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벤피카에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있는 아이마르
출처: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809/portugal/text/200903240003-spnavi.html
저자: 페르난두 우르바누(Fernando Urbano)
일본어 번역: 와니베 테츠야
■ 후이 코스타의 후계자
주어진 기회는 일주일간 단 두 번의 대화 뿐이었다. 그러나 벤피카의 신임 스포츠 디렉터(SD)는 결국 파블루 세자르 아이마르를 사라고사에서 리스본으로 데려 오는 – 그에게 있어 최초이자 중요한 미션을 성공시켰다.
2008년 7월 16일. 근처 편의점에 담배라도 사러 간 듯한 널널한 옷 차림새, 제멋대로 자란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을 한 아이마르가 리스본 공항에 내렸다. 기다리고 있던 포르투갈 보도진의 카메라 세례에 당혹해 하는 아이마르의 옆에 수훈을 세운 양복 모습의 SD 즉 후이 코스타는 실로 만족스런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2001년 2400만 유로라는 이적료로 모국 아르헨티나의 명문 리버플레이트에서 발렌시아로 떠들썩하게 입단한 21살의 젊은이는 에스파냐에서도 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 2번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며 순풍에 돛이라도 단 듯한 축구인생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거듭되는 부상으로 5년 후에는 1200만 유로에 레알 사라고사로 방출되었으며 그리고 올 시즌은 650만 유로(약 116억원)라는 이적료로 벤피카에 왔다.
한때 월드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자리를 보장받았으며 잘 생긴 얼굴로 전 세계의 축구팬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던 사나이에게 있어 자신의 상품가치를 1/4까지 떨어뜨리며, 유럽에서도 빅 리그가 아닌 포르투갈 리그에 이적하는 것은 ‘귀양’에 가까웠기에 큰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마르의 벤피카 입성에 결정타가 된 것은 후이 코스타가 이적교섭을 하러 에스파냐로 가기 전에 아이마르에게 보낸 편지였다.
“내가 벤피카에서 입고 있던 10번의 붉은 유니폼을 당신이 입어주기 바란다. 같은 ‘세자르’라는 이름(주:후이 코스타의 본명은 후이 마누엘 세자르 코스타)을 가진 당신이 내 후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 벤피카의 ‘10번’에 쏟아진 비난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전 포르투갈 대표의 ‘10번’이며 희대의 판타지스타였던 카리스마의 이 말 한마디는 아이마르의 마음을 에스파냐에서 포르투갈로 옮기게 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05-06시즌 발렌시아의 지휘관으로 올 시즌부터 벤피카의 감독에 취임한 키케 플로레스의 존재도 아이마르가 벤피카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예년보다 더위가 심했던 리그 개막 직전인 8월. 연습에서 땀을 흘리는 벤피카의 ‘새로운 10번’ 아이마르의 정열 역시 뜨거웠다. 그러나 그는 최악의 스타트를 끊게 된다. 지난 시즌 부상당한 치골염이 사라고사에서의 치졸한 치료로 인해 더욱 악화되어 그가 가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시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스피드와 드리블 - 아이마르의 장점이라 여겨지는 능력이었다.
그가 필드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벤피키스타(벤피카의 서포터)를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쌓이는 불신감, 실망과 함께 ‘아이마르는 과거의 선수’, ‘벤피카의 10번은 외국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영원히 후이(코스타)의 것이다’ – 서포터들은 그렇게 외쳐댔다.
그러나 키케 플로레스 감독은 철저히 아이마르를 옹호했다. 플로레스는 인터뷰에서, “그에게는 적당한 치료가 필요할 뿐이다. 부상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게는 지적인 면이 넘치며 벤피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고 코멘트. 덧붙여 “아이마르가 에스파냐에서 최고의 활약을 유지하였던 때는 발렌시아에서 파코 아예스트란(Pako Ayestaran)과 함께 있었을 때이다. 다행히도 올 시즌 벤피카에는 그 파코 아예스트란이 있기에 아무 걱정도 없다”고도 말하였다.
■ 아이마르를 지탱하는 파코 아예스트란
월드컵 3회 출장이라는 아이마르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파코 아예스트란’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피지컬 코치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으며 발렌시아나 리버풀 등 11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지장(智將)으로 명성 높은 라파엘 베니테스를 도와 04-05시즌에는 함께 챔피언스 리그 제패를 이룩했다. 키케 플로레스의 요청을 받아 올 시즌부터 직장을 루스(벤피카의 홈 스타디움)로 옮긴 인물이다.
파코 아예스트란은 말한다.
“매일매일의 연습이 선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 아무리 선수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만전의 상태가 아니라면 게임에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부상 당한 선수에게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해시키는 것이 내 일이다. 때때로 선수 중에는 너무 힘든 메뉴라던가 단조로운 연습이라며 불만을 표하는 선수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마르는 굉장히 ‘머리가 좋은’ 선수. 자신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며 내 메뉴를 따라주고 있다”
올 시즌 초반 아이마르는 시합에 나가지 못하면서도 긍정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축구는 신체적 접촉이 많은 스포츠라는 것을 머리 속에 새겨놓고 있지 않으면 프로에서는 해 나갈 수 없다. 메시나 리켈메와 같은 테크니션 쪽이 다른 타입의 선수보다 파울을 당하는 횟수가 많기에 부상당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하지만 거듭되는 부상 속에서도 나는 ‘서두르지 않고 무리하지 않기’를 마음에 새겨두고 있다. 다행히 벤피카에는 파코가 있기에 그의 메뉴를 믿고 따르고 있으면 틀림없이 완벽한 상태로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다시 뽑히고 싶다.
그런 아이마르와 파코 아예스트란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새해가 밝으면서부터이다. 서서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한 아이마르는 2월 4일에 행해진 리그 컵 준결승 비토리아 SC와의 시합(2-1로 승리)에서 늦었지만 포르투갈에 와서 첫 골을 넣었다. 그 4일 후 전통의 라이벌인 FC 포르투와의 시합에서는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MOM에 선출되는 활약을 펼쳤으며, 3월 8일 나발(Naval 1º de Maio)과의 시합에서는 리그에서 올 시즌 마수걸이 골을 마크. 이리하여 레귤러 포지션을 장악하자 완전 부활. 전성기 때의 모습을 벤피카에서 되찾았다.
2010년 월드컵 남미예선 베네수엘라(3월 28일 – 홈에서 4-0 아르헨티나 승), 볼리비아(4월 1일 – 원정에서 1-6으로 아르헨티나 패)와 싸우게 되는 대표팀 선수 명단 26명이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에게서 발표되었다. 물론 파블로 아이마르의 이름은 없었다. 벤피카에서의 팀 동료이며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나이지리아와의 시합에서 결승골을 넣은 앙헬 디 마리아(Ángel Fabián Di María), 라이벌 FC 포르투에서는 루초 곤살레스(Luis Oscar ”Lucho” Gonzalez)와 리산드로 로페스(Lisandro López)가 멤버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과거 2번의 월드컵(02년, 06년)에 출전했던 아이마르에게 초조함은 없다.
“아르헨티나 선수에게 대표팀이란 ‘최고이며 가장 큰 목표’. 특히 대표 선수로서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명예이다. 그런 월드컵에 멤버로 뽑혔을 뿐만 아니라 2번이나 출전할 수 있었기에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 다시 한 번 뛰고 싶다. 특히 마라도나가 이끄는 대표팀에서. 마라도나가 나에게 해 준 그 말을 잊을 수 없기에”
그 마라도나는 아이마르에 관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아이마르는 세계 제일의 플레이어인 내가 인정한 유일한 후계자이며 내가 직접 돈을 내고 그 플레이가 보고 싶은 유일한 선수다”
예전의 광채를 되찾기 시작한 파블로 아이마르의 ‘아르헨티나 대표팀 복귀’라는 꿈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