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ocn.ne.jp/sports/soccer/soccer090409_1_1.html
저자: 조나단 윌슨
잉글랜드의 축구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렇게까지 주목을 끄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번에는 현지기자 조나단 윌슨이 직접 경험한 것들을 섞어가며 해설. 축구 인기 정착의 배경부터 바탕에 깔린 것에 이르기까지 잉글랜드의 축구 문화를 깊이 파고들어 보자.
‘예배’보다 ‘관전’이 자리잡은 풍토
축구는 낚시와 달리기에 이어 잉글랜드에서 3번째로 경기인구가 많은 스포츠이며 팀 스포츠로써는 단독 1위이다. 또한 관전 스포츠로써도 그레이하운드 레이스(멍멍이 경주)나 경마를 제치고 수십 년간 톱을 유지하고 있다.
관전빈도에 관해서 경이적인 자료가 있다. 경건한 기독교 신도가 많은 잉글랜드이지만 성인남성에 있어서는 어느 통계를 보더라도 교회에 가는 횟수보다 축구관전을 하러 가는 횟수 쪽이 더 많은 것이다. 거기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신문지면의 대부분도 축구가 차지하고 있어 다른 스포츠를 전부 합치더라도 축구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취급하고 있다. 스포츠 뉴스에서 축구가 제일 앞머리에 나오지 않는 때는 올림픽 기간 중이나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중대한 뉴스가 생겼을 때 정도이다.
당연히 특별한 인기가 있는 만큼 그 주변에서 움직이는 돈도 자릿수가 다르다. 축구 톱 플레이어의 연봉은 500만 파운드를 가볍게 넘기는데 이는 영국에서 비슷하게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크리켓 톱 플레이어보다 10배 이상 많다. 또한 프리미어리그에 소속된 클럽의 연간 수익은 스폰서료나 티켓요금, 텔레비전 방영권을 합쳐 5000만 파운드가 넘는다.
잉글랜드의 축구는 스포츠라는 영역을 뛰어넘어 하나의 커다란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 남미에서는 ‘축구가 생활의 일부’인 나라가 몇 개있지만 유럽에서는 드물다. 거기에 축구를 둘러싼 금전에 관해서는 남미와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잉글랜드에서 이렇게까지 축구가 주목을 모으는가? 이번엔 ‘종주국’의 축구 인기 이유를 파헤쳐 보자.
간단한 규칙으로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축구를 즐기는 경기인구수가 많은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예전보다 복잡해졌다고는 해도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다. 럭비나 크리켓에 비해서 룰도 익히기 쉬우며 어린이라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플레이에 필요한 도구도 거의 없다. 공원이나 빈터, 주차장 등 어디서건 가능하다. 높은 보급률도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축구는 누구라도 ‘영웅’이 될 수 있다. 초짜라면 크리켓의 보울러(야구의 투수와 같은 역할을 담당)같이 빠른 공을 던지는 것도 불가능하며, 럭비에서 몇 명을 쓰러뜨려 가며 트라이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축구에서는 쌩초짜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골을 넣을 수 있다. 조기축구에 참가한 여성이나 아이가 이외의 활약을 보이는 장면은 누구나가 한번 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축구의 큰 매력이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예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드윈 판데르사르에게서 골을 빼앗은 경험이 있다. 축구선수로서는 최저레벨인 필자이지만 아디다스의 이벤트에 참가했을 때 유벤투스의 알렉산드로 델피에로와 절묘한 호흡을 발휘하면 저 위대한 GK가 지키는 골문을 뚫은 것이다. 이는 지금도 필자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최고의 추억이다. 축구 경험자라면 필시 이와 같은 인상적인 경험을 몇 개정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경기인구수의 많음에 더하여 또 하나 축구를 인기 스포츠로 만든 이유가 있다. 그것은 100년 넘게 국민이 축구에 심취해 온 역사이다.
부친이 매주 축구를 보고 있으면 아이에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활의 일부가 된다. 잉글랜드에서는 각 가정에 5~6대의 전세대부터 축구관전이라는 풍습이 정착되어 있다. 물론 필자의 가족도 그 중 하나이다.
필자의 부친이 큰 수술을 받기에 최근 필자는 런던을 떠나 고향인 선덜랜드로 돌아와 완치될 때까지 간병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선덜랜드의 홈 게임을 관객석에서 볼 수 있었는데 거기서 필자는 새삼 축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실감하게 되었다.
시합 전 퍼브에서 옛 친구와 재회했을 때 우선 느낀 것은 친구도 포함하여 그 장소에 있던 모두가 축구에 대해서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선덜랜드의 인구는 25만인데 1시합 관전에 모여드는 팬은 4만. 전 시민의 약 1/8이 스타디움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퍼브에 오는 녀석들이라면 열렬한 지지자이지 아닐 턱이 없다.
필자는 5살 때 부친에게 이끌려 처음으로 축구를 관전했다. 그로부터 14살이 될 때까지 매 시즌 6번 정도는 선덜랜드의 본거지로 돌격했다. 그 후에는 친구들과 보러 가게 되어 어느 샌가 홈 게임은 빼놓지 않고 관전하게 되었다. 더해서 선덜랜드의 홈 시합과 겹치지 않는 옆 마을 뉴캐슬의 시합도 보러 가게 되었다.
이렇게 많이 시합을 보러 갈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입장료가 굉장히 쌌기 때문이다. 아이라면 2파운드 50펜스였기에 지금 15파운드의 약 1/6로 입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선덜랜드는 다음 시즌 입장료를 인하하기로 결정하여 16살 이하의 아이는 어른과 함께라면 1파운드로 관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정말 기쁜 뉴스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의 많은 아이들에게 있어 자주적으로 축구 관전을 하러 가는 것은 음주나 직업과 마찬가지로 어른이 되기 위한 ‘성인식’과 같은 것이다. 어느 지역에건 축구 클럽이 하나는 있기에 한 번도 축구를 보러 간 적이 없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리고 이 ‘성인식’은 지금도 변함없이 행해지고 있다.
노동자층을 포로로 만든 19세기 유일의 오락
새삼스럽겠지만 여기서 축구가 잉글랜드에 정착된 경위를 설명해 본다.
축구가 프로 스포츠화 되어 내셔널 리그가 탄생된 1888년은 잉글랜드의 주요 산업인 광업과 조선업의 노동조건이 개혁된 시기이기도 하다. 토요일은 하루의 반만 일하는 것으로 의결되어 오후는 휴업이 의무화되었다. 거기에 일요일은 교회의 예배가 있기 때문에 축구는 국민들이 한가한 시간으로 여겨지는 토요일 오후에 개최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다른 스포츠 등의 오락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이 시대에 일에서 해방된 남성들은 자연스럽게 축구로 눈을 돌리게 되어 어느 샌가 축구관전이 생활화되었다. 물론 이것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음주(예전엔 끽연도)가 자유라는 것도 있어 스타디움은 청년남성들에게 있어 좋은 사교장이 되었다. 또한 상대 팀이나 심판에 대해서 맘껏 야유를 보낼 수 있는 것도 평소의 스트레스를 발산하기에 바라 마지 않던 환경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거기에 선수와의 거리감도 현재와 비교하여 굉장히 가까웠기에 팬은 자기 지역 팀에 대해서 각별한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노동자에게 있어 얼마나 축구가 중요했었는지는 다음과 같은 사례로도 알 수 있다. 1933년 FA컵 5회전, 선덜랜드 vs. 더비. 수요일에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스탠드에 몰린 팬은 7만5000명 이상. 어떻게 평일에 이렇게 많은 관객이 몰릴 수 있었을까?
실은 선덜랜드의 탄광이나 조선소가 다 함께 임시휴업을 하여 그 주의 토요일에 일하기로 조정한 것이다. 이 시기는 대공황으로 인해 노동자가 절대 약자인 시기임에도 불구하고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노동시간의 변경이라는 ‘폭거’에 나서 스타디움으로 달려간 것이다.
잉글랜드 국민에게는 인생의 ‘필수품’
축구는 우리들 잉글랜드 국민에게 있어 사회적 문화이다. 탄광이나 조선소에서 5일간 일한 뒤 맥주를 마시면서 시합을 본다. 이 정형화된 사이클이 100년 이상 이어져 이제는 일상생활하고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 생활의 리듬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에게, 아버지에서 아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것은 앞서 말한 대로 어른이 되기 위한 ‘성인식’이며 동시에 부자의 인연을 깊게 하기 위한 ‘의식’이기도 하다.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폭적인 룰 변경이 없는 한, 혹은 ‘축구 버블’이 꺼져 프리미어리그 자체가 몰락하지 않는 한 팬이 축구에서 이탈하는 일은 없으며 이 사이클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참고로 필자가 몇 일전에 관전한 선덜랜드 vs. 위건의 시합(3월 14일 개최)은 1-2로 선덜랜드가 패했다. 강한 바람과 최악의 필드 상태. 선덜랜드는 뭐 하나 좋은 것 없이 홈에서 중위권 라이벌에게 패배를 당했다. 보는 사람에게 있어선 좋지 않은 뒤끝만 남은 시합이었다.
그러나 이 시합을 본 것이 손해였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결과는 둘째인 것이다. 2부 강등이라도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한 시합 한 시합 즐기는데 있어 우리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친구나 이웃 혹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같은 팀을 응원함으로써 친교를 더해가며 평소의 피로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이것이 잉글랜드 국민의 축구 관전의 진수인 것이다.
필자 자신도 오래간만에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선덜랜드의 홈 스타디움)를 찾아 축구의 즐거움을 재확인하였다. 고향과의 끈이나 친구들과의 교유, 골이 들어 갔을 때의 흥분… 이런 것들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역시 축구는 종교나 정치와 마찬가지로 우리 잉글랜드 국민에게 있어 인생의 ‘필수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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