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나바로'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5.25 승부차기 최약팀 결정전 후 8년 - 이탈리아 vs. 네덜란드, 6월 9일 20시 45분, 베른 by 渤海之狼 10
  2. 2006.12.06 DF라도 발롱도르에 선출될 수 있다. by 渤海之狼 3
  3. 2006.10.16 새로운 스캔들과 도나도니의 시련 by 渤海之狼
  4. 2006.10.16 마라도나 인터뷰 by 渤海之狼
  5. 2006.06.07 이탈리아 대표, 부정의혹과의 싸움 by 渤海之狼

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euro2008/20080521-1-1.html

저자: 쿠마자키 타카시

사진: 타카스 츠토무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는 물과 기름 같다.

 

 토탈 풋볼을 발명하여 축구에 혁신을 가져온 네덜란드 사람들은 기능미 넘치는 게임을 하는 것에 무상의 기쁨을 느낀다. 힘겹게 클리어를 해버린 선수에게는 관객석에서 제대로 된 축구를 해!”라는 호된 질책이 쏟아질 정도다.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네덜란드 사람이라면, 카테나치오의 나라 이탈리아의 사람들은 결과만을 요구한다. [아름다운 플레이를 했지만 졌다]라는 게임이란 그들에게 있을 수 없다. 이기지 못하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 철학에 있어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나라도 드물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느 쪽이건 승부차기에 약하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개최된 2004년 대회.

 네덜란드는 8강에서 스웨덴을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고 4강으로 진출하였다.

 

 이걸로 우승한 거나 마찬가지다!”

 

 필자의 옆에 있던 패트릭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 목소리 높여 우승을 선언했다.

 

 “3 0으로 쓸어버릴 것이다
 
는 시합 전의 큰소리와는 반대로 박빙의 승리. 원래대로라면 이런~이런~”과 같은 결과에 그가 날뛰듯이 기뻐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승부차기에서 이겼다  네덜란드에게 있어서는 그것 자체가 역사적인 쾌거였기 때문이다. 과거 월드컵과 유로 본선에서 승부차기 전적은 4전 전패. 장년의 저주가 풀렸기 때문에 청년이 날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승부차기라는 부조리한 룰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몇 번이나 우승했었을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도(필시 잉글랜드 사람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1982년 에스파냐 월드컵을 제패한 이래, 그들은 월드컵에서 3대회 연속으로 승부차기 끝에 물러났다.

 

 그런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대결로 잊을 수 없는 것이라면 역시 2000년 대회 4강전이다. 개최국의 하나였던 네덜란드는 조 예선을 전승으로 통과하였고, 8강전에서도 유고슬라비아를 6 1로 격파. 우승 후보 No.1에 어울리는 실력을 보여 주었다.

 

 6 29. 한쪽 면이 전부 오렌지 색으로 물들은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그들은 이탈리아를 쉽게 물리치는 듯이 보였다. 처음부터 거센 파도와 같은 기세로 공격에 나섰고, 34분에는 참브로타의 퇴장으로 인해 수적으로도 우위가 되었다. 하지만 시합은 이때부터 기묘한 전개를 보인다. 10명이 되어 궁지에 몰렸을 터인 이탈리아가 어째서인지 약동하기 시작했다. 수비만 하고 있어도 좋다는 [대의명분]을 얻었기 때문일까? 골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네스타나 말디니의 표정에는 네덜란드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용맹함이 더해갔다. 이런 것이 이탈리아가 이탈리아인 이유일 것이다. 곧이어 당치않게도 그들은 호각에 가까운 전개로 만들었다.

 

 네덜란드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이탈리아의 끈질김은 굉장했지만 38분과 65분에 얻은 페널티 킥 중 하나라도 넣었더라면 이길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명수 F. 더 부르, 대회 득점왕에 빛난 클라위버르트가 연속해서 실패. 스스로의 목을 졸라 버렸다.

 

 정규 90분 거기에 연장 30분을 끝냈어도 골은 나오지 않았고 승부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패한 것은 네덜란드였다. 4명중 3명이 실패하는 거짓말 같은 결말로 끝난 것이다.

 

 패배한 직후. 대표팀 은퇴를 표명하고 있었던 베르캄프는 어깨를 떨구며 말을 남겼다.

 

 어째서 네덜란드가 승부차기에서 이길 수 없는지 나는 모르겠다. 이러한 패배는 처음이 아니며 아마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바보 같은 게임이다. 내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다

 

 그때부터 8.

 양국은 오래간만에 다시 만난다. 칸나바로와 판 니스텔로이라는 레알 마드리드 팀 동료끼리의 대결이 주목을 모으는데, 한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승부차기로 가지 않는다는 것. 네덜란드도 암스테르담의 비극을 떠올리는 일 없이 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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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사카마키 요우코

이탈리아 선수로는 1993년 로베르트 바조 이후 5명째의 수상.


 올해의 발롱도르(유럽 연간 최우수 선수상)에 이탈리아 대표로 레알 마드리드 DF인 파비오 칸나바로가 선출되었다. 발롱도르라는 것은 프랑스의 축구 전문지 [프랑스 풋볼]이 주최하며, 유럽 52개국의 기자들의 투표로 수상자를 선출하는 것으로 FIFA의 세계 최우수 선수상과 맞먹는 영예이기도 하다. 칸나바로는 주장으로서 이탈리아가 독일 월드컵 제패하는데 공헌. 거기에 지난 시즌까지 소속되어 있던 유벤투스가 세리에A 2연패(주: 지난 시즌은 세리에A 부정문제로 인해 타이틀 박탈)의 원동력이 된 것을 높이 평가 받은 수상이 되었다. DF의 수상은 1996년 마티어스 잠머 이후 10년만의 수상. 더구나 이번엔 수비 전문의 센터백이 가치 있는 타이틀을 처음으로 수상한 것도 있어 큰 반향을 불렀다.


 “축구에는 디펜더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칸나바로. 명수 바레시나 말디니조차도 도달할 수 없었던 꿈이 실현된 것이다. 즉 이탈리아 축구의 전통인 [카테나치오]가 칸나바로라는 문지기로 인해 긴 세월을 지나 결국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선수에 한하면 세리에 A와 발롱도르의 연은 굉장히 깊다. 1961년 당시 유벤투스에 소속하고 있던 FW 시보리가 첫 선출된 이후 50년간 18회 수상은 2위인 에스파냐리그의 10회 수상과 큰 차를 벌리고 있다. 요즘은 2002년 이후 3년 연속으로 수상자를 배출했다. '세리에 A는 재미없어'라고 전세계에서 혹평을 받아도 우수한 선수를 항상 배출하는 토양임에는 변함이 없다.


 9회로 3위에 랭크된 분데스리가의 수상자가 전부 독일 선수인 것에 비해 세리에 A는 외국인 선수의 선출이 대부분. 이것은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스포츠로 간주되어 온 축구가 이탈리아에서는 '산업'으로 취급되어있기 때문이다. 에스파냐가 요 10년간 5명의 외국인 선수에 의해 발론도르를 얻은 '세리에 A 현상'을 일으킨 것도, 에스파냐에서도 축구를 '산업'으로 보려는 것이 정착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적한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부진으로 고생하고 있는 칸나바로의 수상을 모두가 찬성하지는 않았다. [프랑스 풋볼]의 엘느 국장은 선출된 요인으로 [페어플레이]를 언급했다. 즉 월드컵이라는 긴 대회기간 중 상대의 에이스를 마크하는 [스토퍼]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옐로카드를 받지 않았던 칸나바로의 자세는 축구 선수의 모범이라 하였다.

“골을 넣는 숫자나 판타스틱한 플레이만이 발롱도르의 전부는 아니다”고 엘느씨는 말한다.

현대 축구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질 - 룰을 지키는 플레이가 유럽 축구의 달인들에게 존중받은 것이다. 세리에 A의 진수인 수비력과 페어플레이가 화려한 공격 축구를 추월한 이번의 발롱도르. 51회째를 맞이하여 황금 볼을 둘러싼 환경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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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ro/08/column/200610/at00010930.html

저자: 혼마 요시카

유로 예선 출발은 안 좋은 이탈리아지만, 10월의 2연전은 둘 다 승리를 거두었다.

 월드컵 우승 후 도나도니를 새로운 감독으로 맞이하여 유로 2008 예선 시합에 임한 이탈리아 대표팀이지만 최초의 2시합(리투아니아와 프랑스)에서 1무승부 1패를 기록하여 벌써부터 낭떠러지로 몰렸다. 그러나 10월 7일 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11일 원정인 그루지야와의 시합에서 2연승하여, 이 2시합의 결과에 따라서는 해임의 위기까지 갈 수 있었던 도나도니 감독도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칼럼은 도나도니의 이탈리아 대표팀에 대해서 쓸 생각이었지만 그 전에 새로이 발각된 인테르의 스캔들 '도청의혹'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인테르도 스캔들 발각



 텔레콤(이탈리아의 구 국영통신사)이 일으킨 몇 명의 정치인을 도청한 사건으로 텔레콤의 보안 책임자였던 줄리아노 타바롤리가 체포되었다. 이 타바롤리가 경찰의 조사에서 “인테르의 의뢰로 심판원인 마시모 데 산티스의 전화를 도청했다”고 자술하여, 이 자술내용을 타바롤리의 변호사가 매스컴에 알리면서 새로운 축구 스캔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인테르는 타바롤리에게 의뢰한 전화 도청뿐만 아니고 동시에 탐정사무소를 이용하여 데 산티스의 주변도 조사시켰다.


 원래 인테르가 이러한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공정치 못한 행위를 취하게 된 원인은 데 산티스와 유벤투스의 중역이었던 모지의 불필요한 관계에 의심을 품고 있던 전 심판원인 다닐로 누치니가 2002년 연말에 인테르의 구단 사무소를 방문하여 정보를 전한 데 따른 것이다. 누치니와 만난 당시 인테르의 부회장 고(故) 지아친토 파케티는 알고 있는 정보를 곧바로 경찰에게 신고하도록 누치니에게 말했다.

 파케티가 누치니에게 이탈리아 축구 협회가 아닌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말한 것이 대단히 흥미롭다. 그러나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누치니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테르가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인테르의 부회장이며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피렐리(이탈리아 굴지의 타이어 메이커)의 오너인 마르코 트론케티 프로베라는 당시 텔레콤의 오너이기도 했다. 거기에서 전화 도청으로 이른 경위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테르는 데 산티스의 부인의 계좌를 조사하여 부정한 돈의 흐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조사했던 것 같지만 결국 이 조사에서는 부정한 사실은 잡을 수 없었다.


 데 산티스 이외에도 루치아노 모지나 축구협회 회장이었던 프랑코 카라로뿐만이 아닌 놀랍게도 당시 인테르의 스타 선수였던 크리스티안 비에리까지 도청하고 있었다. 비에리의 도청에 관해서는 당시 스폰서였던 피렐리의 이미지 캐릭터로 계약의 이야기가 오고가던 비에리에게 마이너스 이미지를 줄 듯한 부정한 주변인물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도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인테르 특히 마시모 모라티에 대해서 인테르의 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던 깨끗한 이미지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이번 스캔들로 인테르가 어떠한 제재를 받는가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다. 왜냐면,

(1)지난 시즌 종료할 시에 분출된 심판 매수 스캔들과 같은 시합에 관한 부정행위가 아니고 개인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부정행위라는 것.

(2)사건에서 3년 이상 경과했기 때문. 축구 협회의 규칙(클럽에 관해서는 3년 이내, 개인에 대해서는 6년 이내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만 처벌)에 따르면 마시모 모라티만이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


 앞으로 어떠한 전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현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인테리스타에게 있어서 굉장히 뒤끝이 나쁜 스캔들이라는 것이다.

 자 어쨌든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화제를 바꾸자.



■ 명백히 실패한 3톱



 이탈리아 대표팀은 로마에서 행해진 홈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시합(2-0)과 트빌리시에서 행해진 원정 그루지야와의 시합(3-1)에서 2연승했다. 4시합을 치룬 시점에서 승점은 7점이 되어 어떻게든 2포인트 차로 선두를 달리는 2팀(프랑스와 스코틀랜드)를 사정권 내에 둘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2시합의 시합내용은 결코 합격점을 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이것은 도나도니의 서투른 선수기용도 있지만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중심선수의 나쁜 컨디션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홈인 우크라이나의 시합에서는 솁첸코가 빠진 우크라이나에게 공격당해 부폰의 파인세이브가 없었다면 확실히 다른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토니를 CF에 두고 오른쪽에 이아퀸타, 왼쪽에 델피에로를 배치한 공격적인 포진으로 임했지만 이것이 전혀 기능되지 못했다.

 이아퀸타와 델피에로의 역할은 상황에 따라 중반의 측면도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하며 섬세한 것이지만 소속 클럽에서는 이아퀸타가 CF, 델피에로가 트레제게와 2톱이기에 둘 다 이 포지션에서는 플레이하고 있지 않다.

 이미 명확한 시스템이 무너진 시합 도중에서의 기용이라면 이아퀸타의 스피드나 델피에로의 기교있는 페인트 등으로 측면에서의 공격이 먹힐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시작부터 이 역할이 주어진 것은 명백히 도나도니의 판단 미스였다. 특히 운동량이 떨어져 있는 델피에로에게 있어서는 잔혹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공격이 좋아진 것은 후반 17분에 델피에로와 교체된 디 나타레가 들어오면서 부터였다. 이걸로 왼쪽 측면에서의 공격이 늘었다. 이탈리아가 선제점을 넣은 것은 후반 26분, 오른쪽 측면에서의 오도의 크로스를 기다리던 토니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쓰러져 PK를 얻었고, 이 PK를 라치오에서 키커를 맡고 있는 오도가 넣었다.

 추가점은 속공에서 이루어졌다. 후반 34분에 왼쪽 측면에서 디 나타레의 30미터의 정확한 크로스를 받은 토니가 왼발로 골을 넣어 승리를 결정지었다.


 그러나 첫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중심 선수 몇 명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참브로타는 효과적인 오버래핑을 할 수 없었으며 수비적인 면에서도 불안을 남겼다. 참브로타정도는 아니지만 칸나바로의 컨디션도 월드컵 때와 비교하면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시합에서 합격점이 주어진 것은 부폰, 오도, 토니, 디 나타레, 마테라치의 5선수뿐이었다.


■ 신생 이탈리아의 중심은 데 로시인가?



 4일 후에 열린 그루지야와의 시합에서는 마테라치를 대신해서 네스타가, 경고누적으로 출장 정지가 된 가투소를 대신해서 페로타가, 이아퀸타를 대신해서 카모라네시가, 그리고 델피에로를 대신해서 디 나타레가 각각 출장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시합에서 쓴 4-3-3에서, 토니를 톱에 두는 4-5-1(또는 4-1-4-1)로 변경했다.


 시합은 전반 18분에 데 로시가 페널티 에어리어 밖 왼쪽 근처의 위치에서 롱 슛을 넣어 선제점을 넣었지만, 8분 후인 전반 26분에 샤시아시필리에게 동점 골을 먹어 그 후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후반 15분에 2장째의 옐로우카드로 그루지야의 칸카바가 퇴장하고 부터였다. 수적 우세가 되어 상대의 압박이 약해지자 이탈리아는 재빠른 공 돌리기로 공격을 시도하여 후반 18분에 왼쪽 측면에서 디 나타레가 골문 앞으로 크로스를 공급. 오른쪽에서 골문 앞으로 파고든 카모라네시가 헤딩으로 추가점을 넣었다. 거기에 8분 후에는 페로타가 골을 넣어 시합을 결정지었다.


 이 시합에서 데 로시의 질과 양이 동반된 플레이는 압권이었다. 이번 2시합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때때로 보이는 화내기 쉬운 성격만 고칠 수 있다면 데 로시는 게임메이크도 가능한 올라운드 MF로 신생 이탈리아의 중심 선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시합에서도 몇 명인가의 중심 선수의 나쁜 컨디션이 눈에 띄었다. 만약 그루지야의 선수가 퇴장 처분을 받지 않았다면 마지막까지 고전했음이 틀림없다. 컨디션이 나쁜 선수 중에서도 특히 비참했던 것이 네스타였다. 밀란에 있어서도 이번 시즌의 네스타에게서는 플레이에 자신감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으며 이 시합에서도 이지 미스를 계속 범했다. 반대로 이 2시합에서 수확한 것 중 하나는 왼쪽 측면 공격수로써 높은 능력을 보여준 디 나타레와 오른쪽 SB에서 공수가 안정된 플레이를 보여준 오도 2선수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이탈리아 대표팀이지만, 도나도니에게 있어서는 만족할 수 있는 결과로 끝난 2연전이었다.



■ 선수에게서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도나도니



 마지막으로 대표팀 감독으로써 도나도니에게 신경 쓰이는 부분을 언급하고 싶다.

 아시는 바데로 대표팀 감독은 전술적인 능력 이상으로 각 클럽에서 선발된 스타 선수의 신뢰를 얻는 능력, 이런 선수를 하나로 묶는 카리스마가 필요로 하지만, 도나도니는 아직까지 선수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장면을 몇 번인가 보았다.


 그건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시합이었다. 칸나바로가 상대선수와 강하게 머리를 부딪쳤다. 때때로 아픈 듯이 머리를 감싸면서 플레이했던 때였다.

 벤치의 도나도니는 몇 번이나 칸나바로에게 큰 소리로 괜찮은지 어떤지를 물었지만 칸나바로는 명백히 도나도니를 무시하고 있었다. 주장으로서 월드컵을 우승하였고 대표팀에서도 클럽에서도 도나도니 이상으로 풍부한 경험의 명감독 아래서 시합을 해  온 칸나바로는 도나도니를 풋내기로 얕보고 있는 지도 모르지만 이 때의 칸나바로의 태도는 굉장히 불유쾌했다.


 또한 같은 프랑스와의 시합에서 도나도니는 후반에 접어들어 움직임이 둔해진 카사노에게 시합을 계속할 수 있는가 어떤가를 몇 번이나 물었다. 이 장면은 도나도니의 소심한 성격이 나타난 듯이 느껴졌다. 카사노가 부상당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감독 자신이 카사노가 피로해 있다고 판단하여 곧바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토티가 연내가 아닌 내년부터 대표팀으로 복귀한다고 제멋대로 선언을 한 것도 도나도니를 깔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렇듯 대표팀 감독 도나도니가 가는 길에는 여전히 힘겨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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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607/other/column/200610/at00010851.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 마라도나와의 “불확실한” 약속


 디에고 마라도나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예전의 스타들과의 연습시합에 참가하기 위해서 코펜하겐으로 떠나기 몇 일전. 그는 여러 가지를 말해주었다. 축구에 대해서는 물론, 사생활, 미래,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서. 그리고 생사를 넘나든 그 때의 일을…….

 8개의 조명등의 강한 빛이 인조잔디의 조그만 스타디움을 비추고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에 있는 어느 집의 그라운드에는 전 아르헨티나 대표인 알레한드로가 앉아있었다.

 겨울치고는 비교적 따스함을 느껴지는 낮/ 우리는 이젠 45살이 된 디에고 마라도나를 몇 시간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약속대로 흔쾌히 취재에 응해주었다.


 알레한드로는 한 때 대표팀에서 함께 플레이한 경험도 있는 마라도나의 동료로, 이날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코펜하겐에서의 시합을 향해서 연습을 함께 하려던 차였다.

 우리들은 오랜 시간 기다렸다. 마라도나는 잘 알려진 대로 불안정하고, '정신분열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긍정적인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빠지거나 한다. 모순이라는 것은 신경도 안 쓰는 것이다. 그런 면이 있는 만큼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런 보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 한해서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확실한 징조가 있었다. 왜냐면 우리들 기자들이 알레한드로의 집으로 들어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벽에 기대면서 우리는 '축구의 신'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축구 사상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다]

[1986년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시합에서 최고의 골을 넣었다]

[그 시합에선 ‘신의 손’ 골도 넣었지]


■ ‘신’은 ‘스캔들 투성이의 빅 스타’


 그 ‘신’은 다른 이름으로 ‘스캔들 투성이의 빅 스타’라고도 한다. 몇 년 동안이나 마약에 중독되었으며, 2004년에는 심장 질환 등을 일으켜 죽을 수도 있었다. 당시 체중 130Kg은 165Cm 정도의 마라도나에겐 적어도 50Kg 체중 과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나 상황은 많이 변한 듯 하다. 2005년 8월 마라도나는 자신이 MC를 하는 [10번의 밤]이라는 버라이어티 방송을 시작하였고 곧이어 이 방송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텔레비전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자신도 사랑받았던 지역 클럽 보카 주니어스의 시합을 자주 관전. 차츰 체중도 줄었고 마약도 끊었다.


 그래도 마라도나는 여전히 유명했으며, 변덕스러운 것은 변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마라도나는?


 우리는 30분정도 더 기다렸다. 당연하겠지만 마라도나를 위해서. 마라도나는 누구를 기다리거나 하지 않는다.

 시계가 밤 9시를 가리킬 즈음 드디어 그가 왔다. 나이키의 스포츠 웨어를 몸에 걸치고 미소를 지으며 이 쪽으로 왔다. 손에 들고 있던 시거는 거의 다 피우고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 마라도나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는 스타디움의 뒷편에 있는 하얀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자에 그를 앉혔다. 한때 게리 리네커와 BBC가 인터뷰 하나를 찍기 위해서 2만 유로(약 2400만원)을 냈던 그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마라도나와의 인터뷰정도라면 그것이 상식인 것이다. 한때 덴마크의 [유란즈 보스텐]지(紙)가 단지 20분간의 인터뷰에 3~4만 달러(약 2900~3800만원)을 요구받아 포기했다고도 하며, 일본의 방송국은 1시간 10만 유로(약 1억 2000만원)라고 하여 고민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번엔 덴마크 방문을 기회로 [아르헨티나의 마법사]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인터뷰에 응해준 것이다.


 마라도나는 웃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에 귀에는 다이아몬드의 귀걸이 두개. 반지는 끼고 있지 않았고 트레이드마크인 두 개의 롤렉스시계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마라도나가 차고 있던 것은 스포츠 시계였다. 검은 머리는 흩어져 있었고 왼손에 가지고 있던 꺼지려는 하바나 시거의 연기가 공중에 떠있었다. 오른손에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 그리고 작은 몸의 '위대한 아르헨티나 선수'는 말하기 시작했다.


■ 테크닉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


- 디에고, 우선 덴마크에 대해서 아는 것을 말해주세요.


공항이지(웃음). 실은 안타깝게도 아직 덴마크에는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덴마크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말이 들었다. 그렇기에 실제로 가서 그 나라나 풍습을 알고 싶다. 거기에 덴마크 여성들은 미인이라고 하더군. 나는 지금 독신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문제없잖아(웃음)


- 그 쪽에서는 [쇼우 볼(show ball인 듯하다)](아크로바틱한 7인제 축구)의 연습 시합을 행하게 되었습니다만 관객들에게 어떤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습니까?


즐기면서 플레이 하는 것이나 아르헨티나 축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멋진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그다지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육체적인 면에 너무 앞세운 게임이 많아서 매력적인 플레이나 기교 있는 테크닉을 보기 힘들었다. 호나우지뉴의 플레이는 어처구니없었으며 메시도 존재감이 없었다.

전 세계의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좀 더 다른 것을 보는 것을 바랄 것이다. 나는 테크닉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으며 그것을 보증하겠다. 나 자신, 플레이 할 때는 즐기고 싶으니까.


- 당신의 생각에 따른 [쇼우 볼]이 일부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우선 생각한 것은 좀 더 다이내믹한 축구를 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볼이 필드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 벽을 사용하고 있다. 운이 좋아서 이 [쇼우 볼]은 여러 나라에 받아들여졌다. 거기에 나이 때문에 은퇴한 선수들도 참가할 수 있었기에 축구로 향한 정열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도 좋다.


- FIFA가 [쇼우 볼]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입니까?


그래, 이야기는 있었다.


■ 일본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대회는 잊을 수 없는 추억


- 독일 월드컵에서 베스트 플레이어는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써는 그다지 말할 만한 것이 없군. 2002년 월드컵의 베스트 플레이어를 묻는다면 결승에서 미스는 있었지만 올리버 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칸나바로, 마테라치(둘 다 이탈리아). 그리고 아얄라(아르헨티나)를 꼽아야 한다. (수비적인 선수들뿐으로) 그다지 칭송할 만하지는 않지만.


- [미래의 마라도나]는 발견하셨습니까?


아니……. 없었다. 우선 왼발을 쓰는 선수가 그다지 없었으니까(웃음). 그렇지만 위대한 선수는 있다. 월드컵에서 호나우지뉴의 플레이는 별로였지만 그는 필드 위에서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는 희소가치가 있는 선수다.


- 지네딘 지단이 이번 대회의 베스트 플레이어가 아닐까요?


아니,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플레이어로써 말년이었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번 대회의 베스트 플레이어는 칸나바로나 그로소, 아얄라라는 디펜더다.


- 당신 자신에 대해서 말하면 1986년 월드컵 멕시코 대회 잉글랜드와의 시합에서의 골은 세계의 역사를 바꿀만한 굉장한 골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물론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면 펠레가 화낼 테지만.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골을 계속 꿈꿔왔다. 그것이 현실이 되어 이번엔 꿈에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실제로 꿈에서 깨는 일 없이 잉글랜드를 상대로 2점째를 넣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모두 그 골을 최고의 골로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고맙다고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도 똑같이 말해 주었다.


- 일본에서는 1979년 세계 청소년대회(현 U-20 월드컵)에서의 당신의 플레이가 강렬했다고 하더군요.


그 때의 대표팀은 굉장했다. 하고자 하는 의욕도 넘쳐났으며 정확성이나 스피드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의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서 우리들의 시합을 텔레비전으로 보아 준 것이다. 그 때의 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며 모두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 대표팀 감독 취임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렵다.


- 앞으로의 일입니다만 베켄바우어처럼 양복과 넥타이의 모습이 된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한 생활에는 익숙하지 않다. FIFA에 들어가려는 예전의 축구선수에 한해서 선수를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 거기에 축구가 뭔지를 모르는 녀석이 이 세계를 이끈 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아벨란제는 20년 이상에 걸쳐 FIFA 회장을 맡았지만 그는 원래 수영선수였다. 현 회장인 블래터는 축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돈벌이뿐이다. 정말로 불유쾌하다.......뭐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으며 나는 언제라도 선수 측에 서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 그럼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훌리오 그란도나(20여년에 걸쳐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동시에 FIFA 부회장)의 시대에는 출입금지니까. 나는 단지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가 25년 전과 같은 듯한 상황과 대우를 강요받고 있는 것에 관해서 정정당당히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어쨌든 그란도나가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있을 장소가 없다고 생각한다.


- 친구인 피델 카스트로 의장과는 그가 수술을 받은 후에도 연락을 하셨습니까?


몇 번인가는 연락했다. 12월 2일 혁명군의 날에는 축하하러 쿠바에 간다고 했다.


- 그의 용태는 어떤가요?


굉장히 좋다.


- 당신이 카스트로 의장이나 체 게바라를 숭배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요?


나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부시는 용서할 수 없지만, 피델(카스트로)는 사람들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틀렸다고 한다면 나도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여도 나는 피델을 지지한다. 그리고 체(의사이며, 혁명의 영웅. 쿠바혁명에서는 카스트로와 함께 싸웠다)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고의 남자다. 현재에서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도 피델과 닮았다.


■ 신이 주신 축구는 위대하다.


- 당신의 건강 상태는 어떠십니까?


최고다.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며 딸인 지아니나와 달마와도 새로운 부녀관계를 쌓고 있다. 거기에 지금은 축구공을 찰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볼과 함께 태어나서 함께 죽을 거라고 모두들 그러는데,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 그럼 이젠 건강하시군요.


그래. 매일 딸들을 생각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멋진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또 다시 축구공을 찰 수 있게 된 것이 정말로 기쁘다. 신이 나에게 주신 축구는 위대하다.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다. 축구는 왕이다. 우리들은 매일 신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당신의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돌아 본다면?


좋은 때도 있었고 나쁜 때도 있었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나는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딸들의 애정을 잃었던 적이 있기에 몇 가지 고치고 싶은 부분도 있다. 나는 바보 같은 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실패는 내 자신 탓이며 그것은 지금까지 승리해서 쟁취한 것에 관해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 그 때(2004년)의 죽음은 어느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던 것일까요?


거의 죽었었다. 하지만 내 막내딸이 죽음의 심연에서 건져 올려 주었다. 틀림없이 신은 나를 아직 하늘로 데려가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 앞으로도 계속 축구를 하고 싶으십니까?


아니, 언젠가는 관둘 거다. 80세나 그 근처가 된다면(웃음).


어떤 사람이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렸다. 눈 깜짝할 정도로 짧은 듯한 인터뷰 시간이었다. 듣고 싶은 것이 굉장히 많았지만, 이것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마라도나는 감사의 말을 우리들에게 전하며, “지금부터는 축구공과 놀 시간이다”라고 말하곤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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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wcup/06germany/column/200606/at00009275.html

저자: 혼마 요시카

여러 부정 의혹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리피감독. 월드컵에서는 중압감을 떨쳐내고, 승승장구할 수 있을것인가?

월드컵보다 부정 의혹을 파고드는 기사가 대부분


 월드컵 개막까지 별로 안 남았다. 지금까지 개막하기 전에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근황이나 인터뷰 거기에 월드컵에서 대전하는 상대 팀의 분석 등이 미디어에서 크게 다루어지며 싫건 좋건 축제 분위기가 되어갔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대표 팀의 화제도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이 어떠한 결과를 남길까? 라는 순수하게 축구만을 분석하는 기사가 아니라 대대적인 부정 의혹을 포함한 보도가 되고 있다.


 예를 들면 부정 의혹의 주모자로 지목되는 전 유벤투스의 제너럴 매니저 루치아노 모지의 의향에 따라 대표 선수를 소집한 의심을 받고 있는 리피 감독과 이탈리아 국내에서 행해지는 시합을 대상으로 한 불법 도박에 관여한 의심을 받고 있는 GK 부폰이나 이아퀸타의 대표팀 사퇴를 주장하는 기사 등이다.


 도청된 대화의 내용을 읽는 한 리피는 모지의 희망대로 캄피오나트(리그 전)의 시합에 대비하여 유벤투스 소속의 칸나바로를 벨라루시와의 월드컵 예선 시합에 (부상당하지도 않았는데) 뛰지 않게 하거나, 델 피에로를 유벤투스의 일본 원정에 참가시키기 위하여, 같은 시기에 행해진 이탈리아 대표의 테스트 매치에는 선출하지 않거나하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행동도 보인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장 칸나바로는 모지의 지시로 인테르나치오날레의 회장 모라티니를 속이는 방식으로 유벤투스로 이적을 이루었지만 이 이적 방식을 언급하며 칸나바로에게 캡틴의 자격을 박탈하라고 주장하는 기사도 있다.


일본이라면 월드컵 참가 사퇴도 있을 수 있다.


 리피에 관해서는 모지의 아들이 운영하는 GEA 월드사와 사업상 연관이 있는 리피의 둘째아들의 존재가 대표팀 감독 리피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지적받고 있다. 예를 들면 리피의 둘째 아들이 직접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는 선수 중에 유벤투스의 MF인 브라지가 있다. 브라지의 전 매니저는 리피의 둘째 아들이 브라지를 빼 갈 때, '나와 계약하면 보다 쉽게 이탈리아 대표팀에 선출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꼬셨다고 말한다. 확실히 브라지가 가진 실력에 비하여 한 때 계속해서 대표팀에 선출된 적이 있었다.


 단 이번에 리피가 선출한 월드컵 대표 23명에 대해서는 리피가 주장하듯이 모지나 GEA월드사의 영향은 없었다고 믿어도 괜찮을 것이다. 이 23명 중에는 GEA 월드사와 계약하고 있는 선수(마테라치, 오도, 아멜리아)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선수는 이번 시즌 칸피오나트에서 대표팀에 선출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플레이를 보여주었기에 특별히 GEA 월드사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 중 마테라치는 이런 부정 의혹이 발각된 후 GEA 월드사와의 계약을 끝냈으며, 또 한 명 GEA 월드사의 계약 선수라고 생각되어지던 이탈리아 대표팀 부동의 레귤러인 네스타는, 의혹 발각 전에 계약을 끝냈다는 것을 발표했다.


 일본의 경우 무언가 안 좋은 사건이 일어나면 책임자가 정해진 듯이 사죄회견을 열며 출석자 일동이 텔레비전 카메라를 향해서 머리를 숙여 겉으로만 사과하는 모습은 너무도 뻔하고 농담처럼 느껴지며, 또한 고교야구 부원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 발각되었을 때처럼 야구 부원 전원이 책임을 지는 것도 조금은 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죄의 자세(그것이 본심이 아닌 겉모양이라고 하여도)를 전혀 보이는 것 없이 자신도 피해자라는 식의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변호만 해대는 사건 당사자들의 언동을 읽거나 보고 있으면 '조금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봐!'하고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서 화를 내고 싶어진다. 특히 모지나 지라우드(공모자로 보이는 전 유벤투스의 임원)는 적어도 유벤투스의 팬들에게만 이라도 공공의 장소에서 사죄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일본 대표팀의 감독이나 몇 명인가의 선수가 이탈리아 대표팀과 같은 스캔들에 휩싸인다고 하면 축구 협회는 어떤 처치를 취할까? 의혹 받고 있는 감독이나 선수를 대표팀에서 제외할 뿐만 아니라 일본 대표의 월드컵 불참을 결정할 지도 모르겠다.


월드컵에서는 부정 의혹이라는 중압과도 싸우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이번의 스캔들이 발각된 후에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하여 이탈리아 축구 협회 특별 커미셔너에 임명된 구이드 로시가 의혹의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을 처분하지 않고 월드컵에 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의혹만으로는 벌주지 않는다.]라는 생각과 리피가 이끄는 대표팀이 지금까지 멋진 내용의 게임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되어 진다.


 그러나 월드컵 개최 중에도 부정 의혹에 관하여 조사는 계속 진행되며 새로운 의혹이 나타날 것도 예상된다. 또한 월드컵 중에 행해지는 감독이나 선수에 대한 인터뷰에서는 전 세계의 저널리스트들에게서 시합에 관한 질문 이외에도 부정 의혹에 관한 질문도 나올 것이다. 지금까지도 정신면에서 약함을 보여주는 일이 있던 리피가, 그러한 상황에서 팀을 하나로 묶어서 승리해 나가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며, 만약 이탈리아가 결승까지 진출하여 우승한다고 하여도 의혹이 있는 감독과 선수가 있는 팀을 세계는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필자는 이번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와 함께 이탈리아 대표가 활약하길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유럽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에서 남미의 우승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하던 필자는 이탈리아 대표가 우승 후보의 필두라고 주변에 공언했으며 커다란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이 있는 감독과 선수가 있는 이탈리아로는 솔직히 응원하는 것조차 주저하게 되어버렸다. 이탈리아 국내에서도 의혹이 있는 감독이나 선수는 대표팀에서 제외해야만 한다는 의견도 있으며 그 중에는 (극히 소수지만) 이탈리아 대표는 월드컵 출장을 사퇴해야만 한다는 의견도 들린다.

 대회 불참은 극단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의혹이 있는 감독과 선수를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것만으로도 반성의 모습을 보이고, 깨끗한 이미지로 대회에 도전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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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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