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비로이와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1.22 이와타의 부진에서 J리그 클럽은 무엇을 배워야 하나 by 渤海之狼
  2. 2006.11.13 브라질 대표를 이끈 파레이라와 둥가의 차이 by 渤海之狼 4
  3. 2006.05.18 한국 대표팀의 대형 신성(新星) 김진규 인터뷰 by 渤海之狼

출처:http://number.goo.ne.jp/soccer/japan/719/20090106-1-1.html
저자:니노미야 토시오

 

 올 시즌까지만 행하고 철폐되는 J1, J2 교체전[각주:1]에서 살아 남은 팀은 주빌로 이와타(ジュビロ磐田)였다.

 원정 1차전[각주:2]에서 귀중한 동점골을 넣었던 입단 2년째의 마츠우라 타쿠야(松浦 拓弥)가 홈에서 맞이한 베가르타 센다이(ベガルタ仙台)와의 2차전에서도 2골을 넣었으며, 수비를 단단히 한 종료 직전에는 카와구치 요시카츠(川口 能活)가 얼굴로 공을 막아내는 등 전원이 몸을 던지며 수비하여 시합을 마쳤다. 5년에 걸쳐 수 많은 드라마를 만들어 온 교체전의 피날레에 걸맞은 격렬한 사투였다.

 3년 연속으로 J2 팀이 이겼었던 만큼 이와타의 기쁨은 말할 것까지도 없었다. 시합 후 카와구치는 얼굴을 감싸고 울었을 정도다. 그러나 기쁨에 빠져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카와구치는 반성을 담아 말했다.

 “승리에 익숙해 있던 분위기가 있었을 지도 모르며 위기감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좀 더 헝그리한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거 3번 리그를 제패했던 이와타는 올 시즌 난조를 보이며 클럽 사상 최저인 연간 16위로 시즌을 마쳤다. 부상 선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며 카와구치가 말했듯이 선수 측에 위기감 결여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 수년 프런트의 ‘엉성함’이야 말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2006년에 지휘를 맡긴 브라질 출신의 아지우송 바티스타(Adilson Dias Batista[각주:3]) 감독은 상대 팀을 연구하여 그에 따라 전술이나 멤버를 바꾸는 카운터 주체의 수동적인 축구를 도입하였지만 성적부진을 이유로 2007년 9월에 해임되었다. 그 다음으로 톱 팀의 코치였던 우치야마 아츠시(内山 篤)가 승진하여 감독이 되자 아지우송과는 달리 황금기를 구축했던 능동적인 축구로의 회귀를 목표로 하였다. 그 우치야마도 결과를 남기지 못하여 2008년 9월에 초빙된 감독이 잔류를 위한 수비적 전술을 쓴 한스 오프트(Hans Ooft[각주:4])이다. 어느 감독이건 이와타의 축구를 잘 아는 OB지휘관이라고는 하여도 스타일 그 자체가 자주 바뀌어 버린 듯한 인상을 부정할 수 없다. 프런트와 현장이 철저한 방침을 세우고 있었는지 의문부가 찍힌다.

 대조적으로 한때 이와타와 2강 시대를 구축했던 카시마 앤틀러스(鹿島アントラーズ)는 올 시즌 2연패를 달성. 2003년부터 4년간 무관인 시기가 있었어도 토니뉴 세레주(Toninho Cerezo[각주:5])에게 6년간 장기집권을 허용하게 한 것이 키 포인트였다[각주:6]. 카시마의 어느 간부는 이렇게 말하였다.

 “짧은 기간으로는 감독의 가르침 같은 것이 정착되지 않습니다. 오래 해 주길 위해서도 클럽의 방침을 감독에게 확실히 전달하며 감독에게서도 의견을 듣는 커뮤니케이션 작업이 중요한 것이죠.”

 토니뉴 세레주는 연습시간이 끝나도 남아서 어린 선수들을 단련시키는 열혈한이었다. 프런트는 그 점을 높게 평가하며 팀의 저력을 중시하였다. 중장기 계획이 그려졌기에 지금의 부활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프런트의 문제는 불과 1년 만에 J2로 강등당한 토우쿄우 베르디(東京ヴェルディ)에게도 느낀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가 있다곤 하여도 올 시즌 획득하여 계속 선발 멤버로 기용해 온 후쿠니시 타카시(福西 崇史), 도이 요우이치(土肥 洋一)에게 1년 만 쓰고 ‘전력 외 통고’를 내는 것을 보니 장래적인 비전을 그리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올 시즌 선풍을 불러 일으켜 온 나고야 그램퍼스(名古屋グランパス)[각주:7]건 오오이타 트리니타(大分トリニータ)[각주:8]건 명문팀의 부진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장래를 내다보며 프런트와 현장이 일치단결하지 않으면 일순의 영광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빛나는 영광을 쌓아왔던 이와타에게 있어서는 잔류 다툼에 휩싸인 올 시즌의 굴욕을 각성의 계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퇴임하는 오프트도 ‘요 5년간 조금씩 팀의 실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다. 프런트도 확실한 비전을 빨리 제시하지 않는다면 상승군단 부활의 날은 더 멀어질 것이다.

  1. J리그의 승강제는 2004-2008시즌까지 J1의 17위, 18위는 자동강등. J2의 1,2위는 자동승격되었으며 J1의 연간성적 16위와 J2 연간성적 3위는 홈&어웨이로 시합을 하여 이긴 쪽이 강등 혹은 잔류하였다. 2009년부터는 J1 연간성적 하위 3팀은 자동강등, J2 상위 3팀은 자동승격하게 된다. [본문으로]
  2. 1-1 무승부. [본문으로]
  3. 이와타 OB이며 현 브라질 크루제이루 감독. [본문으로]
  4. 그는 1994~1996년까지 이와타의 감독이었다. [본문으로]
  5. 지쿠와 함께 황금의 중반을 담당했던 그 사람. [본문으로]
  6. 2000-2005년까지. 현재는 2007년부터 감독인 오스왈두 올리베이라(Oswaldo De Oliveira Filho)이다. [본문으로]
  7. 2008시즌 3위. [본문으로]
  8. 2008시즌 4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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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20061109.html
저자: 키자키 신야

 둥가가 감독에 취임하고부터 브라질이 잘 나가고 있다. 첫 시합만 노르웨이에게 비겼을 뿐 그 뒤로는 아르헨티나와의 시합을 포함한 4연승. 독일 월드컵에서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준 브라질 대표지만 카나리아 색의 광채를 되찾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둥가와 전임자인 파레이라와는 어느 점이 틀린 것일까?

 감독이 교대되어도 레귤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DF 주앙은 말한다.

 “파레이라도 결코 나쁜 감독은 아니었지만 권위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에 비해 둥가는 브라질 대표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해 왔던 만큼 선수의 기분을 잘 알고 있다. 침울해 있는 선수가 있어도 그 기분을 이해하여 다시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에 굉장히 능숙하다.”

 24살에 피트니스 코치가 된 파레이라와 비교해서 둥가는 36살에 은퇴할 때까지 월드컵 3회 출장하며 94년에는 우승도 이루었다. 풍부한 경험의 전 브라질 대표팀 선수로서 현 선수의 고민을 자신의 일처럼 아는 것이다.

 둥가가 감독에 취임했을 때, 선수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90년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없었던 분함을 94년 월드컵에서 분출하여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너희들도 올 여름의 분함을 2010년 남아프리카 대회에서 분출해보아라!”

 쥬비로 이와타 시대에 둥가는 팀 동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주앙에게 알려주자,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다.”하며 크게 웃었다.

 “나를 포함한 브라질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얌전하지. 지쿠도 그럴걸? 하지만 둥가는 전혀 다른 타입인 것이다. 호통 치는 것은 당연. 그것이 선수의 교만한 마음을 날려버리고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당초는 감독 경험이 없었기에 주위에선 위구심을 띈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슈투트가르트 시대의 동료였던 부크발트가 “그는 현역선수일 때부터 감독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고 말했던 것 같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를 이미 알고 있다. 3년 전에 파레이라가 호텔을 전부 1인용 방으로 한 것에 비해 둥가는 “대가족이 브라질의 원점이다.”라고 말하며 2인용 방으로 되돌렸다.

 전술을 무기로 하는 감독이 증가하고 있는 최근 축구계에서 [기합]을 무기로 하여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를 상상해보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다.

[둥가가 일본에 있을 때 찍은 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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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하라 슈이치로
 

한국 대표의 새로운 별이 지금 쥬비로 이와타에서 독일로 비약하려 하고 있다.

DF의 김진규1985년 2월 16생인 21작년 20살의 생일에 발표한 쥬비로로 이적할 당시 이미 전년 아시아 컵 3시합을 포함한 A매치 8시합 출장(선발 7시합) 1득점의 대표 기록쥬비로 가입 후에는 월드컵 최종 예선 3시합동아시아 선수권 전 3시합에 풀 출장작년 10월 아드보카드 신 감독 취임 후에도 변함없이 대표에 계속 소집되고 있는 한국대표 주력선수의 하나다.

 

 신장 184Cm, 체중 80Kg라는 당당한 체구반할 정도인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 30미터가 넘는 FK을 낮고 날카로운 탄도로 직접 골을 넣는 파워도 가지고 있다또한 하이볼에서의 몸싸움은 수비시의 공헌뿐만 아니라 셋트 플레이에서 상대 골 앞에서 위협적인 존재로 변한다고교 졸업 직후 K리그에서는 2시즌에서 2득점작년 J리그에서는 1득점한국대표팀에서는 3득점을 올리고 있는 “득점력 있는 DF"인 것이다.

 

어느 선수보다도 지는 것이 싫다.

 

당신의 축구 이력을 알려 주세요.

 

초등학교 때는 GK부터 시작했습니다그 후에 DF FW에서 플레이 했습니다. DF전문으로 플레이 하게 된 것은 고교3학년 때부터입니다. DF쪽이 보다 성공할 거라는 감독의 판단이었습니다저는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었습니다만 고등학교의 감독과 부모님이 서로 알고 있어서 안동고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안동고교의 감독님과의 만남이 제겐 커다란 성장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DF에서 플레이 하고 있으면서골을 빼앗기는 것이 싫었습니다단지 DF라서 슛이나 골을 넣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FK으로 골을 노리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부터입니다. 2시합에 1점은 FK에 의한 골이었습니다.

 

작년 쥬비로로 이적해왔을 즈음은 말 없는 인상이었습니다만?

 

처음은 일본어를 몰라서 팀에서 별로 말하지 않았습니다그 때는 제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없어서 초조했습니다방이 많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기에 외로운 날도 있었습니다식사나 날씨는 한국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습니다만 차가 좌측통행이라거나 말이 다른 것에는 당혹했습니다단지 그렇다는 것이지 쥬비로에서 커다란 불편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쥬비로로 이적해 와서 느낀 점은?

 

경기 레벨에서 커다란 차이는 없습니다전남 드래곤즈는 한국에서 탑 클래스의 팀이었으며 쥬비로도 일본에서는 탑 클래스의 팀입니다단지 서포터는 일본 쪽이 많이 와주십니다이런 점에서 쥬비로로 이적해 온 것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선후배의 관계가 일본보다 엄격합니다만 그렇다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며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저는 선배(선수)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규율이 보다 유지되기에 개인적으로는 한국과 같이 선후배의 관계는 약간 엄격한 편이 좋다고 느낍니다.

 
거기에 한국 선수는 지는 것을 정말로 싫어하기에 지면 다음 시합을 향해서 정신을 무장시키며 그런 식으로 준비해 가기 때문에 일본보다 국제 대회에서 보다 좋은 성적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쥬비로의 다른 선수들도 지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지는 것이 정말로 싫기 때문에 지면 분하고 반성하며 다음 날에는 (진 시합의) DVD를 보면서 분석하고 잘 때도 계속 생각하면서 잡니다단지 어린 나이에 일본에 와서
…… 라고 해도 작년부터입니다만 침착한 플레이안정된 플레이시야의 확보를 쥬비로의 감독이나 코치선수들에게 배웠습니다그러한 점에 대해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1살의 어린 나이로 월드컵 무대에

 

 작년은 말이 통하지 않은 채 카고시마 캠프 종료 후에 J리그 개막 직전 팀에 합류. DF 스즈키 히데토[鈴木 秀人]의 부상으로 팀 동료와 익숙해질 틈 없이 개막전부터 계속 선발 출장을 했다일본 대표 선수 3(카와구치 요시카츠[川口 能活], 챠노 타카유키[茶野 隆行]무라이 신지[村井 二])와 함께 야마모토 마사쿠니[山本 昌邦]감독이 이끄는 쥬비로의 대형 보강 정책의 일원으로 큰 기대를 받았지만 팀 전체가 리빌딩에 따른 악전고투 중이었다말이 잘 통하지 않는 연계의 미스를 상대에게 뚫려 실점해서 지는 일도 있었다지는 것이 굉장히 싫은 김진규에게는 굉장히 괴로운 시기였을 것이다스즈키 히데토의 복귀 후에는 벤치를 데우는 일도 있었지만 주전 포지션을 다시 획득하여 올해 4월에 들어서 안정되어진 쥬비로의 디펜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쥬비로에서 안정됨은 월드컵을 향한 자신감으로 연결될 터이다.

 

올해 21살로 월드컵에 출장할 수 있는 커다란 기회가 생겼습니다.

 

월드컵에 출장할 수 있다는 기대는 굉장히 큽니다어렸을 적부터 꿈꾸어 오던 대회이기에 이렇게 빨리 출장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월드컵을 경험하여 선수로써 더욱 레벨 업하고 싶습니다.

 

어린 나이에 월드컵에 출장하는 것에 불안은 없습니까?

 

어렸을 적부터 축구를 해 오면서 불안과는 항상 부딪혀왔습니다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왔기에 불안에 눌리는 일은 없습니다이번 월드컵 (그룹 리그)에서의 상대는 프랑스스위스토고라는 강호 국들뿐입니다상대 팀에는 유명한 선수가 많습니다만 두려워하지 않고 맞부딪혀 갈 것입니다.

 

 한국어로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있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미로 프로선수로서 마케팅 툴은 아니다원래의 한국어에서 벗어난 생기있는 문자나 말을 사용해서 축구 뿐만 아니고 일상적인 일도 즐겁게 글을 올리고 있다잘생긴 얼굴과 근육질인 커다란 몸 때문에 위압적이고 다가서기 어려운 듯이 보이지만 그의 진실한 모습은 밝고 인생을 즐기는 21살의 청년이다자신의 홈페이지 ID를 영덕 대게라 한다장난으로 한 것도 있지만 출신지의 토산품에 긍지를 넣어서 지은 것. "코믹컬한 닉네임이네요"라는 물음에, "게를 먹어서 크고 건강하게 자랐으니까요"라고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쥬비로에서 플레이하는 사랑스런 한국 청년을 주목하면 월드컵 관전에 또 하나의 즐거움이 더할 터이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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