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수다메리카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1.28 보카가 손에 넣은 또 하나의 타이틀 by 渤海之狼
  2. 2007.12.05 파란을 노리는 멕시코의 파추카 by 渤海之狼

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809/other/text/200812290012-spnavi.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 3팀에 의한 플레이오프 끝에 우승


[보카 주니어스는 플레이오프 끝에 2008년 전기리그를 제패하였다]

 아르헨티나 리그의 2008년은 12월 23일 보카 주니어스가 새로운 영광을 손에 넣으며 막을 내렸다. 3팀에 의한 플레이오프라는 역사에 남을 격전 끝에 움켜쥔 극적인 우승이었다. 축구계에서 빛나는 역사를 가진 보카가 요 11년간 아무런 타이틀도 획득하지 못했던 적은 2002년뿐이다. 자국 리그뿐만 아니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 등의 큰 무대에서 멋진 결과를 남길 수 있었던 데에는 실패를 교훈 삼으며 그럴 때마다 클럽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카는 그 팬이 많음과 미디어에 등장하는 횟수로도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이지만 2008년 전기 리그에서는 결코 평온함 속에 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기는 19시합을 끝낸 상태에서 산 로렌소, 보카, 티그레 3팀이 12승 3무 4패로 승점 39이어서 3팀에 의한 우승 결정 플레이오프에 돌입(아르헨티나 리그의 정규 시즌에서 득실점차는 순위에 고려되고 있지 않다). 플레이오프에서도 3팀이 승점 3으로 동점이 되어 불과 1골의 차로 보카가 23회째의 영광을 손에 넣었다.

 우승을 결정짓는 3팀에 의한 미니 리그에서 우선 산 로렌소가 티그레(최근 승격한 팀으로 1부에 참전한지 이제 2년째이다)에 2-1로 승리하였다. 이어서 보카가 산 로렌소에 3-1로 승리. 보카의 우승은 너무도 쉬운 듯이 보였다. 왜냐하면 보카가 티그레에 승리는 물론이거니와 1점차로 지더라도 득실점차에서 챔피언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카는 티그레에 0-1로 패하여 우승을 손에 넣은 것인데 타이틀을 다른 팀에게 빼앗길 위기도 있었다. 67분에 실점하였을 때 상대 선수와 맞부딪친 젊은 GK 하비에르 가르시아(Javier Hernán García)가 부상으로 떠남으로 해서, 이 큰 무대가 데뷔전이 되는 약관 20살의 호수에 아얄라(Josué Ayala)가 교체 출장하는 사태로 이어졌던 것이다. 공세를 거듭하는 티그레에 보카도 반격. 결국 0-1인 채 시간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려 보카가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게 되었다.

■ 만신창이인 상태로 움켜쥔 영광

 최종적으로는 우승하였다고는 하지만 올 시즌 보카가 고전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제일 먼저 거론할 수 있는 것이 캡틴이며 에이스 FW인 마르틴 팔레르모(Martín Palermo)의 부재이다. 1930년대에 활약했던 프란시스코 바라요(Francisco Varallo - 현재도 살아있다[각주:1])의 보카의 역대 최다 골 기록[각주:2]을 갱신한 스트라이커는 8월 24일 CA 라누스와의 시합에서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를 다쳐 장기간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또한 팔레르모와 짝을 이루며 국내에서는 베스트 FW라고도 말할 수 있는 로드리고 팔라시오(Rodrigo Palacio)도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예전 리버풀에서 뛰었던[각주:3] CB 가브리엘 팔레타(Gabriel Paletta), 퍼스트 GK인 마우리시오 카란타(Mauricio Caranta)는 감독인 카를로스 이스치아(Carlos Ischia)와 논쟁을 벌인 끝에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되었다. 더욱이 경험 풍부한 SB인 우고 이바라(Hugo Ibarra)와 클라우디오 모렐 로드리게스(Claudio Morel Rodríguez)도 부상당해버렸다.

 그래서 보카는 새로운 인재를 발굴했다. 유스 팀에서 21살의 GK 가르시아, 20살의 DF 후안 포를린(예전 레알 마드리드B에 소속[각주:4]해 있었다), 21살의 DF 파쿤도 롱카글리아(Facundo Roncaglia), 22살의 볼란치인 크리스티안 마누엘 차베스(Cristian Manuel Chávez) 그리고 앞 선에는 21살의 두 공격수 리카르도 노이르(Ricardo Noir)와 놀랄만한 득점감각을 갖춘 루카스 비아트리(Lucas Viatri)를 승격시킨 것이다. 그들은 주력선수들의 포지션을 빼앗을 정도로 성장하여 팀 승리에 공헌하였다.

■ 1998년부터 시작된 팀 개혁

 
[팬들의 존재는 보카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모든 것은 1998년부터 시작되었다. 예전의 영광을 뒤로하고 오랜 기간 트로피에서 멀어져 있던 보카는 이 해에 새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미디어에 이용당하고 있던 팀을 해체하고 선수나 감독을 일신했다. 당시의 보카는 ‘마라도나 2세’라 일컬어졌던[각주:5] 디에고 라토레(Diego Latorre)가 “보카는 난장판이다”고 말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새로운 지휘관으로 카를로스 비안치[각주:6]가 취임하면서 보카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시작으로 한 수많은 영광을 획득하게 된다.

 1995년에 회장에 선출된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 현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장을 맡고 있다)는 어떻게 하면 팀을 재건할 수 있는지 몰랐다. 카를로스 빌라르도[각주:7]에 이어서 엑토르 베이라[각주:8]를 감독에 앉힌 것을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1998년 마크리는 팀을 프로페셔널 집단으로 하기 위해서 비안치를 초빙하였고 동시에 하부조직의 충실을 꾀했다. 또한 보카는 유소년을 위해 ‘클럽 파르케(Club Social y Deportivo Parque)’와 협력체제를 확립하였고 현재는 하부조직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서 큰 선수로는 레돈도(Fernando Redondo), 소린(Juan Pablo Sorín), 리켈메, 가고, 테베스 등 쟁쟁한 면면들이다.

 예전 보카는 선수들을 사 모으는 측이었다. 그러나 마크리는'”10년 안에 11명 중 9명은 클럽 토박이 선수가 될 것이다”고 선언했다. 당시는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평정을 되찾은 팀은 승리를 거듭하며 클럽의 근간이 만들어졌다.

■ 라이벌 리베르의 존재.

 보카는 개혁 이후 국내에서 7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4번, 토요타 컵(현 클럽월드컵)을 2번 제패했다. 또한 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도 2번, 레코파 수다메리카나[각주:9]에서도 3번 우승하였다. 이것은 전부 1998년 이후에 획득한 타이틀이다. 아르헨티나, 남미대륙 거기에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들 대부분은 자신의 가치를 높여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페르난도 가고(레알 마드리드), 에베르 바네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에밀리아노 인수아(Emiliano Insúa, 리버풀), 오스칼 트레호(Oscar Trejo, 마요르카), 세바스티안 나야르(Sebastián Nayar, 레크레아티보), 파비안 몬손(Luciano Fabián Monzón, 베티스), 카를로스 테베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현재 보루시아 MG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FW 로베르토 콜라우티(Roberto Colautti)도 보카의 유스 출신이다.

 한편 보카는 하부조직의 선수육성만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으로 보낸 클럽을 상징하는 선수들을 몇 년인가 후에 다시 불러들임으로 인해 팀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있다. 세바스티안 바타글리아(Sebastián Battaglia, 전 비야레알), 후안 로만 리켈메(바르셀로나, 전 비야레알), 우고 이바라(FC 포르투, 모나코, 에스파뇰), 팔레르모(비야레알, 베티스, 알라베스) 등의 면면들이다. 또한 보카는 ‘등번호 12’로 알려진 가장 잔소리가 심한 팬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거대한 깃발을 휘날리며 팀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보켄세[각주:10](보카의 팬)에게 있어 2008년 전기 리그 우승은 특별한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팀 우승은 물론이거니와 최대의 라이벌인 리버플레이트(리베르)가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최하위로 떨어진 것이다. 1931년 프로 리그화된 이후 리그 우승회수를 따지면 23번의 보카에 비해 리베르는 국내 최다인 33회를 자랑한다(국제 타이틀까지 포함하면 보카는 리베르를 크게 앞서고 있다). 2008년 후기 리그에서는 리베르에 우승을 허용하여 2위로 마쳤던 만큼 그 반년 후에 챔피언 자리를 탈환하였기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리베르가 곧바로 2부로 강등당하지는 않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과거 3년(전기, 후기 3대회 씩)의 성적에서 평균값을 산출하여 하위 2팀이 강등당하기 때문이다(17, 18위 팀은 교체전을 행하게 된다).

  1. 1910년 2월 5일생. [본문으로]
  2. 194골. 보카의 아마 시절까지 포함하면 로베르토 체로(Roberto Cherro)의 221골. [본문으로]
  3. 2006-2007시즌 3경기 출장. [본문으로]
  4. 2007년. [본문으로]
  5. 이 선수가 처음으로 '마라도나2세(New Maradona 혹은 New Diego)'라고 불렸다. [본문으로]
  6. 현재는 보카의 GM [본문으로]
  7. Carlos Bilardo. 그는 1983~1990년까지 마라도나와 함께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감독이다. 월드컵 우승 1회, 준우승 1회. 1996년 보카 감독으로 당시 리그 5위. [본문으로]
  8. Héctor Veira - 1996~1998의 감독. 리그 순위는 각각 9위, 2위, 6위. [본문으로]
  9. Recopa Sudamericana.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코파 수다메리카나의 우승팀이 격돌하는 UEFA의 슈퍼컵과 같은 대회이다. [본문으로]
  10. 철자는 boquense....굳이 각주를 단 이유는....철자 찾기 힘들었거든요. [본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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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club_wcup/2007/column/200712/at00015479.html

저자:벤자민 스펜서(BenjaminSpencer)

이제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클럽을 성장한 파추카. 클럽 월드컵에서도 큰 파란을 보여줄 지도 모른다.

멕시코에서가장 오래된 팀.90년대 후반부터 쾌진격

 멕시코에서는 전통적으로 멕시코시티의 클럽 아메리카, 푸마스, 크루스 아술. 과다라하라 시()의 치바스, 그리고 몬테레이 시()의 몬테레이, 티그레스(UANLTigres) 등과 같이 클럽의 강함은 그 도시의 크기에 비례했다.

 그러나 2000년 즈음부터 멕시코 국내외의 대회에서 파추카 만큼이나 좋은 성적을 남긴 클럽은 찾아 볼 수 없다. 파추카는 그 때까지 거의 무명에 가까운 존재였지만 1999년부터 리그 타이틀을 5번이나 획득. 또한CONCACAF(북중미카리브 축구 연맹)챔피언스 컵에서 우승하길 2, 거기에 북미 슈퍼리그, 그리고 코파 수다메리카나(Copa Sudamericana[각주:1])를 제패하는 등 이제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클럽팀이 되었다.

 파추카는 1901 이달고 주() 파추카를 홈 타운으로 하여 영국의 광산 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멕시코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클럽이다. 당초 파추카는 이 광산 노동자들이 스포츠를 즐기기 위한 클럽에 지나지 않았지만, 1907년 멕시코에 프로 사커 리그가 만들어지자 곧바로 참가하였다. 그러나 당시 파추카의 성적은 참담한 것으로 지금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로 2부리그와 3부리그를 오고 갔으며 현재와 같은 영광을 손에 넣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90년대 후반이 되자 파추카는 1부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이끌고 있는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이 취임하여 팀을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 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지휘 하에서 1999년 겨울 시즌(당시)에서 첫 타이틀을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파추카는 착착 실력을 쌓아갔다. 그 수완을 인정받아 아기레는 2001년 멕시코 대표팀 감독에 취임. 2002년 월드컵에서 모국을 이끌었다.

 아기레의 후임으로 파추카의 지휘를 하게 된 사람은 한 때 멕시코 대표팀에서도 플레이한 알프레도 테나(Alfredo Tena). 취임 첫 년도부터 파추카에 리그 타이틀을 안겨 주었고, 2002년에는 CONCACAF 챔피언스 컵을 제패했다. 다음 해에는 아르헨티나의 빅토르 마누엘 부세티츠(Victor Manuel Vucetich) 아래서 하기 리그를 제패했다.

메사감독이 완성한 고성능 “사커 머신”

 2006년 후반부터 2007년에 선수들의 플레이가 완벽히 싱크로했다.
 모든 움직임
, 모든 패스에 의미와 이유가 있었기에 선수들끼리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것인가하고 착각할 정도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연계를 보였다.

 2006년후기 리그에서 우승했던 것은 남미에서의 용병 – FW인 리차드 누네스와 넬슨 ‘피피뇨” 구에바스(파라과이), 베테랑 GK인 미겔 칼레로(Miguel Calero – 콜롬비아), 그리고 바위와 같은 견고한 CB 아키발도 모스케라(Aquivaldo Mosquera – 콜롬비아)에 의한 것이 컸다.

 파추카는 챔피언의 영광에 빛나긴 했지만 감독인 호세 루이스 트레호(José Luis Trejo)는 곧바로 팀을 떠나 티그레스의 감독에 취임. 이 의문[각주:2]의 전격 이적 때문에 파추카는 후임으로 엔리케 메사(Enrique Meza Enriquez)를 고용하게 된다.

 메사는 예전에 톨루카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2002년 월드컵 전에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그리고 파추카 감독에 취임해서부터 내리 5연패()를 당했기에 주위에 자신을 납득시키는 것이 더욱 힘들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2006년 전기 리그 플레이오프 준결승에 진출하기까지 무패행진을 계속 함으로써 사람들은 곧바로 입을 다물게 되었다. 준결승에서 지긴 했지만, 남미에서 행해진 코파 수다메리카나의 시합을 병행하며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강행군이었기때문이었다.

 파추카는국내 리그 타이틀을 놓치긴 했지만, 메사 감독은 팀의 종합력을 끌어 올리는데 성공. DMF인 가브리엘 카바예로(Gabriel Caballero)와 하이메 코레아(Jaime Correa)를 중심으로 선수들에게 압박 수비를 심어주었다. 팀이 볼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중반의 안드레스 치티바나 다미안 알바레스(Damian Ariel Álvarez, 아르헨티나)가 양 사이드에서 무한한 지구력으로 휘저었다. 그리고 앞 선에는 크리스티안 히메네스(Christian Giménez, 아르헨티나), 후안 카를로스 카초(Juan Carlos Cacho) 빈틈없이 파고드는 공격진.

 어느순간엔가 메사는 윤활유가 듬뿍 먹인 고성능 “사커머신”을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첫코파 수다메리카나 제패와 클럽 월드컵 출전권 획득

  국외로 눈을 돌려 보면, 2006년은 파추카가 코파 수다메리카나의 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긴 해이다.

 코파 수다메리카나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 이은 CONMEBOL(남미 축구 연맹)의 주요 대회.

 근년, 멕시코의 클럽이 남미 팀들을 제치고 상위에 진출하게 되어 왔지만, 2005년 푸마스가 결승전에서 보카 후니오르스에게 패하는 등 남미는 그리 간단히 중미의 멕시코에게 왕관을 내어주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2006 파추카는 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남미의 국가들이 눈을 크게 뜰 정도로 내용있는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대회는 예선부터 결승까지 홈&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지는데, 파추카는 첫 시합인 데포르테스 톨리마(DeportesTolima, 콜롬비아)에게 2시합 합계 6-3(1-2,5-1)으로 승리하였고, 이은 준준결승에서는 CA라누스(Club Atlético Lanús, 아르헨티나)에게 5-2(3-0, 2-2), 준결승인 아틀레티쿠 파라나엔세(브라질)5-1(1-0, 4-1)로 이겼다. 그리고 결승에서는 칠레의 CSD콜로콜로를 3-2(1-1,2-1)로 물리쳐, 멕시코의 클럽으로서는 사상처음으로 이 대회를 제패한 것이었다.

 메사감독이 완성한 이 차원이 다른 강팀인 파추카는 다음 해인 2007년도 8월까지 3개의 타이틀 즉 리그, CONCACA 챔피언스 컵, 북미 슈퍼 리그를 차지하였다. 국내 리그에서는 전 시즌을 통해서 두 번 졌을 뿐으로, 국내에서는 무적에 가까움을 보여주고 있다.

 CONCACA 챔피언스 컵에서 우승함으로써 파추카는 [TOYOTA플레젠트 FIFA클럽 월드컵 저팬 2007](이하클럽 월드컵)의 출전권을 획득하게 된다.

 첫 시합에서는 과테말라의 데포르티보 마르켄세(Deportivo Marquense)를 가볍게 물리쳤지만, 이어진 준결승에서는 메이저 리그사커(MSL)의 왕자 휴스턴 다이나모와의 어웨이에서 0-2로 패하여 일순 팬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홈에서의 2차전은 5-2로승리. 파추카는 치바스 과다라하라가 기다리는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치바스와 파추카의 결승전은 장렬했던 시합으로, 1차전은 2-2 무승부. 2차전도 0-0으로 승부가 나질 않아, 승부는 승부 차기로. 치바스의 7번째 킥커인 알베르토 메디나(Alberto Medina)가 볼을 포스트에 맞추어 실패하자, 파추카의 루이스 앙헬 란딘(Luis Ángel Landín)이 결정을 지어, 일본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파추카는 이에 만족하는 일 없이, 올해부터 MLS와 멕시코 리그와의 사이에 개최되는 북미 슈퍼 리그에도 참전했다. 이는 양 리그의 상위 4팀씩 참가하여 북미 지역의 진정한 왕자를 정하는 대회이다.

 준결승에서 파추카는 또 다시 휴스턴 다이나모와 시합하여 간신히 승부 차기 끝에 승리했다. 결승전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베컴을 거느리는 LA갤럭시와 시합하여 1-1로 또다시 승부 차기에 돌입. GK 칼레로의 활약도 있어 4-3으로 승리, 파추카가 이 대회의 타이틀도 손에 넣었다.

클럽월드컵에서 큰 파란을 일으킬 가능성

 올해는 3개의 타이틀을 획득한 파추카이지만, 일본에 가기 전까지 큰 변화가 두 개 생겼다.

 첫째는 수비의 중심이었던 아키발도 모스케라가 리가 에스파뇰라의 세비야로 이적해 버린 것. 팀에 그다지 큰 영향은 없다고 볼수 이지만 수비진의 리더가 빠진 것은 충격이 크다. 대신해서 파라과이 대표팀의 훌리오 만수르(Julio Manzur)를 획득했지만, 지금까지 안정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팀의 자랑인 견고한 DF진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팀의 얼굴이며, 정신적인 지주이기도 한 GK 미겔 칼레로의 이탈이다.
 2000년에 입단한 이래 팀을 하나로 응집시켜 왔던 칼레로 이지만, 어깨에서 발견된 혈전(血栓) 예상 외로 심각한 것으로 판명이 나 팀에 충격을 주었다. 대신해서 어린 움베르토 에르난데스(Humberto Hernández)나 로돌포 코타(Rodolfo Cota)를 기용하고 있지만 칼레로의 존재감을 메울 수 없어 수비진에도 금이 가고 있다.

 파추카는 2007년 전기 리그의 플레이오프에서 크루스 아술에게 2시합 합계 0-6으로 패했다. 득점차도 득점차이지만, 파추카 황금 시대의 종언(終焉)을 느끼게 해준 것 같은 참패였다. 하지만 한 편에서는 메사 감독이 리그보다도 일본에서의 클럽 월드컵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어쨌든 12월에 파추카를 상대하는 클럽이 그들을 무시하고 덤벼들면 따끔한 맛을 맛보게 될 것이다. 요 수 개월 부진하긴 하지만 북중미 카리브 지역에서 파추카 만큼이나 전력이 갖추어진 팀은 그리 많지 않다.

 멕시코 대표팀의 카초, 아르헨티나 선수인 히메네스가 앞 선에서 공격을 담당하고 허리에서는 코레아와 카바예로가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치티바와 카를로스 로드리게스(Carlos Gerardo Rodríguez)가 센스있는 공격을 보여준다.

 수비진은 무너지는 듯한 장면도 눈에 띄긴 하지만 파우스토 핀토(Fausto Pinto), 마르빈 카브레라(Marvin Cabrera), 레오바르도 로페스(Leobardo López) 등은 멕시코 국내에서 톱 클래스의 선수다. 그리고 12월까지는 칼레로가 골 문 앞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파추카보다 큰 클럽은 많지만 요 수년 파추카가 보여왔던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감, 그리고 팀의 기세가 12월에 큰 파란을 우리들에게 보여줄지도 모른다.

  1. 유럽 축구와 비교한다면 UEFA컵에 해당. [본문으로]
  2. 두팀은 라이벌 관계였기 때문. [본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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