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japan/2011/text/201101110002-spnavi.html
저자 : 우츠노미야 테츠이치

■ 반세기 동안 멀어졌던 왕좌 탈환에 불타는 한국

 대회 4일째. 이미 A조와 B조에 속하는 8팀의 1차전이 끝나 이제야 이번 대회 전체적인 모습을 반 정도 볼 수 있었다. 당초 주최국인 카타르가 소속된 A조를 보고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구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어제 밤 B조의 2시합을 보고 방금 전까지 가지고 있던 허술한 인식을 재고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FIFA 랭킹 100위대인 요르단(104위)과 시리아(107위)가 과거 이번 대회 3차례 우승한 일본이나 사우디아라비아를 오히려 압도하였기에 누구나 위기감을 품었을 것이다.(여담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패전으로 인해 감독이 교체되었다)

 어쨌든 이날은 알사드 스타디움에서 인도 vs. 오스트레일리아가, 알가라파 스타디움에서 한국 vs. 바레인의 시합이 펼쳐졌다. 우승후보로 꼽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한국, 월드컵 예선이나 아시안컵 예선에서 몇 번이나 일본을 괴롭힌 바레인 그리고 3년 전 AFC 챌린지컵의 컵 우승국인 인도가 동거하는 C조. 인도 이외에는 어느 팀이건 8강 진출 가능성이 있는 ‘3강1약’으로 보면 그다지 틀리진 않을 것이다. 필자는 잠시의 고민도 없이 한국과 바레인 카드 관전을 선택. 양 팀 다 일본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팀들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이웃나라 한국이 이번 대회에 임하는 ‘각오’라는 것을 확인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우승후보로 꼽히는 팀들 중에 가장 아시아 챔피언의 자리를 갈망하고 있는 팀은 다름 아닌 한국이다. 아시아 최다인 8차례 월드컵 출장을 자랑하며, 아시아 최고인 4강에 빛나는 실적을 가진 한국이지만 이상하게도 아시안 컵 우승은 1956년과 60년 두 차례뿐이다. 당시는 대회 초창기 때로 4팀밖에 출장하지 않았다. 여담으로 한국개최였던 1960년 대회에 출장한 팀은 이스라엘, 중화민국 그리고 남베트남. 현재 UEFA 소속인 이스라엘, ‘차이니즈 타이베이’라는 호칭을 강요당하기 이전의 중화민국(대만),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남베트남이 보이는 것에서 반세기라는 시대의 두터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한국은 실로 반세기만의 아시아 챔피언 탈환에 불타고 있다. 무엇보다 주장인 박지성이 “이 대회를 끝으로 대표 팀에서 은퇴한다.”고 선언할 정도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월드컵 후 대표은퇴를 선언한 선수는 있어도 “아시안 컵에서 은퇴”라는 것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의 국보 박지성의 결의표명을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이번 대회의 우승을 노리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바레인에게 2골! 광채를 내뿜은 구자철

 시합은 초반부터 공격하는 한국, 수비하는 바레인이라는 도식. 한국은 오른쪽에 이청용, 왼쪽에 박지성 그리고 원톱에 지동원과 그 보다 조금 아래에 구자철이 유기적으로 연동해가며 찬스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오른쪽 후방에서 기세 좋게 올라오는 SB의 차두리 그리고 정확한 프리킥을 자랑하는 CMF 기성용은 공격의 시발점. 상대하는 바레인도 한국에 맞추어 적확한 수비 블록으로 대항하면서 원톱의 제이시 존 오쿤와네에게 볼을 집중시키려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에 비하면 공격 루트의 다양함에서는 부족함을 느꼈다.

 이날 한국에서 가장 광채를 발한 선수는 이청용도 박지성도 아닌 13번을 단 구자철이었다. 카가와 신지[香川 真司]와 같은 1989년생 21살로 소속은 제주 유나이티드. 2년 전 U-20월드컵에서 8강 진출에 공헌했다고 하지만 필자는 처음 보는 선수였다(작년 10월 행해진 한일전에서는 대기명단에만 이름을 올렸다). 날카로운 턴과 반응 거기에 과감한 슛. 종횡무진이라는 말에 걸맞은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패스를 받는 위치를 점하거나 공간을 만드는 것도 뛰어났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섀도 스트라이커다.

 이 구자철이 선제골을 넣었다. 40분 기성용에게서 스루패스를 받아 그대로 짧은 턴과 함께 오른발 슛. 볼은 바레인 DF가 뻗은 발에 맞아 붕 뜬 뒤 그대로 골에 빨려 들어갔다. 마치 전날 일본의 실점 장면 같은 골이 들어가 한국은 1점 리드로 전반을 마쳤다. 후반 7분에는 차두리가 호쾌한 미들 슛을 쏴 GK가 간신히 막지만 튕긴 볼을 구자철이 침착하게 집어넣어 2골 째를 넣었다. 이날 슛을 쏜 수는 박지성보다 1번 적은 5번이지만 유효슈팅은 3번(박지성은 1번). 그 중 2골을 넣은 것이기에 굉장한 결정력이다. 21살의 신성(新星)은 후반 33분에 벤치로 물러날 때까지 존재감을 자랑하여 시합 MVP에 뽑혔다.

 시합 종반이 되자 그때까지 낙승 무드를 날려버리는 듯한 사고가 한국을 덮쳤다. 페널티에어리어에 파고들던 알데킬을 곽태휘가 넘어뜨렸다. 이 플레이로 바레인은 PK를 얻었고 한국은 곽태휘를 레드카드로 잃었다. 후반 41분 이 PK를 아이시가 침착하게 넣어 1점차로 만든 바레인은 동점을 노리며 10명의 한국에게 최후의 맹공을 가했다. 그러나 수세에 몰려도 역시 한국은 단단했다. 한국은 마지막까지 중요한 위치를 확실히 점하며 1점을 끝까지 지켜 중요한 첫 시합에서 확실히 승점 3을 손에 넣었다.


[경기 하일라이트]

■ 첫 번째 시합을 확실히 준비한 한국

 C조의 다른 시합인 인도 vs. 오스트레일리아의 게임은 4-0으로 오스트레일리아가 압승하였다. 경기가 크리켓이라면 대등한 시합이었겠지만 축구라면 타당한 결과라 말할 수 있다. 1차전이 끝난 시점에서 C조는 1위 오스트레일리아, 2위 한국, 3위 바레인, 4위 인도가 되었다. 두 번째 시합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한국이 직접 대결. 이미 양 팀은 이번 대회 우승다툼의 전초전이 되는 2차전을 향해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을 것이다. 한편 한국에게 1점차로 진 바레인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있지만 2강과의 격차는 상상하고 있던 것보다 더 컸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실력만 본다면 일본과 예선에서 다투고 있을 즈음과 그다지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오랜 기간에 걸쳐 바레인의 약진을 견인해 왔던 '중동의 마술사' 체코 출신의 마차라 감독이 팀을 떠나 상대 팀이나 상황에 따른 타개책을 준비 못한 것을 보자면 그들에게 있던 위험한 이미지는 많이 없어졌다. 인도에 대해 말하자면 안타깝지만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날 시합은 새삼 한국의 저력을 실감하게 만드는 시합이었다. 이번 멤버 23명 중 작년 월드컵 멤버에서 남은 것은 반수 이하인 10명. 반대로 대표 팀 참가횟수가 1자리 수인 젊은 선수가 10명이나 있다. (이날 2골을 넣은 구자철도 10여 시합밖에 없다). 특필할만한 것은 FW진. 박주영이 부상으로 빠졌다곤 하여도 FW로 등록된 3명은 전부 23세 이하의 국내파로 대회 전 대표 팀 참가 횟수는 5시합 이하였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과감한 리빌딩을 감행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바레인을 상대로 확실히 결과를 내놓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대표팀은 작년 말인 12월 26일에 한국을 출국하여 30일에 시리아 그리고 1월 4일에는 UAE의 클럽과 연습시합을 하였기에 빈틈없이 준비를 해놓고 1차전을 맞이하였다. 거기가 일본과의 큰 차이다. 결국 월드컵 출장회수나 유럽파의 머리수만으로 아시아 챔피언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것을 가장 많이 자각하고 있던 팀이 실은 한국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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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umber.bunshun.jp/articles/-/53293
저자: 타나베 마사유키

Are you from Korea?”

맨체스터나 리버풀 거리를 덜레덜레 걷다 보면 지역 축구팬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No. I’m from japan”

라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로 대답하지만 솔직히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프리미어 리그의 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과거에는 일본선수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었다. 이나모토 쥰이치[稲本 潤一]는 풀럼이나 WBA에서 어느 정도 활약했으며 나카타 히데토시[中田 英寿]나 니시자와 아키노리[西澤 明訓]가 볼튼에 있었던 적도 있다. ‘일본의 로이 킨’이라 불리던 토다 카즈유키[戸田 和幸]가 토튼햄에서 뛸 때는 무려 로이 킨에게 도전장까지 내던져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엔 역시 “Are you from Korea?”라고 묻는 케이스 쪽이 압도적으로 많아 졌다. 맨유의 박지성을 필두로 볼튼의 게임메이커로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이청용 그리고 설기현(예전 레딩이나 풀럼에 소속) 등등 머릿수뿐만 아니라 실적에 있어서도 한국인 선수가 일본인 선수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역전된 유럽리그에서 양국 선수의 존재감

라고는 해도 이러한 상황은 옛날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AFC(아시아 축구 연맹)의 기관지에서 편집장을 역임한 적이 있어 아시아 축구 전반의 사정에 정통한 저널리스트 마이클 처치(Michael Church)씨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1세기에 막 들어섰을 즈음에는 유럽에서도 일본인 선수가 상승세였다. 나카타 히데토시는 세리에 A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었으며, 오노 신지[小野 伸二]는 페예노르트에서 UEFA 컵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외에도 타카하라 나오야스[高原 直泰]나 이나모토 쥰이치도 유럽 클럽에서 데리고 가려는 곳이 많았다. 셀틱에 있던 나카무라 슌스케[中村 俊輔]가 4년 전에 유럽 챔피언스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을 넣은 것도 유럽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요 2년간은 완전히 한국과 일본이 역전되었다. 양국은 남아공 월드컵 성적도 호각이었으며 일본은 FIFA 랭킹에서 한국보다도 상위에 있다. 하지만 ‘유럽파’의 존재감에 관해서는 한국 쪽이 일본인 선수를 완전히 제친 것은 틀림이 없다”

너무도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제2의 나카타 히데토시’의 부재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떠오르는 것이 ‘나카타 히데토시 후계자의 부재’라는 문제다.

한국의 경우 박지성이 일종의 ‘쇼 케이스(견본품)’로 후진들에게 계속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 나카무라 슌스케가 한때 주목을 모으거나, 마츠이 다이스케[松井 大輔]가 프랑스 리그에서 새로운 성장의 방법(하위 리그에서 팀과 함께 성장해 가는 시도)를 제시했지만, 나카타 히데토시가 은퇴한 뒤로는 일본인 선수의 높은 실력을 지속적으로 어필해 주는 광고탑이 없었다.

이 문제는 ‘히딩크와 걸맞은 후원자의 부재’라는 사실과도 이어진다.

박지성의 경우 2002 한일월드컵 종료 후 PSV의 감독에 취임한 히딩크의 ‘애제자’가 되어 유럽에 건너갔다. 박지성은 히딩크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챔피언스 리그 등에서 활약해 마침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 선수의 경우 방제와 같은 친일 감독을 제외하고는 유럽진출에 후원사격을 해 주는 후견인이 없었다. 그걸로 그치지 않고 이제 방제는 한국인 선수의 약진을 인정하기까지 한다.

“한국인 선수는 하나의 위업을 이루었다. 유럽 특히 프리미어 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아시아 선수는 거의 없었지만 한국인 선수는 아주 순조롭게 적응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박지성은 팀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하드워커이지만 뛰어난 기술의 소유자이기도 하며 중요한 국면에서 골을 넣어왔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아스날)과의 시합에서도 그랬다.”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는 일본이 한국을 리드하고 있었지만…

한국선수가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유럽진출에 가속시켰던 것과는 반대로 유럽에서 일본인 선수는 서서히 존재감을 잃게 되었는데, 이 변화는 대표팀 멤버의 구성에서도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점에서 유럽파의 머릿수는 4:2로 일본대표가 더 많았다.

일본대표 : 카와구치 요시카츠[川口 能活, 포츠머스], 나카타 히데토시(파르마), 이나모토 쥰이치(아스날), 오노 신지(페예노르트)

한국대표 : 안정환(페루자), 설기현(안더레흐트)

남아공 월드컵대회 직전에는 압도적인 차이로 벌어졌다.

그러나 남아공 월드컵대회 개막전 시점에서는 한국대표가 6명의 유럽파와 3명의 해외파(유럽 이외의 리그)를 거느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대표의 유럽파는 4명뿐. 더구나 일본대표는 유럽을 제외한 해외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선수가 없었다.

한국-유럽파 : 차두리(프라이부르크), 김남일(톰 톰스크),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기성용(셀틱), 이청용(볼튼), 박주영(모나코)

한국-해외파 : 이영표(알 히랄), 이정수(카시마), 김보경(오이타)

일본 : 마츠이 다이스케(그르노블), 하세베 마코토[長谷部 誠=볼프스부르크), 혼다 케이스케[本田 圭佑=CSKA모스크바)

한국은 일본과는 다르게 복수의 루트로 유럽에 진출 중!

더욱이 한국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루트로 유럽에 진출한 점이다.

한국 선수의 경우 네덜란드 리그에 더해 프랑스 리그나 스코틀랜드 리그 등도 유럽으로의 교두보로 정착. 예전 나카무라 슌스케와 미즈노 코우키[水野 晃樹]가 소속해 있던 셀틱은 2명의 한국인을 거느린 클럽으로 변했다. 또한 기본적으로 분데스리그를 거쳐야 한다는 인식[각주:1]이 없어진 것이나 중동 클럽까지도 이적 팀에 포함되는 것도 일본과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다시 크게 바뀌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10월12일 서울에서의 한일전은 어째서 중요한 것인가?

유럽 축구계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존재감은 근래 확실히 역전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다시 크게 변하고 있는 중이다.

남아공 월드컵 종료 후 일본 대표팀 클래스에서는 카와시마 에이지[川島 永嗣], 나가토모 유우토[長友 佑都], 우치다 [아츠토[内田 篤人], 아베 유우키[阿部 勇樹], 카가와 신지[香川 真司], 야노 키쇼우[矢野 貴章], 마키 세이이치로우[巻 誠一郎] 등의 멤버가 유럽으로 건너갔다. 하세베나 마츠이, 혼다나 모리모토[森本]와 함께 이국에서 절차탁마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겁다. 유럽파의 머릿수가 점하는 비율은 대표팀의 힘을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모든 유럽파에게는 일본대표의 저력을 올리는 것은 물론 ‘제2의 나카타 히데토시’로서 후진의 J리거를 위해 길을 개척하는 것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10월12일 서울에서 열리는 친선시합은 중요하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과 마찬가지로 일본대표도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아래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말하자면 이번 한일전은 일본대표팀에게 있어 전열을 정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유럽에서까지 격렬하게 맞붙고 있는 최대의 라이벌에게 이 즈음해서 확실히 승리를 거둔다는 의미는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닐까?

  1. 과거에 김주성, 황선홍, 이동국 등이 독일에 간 것을 말하는 듯 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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