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GK로의 길을 가고 있는 카리소 - 올 시즌 리베르를 지탱하고 있는 젊은 수호신
저자: 세르히오 레빈스키
■ 리베르의 무관 시대와 현재의 고뇌

시메오네 감독을 초빙하여 팀 재건을 꾀하는 리베르. 후기 리그에서도 지금까지 선두를 달리고 있다.
리베르 플라테(아르헨티나)의 올드 팬은 ‘고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브라질에 있는 위대한 전통을 가진 클럽이라 해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상파울로를 본거지로 하는 코린티안스는 1977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상파울로 주(州) 선수권)에서 다시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20년 이상이라는 세월을 필요로 했다. 리베르(리버 플레이트)도 1957년~1975년까지 18년간이나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그러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경우 2위나 상위에는 위치하고 있었다. 다른 컵 대회에서도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우승은 아니더라도 주역 중에 하나이기는 했었던 것이다.
고난의 날들을 보내고 있던 리베르를 무시하며 최대의 라이벌인 보카 주니어스는 그 사이에도 계속해서 국내 타이틀을 획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1977년, 1978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연패(連覇). 1977년에는 인터콘티넨털 컵(현 클럽월드컵)도 제패하여 세계의 정상에 올랐다.
70년대 후반이 되자 리베르는 정상의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우승을 이룩했어도 국제 타이틀과는 무연이었다. 그들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첫 우승을 이루기까지 1986년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 후의 리베르는 순조롭게 트로피 장식장을 채워갔다. 그러나 축구에 있어서는 영광을 획득하고 있었지만 조직적으로는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클럽의 울트라스(Ultras – 과격 서포터)는 내부에서 대립을 거듭하여 사상자가 나오는 사태까지 발전. 또한 근년에는 많은 스타 선수들이 계속해서 팀을 이탈, 올해 들어서도 페르난도 베유스치 1, 마르코 루벤 2 등이 유럽 클럽으로 이적하였다. 수뇌진은 2007년 12월 감독으로 디에고 시메오네를 임명 3. 에스투디안테스 라 플라타에서 감독으로 활약했던 모국의 영웅에게 팀의 재건을 맡겼다.
■ 부채로 인한 선수 방출의 연쇄작용
계속된 선수 이적 뒤편에는 리베르가 안고 있는 막대한 부채로 인해 주력 선수를 방출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아르헨티나 페소에 대해서 미국 달러나 유로의 가치가 강한 요즘, 유럽 클럽에 선수를 이적시키면 많은 돈이 지갑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적이 유력하다고 여겨졌던 선수는 GK인 후안 파블로 카리소(Juan Pablo Carrizo)와 콜롬비아 출신의 FW 라다멜 팔카오 가르시아(Radamel Falcao Garcia).
전자는 이탙리아의 라치오, 후자는 브라질의 플루미넨세 이적 4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카리소의 경우 2007년 여름에 라치오와 계약했지만 쉽게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이탈리아의 여권 취득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5.
이 로마의 클럽은 이미 EU권외의 선수 제한에 걸려있었고, 리베르와 라치오의 우호적인 관계 덕분에 카리소는 6월까지 임대로 고향 팀에 귀환. 올 여름에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갈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리베르는 GK 카리소와 팔카오가 팀에 잔류한 덕분에 후기 리그에서는 보카를 제치고 7승 3무로 수위를 달리고 있다. 더구나 허용한 골은 10시합에서 불과 2. 산마르틴과의 시합에서 허용한 2실점(시합은 3-2로 승리)뿐이다. 즉 리베르는 10시합 중 9시합에서 무실점이라는 성적을 남기고 있다.
결과만을 보면 철벽의 수비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을 전부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리베르의 수비진은 다른 클럽(리베르보다 하위인 팀)보다 뛰어나지는 않다. 상대에게 득점을 허용하고 있지 않은 것은 한마디로 위대한 GK 카리소의 파인 세이브 덕분이다.
■ 카리소의 활약으로 인한 파죽지세
옛 팀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카리소는 위대한 GK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카리소는 리베르 클럽 역사상 이름 높았던 GK 중 1명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마데오 라울 카리소(Amadeo Raúl Carrizo) 6. 1945년에 프로 데뷔를 한 후 오로지 리베르에서만 플레이하다 은퇴한 선수이다 7. 한때는 아르헨티나 축구계에서 무실점 기록을 갱신하고 있었던 GK의 개척자이기도 하였다. 8
23살의 후안 파블로 카리소는 리베르의 하부 조직 출신으로 자연스럽게 톱 팀으로 올라가 2005년 프로 데뷔를 이루었다. 당시의 감독이었던 다니엘 파사레야는 헤르만 룩스 9 10를 대신하여 카리소를 퍼스트 GK로 앉혔다. 현재 프리메라의 RCD 마요르카에 소속되어 있는 룩스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골 문을 지켰던 실력자였다.
이 젊은 수호신은 톱 팀에 정착해서도 특별히 자신의 실력을 어필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카리소는 축구 선수로서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로 특히 그 조용하고 눈에 띄려고 하지 않는 행동(필드 내외에서)과 날렵함은 특필할 만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험을 미리 탐지하는 능력도 뛰어나 상대 팀의 찬스가 될 만한 싹을 미리 제거하는 것에도 뛰어나다. 그의 움직임은 굉장히 유연하며, 그 재빠름 몸놀림으로 인해 상대 선수의 움직임은 마치 슬로 카메라를 통해서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될 때도 있다.
PK 장면을 예를 들어 본다. 카리소는 몸 전체를 어느 한 곳으로 던지면서도 양 다리는 다른 방향에 둔 채로 있을 때가 많다. 마치 모든 가능성에 대응할 수 있기라도 한 듯이.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그는 볼이 오는 방향으로 몸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방향으로 볼이 왔을 때에도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볼을 건드린다.
리베르는 카리소의 어깨에 많은 것을 짊어지게 하고 있다.
GK로써의 활약뿐만 아니라 후기 리그에서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팀에 공헌. 2004년 후기 리그 이래 벌써 7시즌이나 무관인 채인 리베르에게 있어서 리그 반환점을 돌아 1위에 서 있는 올 시즌은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또한 12년 만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리베르는 49번이나 참가하면서도 단 2회(1986년, 1996년)밖에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리베르에게 있어서 포인트가 되는 것은 감독인 시메오네의 전술도 아니며, 팀 내에서의 신뢰 관계도, 젊은 MF 디에고 부오나노테(Diego Buonanotte)나 우루과이 스트라이커 세바스티안 아브레우(Sebastián Abreu)의 컨디션 유지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GK 카리소의 존재이다. 올 시즌 리베르는 골 라인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카리소의 슈퍼 세이브로 끝나고 있다.
이미 아르헨티나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카리소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위대한 GK가 되어 가고 있다.
- Fernando Belluschi, MF, 올림피아코스 [본문으로]
- Marco Rubén, FW, 비야레알 이적 후 레크레아트보 임대. [본문으로]
- Diego Simeone, 현역시절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시합에서 베컴한테 밟힌 사람으로 유명(동국 대표 출장 역대 2위인 106시합) [본문으로]
- 결국 팀 잔류 [본문으로]
- 카리소의 선조가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가 각하 [본문으로]
- 혹자는 ‘유럽에 야신이 있다면 남미엔 카리소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야신은 세계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지만 카리소는 체코슬로바키아에게 6골을 허용하며 대표팀에서 물러나면 유럽에서 그의 명성을 알리는데 실패. [본문으로]
- 아르헨티나 리그 은퇴 후 페루의 1969년 알리안사 리마(Alianza Lima), 1970-71년은 콜롬비아의 미요나리오스(Millonarios)에서 플레이 한 후 은퇴. [본문으로]
- 페널티 박스 바깥으로의 과감하게 뛰쳐나오는 것이나, 수비진과의 연계에 따른 골키퍼 기술은 이 사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 Daniel Passarella – 아르헨티나 사상 최고의 DF. 수비수이면서 451시합에서 134골을 넣었다. 사족으로 머리가 장발인 선수를 극도로 싫어한다. [본문으로]
- Germán Lux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