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베리아와 코오리야마를 잇는 것 - 조지 웨아 소동에 대해서
우선 이 기사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iMBC 기사 링크)
출처: http://sportsnavi.yahoo.co.jp/soccer/jtoto/column/200801/at00016053.html
저자: 우츠노미야 테츠이치
■ 누구도 [소동]의 본질을 말해 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미리 양해를 구한다. 필자는 이번 조지 웨아 씨(氏)의 방일(訪日)을 어떤 면에선 [소동]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웨아 씨(氏)에 대해서는 이제 와서 많은 것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995년에는 아프리카 출신 선수로써는 최초로 발롱도르(유럽 최우수 선수상/현 세계 최우수 선수상), 이어서 FIFA 연간 최우수 선수상도 수상. 아프리카 연간 최우수 선수에는 3번(89년, 94년, 95년) 선출되었다. 클럽은 모나코, 파리 생제르맹, AC밀란 등에서 활약. 특히 밀란 시대에 보여준 초인적인 신체 능력으로 만드는 호쾌한 골 장면은 축구팬이라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웨아 씨(氏)는 2003년 현역을 은퇴한 후 2년 뒤인 2005년에는 조국 라이베리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우리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지만 안타깝게도 낙선. 이후 잠시 동안 그 이름을 들을 수 없었지만 갑자기 일본에 온 것이다. 더구나 그를 부른 것은 [바리엔테 코오리야마(郡山)]라고 하는 올해(즉 이번 달)에 막 만들어졌을 뿐인 클럽. JFL(일본 3부리그 - 역자 주)도 지역 리그(일본 4부리그 - 역자 주)도 아니다. 후쿠시마(福島) 현(県) 리그 소속. 그것도 3부이다.
현 3부라고 하면, 일본 톱 리그인 J1에서 보면 8부 리그에 해당한다. 필자도 지역 리그(즉 4부리그)까지는 취재해 왔지만, 아무래도 각 현 레벨의 리그까지 다 돌아 볼 수는 없다. 필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서도 현 3부를 관전한 사람보다도 플레이 한 적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관전보다도 플레이 할 기회가 훨씬 많은 리그.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이 각 현 3부인 것이다.
이야기를 웨아 씨로 돌린다.
[라이베리아의 괴인]은 18일에 일본에 오자, 곧바로 토우호쿠 신칸센(東北新幹線)을 타고 후쿠시마 코오리야마로 이동. 다음 날인 19일 코오리야마에서의 기자 회견에서는 실로 60개 회사의 미디어가 쇄도하였고, 그 중 반은 토우쿄우(東京)에서 달려 온 미디어였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날 보도를 보고 필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어떤 미디어건 “웨아 씨, 바리엔테 코오리야마의 총감독 취임”이라고 표면적인 사실을 보도할 뿐으로, 현 3부에 막 생겨났을 뿐인 클럽이 발롱도르, FIFA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던 인물을 [총감독으로 초빙]한 것이 얼마나 발칙하고 상식을 벗어난 [소동]인가, 그 본질적인 부분을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번 웨아 씨의 방일(訪日)은 [라이베리아 와 코오리야마], [발롱도르 와 현 3부]라는…… 너무도 미스 매치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폭발적인 화학 반응을 일으킨 [소동]이었다. 그 본질적인 부분을 누구도 말하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얼토당토않은 결합은 왜 어떻게 해서 성립된 것일까?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필자는 망설임 없이 20일에 토우쿄우의 어떤 호텔에서 행해진 웨아 씨의 미디어 대담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 사회 공헌을 말하는 웨아 씨.
“꿈 속에 있는 것 같고, 아직 몸은 플로리다에 있는 것 같다(웃음)”
[라이베리아의 괴인]의 첫 목소리는 이런 것이었다.
시차와 방일 후의 과밀 스케줄로 인하여 이 날은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한 웨아 씨. 하지만 그래도 정중히 우리들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일반적인 [괴인]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신사다움. 참고로 웨아 씨는 현재 미국 플로리다에 생활의 거점을 두고서는 그 곳의 대학에서 정치학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2005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했으면서도 정치가로써의 실적과 학력을 약점잡혔다고도 한다. 41살의 대학 생활은 틀림없이 2012년 라이베리아 대통령 선거를 향한 포석일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사람들이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도로도 굉장히 잘 정비되어 있어 굉장히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오전에 국회 의사당을 방문했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이번은 비즈니스로 일본에 왔지만 언젠가는 관광을 하러 오고 싶다”
일본의 인상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웨아 씨. 필자는 [국회 의사당]이라는 단어에 ‘엥?’이라고 반응했다. 실제로 일본의 정치가들과 만나지는 않은 듯했지만 그래도 이번 웨아 씨의 방일(첫 방일이라고 한다)은 정치가로써의 목적도 다소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참고로 웨아 씨는 [Congress of Democratic Change(CDC)]라는 라이베리아 야당 제1당의 당수이기도 하다. 이번엔 당의 간사장과 야당 제 2당의 당수도 함께 왔기에 적어도 바리엔테 만을 위해서 방일한 것이 아니란 것은 명백하다.
어쨌든 이번 회견에 앞서, 어째서인지 “클럽에 대한 이야기는 웨아 씨에게 질문하지 않아주었으면 한다”라고 사전에 담당자에게 다짐을 받았다. “클럽과 웨아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대표인 타치카와(立川)가 이야기할 것입니다”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웨아 씨에 대한 질문은 개인적인 것으로 한정되어, “한 나라의 축구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라던가, “일본 축구 선수 중에 아는 사람은 있는가?”라는 막연한 것이 많아져 버렸다. 필자는 웨아 씨가 축구 선수에서 정치가로 변신하게 된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질문을 해 보았는데, 그러자 웨아 씨는 실로 정열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축구 선수로써의 목표는 이미 인생의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달성할 수 있었다. 다음 스테이지로 내가 정치를 선택한 것은한마디로사회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베리아도 그렇지만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전쟁이나 굶주림 등으로) 죽음이라는 의미 조차 알지 못하고 죽는 아이들이 많다. 나는 우선 라이베리아에 평화와 사랑을 가져다 주고 싶다. 축구 선수로써 그리고 인간으로써 배운 것, 받은 것을 통해서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
그러면서 웨아 씨는 바리엔테에서의 도전도 언급했다.
“코오리야마가 지금은 작은 클럽이다. 빅 클럽이 된다는 것을 누구도 믿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장시키기 위해서 어째서 한계를 둘 필요가 있을까? 도전해 보는 거다. 그것이 나의 정치 스타일이다.”
■ 바리엔테를 만든 젊은 경영자
웨아 씨의 회견은 당초의 예상을 뛰어넘어 거의 40분 정도 이어졌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질문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응해준 것에 대해서 새삼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렇지만 [라이베리아 와 코오리야마를 잇는 것]이 무엇이었나를 결국 웨아 씨의 입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물론 필자에게 있어서도 웨아 씨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이번 취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그와 바리엔테와의 관계이다.
그런 필자의 의문에 답해 준 것이 [주식회사 바리엔테 스포츠 코오리야마]의 타치카와 미츠아키(立川光昭) 대표. 31살의 젊은 경영자는 우선 바리엔테의 이념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하였다.
“저의 이념으로써 [우선 J리그]가 아닌, 지역의 사람들이가족 전부가참가할 수 있는 듯한 지역 통합 스포츠 클럽이라는 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치원 세대부터 시니어까지 카테고리는 달라도 같은 이름의 클럽이 있어 ‘나는 저기 출신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듯한 클럽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 융화됨에 따라 톱 팀이 J리그에 있던지 토우호쿠(東北)리그에 있던지 최종적으로는 팬이나 서포터가 어느 정도 모일지 또는 관객들이 어느 정도 들어올지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타치카와 대표와의 질문 응답에서 알게 된 것을 아래에 정리해 본다.
우선 그는 코오리야마 출신이 아니다. 야마나시(山梨) 태생으로 토우쿄우에서 자랐다. 사이타마(埼玉)의 고등학교에서 진지하게 축구에 임하여 처음엔 프로를 목표로 했지만 이루지 못했고 언젠가 클럽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 그것을 위해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11개의 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사업상 자주 가는 코오리야마에서 “지역 통합 스포츠 클럽을 만들어 보지 않겠나”라는 오퍼를 받았다. 딱 1년 전의 이야기다.
“코오리야마의 많은 분들에게 ‘밖에서 사람들이 와 주지 않으면 이 지역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최근에는 J리그에 진출하고자 하는 지방 자치단체도 줄었습니다만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바리엔테가 웨아 씨에게 바라는 것은?
한편 타치카와 대표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인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통해서 웨아 씨가 라이베리아에서 운영하고 있는 [조지 웨아 사커 아카데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아카데미에서는 서 아프리카 지역의 재능 있는 아이들을 모아 축구뿐만 아니라 학업에도 힘을 쏟게 하여 축구 선수의 길이 끊겨도 사회인으로써 성공할 수 있는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 이념에 공감한 타치카와 대표는 매니지먼트 면에서 서포트를 약속. 곧이어 둘간의 관계가 계속되는 동안 웨아 씨도 일본에서의 활동에도 흥미를 갖게 되어 이번 일본 방문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코오리야마에서의 오퍼와 (웨아 씨의 건은) 거의 같은 시기였습니다만, 당초는 완전히 따로따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타치카와 대표)
그렇다면 바리엔테는 [총감독] 웨아 씨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지도자에 대한 교육, 프로 의식의 정착, 그리고 그 자신이 작은 클럽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클럽 운영에 대한 어드바이스. 거기에 해외, 특히 아프리카의 선수에 대한 정보. 그리고 교류의 촉진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타치카와 대표. 단 FC 류큐우(琉球 – 오키나와(沖縄)가 있는 지역 – 역자 주)의 트루시에 감독과 같이 구체적으로 [연간 몇 일]이라는 듯한 약정은 없다고 한다.
“웨아 씨도 대학의 수업이 있으니까 계속 일본에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오는 3월에 일본에 오실 때에는 조금 오랫동안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몇 일 확정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거기에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면 더욱 더 힘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지도에선 선배 클럽을 리드
그 후에도 타치카와 대표에게 클럽의 운영이나 전망에 관하여 여러가지 설명이 있었지만 너무도 길어져 버리기에 이 즈음해서 그만 둔다. 무엇보다 아직 클럽으로써의 실태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인 것이다(참고로 1월 23일 현재, 위키피디아에도 [바리엔테 코오리야마]에 관한 기술은 없다). 지금 여기서 클럽의 운영이나 전망에 대해서 이것저것 언급할 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필자가 알고 싶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라이베리아와 코오리야마를 잇는 것]이었으며 이번 소동의 본질인 것이다.
현재 후쿠시마 현에는 [J리그를 목표로 한다]고 여겨지는 클럽이 2개 존재한다. 토우호쿠 리그 1부인 비안코네(Viancone) 후쿠시마(ビアンコーネ福島), 그리고 토우호쿠 리그 2부인 후쿠시마 유나이티드 FC(福島ユナイテッドFC). 비안코네에 이르러서는 같은 코오리야마를 홈 타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타치카와 대표는 신경 쓰지 않는다.
“두 팀 다착실히 전진하고 있으며, 이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시민에 대해서 침투라는 의미에서는…. 그것은 코오리야마에 가 보시면 알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역 앞에 어느 정도 깃발이 세워져 있는가? 얼만큼의 사람들이 (클럽의 존재를) 알고 있는가...... 하고 있다는 것은 멋지다고 생각합니다만 인지도라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낮다(고 밖에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웨아 씨에게 힘입어 인지도를 높여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토우호쿠 리그 소속의 라이벌에게 발롱도르와 맞부딪히게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반칙이며 그러한 발상 자체가 보통 사람으로서는 우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실제로 해버렸기 때문에 여러 미디어를 말려들게 한 이번 [소동]이 되었다. 결과 바리엔테는 3개나 4개나 상위 카테고리에 있는 유나이티드나 비안코네에 대해서 적어도 인지도라는 면에서는 훨씬 앞서나가게 된 것이다.
■ 후쿠시마 FC의 실패를 거울 삼아
라고는 하여도 그들은 단순히 거대한 광고탑을 세운 것으로 멈추지 않고, 먼 미래 J리그 입성을 착실하게 내다보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우선 J리그]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현 리그에서의 특별 처치(카테고리를 단번에 뛰어넘는 것)도 조사해 두고 있었으며, 더욱이 팀 명인 [바리엔테]의 상표 등록도 끝내 놓았다고 하니 놀랄 따름이다. 참고로 호쿠신에츠(北信越)리그 1부에는 같은 이름의 [바리엔테 토야마(ヴァリエンテ富山)]라는 클럽이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도 타치카와 대표는 알고 있었다.
“토야마에서는 ‘YKK AP’와 ‘애로우즈 호쿠리쿠(アローズ北陸)’가 현 협회의 요청으로 합병하여 [카타레 토야마]가 탄생함으로 인해 현 협회 차원에서 카타레를 응원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때문에 바리엔테 토야마는 J리그를 목표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타치카와 대표는 예전에 J리그를 목표로 했으면서도 1997년에 해산한 ‘후쿠시마 FC’(이 팀엔 ‘곽경근’이 뛰었었다 – 역자 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전설의 클럽(JFL의 활약을 바탕으로 J2에 참가 신청을 하자마자 여러 사정으로 팀 해체 – 역자 주)의 이름을 들었을 때 필자는 이 인물이 진심인 것을 확신했다.
“역시 홈 타운에서는 후쿠시마 FC의 실패로 인하여 ‘어차피 J리그 클럽은 무리’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있지요. 하지만 코오리야마의 인구는 34만. 토우호쿠에서는 센다이(仙台) 다음가는 포텐셜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조금씩이라도 도전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웨아 씨에 관해서도 처음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부탁을 하니 와 주었으니까요. 처음엔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닮은 꼴의 가짜를 데리고 오는 거 아니냐는 뒷담화도 까였습니다. 그래도 와 주었던 것입니다!”
한편의 당사자인 웨아 씨도 코오리야마에, 그리고 일본에 무언가를 원했기 때문에 힘든 일정 속에서도 일본에 왔을 것이다. 적어도 돈이 목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실례지만 현 3부의 클럽이 낼 수 있는 돈이래 봐야 안 봐도 뻔할 것이다). 그렇다면 웨아 씨가 몇 번이나 역설했던 [사회 공헌]이 현 3부의 클럽과 어떻게 이어져 갈 것인가. 둘의 생각은 복잡하게 얽혀, 지금은 아직 명확한 형태로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21일 웨아 씨는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일본을 떠나, [조지 웨아 소동]은 막을 내렸다.
당초 다소 의심스런 느낌을 가지고 임했던 이번 취재. 하지만 실제로 당사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말들 하나에서 열까지 정열이나 꿈, 야심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라이베리아와 코오리야마를 잇는 것]이 과연 어떤 전개를 보여줄 것인가? 앞으로도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