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콜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4.15 우고 산체스 - 대표팀에서 해임된 멕시코의 영웅 by 渤海之狼 2
  2. 2006.06.07 지단 인터뷰 by 渤海之狼 1
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708/other/column/200804/at00016872.html
저자
: 세르히오 레빈스키

바라 마지 않던 멕시코 대표팀 감독 취임 회견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던 우고 산체스였지만....

필시 우고 산체스[각주:1]에게 있어서 2008 3 31일은 자신의 캐리어 속에서 최악의 하루가 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날 멕시코 축구 협회는 국민적 영웅이며 세계에서도 명성을 떨친 선수 중에 한 명이었던 남자에게서 대표팀 감독의 지위를 박탈했다.

■ 프리메라 리가에서 5번 득점왕에 빛났던 영광의 나날들

 산체스는 1980년대 에스파냐에서 활약하며 멕시코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칭송 받았다.

 1981년 멕시코 UNAM 푸마스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 그 4년 뒤에는 레알 마드리드로 활약의 장소를 옮겨 황금시대를 구축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에밀리오 부트라게뇨[각주:2], 마누엘 산치스[각주:3], 마르틴 바스케스[각주:4], 미첼[각주:5], 미겔 파르데사[각주:6] 5명으로 구성된 [퀸타 델 부이트레][각주:7]가 중심이 되어 영광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산체스도 리가 에스파뇰라에서 5번의 득점왕에 빛났으며, 골을 넣은 다음에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도는 퍼포먼스도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체스는 모국 멕시코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당시 멕시코는 대표팀이건 클럽이건 산체스만큼의 영광과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산체스는 모든 광고나 잡지의 표지를 독점했다. 당시 멕시코 축구계에서 산체스 외에는 해외에서 플레이 하고 있던 선수가 거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멕시코 자국 클럽의 월급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무엇보다 해외로 나간다는 전통이 멕시코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산체스의 경우 당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회장이 이 멕시코 스트라이커를 보자마자 반해버리는 행운이 있었다. 회장은 처음에 크루스 아술의 말도나도를 시찰하러 멕시코에 갔는데, 푸마스에 소속해 있던 산체스가 눈앞에서 연속 골을 넣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었다. 결과 아틀레티코는 산체스를 획득하였고, 그때부터 마니토(산체스의 애칭) 영광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에스파냐에서 1년째는 부진하여 주위에서는 푸마스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산체스는 성공을 거두기까지 에스파냐에 남겠다고 우겼던 것이다.

■ 산체스의 월드컵이 될 예정이….

 산체스의 경력에서 이상한 점은 에스파냐에서 그처럼 빛나는 실적을 올린 것에 비하여, [엘 트리][각주:8]에서는 그에 필적하는 활약을 남기지 못한 것이다. 전성기의 대부분을 해외 클럽에서 보냈기 때문에 대표팀에 그다지 소집되지 못한 것이 이유이다. 그래도 산체스는 78, 86, 94년이라는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다.

 78년 아르헨티나 대회에서는 조 예선에서 3연패를 당하여 승점 0인 채로 귀국길에 올랐다. 더구나 서독과의 시합에서는 0-6이라는 대패였다.

 자국 개최가 된 86년 대회는 누구나가 [산체스의 월드컵]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큰 활약도 하지 못했고, 조 예선 파라과이와의 시합에서는 PK를 실축. 멕시코는 8강에 진출하기는 하였지만 자국민들을 실망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 호된 비난을 받은 감독 시대

 현역을 은퇴하고 지도자가 되어서부터 산체스는 자주 멕시코 언론에게 비난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2000
년 친정인 푸마스 감독에 취임하여 2004년에는 전후기 리그에서 연패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산체스는 불청객이었다. 사람들은 예전의 영웅을 거만하다고 느꼈고, 전술 면에서도 무지하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멕시코 미디어는 산체스가 당시 멕시코 대표팀 감독 히카르도 라볼페[각주:9]에 대한 일련의 규탄 캠페인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산체스는 라볼페를 대표팀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무엇이건 비판을 전개하였다. 아르헨티나 사람인 라볼페는 원래 GK였다. 현역 시대에 상대팀 선수로 만났던 경험도 있던 라볼페와 산체스는 필드 밖에서도 대립했다.

 산체스는 외국인인 라볼페가 멕시코 대표팀 감독에 앉아 있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엘 트리]는 조 예선 돌파를 이루었지만 16 1차전 상대는 지휘관의 모국 아르헨티나가 되었다. 결과는 연장전 끝에 1-2로 패배. 산체스는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표팀 감독은 자국 출신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6 11. 결국 산체스는 멕시코 대표팀 감독의 자리에 취임하여, U-21대표( U-23 대표팀 세대)의 감독도 겸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임까지의 1년이 넘도록 대표팀에 어울리는 전술을 확립하지도 못하였고, 팀으로써의 형태를 보이는 것 조차도 없었다. 산체스가 취임 시에 내세운 목표는 CONCACAF 골드컵[각주:10] 우승과 코파 아메리카(남미선수권) 4,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메달 획득이었다.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3위에 입상하여 멕시코 국민들 기쁘게 하였지만 나머지 두 개는 실현되지 않았다.

 2007년 골드컵[각주:11]에서 미국에게 패하여[각주:12] 준우승에 그친 것에 더하여, 그지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올림픽 예선 탈락은 산체스의 거취를 결정적으로 만들었다. 그 이전부터 대표팀 감독으로써의 산체스의 수완에는 의문부가 찍혀 있었다. 라볼페 쪽이 좋았다는 목소리도 나올 정도였다.

■ 일류 선수는 감독으로써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인가?

선수와 감독으로 양쪽에서 성공하여 여전히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요한 크라위프

 산체스의 해임으로 인해서 멕시코에서는 '감독론'과 같은 논의가 재연되고 있다. 즉 위대한 선수가 위대한 감독이 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멕시코 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는 이번 단 한번으로 자신의 경력 그리고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일류 선수가 감독으로서도 일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예를 들면 알프레도 스테파노[각주:13] 혹은 크라위프와 같은 천재는 지도자로서도 빛나는 실적을 남겼다. 그러는 한편 펠레는 감독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에서 두 개의 클럽을 이끌었지만 스트레스만 쌓였을 뿐이었다. 감독 시대의 마라도나는, “나처럼 플레이하면 된다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의 선수들의 증언에 의하면 감독 대 선수라기 보다는 같은 동료로써 선수를 취급했던 듯 하다.

 프란츠 베켄바워의 경우는 감독직을 일찌감치 끝내고 명함을 건네주고 악수를 나누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06년 월드컵에서는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이다. 프랑스가 낳은 천재 지네딘 지단은 은퇴 후도 감독직에는 흥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가 존경하는 우루과이의 엔소 프란체스콜리와 마찬가지로 현재는 텔레비전 해설자로 축구와 끈을 이어가고 있다.

 일류 선수가 감독에 앉으려 할 때는 자신의 이미지를 손상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해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명성을 손에 넣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만 잃는 것은 일순이다. 우고 산체스와 같이 불과 1년 만에 빛나던 명성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이쯤에서 적절한 산체스 (현역 때의) 탑 10 플레이 >

  1. Hugo Sánchez Marquez [본문으로]
  2. Emilio Butragueño, FW [본문으로]
  3. Manuel Sanchís Hontiyuelo, CB [본문으로]
  4. Rafael Martín Vázquez, MF [본문으로]
  5. Míchel, RMF. 현 레알 마드리드 칸테라 총책임자.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한국과의 시합에서 헤드트릭을 기록했다. [본문으로]
  6. Miguel Pardeza, MF [본문으로]
  7. Quinta del Buitre - ‘독수리(Buitre)의 집(quinta)’이란 뜻으로, 중심 선수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의 별명이 독수리(El Buitre)였기에, 그를 중심으로 한 80년대의 레알 마드리드를 그렇게 불렀다 [본문으로]
  8. El Tri = Los Tricolores의 약자. 삼색(三色)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멕시코의 국기색이 삼색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멕시코 대표팀의 애칭 [본문으로]
  9. Ricardo Lavolpe, 재임 2002-2006, 대표팀 해임 후 보카를 거쳐 현재 멕시코 리그 몬테레이(Monterrey)의 감독. 아르헨티나 출신. 융통성 있는 전술과 함께 경기장에서 줄담배로 유명하다고 함 [본문으로]
  10. 북중미카리브 축구 연맹 주최의 대륙 선수권 [본문으로]
  11. 미국 개최 [본문으로]
  12. 1-2 [본문으로]
  13. Boca, River에서 리그 타이틀, 발렌시아에서 코파 델 레이, 리그 타이틀, 컵 위너스 컵(현 UEFA컵)를 제패했으며, 1974-75년에는 포르투갈의 스포르팅 리스본, 1982-84, 1990-91은 레알 마드리드 등 1967년부터 91년까지 몇 년을 제외하곤 총 8개 팀의 감독을 맡았다. [본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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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wcup/06germany/column/200605/at00009156.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시즌 도중에 발표된 지네딘 지단의 현역 은퇴 뉴스는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날이 올 거라는 각오를 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지단의 플레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점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월드컵 독일 대회를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기로 정한 지단. '외계인'이라고도 칭해진 차원이 다른 테크닉과 볼 컨트롤, 발군의 키핑력으로 사람들을 매료해 왔다. 프랑스 대표에서는 1998년 자국 개최 월드컵, 2000년 유럽 선수권의 우승을 시작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챔피언스 리그 제패 등 수많은 영광을 손에 넣어 왔다.

 개인적으로도 1998년, 2000년, 2003년 FIFA 연간 최우수 선수에 빛났으며 1998년에는 발롱도르(유럽 최우수 선수상)도 수상. 그런 축구 인생에 후회는 없다고 지단은 말한다.


유로 2004 후 한 번은 “르 블뢰”의 유니폼을 벗었던 지단이지만 작년 8월 모국이 월드컵 예선 패퇴의 위기로 복귀를 결의. 그리고 프랑스는 본선으로 출장할 수 있었다. 축구 선수로써 최후의 무대로 선택한 세 번째의 월드컵에서 지단은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 지단, 월드컵 후 현역 은퇴를 발표한 지금, 모든 사람이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모두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가진 감정이 아니고 나는 언제나 존중받아 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나 자신의 캐리어에는 만족하고 있다. (은퇴를)발표하는 시기는 지금이 적당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했다.


- 다만 시즌 종료 후가 아닌 시즌 중의 발표에는 비판도 있었다.


여러 가지 의견을 존중한다.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 자신이며 이제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나의 플레이를 보며 즐겨왔지만, 요즘 최근에는 예전과 같은 듯한 플레이를 하는 상태가 되지 못했기에 팬들을 즐겁게 하는 것도 많이 보여 줄 수 없었다.

(선수는) 예전의 내가 아니게 되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이 있다. 달리는 것도 힘들어져 예전 소년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그 때에는 냉정히 '물러날 때'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런 타이밍에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최후의 시합은 프랑스 대표로써 싸우는 월드컵이 된다. 월드컵에서 모국의 유니폼을 입고 라스트 매치를 치르는 것보다 멋진 것은 없다.


- 당신은 분명 플라티니와 어깨를 나란히 할 프랑스 대표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굉장히 존경받아 온 것은 알고 있다. 축구 선수로서 이 이상 가는 명예는 없다. 나는 언제나 축구를 즐겨왔으며 일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미셸 (플라티니)과 비교 받는 것은 정말로 영광이다. 둘 다 유벤투스에서 플레이 했던 공통점도 있으니까.


- 하지만 당신은 이미 플라티니를 넘어서지 않았을까? 1998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축하선물로 에펠탑에 당신의 얼굴이 걸쳐짐으로 국민적인 지위를 획득했으니까


그건 그렇지.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운 좋게도 (우승 시의) 비디오나 CD도 있다. 때문에 누구도 이것이 거짓말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웃음)


- 당신의 손자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


당신 말대로 하지. 우승 멤버였다는 것은 정말로 명예로운 일이다. 프랑스가 획득한 유일한 월드컵 트로피이며 이때의 팀은 유로 2000에서도 우승했으니까.


- 2002년 월드컵에서는 무엇이 일어났나? 월드컵 챔피언으로써 임한 대회였지만, 당신은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이때의 팀은 기나긴 리그가 막 끝난 후였기에 굉장히 피곤해 있었다. 때문에 이번 FIFA가 각국 리그전과 월드컵 사이에 휴식기간을 설치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인 면은 플레이에 영향을 끼치니까


- 이번 프랑스 대표와 과거 2대회의 팀과의 차이점은?


세대교체가 있었다. (유로 2004 후) 나뿐만 아니고 리자라쥐 등도 대표에서 물러났다. 이번 대회 후에는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이번 대회 예선에선 프랑스가 편한 그룹에 들어갔다고 편하게 생각한 사람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프랑스는 굉장히 고전했으며 나 자신은 이미 (대표를) 은퇴했었지만, 르 블뢰에 복귀할 필요가 생겼다. 이것은 편한 그룹이라는 것이 없다는 교훈이며, 이제는 (예선에서 같은 그룹이었던) 이스라엘이나 스위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전의 평가와는 전혀 다르게 되었다. 프랑스는 홈에서 이스라엘과 0-0이었으니까.

(본선에서는) 컨디션을 맞추고 플레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1998년과는 감독도 바뀌었으니까 우리들은 레몽 도메네크 감독의 축구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라고는 해도, 이번 대회 그룹 리그가 행운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지? 토고, 한국, 스위스의 G 그룹은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 어렵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조 추첨이 끝났을 때,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뭐라고 말했는지 아나? [쉬운 상대는 없다]. 시합을 해보지 않으면 모르며 우승 후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이것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으며 누구도 '마법의 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팀 동료나 프랑스 대표 팀을 믿고 있는가하고 물으면, 나는 '물론 그렇다'고 답한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그 다음은 많은 요소가 관여해 온다 ― 준비나 신체적 상태, 운조차도....


- 하지만 지금까지 당신의 캐리어에 있어서 운은 별로 관계가 없었잖아. 당신의 능력이 결과로 나타난 것 아닌가?


대체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항상 운이란 것은 항상 존재한다. 단지 운이 관계없을 정도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빅 클럽에서 플레이할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유벤투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우승 트로피도 획득했다. 레알에서는 2001 - 02 시즌 챔피언스 리그의 레버쿠젠전에서 멋진 골을 넣을 수 있었으며 98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인 브라질전에서 2 골도 넣었다. 이것은 신이 도왔다고 밖에 할 수 없다.


- 역사에 이름을 남긴 플레이어들의 리스트에 당신을 넣는 사람도 많다. 펠레나 마라도나, 크라위프, 디 스테파노, 베켄바우어와 함께


정말로 고맙다. 그런 이름과 함께 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 디 스테파노는 당신을 “천재”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디 스테파노는 위대한 선수의 하나이며 레알 마드리드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나를 그렇게 말해주어서 기쁘다


- 하지만 어렸을 적 당신의 우상은 남미(우루과이)의 선수였지?


그렇지. 엔소 프란체스콜리는 최고다. 나는 마르세유에서 자랐는데 어렸을 적에 그는 올림피크 마르세유에서 빛나고 있었다. 친구들과 그의 플레이를 많이 흉내 내곤 했다. 나는 프란체스콜리의 스타일이나 진지한 플레이가 좋았기에, 그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내 아들 하나에게 “엔소”라고 이름 붙였다. 운 좋게도 1996년 토요타 컵(현 FIFA 클럽 컵)에서 유벤투스와 리버플레이트가 대전했을 때 프란체스콜리와 시합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동경했었다는 것을 말하고 유니폼을 교환하자고 했다. 그가 흔쾌히 응해주어 기뻤다.


- 당신 자신은 [라 룰렛][각주:1]의 고안자이기도 한데


친구들과 많이 연습했다. 이것은 회전하는 것으로 상대를 제칠 수 있다. 나처럼 매일 연습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 현역 플레이어중에서 좋아하는 선수는?


많이 있다. 보통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앙리, 호나우지뉴, (레알의) 팀 동료 몇 명 정도, 거기에 리켈메. 좋은 선수는 많이 있으니까


- 언젠가는 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나?


축구의 세계에서 다시 집중하는 것은 싫군. 지금은 휴식이 필요하며 가족에게 좀 더 시간을 바치고 싶다. 나는 아이들이 정말로 좋으니까. 장차 소년, 소녀들에게 축구를 가르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모르겠군.


-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당신에게 어떤 형태든 클럽에 남아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하잖아? 그렇다면 마드리드에 계속 살건가?


이 도시가 좋으며 익숙한 곳이니까. 클럽 사람들도 나를 사랑해 주기에 가까이에 있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며 지금은 월드컵에 집중하고 있다.


- 월드컵으로 이야기를 되돌려보자, 우승후보는 브라질일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탈리아나 잉글랜드, 아르헨티나라는 강호국도 승승장구할 것 같으며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싸우기 전에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


- 프랑스가 시합하는 모습은 너무 신중한 느낌도 나며 또한 볼을 너무 끈다. 앙리도 그가 가진 본연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것들을 어떻게 해서 타개할 것인가?


시간의 사용법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거기에 상대팀이 필드에서 패스를 너무 돌리지 못하게 해야 하니까. 그러다 보면 공간도 생겨 FW의 스피드를 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들 프랑스의 포텐셜은 굉장히 높으니까.


- (결승전이 행해지는) 7월 9일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자신을 상상하는가?


그것을 꿈꾸고 있다. 그렇다면 굉장히 멋진 일일 것이다. 이미 한 번 챔피언이 되었으니까 또 한번 해도 괜찮잖아? 꿈을 보는 것은 공짜니까(웃음)

  1. '마르세유 턴'을 지칭하는 듯 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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