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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가 보여준 [FOTBOL TOTAL]

渤海之狼 2007. 10. 1. 21:02

출처: http://number.goo.ne.jp/soccer/world/column_cl/20071001-1-1.html

저자: 스기야마 시게키



<베른트 슈스터는 현역 시대, 중반의 게임 메이커로 활약.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로 [금발의 천사]로 불렸다.

레반테, 헤타페 등의 감독을 역임하였고, 올 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취임>


챔피언스 리그, 브레멘과의 홈 첫 시합에서 2-1.

멋진 스타트를 끊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에게 승리에 [건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고민이나 흔들림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처음 만난 그 날부터, 사랑의 꽃이 필 때도 있다”라는 옛 TV 프로그램의 선전 문구가 있었는데,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필자의 마음이 바로 그러하다. 한 번 본 그 날부터, 필자의 마음에 팍 꽂혀, 곧바로 푹 빠졌다. 스스로 이런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이건 정말 드문 경우다.


[궁극의 슈퍼 사커]라는 것은 뭘까?

필자는 관전의 동기를 거기에 두면서, 지금까지 많은 시합을 보아 왔다. 십수 년간에 걸쳐 챔피언스 리그를 계속 쫓아다니는 이유도 저 [궁극의 슈퍼 사커]와 만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인 것 말고는 없다. 그러나 시합 관전을 하면 할수록, 만족도의 허들도 높아진다. 조금 정도로는 감격하지 않는, 건방진 체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이상 기자석에 앉아도, 쓸데없이 흥분하는 일이 없다. 축구를 굉장히 좋아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극히 냉정. 조금의 선입관도 없고, 어느 한 팀에 마음을 두는 일도 그다지 없이, 동등한 감각으로 관전에 임하고 있다.


에스파냐 리그 제 2라운드, 엘 마드리갈에서 열린 비야르 레알과의 시합도 그러했다.

베른트 슈스터감독이 이끄는 새로운 레알 마드리드에 필요 이상의 기대는 전혀 품지 않았다. 사전 정보의 준비도 평소와 같이, 여느 때와 같이 평상심으로 관전에 임했다. 센세이션한 충격을 거기서 체험할 줄은 예상조차 하지 않았다.


한 눈에 반했다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한다.

다음 날, 마르카 지(紙) 일면의 헤드라인을 이렇게 수놓았다.

[FOTBOL TOTAL]. 즉 [토털 풋볼].

20세기 최고의 감독이라는 칭호를 FIFA에게 수여받은 고(故) 리뉘스 미헬스가 제창했던 모던 풋볼의 별칭을, 절찬의 도구로써 인용한 것이다.과연!! 하고 무릎을 칠 정도의 기분이었다. 말하자면 토털 풋볼이란 최고의 칭찬이다. 관전했던 마르카 지(紙)의 기자도 거기서 [최고]라는 감격에 휩싸였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간다.


토털 풋볼의 발상의 지(地)는 아약스이며 네덜란드이다.

1971년에 아약스의 감독으로, 챔피언스 컵을 제패했던 리뉘스 미헬스는, 다음 시즌부터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지휘봉을 쥐게 된다. 1974년에는 아약스의 중심 선수였던 크라위프도 거기에 선수로 입성했다.


레알 마드리드도 80년대 네덜란드의 레오 벤하커(현 폴란드 대표팀 감독)를 감독에 앉혀, 퀸타 델 부이트레(Quinta del Buitre - ‘독수리(Buitre)의 집(quinta)’이란 뜻으로, 중심 선수 에밀리오 부트라게뇨(Emilio Butrague 별명이 독수리(El Buitre)였기에, 그를 중심으로 한 80년대의 팀을 그렇게 불렀다 - 역자 주)의 시대를 쌓거나, 98년에 히딩크를 감독으로 임명하는 등, 네덜란드와의 관계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어느 쪽이 보다 네덜란드와의 관계가 깊냐고 한다면, 분명 바르셀로나가 된다. 더구나 현 감독인 레이카르트는 아약스 출신의 네덜란드인. 토털 풋볼도 바르셀로나 쪽이, 추구하는데 여념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친(親) 레알 마드리드인 마르카 지가 [토털 풋볼]이라는 헤드라인을 내보낸 것은, 어쩌면 바르셀로나를 의식해서 비꼰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필자의 머리 속에서는, 무릎을 치면서도 그러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것을 뺀다고 해도 토털 풋볼이라는 헤드라인은 솔직히 납득이 갔다.


토털 풋볼의 대명사로써 위치해 있는 74년 네덜란드 대표팀의 축구를, 필자는 텔레비전 화면 너머로 본 경험밖에 없다. 88년의 유럽 선수권에서 우승한 네덜란드 대표팀은, 현장에서 충분히 보았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감독은 같은 미헬스라고 하여도, 74년의 축구와 다른 색깔의 팀이었다고 한다. 또한 미헬스의 제자인 크라위프가 감독을 했던 90년대 전반의 바르셀로나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토털 풋볼이었는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FOTBOL TOTAL이라는 헤드라인을 보고, 무릎을 치고 싶었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오랜 기간 풀지 못했던 어려운 문제의 해답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듯한 기분이었다. 계속 품고 있었던 막연한 이미지와 엘 마드리갈에서 본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가 정확하게 맞물리는 순간이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필드 위에서 플레이를 한번 본 순간부터, 네덜란드의 색깔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이미지로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 축구의 틀을, 커다랗게 뛰어넘은 것도 또한 사실이었다.

좋다고 하는 축구의 여러 요소를 풍부히 집어넣은 모던 축구.

한마디로 말하면 그렇게 된다. 단, 이상하게도 독일의 향기만은 그다지 나지 않는다. 감독인 베른트 슈스터는 전 서독 대표 선수. 귄터 네처와 쌍벽을 이루는 천재 계열의 게임메이커로 알려져 있다. 독일 명선수 열전에는 빠질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하지만, 대표팀 경력은 적다. 대표 팀에서의 플레이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 월드컵 이탈리아 대회에서는, 베켄바워 감독이 계속된 요청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완강히 거부했던 사건은 예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독일 색이 엷은 원인은,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0대의 10년간은 에스파냐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8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2년, 그 후, 아틀레티코에서도 플레이했다. 참고로, 레알 마드리드 시대의 감독은 벤하커. 네덜란드와의 접점은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에스파냐+네덜란드+@.

눈에 산뜻한 잔상을 아로새기는 공격적인 축구가, 올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얼마만큼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것인가? 강력한 팀이라기보다는 좋은 팀. 결코 우승 후보는 아니다. 도전자 정신으로 일관할 수 있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야 말로, 승리하여 올라갈 수 있는 요소는 갖추어져 있다고 필자는 본다. 우승후보에게 있어서, 이 정도로 싫은 존재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하자면, 올 시즌 아스날에게도 토털 풋볼의 향기를 느낀다. 앙리가 빠져 보다 모던하게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하는데, 그 건에 대해서는 후에 언급하겠다.