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타사라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06.02 '충실감'과'존재감'-이나모토의 터키에서의 시즌을 되돌아 보며 by 渤海之狼
  2. 2006.05.08 세계에서 가장 큰 더비 by 渤海之狼 2

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607/other/column/200705/at00013382.html

저자:와타나베 마사유키


<터키 갈라타사라이에서 1시즌을 보낸 이나모토 쥰이치. 그의 풋볼라이프에서도 충실한 시간을 보낸듯 하다>
【Photo:AFLO】

[시즌을 통해서 플레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잉글랜드에서는 경험한 적이 없었던 것이었기에 충실감은 있다.]

[다음 시즌은 시합에서 더욱 많이 존재감을 나타내고 싶다]


이나모토 쥰이치는 5월 25일에 행해진 터키 리그 마지막 라운드, 부르사스포르 시합 후에 이렇게 시즌을 되돌아보았다.이나모토가 갈라타사라이에서 보낸 시즌을 되돌아보았을 때 [충실감]과 [존재감]은 중요한 키워드이다.


■ [충실감] 속에서의 갈등


작년 9월 1일에 입단 후, 이나모토는 게레츠 감독의 신뢰를 얻어, 부상, 출장정지 이외는 주전으로써 계속 출전했다. 리그 30시합 중 25시합에 출전,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했던 큰 이유 중에 하나였던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6시합 중 5시합에 출전했다. 이 숫자는 이나모토가 팀의 주력이란 것을 증명하고 있다. 잉글랜드에서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던 이나모토가, 시즌을 뒤돌아보면서 [충실감]을 입에 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플레이 할 수 있는 기쁨을 느끼면서도, 주어진 역할에 대한 갈등도 있었던 듯하다.

시즌 종반인 26라운드 앙카라귀쥐와의 시합에서, 주로 원 볼란테로 플레이했다. 볼란테라기보다는, 양 사이드백이 극단적으로 공격 참가하여, 중반 외의 선수가 돌아오지 않는 등의 팀 사정으로 인해, 앵커(배의 닻이란 뜻: 디펜스 라인과 연계하여, 수비 안정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하는 포지션)로써 수비에서의 공헌이 요구되어지고 있었다. 이나모토는 이런 기용에 대해서,

[해본 적이 없는 포지션도 아니고, 감독에게 주어진 역할이기에 불만은 없다]고 투덜대는 일 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앙카라귀지와의 시합 이후, 팀은 투 볼란테 시스템으로 변경. 이 변경 후, 이나모토의 플레이에 변화가 보이게 되었다. 게레츠 감독이 [이나모토에게는 앞으로 올라가, 공격에 참가하길 나는 바라고 있다]고 이야기 했듯이, 역할이 변하여 볼란테로써 수비는 물론, 적극적으로 공격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나모토도 [진정한 내 포지션에서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시스템 변경을 환영하며, 진심을 말했다.


■ 평가로 직결된 [존재감]


시즌을 통해서 주전으로 출장한 이나모토였지만, 터키 국내에서의 평가는 어떠했을까?

이나모토는 현지 미디어에게 시즌 초반, 비판의 표적이 되어 [얌전하여 시합에서 플레이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나모토가 플레이하는 한, 10명으로 뛰는 거나 마찬가지다] 등, [존재감]이 없음을 언급 되어 평가도 낮았다. 물론, 이나모토의 전술이해도, 규율 있는 플레이, 항상 냉정한 플레이를 귀중한 존재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게레츠 감독도 이런 이나모토를 중요히 여겨 계속 출전시켰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터키 미디어와 서포터의 평가는 볼이 존재하는 곳에서의 움직임, 알기 쉬운 플레이에 한정된다.

볼이 없는 곳에서의 플레이, 이나모토가 요구받는 공간의 커버, 그리고 상대의 공격을 늦추기 위한 움직임 - 이러한 눈에 띄지 않는 플레이는 평가받기 힘들다.


스포츠 신문 [파나틱]의 갈라타사라이 담당인 라시트씨는 시즌 초반의 이나모토의 플레이를 [힘 있게 싸우는 플레이가 부족하다. 그 포지션이라면 좀 더 많은 카드를 받았을 터이다. 그 카드가 이나모토는 적다. 같은 축구라도 여기는 잉글랜드도 일본도 아닌 터키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같은 [파나틱]의 카메라맨은 이나모토의 플레이 모습을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나모토는 1대 1의 접촉 플레이가 적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도 그다지 사용할 수 없다. (몸싸움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카메라맨이기에 가능한 시점에서 이나모토의 플레이를 평가했다. 미디어나 서포터의 평가를 얻기 위해서만 플레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비의식이 낮은 팀 속에서 앵커로써 플레이하고 있던 이나모토가, 터키 국내에서 평가를 얻기에는 힘든 환경이었던 것이, 낮은 평가로 이어진 것도 사실이다.


<갈라타사라이에서는 챔피언스리그에도 출장. 5시합에 출장하여 골을 넣었다.>
【(C)Getty Images/AFLO】

■ 이나모토를변하게한 시스템 변경

시즌이 진행됨에 따라, 이나모토에 대한 비판은 서서히 적어졌다.

전환의 계기가 되었던 것은 역시 앙카라귀쥐와의 시합이었다.

환경에 적응한 것도 있어, 이나모토가 터키가 원하는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즌 전반 11시합에서 2장이었던 옐로카드가, 후반 14에서 5장으로 늘었다. 이 숫자는 그 만큼 몸싸움을 많이 한 증거이기도 하다. 1대 1 장면에서 몸싸움이 늘어남으로 인하여, 당연히 볼을 빼앗는 횟수도 늘었다. 거기서부터 공격의 시발점으로써의 역할을 해내었다.


시스템의 변경 이후는 공격에서도 존재감을 보일 수 있게 되어, 볼란테로써 볼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었으며, 드리블을 시도하는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물론 볼이 없는 곳에서의 움직임도 빛을 발해, 특히 빈 공간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은 미디어나 팬들도 감탄케 하였다. 이번 시즌 가장 좋았던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는 28라운드 겐츨레빌리기와의 시합에서는 [골을 노리고 있으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좋은 컨디션을 어필하여, 주위에 기대를 걸게 했다. 수비에서는 적확한 위치를 취하여 상대의 공격 시도를 무산시켰으며, 공격에서는 빈 공간에서의 움직임을 평가받았으며. 상대 팀의 감독이나 선수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선수로도 인간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존재감]을 보인 이나모토였지만, 좀 더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 좀더 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있었던 것은 본인도 자각하고 있을 것이다. 본문 초반에 소개한, [다음 시즌은 시합에서 더욱 많이 존재감을 나타내고 싶다]라는 말이 그 증거다. 이나모토는 게레츠 감독에게서 주어진 임무는 수행했지만, 플러스알파의 부분에서 부족한 것도 사실.

자기주장이 강한 터키사람들 속에서 얼마만큼 이나모토가 플레이로 자기를 표현 혹은 주장할 수 있었을까?

물론 팀 밸런스를 해치면서까지 주장하는 것은 단지 무모에 지나지 않지만, 팀 동료를 제어하며 자신이 올라가는 플레이나, 적극적으로 슛을 쏘는 장면은 시즌을 통해서 적었다.

이나모토가 [존재감]에서 부족했다고 의식하는 곳은 이러한 자기주장 부분이었다.

이나모토는 마지막까지 잔류를 희망했지만, 갈라타사라이 측이 계약 연장의 옵션을 행사하는 일 없이, 5월 2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했다. 계약이 연장되지 않았던 것도, 이 [존재감]이라는 부분이 부족했기에, 클럽 상층부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이나모토는 터키에서 보낸 시즌에 대해서, 마지막 시합이 된 부르사스포르와의 시합 후에 [말도 문화도 틀린 어려운 나라에서 축구 선수로써도 인간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정리했다. 그 말에는 축구 이외의 부분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던 [충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입단할 때에 [풋볼 라이프에 있어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했던 이나모토. 갈라타사라이에서의 1년은 결코 쓸데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곧이어, 이나모토의 새로운 풋볼 라이프가 신천지에서 스타트한다. 몇 번의 경험을 더해, 터키에서 스스로 과제로 남긴 [존재감]을 보일 수 있다면, 프랑크푸르트 입단 회견에서 사용했던 단어 - 한 단계 위의 [스텝 업]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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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와타나베 마사유키

"시합이 아닌 전쟁이다"고 하는 이스탄불 더비에는 경찰도 다수 출동

세계 3대 더비의 하나?


 [세계에서 가장 큰 더비의 하나]

 보통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어느 더비를 떠올릴까? 밀라노 더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셀틱과 레인저스의 글래스고 더비? 사람에 따라 떠올리는 더비는 틀릴 것이다. '리그가 있는 곳엔 반드시 더비가 존재한다'고 단언할 정도로 더비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각각의 나라, 응원하는 클럽에 따라, 더비의 가치는 틀려지는 것이다.

 터키에도 많은 더비가 존재한다. 흑해 지방의 클럽이 시합을 하는 흑해 더비, 에게해 지방의 클럽이 에게해 더비, 수도 앙카라에도 더비가 있다. 하지만 터키에서 더비라고 하면 이스탄불 더비를 지칭한다. 이스탄불에는 갈라타사라이, 페네르바체, 베식타시라는 3개의 빅클럽이 있지만 특히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체간 행해지는 이스탄불 더비가 터키에서 가장 커다란 더비이다. 많은 터키인들에게 있어서 더비라고 하면 이 이스탄불 더비를 지칭한다.


 더비에는 같은 도시나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클럽이 시합을 하는 로컬 더비와 그 나라를 대표하는 클럽간에 하는 내셔널 더비로 나누어진다. 이스탄불 더비는 그 이름대로 이스탄불을 거점으로 하는 클럽이 시합을 하는 로컬더비이다. 하지만 이 두 클럽은 터키에서 가장 많은 서포터를 보유한 클럽. 그 수는 국민 7000만 중 약 7할에 해당하는 5000만 명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이스탄불 더비는 로컬 더비이면서도 나라 전체를 끌어들이는 내셔널 더비이기도 한 것이다.


 터키 축구팬에게 있어서 더비는 축제이다. 터키 축구계가 가장 고조되는 것이 이 더비가 행해지는 시기. 작년 이스탄불에서 챔피언스리그의 결승과 이스탄불 더비가 겹쳤던 때에도 이스탄불의 거리는 챔피언스리그는 내팽겨 치고 더비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제목에 나온 말은 더비에 관하여 터키의 미디어가 보도할 때 반드시 사용하는 문구. 터키에서는 대전하는 클럽의 역사와 팬들 간 종교의 차이, 계급차로 판단하여 이스탄불 더비는 글래스고 더비, 부에노스아이레스 더비와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더비의 하나]로 보도하고 있다. 우리들 제 삼자가 보기에는 좀 과장된 표현으로 느낄 이러한 표현도 양팀 서포터의 수가 5000만인이라는 숫자로 생각해보면 [착각]이나 [과언]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호적인 관계였던 두 클럽


 자칭 '세계에서 가장 큰'이라는 이스탄불 더비는 대체 어떠한 것일까?
 양 클럽의 서포터는 [더비는 시합이 아니다. 전쟁이다]고 매 시합 뜨거워진다. [전쟁이다라는 등의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터키에서는 소동이나 난투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라는 비판적인 의견도 있지만, 현재 이스탄불 더비는 시합이라기보다는 전쟁인 것이다. 실제 양 서포터가 충돌하여 피 흘리는 일 없이 끝난 적은 없다고 말해도 좋다.


 무엇이 여기까지 양 클럽을 불태우는 것일까?
 이스탄불 더비에는 글래스고와 같은 종교적인 배경도,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같은 계급차에 의한 배경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 있는 것은 양 클럽의 약 100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 쌓여진 라이벌심뿐이다.

 갈라타사라이는 1905년, 페네르바체는 1907년에 창립된 역사 있는 클럽이다. 갈라타사라이는 지금도 터키의 엘리트 학교로 유명한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가 만든 스포츠클럽이다. 당시 이스탄불에 살고 있던 잉글랜드사람들이 만든 스포츠 클럽에 대항하기 위해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모아서 만든 클럽. 그것에 대하는 페네르바체도 갈라타사라이와 같이 잉글랜드사람들의 클럽에 대항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만든 것은 시민이며 갈라타사라이에 비하면 일반사람들에게 열린 클럽이었다.


 양팀은 97년 전인 1909년 1월 17일에 처음으로 시합을 하여 당시엔 2-0으로 갈라타사라이가 승리했다. 당초 '엘리트 학교의 갈라타사라이'에 대하여, '시민의 페네르바체'라는 조그마한 계급차가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과격한 라이벌 관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경재 상대라는 느낌으로 양팀의 관계도 양호했다.


 라이벌 의식이 과격해진 것은 근년이 이르러서라고 한다. 현재도 뜨겁게 응원하는 늙은 베테랑 축구 팬에게 당시의 상황을 물어보자 "그때는 상대 팀의 서포터라도 바로 옆에 앉아서 각각의 클럽을 응원했다. 물론 지금과 변함없는 분위기가 있었지. 라이벌에게는 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필사적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전쟁이다'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굉장히 멋진 분위기가 스타디움에는 있었다"고 옛날이 그리운 듯이 말했다.


354회째의 이스탄불 더비는 홈인 페네르바체가 갈라타사라이를 4-0으로 대파

형태를 바꾼 더비와 현재의 클럽 사정


 그렇다면 무엇이 양 클럽 관계를 악화시킨 것일까?
 전국 리그로 시작한 1959년 이후의 리그 우승 횟수가 나타내듯이(갈라타사라이 15회, 페네르바체가 16회) 양 클럽이 터키 축구계의 맹주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것 그리고 같은 도시에 거점을 두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강렬한 라이벌심이 관계를 변화시킨 커다란 요인인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관계악화의 원인으로 미디어가 발달한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써 들 수 있다. 특히 TV의 보급에 따라 [외국에서는 같은 도시의 클럽간의 시합은 대항의식이 있어 과격하게 불타오르는 것 같다]라는 정보가 일반 터키사람들에게 보급되었다. 이것이 더비의 분위기를 바꾸는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고도 한다.

 또한 1988년 리그가 민영화된 것도 더비의 변화에 박차를 가했다. 민영화에 따라 각 클럽이 많은 자유를 얻은 이해를 기점으로, 지금은 당연한 것이 되어있는 원정팀 서포터용의 자리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기념할만한 최초의 원정팀 서포터 자리를 차지한 것은 갈라타사라이와의 더비를 관전했던 페네르바체 서포터였다고 한다.


 이러한 양팀 관계 악화를 선동하는 상징적인 것으로 클럽의 커다란 수입원이 되는 서포터 굿즈를 들 수 있다. 더비에서의 대승을 기념하여 곧바로 여러 가지 굿즈가 상품화되어 판매된다. 페네르바체는 2002년에 6-0으로 승리했던 기념 머플러를, 갈라타사라이는 작년에 5-1로 승리했던 기념 T셔츠를 판매했다. 서포터들에게 있어서는 상대를 도발하는 멋진 도구이며 상대 서포터는 그 굿즈를 볼 때마다 굴욕적인 대패를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다.


 97년이라는 역사 속에 터키 축구를 둘러싼 환경은 크게 변하여 [더비는 전쟁]이라고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클럽 자체의 사정도 변했다. 갈라타사라이는 임원진 등 클럽의 상층부만은 엘리트 학교의 피를 이어받고 있지만, 티켓도 싸며 서포터에 대하여도 열린 클럽이다. 반대로 페네르바체는 서포터 카드를 만들어 카드 구입자에게 우선적으로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일반 판매의 티켓도 비싸다. 스타디움에 관해서도 터키에서 유일하게 근대적인 스타디움을 가진 페네르바체에 비해 갈라타사라이는 노후화된 스타디움을 사용하고 있다.

 어느 쪽이 엘리트 팀인지 지금은 양 팀의 상황에서 설립 당시의 클럽 상황을 엿보는 것이 어렵다.


 이렇게 입장이 역전되고 있는 페네르바체의 회장이나 임원은 종종 갈라타사라이를 쪽주는 발언을 한다. [갈라타사라이가 계획중인 새로운 스타디움 건설예정지를 가로채어 페네르바체의 시설을 만들 수 있다]고 협박을 한 적도 있다. 갈라타사라이가 이런 발언에 화가 나는 것은 틀림이 없다. 이러한 클럽 사정의 변화에 따른 양 팀의 적대적인 모습도 관계를 악화시키는 하나의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자칭 [세계 최고]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1909년에 이뤄진 제 1회째부터 354회째의 이스탄불 더비가 열린 4월 22일, 페네르바체가 갈라타사라이를 4-0으로 이겨 다음 시즌에 기념 굿즈가 만들어질 예감이 들 대승을 거두었다.

 이번 시즌 양 클럽은 근년 볼 수 없었던 격한 우승 싸움을 하고 있다. 이번회의 더비는 리그 우승의 행방을 좌우하는 분수령. 세계의 더비라는 말에 어울리는 절호의 무대가 세워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제나와 같이 시합 전에는 양 클럽에 의한 설전이 펼쳐졌다. 서포터도 거기에 호응하듯이 텐션이 높아져 갔기 때문에 경비에 4400명이라는 경찰이 들어섰다. 정말로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되어질 정도의 숫자이다. 그러나 이정도로 엄중한 체제를 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도중에 갈라타사라이의 서포터가 페네르바체 서포터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가는 사건이 있었다.


 요즘 세계 축구계는 폭행 행위에 대하여 엄격한 태도로 임하고 있으며, FIFA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반하는 행위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방침을 나타내고 있다. 강한 라이벌심이 있기에 소동이 일어나지만 폭력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 터키사람들도 그것은 알고 있어, 시합 후에는 [어째서 축구 시합에 4400명이라는 경찰이 필요한 것인가? 이것은 터키 축구의 치욕이다]라는 토론이 행해졌다. 폭력은 이스탄불 더비의 문제점이기도 하며, ‘야만’이라는 이름표를 달려고 하는 터키 축구가 가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스탄불 더비가 세계 축구 팬들이 인정하는 '진정한' 세계에서 가장 큰 더비가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스탄불 더비에는 종교나, 계급차에 의한 배경이 없다. 열광의 근원은 순수한 라이벌심뿐이다. 결국 사회적인 배경이 없는 만큼 지금부터의 노력에 따라서는 폭력을 없애고, 세계의 축구 팬이 한번은 방문하는 것을 동경하는 더비가 될 가능성이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늙은 축구 팬이 말한 '스타디움의 멋진 분위기'를 반드시 맛보고 싶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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