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비안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15 요구되는 축구계의 변혁. 물의를 일으키는 [6+5룰] by 渤海之狼
  2. 2009.01.28 보카가 손에 넣은 또 하나의 타이틀 by 渤海之狼

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809/eucup/text/200903100007-spnavi.html
저자:세르비오 레빈스키

■ 증가하는 유럽의 “세계선발 팀” 

 몇 년 전의 일.
 감독으로 수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던 아르헨티나 국적의 카를로스 비안치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들은 그에게 ‘유럽의 팀 중 좋하는 팀은?’이라고 물었는데 그 답변에 놀랐다. 비안치는 “어째서 ‘유럽의 팀’이라고 부르는가?”하고 반대로 우리들에게 질문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클럽을 보고 어느 나라가 뛰어난지 판단할 수 있는가? 어느 나라건 외국인 선수로 넘쳐나지 않는가? 하고.

 외국인 선수 과다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아스날이나 인테르나치오날레와 같은 강호 팀의 선발출전 멤버 11명 전부가 외국인이라는 사태가 일어나면서부터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홈 구장의 서포터가 시합 중 보내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응원을 힘으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선수를 제외하면 그 나라의 말을 모르기 때문이다.

 EU 지역내의 이적자유화를 인정한 1995년의 보스만 판결 이후 각 클럽은 그다지 숙고하는 일 없이 선수획득을 결단할 수 있게 되었다. EU권의 여권만 갖고 있다면 쉽게 선수이적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후 그것이 축구 본래의 특질 즉 각 나라의 정체성을 바꾸게 된다.
 유럽에서도 나라에 따라서 외국인 숫자 규정은 다르지만 EU권의 여권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외국인 취급을 받지 않기에 선수획득의 선택기는 대폭 늘어났다. 나라에 따라서는 일정기간 그 나라에 살았다면 자국선수 취급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리하여 계속해서 외국인 선수에 대한 문호가 열려 비안치가 지적했듯이 각국에서 ‘세계선발 팀’이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 [6+5 룰] 실현으로의 움직임

 이러한 배경도 있어 시합 당 외국인 선수 선발을 5명으로 제한하는 [6+5 룰]안을 만들고자 근년 FIFA와 UEFA 사이에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 룰에 따르면 시합에 출전하는 스타팅 멤버 11명 중 적어도 6명은 그 리그가 속한 축구협회의 대표팀에 뽑힐 자격이 있는 선수가 아니면 안 된다. 지금까지는 EU가 정한 ‘노동자의 EU권내 이동의 자유’라는 법령에 저촉할 가능성이 있다고들 하였지만, 최근 FIFA의 요청을 받은 INEA(Institute for European Affairs)라는 조사기관이 [6+5 룰]은 EU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발표했다.

 하지만 UEFA나 G-14를 발전시킨 ECA(유럽 클럽협회)와의 이해문제 충돌은 피할 수 없어 현실이 되기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 5월 FIFA 총회에서는 가맹협회 중 155개의 협회가 결의안에 찬성하여 가결된 것이다(반대 5, 기권 40). 또한 FIFPro(국제 프로축구선수협회 연맹)도 FIFA의 노선에 동조하는 등 세계의 정세로써는 실현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요 5년간 UEFA 챔피언스 리그의 통계에 따르면 클럽이 속한 협회의 대표팀 선수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선수는 불과 53%밖에 안 되었다고 하다. 뒤집어 보면 외국인 선수가 47%나 있다는 것이다. 한 나라와 지역을 대표하는 클럽으로써는 너무도 미덥지 않은 숫자가 아닐까?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하고 있는 각국 리그의 외국인 비율을 보면 에스파냐는 등록선수 중 35.2%가 외국인 선수이다. 이는 유럽 주요리그 중에서는 자국 선수의 비율이 가장 높다. 에스파냐 대표팀 감독 비센테 델 보스케가 선수소집에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탈리아도 40.3%로 외국인 선수의 비율은 비교적 낮다.
  놀라운 것은 잉글랜드로 65.1%가 외국인 선수라는 것이다.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 파비오 카펠로가 인재부족으로 한탄하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포르투갈은 57.5%, 벨기에는 50.3%, 독일은 49.9%, 러시아는 46.7%이다.

■ 거대한 시장으로 변한 축구계

 한편 FIFA의 룰 책정기관인 IFAB(국제 축구평의회)에서는 2월28일 총회에서 옐로카드(경고)와 레드카드(퇴장)의 중간에 해당하는 새로운 카드 ‘오렌지카드’ 도입이 검토되었지만 이번엔 보류로 넘어갔다. 이는 레드카드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옐로카드라고 하기엔 너무 심하다고 심판이 판단할 경우에 제시되어 선수는 일정 시간 필드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외에 IFAB는 부심을 현재 2명에서 4명으로 늘리기 위해 국제대회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볼이 골라인을 벗어났는지를 판정하기 위한 증원으로 앞으로 몇 개의 대회나 리그에서 테스트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초소형 칩을 내장한 하이테크 볼 등을 사용하여 심판의 판정을 돕는 기술 도입에 반대하고 있던 IFAB가 그것을 대신해서 부심을 늘리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비디오 판정을 도입하고 있는 스포츠도 적지 않은데 말이다.

 21세기의 축구계는 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관련된 사람의 수가 늘면 늘수록 이해관계는 복잡화되어 하나의 판단을 내리는 것도 쉽지 않아지는 것이다.

Posted by 渤海之狼
l

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809/other/text/200812290012-spnavi.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 3팀에 의한 플레이오프 끝에 우승


[보카 주니어스는 플레이오프 끝에 2008년 전기리그를 제패하였다]

 아르헨티나 리그의 2008년은 12월 23일 보카 주니어스가 새로운 영광을 손에 넣으며 막을 내렸다. 3팀에 의한 플레이오프라는 역사에 남을 격전 끝에 움켜쥔 극적인 우승이었다. 축구계에서 빛나는 역사를 가진 보카가 요 11년간 아무런 타이틀도 획득하지 못했던 적은 2002년뿐이다. 자국 리그뿐만 아니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 등의 큰 무대에서 멋진 결과를 남길 수 있었던 데에는 실패를 교훈 삼으며 그럴 때마다 클럽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카는 그 팬이 많음과 미디어에 등장하는 횟수로도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이지만 2008년 전기 리그에서는 결코 평온함 속에 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기는 19시합을 끝낸 상태에서 산 로렌소, 보카, 티그레 3팀이 12승 3무 4패로 승점 39이어서 3팀에 의한 우승 결정 플레이오프에 돌입(아르헨티나 리그의 정규 시즌에서 득실점차는 순위에 고려되고 있지 않다). 플레이오프에서도 3팀이 승점 3으로 동점이 되어 불과 1골의 차로 보카가 23회째의 영광을 손에 넣었다.

 우승을 결정짓는 3팀에 의한 미니 리그에서 우선 산 로렌소가 티그레(최근 승격한 팀으로 1부에 참전한지 이제 2년째이다)에 2-1로 승리하였다. 이어서 보카가 산 로렌소에 3-1로 승리. 보카의 우승은 너무도 쉬운 듯이 보였다. 왜냐하면 보카가 티그레에 승리는 물론이거니와 1점차로 지더라도 득실점차에서 챔피언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카는 티그레에 0-1로 패하여 우승을 손에 넣은 것인데 타이틀을 다른 팀에게 빼앗길 위기도 있었다. 67분에 실점하였을 때 상대 선수와 맞부딪친 젊은 GK 하비에르 가르시아(Javier Hernán García)가 부상으로 떠남으로 해서, 이 큰 무대가 데뷔전이 되는 약관 20살의 호수에 아얄라(Josué Ayala)가 교체 출장하는 사태로 이어졌던 것이다. 공세를 거듭하는 티그레에 보카도 반격. 결국 0-1인 채 시간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려 보카가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게 되었다.

■ 만신창이인 상태로 움켜쥔 영광

 최종적으로는 우승하였다고는 하지만 올 시즌 보카가 고전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제일 먼저 거론할 수 있는 것이 캡틴이며 에이스 FW인 마르틴 팔레르모(Martín Palermo)의 부재이다. 1930년대에 활약했던 프란시스코 바라요(Francisco Varallo - 현재도 살아있다[각주:1])의 보카의 역대 최다 골 기록[각주:2]을 갱신한 스트라이커는 8월 24일 CA 라누스와의 시합에서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를 다쳐 장기간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또한 팔레르모와 짝을 이루며 국내에서는 베스트 FW라고도 말할 수 있는 로드리고 팔라시오(Rodrigo Palacio)도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예전 리버풀에서 뛰었던[각주:3] CB 가브리엘 팔레타(Gabriel Paletta), 퍼스트 GK인 마우리시오 카란타(Mauricio Caranta)는 감독인 카를로스 이스치아(Carlos Ischia)와 논쟁을 벌인 끝에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되었다. 더욱이 경험 풍부한 SB인 우고 이바라(Hugo Ibarra)와 클라우디오 모렐 로드리게스(Claudio Morel Rodríguez)도 부상당해버렸다.

 그래서 보카는 새로운 인재를 발굴했다. 유스 팀에서 21살의 GK 가르시아, 20살의 DF 후안 포를린(예전 레알 마드리드B에 소속[각주:4]해 있었다), 21살의 DF 파쿤도 롱카글리아(Facundo Roncaglia), 22살의 볼란치인 크리스티안 마누엘 차베스(Cristian Manuel Chávez) 그리고 앞 선에는 21살의 두 공격수 리카르도 노이르(Ricardo Noir)와 놀랄만한 득점감각을 갖춘 루카스 비아트리(Lucas Viatri)를 승격시킨 것이다. 그들은 주력선수들의 포지션을 빼앗을 정도로 성장하여 팀 승리에 공헌하였다.

■ 1998년부터 시작된 팀 개혁

 
[팬들의 존재는 보카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모든 것은 1998년부터 시작되었다. 예전의 영광을 뒤로하고 오랜 기간 트로피에서 멀어져 있던 보카는 이 해에 새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미디어에 이용당하고 있던 팀을 해체하고 선수나 감독을 일신했다. 당시의 보카는 ‘마라도나 2세’라 일컬어졌던[각주:5] 디에고 라토레(Diego Latorre)가 “보카는 난장판이다”고 말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새로운 지휘관으로 카를로스 비안치[각주:6]가 취임하면서 보카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시작으로 한 수많은 영광을 획득하게 된다.

 1995년에 회장에 선출된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 현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장을 맡고 있다)는 어떻게 하면 팀을 재건할 수 있는지 몰랐다. 카를로스 빌라르도[각주:7]에 이어서 엑토르 베이라[각주:8]를 감독에 앉힌 것을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1998년 마크리는 팀을 프로페셔널 집단으로 하기 위해서 비안치를 초빙하였고 동시에 하부조직의 충실을 꾀했다. 또한 보카는 유소년을 위해 ‘클럽 파르케(Club Social y Deportivo Parque)’와 협력체제를 확립하였고 현재는 하부조직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서 큰 선수로는 레돈도(Fernando Redondo), 소린(Juan Pablo Sorín), 리켈메, 가고, 테베스 등 쟁쟁한 면면들이다.

 예전 보카는 선수들을 사 모으는 측이었다. 그러나 마크리는'”10년 안에 11명 중 9명은 클럽 토박이 선수가 될 것이다”고 선언했다. 당시는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평정을 되찾은 팀은 승리를 거듭하며 클럽의 근간이 만들어졌다.

■ 라이벌 리베르의 존재.

 보카는 개혁 이후 국내에서 7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4번, 토요타 컵(현 클럽월드컵)을 2번 제패했다. 또한 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도 2번, 레코파 수다메리카나[각주:9]에서도 3번 우승하였다. 이것은 전부 1998년 이후에 획득한 타이틀이다. 아르헨티나, 남미대륙 거기에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들 대부분은 자신의 가치를 높여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페르난도 가고(레알 마드리드), 에베르 바네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에밀리아노 인수아(Emiliano Insúa, 리버풀), 오스칼 트레호(Oscar Trejo, 마요르카), 세바스티안 나야르(Sebastián Nayar, 레크레아티보), 파비안 몬손(Luciano Fabián Monzón, 베티스), 카를로스 테베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현재 보루시아 MG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FW 로베르토 콜라우티(Roberto Colautti)도 보카의 유스 출신이다.

 한편 보카는 하부조직의 선수육성만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으로 보낸 클럽을 상징하는 선수들을 몇 년인가 후에 다시 불러들임으로 인해 팀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있다. 세바스티안 바타글리아(Sebastián Battaglia, 전 비야레알), 후안 로만 리켈메(바르셀로나, 전 비야레알), 우고 이바라(FC 포르투, 모나코, 에스파뇰), 팔레르모(비야레알, 베티스, 알라베스) 등의 면면들이다. 또한 보카는 ‘등번호 12’로 알려진 가장 잔소리가 심한 팬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거대한 깃발을 휘날리며 팀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보켄세[각주:10](보카의 팬)에게 있어 2008년 전기 리그 우승은 특별한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팀 우승은 물론이거니와 최대의 라이벌인 리버플레이트(리베르)가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최하위로 떨어진 것이다. 1931년 프로 리그화된 이후 리그 우승회수를 따지면 23번의 보카에 비해 리베르는 국내 최다인 33회를 자랑한다(국제 타이틀까지 포함하면 보카는 리베르를 크게 앞서고 있다). 2008년 후기 리그에서는 리베르에 우승을 허용하여 2위로 마쳤던 만큼 그 반년 후에 챔피언 자리를 탈환하였기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리베르가 곧바로 2부로 강등당하지는 않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과거 3년(전기, 후기 3대회 씩)의 성적에서 평균값을 산출하여 하위 2팀이 강등당하기 때문이다(17, 18위 팀은 교체전을 행하게 된다).

  1. 1910년 2월 5일생. [본문으로]
  2. 194골. 보카의 아마 시절까지 포함하면 로베르토 체로(Roberto Cherro)의 221골. [본문으로]
  3. 2006-2007시즌 3경기 출장. [본문으로]
  4. 2007년. [본문으로]
  5. 이 선수가 처음으로 '마라도나2세(New Maradona 혹은 New Diego)'라고 불렸다. [본문으로]
  6. 현재는 보카의 GM [본문으로]
  7. Carlos Bilardo. 그는 1983~1990년까지 마라도나와 함께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감독이다. 월드컵 우승 1회, 준우승 1회. 1996년 보카 감독으로 당시 리그 5위. [본문으로]
  8. Héctor Veira - 1996~1998의 감독. 리그 순위는 각각 9위, 2위, 6위. [본문으로]
  9. Recopa Sudamericana.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코파 수다메리카나의 우승팀이 격돌하는 UEFA의 슈퍼컵과 같은 대회이다. [본문으로]
  10. 철자는 boquense....굳이 각주를 단 이유는....철자 찾기 힘들었거든요. [본문으로]
Posted by 渤海之狼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