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umber.bunshun.jp/articles/-/53293
저자: 타나베 마사유키

Are you from Korea?”

맨체스터나 리버풀 거리를 덜레덜레 걷다 보면 지역 축구팬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No. I’m from japan”

라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로 대답하지만 솔직히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프리미어 리그의 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과거에는 일본선수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었다. 이나모토 쥰이치[稲本 潤一]는 풀럼이나 WBA에서 어느 정도 활약했으며 나카타 히데토시[中田 英寿]나 니시자와 아키노리[西澤 明訓]가 볼튼에 있었던 적도 있다. ‘일본의 로이 킨’이라 불리던 토다 카즈유키[戸田 和幸]가 토튼햄에서 뛸 때는 무려 로이 킨에게 도전장까지 내던져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엔 역시 “Are you from Korea?”라고 묻는 케이스 쪽이 압도적으로 많아 졌다. 맨유의 박지성을 필두로 볼튼의 게임메이커로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이청용 그리고 설기현(예전 레딩이나 풀럼에 소속) 등등 머릿수뿐만 아니라 실적에 있어서도 한국인 선수가 일본인 선수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역전된 유럽리그에서 양국 선수의 존재감

라고는 해도 이러한 상황은 옛날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AFC(아시아 축구 연맹)의 기관지에서 편집장을 역임한 적이 있어 아시아 축구 전반의 사정에 정통한 저널리스트 마이클 처치(Michael Church)씨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1세기에 막 들어섰을 즈음에는 유럽에서도 일본인 선수가 상승세였다. 나카타 히데토시는 세리에 A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었으며, 오노 신지[小野 伸二]는 페예노르트에서 UEFA 컵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외에도 타카하라 나오야스[高原 直泰]나 이나모토 쥰이치도 유럽 클럽에서 데리고 가려는 곳이 많았다. 셀틱에 있던 나카무라 슌스케[中村 俊輔]가 4년 전에 유럽 챔피언스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을 넣은 것도 유럽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요 2년간은 완전히 한국과 일본이 역전되었다. 양국은 남아공 월드컵 성적도 호각이었으며 일본은 FIFA 랭킹에서 한국보다도 상위에 있다. 하지만 ‘유럽파’의 존재감에 관해서는 한국 쪽이 일본인 선수를 완전히 제친 것은 틀림이 없다”

너무도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제2의 나카타 히데토시’의 부재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떠오르는 것이 ‘나카타 히데토시 후계자의 부재’라는 문제다.

한국의 경우 박지성이 일종의 ‘쇼 케이스(견본품)’로 후진들에게 계속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 나카무라 슌스케가 한때 주목을 모으거나, 마츠이 다이스케[松井 大輔]가 프랑스 리그에서 새로운 성장의 방법(하위 리그에서 팀과 함께 성장해 가는 시도)를 제시했지만, 나카타 히데토시가 은퇴한 뒤로는 일본인 선수의 높은 실력을 지속적으로 어필해 주는 광고탑이 없었다.

이 문제는 ‘히딩크와 걸맞은 후원자의 부재’라는 사실과도 이어진다.

박지성의 경우 2002 한일월드컵 종료 후 PSV의 감독에 취임한 히딩크의 ‘애제자’가 되어 유럽에 건너갔다. 박지성은 히딩크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챔피언스 리그 등에서 활약해 마침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 선수의 경우 방제와 같은 친일 감독을 제외하고는 유럽진출에 후원사격을 해 주는 후견인이 없었다. 그걸로 그치지 않고 이제 방제는 한국인 선수의 약진을 인정하기까지 한다.

“한국인 선수는 하나의 위업을 이루었다. 유럽 특히 프리미어 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아시아 선수는 거의 없었지만 한국인 선수는 아주 순조롭게 적응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박지성은 팀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하드워커이지만 뛰어난 기술의 소유자이기도 하며 중요한 국면에서 골을 넣어왔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아스날)과의 시합에서도 그랬다.”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는 일본이 한국을 리드하고 있었지만…

한국선수가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유럽진출에 가속시켰던 것과는 반대로 유럽에서 일본인 선수는 서서히 존재감을 잃게 되었는데, 이 변화는 대표팀 멤버의 구성에서도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점에서 유럽파의 머릿수는 4:2로 일본대표가 더 많았다.

일본대표 : 카와구치 요시카츠[川口 能活, 포츠머스], 나카타 히데토시(파르마), 이나모토 쥰이치(아스날), 오노 신지(페예노르트)

한국대표 : 안정환(페루자), 설기현(안더레흐트)

남아공 월드컵대회 직전에는 압도적인 차이로 벌어졌다.

그러나 남아공 월드컵대회 개막전 시점에서는 한국대표가 6명의 유럽파와 3명의 해외파(유럽 이외의 리그)를 거느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대표의 유럽파는 4명뿐. 더구나 일본대표는 유럽을 제외한 해외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선수가 없었다.

한국-유럽파 : 차두리(프라이부르크), 김남일(톰 톰스크),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기성용(셀틱), 이청용(볼튼), 박주영(모나코)

한국-해외파 : 이영표(알 히랄), 이정수(카시마), 김보경(오이타)

일본 : 마츠이 다이스케(그르노블), 하세베 마코토[長谷部 誠=볼프스부르크), 혼다 케이스케[本田 圭佑=CSKA모스크바)

한국은 일본과는 다르게 복수의 루트로 유럽에 진출 중!

더욱이 한국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루트로 유럽에 진출한 점이다.

한국 선수의 경우 네덜란드 리그에 더해 프랑스 리그나 스코틀랜드 리그 등도 유럽으로의 교두보로 정착. 예전 나카무라 슌스케와 미즈노 코우키[水野 晃樹]가 소속해 있던 셀틱은 2명의 한국인을 거느린 클럽으로 변했다. 또한 기본적으로 분데스리그를 거쳐야 한다는 인식[각주:1]이 없어진 것이나 중동 클럽까지도 이적 팀에 포함되는 것도 일본과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다시 크게 바뀌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10월12일 서울에서의 한일전은 어째서 중요한 것인가?

유럽 축구계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존재감은 근래 확실히 역전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다시 크게 변하고 있는 중이다.

남아공 월드컵 종료 후 일본 대표팀 클래스에서는 카와시마 에이지[川島 永嗣], 나가토모 유우토[長友 佑都], 우치다 [아츠토[内田 篤人], 아베 유우키[阿部 勇樹], 카가와 신지[香川 真司], 야노 키쇼우[矢野 貴章], 마키 세이이치로우[巻 誠一郎] 등의 멤버가 유럽으로 건너갔다. 하세베나 마츠이, 혼다나 모리모토[森本]와 함께 이국에서 절차탁마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겁다. 유럽파의 머릿수가 점하는 비율은 대표팀의 힘을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모든 유럽파에게는 일본대표의 저력을 올리는 것은 물론 ‘제2의 나카타 히데토시’로서 후진의 J리거를 위해 길을 개척하는 것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10월12일 서울에서 열리는 친선시합은 중요하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과 마찬가지로 일본대표도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아래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말하자면 이번 한일전은 일본대표팀에게 있어 전열을 정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유럽에서까지 격렬하게 맞붙고 있는 최대의 라이벌에게 이 즈음해서 확실히 승리를 거둔다는 의미는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닐까?

  1. 과거에 김주성, 황선홍, 이동국 등이 독일에 간 것을 말하는 듯 함. [본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l

출처:http://number.goo.ne.jp/soccer/japan/719/20090106-1-1.html
저자:니노미야 토시오

 

 올 시즌까지만 행하고 철폐되는 J1, J2 교체전[각주:1]에서 살아 남은 팀은 주빌로 이와타(ジュビロ磐田)였다.

 원정 1차전[각주:2]에서 귀중한 동점골을 넣었던 입단 2년째의 마츠우라 타쿠야(松浦 拓弥)가 홈에서 맞이한 베가르타 센다이(ベガルタ仙台)와의 2차전에서도 2골을 넣었으며, 수비를 단단히 한 종료 직전에는 카와구치 요시카츠(川口 能活)가 얼굴로 공을 막아내는 등 전원이 몸을 던지며 수비하여 시합을 마쳤다. 5년에 걸쳐 수 많은 드라마를 만들어 온 교체전의 피날레에 걸맞은 격렬한 사투였다.

 3년 연속으로 J2 팀이 이겼었던 만큼 이와타의 기쁨은 말할 것까지도 없었다. 시합 후 카와구치는 얼굴을 감싸고 울었을 정도다. 그러나 기쁨에 빠져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카와구치는 반성을 담아 말했다.

 “승리에 익숙해 있던 분위기가 있었을 지도 모르며 위기감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좀 더 헝그리한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거 3번 리그를 제패했던 이와타는 올 시즌 난조를 보이며 클럽 사상 최저인 연간 16위로 시즌을 마쳤다. 부상 선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며 카와구치가 말했듯이 선수 측에 위기감 결여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 수년 프런트의 ‘엉성함’이야 말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2006년에 지휘를 맡긴 브라질 출신의 아지우송 바티스타(Adilson Dias Batista[각주:3]) 감독은 상대 팀을 연구하여 그에 따라 전술이나 멤버를 바꾸는 카운터 주체의 수동적인 축구를 도입하였지만 성적부진을 이유로 2007년 9월에 해임되었다. 그 다음으로 톱 팀의 코치였던 우치야마 아츠시(内山 篤)가 승진하여 감독이 되자 아지우송과는 달리 황금기를 구축했던 능동적인 축구로의 회귀를 목표로 하였다. 그 우치야마도 결과를 남기지 못하여 2008년 9월에 초빙된 감독이 잔류를 위한 수비적 전술을 쓴 한스 오프트(Hans Ooft[각주:4])이다. 어느 감독이건 이와타의 축구를 잘 아는 OB지휘관이라고는 하여도 스타일 그 자체가 자주 바뀌어 버린 듯한 인상을 부정할 수 없다. 프런트와 현장이 철저한 방침을 세우고 있었는지 의문부가 찍힌다.

 대조적으로 한때 이와타와 2강 시대를 구축했던 카시마 앤틀러스(鹿島アントラーズ)는 올 시즌 2연패를 달성. 2003년부터 4년간 무관인 시기가 있었어도 토니뉴 세레주(Toninho Cerezo[각주:5])에게 6년간 장기집권을 허용하게 한 것이 키 포인트였다[각주:6]. 카시마의 어느 간부는 이렇게 말하였다.

 “짧은 기간으로는 감독의 가르침 같은 것이 정착되지 않습니다. 오래 해 주길 위해서도 클럽의 방침을 감독에게 확실히 전달하며 감독에게서도 의견을 듣는 커뮤니케이션 작업이 중요한 것이죠.”

 토니뉴 세레주는 연습시간이 끝나도 남아서 어린 선수들을 단련시키는 열혈한이었다. 프런트는 그 점을 높게 평가하며 팀의 저력을 중시하였다. 중장기 계획이 그려졌기에 지금의 부활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프런트의 문제는 불과 1년 만에 J2로 강등당한 토우쿄우 베르디(東京ヴェルディ)에게도 느낀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가 있다곤 하여도 올 시즌 획득하여 계속 선발 멤버로 기용해 온 후쿠니시 타카시(福西 崇史), 도이 요우이치(土肥 洋一)에게 1년 만 쓰고 ‘전력 외 통고’를 내는 것을 보니 장래적인 비전을 그리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올 시즌 선풍을 불러 일으켜 온 나고야 그램퍼스(名古屋グランパス)[각주:7]건 오오이타 트리니타(大分トリニータ)[각주:8]건 명문팀의 부진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장래를 내다보며 프런트와 현장이 일치단결하지 않으면 일순의 영광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빛나는 영광을 쌓아왔던 이와타에게 있어서는 잔류 다툼에 휩싸인 올 시즌의 굴욕을 각성의 계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퇴임하는 오프트도 ‘요 5년간 조금씩 팀의 실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다. 프런트도 확실한 비전을 빨리 제시하지 않는다면 상승군단 부활의 날은 더 멀어질 것이다.

  1. J리그의 승강제는 2004-2008시즌까지 J1의 17위, 18위는 자동강등. J2의 1,2위는 자동승격되었으며 J1의 연간성적 16위와 J2 연간성적 3위는 홈&어웨이로 시합을 하여 이긴 쪽이 강등 혹은 잔류하였다. 2009년부터는 J1 연간성적 하위 3팀은 자동강등, J2 상위 3팀은 자동승격하게 된다. [본문으로]
  2. 1-1 무승부. [본문으로]
  3. 이와타 OB이며 현 브라질 크루제이루 감독. [본문으로]
  4. 그는 1994~1996년까지 이와타의 감독이었다. [본문으로]
  5. 지쿠와 함께 황금의 중반을 담당했던 그 사람. [본문으로]
  6. 2000-2005년까지. 현재는 2007년부터 감독인 오스왈두 올리베이라(Oswaldo De Oliveira Filho)이다. [본문으로]
  7. 2008시즌 3위. [본문으로]
  8. 2008시즌 4위. [본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l

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japan/kaiken/200707/at00013991.html


오심 인터뷰


                              

■ 준결승 패배의 책임은 나한테 있다.


- 이번 AFC(아시아 축구 연맹)의 운영 면에 대해서(*항공권이 잘 갖추어지지 않아 일본은 이동이 늦어졌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건에 대해서는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 좋은 질문이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이며, 내일 시합이다.


- 결승전이 아닌, 3위 결정전을 싸우게 된 어려움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이렇게 늦은 시간에 모여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여러분은 일본이 결승에 갈 것이라 믿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준결승에서 짐으로 해서) 여기에 오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선수들을 대신하여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만약 준결승 패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찾고 있다면 선수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길 바란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 월드컵 예선 준비 쪽이 더 중요하기에 이번 시합은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 질문에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게 하고 싶은지가 들어가 있다.

결승전 전날 밤 회견이라면 무엇을 말했을지 모르지만 3위 결정전의 전날 밤이기에 그것은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베스트 4에 들어간 것이다. 결과로선 나쁜 것은 아니지 않나? 이것이 월드컵 예선 결과라고 한다면 본선 출전권을 획득한 것이 된다.

그러나 예선은 매번 어려워진다. 각 국가의 레벨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5위인 국가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누구를 사용할지다.


- 3위 결정전은 중요하지만, 경험이 적은 선수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요?


그건 무엇을 듣고 싶은 건가? 즉 3위 결정전이 중요하면 어린 선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다면 사용한다. 어느 쪽인가?


- 중요하니까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두개의 질문은 의미가 다르다. 나카무라 슌스케나 타카하라나 엔도우를 내일 플레이 시킨다면 피곤해진 선수를 사용하는 것이 된다. 만약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째서 그렇게 좋은 선수를 사용하지 않았나? 라는 것이 된다.


-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누가 이기느냐고 물은 건가? 언제나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가르쳐 주길 바란다.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무엇을 말하게 하고 싶은지 모르니까 굉장히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면 그렇게 질문해야 할 것이다. 또는 어떻게 싸울 것인가 라는 것이라면 선수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싸워도 시작이 되질 않으니까 여기서 끝낼까? 즉 선수가 피로해져 있다는 상황을 앞두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누구를) 사용할까 사용하지 않을까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다.


- 패전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하셨는데, 만약 내일 진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책임을 지실 것입니까?


어떤 의미로 묻고 있는지 모르겠기에 답변할 수 없다. 나 스스로는 정할 수 없다. 다른 누군가가 정할 것이다.


- 일한전은 일본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그에 대한 마음가짐은?


나는 일본인이 아니기에 어떻게 특별한 시합인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은 일본 이상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에게 있어서는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한전이기 이전에 3위 결정전임으로 어느 쪽이 이길지는 운에 좌우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이겼기에 혹은 졌기에 한일의 대표팀 감독이 바뀐다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굉장히 유감스러운 것이다.


- 피곤도 있으며 상대팀도 일한전이기에 동기도 부여되어 가고 있는데 무엇이 일본에게 있어서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상대팀의 동기 부여가 높지만 일본도 거기에 져서는 안 된다는 것.

한국에는 J리그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선수가 몇 명인가 있는데 특히 그들이 일본전에 투지를 불태울 것이다. 한국이 이기고 랭킹도 일본보다 높아짐으로서 그들은 일본에 있어서의 가치가 높아지며 존경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일본에서 돈을 벌고 있으니까 여기서 평가가 높아지면 연봉도 더 높아지게 된다. 그것은 선수 누구나가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일본선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선 상대편에 메리트가 있으며 이 쪽도 알고 있다는 메리트이기도 하다. 때문에 서로 잘 알고 있기에, 시합이 오픈이 될 가능성이 있다.

즉 서로 위험한 플레이를 할 각오로 싸울 것이다.

덧붙인다면 이것은 일본에 와서 알게 된 것인데 한국 선수가 운동능력이 높다. 키가 크고 과격한 플레이가 가능하다. 그렇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지만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핸디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쪽이 좋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핸디캡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피로다.

내일 시합에서는 필드를 휘저어 이 쪽은 싱싱하다는 상황에서 플레이하고자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일본은 불리하게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선수들은 모두 출장하고 싶어 하고 있다.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선수는 자신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있지 않다.


부디 이해하길 바란다.

선수는 인간이다. 시합에 나가고 싶다, 피곤하지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출장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힘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 결과 시합에 진다. 물론 그런 선수를 사용한 감독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이다.

여러분은 내일 어떠한 선수가 나올지 기대하면서 편히 쉬길 바란다. 나는 밤중에 일어나, 아스피린을 먹으면서 내일을 생각하고자 한다.


일한전이라는 것은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선수들은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활약하고 싶다, 플레이하고 싶다는 자연스런 기분. 그러나 감독의 일이라는 것이 나가고 싶어 하는 선수를 단순히 만족시켜야 하는 것인가? 그 때문에 이기고 진다. 어쩌면 질지도 모른다.

감독으로써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감독은 그러한 선택에 따라 (판단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판단을 잘 하기 위해서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한 때 선수를 무언가의 부품이 아닌, 인간으로써 생각하려 하고 있다. 인간성을 중요히 여기고 싶다는 것이다.


카와구치 인터뷰

한일전에 의욕을 보이는 주장 카와구치[川口]

■ 한국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일본도 강해졌다.


- 카와구치 선수, 아쉽게도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내일 시합에 임할 것인가요?


한국과 결승에서 시합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안타깝지만 (3위 결정전이라고 해서)지지 않겠다. 한국과는 지금까지도 중요할 때 싸워왔다. 한국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일본도 강해졌다. 어쨌든 내일은 이동이나 스케줄 문제도 있지만 모든 것을 극복하는 듯한 시합으로 하고 싶다.


- 지금까지 한국은 그다지 점수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데, 공격진의 인상은?


시합을 (비디오로) 보았지만 한국의 골운이 없었던 것 뿐으로 상대팀 DF에게 맞았다거나, 코스가 조금 벗어난 정도였다. 이라크와의 시합에서도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역시 조금도 틈을 보일 수 없는 시합 전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수비도 안정되어 있기에 골을 넣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로스에 이은 공격도 박력이 있다.

Posted by 渤海之狼
l
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japan/column/200605/at00009088.html

저자: 우츠노미야 테츠이치
 

[서프라이즈]는 무엇이었나?


 IC레코더로 회견의 음성을 다시 들어보았다.

 평소보다 엄숙히 선수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읽는 지쿠, [카와구우치]부터 시작하여, 이후는 [카아지], [알렉스] [낫카아타 히-데]하며 변함없는 멤버를 막힘없이 계속하여 23사람 째에 [마아키]의 이름이 불려지자, 회장에서 [오오~]하며 웅성거렸다. 이 순간 팽팽했던 회견장의 공기가 자연스럽게 풀리며 안도하는 분위기로 차 가는 모습이 재생된 디지털 음성에서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쿠보[久保 = 요코하마 F마리노스]의 낙선과, 마키[巻 = 제프유니이티드 치바]의 역전 당선. 현 상태에 있어서 양 선수의 컨디션 차이를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이다. 요 일주일간 계속 미디어에 의해 선전되어 온 [서프라이즈는 있는가?]라는 물음은 결국 [지쿠는 현명한 선택이 가능한가?]와 같은 뜻이었다.

항상 지쿠는 선수 선발의 기준을 [대표팀에 대한 공헌도]라고 명언해 왔다. 위로 여행으로 독일로 가는 것이라면 이 기준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싸우기 위해서, 이기기 위해서 독일에 가는 것이라면 때가 때이니 만큼 [공헌도]는 팀 편성의 장해물이 된다.

[공헌도]로 선택된 멤버 = 일본 최강 멤버라는 보증이 어디에도 없는 이상 지휘관은 개개의 선수에 대한 온정이나 의리나 아름다운 추억을 모두 떨쳐버리고, 냉정한 판단과 투철한 현실 인식에 따라 멤버 선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지쿠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라는 것. 이것이 소위 [서프라이즈]의 정체였다.


어쨌든 최후의 최후의 타이밍으로 지휘관은 쿠보를 포기하고 마키를 선택했다. 물론 쿠보의 드문 잠재능력을 누구보다도 평가하고 있던 지쿠에게 있어서 이 결단은 읍참마속의 기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정말로 쿠보는 굉장히 좋은 선수. 수년간 죽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았는데 그의 플레이를 정말 좋아했다. (중략) 어떻게 해도 완벽한 컨디션이 아니기에 마지막까지 생각한 결과 이러한 일(낙선)이 되었다.] (지쿠)


지쿠의 멤버 발표라 한다면 지금까지는 신선미도 기대감도 떨어지는 일이 많았지만 최후의 최후에서 지휘관은 승부사로써의 현실 인식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2대회 연속으로 눈물을 삼킨 쿠보에게는 불쌍하다는 마음도 있지만 이번 지쿠의 결단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


높이가 없는 DF진, 경험이 없는 FW진


이번에 선택된 23명의 리스트에서 몇 개인가 신경 쓰이는 부분을 써 보겠다.

유럽 해외파는 과거 최다인 6명. 한편 국내파의 소속 클럽을 보면 간바 오오사카와 우라와 레즈, 쥬비로 이와타가 각각 3명으로 최다이다. 이외로 카시마 앤틀러즈에서는 오가사와라[小笠原]와 야나기사와[柳沢]의 두 명뿐. 지쿠가 처음 팀을 맡았을 때는 [카시마 지분]이라고 야유 받을 정도로 많은 수를 점하고 있었던 것을 돌이켜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그러고 보니 나카타 코우[中田 浩 = FC 바젤 1893]도 예전엔 카시마였다.). 그러고 보면 쿠보나 마츠다[松田]라는 다른 선수와 바꾸기 어려운 재능을 다수 가지고 있는 요코하마 F-마리노스에서는 결국, 나카자와[中澤] 한 선수밖에 선택되지 않은 것도 이외라고 하면 이외였다.


포지션 별로 살펴보자.

우선 GK. 이 세 명은 철밥통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실상의 레귤러 GK는 카와구치[川口 = 쥬비로 이와타]지만 등번호가 몇 번일지가 더 궁금하다. 카와구치의 [1]번에의 집착은 유명하지만, [23]은 그의 복귀 극을 상징하는 숫자. 과연 그는 어느 번호를 바랄까? 참고로 과거 2대회, 일본 골 마우스를 등번호 [1]이 지킨 적은 없다.


DF는 4백을 상정해서 X 2인 8명. 나카타 코우는 알렉스(우라와 레드다이야몬즈)의 백업으로써 DF에 등록되어있다. 하지만, 주~욱 둘러보아도 높이가 없는 수비진이다. DF의 평균 신장은 178.5Cm. 180Cm대는 나카자와(187)과 나카타 코우(182) 이 두 선수뿐. 이 높이로 비두카(188 = 미들스브로)나 프루소(187 = 레인져스), 아드리아노(189 = 인테르)와 대전해야 한다는 것이 약간 걸린다 - 아니 굉장히 걸린다.


MF는 FW쪽이 한 명 더 뽑혔기에 7명. 공격적 MF는 나카타 히데[中田 英 = 볼튼]를 포함한 3명, 수비적 MF는 4명이라는 구성이다. 얼핏 보면 나카무라(中村 = 셀틱)의 백업이 될 만한 선수가 보이질 않는다. 엔도우[遠藤 = 간바 오오사카]가, 키린 컵에서 공격적인 포지션을 맡은 적이 있는 것을 보면, 그가 그런 역할을 맡을 것인가? 어쨌든 [공헌도]의 차이로, 엔도우는 마츠이[松井 = 르망]를 제치는 것에 성공했다.


FW은 과거 최다인 5명. 그러나 뭐라고 할까……. 이 중에서 월드컵 경험자는 부상에서 막 나은 야나기사와(카시마 앤틀러즈) 단 한 명. 그 야나기사와도 전 대회에서는 노골이었다. 쿠보의 이탈로 팀 내의 A매치에서 최다 득점자는 17골의 야나기사와 이어서 타카하라(高原 = 함부르크SV)가 나카무라와 더불어 15골을 넣고 있지만 월드컵에서 이 숫자를 늘리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야나기사와가 하루라도 빨리 뛸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뭐라 해도 마키. 얼마나 시합에서 뛸지 알 수 없지만 조커로 출장해서 스타디움을 들끓게 하는 그 존재감은 석년의 오카노(岡野)[각주:1]를 생각나게 한다(타입은 완전히 다르지만). 독일에서의 활약여하에 따라서는 이번 대회가 유럽 진출의 발판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이외로 본 대회에서 크게 성장할 타입일 지도 모르겠다.


선발되지 않은 멤버들에 대해서


이즈음해서 낙선된 쿠보 이외의 선수들에 대해서도 언급해 본다.

우선 스즈키[鈴木 = 레드스타 베오그라드]. 쿠보와 마키의 존재로 인해서 발표 회장에 있던 기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그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일까? 스즈키가 선발되지 않은 것에 대해 지쿠에게 질문한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스즈키라 하면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트루시에 저팬의 스타팅 FW이며 2002년 대회에서 일본의 첫 골을 넣은 선수이다. 그 때부터 4년. 스즈키에 대해서 묻는 질문이 하나도 없는 것에 시간의 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역시 트루시에 저팬의 멤버로써 바로 직전인 키린 컵에서도 선발되고 있던 부동의 19번. 모토야마[本山 = 카시마 엔틀러스]의 이름도 잊을 수는 없다. 이 선수의 경우 현 체재에서 단순히 [머릿수 채우기]로 뽑히는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FW로 기용되는 일도 있었다. 대표에서 서열은 동료인 오가사와라보다도 아래이며 특히 인상에 남는 플레이나 골도 없었다. 그래도 모토야마는 팀을 뒤에서 지탱하는 얻기 어려운 존재였던 것도 사실. 그런 만큼 예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던 것은 모토야마에게 있어서도 우울했을 것이다.


무라이[村井 = 쥬비로 이와타]의 경우 이 날을 맞이하기 전에 비극적인 부상을 입었기에 안타깝다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지쿠에게 있어서는 나카타 히로쪽이 서열이 위였을 테지만, 그래도 그의 정밀한 크로스는 버리기는 아까워서 알렉스의 백업으로서는 이상적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확실히 치료를 받아 하루라도 빨리 필드로 돌아와 주길 바란다.


가장 아깝고 가장 재능을 기대 받았으며 그리고 지난 시즌 가장 유럽에서 성공한 일본인 마츠이의 낙선은 낙담 이외에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나카무라의 백업으로써는 더할 나위 없으며 연령적으로도 큰 무대를 경험하기에 가장 이상적이었으며 무엇보다 프랑스의 팬들도 인정한 그 테크닉을 독일에서도 보고 싶었던 것은 결코 나뿐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츠이가 뽑히지 않은 것은 현 대표뿐 만아니라 4년 후의 대표에게 있어서도 비운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마츠이와 같은 아테네 세대의 DF 모니와[茂庭 = FC 토우쿄우]의 낙선도 이외였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이 정도로 높이가 없는 일본 수비진에게 있어서 나카자와의 대역으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가 모니와였다. 또한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계에서 얻은 쓰라린 경험도 팀에게는 플러스 재료가 될 터였다. 그러나 올 해 들어서부터 대표에 소집은 받지만 거의 출장하지 못했다. DF라는 포지션이기에 서열을 올릴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은 것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사토우 히사토[佐藤 = 산프레체 히로시마]. 어떤 의미로 본인에게도 주위에도 예상된 결과였다. 하지만 여기서 좌절할 사토우는 아니라고 나는 믿고 있다.

올해 들어서부터 사토우의 플레이에는 대표에서도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도 장난이 아닌 [굉장함]과 눈을 번쩍 뜨게 할 [상쾌함]이 느껴졌다. 대표에서는 FW의 서열에서 제일 마지막, 히로시마에서도 이기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 최하위 근처를 방황했다. 어디로 가든 역경이라는 속에서 결코 비탄에 빠지는 일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던 그의 한결 같은 모습에, 때로는 냉소적이 되기 쉬운 팬의 마음에 뜨거운 열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대표에서의 싸움은 우선은 종결. 그러나 J리그에서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된다. 필자는 결코 히로시마 팬은 아니지만 사토우 히사토라는 풋볼러에게는 앞으로도 계속 마음속으로 성원을 보내고 싶다.


약속으로 끝난 [아테네 경유 - 독일 행]


어쨌든 독일로 향하는 23인의 사무라이들이 결정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좀 더 긍정적으로 [힘내라~!]라는 내용의 원고를 쓸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협회도 팬도 미디어도 스폰서도, 그야말로 거국일치된 한 목소리로 성원을 보내는 것은 대표가 독일에 가서부터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번 멤버 선출에 대해서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문제 제기하고 이 글을 끝내고 싶다.


그건 다름 아닌 그 [아테네 세대]에 관해서다.

이번 23명 중에 아테네 올림픽 대표 멤버 중에서 선출된 것은 오노[小野 = 우라와 레드다이야몬즈]와 코마노[駒野 = 산프레체 히로시마]뿐. 라고는 해도 오노는 물론 오버 에이지였으며 코마노도 부상 때문에 최종 예선에는 출장하지 않았다. 그렇다, 저 아부다비에서의 사투(선수 대부분이 원인 불명의 설사에 고통 받았다)나, 토우쿄우[東京]-코쿠리츠[国立]에서의 환희([보이지 않는 적] 바레인과의 데드 히트)를 경험했던 선수들 - 앞서 이야기 한 마츠이나 모니와 외에도 여태까지 지쿠에게 소집된 적도 있는 아베[阿部 = 제프유나이트드 치바], 콘노[今野 = FC 토우쿄우], 타나카 타츠야[田中 達也 = 우라와 레드다이야몬즈], 오오쿠보[大久保 = 전 마요르카], 이시카와[石川 = FC 토우쿄우] 또는 지쿠가 쳐다보지도 않았던 투리오[鬪莉王 =우라와 레드다이야몬즈], 히라야마[平山 = 헤라클레스], 나스[那須 =요코하마 F마리노스], 타카마츠[高松 = 오오이타 트리니타], 토쿠나가[徳永 = FC 토우쿄우](거기에 그들과 동세대인 하세베[長谷部 = 우라와 레드다이야몬즈]를 더하면 좋을 것이다)등등. 그러한 차세대를 짊어져 갈 세대의 재능들이 이번에 한 사람도 뽑히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당시의 야마모토 마사쿠니[山本 昌邦] 올림픽 대표 감독이 캐치 플레이즈로 사용했던 [아테네 경유 - 독일 행]은 결국 입으로만 한 약속밖에는 되지 않았다.

라고는 해도 이것은 야마모토 감독 때문도 지쿠 감독때문도 아니다. 책임은 세대 간을 연결할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일본 축구 협회에게 돌려야 한다.


생각해 보면 98년 멤버에는 21살의 나카타 히데와 18살의 오노가 있었다. 2002년에는 빼어난 활약을 한 젊은 선수는 없었지만, 카와구치, 나라자키[楢崎 = 나고야 그램퍼스에이트]의 GK진, 그리고 나카야마[中山 =쥬비로 이와타]와 아키타[秋田 = 나고야 그램퍼스에이트, 당시 가시마 앤틀러즈]의 베테랑진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전임자인 투르시에가 찾아낸 [황금 알]들이었다. 이러한 과거의 선행 투자가 지금의 대표를 지탱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지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하지만 현 감독은 이런 유산을 낭비할 뿐으로 다음 세대를 향한 선행 투자라는 것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이번 리스트로 눈을 돌려주길 바란다. 이 중에 4년 후의 대표 캡틴이나 리더십을 발휘할 만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는가? 4년 후의 월드컵 본선으로의 꿈을 맡길 수 있을 듯한 [미래의 미야모토(宮本)]나 [미래의 나카타 히데]를, 이 리스트에서 상상하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 이 리스트는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4년간의 결과이다. 이 사이에 아테네 세대의 정예를 퍼스트 팀으로 올려 주는 방책이나 그라운드 디자인이 제시되지 않은 채 오늘이라는 날을 맞이해 버렸다. 그리고 현재 25세 전후인 아테네 세대는 가장 성장할 시대에 세계를 체험하는 기회를 [빼앗겼다]는 것이 되었다. 4년 후가 있어? 물론 그렇긴 하다. 하지만 2010년 만약 월드컵 본선 출장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도 이미 그들은 29세. 지금의 나카타 히데와 같은 연령으로 난생 처음 월드컵을 맞이하게 된다. 이 현실을 우리들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멤버 발표에서 하룻밤이 지났다. 오늘 스포츠 신문 각지는 마키 일색. 인터넷에서도 [쿠보가...][마키가...]하며 떠들썩하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23명의 리스트에서 단순히 독일에서의 시합만을 논하는 것은 철이 너무 없다고 생각이 되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지쿠가 생각한 끝에 제출한 리스트. 그 반대편에 비쳐지는 포스트 월드컵의 풍경에 대해서도 우리들은 직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1. 1998년 예선 플레이오프 이란전에서 골을 넣어 첫 월드컵 출장을 결정지었다. 일본에선 조커의 대명사로 불림 [본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l
 저자 : 하라 슈이치로
 

한국 대표의 새로운 별이 지금 쥬비로 이와타에서 독일로 비약하려 하고 있다.

DF의 김진규1985년 2월 16생인 21작년 20살의 생일에 발표한 쥬비로로 이적할 당시 이미 전년 아시아 컵 3시합을 포함한 A매치 8시합 출장(선발 7시합) 1득점의 대표 기록쥬비로 가입 후에는 월드컵 최종 예선 3시합동아시아 선수권 전 3시합에 풀 출장작년 10월 아드보카드 신 감독 취임 후에도 변함없이 대표에 계속 소집되고 있는 한국대표 주력선수의 하나다.

 

 신장 184Cm, 체중 80Kg라는 당당한 체구반할 정도인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 30미터가 넘는 FK을 낮고 날카로운 탄도로 직접 골을 넣는 파워도 가지고 있다또한 하이볼에서의 몸싸움은 수비시의 공헌뿐만 아니라 셋트 플레이에서 상대 골 앞에서 위협적인 존재로 변한다고교 졸업 직후 K리그에서는 2시즌에서 2득점작년 J리그에서는 1득점한국대표팀에서는 3득점을 올리고 있는 “득점력 있는 DF"인 것이다.

 

어느 선수보다도 지는 것이 싫다.

 

당신의 축구 이력을 알려 주세요.

 

초등학교 때는 GK부터 시작했습니다그 후에 DF FW에서 플레이 했습니다. DF전문으로 플레이 하게 된 것은 고교3학년 때부터입니다. DF쪽이 보다 성공할 거라는 감독의 판단이었습니다저는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었습니다만 고등학교의 감독과 부모님이 서로 알고 있어서 안동고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안동고교의 감독님과의 만남이 제겐 커다란 성장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DF에서 플레이 하고 있으면서골을 빼앗기는 것이 싫었습니다단지 DF라서 슛이나 골을 넣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FK으로 골을 노리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부터입니다. 2시합에 1점은 FK에 의한 골이었습니다.

 

작년 쥬비로로 이적해왔을 즈음은 말 없는 인상이었습니다만?

 

처음은 일본어를 몰라서 팀에서 별로 말하지 않았습니다그 때는 제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없어서 초조했습니다방이 많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기에 외로운 날도 있었습니다식사나 날씨는 한국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습니다만 차가 좌측통행이라거나 말이 다른 것에는 당혹했습니다단지 그렇다는 것이지 쥬비로에서 커다란 불편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쥬비로로 이적해 와서 느낀 점은?

 

경기 레벨에서 커다란 차이는 없습니다전남 드래곤즈는 한국에서 탑 클래스의 팀이었으며 쥬비로도 일본에서는 탑 클래스의 팀입니다단지 서포터는 일본 쪽이 많이 와주십니다이런 점에서 쥬비로로 이적해 온 것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선후배의 관계가 일본보다 엄격합니다만 그렇다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며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저는 선배(선수)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규율이 보다 유지되기에 개인적으로는 한국과 같이 선후배의 관계는 약간 엄격한 편이 좋다고 느낍니다.

 
거기에 한국 선수는 지는 것을 정말로 싫어하기에 지면 다음 시합을 향해서 정신을 무장시키며 그런 식으로 준비해 가기 때문에 일본보다 국제 대회에서 보다 좋은 성적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쥬비로의 다른 선수들도 지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지는 것이 정말로 싫기 때문에 지면 분하고 반성하며 다음 날에는 (진 시합의) DVD를 보면서 분석하고 잘 때도 계속 생각하면서 잡니다단지 어린 나이에 일본에 와서
…… 라고 해도 작년부터입니다만 침착한 플레이안정된 플레이시야의 확보를 쥬비로의 감독이나 코치선수들에게 배웠습니다그러한 점에 대해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1살의 어린 나이로 월드컵 무대에

 

 작년은 말이 통하지 않은 채 카고시마 캠프 종료 후에 J리그 개막 직전 팀에 합류. DF 스즈키 히데토[鈴木 秀人]의 부상으로 팀 동료와 익숙해질 틈 없이 개막전부터 계속 선발 출장을 했다일본 대표 선수 3(카와구치 요시카츠[川口 能活], 챠노 타카유키[茶野 隆行]무라이 신지[村井 二])와 함께 야마모토 마사쿠니[山本 昌邦]감독이 이끄는 쥬비로의 대형 보강 정책의 일원으로 큰 기대를 받았지만 팀 전체가 리빌딩에 따른 악전고투 중이었다말이 잘 통하지 않는 연계의 미스를 상대에게 뚫려 실점해서 지는 일도 있었다지는 것이 굉장히 싫은 김진규에게는 굉장히 괴로운 시기였을 것이다스즈키 히데토의 복귀 후에는 벤치를 데우는 일도 있었지만 주전 포지션을 다시 획득하여 올해 4월에 들어서 안정되어진 쥬비로의 디펜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쥬비로에서 안정됨은 월드컵을 향한 자신감으로 연결될 터이다.

 

올해 21살로 월드컵에 출장할 수 있는 커다란 기회가 생겼습니다.

 

월드컵에 출장할 수 있다는 기대는 굉장히 큽니다어렸을 적부터 꿈꾸어 오던 대회이기에 이렇게 빨리 출장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월드컵을 경험하여 선수로써 더욱 레벨 업하고 싶습니다.

 

어린 나이에 월드컵에 출장하는 것에 불안은 없습니까?

 

어렸을 적부터 축구를 해 오면서 불안과는 항상 부딪혀왔습니다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왔기에 불안에 눌리는 일은 없습니다이번 월드컵 (그룹 리그)에서의 상대는 프랑스스위스토고라는 강호 국들뿐입니다상대 팀에는 유명한 선수가 많습니다만 두려워하지 않고 맞부딪혀 갈 것입니다.

 

 한국어로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있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미로 프로선수로서 마케팅 툴은 아니다원래의 한국어에서 벗어난 생기있는 문자나 말을 사용해서 축구 뿐만 아니고 일상적인 일도 즐겁게 글을 올리고 있다잘생긴 얼굴과 근육질인 커다란 몸 때문에 위압적이고 다가서기 어려운 듯이 보이지만 그의 진실한 모습은 밝고 인생을 즐기는 21살의 청년이다자신의 홈페이지 ID를 영덕 대게라 한다장난으로 한 것도 있지만 출신지의 토산품에 긍지를 넣어서 지은 것. "코믹컬한 닉네임이네요"라는 물음에, "게를 먹어서 크고 건강하게 자랐으니까요"라고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쥬비로에서 플레이하는 사랑스런 한국 청년을 주목하면 월드컵 관전에 또 하나의 즐거움이 더할 터이다.

Posted by 渤海之狼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