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축구협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4.06 죽음과 함께하는 아르헨티나 축구계 by 渤海之狼
  2. 2006.10.16 마라도나 인터뷰 by 渤海之狼

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1011/other/text/201103310007-spnavi.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저작권자: sportsnavi.com



■ 그 사건부터 3년 후 또 다시…


  2008년 3월 15일. 아르헨티나 1부 후기리그의 벨레스 사르스필드 대 CA 산로렌소의 시합이 시작되기 직전 21살의 벨레스 팬 엠마누엘 알바레스가 상대 팀 서포터에게 총을 맞아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한 골문 뒤의 벨레스 팬들은 자기 팀의 선수들에게 알바레스의 몸에 일어난 사건을 전달하기 위해서 필드와 스탠드를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을 파괴하였다. 그 고통스런 2008년의 시합은 이렇게 해서 중지되었다.

 이 두 팀은 같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본거지로 하며 또한 과거에도 몇 번이나 우승다툼을 펼쳐왔기에 오랜 기간 극심한 라이벌관계였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양 클럽의 집행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대책을 철저히 하게 되었다.

 저 사건으로부터 거의 3년이 경과한 2011년 3월 20일. 그 때와 마찬가지로 두 팀이 역시 같은 스타디움에서 시합이 개시되었고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산로렌소의 팬들이 골문 뒤의 철조망을 부시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시합 직전에 36살의 산로렌소 팬 라몬 아라마조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며, 시합은 역시 중지되었다.


■ 클럽의 노력도 보람없이 사건은 일어났다.


 부검 결과, 아라마조의 유체에서 다수의 폭행 흔적과 찰과상이 발견되었다고 변호사인 페르난도 블란드는 설명하였다. 또한 NGO ‘축구를 구하자(SAF)’의 통계에 따르면 아라마조는 아르헨티나 축구계에서 일어난 폭력사건의 256명째의 희생자라고 한다. ‘축구를 구하자’의 간부인 모니카 니찰드는 아르헨티나 팬 협회(HUA)와 협력하여 많은 폭력적인 팬들을 남아공 월드컵 대회에 파견할 수 있게 원조한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AFA), 그리고 아르헨티나 정부를 포함하여 이러한 폭력을 옹호하는 부패한 시스템과 싸워야만 한다고 용감히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합에 앞서 벨레스와 산로렌소, 양 클럽의 집행부가 폭력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도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양 클럽은 시합이 있기 수 일전에 클럽의 깃발을 서로 교환하며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클럽간의 우호관계를 강조하였다. 거기에 시합 당일에는 양 팀의 선수들이 라이벌의 클럽 깃발을 치켜들고 입장하는 – 아르헨티나 리그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광경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없었다. 선수들이 라이벌 클럽 깃발을 들고 입장할 때 스탠드에서 볼 수 있던 것은 상찬과 응원의 박수가 아니라 시합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폭력을 쓰고 철조망을 파괴하는 원정 팬들의 모습이었다.


■ 해결책은 있는가?


 지금까지 아르헨티나 축구계에서는 이것 외에 어떤 사망사건이 있었나?
 ‘라 나시온’ 지(紙)의 카를로스 벨 기자가 2009년 11월 14일에 쓴 뛰어난 기사가 있다. 루벤 칼바조라는 젊은이가 록 밴드 ‘비에하스 로커스’의 콘서트 뒤 사망한 사건에 대한 기사이다. 

 
벨레스의 홈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 콘서트에서 벨레스 사르스필드의 울트라스(열광적인 서포터 그룹)가 좌석을 우선 확보할 수 있게 해당 지역경찰(제44분서)에서 편의를 봐 주었다. 칼바조의 죽음은 그것이 원인이 되어 생긴 셀레스의 울트라스와 일반인 관객간에 좌석 다툼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여기서 저 지역 경찰. 즉 제44분서의 이름을 기억하길 바란다.

 아라모조의 사망판결에는 그 후 목격자가 나타났다. 후안 카브레라라는 남성이 파트리시오 루고네스 검사에게 진술한 증언은 다음과 같은 공식기록이 되어 남아있다. 아라마조가 스타디움에 입장할 때 받는 소지품 검사에서 경찰(이 경찰도 제44분서 소속)과 다툼이 일으났다. 처음엔 반항하던 아라마조는 도망을 쳤고 그 아라마조를 추격한 경찰은 럭비와 같은 태클로 덮쳤다. 거기에 다섯 명의 경관이 달려들어 겨우 잡았는데 아라마조는 잡힐 때 얼굴에 강한 충격을 입었다. 2명의 경관이 무릎으로 등을 눌러 제압하였고 그래도 몸부림 치는 아라마조의 음낭을 강하게 잡아 구속. 하지만 별 혐의가 없었기에 석방되었지만 아라마조는 다리에 통증을 호소하며 길 옆에 주저앉았다. 그 뒤 그곳을 지나치던 다른 경관이 쓰러져있던 아라마조를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렀지만 그때 이미 아라마조는 죽어있었다고 한다.

 소속경관이 이러한 중대한 사건을 일으킨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제44분서에 대해, 아르헨티나 정부의 닐다 가레(Nilda_Garré) 국방장관은 국가헌병대에게 조사할 것을 명령하였다.

 폭력과 직접 대면하고 있는 경관의 어려움 그리고 그런 경관들의 행동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고려한 뒤 아르헨티나 축구계에 질문을 던진다. 축구를 보러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일반 시민이 현 상태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일까? 어떠한 권력기관도 이 문제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 ‘축구를 구하자’와 같은 NGO, 미디어, 폭력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부 클럽의 임원만이 사태해결을 위한 노력의 전부인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과격 서포터즈 그룹인 울트라스와 싸울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상황에서 256명이라는 아르헨티나 축구계의 희생자 수는 또다시 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Posted by 渤海之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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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607/other/column/200610/at00010851.html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 마라도나와의 “불확실한” 약속


 디에고 마라도나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예전의 스타들과의 연습시합에 참가하기 위해서 코펜하겐으로 떠나기 몇 일전. 그는 여러 가지를 말해주었다. 축구에 대해서는 물론, 사생활, 미래,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서. 그리고 생사를 넘나든 그 때의 일을…….

 8개의 조명등의 강한 빛이 인조잔디의 조그만 스타디움을 비추고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에 있는 어느 집의 그라운드에는 전 아르헨티나 대표인 알레한드로가 앉아있었다.

 겨울치고는 비교적 따스함을 느껴지는 낮/ 우리는 이젠 45살이 된 디에고 마라도나를 몇 시간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약속대로 흔쾌히 취재에 응해주었다.


 알레한드로는 한 때 대표팀에서 함께 플레이한 경험도 있는 마라도나의 동료로, 이날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코펜하겐에서의 시합을 향해서 연습을 함께 하려던 차였다.

 우리들은 오랜 시간 기다렸다. 마라도나는 잘 알려진 대로 불안정하고, '정신분열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긍정적인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빠지거나 한다. 모순이라는 것은 신경도 안 쓰는 것이다. 그런 면이 있는 만큼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런 보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 한해서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확실한 징조가 있었다. 왜냐면 우리들 기자들이 알레한드로의 집으로 들어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벽에 기대면서 우리는 '축구의 신'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축구 사상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다]

[1986년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시합에서 최고의 골을 넣었다]

[그 시합에선 ‘신의 손’ 골도 넣었지]


■ ‘신’은 ‘스캔들 투성이의 빅 스타’


 그 ‘신’은 다른 이름으로 ‘스캔들 투성이의 빅 스타’라고도 한다. 몇 년 동안이나 마약에 중독되었으며, 2004년에는 심장 질환 등을 일으켜 죽을 수도 있었다. 당시 체중 130Kg은 165Cm 정도의 마라도나에겐 적어도 50Kg 체중 과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나 상황은 많이 변한 듯 하다. 2005년 8월 마라도나는 자신이 MC를 하는 [10번의 밤]이라는 버라이어티 방송을 시작하였고 곧이어 이 방송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텔레비전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자신도 사랑받았던 지역 클럽 보카 주니어스의 시합을 자주 관전. 차츰 체중도 줄었고 마약도 끊었다.


 그래도 마라도나는 여전히 유명했으며, 변덕스러운 것은 변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마라도나는?


 우리는 30분정도 더 기다렸다. 당연하겠지만 마라도나를 위해서. 마라도나는 누구를 기다리거나 하지 않는다.

 시계가 밤 9시를 가리킬 즈음 드디어 그가 왔다. 나이키의 스포츠 웨어를 몸에 걸치고 미소를 지으며 이 쪽으로 왔다. 손에 들고 있던 시거는 거의 다 피우고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 마라도나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는 스타디움의 뒷편에 있는 하얀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자에 그를 앉혔다. 한때 게리 리네커와 BBC가 인터뷰 하나를 찍기 위해서 2만 유로(약 2400만원)을 냈던 그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마라도나와의 인터뷰정도라면 그것이 상식인 것이다. 한때 덴마크의 [유란즈 보스텐]지(紙)가 단지 20분간의 인터뷰에 3~4만 달러(약 2900~3800만원)을 요구받아 포기했다고도 하며, 일본의 방송국은 1시간 10만 유로(약 1억 2000만원)라고 하여 고민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번엔 덴마크 방문을 기회로 [아르헨티나의 마법사]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인터뷰에 응해준 것이다.


 마라도나는 웃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에 귀에는 다이아몬드의 귀걸이 두개. 반지는 끼고 있지 않았고 트레이드마크인 두 개의 롤렉스시계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마라도나가 차고 있던 것은 스포츠 시계였다. 검은 머리는 흩어져 있었고 왼손에 가지고 있던 꺼지려는 하바나 시거의 연기가 공중에 떠있었다. 오른손에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 그리고 작은 몸의 '위대한 아르헨티나 선수'는 말하기 시작했다.


■ 테크닉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


- 디에고, 우선 덴마크에 대해서 아는 것을 말해주세요.


공항이지(웃음). 실은 안타깝게도 아직 덴마크에는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덴마크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말이 들었다. 그렇기에 실제로 가서 그 나라나 풍습을 알고 싶다. 거기에 덴마크 여성들은 미인이라고 하더군. 나는 지금 독신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문제없잖아(웃음)


- 그 쪽에서는 [쇼우 볼(show ball인 듯하다)](아크로바틱한 7인제 축구)의 연습 시합을 행하게 되었습니다만 관객들에게 어떤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습니까?


즐기면서 플레이 하는 것이나 아르헨티나 축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멋진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그다지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육체적인 면에 너무 앞세운 게임이 많아서 매력적인 플레이나 기교 있는 테크닉을 보기 힘들었다. 호나우지뉴의 플레이는 어처구니없었으며 메시도 존재감이 없었다.

전 세계의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좀 더 다른 것을 보는 것을 바랄 것이다. 나는 테크닉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으며 그것을 보증하겠다. 나 자신, 플레이 할 때는 즐기고 싶으니까.


- 당신의 생각에 따른 [쇼우 볼]이 일부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우선 생각한 것은 좀 더 다이내믹한 축구를 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볼이 필드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 벽을 사용하고 있다. 운이 좋아서 이 [쇼우 볼]은 여러 나라에 받아들여졌다. 거기에 나이 때문에 은퇴한 선수들도 참가할 수 있었기에 축구로 향한 정열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도 좋다.


- FIFA가 [쇼우 볼]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입니까?


그래, 이야기는 있었다.


■ 일본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대회는 잊을 수 없는 추억


- 독일 월드컵에서 베스트 플레이어는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써는 그다지 말할 만한 것이 없군. 2002년 월드컵의 베스트 플레이어를 묻는다면 결승에서 미스는 있었지만 올리버 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칸나바로, 마테라치(둘 다 이탈리아). 그리고 아얄라(아르헨티나)를 꼽아야 한다. (수비적인 선수들뿐으로) 그다지 칭송할 만하지는 않지만.


- [미래의 마라도나]는 발견하셨습니까?


아니……. 없었다. 우선 왼발을 쓰는 선수가 그다지 없었으니까(웃음). 그렇지만 위대한 선수는 있다. 월드컵에서 호나우지뉴의 플레이는 별로였지만 그는 필드 위에서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는 희소가치가 있는 선수다.


- 지네딘 지단이 이번 대회의 베스트 플레이어가 아닐까요?


아니,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플레이어로써 말년이었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번 대회의 베스트 플레이어는 칸나바로나 그로소, 아얄라라는 디펜더다.


- 당신 자신에 대해서 말하면 1986년 월드컵 멕시코 대회 잉글랜드와의 시합에서의 골은 세계의 역사를 바꿀만한 굉장한 골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물론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면 펠레가 화낼 테지만.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골을 계속 꿈꿔왔다. 그것이 현실이 되어 이번엔 꿈에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실제로 꿈에서 깨는 일 없이 잉글랜드를 상대로 2점째를 넣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모두 그 골을 최고의 골로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고맙다고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도 똑같이 말해 주었다.


- 일본에서는 1979년 세계 청소년대회(현 U-20 월드컵)에서의 당신의 플레이가 강렬했다고 하더군요.


그 때의 대표팀은 굉장했다. 하고자 하는 의욕도 넘쳐났으며 정확성이나 스피드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의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서 우리들의 시합을 텔레비전으로 보아 준 것이다. 그 때의 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며 모두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 대표팀 감독 취임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렵다.


- 앞으로의 일입니다만 베켄바우어처럼 양복과 넥타이의 모습이 된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한 생활에는 익숙하지 않다. FIFA에 들어가려는 예전의 축구선수에 한해서 선수를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 거기에 축구가 뭔지를 모르는 녀석이 이 세계를 이끈 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아벨란제는 20년 이상에 걸쳐 FIFA 회장을 맡았지만 그는 원래 수영선수였다. 현 회장인 블래터는 축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돈벌이뿐이다. 정말로 불유쾌하다.......뭐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으며 나는 언제라도 선수 측에 서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 그럼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훌리오 그란도나(20여년에 걸쳐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동시에 FIFA 부회장)의 시대에는 출입금지니까. 나는 단지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가 25년 전과 같은 듯한 상황과 대우를 강요받고 있는 것에 관해서 정정당당히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어쨌든 그란도나가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있을 장소가 없다고 생각한다.


- 친구인 피델 카스트로 의장과는 그가 수술을 받은 후에도 연락을 하셨습니까?


몇 번인가는 연락했다. 12월 2일 혁명군의 날에는 축하하러 쿠바에 간다고 했다.


- 그의 용태는 어떤가요?


굉장히 좋다.


- 당신이 카스트로 의장이나 체 게바라를 숭배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요?


나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부시는 용서할 수 없지만, 피델(카스트로)는 사람들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틀렸다고 한다면 나도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여도 나는 피델을 지지한다. 그리고 체(의사이며, 혁명의 영웅. 쿠바혁명에서는 카스트로와 함께 싸웠다)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고의 남자다. 현재에서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도 피델과 닮았다.


■ 신이 주신 축구는 위대하다.


- 당신의 건강 상태는 어떠십니까?


최고다.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며 딸인 지아니나와 달마와도 새로운 부녀관계를 쌓고 있다. 거기에 지금은 축구공을 찰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볼과 함께 태어나서 함께 죽을 거라고 모두들 그러는데,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 그럼 이젠 건강하시군요.


그래. 매일 딸들을 생각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멋진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또 다시 축구공을 찰 수 있게 된 것이 정말로 기쁘다. 신이 나에게 주신 축구는 위대하다.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다. 축구는 왕이다. 우리들은 매일 신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당신의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돌아 본다면?


좋은 때도 있었고 나쁜 때도 있었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나는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딸들의 애정을 잃었던 적이 있기에 몇 가지 고치고 싶은 부분도 있다. 나는 바보 같은 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실패는 내 자신 탓이며 그것은 지금까지 승리해서 쟁취한 것에 관해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 그 때(2004년)의 죽음은 어느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던 것일까요?


거의 죽었었다. 하지만 내 막내딸이 죽음의 심연에서 건져 올려 주었다. 틀림없이 신은 나를 아직 하늘로 데려가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 앞으로도 계속 축구를 하고 싶으십니까?


아니, 언젠가는 관둘 거다. 80세나 그 근처가 된다면(웃음).


어떤 사람이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렸다. 눈 깜짝할 정도로 짧은 듯한 인터뷰 시간이었다. 듣고 싶은 것이 굉장히 많았지만, 이것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마라도나는 감사의 말을 우리들에게 전하며, “지금부터는 축구공과 놀 시간이다”라고 말하곤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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