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ro/08/text/200807010003-spnavi.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투우사]가 된 에스파냐


 에스파냐 대표팀은 유로 2008에서 44년 만의 우승을 장식하여 행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그런 한편으로 모순이라고도 여겨지겠지만 이번 대회 최고령 베테랑 감독이자 공로자인 루이스 아라고네스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고 있다.

 RFEF(Real Federación Española de Fútbol, 에스파냐 축구 협회)는 감독의 능력은 높게 평가하지만 대회 시작 전부터 연장 계약은 맺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본인에게 전달하였다고 한다후임에는 2009년 컨페더레이션스 컵과 이어지는 2010년의 월드컵을 대비하여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인 비센테 델 보스케의 취임이 이미 정해져 있다.

 

 감독 교체는 피할 수 없겠지만 2번째 유럽 챔피언이 된 것으로 인해 에스파냐의 풋볼 역사는 새로운 스테이지로 돌입하였다.처음으로 정상에 섰던 것은 1964그러나 20세기 당시의 풋볼은 현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스포츠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그럴 정도로 요즘의 풋볼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에스파냐는 챔피언의 자리를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명백히 이번 대회 최고의 팀이기도 했다.

 8강 이탈리아와의 시합에서 승부차기로 승리한 것을 제외하면, [완전승리]로 정상에 올라섰다유로 예선친선시합 등도 포함,세계의 쟁쟁한 나라들을 상대로결승에서 독일까지 실로 22전 무패를 이어온 것이다결과뿐만이 아닌그 플레이 스타일도 개성적이다다이렉트 패스를 다용하며계속해서 포지션 체인지를 거듭하면서 중반에서 게임을 조립하는 매혹적인 풋볼선수들의 자질덕분인 부분도 있지만그 시원시원한 플레이는 칭찬보다는 악담을 퍼붓는 것을 좋아하는 비평가들까지 다물게 하였다.

 

 페루에서 행해진 2004년 코파 아메리카(남미선수권)에서한 때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끈 것[각주:1]으로 유명한 감독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César Luis Menotti)’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바르셀로나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감독을 맡은 적도 있었기에 에스파냐의 풋볼에 정통하다 할 수 있다메노티는 이때 아라고네스가 대표팀 감독에 취임함에 있어 우선 소가 되고 싶은지투우사가 되고 싶은지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론을 펼쳤다즉 독자적인 전술을 추구한다고 하여도, [라 푸리아 로하(La Furia Roja) – 붉은 분노]라 일컬어지는 에스파냐 대표의 전통적인 시합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도세계적인 무대에서 결과를 남기기 위해서는 탐욕스러움과 불굴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메노티의 의견이 에스파냐 신문에도 게재되자아라고네스는 마드리드의 스포츠 신물을 통해서 배신당한 기분이다고 반발했다필시 이미 감독의 머리 속에는 메노티가 주장하고 있는 듯한 에스파냐 대표팀의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우리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조 예선 패퇴라는 실패로 끝난 2004년 포르투갈 대회에서 4년 후에스파냐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공동 개최된 유로에서 드디어 우승이라는 환희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 해외파와 경험 풍부한 젊은 선수의 존재


 출신지가 마드리드이기에 [오르탈레사(Hortaleza)의 현자]라는 별명을 가진 아라고네스는에스파냐 대표팀에 무엇이 필요한 지를 이해라고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은 물론지금까지 몇 번이나 [8강의 벽]에 막혀온 에스파냐또다시 역사를 반복시킬 수 없다며감독은 조금씩이나마 계단을 올라갔다그런 과정에서 여러가지를 고려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그 가장 상징적인 예가 에스파냐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라울 곤잘레스를 대표팀 멤버에서 제외시킨 결단이었다이는 즉 구티모리엔테스엘게라미첼 살가도 등라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동료들도 소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랜 기간에스파냐 대표팀을 지탱해온 대들보였다더구나 라울은 유로 본선을 앞두고 예전의 광명을 되찾았으며 리가 에스파뇰라의 득점 랭킹 상위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라울을 소집하지 않는 아라고네스에 대해 미디어에서도세간에서도 거센 비판이 일었다거기에 더해 화를 잘 내는 아라고네스의 성격도 비판에 박차를 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휘관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고분고분한’ 선수들을 모아특권 계급도 없이 팀을 단결심 있는 덩어리로 만들어 낸 것이다예전에 라울이 두르고 있던 캡틴 마크는 세계에서도 유수의 GK 이케르 카시야스에게 맡겨져 결과적으로 그것이 맞아 들었다.

 

 그러나 에스파냐 약진의 요인을 생각할 때에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선수들의 경험치 향상이다.

 에스파냐 풋볼은 세계에서 손 꼽히는 리그이며선수를 외국에 수출하게도 되었다특히 세계 최고라 일컬어지는 잉글랜드 프레미어 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선수가 늘어난 것은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평가되어 왔던 에스파냐 대표팀에게 있어서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 세스크(아스날 [잉글랜드 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그 외에도 레이나,아르벨로아사비 알론소(전부 리버풀)등도 팀을 지탱했다거기에 1999년 세계 청소년대회( U-20월드컵우승 멤버인 사비,마르체나카프데빌라, 2003 17세 이하 세계 청소년 선수권( U-17월드컵)의 결승전 멤버인 세스크실바 등젊었을 때부터 국제 경험을 쌓은 선수가 많은 것도 놓칠 수 없다.


트라우마에서의 해방


 이번 대회에서 가장 에스파냐를 힘들게 한 것은 8강 이탈리아였다. 0-0으로 90분을 끝내고연장전 후 승부차기 끝에 4강 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그러나 그 이외의 5시합에서는 챔피언다운 풋볼로 내용과 결과를 동시에 보여 주었다.

 에스파냐는 결코 볼 점유율에서 상대를 압도한 것은 아니지만효과적으로 볼을 간수하고 빠른 패스 돌리기로 공격을 조립했다양 날개인 세르히오 라모스와 카프데빌라중반의 이니에스타사비마르코스 세나실바 그리고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움직임으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든 2톱의 비야와 페르난도 토레스’. 그들이 포지션을 체인지하며 공격에 참가하는 - 보고 있어 즐거운 풋볼이 실현된 것이다.

 아라고네스는 이번 대회의 기본 포메이션을 4-4-2로 결정하였고그때까지의 4-1-4-1은 옵션으로만 사용하였다그러나 1톱에[콰트로 후고네스(Quatro Jugones, 4명의 창조자)]라 불리는 사비세스크이니에스타실바를 두 번째 열에 세우는 포진도 비야의 부상이라는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여도, 4강과 결승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결승에서 에스파냐는 첫 10분간본디의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슈바인슈타이거발락포돌스키클로제 등 독일의 파괴력 있는 공격진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선수들의 플레이는 경직되어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지금까지의 에스파냐가 아니었다.십 수분간 [공부]를 하여에스파냐는 서서히 자신들의 플레이를 되찾은 것이다그리고 전반 33페르난도 토레스의 멋진 골로 인한 1점으로 승자의 칭호를 손에 넣었다.

 

 멋진 풋볼로 승리를 거머쥔 에스파냐는이로 인해 국제대회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깼다델 보스케와 함께 걸어갈 신생 에스파냐는 [8강 트라우마]에 골치를 썩일 일은 없을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대표팀으로 인정받게 된 에스파냐는 적과 황의 유니폼을 입는 것에 대한 약간의 주저도앞으로는 없을 것임에 틀림 없다.

 

 에스파냐에서는 지금까지 풋볼 대표팀이 정상의 무대에 서질 못했다.

 농구 대표팀이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 비원의 첫 우승을 이룩하였고테니스 플레이어인 라파엘 나달이나 F1 드라이버인 페르난도 알론소는 세계라는 무대에서 에스파냐의 이름을 드높였다그러나 드디어 풋볼에도 그 때가 온 것이다그냥 유로에서 우승한 것이 아니다독자적인 스타일개성을 발휘하며 유럽의 왕자로 빛난 것이다.


■ 수준 높았던 이번 대회


 이번 유로는 많은 것을 시사한 대회가 되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퀄리티 즉 질의 변화이다저번 포르투갈 대회에서는 그리스의 첫 우승이라는 놀라움으로 막을 내렸지만시합 수준이 결코 높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4년 후인 이번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는 전혀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뜨거운 열정과 테크닉이 만발하였고고도의 전술로 덧칠해진 시합을 볼 수 있었으며몇 개인가의 서프라이즈도 태어났다마르코  바스턴이 이끈 네덜란드의 [혁명적 풋볼]이 가져다 준 임팩트는 누구나가 찬동할 것이다엥헬라르판 데르 파르트판 페르시스네이더르카윗 등 젊은 재능들이 펼쳤던 스피드감 넘치는 카운터 공격에 이탈리아프랑스도 어찌 해보지 못하고 완패했다.

 

 그 네덜란드를 8강에서 물리친 러시아도 이번 대회 성장을 이룩한 팀 중 하나이다.

 전략가 거스 히딩크가 이끈 젊은 러시아의 플레이는 경제적으로도 비약적인 도약을 거듭하고 있는 러시아의 파워를 그대로 보여준 느낌이 들었다팀의 베스트 플레이어 아르샤빈이라는 뉴 히어로도 탄생하였다또한 스트라이커인 파블류첸코왼쪽 SB인 지르코프(원래는 MF)도 장래성 넘치는 선수이다.

 

 결승에서 패한 독일에는서 과 슈바이슈타이거의 성장이 눈을 크게 치켜 뜨게 만들었다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발락의 존재감키잡이 역인 히츨슈페르거라는 발견도 있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예상보다 빨랐던 포르투갈의 패퇴일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데코’ 등의 재능들과, ‘페페나 히카르두 카르발류’ 등의 수비도 단단한 포르투갈은 우승 후보 중 하나라고 평가되었었다조 예선은 아무 탈 없이 돌파했지만독일 앞에 가지고 있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8강에서 모습을 감췄다.


 체코에는 스타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많지는 않았지만 조직적인 팀이었다하지만 터키에 역전패를 당하여 조 예선을 돌파하지 못했다.


 터키는 그야말로 전 대회의 그리스와 같은 존재였다기적적인 역전극으로 차례차례로 승리하여 상대를 공포에 빠뜨렸다하지만 4강에서는 경고 누적이나 부상으로 결장하는 선수가 속출하여독일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단지 그리스와 다른 점은 그들이 다크호스이기는 했지만 실력도 충분히 겸비한 팀이라는 것이다. ‘니하트나 하미트 알틴톱’, ‘엠레’, ‘메메트 토팔’ 그리고 특히 아르다 투란은 큰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에스파냐의 공로자를 거론해 두고 싶다. 2톱인 비야’(4골로 이번 대회 득점왕), ‘토레스’, 중반의 사비’(최우수 선수에 빛난다), ‘이니에스타’, ‘세나’, 반석인 디펜스 라인그리고 차원이 다른 GK ‘카시야스’. 이탈리아의 부폰과 함께 세계 제일의 수호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1978년 자국 개최 월드컵에서 우승.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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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ro/08/text/200806270001-spnavi.html

저자: 나카타 토오루


■ 준결승을 향해 꿈을 키운 러시아였지만……


 유로의 열기가 점점 식어 가고 있다.

 대회 개최를 끝낸 베른의 거리를 걷고 있으면, 이미 거기에는 오렌지 색으로 가득 찼던 날들의 열기는 없고 단지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유명한 시계탑의 소리를 듣기 위해 와 있을 뿐이었다. ‘네덜란드의 맹공에 흠뻑 빠졌던 그 나날들은 꿈이었나?’하고 볼을 꼬집고 싶어질 정도이다.

 숙소가 있는 인스부르크의 마을도 유로 관련 상품의 떨이가 시작되었지만 사려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유로가 끝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시켜주고 있다.

 그 한편으로 준결승의 개최도시와 거기에서 싸우게 될 당사국인 4개국의 열기는 고조되었다. 6 26일은 준결승 러시아 vs. 에스파냐를 취재했다.

 

 [845유로[각주:1]].

 준결승 전날 에스파냐의 신문은 원정 응원단을 대대적으로 모집하였다. 개인적으로 빈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신문은 비행기표가 비싼 빈을 피하여 근교의 도시로 가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전수하였다.

 에스파냐의 가전 판매점에서는 빈까지 응원하러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형 텔레비전을 사기 위해서 많이 몰렸다고 한다. 8강에서 패퇴한 네덜란드는 [유로 특수]가 생각했던 만큼 늘어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에스파냐의 [유로 특수]는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도 들끓고 있다. 주역은 히딩크 감독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을 4위로 이끌었을 때, 히딩크의 이름은 [히동구]가 되어 태어난 고향인 파르세벨트는 한국인들로 붐볐다. 2006년 월드컵에서는 히딩크가 이끄는 오스트레일리아 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성공하자, 파르세벨트는 [히딩크 타운]이라 불렸다. 그리고 이번 러시아의 쾌조에 마을 이름은 [히딩크그라드]가 되었다.

 21. 러시아가 8강에서 네덜란드를 쳐부수자 모스크바 거리로 쏟아져 나온 70만 명의 시민들이 승리를 축하했다고 한다. 코치인 코르네프는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고 한다.

 

 모국을 이겨서 네덜란드에 있을 수 없게 된다면 러시아의 패스포트를 가지고 다니면 된다.
 
고 히딩크에게 귀화를 권한 메드베데프 대통령. 태어난 아이의 이름에 [구스(히딩크의 퍼스트 네임’Guus’의 러시아 발음)]라고 이름 붙이는 부모까지 나왔다.

 러시아의 꿈은 점점 커졌다. 그러나 준결승 에스파냐와의 시합에서 결국 러시아 선수들은 심판에게 제발 휘슬을 불어 줘라는 눈빛으로 사정하는 듯한 얼굴을 하면서 걸어 다녔다. 이번 대회, 대건투를 보여준 러시아였지만, 결국 에너지를 전부 다 써버려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0-3. 러시아의 완패였다.

 

■ 재대결로 명확해진 에스파냐와 러시아의 격차


 조 예선 첫 시합에 이어 재대결이 된 준결승.

 시작 15분간은 에스파냐의 페이스였다. 그러나 러시아도 지공으로 에스파냐의 리듬을 무너뜨리고 서서히 찬스를 만들어 갔다. 러시아가 DF에서부터 공격 루트를 찾았던 것은, 어떻게 아르샤빈에게 땅볼로 볼을 전해줄까를 노렸던 것. 이 날, 전반에 아르샤빈에게 볼이 가면 러시아의 공격에는 날카로움이 생겼었다.

 

 그러나 0-0인 상태로 후반에 들어서자, 에스파냐의 일방적인 페이스가 되었다. 이번 대회의 활약으로 주목을 받은 아르샤빈과 FW 파블류첸코는 필드 위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이것도 에스파냐의 DMF 세나가 이탈리아와의 시합에 이어 활약한 덕분일 것이다. 또한 아르샤빈과 파블류첸코는 생애 첫 빅 토너먼트에서 이미 경직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르샤빈에게 아스날이 주목]

 [아르샤빈의 꿈은 바르셀로나]

 [아르샤빈에게 바르셀로나가 흥미를 가졌다]

 [레알 마드리드가 파블류첸코를 노린다]

 

 그리스와의 시합까지는 완전히 대회의 조연이었던 러시아.

 그러나 스웨덴과의 시합에서 승리하면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아르샤빈과 파블류첸코는 네덜란드와의 시합에서의 극적인 승리로 인하여 대회의 주인공과 같은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벨기에의 신문은 [주목을 받은 것이 러시아에 악영향을 줄 지도 모른다]고 경고. 한편 에스파냐 선수들은 이 정도의 보도에는 익숙해져 있다.

 

 에스파냐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피로해 있었을 터이다. 그래도 러시아를 상회하는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프리메라 리가에서 단련된 선수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적으로 빅 리그에서 플레이 하고 있는지, 마이너 리그에서 플레이하고 있는지(러시아는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국내 리그 소속[각주:2])…… 필드 안팎에서 그 차는 컸다.

 

 벤치 멤버의 두께, 시스템 종류에서도 에스파냐는 러시아를 상회하고 있었다. 비야의 부상 퇴장으로 인하여 전반 도중에 4-1-3-2에서 4-1-4-1 포진으로 바꾸었지만, 후반부터 중반의 두터움이 더하여 원 터치 풋볼이 화려하게 수놓아져서는 사비(50), 구이사(73), 실바(82)가 연달아 골을 넣었다. 과연 에스파냐는 독일과의 결승에서도 이 포메이션을 채용할 것일까?

 

■ 러시아에서의 히딩크의 도전은 계속될 것인가?

 

 이리하여 러시아의 진격은 끝났다.

 결과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싸운 방식에도 자긍심을 느낀다는 히딩크 감독. 확실히 그들의 건투는 절찬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건투는 해프닝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였다. 러시아는 앞으로 월드컵이나 유로에서 4, 8강 단골이 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과제이다.

 

 다시 한번 러시아를 축구계의 빅 컨트리로 부활시키는 것. 그것이 나의 도전
 
이라고 히딩크는 말한다.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는 독일과 같은 조인 러시아. 벌써부터 그의 지휘가 기다려지지만, 실은 아직 러시아 축구 협회와 히딩크는 계약 연장에 사인을 하고 있지 않다.

 나와 회장은 악수를 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 히딩크는 말했지만 일찌감치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싶을 것이다.

 

Ps; 환율은 2008-06-27이버 를 이용하였다.

  1. 약 139만원. [본문으로]
  2. 단 한 명의 선수는 이반 사엔코(Ivan Saenko), 분데스리가 FC 뉘른베르크 소속.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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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ro/08/column/200703/at00012787.html
저자: 혼마 요시카

■ 도나도니를 민감하게 만든 차기 감독 소문

차기 감독의 소문 그리고 토티의 대표팀 참가 거부로 인하여, 시합 전의 도나도니 감독은 민감한 상태였다.

 유로2008 예선에서 고전을 계속하고 있는 이탈리아.

 3월 28일, 이탈리아의 남부 바리에서 열린 스코틀랜드와의 시합에서 겨우 원래 가진 힘을 발휘하여 2-0 승리를 이루었다. 옛날부터 이탈리아는 자신들보다 격이 낮은 팀에게는 고전하는 것이 '특기'가 되어 월드컵뿐만 아니라 어떤 대회에서건 예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이번 유로 예선은 월드컵 후의 허탈감과 피로 축적이라는 소위 '월드컵 신드롬'외에 많은 대표선수들의 소속 클럽이 타격을 받은 '칼치오 스캔들'의 후유증도 더해진 악조건이 계속 되었다.


 스코틀랜드 시합 직전인 예선 B조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프랑스, 우크라이나, 스코틀랜드의 3개국이 5시합을 치룬 상태에서 4승 1패인 12P로 동률이고, 이탈리아가 4시합을 치룬 상태에서 2승 1무 1패로 7P로 추격하고 있으며 그 뒤편에 그루지야가 6P(6시합), 리투아니아가 4P(5시합), 페로제도가 0P(6시합)가 되어있었다.

 만약 이탈리아가 스코틀랜드와의 시합에서 이길 수 없다면 상위 세 팀과의 승점차이가 커다랗게 벌어지게 되어 아직 남은 7시합이 있다고 하여도 본선 출장 티켓인 상위 2팀에 끼는 것이 굉장히 어렵게 될 상황이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도나도니 감독이 정신적인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시합 전에 초조하게 문답을 한 인터뷰를 보아도 명확했다. 단 도나도니를 시합하기 전부터 초조하게 한 원인은 또 있었다.

 하나는 매스컴이 흘린 차기 대표팀 감독 소문이었다.

 원래 도나도니가 대표팀 감독취임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매스컴뿐만 아니고 많은 축구 팬들도 다음 적임자를 찾기 전까지 일시적인 연결고리로써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감독을 맡아왔던 인물들은 클럽에서 성적을 남겼던 감독(리피, 트라파토니, 디노 조프, 사키, 파브리, 베르나르디니), U-21 감독을 오랫동안 지휘했던 감독(비치니, 말디니),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조감독을 맡아왔던 감독(베아르조) 등 경험이 풍부한 인물들이 취임해 왔다.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다른 나라와 같이 감독 경험이 거의 없는 전 선수(그 선수가 아무리 전설적인 선수라고 하여도)가 대표팀 감독에 취임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도나도니는 세리에 A에서 감독경험(리보르노)은 있지만 월드컵 독일 대회 직전에 종료한 05-06시즌 도중(23라운드)에 리보르노 감독에서 해임되었다.

 감독으로써는 아직 미지수인 도나도니가 월드컵에서 우승한 리피의 후임자가 되었기 때문에 항상 좋은 결과를 내지 않는 한, 매스컴이 후임감독에 대하여 언급할 기회를 노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번 소문은 밀란이 얽힌 것이었다. 다음 시즌 감독에 리피가 밀란 감독에 취임하며 안첼로티가 이탈리아의 감독이 된다는 것이었다. 안첼로티도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였기에 일파만파가 되었다. 단지 '2011년에...'라고 안첼로티가 말한 것은 빠지고 매스컴은 6월부터 취임할 가능성이 있는 듯이 썼다.

 도나도니는 합숙 중의 인터뷰에서 "나의 꿈은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꿈은 있다. 안첼로티는 대표팀 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2011년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 너희들은, 곧바로 '당장 감독으로'라고 썼나? 저널리스트로써 확실히 일하고 있는 인간은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며 말했다.

 필시 도나도니는 내심, '요즘 같은 때 카를로(안첼로티)는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것인가'하고 친구인 안첼로티의 발언에 혀를 찼을 것이다.


■ 파문을 일으킨 토티의 대표팀 사퇴


 또 하나 도나도니를 안절부절 못하게 한 것은, 토티의 대표팀 참가 거부였다.

 토티는 "올해 9월부터 대표팀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축구 협회를 통해서 코멘트를 발표했다. 지금은 아직 컨디션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거부 이유였다.

 그러나 토티는 올 시즌 득점왕 레이스의 톱(18골)을 달리고 있으며 로마를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시킬 정도로 활약하고 있다. 확실히 스코틀랜드와의 시합 3일 후에 홈에서 밀란과의 시합이 있으며 거기에 그 4일 뒤에는 홈에서 챔피언스리그 8강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1차전을 앞두고 있다. 만약 스코틀랜드아의 시합에 출장했을 경우 1주일에 3시합을 치루는 것이 되어 아직 왼쪽 발목에 볼트를 박아놓은 토티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가혹한 스케줄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유럽선수권 출장이 스코틀랜드와의 시합 결과에 좌우될 상황을 생각하자면 평소부터 이탈리아 대표보다 로마를 우선한다고 거리낌없이 말한 토티의 대표팀 참가 거부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이라고 도나도니는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나도니도 이 건에 관해서 표면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질문을 받자 "9월이 되어 그가 의욕을 보이더라도 컨디션을 보고서 소집할지 어떨지를 판단하겠다"고 하여 토티가 자기 좋을 때 멋대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말투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예전 칼럼(새로운 추문과 도나도니의 시련)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듯이 필자에게는 도나도니가 월드컵 우승을 이루어낸 선수들에게 조금은 무시 받는 듯이 보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 스코틀랜드에게 강했던 이탈리아


 이와 같이 시합 전에 대표팀을 둘러싼 분위기는 좋지 않았지만 선수들은 침착했다. 역시 월드컵 직전에 대표팀을 감싼 '칼치오 스캔들'에 의한 어두운 중압감을 겪으면서도 그것에 눌리지 않고 우승한 것이 지금으로썬 커다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시합에 대한 것을 보자면 이탈리아는 로마와 같은 4-2-3-1시스템을 취했다. 그러나 로마의 전법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1.5열인 토티를 CFW의 위치에 두는 로마는 토티가 자유분방한 움직임으로 골문 앞에서 공간을 창출하여 MF가 빈 공간으로 뛰어들어 공격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대표팀의 CFW에는 진정한 CFW인 토니가 확실히 골문 앞에 자리를 잡고 토니의 높이를 살리거나 디나탈레나 페로타와의 콤비플레이로 상대 골을 위협하는 평범한 정공법이었다.

토티가 CFW에 들어가는 변칙적인 포진은 로마에서나 실현할 수 있는 포진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멤버는-


-------------토니

----디나탈레--페로타-카모라네시

-------가투소-----데로시

참브로타--칸나바로-마테라치-오도

-------------부폰

(와이비노멀의 홍명보님의 포진도를 허락 없이 빌렸습니다. 죄송합니다 ^^ - 역자 주)


 상대하는 스코틀랜드는 4-1-4-1이라는 중반의 숫자를 늘려 상대 공격의 싹을 뽑는 포진으로 임했다.

 스코틀랜드는 이탈리아에게 있어서는 전통적으로 상대하기 쉬운 상대다. 지금보다도 훨씬 강했던 스코틀랜드(60년대의 데니스 로나 지미 존스톤, 70년대의 빌리 브렘너, 피터 로리머, 케니 달그리쉬 등 명선수를 데리고 있었다)였을 때도 그랬다.

 스코틀랜드는 라틴이나 슬라브의 여러 나라들처럼 얍삽함이나 술수를 부리지 않는 너무도 정직하다고 할 정도의 시합운영을 한다. 이탈리아에게 있어서는 스코틀랜드보다 더 격이 낮은 그루지야나 리투아니아와 같은 얍삽함을 가지고 있는 쪽이 더 상대하기 어려웠음에 틀림이 없다.

 필자는 스코틀랜드의 이런 정직함을 좋아하기에 그들이 월드컵에 출장했을 때에는 반드시 응원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멋지게 기대를 저버렸다.

 1974년 월드컵에서는 당시 유럽을 대표하는 강호 클럽이었던 리즈 유나이티드의 브렘너, 로리머, 조던 등에 더해 베테랑인 데니스 로나 존스톤 등을 갖추고 있어 다크호스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지만 조 예선에서 탈락.

 78년 월드컵에서도 달그리쉬나 조던 거기에 아치 게밀, 그레암 수네스 등 실력으로는 1급인 선수를 데리고 있었지만 또다시 조 예선 탈락했다.

 계속해서 82년, 86년 월드컵에서도 조던이나 수네스 외에 현 셀틱 감독인 고든 스트라간 등 균형 잡힌 팀으로 도전했지만 여전히 조 예선에서 탈락했다.

 90년대에 들어와 스코틀랜드에서 명선수가 적어져 서서히 팀도 쇠퇴해갔다. 그러나 이번 유로 예선에서는 오랜만에 선전을 펼치고 있어, 10월 7일 행해진 홈경기에서 프랑스를 1-0으로 이겼다.


■토니의 활약으로 스코틀랜드를 분쇄


 그러면 시합으로 이야기를 돌리자.

 개시하자마자 이탈리아가 주도권을 잡고 양 사이드에서 과감하게 공격을 시도했다. 이탈리아가 좁은 공간에서 재빠른 원투패스를 보이거나 드리블 돌파를 선보이거나 하여 양 팀 개개인의 기술력의 차이는 확연히 느끼게 해주었다.

 이탈리아의 선취점은 전반 12분.

 스코틀랜드 진영 오른편 위치에서 오도가 올린 FK을 토니가 상대 DF와 몸싸움하면서 머리에 맞추어 골 넷을 흔들었다. 1점을 선취한 뒤 이탈리아는 게임을 지배하였지만 무턱대고 공격하려하지 않고 상대를 떠보는 운영을 하였다. 스코틀랜드도 스콧 브라운이 왼쪽 사이드에서 공격을 시도하거나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리 맥클러크가 칸나바로와 접촉하여 쓰러져 PK를 어필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이탈리아 우위인 전개는 변함없이 1-0으로 전반전이 종료.

 후반에 들어서 이탈리아의 공격이 거세졌다. 디나탈레가 2번에 걸쳐 왼쪽 사이드에서 스피드있는 드리블로 돌파하여 슛을 쏘았지만 GK 크레이그 고든에게 막혔다. 그 후에도 토니와 카모라네시가 슛을 시도했지만 불발로 그쳤다.

 이탈리아의 2점째는 후반 25분.

 스코틀랜드 진영에서 볼을 빼앗은 가투소가 오른쪽 사이드의 카모라네시에게 패스. 카모라네시가 올린 크로스에 또다시 토니가 머리로 넣어 2-0. 그 후 스코틀랜드의 추격을 뿌리쳐 종료.


 앞으로 이탈리아는 6월 2일 페로 제도, 6월 6일 리투아니아와 원정시합을 예정되어있다.

 꽁지에 불이 붙자 겨우 엔진을 걸기 시작한 이탈리아는 6월 달의 원정 2시합에서 승점을 얻지 못하는 실수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유럽선수권 출장을 건 진정한 사투는 9월 8일 예정 된 홈에서의 프랑스, 그 시합부터 4일 후인 12일에 예정된 원정에서의 우크라이나와의 시합이다. 토티의 대표팀 복귀도 있어, 9월 달의 이탈리아 축구는 열기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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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ro/08/column/200610/at00010930.html

저자: 혼마 요시카

유로 예선 출발은 안 좋은 이탈리아지만, 10월의 2연전은 둘 다 승리를 거두었다.

 월드컵 우승 후 도나도니를 새로운 감독으로 맞이하여 유로 2008 예선 시합에 임한 이탈리아 대표팀이지만 최초의 2시합(리투아니아와 프랑스)에서 1무승부 1패를 기록하여 벌써부터 낭떠러지로 몰렸다. 그러나 10월 7일 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11일 원정인 그루지야와의 시합에서 2연승하여, 이 2시합의 결과에 따라서는 해임의 위기까지 갈 수 있었던 도나도니 감독도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칼럼은 도나도니의 이탈리아 대표팀에 대해서 쓸 생각이었지만 그 전에 새로이 발각된 인테르의 스캔들 '도청의혹'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인테르도 스캔들 발각



 텔레콤(이탈리아의 구 국영통신사)이 일으킨 몇 명의 정치인을 도청한 사건으로 텔레콤의 보안 책임자였던 줄리아노 타바롤리가 체포되었다. 이 타바롤리가 경찰의 조사에서 “인테르의 의뢰로 심판원인 마시모 데 산티스의 전화를 도청했다”고 자술하여, 이 자술내용을 타바롤리의 변호사가 매스컴에 알리면서 새로운 축구 스캔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인테르는 타바롤리에게 의뢰한 전화 도청뿐만 아니고 동시에 탐정사무소를 이용하여 데 산티스의 주변도 조사시켰다.


 원래 인테르가 이러한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공정치 못한 행위를 취하게 된 원인은 데 산티스와 유벤투스의 중역이었던 모지의 불필요한 관계에 의심을 품고 있던 전 심판원인 다닐로 누치니가 2002년 연말에 인테르의 구단 사무소를 방문하여 정보를 전한 데 따른 것이다. 누치니와 만난 당시 인테르의 부회장 고(故) 지아친토 파케티는 알고 있는 정보를 곧바로 경찰에게 신고하도록 누치니에게 말했다.

 파케티가 누치니에게 이탈리아 축구 협회가 아닌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말한 것이 대단히 흥미롭다. 그러나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누치니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테르가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인테르의 부회장이며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피렐리(이탈리아 굴지의 타이어 메이커)의 오너인 마르코 트론케티 프로베라는 당시 텔레콤의 오너이기도 했다. 거기에서 전화 도청으로 이른 경위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테르는 데 산티스의 부인의 계좌를 조사하여 부정한 돈의 흐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조사했던 것 같지만 결국 이 조사에서는 부정한 사실은 잡을 수 없었다.


 데 산티스 이외에도 루치아노 모지나 축구협회 회장이었던 프랑코 카라로뿐만이 아닌 놀랍게도 당시 인테르의 스타 선수였던 크리스티안 비에리까지 도청하고 있었다. 비에리의 도청에 관해서는 당시 스폰서였던 피렐리의 이미지 캐릭터로 계약의 이야기가 오고가던 비에리에게 마이너스 이미지를 줄 듯한 부정한 주변인물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도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인테르 특히 마시모 모라티에 대해서 인테르의 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던 깨끗한 이미지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이번 스캔들로 인테르가 어떠한 제재를 받는가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다. 왜냐면,

(1)지난 시즌 종료할 시에 분출된 심판 매수 스캔들과 같은 시합에 관한 부정행위가 아니고 개인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부정행위라는 것.

(2)사건에서 3년 이상 경과했기 때문. 축구 협회의 규칙(클럽에 관해서는 3년 이내, 개인에 대해서는 6년 이내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만 처벌)에 따르면 마시모 모라티만이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


 앞으로 어떠한 전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현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인테리스타에게 있어서 굉장히 뒤끝이 나쁜 스캔들이라는 것이다.

 자 어쨌든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화제를 바꾸자.



■ 명백히 실패한 3톱



 이탈리아 대표팀은 로마에서 행해진 홈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시합(2-0)과 트빌리시에서 행해진 원정 그루지야와의 시합(3-1)에서 2연승했다. 4시합을 치룬 시점에서 승점은 7점이 되어 어떻게든 2포인트 차로 선두를 달리는 2팀(프랑스와 스코틀랜드)를 사정권 내에 둘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2시합의 시합내용은 결코 합격점을 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이것은 도나도니의 서투른 선수기용도 있지만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중심선수의 나쁜 컨디션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홈인 우크라이나의 시합에서는 솁첸코가 빠진 우크라이나에게 공격당해 부폰의 파인세이브가 없었다면 확실히 다른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토니를 CF에 두고 오른쪽에 이아퀸타, 왼쪽에 델피에로를 배치한 공격적인 포진으로 임했지만 이것이 전혀 기능되지 못했다.

 이아퀸타와 델피에로의 역할은 상황에 따라 중반의 측면도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하며 섬세한 것이지만 소속 클럽에서는 이아퀸타가 CF, 델피에로가 트레제게와 2톱이기에 둘 다 이 포지션에서는 플레이하고 있지 않다.

 이미 명확한 시스템이 무너진 시합 도중에서의 기용이라면 이아퀸타의 스피드나 델피에로의 기교있는 페인트 등으로 측면에서의 공격이 먹힐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시작부터 이 역할이 주어진 것은 명백히 도나도니의 판단 미스였다. 특히 운동량이 떨어져 있는 델피에로에게 있어서는 잔혹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공격이 좋아진 것은 후반 17분에 델피에로와 교체된 디 나타레가 들어오면서 부터였다. 이걸로 왼쪽 측면에서의 공격이 늘었다. 이탈리아가 선제점을 넣은 것은 후반 26분, 오른쪽 측면에서의 오도의 크로스를 기다리던 토니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쓰러져 PK를 얻었고, 이 PK를 라치오에서 키커를 맡고 있는 오도가 넣었다.

 추가점은 속공에서 이루어졌다. 후반 34분에 왼쪽 측면에서 디 나타레의 30미터의 정확한 크로스를 받은 토니가 왼발로 골을 넣어 승리를 결정지었다.


 그러나 첫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중심 선수 몇 명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참브로타는 효과적인 오버래핑을 할 수 없었으며 수비적인 면에서도 불안을 남겼다. 참브로타정도는 아니지만 칸나바로의 컨디션도 월드컵 때와 비교하면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시합에서 합격점이 주어진 것은 부폰, 오도, 토니, 디 나타레, 마테라치의 5선수뿐이었다.


■ 신생 이탈리아의 중심은 데 로시인가?



 4일 후에 열린 그루지야와의 시합에서는 마테라치를 대신해서 네스타가, 경고누적으로 출장 정지가 된 가투소를 대신해서 페로타가, 이아퀸타를 대신해서 카모라네시가, 그리고 델피에로를 대신해서 디 나타레가 각각 출장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시합에서 쓴 4-3-3에서, 토니를 톱에 두는 4-5-1(또는 4-1-4-1)로 변경했다.


 시합은 전반 18분에 데 로시가 페널티 에어리어 밖 왼쪽 근처의 위치에서 롱 슛을 넣어 선제점을 넣었지만, 8분 후인 전반 26분에 샤시아시필리에게 동점 골을 먹어 그 후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후반 15분에 2장째의 옐로우카드로 그루지야의 칸카바가 퇴장하고 부터였다. 수적 우세가 되어 상대의 압박이 약해지자 이탈리아는 재빠른 공 돌리기로 공격을 시도하여 후반 18분에 왼쪽 측면에서 디 나타레가 골문 앞으로 크로스를 공급. 오른쪽에서 골문 앞으로 파고든 카모라네시가 헤딩으로 추가점을 넣었다. 거기에 8분 후에는 페로타가 골을 넣어 시합을 결정지었다.


 이 시합에서 데 로시의 질과 양이 동반된 플레이는 압권이었다. 이번 2시합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때때로 보이는 화내기 쉬운 성격만 고칠 수 있다면 데 로시는 게임메이크도 가능한 올라운드 MF로 신생 이탈리아의 중심 선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시합에서도 몇 명인가의 중심 선수의 나쁜 컨디션이 눈에 띄었다. 만약 그루지야의 선수가 퇴장 처분을 받지 않았다면 마지막까지 고전했음이 틀림없다. 컨디션이 나쁜 선수 중에서도 특히 비참했던 것이 네스타였다. 밀란에 있어서도 이번 시즌의 네스타에게서는 플레이에 자신감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으며 이 시합에서도 이지 미스를 계속 범했다. 반대로 이 2시합에서 수확한 것 중 하나는 왼쪽 측면 공격수로써 높은 능력을 보여준 디 나타레와 오른쪽 SB에서 공수가 안정된 플레이를 보여준 오도 2선수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이탈리아 대표팀이지만, 도나도니에게 있어서는 만족할 수 있는 결과로 끝난 2연전이었다.



■ 선수에게서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도나도니



 마지막으로 대표팀 감독으로써 도나도니에게 신경 쓰이는 부분을 언급하고 싶다.

 아시는 바데로 대표팀 감독은 전술적인 능력 이상으로 각 클럽에서 선발된 스타 선수의 신뢰를 얻는 능력, 이런 선수를 하나로 묶는 카리스마가 필요로 하지만, 도나도니는 아직까지 선수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장면을 몇 번인가 보았다.


 그건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시합이었다. 칸나바로가 상대선수와 강하게 머리를 부딪쳤다. 때때로 아픈 듯이 머리를 감싸면서 플레이했던 때였다.

 벤치의 도나도니는 몇 번이나 칸나바로에게 큰 소리로 괜찮은지 어떤지를 물었지만 칸나바로는 명백히 도나도니를 무시하고 있었다. 주장으로서 월드컵을 우승하였고 대표팀에서도 클럽에서도 도나도니 이상으로 풍부한 경험의 명감독 아래서 시합을 해  온 칸나바로는 도나도니를 풋내기로 얕보고 있는 지도 모르지만 이 때의 칸나바로의 태도는 굉장히 불유쾌했다.


 또한 같은 프랑스와의 시합에서 도나도니는 후반에 접어들어 움직임이 둔해진 카사노에게 시합을 계속할 수 있는가 어떤가를 몇 번이나 물었다. 이 장면은 도나도니의 소심한 성격이 나타난 듯이 느껴졌다. 카사노가 부상당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감독 자신이 카사노가 피로해 있다고 판단하여 곧바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토티가 연내가 아닌 내년부터 대표팀으로 복귀한다고 제멋대로 선언을 한 것도 도나도니를 깔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렇듯 대표팀 감독 도나도니가 가는 길에는 여전히 힘겨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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