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감독이 잇빠이
마르코 판 바스턴(네덜란드), 거스 히딩크(호주), 레오 벤하커(트리니다드 토바고), 딕 아드보카드(대한민국).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표팀 감독에는 네덜란드 출신 감독이 4명이나 출장한다. 조사해 보진 않았지만 같은 나라 출신의 감독이 4개국의 대표팀 감독으로 지휘를 하는 것은 아마도 월드컵 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세계는 지금 공격 축구의 시대. 그 흐름 속에서 맞이하는 독일 월드컵을 당연히 필자도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4명의 네덜란드 감독의 존재는 그야말로 시대의 상징으로 공격축구의 원조인 나라의 감독들이 중용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네덜란드의 감독들은 중용되고 있다. 레이카르트(&텐 카터 조감독), 코 아드리안세(포르투)와 로날드 쿠만, 데니 블린트 그리고 호주 국가 대표 감독인 거스 히딩크. 그 수는 5명. 이쪽은 틀림없이 사상 처음으로 세계는 지금 공격 축구의 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 감독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5명 중 4명이 그룹 리그 돌파에 성공했다. 마지막 주를 맞이하여 가장 위험에 처해 있던 것은 코 아드리안세(포르투)와 쿠만(벤피카)이었다. 둘 다 그룹리그 최하위. 승리하지 않고선 16강에 오르는 길은 없었다.
쿠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대전하였다. 나는 모리뉴와 인터뷰했던 2년전의 일이 생각났다. 때는 결승 토너먼트 1회전이 행해지기 2~3일전. 모리뉴가 이끄는 포르투의 대전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퍼거슨은 확실히 명장이지만 그의 축구에 전술적인 결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난 그 곳을 철저히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승리했다.
네덜란드의 양 감독은 어떠했을까? 코 아드리안세는 실패했지만, 쿠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결전에서 멋진 승리를 이루어냈다. 그것도 몇 명의 주력선수가 결장했는데도 말이다. 2년전의 포르투처럼 계속 승리해 나가며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진 않지만 맨체스터에게 승리함으로써 그의 주가는 크게 올라갔음이 분명하다.
쿠만, 판 바스턴, 레이카르트 이 세명은 88년 유럽선수권 서독 대회에서 우승할 당시의 주력 멤버이다.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지 못한다는 말은 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선배인 크라위프도 예외였다. 그들에게 공통되는 점은 무엇인가? 젊은 감독 3명도, 크라이프도 FIFA가 20세기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한 고 리뉘스 미헐스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경험이 있다. 준우승한 74년 서독 월드컵 대회, 우승한 88년 서독 유럽선수권에서도 지휘를 잡은 것은 미켈스였다. 이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헐스처럼 공격 축구의 발전에 기여해 온 아리고 자키는 미헐스에 대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미헐스가 나타나기 전과 후의 축구에 있어서의 생각 방식이 전혀 별개가 되었다. 그가 만든 토탈싸커는 그럴 정도로 참신한 것이었다.”
그의 아들에 해당하는 크라위프, 손자에 해당하는 쿠만, 레이카르트, 판 바스턴은 사랑스러운 제자라 할 수 있다. 그들을 포함한 네덜란드의 감독들이 독일에서 행해지는 내년 월드컵 대회에서 주목을 받는 것에 인과율의 법칙을 느끼는 것은 나 뿐일까?
모리뉴는 올 시즌에 초에 프리미어에서 주목할 팀으로 토튼햄을 꼽았다. 그리고 실제 토튼햄은 리그 4위권 내에 있다. 감독은 네덜란드에서 년간 최우수감독을 수상한 경험이 있는 마틴 욜이 맡고 있다.
불행하게도 일본은 그 흐름 속에서 빠져있다. 공격축구라는 단어가 활발히 쓰이기는 하지만 이유로써, 이론으로써는 확실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기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그 때, 방제가 아닌 히딩크가 나고야 그램퍼스의 감독을 맡았다면 지금의 일본은 어떠했을까? 그 때라고 하는 것은 94년으로 신감독을 찾고 있던 나고야 그램퍼스는 히딩크에게 접근했었다. 방제로 방향이 바뀐 것은 그야말로 최후의 순간. 만약 그램퍼스의 감독으로 히딩크가 취임했었다면..... 방제에게 불만을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후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 히딩크는 2004년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고, 2006년에는 호주의 감독으로 일본과 대전하게 되었다.
바로셀로나의 조감독 텐 카터에게 필자는 “일본의 감독으로 와주세요”라고 인터뷰 중에 농담삼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나에게는 일본에 많은 친구들이 있다. 일본의 축구도 자세히 알고 있다. 내가 일본 대표의 감독이라면 일본의 디펜스 시스템을 2~3개월 안에 재건해 보이겠다. 하지만 레이카르트와 3년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기에 지금 일본에 가는 것은 무리겠지만……”
이번 시즌이 그 3년째. 내년 텐 카테가 새로운 계약을 맺지 않는 한 자유로운 몸이 된다. 내가 카와부치회장이라면 망설이 없이 그에게 감독 계약을 맺자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