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웹번역/축구

우고 산체스 - 대표팀에서 해임된 멕시코의 영웅

渤海之狼 2008. 4. 15. 22:53
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eusoccer/0708/other/column/200804/at00016872.html
저자
: 세르히오 레빈스키

바라 마지 않던 멕시코 대표팀 감독 취임 회견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던 우고 산체스였지만....

필시 우고 산체스[각주:1]에게 있어서 2008 3 31일은 자신의 캐리어 속에서 최악의 하루가 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날 멕시코 축구 협회는 국민적 영웅이며 세계에서도 명성을 떨친 선수 중에 한 명이었던 남자에게서 대표팀 감독의 지위를 박탈했다.

■ 프리메라 리가에서 5번 득점왕에 빛났던 영광의 나날들

 산체스는 1980년대 에스파냐에서 활약하며 멕시코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칭송 받았다.

 1981년 멕시코 UNAM 푸마스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 그 4년 뒤에는 레알 마드리드로 활약의 장소를 옮겨 황금시대를 구축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에밀리오 부트라게뇨[각주:2], 마누엘 산치스[각주:3], 마르틴 바스케스[각주:4], 미첼[각주:5], 미겔 파르데사[각주:6] 5명으로 구성된 [퀸타 델 부이트레][각주:7]가 중심이 되어 영광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산체스도 리가 에스파뇰라에서 5번의 득점왕에 빛났으며, 골을 넣은 다음에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도는 퍼포먼스도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체스는 모국 멕시코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당시 멕시코는 대표팀이건 클럽이건 산체스만큼의 영광과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산체스는 모든 광고나 잡지의 표지를 독점했다. 당시 멕시코 축구계에서 산체스 외에는 해외에서 플레이 하고 있던 선수가 거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멕시코 자국 클럽의 월급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무엇보다 해외로 나간다는 전통이 멕시코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산체스의 경우 당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회장이 이 멕시코 스트라이커를 보자마자 반해버리는 행운이 있었다. 회장은 처음에 크루스 아술의 말도나도를 시찰하러 멕시코에 갔는데, 푸마스에 소속해 있던 산체스가 눈앞에서 연속 골을 넣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었다. 결과 아틀레티코는 산체스를 획득하였고, 그때부터 마니토(산체스의 애칭) 영광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에스파냐에서 1년째는 부진하여 주위에서는 푸마스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산체스는 성공을 거두기까지 에스파냐에 남겠다고 우겼던 것이다.

■ 산체스의 월드컵이 될 예정이….

 산체스의 경력에서 이상한 점은 에스파냐에서 그처럼 빛나는 실적을 올린 것에 비하여, [엘 트리][각주:8]에서는 그에 필적하는 활약을 남기지 못한 것이다. 전성기의 대부분을 해외 클럽에서 보냈기 때문에 대표팀에 그다지 소집되지 못한 것이 이유이다. 그래도 산체스는 78, 86, 94년이라는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다.

 78년 아르헨티나 대회에서는 조 예선에서 3연패를 당하여 승점 0인 채로 귀국길에 올랐다. 더구나 서독과의 시합에서는 0-6이라는 대패였다.

 자국 개최가 된 86년 대회는 누구나가 [산체스의 월드컵]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큰 활약도 하지 못했고, 조 예선 파라과이와의 시합에서는 PK를 실축. 멕시코는 8강에 진출하기는 하였지만 자국민들을 실망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 호된 비난을 받은 감독 시대

 현역을 은퇴하고 지도자가 되어서부터 산체스는 자주 멕시코 언론에게 비난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2000
년 친정인 푸마스 감독에 취임하여 2004년에는 전후기 리그에서 연패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산체스는 불청객이었다. 사람들은 예전의 영웅을 거만하다고 느꼈고, 전술 면에서도 무지하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멕시코 미디어는 산체스가 당시 멕시코 대표팀 감독 히카르도 라볼페[각주:9]에 대한 일련의 규탄 캠페인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산체스는 라볼페를 대표팀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무엇이건 비판을 전개하였다. 아르헨티나 사람인 라볼페는 원래 GK였다. 현역 시대에 상대팀 선수로 만났던 경험도 있던 라볼페와 산체스는 필드 밖에서도 대립했다.

 산체스는 외국인인 라볼페가 멕시코 대표팀 감독에 앉아 있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엘 트리]는 조 예선 돌파를 이루었지만 16 1차전 상대는 지휘관의 모국 아르헨티나가 되었다. 결과는 연장전 끝에 1-2로 패배. 산체스는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표팀 감독은 자국 출신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6 11. 결국 산체스는 멕시코 대표팀 감독의 자리에 취임하여, U-21대표( U-23 대표팀 세대)의 감독도 겸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임까지의 1년이 넘도록 대표팀에 어울리는 전술을 확립하지도 못하였고, 팀으로써의 형태를 보이는 것 조차도 없었다. 산체스가 취임 시에 내세운 목표는 CONCACAF 골드컵[각주:10] 우승과 코파 아메리카(남미선수권) 4,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메달 획득이었다.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3위에 입상하여 멕시코 국민들 기쁘게 하였지만 나머지 두 개는 실현되지 않았다.

 2007년 골드컵[각주:11]에서 미국에게 패하여[각주:12] 준우승에 그친 것에 더하여, 그지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올림픽 예선 탈락은 산체스의 거취를 결정적으로 만들었다. 그 이전부터 대표팀 감독으로써의 산체스의 수완에는 의문부가 찍혀 있었다. 라볼페 쪽이 좋았다는 목소리도 나올 정도였다.

■ 일류 선수는 감독으로써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인가?

선수와 감독으로 양쪽에서 성공하여 여전히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요한 크라위프

 산체스의 해임으로 인해서 멕시코에서는 '감독론'과 같은 논의가 재연되고 있다. 즉 위대한 선수가 위대한 감독이 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멕시코 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는 이번 단 한번으로 자신의 경력 그리고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일류 선수가 감독으로서도 일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예를 들면 알프레도 스테파노[각주:13] 혹은 크라위프와 같은 천재는 지도자로서도 빛나는 실적을 남겼다. 그러는 한편 펠레는 감독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에서 두 개의 클럽을 이끌었지만 스트레스만 쌓였을 뿐이었다. 감독 시대의 마라도나는, “나처럼 플레이하면 된다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의 선수들의 증언에 의하면 감독 대 선수라기 보다는 같은 동료로써 선수를 취급했던 듯 하다.

 프란츠 베켄바워의 경우는 감독직을 일찌감치 끝내고 명함을 건네주고 악수를 나누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06년 월드컵에서는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이다. 프랑스가 낳은 천재 지네딘 지단은 은퇴 후도 감독직에는 흥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가 존경하는 우루과이의 엔소 프란체스콜리와 마찬가지로 현재는 텔레비전 해설자로 축구와 끈을 이어가고 있다.

 일류 선수가 감독에 앉으려 할 때는 자신의 이미지를 손상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해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명성을 손에 넣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만 잃는 것은 일순이다. 우고 산체스와 같이 불과 1년 만에 빛나던 명성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이쯤에서 적절한 산체스 (현역 때의) 탑 10 플레이 >

  1. Hugo Sánchez Marquez [본문으로]
  2. Emilio Butragueño, FW [본문으로]
  3. Manuel Sanchís Hontiyuelo, CB [본문으로]
  4. Rafael Martín Vázquez, MF [본문으로]
  5. Míchel, RMF. 현 레알 마드리드 칸테라 총책임자.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한국과의 시합에서 헤드트릭을 기록했다. [본문으로]
  6. Miguel Pardeza, MF [본문으로]
  7. Quinta del Buitre - ‘독수리(Buitre)의 집(quinta)’이란 뜻으로, 중심 선수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의 별명이 독수리(El Buitre)였기에, 그를 중심으로 한 80년대의 레알 마드리드를 그렇게 불렀다 [본문으로]
  8. El Tri = Los Tricolores의 약자. 삼색(三色)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멕시코의 국기색이 삼색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멕시코 대표팀의 애칭 [본문으로]
  9. Ricardo Lavolpe, 재임 2002-2006, 대표팀 해임 후 보카를 거쳐 현재 멕시코 리그 몬테레이(Monterrey)의 감독. 아르헨티나 출신. 융통성 있는 전술과 함께 경기장에서 줄담배로 유명하다고 함 [본문으로]
  10. 북중미카리브 축구 연맹 주최의 대륙 선수권 [본문으로]
  11. 미국 개최 [본문으로]
  12. 1-2 [본문으로]
  13. Boca, River에서 리그 타이틀, 발렌시아에서 코파 델 레이, 리그 타이틀, 컵 위너스 컵(현 UEFA컵)를 제패했으며, 1974-75년에는 포르투갈의 스포르팅 리스본, 1982-84, 1990-91은 레알 마드리드 등 1967년부터 91년까지 몇 년을 제외하곤 총 8개 팀의 감독을 맡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