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스타디움을 특별한 분위기로 만들어 줄 것 같은 팀이 있다. 인구 130만, 카리브해의 소국 트리니다드토바고다.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세미 프로리그가 생긴 것은 1995년. 4년 후인 1999년에는 완전 프로화되어 카리브해의 여기저기서 선수가 모여 들었다.
리그는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축구 수준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스타디움에서 인기 밴드들이 칼립소(카리브해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발상했다)의 콘서트를 동시에 행했기 때문이다. 스타디움은 카니발과 같은 축제 분위기가 되어 팬이 모여들었다.
<사커>+<음악>이라는 새로운 축구 문화가 태어났다.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축구협회는 꼭 이 열기를 독일 월드컵 대회로 가지고 가고 싶다고 생각하여 동국 출신인 FIFA 부회장 잭 워너(가족이 운영하는 심파울 여행사가 이번 월드컵 입장권을 독점 판매)의 연줄을 이용하여 음악대 전원의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미 칼립소의 밴드는 월드컵을 향해서 맹연습 중. 독일의 스타디움이 즉석 콘서트장이 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는 축구와는 연이 없었던 카리브해의 소국이 어째서 월드컵에 출장할 수 있었던 것인가? 우선 들 수 있는 이유로 네덜란드의 명장 레오 벤하커 감독의 존재.
북중미, 카리브해 지역예선 최종라운드에서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초반 3시합에서 승점을 1점밖에 얻지 못하고 최하위로 떨어졌다. 협회는 센트 크레아 감독을 해임하고 당시 62세의 벤하커를 초빙했다.
벤하커는 술주정뱅이의 문제아 요크에게 규율을 가리키고 37세의 대 베테랑 라타피(전 그라스고 레인져스)를 대표로 다시 복귀시켰으며 거기에 트리니다드토바고 국적의 모친을 가진 잉글랜드 태생의 크리스토포 버챌을 꼬셔서 대표팀에 뽑는 등 계속해서 개혁을 해 나갔다.

당연히 전술은 네덜란드류였다. 벤하커는 말한다.
"내가 오기 전까지 팀은 수비적인 리액션 사커를 하고 있었다. 그런 축구로는 이길 수 없다. 항상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는 공격적인 사커를 하게 하였다. 네덜란드류의 전술과 그들의 높은 신체능력은 잘 조화했다. 때문에 플레이오프에서 바레인에게 승리하여 월드컵에 출장할 수 있었다."

벤하커는 80년대 후반 레알 마드리드를 3년 연속 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1990년 월드컵 대회에서는 네덜란드 대표팀을 지휘했다. 벌써 정년퇴직했을 법한 나이지만 "내 나이 정도 되면 '미션 임파시블'에 도전하고 싶어진다구"라며 정열을 불태웠다.

필자는 월드컵 티켓 1차 판매가 개시되었을 때 단지 품절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트리니다드토바고의 TST티켓을 신청하였고, 약 250만원정도가 카드에서 인출되었다. 그 직후에 후회했지만 트리니다드토바고가 최하위에서 올라와 월드컵 출장을 결정짓고 거기에 칼립소의 음악대가 보내진다는 것을 알고 나자 굉장히 이득을 본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축구 + 음악 in 월드컵]. 네덜란드 노장 덕분에 독일 월드컵의 즐거움이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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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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