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이 코스타의 은퇴 그리고 그가 사랑한 벤피카
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708/portugal/column/200805/at00017223.html
저자: 와니베 테츠야
현역 최후의 시합에 두 아들과 함께 등장한 후이 코스타
후이 코스타는 언제나 선수 입장 시에 제일 마지막으로 필드에 등장한다. 이는 그의 시합에 들어가지 전의, 말하자면 징크스이다. “축구를 시작했을 즈음 나의 우상은 벤피카의 카를루스 마누엘 1이었다. 그는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필드에 나왔었지. 그것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 그래서 나도 흉내를 내게 되었던 거야”
그러나 [현역 마지막 날]이 된 5월 11일.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서 필드에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은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나온 등번호 [10]의 유니폼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지금까지 지켜왔던 시합 전의 [의식]에까지 마침표를 찍고 제일 먼저 등장하여 사랑해 마지않는 [루스 스타디움의 주인 = 벤피키스타]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클럽 역시 사랑하는 후이를 위해서 최고로 멋진 무대를 연출하였다. 홈인 루스 스타디움(Esto da Luz) 관중석 1층 전부를 덮는 [OBRIGADO RUI(고마워 후이)]라 쓰여진 현수막에, 팬들도 평소의 [벤피카!]를 대신하여 목을 쉬게 하면서 [후이 코스타!]를 끝없이 외쳤다.
이날의 주역 후이 코스타의 마음에는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갔을 것이다.
■ 마지막은 벤피카에서 커리어를 끝내고 싶다.
후이 코스타는 정말 운이 없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사랑해 마지않는 클럽으로 돌아온 마지막 2년간도 역시 [축구 인생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겠다]고 한 것과는 먼 2년간이었다.
2006년 5월 25일. 후이 코스타는 “마지막은 벤피카에서 커리어를 마치고 싶다”는 약속대로 자신의 프로 데뷔를 장식한 클럽으로 12년 만에 돌아왔다.
입단 회견에서 “12년간 ‘집’을 비워서 미안하다. 12년 전과 변함없는 후이의 플레이가 볼 수 있다는 것을 약속한다”고 말을 꺼낸 후이 코스타였지만, 곧이어 “단지 나는 벤피카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포지션을 약속 받은 것도 아니다. 때문에 팀 승리를 위해서 싸우는 일개 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겸손해 했다.
또한 “(벤피카로) 돌아온 것은 포르투갈이 그리워졌기 때문도, 포르투갈의 태양을 만끽하고 싶어서도 아니다(웃음). 어쨌든 자신의 ‘집’인 벤피카에서 마지막을 플레이하고 싶었다. 때문에 여기서는 프로로써 자신의 모든 정열을 쏟고 또한 많은 기쁨도 맛보고 싶다. 그러니 팬 여러분들도 스타디움에 와서 나와 같은 열정으로 응원해 주길 바라며, 나와 같이 기쁨을 맛보았으면 좋겠다”고 벤피카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은퇴를 생각하기 시작한 후이 코스타에게 있어서는 역시 “마지막으로 한번 더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같은 해 8월 22일 챔피언스 리그 본선 출장을 건 오스트리아 빈과의 예비 예선 3회전에서는 호쾌한 미들 슛으로 선제 골을 넣어, 포르투갈 국민들은 후이 코스타가 [여전히 빛난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홈 루스에서 1994년 5월 21일 이래 12년만의 골로 인하여, 다음 날 포르투갈의 신문에는 [마법이 돌아왔다!]는 문자가 춤을 추었다.
하지만 이 시합에서 후이 코스타는 오른쪽 허벅지를 부상당한다. 더욱이 2주 후의 국내 리그 개막전이 된 보아비스타와의 시합에서 부상이 다 낫지 않은 채 강행출장 한 것이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 10월 1일. 약 1개월만의 복귀전이 된 아베스와의 시합에서도 역시 시합 후에 오른쪽 허벅지의 이상 증세를 호소한 후이 코스타. 그 이후 그는 필드에서 모습을 감추게 된다.
원래부터 이 후이 코스타의 부상 이탈이 장기간에 이른 원인은 팀 닥터와 물리치료사의 초진이 잘못된 것에 있었다고 하기에, 벤피키스타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국민, 미디어의 분노가 폭발했다. 더욱이 그 분노가 향한 곳은 처음에 진찰했던 물리치료사를 브라질에서 데려 온 포르투갈 대표팀감독 스콜라리에게까지 이르렀다. 후이 본인도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도 후이 코스타는 이에 대하여 침묵을 지켰고, 시즌 대부분을 따분하고 괴로운 재활 훈련으로 보냈다.
■ 은퇴 번복을 바라는 서명 운동
그리고 개막전에 “90%의 확률로 나의 라스트 시즌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마음을 일신하여 임한 이번 시즌. 역시 전년과 같이 홈 스타디움 루스에서의 챔피언스 리그 예비전 3회전 코펜하겐과의 시합에서 2골을 넣었고, 리그 개막 4시합에서도 2골을 마크하여 공식 시합 6시합을 치르며 4골로, 이탈리아 시대까지 포함하여 과거 최고의 출발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팀이 붕괴해 버렸다. 후이 코스타가 2골을 넣은 코펜하겐과의 시합 직후에 감독인 페르난두 산투스(Fernando Santos)가 해임. 새로이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를 감독으로 맞이하였지만 카마초도 올해 3월 9일 UD 레이리아와의 시합 후 사임하였다. 1시즌에 2번의 감독 교체라는 실태를 보여주고 만 벤피카는 리그, UEFA 컵, 포르투갈 컵을, “팀 내분”과 함께 차례차례 노리던 타이틀을 놓쳐갔다.
그래도 이번 시즌은 마지막 시합을 앞두고, 국내 리그에서 28시합 2297분에 걸쳐 익숙한 [10번]의 포지션에서 지휘봉을 계속 휘두른 [마에스트로(후이 코스타의 애칭)]. 이는 이번 시즌 벤피카의 필드 플레이어 중에서는 최다 출장 시간이었다. 은퇴를 결정한 선수로는 생각할 수 없는 높은 기량을 계속 선보인 후이 코스타에게, 올해 2월 21일에는 [후이 코스타는 영원한 벤피카의 카리스마. “마에스트로”, 우리들에게 1년 더 악단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줘!]라는 메시지가 벤피카 서포터 그룹 자리에 게재되어, 이 그룹의 리더를 중심으로 [은퇴 번복]을 바라는 서명활동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그러나 1주일 후인 벤피카 창립 104주년 기념 파티에서 “이번 시즌 벤피카에서 커리어를 끝낼 수 있도록 허락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후이 코스타의 입에서 [은퇴 확정]의 코멘트를 들을 수 있었다.
■ 누구에게나 사랑 받은 후이 코스타의 매력
1994년 여름.
바라 마지않던 바르셀로나 이적에 대한 생각을 가슴 속 깊이 담아둔 채, 당시 재정난으로 힘겨워하던 벤피카에 보다 많은 이적료를 제시한 피오렌티나로 이적. “나를 여기까지 키워준 벤피카가 곤란하니 내가 돕는 것은 당연”이라던 후이 코스타. 7년을 보낸 피렌체에서 빅 타이틀과는 연이 없었다.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라는 빅 클럽으로 이적하여 세계적 명성을 손에 넣고 있던 피구와는 포르투갈 국내에서의 명성이나 지위가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그 후 이적한 밀란에서는 한창 커가는 카카에게 포지션을 빼앗겼고, 가능성을 시험한 볼란치에서의 포지션도 희대의 레지스타(Regista) 2 피를로와의 주전 경쟁에서 패하여 벤치를 덥히는 나날들이 계속 되었다.
그리고 벤피카로 돌아온 마지막 2시즌은 팀이 그의 발목을 잡아 버렸다. 역시 후이 코스타는 마지막까지 운이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후이 코스타는 어느 클럽의 서포터들에게건 절대적인 지지와 총애를 받았다. 그것은 우선 클럽을 위해서 그리고 팬을 위해서 자신을 모든 것을 받쳤던 후이 코스타의 [의리]라고 부를 수 있는 마음이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라스트 게임의 전날인 10일에는 밀란의 부회장 아드리아노 갈리아니(Adriano Galliani)에게서 “밀라노 시민 그리고 이탈리아 국민은 결코 후이 코스타의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언제까지고 [로소네리(Rossoneri – 밀란의 애칭)] 가족의 한 사람이다”고 후이 코스타를 기리는 팩스가 전해져 왔다.
밀란의 심볼 파올로 말디니는 “후이 코스타가 여전히 우리들의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일류 선수라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위대한 남자 그리고 친구였던 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후이 코스타는 이 밀란에서의 메시지에 “감동하여 눈물이 나왔다”고 라스트 게임 후의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 위대한 마에스트로. 감동의 피날레
후이 코스타의 라스트 게임이 된 세투발과의 시합.
최후의 최후까지 등번호 [10]은 필드에서 약동감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다. 전반 25분에는 오른쪽 측면으로 가 니어 사이드의 카추라니스 3의 선제 골을 어시스트 하였고, 그 3분 뒤에는 멋진 중거리 슛을 날렸지만 상대팀 GK가 펀칭으로 막아내자 필드를 손으로 내리치며 아쉬워했다. 몇 번이나 특기인 부드러운 크로스와 절묘한 타이밍의 스루패스를 연출했다.
그리고 22시 02분.
시합 시간으로는 87분에 제3부심이 [10]번이 켜진 보드를 들어 교체를 알리자, 후이 코스타는 손을 흔들면서 천천히 필드 밖으로 나왔다. 전광판에 비쳐진 그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이리하여 후이 코스타의 “마지막 연주”는 끝을 고했고, 필드를 나온 후이 코스타는 이날 볼 보이를 맡고 있던 두 아들 펠리페와 우고를 불러 끌어안으며 시합 종료의 휘슬을 들었다.
시합 후에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돌면서 유니폼을 관객석에 던지는 후이 코스타에게, 반대로 관객석에서 수 많은 꽃다발이 그에게로 던져졌다. 이 날 0-3으로 패한 세투발의 서포터들에게서도 머플러가 후이 코스타에게 전해져 박수로 적의 위대한 사령탑을 칭송했다. 그것은 이날 루스로 발을 옮긴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음에 틀림없다. 후이 코스타는 마지막으로 사방의 스탠드를 향해서 깊이 허리를 숙인 후 필드를 떠났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세계 청소년 대회 우승
시합 종료에서 1시간이 흐른 뒤에 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낸 후이 코스타에게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울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참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이 벤피카의 트레이닝 웨어를 입고 있는 이상 아직 선수라는 것이지. 자~ 내 축구 선수로써 진짜 마지막 플레이(회견)을 시작할까?(웃음)”라는 장난스러움과 함께 마이크 앞에 앉은 후이 코스타.
"내 18년간의 축구 인생 동안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나를 높이 평가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지금은 천천히 쉬면서 머리 속을 깨끗이 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는 멋진 축구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기(루스)에서 세계 청소년 대회(현 U-20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팀 동료들 중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티스투타와 말디니 두 사람이다. 그들과 함께 플레이 할 수 있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 축구를 [버리는 것]은 행복하지는 않지만 만족은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정말 고맙다는 것이다”
후이 코스타의 라스트 메시지이다.
참고로 “당신의 축구 커리어에 있어서 운이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마지막 시합에 5만 4000명의 팬들이 모여 주어서는 나에게 계속 성원을 보내주었다. 이렇게 행복한 축구 선수는 없지 않을까? 나는 충분히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후이 코스타. 정말로 후이 다운 답변이었다.
23시 54분.
후이 코스타가 회견장을 뒤로 하려고 일어서자 기자들도 카메라맨도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누구에게나 사랑 받은 남자 = 후이 코스타]를 최종 확인한 흐뭇한 순간이었다. 이 [마지막 장소]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에 필자는 감사하고 싶다.
페스타(축제)에서 하룻밤 지난 다음 12일 정오가 지나, 평소의 트레이닝 웨어가 아닌 검은 양복으로 몸을 감싼 후이 코스타는 벤피카의 사무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미 준비된 사무실에서 스포츠 디렉터로써의 일을 곧바로 시작한 후이 코스타. 그의 [제2의 인생]은 틀림없이 시작된 듯하다.
이리하여 필드를 떠난 후이 코스타. 그러나 조제 모리뉴가 “한 사람의 슈퍼 스타가 일류 선수인 채로 전성기 실력 그대로 커리어를 끝냈다”고 절찬을 보낸 [마에스트로] 후이 코스타의 이름은 – 공식 시합 통산 776시합 132골의 기록과 함께 영원히 우리들의 기억 속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