal v Arsenal UEFA Champions League Quarter Final First Leg

 로베르 피레와의 인터뷰를 비야레알의 담당자에게 신청했을 때, ‘프랑스 대표팀을 주제로 인터뷰하겠습니다’고 전하였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던 듯 인터뷰 시작부터 한숨과 함께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말만을 연발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걱정했지만 과연 피레. 2010년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고전하고 있는 프랑스 대표팀이나 자신의 대표팀 낙선의 경위 그리고 지금은 터부시되고 있는 레몽 도메네크 대표팀 감독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 피레가 숨김없는 본심을 말해 주었다. 성실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프랑스 대표팀이 안고 있는 문제는 선수의 질이나 전술, 시스템 이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인터뷰에서 피레는 한 번도 ‘도메네크’라는 이름을 직접 말하지 않았다. ‘그 양반’이라는 호칭으로 일관하는 것만 보아도 피레가 얼마나 도메네크를 싫어하는 지를 잘 알 수 있었다. 피레의 의견이 100%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확실히 원망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피레만큼이나 온화하고 성실한 신사가 이렇게까지 특정인을 비판하기에 정말 부당한 취급을 받아 왔던 듯하다. 리투아니아와의 중요한 연전을 앞두고 복잡한 기분으로 현재의 프랑스 대표팀을 바라보고 있는 피레의 적나라한 인터뷰를 전하고자 한다(취재일 3월 25일)

나 역시도 도메네크 해임을 바라는 1인

- 오늘은 프랑스 대표팀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듣고 싶습니다. 우선은 요 최근 프랑스 대표팀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큰 한숨을 쉬며) 프랑스 대표팀의 문제는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그 양반(도메네크 감독)’. 하지만 그 양반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군…

- 그래도 프랑스 대표팀은 신경이 쓰이시죠?

물론.  프랑스 대표팀이 항상 승리하길 바라며 다음 월드컵 출전권을 될 수 있는 한 빨리 획득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 양반을 빼고 출전권을 획득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겠지.

- [레퀴프]가 행한 설문조사에서는 58%의 프랑스 국민이 월드컵 출전을 비관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메네크 감독의 해임을 희망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프랑스에서는 높은 듯합니다만

나 역시도 해임을 바라는 1인이야. 하지만 프랑스 대표팀이 져서는 안 되기에 복잡한 심경이지. 내가 그 양반의 해임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그 양반도 알고 있으며 나 역시도 여기서 당당하게 말하겠어.

- 프랑스 대표팀은 굉장히 예전부터 세대교체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선수를 바꿀 필요는 없어.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감독이야.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08년의) 유로에서 1승도 하지 못하고 조 예선 패퇴를 한 프랑스가 여전히 같은 감독을 데리고 있다는 거야. 에스파냐처럼 (우승이라는) 성공을 거두면서도 감독을 교체한 나라도 있는데 말이지. 정말 믿을 수 없다니까…

데샹은 다음 대표팀 감독을 노리고 있다.

- 또 테마가 되돌아 왔군요(웃음). 그렇다면 감독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만 가령 1998년 자국 개최의 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때도 프랑스 대표팀의 에메 자케 감독은 강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감독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는 그 당시와 지금은 같은 상황인가요?

확실히 비슷한 점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04년에 그 양반이 취임한 뒤부터 무엇을 손에 넣었지? 자케는 확실히  결과를 남겼지만 그 양반은 아무 것도 이루질 못했어. 독일 월드컵에서 준우승했다고는 해도 그건 지단이 있었기 때문이야. 이렇게까지 결과를 남기지 못하였고 유로에서 추태를 범한 감독을 아직까지 해임하지 않고 있다니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니까.

- 어째서 프랑스 축구 협회는 유로가 끝난 타이밍에서 도메네크 감독을 해임하지 않았을까요?

몰라. 나 역시도 듣고 싶을 정도야.

- 그렇다면 도메네크 감독이 해임되었다고 치고 다음 대표팀 감독은 누가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방제가 베스트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여전히 클럽에서 감독하는 것을 바라고 있어. 뭐 감독 후보로서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그 양반보다 틀림없이 더 잘하겠지.

- 이야기가 조금 샙니다만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후보인 프로렌티노 페레스 씨가 방제에게 칸테라(하부조직)의 디렉터 취임을 요청했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방제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는 아스날에서 감독 겸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어. 그에게 축구는 정열이며 인생. 때문에 매일매일 클럽의 감독으로서 연습장에 가는 것, 선수와 얼굴 맞대는 것을 바라고 있지. 때문에 현단계에서는 만약 마드리드에게 칸테라 디렉터 취임 요청을 받더라도 거부하겠지. 또한 한 달에 몇 일정도 밖에 선수와 얼굴을 맞대지 못하는 대표팀 감독도 아직 안 할 거라 생각해.

- 당신과 대표팀에서 동료였던 데샹이나 블랑도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고 있죠?

그들은 굉장히 우수한 감독이야. 각각 선수로서도 성공하였으며 감독으로서도 젊지만 성공하고 있어. 블랑은 지금 보르도에서 감독을 하고 있지만 데샹은 다음 대표팀 감독을 노리고 있지. 확실히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야 상태야

■ 프랑스의 심볼은 아직 앙리

- 지금은 프랑스 대표팀의 얼굴이 된 리베리(바이에른)에 대해 평가해 주세요. 요 전날 지단이 ‘리베리는 현시점에서 메시(바르셀로나)보다 위다’는 식의 발언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그와 같은 의견입니까?

리베리는 정말 좋은 선수로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 단지 나는 메시보다 위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시점이지만 현시점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선수가 세 명 있지.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유), 이브라히모비치(인테르나치오날레)다.
FW로서의 능력을 보았을 때 이브라히모비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 빠르기, 신체능력, 높이, 결정력. 어느 요소를 꼽던 세계 최고다
.

- 지금의 프랑스 대표팀은 ‘리베리의 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지. 지금의 프랑스 대표팀의 심볼은 아직 앙리(바르셀로나)다. 나에게 있어 현재 프랑스 대표팀 최고의 선수는 앙리야.

- 지난 시즌은 노쇠했다는 지적을 받은 앙리입니다만 올 시즌은 바르셀로나에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친구인 앙리의 활약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굉장히 기쁘지. 지난 시즌은 바르셀로나의 축구에 적응하는데 고생했지만 올 시즌은 누구도 그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아. 비야레알하고 할 때만 제외하고 지금 상태를 유지하며 많은 골을 넣기 바래.

- 그 앙리의 후계자로서 평가가 높은 벤제마(리옹)에 대해서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팬이나 미디어의 기대가 너무 높아 지금은 그에게 있어 어려운 시기가 아닐까? 단 몇 시합이라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곧바로 ‘역시 대단한 선수는 아니야’라는 비판을 받으니까. 우리는 조금 참을성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어. 때문에 대표팀에서 앙리가 팀을 이끌고 있는 현 상황은 벤제마에게 있어서도 좋다고 생각해.

- 요 최근 항상 벤제마의 이적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만 프랑스에 1년 더 있는 편이 좋을까요? 아니면 올 여름이 빅 클럽으로 이적할 타이밍일까요.

내 개인적으로는 1년 더 프랑스에서 플레이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늦건 빠르건 그는 빅 클럽에서 플레이 할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선수야. 아직 어리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지.

벌금을 내더라도 지금의 대표팀은 거부한다.

- 이번에 프랑스는 세르비아, 리투아니아,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페로 제도와 같은 조로 월드컵 예선을 치르고 있습니다. 최대 라이벌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역시 지금 1위인 세르비아겠지. 물론 프랑스보다 위에 있는 리투아니아 그리고 (08년의) 유로 본선(의 조 예선)에서 싸운 루마니아도 조심할 필요가 있어.

- 프랑스 대표팀 복귀에 대한 생각은 아직 있습니까? 가령 에스파냐에서는 라울(레알 마드리드)의 대표팀 복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라울도 역시 ‘한 시합이라도 좋으니까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근데 감독은?

- 도메네크 감독이 해임될 가능성도 있으니까(웃음). 가령 이번 리투아니아와의 연전[각주:1]에서 연패라도 한다면 필시 해임이겠죠?

거듭 말하지만 프랑스가 지기를 바라지 않으며 그 양반이 있는 한 내가 대표팀에 복귀할 가능성은 제로다. 만약 그 양반에게 호출되는 일이 있더라도 거부야.  만약 대표 거부로 나나 비야레알이 벌금을 내게 되더라도 나는 벌금을 내고 여기에 남겠어

- 어째서 그렇게까지 도메네크 감독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버렸나요?

그것은 그 양반에게 듣는 게 빠를 거야.

- 도메네크 감독에게 소집된 적은 있었죠?

그가 U-20 프랑스 대표팀 감독이었을 때도, (96년의) 아틀란타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할 때도 소집되어 플레이 했지. 아마 그 양반 밑에서 총 40시합 정도 뛴 것 같군. 그랬던 것이 (2004년 7월에) A대표팀 감독이 되자마자 갑자기 부르지 않더군(*편집부 주=도메네크 감독 취임 직후는 소집되었으면 2004년 10월 이후 소집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양반이 변했다는 거야.

조국 프랑스를 위해서라면…

- 도메네크 감독이 점성술을 이용하여 선수 선발을 한다는 것은 정말입니까? 당신이나 지윌리(파리 생제르망), 트레제게(유벤투스) 등 도메네크 감독이 자신과 사이가 안 좋은 선수를 뽑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개인적으로는 상상합니다만?

아니 정말이야. 나는 전갈자리(10월 29일생)으로 ‘전갈자리의 인간은 그룹 내의 규율을 어지럽히며 팀 안에 여러 명 있으면 서로 싸우다 죽는다’고 설명하더군.

- 실제로 도메네크 감독이 당신에게 그렇게 설명했나요?

직접 설명을 받지는 않았어. 하지만 그 양반은 선수를 존중할 줄 모르는 감독이기에 그러한 말을 진짜로 말했다고 하더라도 놀랍지 않아.

- 프랑스에서는 당신이 도메네크 감독의 애인 에스텔 데니[각주:2]와 관계를 맺은 것이 대표팀 낙선의 이유라고들 합니다만?

그건 정말 엉터리다.

- 지윌리는 자서전에서 그녀와 E-메일 교환을 한 것이 대표팀 낙선으로 이어졌다고 썼더군요.

그건 모르겠다. 단 그 양반은 지윌리 뿐만 아니라 아넬카(첼시), 트레제게, 멕세(로마), 실베스트르(아스날) 등 많은 선수와 트러블이 있어. 그 양반의 선수 선발 기준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해.

- 유로에서 프랑스 대표팀 패퇴가 결정된 직후 도메네크 감독은 애인에게 프러포즈했습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그 양반이 무엇을 하건 더 이상 놀랍지 않으니까(웃음)

- 다시 한 번 묻습니다만 도메네크 감독이 해임 혹은 사임한 다음 차기 감독이 당신을 소집했을 경우에는 대표팀에 복귀할 생각이십니까?

나도 이제 35살이니까 누가 감독이 되건 소집될 가능성이 낮아. 하지만 감독이 진정 나를 필요로 하며 동료들도 환영해 준다면 돌아갈 생각은 있어. 그것이 조국 프랑스를 위해서라면 말이지.

  1. 홈 & 어웨이에서 각각 1-0으로 승. [본문으로]
  2. 프랑스 M6 방송국의 아나운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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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ocn.ne.jp/sports/soccer/soccer090312_2_1.html
인터뷰어: 인포스트라다 헤이스터스

 위기에 빠진 아스날을 구원하기 위해 안드레이 아르샤빈은 런던에 강림했다.
 구세주로 기대 받고 있는 ‘러시아의 마라도나’는 명문 클럽을 궁지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시작으로 테오 월콧이나 콜로 투레, 미카엘 실베스트르 등 주력 선수의 이어지는 부상으로 인해 아스날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공격의 중심 파브레가스를 잃은 공격진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능이 떨어져 심각한 득점력 부족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윌리엄 갈라스의 주장 박탈이나 투레 등의 부상 등 문제가 산더미 같은 수비진도 리그 6위인 25실점으로 공격진의 부진을 메워 주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팀은 1위와 17p차이며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밖인 5위로 부진.

 궁지로 몰린 지휘관 아르센 방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올 겨울 러시아에서 한 선수를 불러들였다. 지난 시즌 신흥 제니트를 UEFA 컵 우승으로 이끌고 유로 2008에서는 러시아 대표팀의 리더로써 4강 진출에 공헌한 [러시아의 마라도나]를. “시야가 넓고 현명하며 패스가 뛰어나 임기응변에 능하다”. 이렇게 방제에게 평가 받는 러시아의 사령탑에게 주목이 쏠리고 있다. 4위 애스턴빌라와의 6p라는 승점 차는 결코 쉽게 뒤집을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아스날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 런던에 강림한 작은 몸집의 러시아인 안드레이 아르샤빈은 이 위기 상황하에서도 자신이 넘친다. ‘그야말로 내가 바라 마지 않던 상황’이라고.

방제의 인간성이나 지도방침에 끌렸다.

- 아스날에 입단한지 1개월이 지났습니다. 새삼스럽겠지만 이번 이적을 되돌아 본 감상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오케이. 당신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제니트 이외의 클럽에서 플레이하는게 이번이 처음이야. 때문에 이적할 때는 뭐든 신선했고 여러 가지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았어. 단지 이렇게 복잡한 것이라면 다시는 이적하고 싶지 않군(웃음). 나는 꽤 냉정하고 침착한 성격이지만 이번엔 정말 조바심이 나더군.

- 그건 교섭이 질질 끌렸기 때문인가요?

 맞어. 내 마음은 확실히 정해놓았었기 때문에 곧바로 입단이 정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교섭이 난항에 빠졌어. 당시엔 머리 속에 계속 불안이라는 것이 있었지. 어쨌든 침착하게 있을  수가 없었어.

- 이적이 무사히 성립되었을 때의 솔직한 기분은?

 최고로 기뻤어. 이 이적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 아스날 행을 결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무엇보다 방제 감독 아래서 플레이하고 싶었지. 그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의 인간성이나 지도방침에 큰 매력을 느꼈어. 나 뿐만이 아니라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명장이라 불리는 방제와 함께 하고 싶어할 거라 생각해.

- 아스날에는 어떠한 인상을 가지고 있나요?

수많은 어린 재능들과 위대한 감독이 함께 있는 세계 톱 클래스의 클럽으로 아름답게 이기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는 그야말로 나에게 딱 알맞은 팀이지. 거기에 1930년대에 리그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을 뿐만이 아니라(편집부 주:1933~35년),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빅4]의 하나로 꼽히는 명문 클럽이기도 해. 이런 멋진 곳에서 도전할 수 있다니 축구를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야.

- 하지만 올 시즌 아스날은 부진합니다. 리그에서는 5위로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출전조차 위험한 상황이죠.

 그렇기에 더욱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내가 제니트에서 나온 이유는 러시아에서 할 건 다 해보았기에 더 이상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야. 리그와 UEFA컵에서 우승했기에 목표를 잃었지. 그러던 차에 아스날 이적이야기가 나왔어. 빅클럽에서 플레이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문 팀을 재건하는 것, 거기에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라는 세계 최고의 명예… 여기에는 많은 목표가 있어. 정말 내가 바라 마지 않던 상황이야.

- 지난 여름 바르셀로나로의 이적 소문이 있었습니다만 그 이야기가 흐지부지된 것에 후회는 없습니까?

 전혀 없어. 확실히 여름에 교섭이 성립되었다면 나는 에스파냐로 갔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때는 빅클럽이라면 어디건 좋았어. 밀란이건 첼시건 나를 진심으로 필요로 해준다면 기쁜 마음으로 이적했을 거야.

- 그런데 이적료의 차이가 너무 커 결렬되었습니다.

 설마 유로2008에서 활약한 것이 이적의 ‘장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그 대회로 인해 내 몸값은 엄청 뛰어올랐으니까. 바르셀로나로의 이야기가 백지로 되었을 때는 솔직히 실망했지만 뭐 그건 지나간 일이니까. 여름에 이적이 정해졌다면 나는 아스날의 일원이 되지 못했을 것이기에 지금은 깐깐하게 교섭을 해준 제니트에 오히려 고마운 기분이 들어.

서포터의 열기가 벤치까지 전해진다.

- 데뷔 전에서는 오른쪽 측면에 기용되었습니다만 앞으로도 같은 포지션에서 뛰게 될까요?

 감독과 확실히 이야기를 나눈 것이 아니기에 아직 모르겠지만 ‘공격적인 포지션에서 쓰겠다’는 말은 들었지. 물론 나 자신은 최전방이건 왼쪽 측면이건 아무 문제없이 잘 할 자신이 있어.

- 아스날의 전술에 익숙해질 것 같나요?

 그럭저럭. 제니트와 아스날의 축구는 닮은 구석이 많으니까. 양 팀 다 창조적인 선수를 축으로 속도감 넘치는 패스 축구를 전개해. 그렇기에 그다지 어려움 없이 플레이 할 수 있어.

- 팀 동료들과는 친해지셨나요?

 그냥 모두와 안면만 익힌 상태로 인사밖에 안 한 선수도 많기에 아직 사이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 나는 이제 27살인데 아스날에서는 ‘나이 먹은 그룹’에 속하기에 모두들 조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웃음). 뭐 서로 어른이니까 곧 친해지겠지.

- 당신은 예전부터 너무나 솔직한 발언으로 때때로 물의를 빚었습니다. 제니트 시대에는 운영진을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만 앞으로도 그 스타일은 바꿀 생각이 없나요?

 솔직한 것이 최고니까(웃음). 조심스럽지 못한 발언으로 인해 적을 만드는 경우는 확실히 있어. 나도 모르게 쓸데 없는 말을 해버리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성격이기에 어쩔 수 없어. 단 사생활이나 가족에 대해서 말할 때는 조심하고 있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가족이기에 절대로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거든.

- 가족이라고 하시니 생각난 것인데 부인과 함께 이쪽으로 이사를 오셨다고 하더군요.

 아직 호텔에서 생활하니까 완전히 이사해 온 것은 아니지. 거기에 나는 유리아를 ‘마누라’라고 부르곤 있지만 실은 그녀와 아직 정식으로 결혼한 상태가 아니야. 하지만 함께 살고 있기도 하니 곧 결혼할 생각이야.

- 아스날에 오시자마자 ‘노스 런던 더비’를 경험하셨습니다. 분위기는 어땠나요?

 강렬했지. 서포터의 열기가 벤치까지 전해졌거든. 아스날과 토튼햄의 라이벌 관계는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는 뜨거울지는 생각도 못했어.

- 토튼햄에는 대표팀 동료인 로만 파블류첸코가 있군요.

 힘과 기교를 겸비한 굉장한 공격수지. 지금까지 개인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같은  런던에 살고 있는 얼마 없는 러시아인이니까 근시일 내에 연락해서 만날 생각이야.

- 런던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어떤가요?

 쾌적하게 보내고 있지.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이적을 경험한 적이 없기에 당연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외의 장소에서 사는 것도 처음이야. 하지만 날씨도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고 다른 것이 있다면 지폐가 바뀐 정도이기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대학을 다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17살 때 친구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공업 디자인 대학에 진학했어. 거기를 선택한 이유는 수업도 짧은데다 여자애들이 많았거든(웃음). 처음엔 화학 공학을 전공했는데 제니트에서의 연습시간이 늘어나 그다지 대학에 갈 수 없어서 디자인 학과로 변경했어. 스포티한 옷을 디자인하고 싶었기에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지. 실제로 몇 개인가 디자인해서 그것들은 지금 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 축구 말고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계시군요. 디자인 외에 특기나 취미는 있나요?

 PC게임을 좋아해. 최근엔 특히 [풋볼 매니저]에 빠져있지. 지금까지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잉글랜드 하부 리그의 클럽부터 시작해서 프리미어리그까지 승격시키고 있어. 내가 만든 팀은 아스날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구(웃음)

아버지 없이는 지금의 나도 없다.

- 지난 시즌엔 제니트의 일원으로 UEFA컵에서 우승하였고 유로2008에서도 4강 진출을 이룩하셨습니다. 러시아 축구는 근래 급격한 성장을 거두고 있군요.

 맞어. 그러나 이에 만족해서는 안돼. 러시아 축구 역사는 아직 짧으며 문제점도 많아. 순조롭게 나아가고는 있지만 축구 대국이라고 불리기까지는 더 시간이 걸리겠지.

- 가령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러시아의 축구 클럽은 대부분이 ‘군대적’인 곳이라는 거. 선수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클럽도 많으며 쉬는 날을 거의 주지 않는 클럽도 있어. 그런 점에서 제니트는 획기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외국인 감독이나 코치를 데리고 와서 남들보다 한발 앞서 ‘군대적’인 스타일에서 탈피했거든. UEFA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도 보다 ‘유럽적’인 클럽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해.

- 러시아 대표팀이 성공을 거둔 것도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를 지휘관으로 맞이했기 때문일까요?

 틀림 없이 그건 그래. 거스와 같은 현대적인 감독을 초빙한 것이 러시아 축구협회 최대의 업적이야.

- 히딩크는 어떤 감독인가요?

 선수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멋진 감독이야. 작년 여름 합숙을 할 때 축구협회가 준비한 호텔이 너무도 끔직해서 우리들은 바꾸어 달라고 했지만 협회 측은 들어주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거스에게 이렇게 말했지. ‘이래서는 마치 소비에트다’라고. 그랬더니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협회에 말해서 호텔을 바꾸어 주더군. 뭐 극히 사소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그렇게까지 해 준 감독이 없었기에 굉장히 기뻤지.

- 전술은 어떤가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플레이 하나하나까지 자세하게 지시를 내려 주지. 물론 자세한 것을 여기서 알려 줄 수 없지만(웃음).

- 그 히딩크가 아스날의 라이벌 첼시의 감독에 취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경이지만 거스의 결단은 존중해. 단 다음 시즌에도 첼시의 감독이라면 조금 걱정이야. 러시아 대표팀과의 겸임은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 이야기는 달라집니다만 당신은 부친의 영향을 받아 축구 선수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맞어. 프로가 되지 못했던 아버지는 그 꿈을 나한테 맡겼지. 그런 아버지의 전면적 지원을 받은 덕분에 나는 제니트와 프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어. 아버지 존재 없이 지금의 나는 없었다고 생각해. 그렇기에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굉장히 힘들었지.

- 그럼 동경하는 축구선수는 부친이시겠군요.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10살 때 이혼했지만 그 후에도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스타였지.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어.

- 멋진 에피소드군요. 참고로 아버지 이외에 동경했던 선수는?

 특히 없군. 내 마누라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엄청난 팬이야. 몇 년인가 전에 마누라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호날두의 유니폼을 가져와’라고 하더군. 시합이 끝난 뒤 유니폼을 교환하러 갔는데 그때는 거부하더라구(웃음). 아마 그때 어쩌다 기분이 안 좋았던 모양이야.

- 리그에서 역전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그 호날두가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승산은 있나요?

17p나 벌어져 있기에 굉장히 낮은 것은 확실하지. 하지만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이상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겠어. 나는 유로2008의 내가 피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아스날의 역습과 함께 말이지. 이번 시즌의 리그 제패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다음 시즌에 반드시 최고의 아르샤빈 그리고 최고의 아스날을 보여주겠어.

ps; 이 글은 2009년 3월 12일에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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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708/spain/column/200802/at00016213.html

저자: 우츠노미야테츠이치

●● 눈이 보슬보슬 내리는 사이타마 스타디움의 기자석에서갑자기 멀리 라스팔마스에서 플레이 하고 있는 후쿠다 켄지(福田 健二)가 떠올랐다.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일본은 첫 시합에서 태국에게 4-1로 이겨 좋은 출발을 보였다. 3차 예선은 필시 국내파 만으로도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종 예선, 그리고 본선에서의 험난한 싸움을 생각했을 때, 무엇보다도 필요하게 되는 것이 강렬한 개성과 골에 대한 후각을 겸비한 [일본인답지않은 일본인 스트라이커]의 존재가 아닐까? 규격 외의 해외일본인 스트라이커인 타카하라 나오히로(高原 直泰) [국내파]가 된 현재 해외에서꾸준히 골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후쿠다 켄지말고는 없다.

2004년 일본을 뛰쳐나간 후, 클럽 과라니(Club Guaraní – 파라과이), 파추카(멕시코), 이라프아토(Club Deportivo Irapuato – 멕시코), 카스테욘(Club Deportivo Castellón), 누만시아, UD 라스팔마스(이상 에스파냐)에서 플레이. 지난시즌까지는 카스테욘을 제외한 나머지 클럽에서 1시즌 두 자릿수의 골을 쌓아 왔다. 단지 불운하다고 해야 할지…… 후쿠다가 소속하고 있는 곳은 [세군다]라고 불리는 2부리그. 따라서 현지에서 전해져 오는 영상도 정보도 부족하기 때문에, 일본에서그의 평가는 부당할 정도로 낮게 취급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시대는 조금씩 변하고 있는 듯하다. 팬들 사이에서 [후쿠다 켄지 대망론]이 조용히……그러나 확실히 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본인은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무엇을생각하고, 또한 조국의 대표에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일까? ●●

■ 섬 클럽. 라스팔마스에서

- 일본을 벗어난 지 벌써 4년이 됩니다만, 역시 이제는 [하폰(일본인), 하폰]이라는 말에는 익숙해지셨나요?

반대로 일본인인 것을 잊을 때가 있을 정도여서……(웃음) 잊지 않으려고 하는 쪽이 강합니다. (이쪽 사람들과) 함께 축구를 하며 식사를 하고 여러가지 이야기를하고 있으면 잊어버리게 되죠. 내가 이런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때문에집에 돌아와서는 가족들과 일본어로 대화하며, 거울을 보고 난일본인이다라곤 하죠. 환경에 녹아 들어가는 것은 좋지만, 일본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니까요.

- 올 시즌에 소속하고 있는 라스팔마스에 대해서입니다만, 지도에서 보면 에스파냐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으로, 거의 아프리카에 가깝군요. 역시 에스파냐 본토와는 굉장히 다른 환경인건가요?

건물이 에스파냐 같지가 않고 오히려 남미에 가깝지요. 말도 다르며, 무엇보다 날씨지요. 일년 내내 따뜻하기 때문에 익숙해지는데 애먹기도했으며 부상도 당했었습니다. 바로 전에 있던 누만시아의 소리아(Soria)라는 곳은 에스파냐에서도 가장추운 곳이었습니다. (지금이라면) 라스팔마스는 25도 정도고, 소리아는 -3도정도. 그렇기 때문에 식사나 수분의 섭취도 바꾸어 갔지요.

- 라스팔마스라고 하면, 발레론(데포르티보)의출신지이기도 합니다만, 역시 그런 타입의 선수가 많은가요?

그는 라스팔마스의 전설이죠. 누구나가 동경하는 선수입니다. 하지만원래부터 소질이 있는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 지역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도 팀에서 이 고장 출신의 21 FW가 마요르카와 4년계약을 맺기도 했고요. 본토의 선수보다도 더 라틴 기질의 플레이를 하지요. 때문에 게으르거나 정신적으로 약한 선수도 있기도 합니다만 확실히 테크닉은 뛰어납니다.

- 섬 클럽이다 보니, 원정은 굉장히 힘들겠군요?

비행기로(에스파냐 본토까지) 가는데 3시간, 돌아올때는 기류의 영향으로 2시간 조금. 공항에서 또 이동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누만시아에서는 전부 버스로 이동했었습니다. 10시간, 12시간의 이동도 있었으니까요. 어느 쪽이 좋은지는 그 사람 나름이죠. 저는 어느 쪽도 상관 없습니다. 반드시 지켰던 것은 스트레치를 확실히하는 것. 버스에 계속 있다 보면 허리가 굳어지기 때문에, 호텔에도착하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스트레치를 하는 것. 그것만은 반드시 지키고 있습니다.



<파라과이, 멕시코, 에스파냐에서 플레이 했던 후쿠다. 올 시즌은 라스팔마스에서 플레이하고 있다>


■ 에스파냐 2부의레벨

- 후쿠다 선수는 카스테욘, 누만시아 그리고 라스팔마스라는 에스파냐 2부의 클럽을 전전해 왔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2부의 이미지라는 것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레벨일까요?

이곳 에스파냐에서는 자주 언급됩니다만,1부의 중위권부터 2부는 전부 똑같다고.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등은 차원이 다르지만 톱 5보다 아래라면 어디건 똑같다고들합니다.

- UEFA 컵 출전 클래스라면 호각으로 싸울 수 있다고?

그건 확실합니다.

- 그렇다면 스코틀랜드나 오스트리아 정도와 비교한다면?

실제로 해 본적은 없습니다만. 하지만에스파냐 사람들은 모두 이런 말을 합니다. 에스파냐 2부에서시합에 나갈 수 없던 선수가 스코틀랜드나 그리스 1부에 가면 저건돈 때문이다라고(웃음).

그러고 보니, 요전번에 토너먼트 식의 대회가 있어서 로젠보리(노르웨이), 카이저슬라우테른(독일)과시합했었는데 우리들이 우승했지요.

- 예를 들면 후쿠다 선수가 올 시즌 만약 포르투갈 1부에 이적했었다면(실제로 오퍼가 있었다), 톱 리그이기에 미디어의 취급도 확실히 바뀔것입니다만, 그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무엇을 []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웃음). 단지 저는 에스파냐 2부에서플레이하고 있으며, 거기서 평가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 앞으로 일본의 젊은 선수들이 해외 이적할 경우, 유럽 2부 클럽에서 캐리어를 스타트시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떤가요?

젊은 선수가 해외로 간다면 에스파냐의 2부라는것도 선택기(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2부는 (EU 이외의) 외국인 제한이 두 명밖에 없어서 들어가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남미, 멕시코,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니까요. 거기서부터 싸움이 되기에…… 그런 의미에서는 에스파냐 2부에서 플레이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정말 운이좋다고 생각합니다.

■ 일본인 선수가 에스파냐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지난 시즌 소속해 있던 누만시아에서는 10득점을 올려 팀내 득점왕이 되었다>


- 일본인 선수의 에스파냐 도전은, 자이젠 노부유키(財前 宣之 – [운동량의 나카타 히데토시, 패스 센스의 자이젠 노부유키]라 일컬어 졌던 일본의 환타지스타. 부상을 달고 다녔기에 대표팀과는 연이 없었다. – 역자 주)선수가 로그로녜스(Club Deportivo Logroñes)와 계약(1996)한 이래, 여러명이 도전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오오쿠보 요시토(大久保嘉人)가 마요르카에서 1년 반정도 노력했었습니다만 역시 완전히적응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왠지 에스파냐라는 나라는 일본인 선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이죠. 어쨌든 (에스파냐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니까요. 버스로 10시간 이동한다고 하면, 10시간 동안 계속 주절대죠(웃음). 때문에 말하지 못하면 괴로워요. 하여간 이동 중에도 떠들며, 연습 중에도 떠들죠. 그렇기 때문에 만약 제가 일본에서 직접 에스파냐로 갔다면 상당히 괴로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파라과이나 멕시코에 있을 때 에스파냐 어를 배웠지만 갑자기 에스파냐였다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 말이라는 것은 그 정도로 중요한가요?

뭐 물론 축구를 하러 온 것입니다만 나는축구만을 하러 온 거다라는 태도라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축구를 하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대체로 2시간 정도. 그 이외의시간은 에스파냐라는 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이고, 나 혼자서 생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말을 익히는 것, 동료들과 잘 지내는 것. 그런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후쿠다 선수는 어느 정도로 에스파냐 어를 마스터하고 있나요?

~ 어느 정도라야 [마스터 했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축구를 하는데 곤란하지 않을 정도가되는데 대체로 1년 정도. 하지만 아직이죠. 세세한 뉘앙스 같은 것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군이라며 배우는 것은 아직도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어도 그렇지만요.

- 처음 파라과이에 갔을 때도 통역은 없었던 것인가요?

대리인이, ‘통역을 붙여서는 안 된다고 해서(웃음). 하지만 저도 그러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랭귀지 스쿨에는 다니지 않았어요. 파라과이의 신문에 저에 대해서실린 것이 있었기에, 궁금해서 사전을 펼치면서 읽거나 했었지요. 독학이라고할까?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파라과이엔 일본사람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반대로 좋았던 것일지도 모르죠.

- 즉 필연적으로 필사적으로 말을 익힐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후쿠다 선수는 원래부터 어학 공부는 좋아했던 것인가요?

저 어학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학교 다닐 때도 영어 수업을 굉장히 좋아했으니까요.

- 그러고 보니 후쿠다 선수의 블로그에서 (아스날 감독인) 웽거 감독과 재회했을 때의 이야기를 블로깅 하셨더군요. 그 때는영어로?

영어하고…… 그리고 그는 에스파냐어를 조금 할 수 있더군요. 2006년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비야르레알과 시합하기에, 갑자기 약속도 잡지 않고 호텔로 갔었죠. 그리고 벵게르(일본에서의 웽거 감독의 발음 역자 주) ~” 하니까후쿠다 상!” 하더군요(웃음). 경비가 굉장히 엄했지만 저만 통과시켜 주더군요. 지금의 제 이야기를하니까, “그런가? 잘 되었군. 여기서 하면 할수록 자신의 밑거름이 되지. 그런데 내일 시합 티켓은있나? 자 받게라는 식이었죠(웃음)

- 좋은 이야기군요(웃음). 웽거감독은 후쿠다 선수가 프로가 되어서 첫 감독이었죠?

나고야에서 저를 데뷔시켜 주었던 것이 웽거 감독이었습니다.

- 그 웽거 감독도 지금은 아스날의 명장으로 전세계의 슈퍼스타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긴장되지 않던가요?

유럽에 있으면 반대로 가까운 느낌이 들더군요. 긴장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 올라운더 보다도 스페셜리스트



<후쿠다는 일본 선수가 에스파냐에서 성공할 수 없는 이유를 언어때문이라고 한다>


- 일본 선수와 에스파냐와의 상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되돌리죠. 플레이스타일이나 환경의 차이로 당황한 적이 있나요?

우선 볼 터치죠. 한번에 트랩을 해라, 한번에 패스를해라, 확실히 강하게 볼을 보내면, 확실히 컨트롤할 수 있다. 반대로 (패스가) 통통이면그 다음 플레이에 부담이 걸리기에 꽤 섬세한 부분까지 요구 받죠. 뭐 볼을 간수(볼 키프)한다는 점에서는 일본 선수도 잘하는 편이지만요. 단지 저도 최근에 일본 선수와 플레이 해 본적이 없어서……

- 필드의 상태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저는 멕시코에서 에스파냐로 왔는데요…… 멕시코는 굉장히 잔디가 길어서 볼의 이동도 늦죠. 하지만 에스파냐는 굉장히 잔디가 짧은데다가 시합 전에는 물도 뿌립니다. (볼의이동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 때문에 정말 빨라서 전혀 다리가쫓아가질 못하더군요. 컨트롤 하나만 해도 처음엔 당황스러웠고요.

- 그런 환경의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 남은 것이군요. 그런데후쿠다 선수는 자신의 가장 큰 어필 포인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골을 넣는 것이죠. 헤딩은 지지 않으며 그리고…… 일본어로는뭐라고 말하더라…… 일순간의 움직임이라고 할까? 일순간에마크를 제치는 움직임이라고 할까…… 에스파냐 말로는 [데스마르케]라고 합니다만. 그리고 포스트 플레이.

- 확실히 2부라고는 하여도 골 수는 굉장하군요. 카스테욘에서의 한 시즌을 제외하곤 전부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정도로 해외에서 실적을 올리고 있는 일본인 스트라이커는 없죠. 아니면 후쿠다 선수가 정말로 에스파냐축구와 상성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에스파냐에서는 저에게 드리블 같은 거를 바라지 않으니까요. 어쨌든 골 앞에 듬직하게 자리잡고서 거기서 골을 노리라고. 누만시아에서는앞 선에서 몸싸움해서 이기라던지, 크로스 볼이 오면 DF의뒤편을 노리라던지…… 하는 움직임도 요구 받았습니다. 하지만일본이라면 드리블도 가능하고 포스트 플레이도 가능하며, 슛도 능숙한……하여튼 전부 요구 받을 것입니다.

- 과연…… 올라운더 보다도 오히려 스페셜리스트를 요구 받는군요. 감독에게는 평소 어떤 것을?

기본적인 역할 이외에는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습니다. 선수는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고,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축구에 맞는 선수를 거기에 껴 넣으니까요. 키운다는느낌은 아니기에 감독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어렵죠.

■ 시드니 올림픽에 나갔다면 성장하지 못했을 지도……



<멈추어진 채로 있는 후쿠다의 대표팀 캐리어. 후쿠다가 다시 푸른 유니폼을 입을 날이 올 것인가?>


- 후쿠다 선수는 J리그에서 플레이 하고 있을 때부터 해외로 나간다는생각이 강했다고 하던데, 당시는 지금처럼 쉽사리 해외 이적을 하기에는 힘든 시대였었죠. 최근 제프 이치하라의 미즈노 코우키(水野 晃樹) 선수가 이적료 없이 셀틱으로 이적했습니다(육성비는 발생). ‘조금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나도……’ 라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그런 것은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 그런(파라과이나멕시코에서 플레이 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으며, 지금의제 밑바탕이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을 돌아서 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선택기는 그것밖에 없었으며, 파라과이에서 결과를 내지 않으면다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여기에서 유럽에 가주마~’라기 보다는 여기서 뭔가를하자라는 생각 쪽이 강했었죠. 정말로 하루하루를 소중히보낸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그리고 대리인의 협력도 있어멕시코나 에스파냐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대표팀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현재 후쿠다 선수의대표 캐리어는 시드니 올림픽 최종 예선으로 끝나 있습니다. 올림픽 본선에서 낙선했던 것은 역시 분하셨겠죠?

당연한 결과였죠. 나고야에 있을 때는 웨슬레이(Ueslei –브라질)이나 픽시(스토이코비치)가 있어서 시합에 나가기 힘들었으니까요.

- 만약 시드니에 갔었다면 하고 생각한 적은?

반대로 나빠져 있을 지도 모르죠. 대표팀에있으면 잘난 척 머신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지 않아서 좋았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물론 현재의 나에게서 비추어보았을 때입니다만.

- 그 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던 타카하라 선수나 야나기사와아츠시() 선수는 A대표팀에서도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활약을 어떻게 보고 계셨습니까?

열심히 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입니다. 그들은 그들의길에서 열심히 하고 있으며, 저는 그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경험을 하고 있으며, 레벨이 높은 곳에서 하고 있으니까요. 거기에 대표팀에 들어가는지어떤지에 대해서는 제가 아닌 남이 정하는 것이니까요.

- 하지만 역시 최근 대표팀의 움직임에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닌지요?

때때로 영상이 사무소에서 보내져 오기는 합니다만, 그것보다 내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할까…… 그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인터넷 같은 곳에서도 보고 있으니까 대체적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일본이 어떤 축구를 하고 있는지 까지는 모르죠. FW에 관해서는 뭐든 가능한 올마이티한 선수를 요구하고있는 듯한 경향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 [이거다]라는 무기가 있어 지금까지 해 왔기에 (날 불러주기에는) 조금 힘들지도……라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 현역 시대의 목적지는 월드컵 남아공 대회

- 제가 왜 이런 것을 묻는가 하면, 최근 [후쿠다 켄지 대망론]의 조용히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책도 나왔으며, 이번엔 텔레비전 방송(*2 10일 방송한 [정열대륙] TBS 계열)에도 나온다고 하니, 그렇다면 더욱 반응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장 스트라이커다운스트라이커 후쿠다 켄지를 대표팀으로!]라는 듯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웃음)

물론 대표팀에는 들어가고 싶습니다. 기회가있다면(웃음)

- 예를 들어 올 시즌 시작하기 전에 J리그에서 오퍼가 있었다고들었습니다만. 일단 일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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