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umber.bunshun.jp/articles/-/53293
저자: 타나베 마사유키
“Are you from Korea?”
맨체스터나 리버풀 거리를 덜레덜레 걷다 보면 지역 축구팬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No. I’m from japan”
라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로 대답하지만 솔직히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프리미어 리그의 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과거에는 일본선수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었다. 이나모토 쥰이치[稲本 潤一]는 풀럼이나 WBA에서 어느 정도 활약했으며 나카타 히데토시[中田 英寿]나 니시자와 아키노리[西澤 明訓]가 볼튼에 있었던 적도 있다. ‘일본의 로이 킨’이라 불리던 토다 카즈유키[戸田 和幸]가 토튼햄에서 뛸 때는 무려 로이 킨에게 도전장까지 내던져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엔 역시 “Are you from Korea?”라고 묻는 케이스 쪽이 압도적으로 많아 졌다. 맨유의 박지성을 필두로 볼튼의 게임메이커로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이청용 그리고 설기현(예전 레딩이나 풀럼에 소속) 등등 머릿수뿐만 아니라 실적에 있어서도 한국인 선수가 일본인 선수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역전된 유럽리그에서 양국 선수의 존재감
라고는 해도 이러한 상황은 옛날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AFC(아시아 축구 연맹)의 기관지에서 편집장을 역임한 적이 있어 아시아 축구 전반의 사정에 정통한 저널리스트 마이클 처치(Michael Church)씨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1세기에 막 들어섰을 즈음에는 유럽에서도 일본인 선수가 상승세였다. 나카타 히데토시는 세리에 A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었으며, 오노 신지[小野 伸二]는 페예노르트에서 UEFA 컵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외에도 타카하라 나오야스[高原 直泰]나 이나모토 쥰이치도 유럽 클럽에서 데리고 가려는 곳이 많았다. 셀틱에 있던 나카무라 슌스케[中村 俊輔]가 4년 전에 유럽 챔피언스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을 넣은 것도 유럽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요 2년간은 완전히 한국과 일본이 역전되었다. 양국은 남아공 월드컵 성적도 호각이었으며 일본은 FIFA 랭킹에서 한국보다도 상위에 있다. 하지만 ‘유럽파’의 존재감에 관해서는 한국 쪽이 일본인 선수를 완전히 제친 것은 틀림이 없다”
너무도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제2의 나카타 히데토시’의 부재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떠오르는 것이 ‘나카타 히데토시 후계자의 부재’라는 문제다.
한국의 경우 박지성이 일종의 ‘쇼 케이스(견본품)’로 후진들에게 계속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 나카무라 슌스케가 한때 주목을 모으거나, 마츠이 다이스케[松井 大輔]가 프랑스 리그에서 새로운 성장의 방법(하위 리그에서 팀과 함께 성장해 가는 시도)를 제시했지만, 나카타 히데토시가 은퇴한 뒤로는 일본인 선수의 높은 실력을 지속적으로 어필해 주는 광고탑이 없었다.
이 문제는 ‘히딩크와 걸맞은 후원자의 부재’라는 사실과도 이어진다.
박지성의 경우 2002 한일월드컵 종료 후 PSV의 감독에 취임한 히딩크의 ‘애제자’가 되어 유럽에 건너갔다. 박지성은 히딩크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챔피언스 리그 등에서 활약해 마침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 선수의 경우 방제와 같은 친일 감독을 제외하고는 유럽진출에 후원사격을 해 주는 후견인이 없었다. 그걸로 그치지 않고 이제 방제는 한국인 선수의 약진을 인정하기까지 한다.
“한국인 선수는 하나의 위업을 이루었다. 유럽 특히 프리미어 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아시아 선수는 거의 없었지만 한국인 선수는 아주 순조롭게 적응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박지성은 팀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하드워커이지만 뛰어난 기술의 소유자이기도 하며 중요한 국면에서 골을 넣어왔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아스날)과의 시합에서도 그랬다.”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는 일본이 한국을 리드하고 있었지만…
한국선수가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유럽진출에 가속시켰던 것과는 반대로 유럽에서 일본인 선수는 서서히 존재감을 잃게 되었는데, 이 변화는 대표팀 멤버의 구성에서도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점에서 유럽파의 머릿수는 4:2로 일본대표가 더 많았다.
일본대표 : 카와구치 요시카츠[川口 能活, 포츠머스], 나카타 히데토시(파르마), 이나모토 쥰이치(아스날), 오노 신지(페예노르트)
한국대표 : 안정환(페루자), 설기현(안더레흐트)
남아공 월드컵대회 직전에는 압도적인 차이로 벌어졌다.
그러나 남아공 월드컵대회 개막전 시점에서는 한국대표가 6명의 유럽파와 3명의 해외파(유럽 이외의 리그)를 거느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대표의 유럽파는 4명뿐. 더구나 일본대표는 유럽을 제외한 해외리그에서 플레이하는 선수가 없었다.
한국-유럽파 : 차두리(프라이부르크), 김남일(톰 톰스크),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기성용(셀틱), 이청용(볼튼), 박주영(모나코)
한국-해외파 : 이영표(알 히랄), 이정수(카시마), 김보경(오이타)
일본 : 마츠이 다이스케(그르노블), 하세베 마코토[長谷部 誠=볼프스부르크), 혼다 케이스케[本田 圭佑=CSKA모스크바)
한국은 일본과는 다르게 복수의 루트로 유럽에 진출 중!
더욱이 한국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루트로 유럽에 진출한 점이다.
한국 선수의 경우 네덜란드 리그에 더해 프랑스 리그나 스코틀랜드 리그 등도 유럽으로의 교두보로 정착. 예전 나카무라 슌스케와 미즈노 코우키[水野 晃樹]가 소속해 있던 셀틱은 2명의 한국인을 거느린 클럽으로 변했다. 또한 기본적으로 분데스리그를 거쳐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진 것이나 중동 클럽까지도 이적 팀에 포함되는 것도 일본과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하지만 이런 상황도 다시 크게 바뀌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10월12일 서울에서의 한일전은 어째서 중요한 것인가?
유럽 축구계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존재감은 근래 확실히 역전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다시 크게 변하고 있는 중이다.
남아공 월드컵 종료 후 일본 대표팀 클래스에서는 카와시마 에이지[川島 永嗣], 나가토모 유우토[長友 佑都], 우치다 [아츠토[内田 篤人], 아베 유우키[阿部 勇樹], 카가와 신지[香川 真司], 야노 키쇼우[矢野 貴章], 마키 세이이치로우[巻 誠一郎] 등의 멤버가 유럽으로 건너갔다. 하세베나 마츠이, 혼다나 모리모토[森本]와 함께 이국에서 절차탁마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겁다. 유럽파의 머릿수가 점하는 비율은 대표팀의 힘을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모든 유럽파에게는 일본대표의 저력을 올리는 것은 물론 ‘제2의 나카타 히데토시’로서 후진의 J리거를 위해 길을 개척하는 것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10월12일 서울에서 열리는 친선시합은 중요하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과 마찬가지로 일본대표도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아래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말하자면 이번 한일전은 일본대표팀에게 있어 전열을 정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유럽에서까지 격렬하게 맞붙고 있는 최대의 라이벌에게 이 즈음해서 확실히 승리를 거둔다는 의미는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닐까?
- 과거에 김주성, 황선홍, 이동국 등이 독일에 간 것을 말하는 듯 함. [본문으로]
'일본웹번역 > 축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년 1월 12일 아시안컵 조별예선 D조 1차전 - 이란 vs. 이라크 - 서아시아 클라시코 (0) | 2011.01.13 |
---|---|
2011년 1월 11일 아시안컵 조별예선 1차전 - 한국 vs. 바레인 - 한국의 정상등극을 향한 '각오' (0) | 2011.01.11 |
'절대적인 충성심' - 세르히오 아궤로(아틀레티코 마드리드/아르헨티나 대표) 인터뷰 (0) | 2009.12.10 |
일본 축구의 약점?? 피지컬 코치에 주목하라 (0) | 2009.12.10 |
'신의 아들'이 맹세하는 진정한 결심 - 페르난도 토레스 인터뷰 (0) | 2009.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